< -- - 2. -- > * 19화 *
"엄한데서 발이 묶였군. 날이 저물기 전까지 마차촌까지 갈 수 있으려나."
"나도 마차에서 또 하루를 보내고 싶진 않지만 날씨는 어쩔 수 없잖아. 뭐 그건 그렇고... 아까 하던 얘기, 계속 해주면 안돼?"
제이스는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채 발목만 까닥거리며 그런 요구를 해왔다. 진석은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 한 모금 마시곤 좌석에 등을 쭉 기대며 대답했다.
"대충 할 만큼은 해주지 않았나? 뭔 이야기를 더해."
"아니, 그... 이야기가 아직 끝난건 아니잖아? 2년쯤 보내고~ 하는데서 끊겼으니까."
집중해서 듣는거야 알고 있었지만 정말 어지간히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진석은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었지만, 여기서 또 다시 이성함락의 효과가 작용하고 있었다. 처음엔 서로 적대하며 죽이려 들었지만 어차피 한 편이 되기로 한 입장.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름 기구한게 동정심도 느껴졌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도 어떤 교단 출신이라는것과 더불어 도적 길드에서 훈련을 받았을때의 이야기에선 적으나마 동질감도 들었다. 어려서부터 헤세스모데우스 교단의 교육과 훈련을 강요당해 모든 사고 방식이 교단 중심이 되도록 세뇌를 당해온 제이스로선,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의 인생사를 듣는다는게 이렇게 흥미로운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이 남자를 교단에 합류하도록 설득했었다는 책임감도 있었고, 그 설득 이후에 나눈 섹스는 비록 힘은 들었지만 기분은 제법 좋았었으니까. 이래저래 눈 앞의 남자에게 흥미가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진석은 손에 든 물통을 제이스에게 건넸다.
"그전에 자. 너도 좀 마시던가."
"아아."
제이스는 아무 의심없이 물통을 받아들곤 내용물을 들이켰다. 그냥 물맛이라기엔 뭔가 좀 다른 맛이 섞여있는 것 같았지만 그냥 물통에 받아놓은지 시간이 꽤 지난 물이라 그렇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실 이 물통의 물엔 어제 진석이 쓰고 남은 페르모티오가 섞여있었다. 진석은 그냥 마시는 시늉만 했을뿐, 제이스만 미약이 든 물을 또 다시 마신것이다. 제이스가 물을 마시는걸 확인한 진석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곤 흠흠 하며 편한 자세로 이야기를 재개했다.
"그래... 2년. 나름 원숙한 암살자가 되었지. 실력에 자신감도 붙고 돈도 제법 만지다보니 세상이 다 내것 같더라고. 그런데 그러던 어느날. 오래전부터 신경전을 벌이며 영역다툼을 하던 라이벌 조직과 결국 항쟁이 벌어졌어."
"상대 조직의 우두머리를 노리러갔겠네?"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그렇게 끼어드는 제이스. 진석은 쯧쯔 혀를 차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잘나빠진 귀족 나으리를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지더군."
"왜? 갑자기 왠 귀족?"
"왜긴 왜야. 그야 그 귀족이 상대 조직의 실질적 지주였으니까지. 이쪽 지방의 생리는 잘 모르겠다만 내가 있던 북부는 그냥 그랬어. 귀족들이 뒤에서 그런 범죄 조직을 운영하는 일이 그닥 드문게 아니었으니까. 물론 썩어도 귀족이라고, 대놓고 티를 내거나 압박을 가해오진 못했지만 경비대를 자꾸 보내 트집을 잡아 귀찮게 한다던가, 세금 꼬박꼬박 잘 내는 영업장에 세무조사를 걸어온다던가 참 사람 짜증나게 만드는 수법을 쓰더라고. 우리 길드 입장에선 원수같은 존재였지. 그런 와중에 새로 개발되는 시장의 이권을 독점하기 위해 먼저 항쟁까지 걸어왔으니... 나름 조직의 에이스로 촉망받던 내가 그 작자의 목을 따러 나선거야."
"그럼 지금 멀쩡히 살아있다는 건 암살이 성공했다는 얘기겠네?"
"아니, 실패했어."
"에엥?"
얼굴 가득 의문의 표정을 띄우는 제이스.
"귀족도 바보는 아니었는지, 우리 조직에서 암살자를 몇 명 두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나봐. 내가 천신만고 끝에 저택에 잠입해 호위를 물리치고 귀족의 목까지 땄는데... 꼭 닮은 대역이더라고. 함정이었지."
"대역..."
