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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59화 (59/155)

< --   - 5.   -- >         * 59화 *

한 편, 제이스와 아르데나는 아직 데오그라즈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도 선착장 지구에 있는 빅 본의 사무실 2층에서. 현재 사무실 안에 있는것은 제이스와 아르데나, 그리고 카야와 웍스턴. 마지막으로 레오노르 공주가 포박당한채로 머리에 포대자루가 씌워져 한 쪽 구석에 앉아있었다. 책상 안쪽의 의자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한 조직원이 쟁반에 담아 가져다준 차를 맛보는 제이스.

"...맛없어."

"죄송합니다. 급하게 준비한거다 보니..."

웍스턴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제이스는 상관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제이스의 바로 옆에 앉아있던 아르데나도 찻잔을 들고 맛을 보았는데 그녀는 차 맛이 맘에 들었는지 찻잔을 양 손으로 꼭 쥔채 연신 홀짝거렸다. 그러고보니 제이스는 지금까지 아르데나가 뭘 가려먹는걸 본 기억은 없었다. 혹시 이 아이는 먹을 수 있는거라면 뭐든 상관없는게 아닐까? 차를 가져다준 조직원이 방안을 빠져나가고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 카야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대강의 이야기는 웍스턴에게 전해 들었습니다만... 그래서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너희들의 밀수선을 이용해 페레나 시로 가고 싶어. 저기있는 레오노르 공주도 데리고 갈 생각이야."

어젯밤, 제이스는 괴물로 변신한 아르데나의 도움을 받아 레오노르 공주를 데리고

분명 도시밖으로 탈출했었다. 가도를 따라 북쪽으로 한참 내달려 도시의 성벽이 손톱만하게 보일때쯤 제이스는 아르데나를 멈추게했다. 그리고 아르데나로 하여금 괴물의 변신을 풀게하고 자신의 포박을 풀게했다. 레오노르 공주는 아르데나에게서 풀려났음에도 여전히 겁에 질려 달아날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아르데나의 도움으로 포박을 푼 제이스는 자신의 몸을 구속하던 밧줄을 사용해 레오노르 공주를 묶고, 공주의 치맛자락을 찢어 재갈을 만들어 물렸다. 그리고 자신의 옷 안쪽에 손을 넣어 브래지어 쪽에 숨겨두었던 작은 보석을 하나 꺼내었다. 이것은 예전 진석에게 붙잡혀 숲에서 도망을 시도할때 썼던것과 비슷한 보석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NPC들도 플레이어처럼 나름대로 장비를 갖추며 아이템을 사용했다. 그리고 지금 제이스가 지니고 있는 보석 역시 그런것이었는데, 이것은 대신관인 미리안이 건네준 특별한 물건이었다. 미리안은 허신의 힘을 빌어쓰는 신의 사도. 그 능력중의 하나로 사람의 영혼을 소재로 하여 특별한 물건들을 만드는것이 가능했다. 순수한 영혼일수록 좋은 소재가 되기에, 이전 빅 본을 통해 아이들을 납치해오도록 시킨것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 보석 역시 아이들의 혼을 소재로 하여 만들어둔 여러가지 물건 중 하나였다. 아주 미미한 마력을 불어넣는것만으로도 그 효과를 발휘하는 타입으로, 여러가지 다양한 효과를 지닌 보석들이 있었으나 공통점은 단 한 번만 사용하면 사라지는 1회용이라는 것이었다.

제이스가 이전 숲에서 진석에게 도망갈때 썼던것은 마탄의 보석. 이름 그대로 강력한 마력의 구체를 발사하는 보석이었다. 그리고 지금 들고 있는것은 바로 전이의 보석. 시야가 미치는 범위내라면 1회 한정으로 단숨에 순간이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보석이었다. 제이스가 이런 대단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걸 진석에게 알리지 않은덴 물론 이유가 있었다. 미리안이 인간의 영혼을 소재로 하여 만든 물건은 오직 '허신의 축복'을 받은 자만이 사용 가능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허신의 축복을 받고있던 기존의 네 수호자와는 달리 명목상으로만 수호자로 임명된 진석은 애당초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딱히 알려줄 필요도 없다는게 미리안의 의향이었다. 제이스는 미리안의 뜻대로 진석에게 보석에 대한것을 함구했다.

제이스는 보석을 사용해 아르데나, 레오노르 공주를 데리고 단숨에 데오그라즈 북쪽 외벽의 동편 끝으로 이동했다. 성벽 끄트머리의 해안가 바위지대. 수풀이 우거진 한 지점엔 정말 아는사람이 아니라면 찾을 수 없는 작은 토굴이 숨겨져 있었다. 이 토굴의 안쪽은 도시의 지하 하수도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것은 빅 본의 밀수루트로서 마약 따위를 도시 내로 들여올때 사용하는 길이었다. 이전부터 빅 본의 데오그라즈 지부에 출입했던 제이스는 이 길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밀물때는 물이 들이차 성인의 가슴높이까지 잠기고, 비가 올땐 도시의 하수가 쏟아져나와 아무때나 이용할 수 없는 동굴이었다. 지금도 바닷물이 들어찬 만조라 물이 잔뜩 차올라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젖는걸 감수하고 레오노르 공주를 끌고 동굴을 거슬러 하수도로 진입했다.

