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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36화 (36/155)

< --   - 3.   -- >         * 36화 *

"좋아. 이제 안으로 들어가볼까?"

진석은 보트하우스로 향하며 아까 복부에 단검을 맞고 쓰러졌던 두 사내에게 다가가 단검을 뽑아내서 회수하며, 그들의 목을 찔러 마무리를 해주었다. 보트하우스는 한 조직의 사무실이라기엔 아담했는데 2층으로 되어있는걸 보니 분명 위층에 두목이나 간부가 있을거라 짐작되었다.

"계십니까아."

끼이익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미는 진석. 보트하우스임에도 보트는 커녕 잡동사니만 굴러다니는 썰렁한 내부. 그 안쪽에선 다섯명의 사내가 테이블에 둘러앉아 줄담배를 피우며 카드로 뭔가 도박을 하고 있었다. 밖의 상황은 전혀 모르는지 잡담을 나누고 있는게 태평한 모습이었다.

"아앙? 뭐야 넌."

게중 한 사내가 삐딱하게 눈을 치켜뜨며 고개를 디민 진석을 발견하곤 노려보았다. 진석은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서며 비굴한 태도로 양 손을 삭삭 비벼보았다.

"아니 저 중요한 용무로 두목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진석의 말에 사내들의 태도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뭐? 무슨 개소리야 이 자식. 멍청한 소리 하는거 보니까 너 혹시 빅 본 쪽에서 넘어왔다는 신참이냐?"

"지금 두목이 위에서 뭘 하고 계시는 줄 알고 그딴 소리를 해? 너 올라갔다간 뒈질줄 알어."

히죽. 진석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위에 네놈들 두목이 있긴 있단 말이지? 진석은 두 손을 연신 비비며 웃는낯으로 사내들이 도박을 하고 있는 테이블쪽으로 다가갔다.

"아이고~ 그런데 카드 놀이들 하고 계시네요? 이야 이거 저도 도박이라면 또 사족을 못써서 헤헤헤."

얼빠진것 같은 태도에 게 중 한 사내가 별 놈 다본다는듯 픽 콧방귀를 뀌었다.

"거 새끼 겁대가리 없네. 왜, 한 판 끼고싶냐? 돈은 있고?"

"아무렴요. 잔뜩 있습죠."

두 손을 허리 아래로 뻗어 마치 돈 주머니를 꺼내보일듯 시늉하는 진석. 하지만 그 손이 향한것은 단검의 손잡이였다.

'시클론!'

진석은 시클론을 걸고 양 손으로 단검을 빠르게 뽑아 교차시키며 테이블에 앉아있던 두 사내의 관자놀이에 박아버렸다. 그리고 재차 허리로 손을 뻗어 남은 두 자루의 투척용 단검을 뽑아, 맞은 편 사내들에게 던졌다. 약간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두 사내의 이마 한복판에 빨려들듯 꽂히는 단검들. 남은 한 사내는 순식간에 네 명의 동료가 죽고 나서야 경악으로 크게 눈을 치켜 떴다. 진석은 재빠르게 테이블을 박차고 뛰어 올라 그 사내의 아랫턱을 힘차게 걷어찼다. 채 비명도 못지르고 뒤로 쿠당탕 넘어져 구르는 남자. 진석은 그의 위로 올라타 한 손으론 입을 막으며 다른 손으론 흑철단검을 뽑아 목에 쑤셔넣었다.

"크흡! 흐... 극."

제대로 된 저항은 커녕 맥빠지는 소리만 남긴채 사내의 눈동자가 위로 돌아가 버렸다. 정말로 눈 한 번 깜빡할 사이 다섯명을 해치워버린 진석. 권총을 들고 다섯명에게 번갈아 가며 쏴도 이것보단 오래걸릴 정도였다. 진석은 시클론을 해제하고 흑철단검을 벨트에 꽂은 후 사내들의 머리통에 박힌 단검을 뽑아 회수했다. 그런데 그 중 한 자루는 날 끝이 왕창 깨진채 부러져있어 더 이상 못 쓸것 같았다.