"그래. 너희 교단에서 세간에 직접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범죄 조직들을 포섭해 대역으로 부리는 것 처럼 말야. 그거나 이거나 매한가지지 뭐. 아무튼 거꾸로 추적을 당해 여기저기 상처를 입고 등엔 화살도 몇 대 맞은채로 숲으로 도망치다 의식을 잃었어. 한 눈에 보기에도 부상이 엄청 심했을테니... 얼마 가지 못하고 알아서 죽을거라 생각했는지 놈들이 끝까지 추적을 하지 않은게 천만다행이었어. 숲에서 반쯤 죽을뻔하다 천신만고 끝에 몸을 추스린 나는 그 길로 하멜뷔에른을 떠났어."
"길드로 돌아가지 않은거야?"
진석은 흥 콧방귀를 끼고 짐짓 짜증난다는 표정을 띄워보이며 대답했다.
"돌아가면 뭐해? 어차피 다시 돈이나 몇 푼 받으며 길드의 도구로 부려지기나 했을텐데. 그냥 그대로 죽은걸로 위장하고 새 삶을 살아가는게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옳은 선택일거라 생각했어. 그렇게 대륙 여기저길 적당히 떠돌다 남부까지 흘러온거야. 자, 끝."
"...어? 군대의 무관... 같은거 아니었어?"
"무슨 소리야 그게?"
"아니 어제 분명 네가 날 협박할때는 귀족 기사 아가씨를 어떻게 고문 했다느니 이러쿵 저러쿵 떠들었잖아."
진석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배꼽을 잡았다.
"하하하하! 그걸 믿었어? 당연히 거짓말이지! 그땐 그냥 널 겁줘서 불안하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라고."
"하... 뭐야 정말."
귓가의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는 제이스. 뭐야, 그런거였나. 하긴 그땐 정말 눈 앞의 러셀이라는 남자가 정말 사람을 고문하길 즐기는 미친놈인걸로 철썩같이 믿었었다. 그래서 더욱 험한 꼴을 당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었고. 어쨌거나 자신을 죽이려 들던 이 남자는 역으로 설득에 넘어가 교단의 대업에 협력하기로 했으니... 고생스럽긴 했지만 결과만 놓고 보자면 뭐 괜찮은거겠지? 제이스는 속으로 그렇게 판단했다.
"그나저나 비 언제 그치려나."
마차의 창밖을 내다보며 혼자 중얼거리는 진석. 그 옆 모습이 어째 제법 섹시하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이 외딴장소, 이 좁은 공간에서 젊은 남녀 단 둘만 있는게 아닌가. 게다가 어제까지만 해도 죽고 죽이려는 사이였는데 이렇게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어째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더불어 어제의 정사도 떠올랐다. 강제로 당할때야 당연히 괴로웠지만, 설득한 이후에 했던 것은... 또 하는 소리다만 제법 괜찮았었으니까. 왠진 모르겠지만 자꾸 이상하게 그와 다시 한 번 몸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눈 앞의 남자가 잘생겨서만은 아니다. 한참동안 그의 과거를 듣고나니 앞서 말했다시피 흥미도 들고... 왠지 끌린다는 표현에 딱히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어쩌다보니 그냥 끌린다는거지 뭐. 어쩐지 입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 들어 물통의 물을 몇 모금 더 들이켰다. 그리고 어느샌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빤히 지켜보고 있는 진석.
"뭐, 뭐야. 왜 사람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슬쩍 얼굴을 붉히며 괜히 바닥으로 시선을 돌리는 제이스. 진석은 슬슬 미약의 효과가 돌기 시작했다는걸 눈치채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왜 슬쩍 옆에 와서 앉는데?"
째릿. 제이스는 애써 눈가를 찌푸리며 기분나쁜 표정을 지어보이려 했다. 하지만 그뿐. 별 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진석은 슬쩍 손을 뻗어 제이스의 다리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읏!"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됐어?"
그러고보니 속옷도 없이 걸친 홑옷이다. 바지 한가운데 부분이 아주 작지만 분명히 젖은채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스스로도 의식 못하는 사이 언제 몸이 이렇게 달아올랐단 말인가? 제이스는 당황하며 진석을 밀어내려 했지만, 그의 손이 바지 안으로 파고드는게 더 빨랐다.
"하앗! 아... 소, 손 빼..."
여전히 말만 하지 일체의 저항은 하지 않는 그녀. 진석은 에라 어차피 비 와서 오도가도 못하는거 실컷 회포나 풀자 싶어 손가락을 더욱 깊숙한 안으로 밀어넣었다. 질척하고 뜨뜻한 내부의 주름이 손가락을 꽈악 조여왔다.
"아앙, 아..."
"그러고보니 네가 그랬지? 교단에 오면 돈이고 여자고 뭐든 누리게 해준다고. 좋아. 네가 죽인 내 애인 대신 네 몸을 가질테니까."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릴 잘도, 앗, 으흐응!"
