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5. -- > * 64화 *
이전 진석이 방문했을때와는 달리, 이번엔 대신관 미리안의 정체를 속이거나 하는 일 없이 아르데나와 엘리야, 그리고 레오노르 공주를 바로 대신관의 방으로 데려갔다. 자기 방에서 서류에 파묻혀 뭔가의 업무를 보던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진석 일행을 맞이했는데 못보던 얼굴이 셋이나 늘어난것엔 놀라는 눈치였다. 잠시 동안 제이스에게 아주 간략한 사정 설명을 들은 미리안은 웃는 낯으로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런가요. 짧지만 긴 여정이었군요. 정말 고생들 하셨습니다. 음... 정말 죄송하지만 우선 레오노르 공주님은 불편하시더라도 잠시만 '지하'에 모셔둬야 할 것 같네요. 제이스? 안내를."
"네. 공주, 날 따라와."
의욕을 잃은 레오노르 공주는 순순히 제이스의 뒤를 따라 대신관의 방을 나섰다. 그런데 '지하'라? 사원에 지하 시설도 있었던가? 하긴 저번에도 얼마간 머물긴 했었지만 그냥 식당이나 욕탕처럼 뭐 다니는곳만 다녔지 사원 구석구석을 다 들여다본건 아니니... 아직 이 사원안엔 진석이 모르는 뭔가가 더 있는 모양이었다. 미리안은 제이스가 레오노르 공주를 데리고 방에서 빠져나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진석에게 다가와 그 무릎위에 걸터 앉았다.
"어... 저기, 미리안."
아직 방에 아르데나와 엘리야가 있는데? 곤혹스러워 하는 진석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후후 천진하게 웃는 미리안. 그러고보니 어째 맞은편에 앉은 아르데나의 표정에 묘하게 힘이 들어갔다. 미리안은 아르데나의 시선을 가볍게 받아넘기며 말했다.
"음, 그렇군요. 이거... 재미있네요. 아르데나 님이라고 하셨죠?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잘 알아두세요. 이쪽을 '오빠'로 삼은건 제 쪽이 먼저니까."
그렇게 말하며 스리슬쩍 진석의 목에 팔을 두르고 밀착해오는 미리안. 마치 아르데나를 향해 도발하는 것 같은 몸짓이었다. 얘 왜, 왜 이래?
"......"
어쩐지 분한 표정이 되어 진석과 미리안을 번갈아 보는 아르데나. 진석은 아르데나의 시선에 마치 아니라는듯 고개를 휙휙 저어보였다. 진석과 아르데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미리안은 후훗 웃더니 진석의 무릎에서 일어나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가벼운 장난이었는데, 미안해요. 아르데나 님이 오빠를 생각하는 마음은 진심인가보군요. 그리고 그쪽은... 엘리야 님이라고 하셨죠?"
"아, 응. 아니, 네!"
엘리야는 교단의 총 책임자인 대신관의 실체가 기껏 열살밖에 안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라는 사실에 놀란것 같았다. 극단적인 수단을 거리낌없이 행사하는 살벌한 인간들이 있는곳이니 교단의 장도 틀림없이 뭔가 막 무시무시하고 괴기스러운 양반일거라 생각했는데, 어린 여자아이? 처음엔 어 이거 무슨 장난? 다같이 짜고 나 놀리는거야? 하던 엘리야였지만 이내 장난따위가 아니라는걸 깨닫고 당황해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하긴 나도 처음엔 대신관의 정체를 알곤 저랬으니까.'
미리안은 엘리야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곤 진석에게 말했다.
"그러면 오빠는 일단 방에 돌아가 계셔주겠어요? 우선 이 두 분하고 먼저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오빠는 나중에 따로 같이 이야기를 나누죠."
"뭐... 알았어. 그럼."
이렇게 말하는데 딱히 머물러 있을수도 없었으므로 진석은 순순히 일어나 대신관의 방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보면 아르데나는 제이스를 제외하면 나한테 접근하는 여자에 대해 묘한 질투심같은걸 불태우는것 같은데...'
페레나시에서 다시 조우했을때, 아르데나가 엘리야를 자신에게서 떼어놓는 걸 똑똑히 지켜봤던 진석이었다. 게다가 창고에 가둬둔 레오노르 공주에게 가보겠다는 말엔 손을 붙잡곤 제이스가 불쌍하니 그러지 말라는 말을 하기도 했었고.