'에이... 싸구려다보니 할 수 없나.'

조악한 품질의 단검이라 진석이 내던진 힘을 이기지 못한 것 같았다. 부러진 건 그냥 버리고 세자루만 회수 한 뒤 계단쪽을 올려다 보았다. 여기 죽어나자빠진 녀석들이 분명 이 위에 두목이 있다고 했겠다? 두목놈이 뭘 하고 있길래 올라가지 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야 어차피 자신의 손에 금방 죽을테니까!

'그나저나 이거 너무 서비스 해주는거 아닌가?'

자신이 보트하우스에 진입하며 쓰러트린 적의 숫자만 해도 벌써 열여덟이었다. 채 몇분도 되지 않는 사이에 스물 가까운 인원을 별 소란도 없이 쓰러트려버린 귀신같은 솜씨. 제이스가 간 술집에도 최소 열 명 가량의 인원이 있다고 가정해보면, 오늘 밤에만 레드라인의 조직원을 무려 서른 가까이 해치우게 되는것이다. 제이스에게 듣기론 레드라인의 조직원이 약 팔십에서 백정도라고 했으니 서른의 인명이라면 3할 내지 4할 가까운 전력 손실. 빅 본의 조직원은 현재 페레나에서 데려온 인원을 합쳐 육십이 좀 넘는다고 했으니 머릿수만 보면 얼추 평수를 이루는듯 하다.

'미리안이 적당히 도와주라고 했었으니... 뭐 대충 맞는건가? 에이 모르겠다. 얼른 마무리나 하고 돌아가자.'

반드시 제이스에게 하녀복을 입히고 마구 놀리며 희롱하겠다는 일념에, 진석은 새삼 전의를 다지며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올라가서 슬쩍 보니 위쪽엔 좌우 양쪽으로 방이 하나씩 있었는데 그 중 한 방문의 앞엔 덩치 좋은 사내가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있었다. 또 다른쪽 방 안엔 책상앞에 앉아 주판알을 튕기며 서류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진석이 계단을 올라오자 방 앞에 앉아있던 덩치 큰 사내가 벌떡 일어나 손가락질을 하며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진석은 바로 시클론을 걸며 단검 두 자루를 뽑아 그의 급소를 향해 빠르게 내던졌다. 퍼퍽! 빠르게 날아간 단검들은 하나는 미간에, 하나는 명치위에 꽂혔다. 손을 내밀던 자세로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사내. 덩치가 아무리 크건 말건 머리와 급소를 동시에 당했으니 찍소리도 할 수 없었으리라. 남은 한 자루의 투척용 단검은 방 안에서 열심히 주판을 튕기던 사내의 뒷통수에 휙 집어던졌다. 방안의 사내는 찍 소리도 못하고 그대로 책상에 머리를 쿵 박으며 죽어버렸다.

'자. 그럼 이제 두목님 존안을 뵐 차롄가?'

진석은 사내가 지키던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안에선 찌걱찌걱 하고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살과 살이 마찰하는 소리였다. 방 가운데에 놓여진 침대 위에서 머리가 다 벗겨진 중년의 배불뚝이 사내가 여체를 끌어안은채 허리를 놀리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어째 여자쪽은 신음이라도 한 마디 흘리긴 커녕 축 늘어진게 꼭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가만. 내가 왜 이딴걸 지켜보고 있는거야?'

방문을 열고 자연스레 뚜벅뚜벅 안으로 들어서는 진석. 사람이 들어오는 기척에 배불뚝이 중년 사내가 스윽 뒤를 돌아보았다. 눈동자가 누런빛으로 번들번들 빛나는게 엄청나게 흥분해 있는것 같았다.

"넌 뭐야 이 새끼야!"

레드라인의 두목으로 추정되는 그는 허리놀림을 멈추고 진석을 향해 벌컥 화를 내었다. 아마도 한참 재미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방해하러 들어온 조무래기 부하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진석은 태연히 그에게 다가서며 장저로 안면을 후려쳤다.

"컥?!"

