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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35화 (35/155)

< --   - 3.   -- >         * 35화 *

그날 저녁. 호텔 내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진석과 제이스, 아르데나는 함께 호텔을 나섰다. 제이스가 전달해 준 레드라인 습격 계획을 따르기 위해서였다. 선셋대로를 벗어나 동쪽 선착장 지구에 다다르자 셋은 자리를 나뉘어 섰다.

"같이 움직이자니깐."

뚱한 표정을 짓는 제이스. 그녀는 진석과 같이 움직이고 싶어했다. 우선 빅 본이 레드라인에게 빼앗긴 술집을 친다. 전사인 진석이 먼저 안으로 진입하고 마법사인 자신은 도망갈지도 모르는 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외부에서 잠시 대기하다 나중에 진입하는 방식. 술집을 최대한 빠르게 제압한 후 보트하우스를 이동해 재차 공격하자는게 제이스의 계획이었지만 진석은 거부했다.

"안돼. 한 번 공격한 후 다시 이동하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느려. 역시 동시에 치는게 나아."

진석의 생각은 제이스와는 달랐다. 제이스가 술집을 치고, 자신은 그와 동시에 레드라인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보트하우스를 치는 계획이었다. 제이스의 생각대로 술집를 치고 다시 이동한다면 그 사이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다가, 최악의 경우 술집을 공격하고 있는 동안 습격 소식이 상대측에 알려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술집은 주택가 부근에 위치한 서쪽지구 아닌가. 소란이 알려질 확률이 높았다. 역시 동시공격이 낫다고 생각했다. 아르데나는 진석과 제이스의 가운데에 서서 우물쭈물 하다가 할 수 없다는 듯 제이스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래 아르데나. 제시는 마법사니까 뒤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낮에 보여줬던 괴물의 힘 있지? 변신까진 하지말고 일부만 끌어내는 그거 말야. 그걸로 제시를 도와줘."

"네. 오빠 말대로 할께요."

고개를 끄덕이는 아르데나의 손엔 단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본 나이프는 본격적인 전투용도론 부적합하니, 투척용으로 잔뜩 사놓았던 단검 중 그나마 쓸만한 것을 하나 골라 쥐어준것이다. 어차피 괴물의 힘을 이끌어낸 상태라면 무기따위 없어도 몇 놈 때려잡는건 일도 아닐테지만 아예 비무장으로 보내긴 뭐했으니까. 진석은 히죽 웃으며 제이스에게 말했다.

"우리 내기할까? 누가 먼저 호텔에 돌아오나."

"뭐? 당연히 우리쪽일게 뻔하잖아. 술집쪽은 아마 보트하우스 만큼 인원도 많지 않을테고."

내기가 되겠냐는 듯 팔짱을 끼는 제이스. 진석은 쯧쯧 혀를 차며 손가락을 하나 들어 좌우로 저었다.

"쯧쯔. 과연 그럴까? 원래 이럴땐 뭐라도 걸고 해야 근로의욕도 고취되고 성과도 더 나오는법이야. 자, 뭘 걸까? 그렇지. 내가 이기면 너 요리 한 번 배워볼래?"

이죽거리는 진석의 말에 어처구니 없다는 듯 눈썹을 찡그러트리는 제이스. 하지만 듣고보니 오기가 생기는지 손에 든 루비 로드를 불끈 쥐어보이며 대답했다.

"좋아! 그럼 내가 이기면... 앞으로 일주일 동안 날 제이스 님 이라고 불러! 그리고 그 동안은 아무 군말없이 충실한 하인 노릇을 해줘야겠어."

"오 이거 센데? 좋아! 재밌겠어. 대신 네가 두 개를 걸었으니 나도 조건을 하나 더 걸어야겠는데, 어때. 콜?"

진석의 도발에 지지 않겠다는듯 씨익 마주 웃어보이는 제이스. 고개를 끄덕였다.

"흥! 좋아. 뭔데?"

"내가 이기면 너도 일주일 동안은 메이드 복을 입고 하녀처럼 지내줘야겠어. 간단하지?"

새로운 조건에 제이스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우와... 러셀. 그, 그런 취향이었어?"

"뭐 어때서. 타인의 취향을 존중해다오 후후. 주인님~ 하면서 엉덩이를 알랑거리게 만들어주지."