'음... 곤란한데. 이러면 앞으로의 원활한 성생활에 막대한 지장이 생길것 같은데? 아르데나를 옆에 달고 다닐 경우엔 제이스만 상대할 수 있다는 얘기잖아? 이 무슨 곤란한... 이제와서 아르데나가 내 거시기의 자유를 속박하려 들줄이야! 크윽. 이 무슨 배은망덕한 짓이냐 아르데나!'
게다가 지금은 그냥 눈치만 주는 수준이지만, 만약 아르데나가 성인이 된 후 자신이 아르데나에게도 손을 대고 나면... 그땐 진짜 물리적으로 진석의 행동을 구속하려 들것 같았다. 다른 여자에게 눈길이라도 줬다간 괴물의 힘을 이끌어내어 글자 그대로 활활 불타는 눈동자를 들이대며 "오빠? 제시 언니랑 제가 있는데도 다른 여자에게까지 자꾸 그러실거에요?" 막 이러는게 아닐까.
"......"
그냥 상상이었을 뿐이지만 와 이거 어째 리얼하게 무섭다. 식은땀이 삐질 흐른다. 불길한 상념을 떨쳐내겠다는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진석은 자신이 배정받았던 방으로 향했다. 여기까지 게임을 한참 진행했으니 간만에 세이브라도 한 번 해둘 생각이었다.
사원 내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간 진석. 생활에 딱 필요할 정도의 집기와 가구만이 갖춰진 소박한 내부는 예전과 변한 것 없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먼지하나 없이 깨끗한거 보니 평신도들이 꼬박꼬박 청소는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선 돈가방부터 정리하고..."
진석은 더 큰 쪽의 가방에 금화들과 금괴를 차곡차곡 집어넣고, 침대 아래쪽 깊은곳에 쑥 밀어넣어 두었다. 여기라면 누가 건드리지 않을테지. 수표나 권리서 등등은 가죽가방에 담았다. 이건 나중에 미리안과 면담할때 건네줄 생각이었다.
"배낭 정리도 한 번 해야할 테지만... 에이, 귀찮다. 급한것도 아니고 나중에 하자."
그러고보니 피터슨의 수첩도 아직 안봤다. 배낭 어디에 처박혀 있을텐데. 그것도 나중에 확인해 보자고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 게임을 저장하는 진석. 진석이 저장을 자주 하지 않는데엔 리베라의 저장 방식이 약간 불편한 탓도 있었다. 저장을 하면 현재의 게임이 종료되고 자동으로 메인 메뉴로 돌아가버리는 것이다. 무조건 세이브와 로드를 반복하기보단, 가급적 자신의 행동과 선택들의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즐기라는 의미로 일부러 이 부분만은 살짝 불편하게 만들었다나? 뭔소린지. 그래봐야 게임인데 뭘 이렇게 해놨나 싶기도 하지만... 아예 납득 못할건 아니었다.
'뭐 그래봐야 그냥 메인메뉴로 나가는 거니까 바로 로드만 해주면 되긴 하는데 로딩 기다리는게 싫어서... 그러고보니 고전게임중에 분명 이거 비슷한 저장방식의 게임이 있었던것 같은데, 뭐였더라? 아니아니. 그보다 지금 몇시야?'
현실의 시간을 확인해보니 자정에 가까워져 있었다. 토요일이라고 하루종일 아주 질펀하게 게임만 한것이다. 좀 쉴까하고 게임을 종료시킨 뒤 헤드기어를 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똑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가 몸이 찌뿌드드 했다.
"아으...! 허리야. 아고, 내 삭신."
가볍게 몸을 스트레칭하자 몸 여기저기서 우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몇 번이고 스트레칭을 하다 기지개로 몸풀기를 마무리한 진석은 VR 기어에 연결되어있는 컴퓨터의 앞에 앉았다. 씻고 자기 전에 자주 보던 게임 정보 사이트에 들어가 리베라에 관한 소식이 뭐 없나 살펴볼 셈이었다. 과연 새로운 기사가 하나 올라와 있었다.
'뭐야, 확장팩 나온다는거? 아니 다 알고 있는 소리를 자꾸 새삼스럽게 하냐. 언제 나오는지도 미정이라며 나온다 나온다 말만 하고 있음 뭐해. 딱 언제 나온다고 못을 박아야지.'