진석은 제이스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바지속으로 파고 든 손을 더욱 거칠게 놀렸다. 다른 한 손은 가슴을 쥔채 단단해진 유두를 꼬집고 누르며 마구 괴롭혔다. 분명 죽음의 위기에서 언변만으로 상대를 설득해 마음을 바꾸게 만들어 동료로 만든건 자신쪽이 아니었던가? 위대한 교단의 의지에 동참하도록 허락해 준것만으로도 큰 영광이거늘... 내가 왜 이 남자의 육욕을 충족시켜주고 있어야 하는건데? 제이스는 이거 어째 자신이 뭔가 손해를 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스 입장에서야 진석을 설득했다고 여기겠지만 실은 진석이 거짓으로 넘어간 시늉만 하며 그녀를 속이고 있는 셈이니 분명 손해가 맞았다. 하지만 진석의 애무가 더욱 거칠어지며 제이스의 머릿속에 떠오르던 의문을 흩어버렸다.
'아으... 도대체 왜 이딴 서툰 애무가 이렇게나 기분이 좋은거야?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하악 거리며 가쁜 숨을 내쉬는 제이스의 바지가 스륵 내려가고, 진석은 훌떡 바지를 벗어던지며 그녀의 입구에 자신의 단단해진 성기를 가져다대었다.
"싫어?"
진지한 표정으로 짧게 묻는 진석. 어차피 어제도 실컷 한 주제에, 지금도 할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하면서 뭘 새삼스레 묻고 있는건가. 제이스는 잠깐 머뭇거리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 맘대로 하면 되잖아... 이까짓거."
푸욱. 진석의 쇠막대처럼 달아오른 분신이 지체없이 제이스의 몸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단번에 끝까지 찔러올줄은 생각못했던 터라 예상치 못한 쾌감에 흡 하고 숨을 몰아쉬는 그녀. 거친 호흡에 가슴이 출렁거렸다. 교단의 다른 수호자들과 섹스 경험이 있는 제이스였지만 이 남자와의 섹스는 그들과의 것보다 왠지 훨씬 좋았다. 뭔가 말로 딱 집어 표현할 순 없었지만 묘한 중독성 같은게 느껴졌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입안이 불난것처럼 뜨거울때, 입안을 식힐 물이 아니라 매운 음식을 더 집어넣으며 느끼는 알싸함같은 그런 종류의 자극. 괴롭다는걸 알면서도 한 입만 더 한 입만 더 하고 계속 입 안에 밀어넣고야 마는 말초적인 중독성. 딱 그런 느낌이었다. 비가 내리는 초원 한복판, 마차의 차축만이 삐걱삐걱 마른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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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결국 오후가 되어서야 그쳤고, 그때까지 진탕 섹스를 나누던 둘은 몇시간쯤 눈을 붙인 뒤 야간에 쉬지않고 마차를 몰아 다음날 점심경에 페레나시에 다다를 수 있었다. 진석은 제이스가 안내하는대로 마차를 몰아 어느 평범해 보이는 2층 여관 건물 앞에 다다랐다. 제이스가 마차 안쪽의 차창을 열고 마부석의 진석에게 설명했다.
"여긴 빅 본 녀석들이 운영하는 곳이야. 저쪽 종업원한테 마차 넘겨주고 안으로 들어와."
제이스는 먼저 마차에서 내려 여관 안으로 훌쩍 들어가 버렸다. 진석은 여관 앞에서 지나는 손님들에게 별 성의없는 호객을 하던 종업원에게 마차를 넘기곤 배낭을 메고 제이스의 뒤를 따라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제이스는 여관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방 열쇠를 두 개 건네 받아 그 중 하나는 진석에게 넘겼다.
"자, 네 방 열쇠. 오늘은 내가 들러봐야 할 곳도 있으니 메디니아로의 출발은 내일하자. 그리고 이 여관안에선 따로 돈 낼 일 없으니 요깃거리라도 하던가 뭐 알아서 적당히 쉬고 있어. 난 일보러 나가야 하니까. 당장 빅 본의 두목도 만나봐야 하고..."
"그래. 알겠는데... 왜 방을 따로 써? 오늘도 같이 자야지?"
태연하게 묻는 진석의 질문에 멍한 표정을 짓는 제이스. 이내 정신을 차리고 특유의 짜증내는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넌 머릿속에 그 생각 밖엔 없어? 적당히 좀 해!"
"오오. 자꾸 보다보니 이젠 그 표정도 그냥 귀엽구만."
"...놀리지마!"
제이스는 씩씩거리며 진석의 가슴을 툭 떠밀곤 쿵쿵거리며 여관을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헹 콧방귀를 뀌는 진석.