"...절대 질 수 없겠네. 어디 누가 엉덩이를 흔들게 될 지 두고보자고."

바지직. 서로를 노려보는 진석과 제이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 진석은 기분좋게 웃으며 먼저 물러났다.

"자 그럼 이렇게 서서 시간을 낭비 할 순 없지. 먼저 간다!"

"읏 치사하게! 아르데나! 우리도 가자!"

"에, 네엣!"

한 남자와 두 여자. 어두운 도심의 갈림길에서 각자 흩어져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을 쓸데없는 내기가 걸린 일전의 시작이었다.

'...라는 식으로 호기롭게 내기를 걸었지만 솔직히 내가 불리하지.'

어두운 밤의 거리를 빠르게 달려나가며 그렇게 생각하는 진석. 사실 거리도 보트하우스쪽이 훨씬 먼데다가 제이스의 말처럼 상대의 머릿수 역시 그쪽이 훨씬 많을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있게 내기를 건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일리 델 비엔토가 A랭크로 올라가며 얻은 새로운 스킬... 시클론이 있으니까.'

바일리 델 비엔토는 우선 E랭크를 찍으면 단검을 다루는 위력과 숙련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여태껏 진석이 투척에 관한 별 다른 기술 없이도 투척을 쏠쏠하게 써먹은건 다 그 덕이었다. 그리고 D랭크의 기술 돌진 수평베기 라파가, C랭크의 기술 원무 오에스테, B랭크의 기술 난무 토르멘타. 이 셋의 공통점은 발동형 스킬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클론은 그 셋과 달리 지속형 스킬이었다.

'방어력은 꽤 하락하지만 공격력과 행동속도, 반사신경이 대폭 상승하는 지속형 스킬.'

시클론을 걸고 있는동안은 SP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방어력도 어느정도 감소했지만 그것을 보충하고도 남을 정도로 공격력과 속도가 상승했다. 안 그래도 높은 민첩으로 전투시 어지간한 공격은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던 진석이었는데, 속도와 반사신경을 올려주는 시클론까지 더해지니 이건 그야말로 치트나 다를바 없었다. 보는 사람 없을때 시험삼아 사용해 봤었는데 날아가는 벌레를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잡아챌 정도였다. 아니, 그냥 허공에 가만히 떠있는걸 잡는다 싶은 느낌이었다. 이걸 사람을 상대로 쓴다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급소에 공격을 몇 대는 때려넣을 수 있을터.

'이 스킬을 써서 최대한 빠르게 쓸어버린다면 승산이 아주 없는것도 아니지.'

안 그래도 여태까지 전투 방면에선 별다른 스릴을 맛보지 못한 진석이었다. 그나마 저번 아르데나의 저주를 풀때 겪은 싸움이 좀 싸움다웠달까. 물론 괴물의 발에 채이고 단 한 방에 생사의 기로를 오락가락 할때야 위태로웠었지만, 기왕 이렇게 방대한 가상 현실을 체험해보는 게임에 그 정도의 위기와 재미도 없어서 뭐 한단 말인가? 방랑자 플레이랍시고 상황에 맞춰 되는대로 흘러오기만 했으니 한 번쯤은 이런 내기로나마 타임어택같은 제약을 걸고 실력을 발휘해보고 싶었다.

'물론 별 다른 원한은 없다만... 지금의 나는 세상 말아먹겠다는 교단의 일원이잖아? 어차피 다 죽을거 한 발 먼저 간다고 생각해라.'

진석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워낙 빠르게 달려와서인지 인적 없는 거리 사이로 저 먼치에 제이스가 알려준 보트하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과연 레드라인이라는 조직의 본부가 맞는지, 보트하우스 외곽 주변에 험상궂고 건장한 사내들 십수명이 두셋씩 나뉘어 드문드문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문득 주변의 건물들을 둘러보았지만 어째 불이 들어온 곳은 하나도 없었다. 폭력조직의 본거지 주변이다보니 주변에 사는 사람들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는건 목격자나 이목을 신경 쓸 필요도 없단 말이지? 맘에 들었다.

"우선... 저 맨 앞의 두 놈부터 시작볼까."