하수도를 거슬러 도시로 되돌아갔더니 안의 상황은 생각보다 어수선했다. 계엄이 선포되어 온 도시의 병사들은 한참 북문밖으로 집결중이었고 시민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잠구고 있던 참이었다. 어둠속에 숨어 인적이 뜸해질때를 기다린 제이스와 아르데나는 빅 본의 사무실로 향했다. 안엔 웍스턴과 십수명의 부하가 있었다. 제이스는 웍스턴에게만 따로 대강의 상황을 전했는데, 공주를 납치했다는 말에 웍스턴은 도대체 이 작자들이 무슨일을 벌여놓은건가 싶어 기겁을 했다. 공주 납치범이라니, 미친거 아닌가? 내심은 얽히고 싶지 않아 쫓아내고 싶었지만 이들은 조직에 마약을 공급해주는 교단의 수호자들 아닌가. 웍스턴의 깜냥으론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녀들을 받아들이고 2층에 몸을 숨기도록 도왔다. 제이스로서도 괜히 돌아다니다 붙잡히는 멍청한 짓을 하고 싶진 않았으니 일단 계엄이 풀릴때까진 얌전히 숨어있을 생각이었다. 쫓는 쪽 입장에서도 그들이 북문 밖으로 사라지는걸 똑똑히 봤었을테니 다시 도시에 돌아와 숨어있을거란 생각따윈 절대로 하지 못할거란 계산도 있었다.

그 와중에 제이스가 진석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건 아니었다. 하지만 제이스로선 그가 여전히 호텔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진석은 아르데나가 변신해서 도시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봤기에 급박한 상황이라고 판단해 제이스의 생각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움직여버렸다. 또 추격에 나선 윌포드 쪽은 자신이 가진 정보로 나름대로 최선의 추측을 하고 행동했으나, 마음이 급했던 나머지 아집에 사로잡혀 단독 행동을 고집했고, 엉뚱하게도 진석의 뒤에 따라붙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진석과 제이스, 윌포드의 생각과 행동은 서로 모두 엇갈렸던 것이다. 제이스와 아르데나는 조직원들이 가져다준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따스한 음료로 몸을 녹이며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불안감에 꾸벅꾸벅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불편한 밤을 보낸 제이스와 아르데나. 일단 계엄은 풀렸으나 왠일인지 도시는 완전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아침식사를 가져다 주러 올라온 웍스턴의 설명은 이러했다. 어제 납치된 공주를 되찾으러 1차 추격대가 도시를 떠났고, 후속 추격을 위해 병력들이 대대적으로 북문밖에 집결되는 치안의 공백을 노려 누군가가 도심에서 엄청난 방화를 저질렀다고 했다. 수백채의 가옥이 화마에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고, 선착장의 배들 역시 세자리 숫자가 불탄 전대미문의 대화재. 게다가 그 불 때문에 기껏 추격을 위해 집결시킨 병력을 다시 도심에 되돌려 화재진압을 시킬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제이스는 그 방화가 틀림없이 진석이 저지른 일임을 눈치채고, 빅 본의 조직원으로 하여금 서둘러 로엔 호텔로 가서 그를 불러오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한참 뒤에 돌아온 조직원은 빈손이었다. 호텔의 직원에게 확인한 바로는 진석은 어젯밤 호텔에서 서둘러 체크아웃을 하고, 왠 여자 한 명을 마차에 실은채 서문쪽으로 떠났다고 했다. 그 뒤의 행적은 당연히 미상. 그 보고를 듣고 있자니 병원에서 급히 퇴원한 카야가 사무실에 돌아와, 이렇게 현재에 이른것이다. 카야는 밀수선을 이용하겠다는 제이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자정 즈음에 마약을 실은 배가 오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여느때처럼 데오그라즈에서 한참 떨어진 해상에서 작은 보트를 이용, 북쪽 외벽 밖 해안 통로쪽으로 물건을 전달할텐데 그때 보트에 타고 가시면 될듯합니다."

제이스는 카야의 설명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됐네. 뭐 우리가 여기 있으면 너희들이 불편해 한다는건 잘 알지만 배가 올때까지만 좀 더 신세를 지기로 하지."

"천만의 말씀을... 필요하시거나 원하시는게 있으시면 얼마든지 알려주십시오. 웍스턴, 불편한것 없이 잘 모시도록."

