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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41화 (41/155)

< --   - 3.   -- >         * 41화 *

"어떻게 됐어?"

이른 시간임에도 배가 드나들고 있는 부두 접안시설의 근처. 아르데나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제이스가 뒤에서 다가온 진석을 향해 물었다. 진석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확실히 못박아 뒀지. 복수니 뭐니 허튼짓 하는 일 없이 고분고분 잘 따를거야... 아마도."

"...역시 죽였어야 한다니깐."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제이스. 진석은 그만 하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보다 어때. 확인해 봤어?"

어젯밤, 레스토랑에서의 소란을 마무리 하고 돌아온 진석은 호텔방에서 제이스와 함께 피터슨에게 구입한 종이조각을 살펴보았다. 거기엔 탈출통로의 위치와 더불어 간략한 사항이 몇가지 적혀있었다. 우선 통로의 위치는 이 부둣가에서 조금 떨어진 야트막한 해안 절벽쪽이었다. 허나 그 절벽 위에는 배들의 길잡이인 등대가 세워져 있었다. 등대의 위치는 도시의 맨 남동쪽 끝. 그와 대치되듯 도시의 북서편엔 왕궁이 위치하고 있었다. 아마도 도시의 지하에는 이 둘을 대각으로 연결하는 수km의 기나긴 탈출통로가 이어져 있으리.

"응. 하지만 역시 등대에 직접 들어갈 순 없겠더라고. 주변에서 경비대가 지키고 있었어. 외부에서 보이는 숫자만 해도 약 열 명 가량, 2개 분대 정도가 있는걸 보아하니 실내에 있을 교대인원까지 합치면 총원은 최소 그 두세배는 있을거라 생각해야 겠지."

항구도시인 데오그라즈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이라면 역시 등대를 꼽을 수 있을터. 비단 탈출통로가 위치해서가 아니더라도 상주인력을 배치해 지켜야 하는 시설이었다. 아니, 저 경비인력은 저기에 탈출통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확률이 높았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하라는 말처럼 원래 경비인력을 상주시켜야 하는 시설에 탈출통로를 두는것이 더 자연스러웠을 테니까. 진석은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피터슨이 준 정보에 의하면 탈출통로는 원래 저 해안절벽에 있던 작은 동굴을 쭉 파내어 왕궁의 지하까지 연결시킨거라고 했다. 등대가 그 위에 세워져 있는만큼 등대의 안에선 그 동굴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을테지. 하지만 경비대 때문에 등대로 직접 진입할 수 없는 이상...'

"역시 등대는 무리고 직접 해안동굴을 찾아 안으로 들어가는 수 밖에."

어쨌거나 그 명색이 왕족을 위한 탈출통로인 만큼, 해안동굴이라곤 해도 절벽가 어딘가 눈에 띄지 않는곳에 은밀하게 위치한게 분명했다. 숨겨져 있지 않고서야 수많은 배가 지나다니는 등대 부근이니만큼 사람들에 눈에 띄어 혹시 모를 출입자가 생길수도 있을테니.

"그럼 작은 배라도 빌릴까?"

제이스가 진석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팔짱을 껴오며 그렇게 물었다. 으음 하며 고민에 빠지는 진석.

"근데 배로 등대 주변에서 바짝 붙어 얼쩡거려도 되나 모르겠네. 수상하게 보여서 경비병들한테 화살세례라도 맞는거 아냐?"

등대가 위치한 해안 절벽은 해수면에서부터 겨우 15에서 20여 미터 정도의 높이. 이런 낮에 절벽 부근에서 동굴을 찾겠답시고 바짝 붙어 왔다갔다 거리면 수상하게 여겨져 경비대에게 붙잡혀 심문당할 가능성도 높았다. 하지만 진석의 말에 제이스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수상하게 보이지만 않으면 되는거지?"

푸른 하늘. 하얀 구름. 내리쬐는 햇살. 잔잔한 파도. 아기자기하지만 화려한 도시의 전경을 뒤로하고 작은 조각배가 바다위에 한 척 떠있었다. 배 위엔 세 명의 사람이 올라타 있었다.

"...아 팔 아퍼. 노젓는다는거 엄청 힘드네."

"열심히 저어. 지금 러셀은 뱃사공이니까."

밀짚모자를 쓴 채 뱃전에 편안히 앉아 햇살을 쬐는 제이스. 자신의 머리색과 같은 빨간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낑낑 노를 젓는 진석을 바라보며 아으으 하고 불편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아르데나도 있었다.

"러셀 오빠. 힘드시면 제가..."