달려나가던 진석은 속도를 줄이지 않은채 허리 뒤춤의 투척용 단검 두 자루를 꺼내 손에 쥐었다. 그 앞쪽 길목에서 서로 잡담을 나누며 골목 주변을 왔다갔다 하던 두 사내는 진석이 달려오는것을 눈치채고 그쪽을 경계했다.

"야. 저거 뭐냐?"

"아니 야밤에 왠 미친놈이 달리기를... 어, 어어?"

그야말로 어 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쇄도하는 진석. 전력질주를 하던 그의 손 끝에서 단검이 빙글 회전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칼날쪽을 쥐곤 앞쪽을 향해 힘껏 투척! 핑그르르 어둠을 가르고 날아간 은빛이 사내들의 몸에 적중했다.

"스, 습겨... 컥!"

"크억!"

바일리 델 비엔토의 스킬이 A랭크로 올라가 정확도가 향상된 것일까? 두 자루의 단검은 정확히 사내들의 미간에 박혀 있었다. 채 소리도 못지르고 제자리에 무너지는 그들. 그 근처에 있던 사내 셋이 뭔가 이쪽의 소란을 눈치채고 돌아보았지만 어둡기도 하고 아직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파악하진 못한 것 같았다. 진석은 달려가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슬라이딩으로 두 시체 사이를 빠져나나며 미간에 박힌 단검을 뽑아내 회수했다. 그제서야 뭔가의 이변을 눈치채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세 명의 사내들.

"너, 거기 무슨..."

"흥!"

진석은 바닥을 거칠게 박차고 일어나며 재차 손에 든 단검을 세 명의 사내를 향해 집어던졌다. 그 거리는 약 30여미터. 단검 투척을 성공시키기엔 꽤 먼 거리였지만 하나는 한 사내의 명치에, 또 다른 하나는 허벅지에 꽂혔다. 명치에 공격을 적중당한 상대는 찍소리도 못한채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고 허벅지에 단검이 박힌 남자는 바닥을 구르며 고래고래 고통에 찬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이잇! 흐아아아!"

"...젠장 거 망할놈. 목청도 좋네"

나머지 한 사내는 옆에있던 두 동료가 단검을 맞고 쓰러지는걸 보고 제 자리에서 주춤했지만, 허벅지를 적중당한 사내가 바닥에서 구르며 소리를 지른 덕에 주변에 있던 다른 사내들이 하나로 뭉쳐 이쪽을 향해 한꺼번에 달려오기 시작했다. 전부 여덟이었다.

"이제 남은건 총 아홉인가? 쳇."

진석은 다시 투척용 단검 두 자루를 꺼내 쥐고 사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선 중간에 서서 머뭇대며 서있던 사내에게 라파가를 사용해 거리를 좁히며 목덜미를 베어버린 다음, 허벅지를 맞아 바닥에서 뒹굴던 자의 심장에도 칼날을 꽂아주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선두에서 달려오는 두 남자를 향해 피로 물든 단검을 집어 던졌다.

"큭!"

"흐악!"

둘 다 복부에 단검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엎어진채 괴로운 소리를 흘리며 버둥대는꼴이 즉사는 아닌 것 같았지만, 내장에 미치는 공격으로 무력화 된 건 확실하니 도와주는 사람 없이 저대로 내버려두면 곧 죽게 되리라.

"좋아, 이제 여섯."

이제 투척을 하기엔 상대들이 너무 가까이까지 육박해 있었다. 진석은 흑철단검과 런들 대거 포님을 꺼내 손에 쥐었다. 이 무기들로는 본격적인 첫 실전이었다.

"이 개새끼! 죽어!"

코앞까지 육박해온 사내가 끄트머리에 쇠조각이 박힌 몽둥이를 휘둘러왔다. 머리를 그대로 부수어 버리겠다는 듯 온 힘이 실린 내려치기! 하지만 진석은 침착하게 시클론을 발동했다.

"시클론!"

파앗. 순간 진석의 시야에 한 줄기 섬광이 퍼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눈 앞에서 날아드는 몽둥이의 속도가... 느리다! 이전에도 평범한 공격은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지만 이건 거의 정지한게 아닐까 싶은 정도다. 반면 자신의 팔 다리는 이전과 같은 속도로 막힘 없이 움직인다! 흡사 시간을 멈춰놓고 나만 움직이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진석은 오른손에 들린 포님을 역수로 쥐고 몽둥이를 든 사내의 목과 겨드랑이, 간장을 빠르게 찍고 스쳐지나갔다.