이전보다도 한층 정중한 태도로 제이스에게 고분고분하게 구는 카야. 웍스턴도 카야의 지시에 고개를 숙여보이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아직 몸이 불편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당연히 몸이 불편한곳따윈 없었다. 상처는 진즉에 다 나아있었다. 하지만 수호자 데이나와 마주하고 있자니 어쩐지 수호자 앤커니와의 일이 자꾸 떠올라 숨이 막히고 어딘가 진정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필요한 용무를 마쳤으니 이제 그만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제이스는 카야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려 보였다.

"잠깐. 이리로 와봐."

"...네."

책상 앞으로 다가서는 카야. 제이스는 품에서 백골드 짜리 수표 열장을 꺼내 카야에게 내밀었다. 상대가 고액의 수표를 건네주자 순간 당황하는 카야.

"이건..."

제이스는 여전히 미소를 띈 채로, 주저하는 카야의 손에 억지로 수표를 쥐어주며 말했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법이지. 너희는 우리의 일을 돕고, 우리는 너희에게 댓가를 준다. 이게 우리의 관계 아니었던가? 당연한 몫이니 받아두도록 해. 부하들에게도 입단속 잘 시키고."

"...그럼 감사히 받아두겠습니다."

묵묵히 수표를 품안에 챙겨넣는 카야. 흡사 선심쓰듯 쥐어주는 이런 돈은 받고 싶지 않았지만 한 지부의 책임자로서 현실을 봐야했다. 지부에는 당장 돈 들어갈 일이 천지였다. 지금 빅 본의 데오그라즈 지부는 레드라인의 영역과 사업장들을 그대로 흡수해 그 규모만은 거의 두 배로 커진 상태. 하지만 경쟁 조직을 제거했다고 일이 끝난건 아니었다. 정당한 사업체를 인수한것처럼 서류를 꾸미거나 공증 받은 권리서를 만드는데도 큰 돈이 필요했다. 영업장이 다시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개수하고 유지하는 것만해도 역시 돈이 셀 수 없이 깨졌다. 조직원만이 아니라 영업장에서 일하는 인력이나 창관의 창녀들, 거리의 마약판매책에게도 돈이 들었다. 부패한 관리나 경비대 내부의 변절자들에게도 적당히 뇌물을 돌려야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밤에 들어올 마약을 헐값에 뿌려서라도 빨리 돈을 마련해야 할 판이었는데 이런 거액이라면 당장의 금전 문제가 싸그리 해결될 수 있었다. 감정에 휘둘려 실수하는것은 래스커의 복수에 실패한것만으로 충분했다. 뼈아픈 교훈은 한 번이면 충분, 현실을 직시하고 어른다운 선택을 해야했다.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과는 상관없이 오직 실리를 추구하는 일을 어른다운 선택이라고 부르는게 웃기긴 했지만... 자신의 어깨에 걸린 조직원만 해도 벌써 몇이던가. 돈을 받은 카야는 고개를 꾸벅 깊이 숙여보이며 중절모를 쓰고 사무실을 빠져나갔고 웍스턴도 그 뒤를 따랐다. 넓지 않은 사무실 안엔 제이스와 아르데나, 레오노르 공주 셋만이 남았다. 제이스는 다 식어빠진 맛없는 차를 입에 가져가며 생각했다.

'러셀은... 분명 북쪽으로 향했겠지.'

그녀가 아는 러셀 헤이든, 즉 진석은 성격은 어딘가 유치한면이 있지만 실력만은 확실한 남자였다. 괴물로 변신한 아르데나가 북쪽으로 향했고 추적대가 붙었다는건 그도 알고 있을터. 그래서 추적대의 발목을 붙잡아 보겠다고 온 도시에 불을 지른게 아니겠는가. 심부름을 다녀온 조직원의 말을 떠올려보자면 그는 자신과 아르데나가 도시를 빠져나갔다고 생각했기에 주저 없이 호텔을 떠났으리라. 분명 서문을 통해 나가는척 해놓고 다시 도시로 되돌아와 화재를 일으켰을터. 이후엔 보나마나 다시 마차를 몰고 자신과 아르데나가 갔을 방향으로 추정되는 북쪽으로 향했겠지. 그가 도중에 러프야드와 페레나시 사이의 마차촌에서 밤을 한 번 보내고 이동한다고 가정하면... 페레나시에 도착할 시간은 빨라도 아마 내일 오후 이후가 아닐까? 그거라면 아슬아슬하게 페레나시에서 합류 할 수 있을것 같았다. 원래 해로는 육로보다 훨씬 빠르다. 게다가 빅 본이 마약을 옮길때 이용하는 배는 쾌속선. 별 문제가 없다면 이 배를 얻어타고 내일 오전중에 페레나시 동쪽의 어촌에 다다를 수 있을테고, 배에서 내려 곧바로 페레나시로 이동한다면 러셀보다도 한 발 앞서 빅 본이 운영하는 여관에 도착 할 수 있을터.