고생하는 진석의 모습에 어쩔줄 모르겠다는 듯 안절부절하는 아르데나. 햇빛을 가리기 위한 양산을 든 그녀는, 기다란 흑발과 대비되는 새하얀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진석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괜찮으니까 편하게 있어."

제이스는 히죽 웃으며 얼음통에 박아놓아 차게 식힌 샴페인 병을 꺼냈다.

"그래그래. 아르데나, 지금 우린 뱃놀이 나온 관광객이니까. 즐겨주지 않으면 곤란하다구."

"...넌 좀 적당히 해라."

진석을 향해 에헷하고 장난스레 웃어보이는 제이스. 샴페인 병을 뽕 따서 잔을 가득 채우곤 맛있다는 듯 들이켰다.

"아 진짜 얄밉다. 한 대 쥐어 박고 싶다."

"어허! 뭐하는거야. 배가 조류에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잖아. 열심히 노를 저어야지!"

일부러 저러는걸 보니 아무래도 제이스에겐 진석이 내기를 멋대로 무마시키고 밤새 괴롭혔던 앙금이 남아있었나 보다. 진석은 궁시렁거리며 콱콱 힘주어 노를 저었다. 셋이 탄 배는 서서히 등대 부근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뭐 아마도?"

여유로와 보이는 제이스와 궁시렁대며 노를 젓는 진석. 그리고 그런 둘을 바라보며 불안하다는 듯 말을 꺼내는 아르데나. 제이스가 세운 계획은 간단했다. 뱃놀이를 나온 관광객을 위장하여 등대의 부근을 정탐해 보자는 것. 데오그라즈의 동편엔 부두와 선착장, 배를 위한 접안시설이나 등대가 들어서 있었지만 도시의 남쪽 방면엔 해수욕을 즐길만한 백사장이 있었다. 현재는 게임상 시간으로 5월 중순경. 아직 본격적인 물놀이를 즐기기엔 조금 이른 철이었지만 그렇다고 관광객이 아주 없는것은 아니었다. 제이스는 이점에 착안해 마치 배를 타고 해안가를 유람하는 관광객처럼 위장해 등대쪽의 절벽을 살펴보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썩 맘에 드는 방법은 아니었지만 달리 별다른 수가 떠오르지 않던 진석은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래서 결국 이런 하인 노릇을 하긴 하는구나! 아니, 어떻게든 날 부려먹고 싶어서 이런 방법을 제안한거 아냐 저거?'

이를 꾹 물고 힘껏 노를 저어대는 진석. 아무 요령없이 오로지 힘으로만 노를 젓다보니 바닷물이 첨벙첨벙 튀어올랐고, 제이스는 꺄아 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 정말~ 바닷물이 다 튀잖아! 조심 좀 해."

샴페인 잔에 바닷물이 들어갈까 몸을 뒤트는 제이스의 가슴이 반동으로 출렁거렸다. 진석의 시선이 흔들리는 두 가슴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뜨거운 시선을 눈치챈 제이스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한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응큼해... 눈이 무서워."

"보고 싶다 만지고 싶다 맛보고 싶다."

"...그, 펴, 평소에 이런저런짓 많이 하잖아. 새삼스레 그렇게 기분나쁜 표정으로 노려보지마."

"아니 뭐 야외이고 하다보니 이런데서 보는건 어째 신선해서."

둘의 대화를 듣던 아르데나는 무심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 보았다. 동년배와 비교해보자면 충분히 평균적인 크기겠지만, 그래도 아직 애들 수준이라 제이스처럼 흔들릴만한 크기는 아니었다. 어쩐지 조금 의기소침해 하는 아르데나.

"그보다 슬슬 가까워졌어."

제이스가 슬쩍 턱짓을 하며 배가 등대가 있는 해안절벽에 근접했음을 알려주었다. 노를 젓던 진석도 슬쩍 뒤를 돌아보며 절벽과의 거리를 파악했다.

"배를 가까이 대는건 문제가 아니지만... 이제 슬슬 경비병의 눈에 띌때가 됐는데."

아까 전 멀찍이서 정탐을 한 결과, 등대를 지키는 경비병들은 주로 입구 근처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지만 두 명이 짝을 이뤄 등대 외곽을 돌며 한 시간에 두 번씩 해안쪽 방향을 감시하기도 했다.

"걱정마. 아르데나랑 내가 있으니까 그냥 관광객으로 보일거야."

"어떨려나 모르겠다."

진석은 천천히 절벽쪽으로 배를 근접시켜 절벽 부근을 살피기 시작했다. 가능한 꼼꼼히 살피며 한 5분쯤 지났을까? 절벽 위쪽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두 경비병이 서로 잡담을 나누며 오는게 해안가쪽을 둘러보려 순찰하는 것이 분명했다. 절벽 위쪽을 주시하며 경계하던 아르데나의 입에서 경고의 외침이 흘러나왔다.