코피를 흩뿌리며 뒤로 발라당 넘어지는 배불뚝이 사내. 진석은 뒤로 자빠진 그를 내버려두고 방금까지 사내의 배 밑에 깔려있던 여자를 살펴보았다. 굉장히 큰 가슴의 젊은 여성. 침대 주변에 흩어진 야한 옷가지와 속옷을 보아하니 근처에서 몸을 파는 창녀같았다. 헌데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어있고, 뺨도 따귀를 엄청 맞은듯 시뻘겋게 달아오른데다 코피가 흐르고 입술은 다 터져있었다. 일방적인 폭행을 당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 뿐만 아니라 목엔 가는 밧줄이 감겨 있었는데 의식을 잃고 기절한 것으로 보아 이 변태 중년은 그녀를 상대로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고 밧줄로 질식 플레이까지 한 모양이었다. 무참히 얻어맞고 목 졸려 기절해버린 여자를 태연히 범하고 있었다니. 진석도 어지간히 변태스러운 행위와 고문을 저질러 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남이 저지른 변태 플레이의 흔적을 살피는게 즐거울리는 없었다. 삽시간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으이그. 불쌍한 창녀 상대로 잘 하는 짓이다. 야이 새끼야."

진석은 으으 하며 코를 감싸쥐고 있던 레드라인 두목의 거시기를 세게 걷어찼다. 뻐억! 강한 충격에 다리 사이를 움켜쥐고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는 그. 쩍 벌린 입에서 한 줄기 침이 질 흘러내리는게 진짜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알게 뭐람. 진석은 바닥에 굴러다니던 사내의 셔츠를 집어들고 밧줄처럼 양쪽으로 팽팽히 잡아당긴 다음, 그것으로 변태 중년의 목을 휘감았다.

"크, 크하... 무, 무스흔... 짓... 이, 이익..."

"왜, 질식 플레이 좋아하잖아?"

꽈아악! 셔츠가 중년 사내의 두꺼운 목을 파고드는 느낌이 손을 타고 전해져왔다. 뿌득 꾸득 하고 뼈가 압력에 짓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피가 통하지 않아 새빨개진 머리통을 한 채 셔츠자락을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그. 하지만 진석의 손아귀에 가해지는 힘은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약해지진 않았다.

"재미도 볼만큼 봤을테고 인생도 살만큼 살았을텐데, 발버둥 그만 치고 이제 그만 죽으라고."

뿌드득! 중년 사내의 목에서 뭔가 크게 어긋나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졌다. 목이 기묘한 각도로 꺾이며 그의 비대한 몸이 바닥으로 기울었다. 쥐고 있던 셔츠자락을 놓고 손을 탁탁 터는 진석.

"이걸로 끝. 음... 진짜 몇 분 안 걸린거 같은데? 밖에서부터 여기까지 들어오면서 뭐 한 5, 6분이나 걸렸나? 지금부터 호텔까지 뛰어가면 이길 수 있겠지?"

그리고 방을 나서려던 진석은 문득 침대에 축 늘어진 큰 가슴의 창녀를 한 번 돌아보았다. 정신을 잃고 정액투성이가 된 채 늘어진 꼴이 어째 불쌍하기도 해서 도와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대로 내버려두면 나중에 레드라인의 다른 패거리가 보트하우스에 왔을때 그녀를 목격자라거나 상대 조직의 끄나풀이라고 생각해서 일방적으로 붙잡아두고 증언이나 정보를 강요하며 고문을 하거나 살해할지도 몰랐다. 레드라인측에선 두목이 살해당한 판이니 충분히 그럴 확률이 높았다.

"...에이 정말."

진석은 발길을 돌려 바닥에 흩어진 옷과 속옷을 주섬주섬 챙기곤 엉망진창이 된 창녀에게 다가가 하나 둘 입혔다. 옷을 대강 입힌 후 목에 감긴 밧줄도 풀어준 뒤 양팔로 들어안은채 서둘러 보트하우스를 빠져나왔다. 조금전까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건만 주변은 여전히 고요하고 어두웠다. 피투성이가 된 시체들만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 멍청이들 때문에 주변 주민들이 아예 얼씬도 않는덕인가. 끌끌."