"...힉..."

급소 세군데를 거의 동시에 찔린 사내는 자신이 뭘 당한지도 모른채 손에 든 몽둥이를 놓치며 제자리에 픽 쓰러져 버렸다. 칼에 찔린 자리에서 피가 퓻퓻 샘솟았다. 순식간에 반 수가 줄어든 레드라인의 사내들. 진석의 무자비한 손속에 질렸는지 다들 함부로 덤벼들진 못하고 멈칫하더니 주변을 둥글게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는 진석.

"뭐하냐 빨리 빨리 안 덤비고. 나 바쁘거든? 라파가!"

포위한 상대들 중 끄트머리에 선 사내에게 기술을 거는 진석. 시클론을 발동중이라 그런지 안 그래도 빠르던 라파가의 대쉬가 거의 순간이동이 아닐까 싶은 속도로 튀어나갔다. 너무나 빠른 속도에 자신이 공격을 당하는줄도 모르는 상대의 목을 수평으로 베고, 그 옆의 상대에게 달려들어 양 손으로 흉곽에 찌르기를 꽂아넣었다. 허어억 숨을 몰아쉬는 사내를 앞차기로 밀어내버리고 또 다른 두 사내의 사이로 파고들며 바로 오에스테! 검광이 원무를 추었고 어두운 길바닥엔 기다란 피의 호선이 흩뿌려졌다. 앗 하는 사이에 보트하우스 앞을 지키고 있던 사내들은 겨우 두 명 밖에 남지 않았다. 맨 처음 투척으로 습격을 시작하고 나서 채 2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 하지만 진석은 마음이 급했다.

"에이, 잔챙이들! 기술 쓰기도 아깝다. 그냥 죽어!"

시클론으로 한껏 높여놓은 육체의 반사속도를 믿고 달려들며 단검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진석. 과연 두 사내는 방어는 커녕 아무 대응도 못하고 몸 곳곳에 난도질을 당한채 허망할정도로 쉽게 쓰러져 버렸다. 평범한 적을 상대론 거의 치트 수준의 전투능력을 자랑하는 진석이었다.

"와 시클론 쓰면서 다른 스킬 좀 같이 썼다고 SP 쭉쭉 떨어진것 좀 봐."

초당 1의 SP를 소모하는 시클론. SP 최대치가 190을 좀 넘어가는 현재의 진석으로선 3분 좀 넘는 시간을 유지 할 수 있었지만 다른 스킬을 함께 사용하니 그 소모폭이 더 크게 느껴졌다. 진석은 재빨리 시클론을 해제하고 바닥의 쓰러진 한 사내의 옷에 단검을 문질러 피를 슥슥 닦았다. 피를 닦은 흑철단검과 포님을 칼집에 꽂아넣고 주머니에서 작은 약병을 하나 꺼냈다.

"하나 챙겨오길 잘했지."

SP 회복제였다. 이 역시 사원에 머무르고 있을때 머서에게 약초를 건네받아 만들어둔 약품이었다. SP 회복제는 귀한 약초가 대량으로 소모되는터라 그리 많은 갯수를 만들진 못했지만 일단은 이거 하나로도 충분했다. SP 회복제를 마시고 나자 많이 줄어들었던 게이지가 순식간에 차올랐다.

============================ 작품 후기 ============================

장미십자가님의 코멘트에 대한 대답입니다. 앞쪽 본문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제이스는 주인공 서진석에게 앞으로 자신을 제시라고 불러도 좋다고 말해줍니다. 그녀의 입장에선 교단에 속한, 가명을 댈 필요 없는 상대에게만 허락해주는 애칭입니다. 이름과 애칭은 분명 별개이므로 구분해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에 주인공과의 대화에선 제시로 불리지만, 지문에선 일부러 이름을 적고 있습니다. 제시쪽으로 쓰는것도 좋겠지만 이제와서 수정하자니 앞내용과의 괴리가 생기기도 하고.. 이 점은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근데 저도 가끔 지문에는 제시라고 적고 대화엔 제이스라고 쓴 다음 아차하며 수정하곤 합니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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