'게다가 나름대로 추적대를 막아보겠다고 혼자서 온 도시에 화재를 일으켰단 말이지? 가끔 사람을 괴롭혀서 그렇지 정말 하는짓이... 귀엽다니까. 다시 만나면 일단 꼭 안아줘야겠어.'

진석을 떠올리며 후후 미소짓는 제이스. 한 편 포박당한채 머리에 포대자루까지 씌워진 레오노르 공주는 죽을맛이었다. 물론 식사나 생리현상은 중간중간 해결하게 해줬지만 입은 여전히 재갈이 물려있었고 손도 묶인채에 머리엔 어딘가 퀴퀴한 냄새가 나는 포대자루가 씌워져 있는채니까. 귀하게 자란 공작가의 아가씨가 이런 취급을 받는데 속이 편할리가 없었다. 하지만 저항할 수도 없는게, 자신을 납치한 두 여자들 중 한 명인 검은머리의 소녀는 거의 집채만한 괴물로 변신하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 거대한 팔에 붙잡혔을때 너무 무서운 나머지 아주 약간, 정말 찔끔이긴 하지만 소변을 지렸었다. 괴물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 저항할 의지는 팍 꺾여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왕족이라는걸 알고도 납치를 저지른 이들의 무모함을 고려해보면 이제와서 고작 말 몇마디 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으리라.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애당초 윌포드가 했던건 은행 강도의 제압 아니었나? 갑자기 가병들이 붉은머리의 여자를 싣더니 곧 괴물이 마차의 문짝을 뜯어내며 날 납치하고... 아직도 뭐가 어떻게 된건지 잘 모르겠어. 아니 잠깐. 이 붉은머리와 검은머리의 두 여자는 혹시 등대의 경비병들이 목격했다는 그 관광객들... 아닌가? 그녀들이 은행을 털고 있었던건가? 그녀들은 폭풍의 지팡이를 훔쳐간 남자의 조력자인게 아니었어? 왜 강도짓을?'

붙잡힌채 인질이 되어 겁먹은채로 그저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한 레오노르 공주로선 제대로 된 정보조차 얻지 못했으니 도통 정확히 알 수 있는게 없었다. 하지만 방금전 제이스와 카야의 대화를 듣고 알게된 사실이 약간 있었다.

'하아... 뭐 자세한건 모르겠지만 지금 확실해진것은 세가지. 밀수나 마약의 이야기가 나온걸 보니 나는 지금 어떤 범죄조직의 아지트에 끌려온 상태라는거. 그것이 첫번째. 그리고 대화를 들어보니 날 납치한쪽의 여자가 조직쪽에 뭔가의 댓가를 건넸었지. 돈일까? 그렇다면 내 납치범들은 이 범죄조직을 이용하거나 혹은 서로 연계중인 외부의 세력일거라는게 두번째. 왕궁에 침입해 폭풍의 지팡이를 가져갔던 남자도 그란델 외부에서 보낸 자로 추정되었으니... 확실히 그 남자와 이 여자들은 같은 세력에 소속된 인원일수도 있겠네. 마지막 세번째는 이들은 날 페레나시로 끌고갈 생각이라는 것. 페레나시가 최종 목적지인지 아니면 그보다 북쪽으로 가는건지는 알 수 없지만... 북쪽에 있는 가장 가까운 나라라면 소국 메디니아인데? 반쯤은 중립국이나 다름없는 메디니아에서 뜬금없이 우리 나라와의 분쟁을 원할리는 없을테고. 그래 설마 메디니아는 아니겠지.'

꼼짝못하는 레오노르 공주가 할 수 있는것은 생각뿐. 그녀는 자신이 입수한 단편적인 정보로 계속 필사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것은 아르데나. 진즉 차를 다 마신 그녀는 목에 걸려있던 본 나이프를 꺼내었다. 어제 은행에서 복면을 쓴 레드라인의 석궁조 한 명을 살해하며 피가 잔뜩 튄 본 나이프. 아르데나는 찻잔에 남아있던 약간의 물기로 그 핏자국을 뽀득뽀득 문질러 닦기 시작했다. 자신의 오빠가 준 소중한 물건 아니었던가. 소중히 해야했다.

'오빠는... 괜찮겠지. 빨리 다시 오빠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

아르데나는 그저 어서 진석을 다시 보고 싶다는 정도의 생각밖엔 없었다. 다들 머릿속이 복잡한 상황이었지만 아르데나의 행동원리는 누구보다 단순했다. 오빠의 말을 따르고, 오빠를 위해 움직인다. 그야말로 맹목적인 추종.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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