창녀를 안은채로 보트하우스에서 한참 멀어진 진석은 인적이 드문 골목 안쪽에 그녀를 내려놓고, 옷 주머니에 수중에 있던 금화를 몇 닢 넣어주었다.

"뭐 가슴 구경한 삯이라 치자고."

레드라인의 변태 두목에게 목이 졸려 기절한탓에 전후 관계의 기억이 명확하진 않을테지만 정신을 차리면 알아서 돌아갈테지. 그렇게 창녀를 안전한 곳에 놓아준 진석은 골목에서 빠져나와 서둘러 로엔 호텔쪽을 향해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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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하우스에 도착하고 채 10분도 되지 않는 동안에 스무명을 깔끔히 해치우고 두목까지 끝장낸 진석이었지만, 호텔 방엔 제이스와 아르데나가 이미 돌아와 있었다. 물론 보트하우스까지의 거리가 먼 편이라 왕복 이동하는데 걸린 시간도 어느정도 있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 결과는 납득 할 수 없었다. 다리를 꼰채 여유롭게 소파에 앉아 싱긋 웃어보이는 제이스. 게다가 그 손엔 와인 글라스까지 들려있었다.

"말도 안돼에에에에!"

바닥에 엎어진채 절규하는 진석. 틀림없이 자신이 이길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너무나 의외의 결과였다. 제이스는 귓가의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여유롭게 말문을 열었다.

"후후. 이게 다 러셀이 붙여준 아르데나의 덕이야. 아르데나 덕에 빠르게 끝내고 돌아 올 수 있었지."

"으으... 아르데나 너..."

아르데나를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진석. 아르데나는 울상이 되어 어쩔 줄 몰라했다.

"죄, 죄송해요 오빠."

진석은 정말 울먹거리는 아르데나를 향해 피식 웃어보이곤 바닥에서 훌쩍 일어났다. 흑철단검과 런들 대거 포님밖에 남지 않은 전투용 벨트를 끌러 탁자위로 휙 던져두곤 아르데나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농담이야 농담. 그나저나 뭘 어떻게 했길래 그래?"

아르데나를 달래준 뒤 빈 글라스를 하나 집어들고 와인을 채우는 진석. 제이스는 와인을 한 모금 맛보더니 잔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술집쪽엔 열서넛 정도 있었는데... 놈들이 앞뒤 안가리고 한꺼번에 덤벼들더라고.  양옆에서 합공을 하는터라 조금 위험하다 싶은 순간, 뒤에 있던 아르데나가 단검을 쥐고 뛰쳐나가는거 아니겠어? 그리고 딴 사람이 된 것처럼 날뛰며 단검 한자루로 놈들을 베어넘기는데, 정말 앗 하는 순간 대부분이 나가떨어졌어. 채 1, 2분이나 걸렸을까? 솔직히 놀랬지 뭐야."

아르데나가 괴물의 힘을 끌어올리면 지금의 진석과 비슷한 스테이터스가 된다. 기껏해야 10 에서 20 사이의 무력과 민첩을 지녔을 평범한 깡패들이 상대할 수 있을리는 만무. 진석도 어느정도 예상했던 바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잘 싸워줄거라곤 생각 못했다. 아르데나는 주춤주춤 눈치를 보며 피로 물든 단검을 진석에게 내밀었다.

"저기 이거... 이제 돌려드릴께요."

맨손으로 보내긴 뭐해서 대충 쥐어준 싸구려 단검일 뿐이지만, 아르데나는 그걸 가지고도 훌륭히 자기 몫 이상의 일을 해냈다. 저주의 힘을 끌어내 사람을 해친다는것에 거부감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알량한 망설임따위 애초부터 없었던 모양이다. 진석은 자신이 아르데나를 너무 저평가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단검을 받아들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래, 아무튼 오늘은 잘했다. 정말 잘했어. 무기는 내가 나중에 좋은걸로 다시 사줄께."

"...네."