'어젠 자기도 결국 좋다면서 마차안에서 허리만 열심히 놀리더니 뭘 새삼스레. 두고봐라. 나 없으면 못 살겠다 할 정도로 서서히 길들여준 다음 최후의 순간에 직접 지옥으로 보내줄테니까.'
진석은 2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방에 짐을 풀었다. 별 특징따윈 없는 지극히 평범한 여관방이었다. 그나저나 자신도 좀 나가서 필요한 걸 구입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은 입고 있는 옷부터가 데오그라즈에서 샀던 고급 정장인데다가 무기는 낡아빠진 청동 단검 뿐. 페레나시는 수도인 데오그라즈 만큼은 아니지만 맨 처음 시작했던 해밀턴시 정도는 발달한 국경 부근의 도시. 활기없던 러프야드와는 달리 어지간한 물건은 구할 수 있을터였다.
"그래. 새 무기랑 더불어 방어구도 뭔가 좀 걸쳐야겠다."
기왕 민첩이 높은 몸인데 어줍잖은 방어구를 입었다간 민첩만 깎아먹을까봐 방어구를 안썼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데오그라즈의 호텔에서, 그리고 숲속에서 있었던 제이스와의 다툼에서 입은 마법데미지는 강력했었다. 괜히 호기부리겠답시고 맨 몸으로 싸우는건 역시 어리석은 선택이었구나 싶었다. 특히 제이스가 숨겨두었던 마탄 한 방에 체력이 절반이나 날아갔던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이전 군주나 장수 플레이땐 당연히 성능좋고 빵빵한 갑옷을 두르고 다녀 잘 몰랐지만 그냥 맨몸으로 직접 입는 데미지가 얼마나 아픈것인지 새삼 깨달은것이다. 진석은 배낭에서 금화가 든 자루를 꺼내 적당히 서른닢 정도 챙겨 허리 벨트 주머니에 옮겨 담았다. 잔여금은 대충 300닢 가량 되는것 같았지만 귀찮아서 정확한 액수를 세어보진 않았다.
'으으 아무리 게임인데 쓸데없는 부분에서 너무 현실적인 것도 피곤해. 동전 하나하나 세서 들고다녀야 하니 원.'
1세대 VR 게임들은 메모리 관리를 위해 인벤토리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었다. 이런식으로 동전같은 오브젝트 하나하나를 다 구현하자면 쓸데 없을정도로 용량을 많이 소모하니 돈을 오로지 인벤토리 상에 존재하는 숫자로만 처리하기도 했고, 물건들 역시 지금의 진석처럼 배낭에 잔뜩 넣어다니는 것이 아닌 인벤토리창에서 끄집어 내는 개념이었다. 딱 필요한 최소의 순간에만 오브젝트를 구현하도록 만들어 아주 약간이라도 메모리 사용량을 줄이려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가상 현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그렇게 2세대, 3세대, 4세대. 그리고 현재의 5세대에 다다르자 VR 기어와 VR 게임은 양쪽 모두 차원이 다를정도로 바뀌었다. 초기의 게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그야말로 현실의 환경에 근접한 가상 세계를 구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현실성을 추구한것도 되려 게임같지 않다며 1세대나 2세대 시절의 캐주얼함을 선호하는 유저들도 여전히 존재했다.
'뭐 취향차이지.'
VR 기어가 보편화된 세상임에도 아직까지 수십년전에 나온 게임이나 게임기를 가지고 즐기는 고전 게임 애호가들도 많았다. 그저 개개인의 취향차이였다. 진석은 리베라처럼 비교적 현실에 가까운 VR 게임이 취향이었을뿐. 주머니에 돈을 옮긴 진석은 방문을 잠그고 1층으로 내려가 여관을 나서려다, 카운터에 앉아있던 여관주인에게 다가가 손에 들고 다니면서 먹을만한 적당한 요깃거리를 요구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으로 들어간 주인은 잠시 후 버터를 바른 빵 사이에 두터운 햄과 다진 양배추, 슬라이스 한 토마토를 끼운 것을 가지고 나와 진석에게 건냈다. 진석은 빵을 받아들고 한 입 베어먹어보려다 멈칫 하고 주인에게 질문했다.
"진짜 돈 안내도 되는거 맞죠?"
"물론입니다. 저희쪽엔 중요한 손님들이시니... 혹 필요한게 있으시면 말씀만 하십시오. 가능한 구해드리겠습니다."
정말로 정중한 태도였다. 하긴 교단의 수호자들은 빅 본이라는 조직 위에 서있는 입장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대접이리라.
"아니 뭐 일단은 이 점심밥이면 충분하니까. 고마워요."
덥썩, 진석은 빵을 한 입 가득 베어물며 여관을 빠져나왔다. 우물우물. 햄의 질이 좋은것인지 내용물은 간소한 편이지만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다. 손에 든 빵을 연신 베어먹으며 시장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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