많은 추가 컨텐츠를 담은 첫번째 확장팩이 나올 예정이라는건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언제 나오는건지를 모를뿐. 기사 하단에 개발진 인터뷰가 몇 줄 실려있었는데, 다른 대륙의 등장과 더불어 새로운 문명권 및 인종, 직업등의 추가가 될거라는 간략한 내용만이 전부였다.
'에이... 다 쉬다못해 썩어 문드러진 떡밥만 계속 뿌리고 있네. 개발진은 새 떡밥을 뿌려라!'
기사를 다 읽은 진석은 유저 게시판에 들어가 다른 플레이어들의 플레이 기록이나 후기등을 좀 읽어보았다. 게시판 내엔 백인백색, 별별 특이한 자신만의 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매력을 50 찍은 여자 군주로 시작해서 인재등용도, 외교도, 협상도, 무조건 섹스로 때우며 진행한다거나. 한 나라의 유망한 장수로 시작해 암살과 음모로 내전을 일으켜 나라꼴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뒤 다른 나라로 도망. 도망간 나라에서도 어느정도의 지위에 오른 뒤 또 온갖 수단으로 반란이나 혼란을 유도하고 재차 다른 나라로 망명. 그런식으로 거쳐가는 나라란 나라는 다 열과 성을 다해 개박살을 내놓는 플레이어도 있었다. 그 유저의 닉네임은 개판의 신이었다. 닉값하네.
혹은 진석처럼 방랑자로 시작해서 정치와 매력에 올인하고 온갖 방법으로 미녀들을 잔뜩 끌어모아 귀족이나 부호 위주로 영업하는 고급 창관을 차려 돈을 왕창 벌었다는 후기도 있었다. 목표는 제 2의 하디카 건설이라나. 아, 정치는 시설관리 능력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많이 올렸다고 써있었다. 이런식으로 본인의 플레이 내역을 소설처럼 재미나게 재구성하며 꾸준히 연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냥 평범하게 자신이 겪은 퀘스트들에 대한 정보나 던전 탐사 기록같은걸 올리는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혹시나 싶어 아르데나에 관한 퀘스트를 검색해봤는데 적긴 하지만 글이 몇 개 올라와 있었다.
'어디 보자... 나는 방랑자 용병 플레이 하는데, 상단 호위하다 보니 수레안에서 왠 괴물이 갑툭튀해서 끔살당함. 알고보니 아르데난지 뭔지 이 퀘였음. 마지막으로 세이브 한게 며칠전이었는데 덕분에 개망함. 며칠치 플레이 다시 하려니 짜증폭발. 완전 개같은 년임. 망할 민폐년. 아르데나를 죽입시다 아르데나는 나의 원수.'
진석의 경우엔 이미 살해당한 상단을 발견했었는데, 이 유저는 상단을 호위하다 바로 습격을 당했던 모양이었다. 다음 글도 읽어봤다.
'아르데나 귀여움 할짝할짝. 말도 잘듣고 참 착함. 덕분에 빠른 결혼함. 어린 신부를 내려주셔서 감사함. 지금부터 2세 만들러 감. ...뭐?'
히익, 경찰아저씨 저놈이에요 저놈. 그 다음글도 읽어봤다.
'얘는 처음에 구해놓고나면 변신능력도 있고 해서 써먹기 좋을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플레이어한테 이상하게 집착합니다. 그대로 방치하면 어떻게 되는진 잘 모르겠지만 멘탈 관리 해주실거 아니면 일단 조심하시길. 아니면 블랙 옥션 연줄 있으면 걍 구하자마자 파는게 좋습니다. 특이상품으로 분류되서 한큐에 몇만골 땡깁니다. 전 얘 팔아서 수수료 떼고 2만골 넘게 범.'
"허..."
엘리야와의 첫 만남에서 그녀를 경계하는 모습이나 공주에게 못가게 하는걸 보고 혹시 앞으로도 자신의 여성 관계에 훼방을 놓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거이거 설마... 잘 새겨둬야겠다. 진석은 게시판의 글들을 조금 더 읽다가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조용하고 어둑한 방안, 혼자 이부자리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자니 어째 조금 쓸쓸했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게임 상에선 예쁜 여자들 옆구리에 끼고 자다 혼자서 자려면 마음이 시리구만. 진짜 궁상맞다, 흑흑.'