"와요!"

"쳇."

노를 놓고 빠르게 물 속으로 뛰어드는 진석. 보트 아래에 잠수한채로 절벽 위쪽에선 잘 보이지 않을 보트 반대쪽으로 이동해 머리만 살짝 내밀었다. 관광객으로 위장했다 한들 배에 남자가 있으면 혹 의심받을 수도 있으니 숨는게 나았다. 과연 경비병들은 금세 보트를 발견하고 위에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러왔다.

"이봐요! 거기 아가씨들! 여기 있으면 안 돼, 어서 다른데로 배 옮겨요!"

"죄송해요! 파도에 실려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금방 갈께요!"

제이스는 의심받지 않도록 적당히 대답하며 조금전까지 진석이 앉아있던 자리에 앉아 노를 잡았다. 잠시 서서 보트를 지켜보던 경비병들은 저희들끼리 뭔가를 시시덕거리며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겨 사라졌다. 수영복 차림의 여자 둘 뿐이라 별 의심을 받진 않은 모양이었다. 제이스는 진석이 있는 뱃전을 내려다보며 손을 뻗었다.

"됐어, 경비들이 갔어. 올라와 러셀."

"...아니. 혹시 모르지, 또 금방 돌아와 볼지도. 그냥 나 혼자 어떻게든 찾아볼테니까 물건 내려줘."

"괜찮겠어?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어떻게..."

"어떻게는 뭘. 그냥 부딪혀 봐야지. 어차피 왕궁을 터는 일이니 쉬울거라곤 생각안했어. 그보다 일러둔 것 잊지마. 시간 정확히 지켜야돼."

"응 알았어. 그건 걱정하지마. 그럼... 행운을 빌께."

쪽. 제이스는 상체를 쭉 뻗어 진석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뱃머리 안쪽에 숨겨놨던 물건들을 꺼내 진석에게 내려주었다. 갈고리가 달린 밧줄 묶음과, 방수처리된 가방이었다. 갈고리와 가방은 배를 타고 오기전에 상점가에 들러 구입한 새로 물건이었다. 가방은 방수처리가 되어있는만큼 안에 물건이 들어있음에도 부력이 있어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밧줄을 어깨에 걸친 진석은 가방을 튜브 삼아 절벽쪽으로 헤엄쳐갔다. 서서히 보트에서 멀어져 절벽쪽으로 다가가는 진석을 말없이 지켜보는 제이스와 아르데나. 그러다 제이스는 뭔가를 깨달은 양 화들짝 놀랐다.

"그, 그러고보니 이제 노는 누가 저어?"

"......"

제이스는 아르데나의 가느다란 양 팔을 바라보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들을 만나고나서 조금 살이 붙긴 했다만, 여전히 마르고 가냘픈 체구다. 저런 아이에게 노를 저으라고 시킬 수 있겠는가? 아르데나가 허둥거리며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려 했지만 제이스는 됐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이 노를 잡았다.

'저기다!'

진석은 의외로 금방 해안 동굴을 찾아냈다. 보트에서 볼땐 앞쪽에 솟아있는 거대한 바위때문에 전혀 안 보였는데, 가까이 붙으니 해수면보다 3~4미터쯤 위에 자리한 곳에 사람 하나 간신히 드나들 정도의 동굴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파도였다. 아무리 오늘 파도가 잔잔하다지만 절벽가에선 파도가 서로 맞부딪히는 만큼 물살이 강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물결에 휩쓸려 멀찍이 밀려날듯 했다.

'으 젠장. 수영 스킬도 없으니 자세 잡기도 힘들고.'

아무리 힘이 좋고 민첩성이 뛰어나더라도 바닷속에서는 별 소용 없었다.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풀어 두번 세번 동굴 안쪽으로 던져보았지만 딱히 고정될만한게 없는지 그냥 주르륵 흘러내릴 뿐이었다.

'망할. 하긴 그렇게 만만할리가 없지. 이게 다 영화 때문이야.'

액션 영화 같은데선 대충 던져도 뭐 여기저기 착착 잘만 걸려주더만. 하지만 직접 해보니 전혀 만만치 않았다. 역시 연출된 장면 따윌 믿어선 안됐어! 결국 진석은 갈고리를 던져 기어오르는것을 포기하고, 동굴 입구를 가리고 있던 바위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미끄럽기도 하고 파도에 떠밀려 몇 번이고 물 속에 도로 빠질뻔 했지만 아득바득 어떻게든 기어오를 수 있었다.

"헥... 헥... 아 더럽게 힘드네."