칭찬을 받자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눈을 내리까는 아르데나. 옆에서 둘을 지켜보며 와인을 홀짝이던 제이스가 흐흥 코웃음을 치며 진석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러셀. 까먹진 않았겠지? 내기말야."

"윽."

아르데나를 쓰다듬던 진석의 손길이 우뚝 멈췄다. 진석은 웃는건지 찡그린건지 모를 표정으로 제이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에이 왜이래 이거. 애들도 아니고 그런건 그냥 장난이잖아 장난. 하하하."

"진 주제에 말이 많네. 자 우선 제이스 님~ 하고 불러보렴? 존경심을 한껏 담아서."

제이스는 고개를 한껏 치켜들며 진석을 거만하게 깔아보았다. 쓸데없는 내기를 걸어서 일주일동안 시달리게 생겼다. 진석은 잔에 따라둔 와인을 마저 쭉 들이킨 다음 흠흠 목을 가다듬고 제이스 옆에 공손히 시립했다.

"제... 제이스 님."

틈날때마다 몸을 섞고 내심 자신보다 아래라 깔아보던 상대에게 존칭을 쓰려니 말문이 막힌다. 진석이 더듬더리자 제이스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듯 고개를 저었다.

"하아? 뭐야 그게. 장난해? 좀 더 똑! 바! 로! 말해봐. 아름다운 제이스님, 하고 말야."

검지 손가락으로 진석의 배를 꾹꾹 찌르며 비웃는 제이스. 아오 이게. 진석은 약이 올랐지만 자신이 진건 진거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은근히 오기가 생기는게 좋아, 누가 이기나 해보자 싶었다. 진석은 제이스의 한 손을 잡고 손등에 입을 맞추며 정중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아름다운 제이스님. 손에 입을 맞출 기회를 주셔서 영광입니다."

사실 그냥 좀 골려주다 말 생각이었는데, 진석이 진짜로 정중한 태도로 나오자 되려 당황스러운건 제이스 쪽이었다. 얘, 왜이래? 하지만 어째 재밌기도 해서 내색은 하지않고 그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석은 멈추지 않고 제이스의 앞에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오오, 제이스님의 고귀한 아름다움을 찬미합니다. 부디 제게 발등에 입을 맞출 수 있는 기회를."

그러더니 제멋대로 핀 힐을 신은 제이스의 발을 붙잡고 막무가내로 발등에 입을 맞춰오는게 아닌가? 평상시나 잠자리에서나, 항상 자기 맘대로 리드하던 사내가 눈앞에 무릎을 꿇고 발에 입을 맞추는 모습은 분명 신선했다. 하지만 너무 저자세로 굽신거리고 있으니 되려 놀림당하는 기분이 들어 어째 부끄러워졌다. 제이스는 얼굴을 붉히며 진석이 붙잡고 연신 입을 맞춰대는 발을 떼어내려했지만 놔주지 않았다.

"이, 이거 놔 바보야!"

"그렇습니다. 소인은 미천한 바보입니다. 제이스님의 미색에 마음을 빼앗긴 바보 천치입니다."

처음엔 발등에 쪽쪽 가볍게 입술을 맞추기만 하던것이, 이젠 그런 소릴 지껄이며 혀를 내밀곤 발목부터 종아리를 타고 낼름낼름 핥아 올라오기 시작했다. 뜨뜻하고 축축한 혀가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감각에 제이스는 소름이 돋았다.

"그만하라니까! 아 정말!"

"죄송합니다. 그만 둘 수가 없습니다. 아아 제이스님 맛있어. 낼름낼름."

진석은 제이스의 두 다리를 꽈악 붙들고 놔주지 않은채 혀로 무릎을 타고 올라가더니 허벅지까지 향하기 시작했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제이스의 양 다리사이로 파고드는 진석의 머리. 제이스는 두 손으로 그의 머리를 밀어내려 했지만 힘 차이가 너무 나서 아무 소용없었다. 하반신을 꼼짝없이 붙들린채 허벅지 안쪽을 마구 핥아지는 그녀. 옆에서 입을 헤 벌리고 그 꼬락서니를 지켜보던 아르데나의 얼굴이 서서히 붉게 달아올랐다. 온 다리를 핥아대는 혀의 감각에 신음하던 제이스는 아차 하며 아르데나의 존재를 깨닫고 소리쳤다.