진석은 눈을 감고 지금까지의 플레이 기록을 복기해보며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어제 편의점에서 사다놓은 컵라면으로 대충 아침을 때운 진석은 친구 윤재한의 병문안이나 갈 겸 집을 나섰다. 물론 출발하기 전 가겠다고 미리 연락은 해놓았다.
"에이, 더 나중에나 들여다볼까 했는데... 미우나 고우나 친구새끼니 병문안 시늉이라도 해야지."
그러고보니 발목이 다쳤댔으니 보나마나 퍼질러 누워서 뒹굴거리겠지? 딱히 뭘 사다줘야 할 진 모르겠어서 재한네 집에 가는길에 적당히 발을 편히 대고 있을만한 푹신한 무지 쿠션과, 피자나 한 판 사들고 갔다. 평소같으면 맥주 피쳐라도 사갔을텐데, 소염제인지 뭔지 내복약을 먹고 있어 술을 못 마신다니 음료는 그냥 콜라로 대신했다. 집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이 지나서야 재한이 어기적거리며 나와 문을 열어줬다. 진석의 선물에 대번에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한 재한.
"옛다 먹이다. 먹어라 이 돼지놈."
"아유, 우리사이에 뭘 이런걸 다 사왔어. 내가 웬만해선 눈물이 안나는 사람인데 갑자기 눈물이 다 나네. 안 그래도 너 오면 같이 짱깨나 시켜먹을까 했구만."
"됐으니까 그냥 처먹어. 넌 나중에 나 다치면 이런거 사오지 말고 현찰 가져와 현찰."
"뭐 임마? 야 내가 너한테 대딸까진 쳐줄 수 있어도 돈은 못준다. 내 피같은 돈을 어디서 감히."
시시덕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가는 둘. 재한의 방에서 같이 피자를 나눠먹고 이런저런 시덥잖은 잡담이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보니 병진이는 요새 뭐한데냐? 걔는 아직 전역 안했나?"
"아 그 새끼 미쳤나봐, 부사관 지원해서 말뚝 박을거라던데."
"그래? 미치긴 뭘 미쳐. 체질에만 맞으면 할만하지 뭐. 나도 학비 벌겠다고 일단 이러고는 있는데 복학하고 졸업해서 취업할거 생각하면 깜깜하다. 매일매일 새벽같이 트레일러 줄줄 들어오는거 보면 징그러워서 원."
"하긴. 으아 나도 복학하기 싫다. 기껏 해외여행이라도 가보려고 돈 모았더니만 다리도 이 모양 나고. 아 토익 점수도 좀 올려놔야 되는데 거 진짜 하기 싫네."
친구들끼리 오고가는 고만고만한 이야기였다. 진석은 재한네 집에서 대충 한시간쯤 놀다가, 다시 자기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마트에서 이것저것 적당한 먹거리를 사서 돌아와 냉장고와 선반에 쟁여뒀다. 그러고나니 오후 1시 반이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일단 컴퓨터를 켜고 다시 한 번 게임 정보 사이트로 들어가 유저 게시판에 들어가봤다.
'사교 교단에 대한건 어제 막 업데이트 된거라 정보가 뭐 있을라나 모르겠다만...'
과연 아직은 큰 정보가 없었다. 아직은 다들 플레이 하고 있는거겠지. 하긴 전쟁과 외교, 내정 위주로 게임을 진행해야하는 군주나 장수 플레이를 한다면 게임이 끝날때까지 아예 교단과 마주치지 않을 확률도 높았다. 물론 지도자의 입장에서 이런 교단의 존재를 알게되면 무조건 병력을 동원해 교단의 세력을 뿌리뽑는 작업을 해야할터. 그런데 글을 읽다보니 진석이 접하게 된 건 헤세스모데우스 교단이었지만, 이 교단 이외에도 뭔가 다른 교단들도 등장하는 것 같았다. 헤세스모데우스 교단은 세간의 이목에서 정체를 숨긴채 자신들이 믿는 허신을 은밀히 강림시키려는 부류였지만, 어떤 다른 유저가 발견한 아케리우스라는 교단은 진짜 세기말 정신병자 같은놈들만 모인곳으로 온갖 직간접적 방법으로 전 인류의 말살을 시도하는 최악 최흉의 살인마 집단이라고 했다.