벌써 기민맥진.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보니 체력치가 생각 이상으로 소모되어 있었다. 그나마 게임속이니 체력치가 줄어드는걸로 끝났지, 현실이라면 지쳐서 더 큰 탈이 났을지도 모르는 일.

"에이 젠장. 내가 무슨 영광을 보자고 이딴 짓을 해야되는거야?"

왜긴 왜인가. 자기 발로 교단에 걸어들어갔으니 이러고 있지. 진석은 투덜대며 바위 꼭대기에 올라섰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 안에 들어있던 투척용 단검을 하나 꺼냈다.

"망할 갈고리. 기껏 준비해왔는데 쓸모도 없고."

진석은 투덜거리며 밧줄끝에 달려있던 갈고리를 풀어 배낭에 넣고, 대신 단검을 묶었다. 그리곤 손목을 휘휘 돌려가며 가볍게 풀었다.

"역시 일은 그냥 자기 방식대로 하는게 제일이야."

단검과 밧줄을 서로 몇 번 잡아당겨 단단히 잘 묶인것을 확인한 진석. 단검의 날을 쥐고 울퉁불퉁한 바위 위지만 최대한 몸의 중심을 낮추며 자세를 잡았다. 검날을 쥔 팔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헙!"

그리고 진석의 손에서 힘차게 쏘아진 단검. 동굴 입구의 위쪽, 불룩 솟아있던 바위에 단검의 칼날이 푸욱 깊이 박혀들어갔다. 단검이 박힌 곳 주변의 바위조각이 약간 부서지며 푸스슥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괜찮겠지?"

밧줄을 몇 번 당겨서 자신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지 대충 가늠해 본 진석은 가방을 우측 어깨에 걸쳐 맨 다음 두어번 크게 심호흡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으랏차!"

밧줄을 꽉 쥔 진석은 덩굴을 붙잡고 이동하는 타잔처럼 바위를 박차고 동굴의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무사히 안착하나 싶은 순간, 와르륵하며 단검이 꽂혀있던 바위가 무너져 내렸다.

"으아악!"

팽팽하던 밧줄이 추욱 늘어지며 자신의 몸도 중력을 따라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걸 느꼈다. 동굴을 정말 코 앞에 두고 진석의 몸이 추락했다.

"안돼!"

진석은 밧줄을 놓고 필사적으로 양 팔을 뻗었다. 터억! 아슬아슬하게 왼손의 손가락이 동굴의 끄트머리를 붙잡았다. 하지만 방금 위에서 부서진 바위조각이 떨어져 진석의 오른쪽 어깨를 강타했다.

"크윽!"

무시무시한 완력 덕택에 왼손은 여전히 동굴 입구를 단단히 붙들고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충격에 흐트러진 어깨에선 걸려있던 가방이 스륵 흘러내렸다.

"어!"

가방이 떨어지는걸 깨닫고 급히 팔을 내저었지만 늦었다. 가방은 금세 수면위로 떨어져, 벌어진 틈으로 바닷물이 꼴꼴꼴 흘러들어가며 서서히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잡으려던 가방은 못잡았지만 대신 바위와 함께 떨어져내리던 밧줄이 우연찮게 손아귀에 걸렸다. 왼손 하나로 동굴 끄트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진석의 오른손엔 싸구려 단검이 묶인 밧줄만이 들려있었다.

"망할..."

가방안엔 전투용벨트, 흑철단검, 런들 대거 포님같은 장비들과 더불어 약품, 랜턴 등 꼭 필요한 장비들이 들어있었다. 그걸 전부 잃은것이다. 이제 남은것은 수미터짜리 밧줄과 그 끝에 달려있는 단검 한자루 뿐.

"시작부터 아주 엉망진창이구만..."

일단 이렇게 메달린채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므로 진석은 동굴 위로 기어올라갔다. 땅을 딛고 서니 한숨만 나왔다.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으... 무기랑 장비도 다 잃고... 남은건 이것뿐인가."

손에 들려있던 밧줄과 단검을 들어보았다. 투척용으로 구입했던 싸구려 단검. 성능도 형편없었지만 그나마도 한 자루 뿐이었다. 쌍단검술을 쓰는 진석에겐 이제 제대로 된 무기조차 없는것이다. 몸에 걸친거라곤 상의 대신 입고 있는 붉은 메갈롯 거미 셔츠와 반바지 뿐. 신발조차 없는 맨발이었다. 무엇보다 무기를 잃은게 너무 아까워 다 때려치고 싶었지만... 어쩌랴. 긴 한숨을 내쉰 진석은 밧줄을 둘둘 감아 몸통에 사선으로 둘러메고 단검을 쥔채 어두운 동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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