"아, 아르데나! 보... 보지마! 방으로, 방으로 들어가 있어!"

"핫... 네, 네엣!"

그제서야 핫 하고 정신을 차리더니 황망히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가는 아르데나. 그 사이 진석의 머리는 아예 제이스의 다리 사이에 딱 밀착해 있었다. 얇은 속옷 한 장 너머로 느껴지는 거친 숨결과 뜨뜻축축한 혀의 느낌. 제이스는 허리를 뒤틀며 몸을 빼내려 했다.

"헤헤 소용없습니다요 제이스님. 킁가킁가 할짝할짝."

"러, 러셀... 이 바보!"

치사하게 이런식으로 나온단 말인가. 제이스는 소파에 잔뜩 밀어붙혀진채 두 다리를 활짝 벌린 자세가 되어있었다. 속옷너머로 가해지는 천박한 애무에 제이스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앗... 읏, 정말... 이러기야?"

"어이쿠, 저는 잘못 없습니다. 이게 다 제이스님이 너무 아름다워서 참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이스님의 미모가 나쁜겁니다."

"차... 차라리 방으로! 방으로 데려가줘!"

이렇게 양다리를 활짝 벌려진채 일방적으로 놀림당하듯 희롱당할바엔 그냥 어서 침대위에 오르는게 낫겠다. 하지만 진석은 씨익 사악하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인주제에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미천한 이놈은 이렇게 봉사만 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진석의 앞니가 속옷 너머로 비쳐보이는 제이스의 민감한 돌기를 살짝 깨문다. 전기처럼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쾌감. 달뜬 한숨이 튀어나오자 진석은 신난다는듯 더 집요하게 약점을 괴롭혀댔다.

"아. 아흣. 하지, 하지마... 앗, 으으응!"

그리고 방안. 온 몸의 피가 다 몰려있는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붉게 달아오른 아르데나의 얼굴. 그녀는 문에 귀를 바싹 가져다 댄 채 밖에서 들려오는 둘의 말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제이스의 야한 신음이 들려올때마다 아르데나의 어깨가 움찔움찔 떨렸다. 도대체 밖에선 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 아직 성에 미숙한 소녀의 머릿속엔 상상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대체... 둘은 무슨일을...?!'

그렇게 무려 수시간. 진석의 괴롭힘은 얼마나 집요했는지 행위는 장장 해가 떠오를때까지 계속되었고 제이스는 완전히 뻗은채 소파 위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치마와 진석의 상의, 그리고 주변 바닥까지 무언가로 축축히 다 젖어 있는것이 어떤일이 있었는지 쉬이 짐작할만 했다.

"하... 하앗... 히, 헤에..."

제이스는 눈이 완전 풀린채 입을 헤 벌리고 늘어져 있었다.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입가에선 가는 침줄기가 흘러내렸는데 그것조차 인지하고 못하는 모양이었다. 꼼짝못하게 붙잡아놓고 오로지 혀로만 민감한 부위를 몇시간이고 집요하게 괴롭혀댔으니, 가히 사람이 맛이 가버릴 정도의 고문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진석은 마시다 남은 와인을 병째 꿀꺽꿀꺽 물처럼 들이키며 떠오르는 아침해를 향해 오른손을 불끈 쥐어 들었다.

'훗, 완전승리.'

이걸로 다시는 하인노릇을 하라느니 뭐 그런 말을 꺼내지도 못하겠지. 후후 나의 무서움을 느꼈는가 제이스여. 따위의 생각을 하며 너절한 승리감을 만끽하는 진석이었다. 방문 너머의 아르데나 역시 벌게진 눈으로 침을 꼴딱꼴딱 삼켜가며 밤을 새버렸음은 물론이다.

============================ 작품 후기 ============================

전투신 중간에 끊는게 어째 애매한것 같아 한 편 더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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