'아케리우스 교단 놈들은 진짜 개새끼들이네. 교외의 작은 마을이나 유사인종, 수인종 부락의 몰살같은짓은 기본이고, 도심에 전염병을 퍼트리거나 온갖 테러 행위에, 암살과 정보조작으로 내전을 유도하거나 사이가 좋지 않은 국가간에 전쟁의 단초를 제공하거나... 아무튼 사람이 많이 죽을 수 있는 짓이라면 똥오줌 안가리고 다 한다 이거지? 그리고 이런짓이 가능한 이유는 얘들은 평신도부터 개나소나 어느정도의 신성력을 쓸 수 있다고... 거 참 징그럽다 징그러워. 하긴 뭐 나야 헤세스모데우스 교단 루트로 진행중이니 이놈들은 안나오겠지.'
헤세스모데우스 교단에 접한 어느 다른 유저의 경위도 확인해 봤는데 확실히 진석과는 그 시작이 달랐다. 진석은 우연히 빅 본의 금고를 털며 교단이 원하던 물건까지 훔쳤고 그 뒤를 쫓은 제이스와 싸우며 시작되었지만, 그 유저는 자신이 동료로 삼은 마법사가 강력한 아이템을 지니고 있었는데 수호자 중 맥과 머서가 그것을 강탈하러 오면서 마주치게 되었다나. 그리고 헤세스모데우스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경우 첫 임무의 패턴은 다들 비슷한 것 같았다. 플레이어가 진행하는 세계의 상황에 맞춰, 보통 방법으로는 가져오기 힘든 강력한 아이템을 하나 훔쳐오라는 것. 그건 공통사항인듯 했다.
'나도 이제 겨우 첫 임무를 마친거긴 하지만, 헤세스모데우스 교단에서 주는 퀘스트는 아마도 수집이나 강탈 위주의 패턴인가?'
뭐 이만하면 됐다. 간단하나마 정보를 얻고 나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대충 감이 서는것 같았다.
'그런데 중요한건, 앞으로도 이렇게 교단에 계속 충성을 해야하나? 아니면 맨 처음 생각해보던것처럼 중간에 뒤통수를 갈겨버려? 흐음.'
잠깐 고심해봤지만 아직은 딱히 결론을 낼 수 없었다. 교단의 목적에 충실히 따라 세계멸망쪽으로 가는것도 좋겠지만 그쪽 엔딩을 보면 결국 새게임을 해야할테고, 혹은 시기 적절히 배신을 한다고 해도 아직은 교단의 세력이나 힘을 자신이 꿀꺽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특히 제이스 같은 경우엔 결국 진석 자신보단 교단과 미리안을 더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배신을 하려고 해도 협력은 바랄수도 없거니와 미리안에게 해를 가하면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원수지간이 될 것이다. 기존 교단 인원들의 결속력이 너무 강해서 확실히 내부의 배신자나 협력자를 만드는건 불가능 할 듯 했다. 단, 아르데나와 엘리야는 진석이 데려온 인물이니 이들이 교단 내에서 자리를 잡는다면 이 둘은 어떻게 해볼 수 있겠지. 허나 엘리야는 겁이 많으니 변수가 많아서 뭐라 장담은 못할테고... 그래도 아르데나만큼은 절대 자신을 배신하지 않고 무슨 일이던 따를것이다. 집착하는거 조심하라는 경고까지 나올정도니 분명 그렇겠지. 좌우지간 일단은 여태까지 해왔던것처럼 상황을 봐서 그저 자신이 재밌는 방향으로 플레이 할 생각이었다. 원래 게임이란 즐기기 위해 하는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퀘스트의 상황 역시 그냥 이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을터. 틀림없이 도중에 한 번 쯤은 흐름을 바꿀만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개발진 성향을 보면 퀘스트 디자인에도 뭔가 꼬아놓은 부분이 있을게 뻔했다. 그 기회를 찾아서 살리거나 죽이는건 전적으로 플레이어인 자신의 몫이었다. 진석은 자리에 앉아 헤드기어를 머리에 썼다. 다시 리베라의 세계를 방랑할 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리베라가 막 뭐 거창한 게임이 아니라 그냥 누구나 다 하는 극히 평범한 게임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한 번 끊고 현실파트의 묘사를 좀 넣었습니다. 타인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온라인 게임도 존재하지만, 이건 싱글용이니 흡사 집에서 콘솔게임 하는듯한 여유로운 느낌으로.. 이런 장면은 글의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좀 더 초반에 썼어야 했을텐데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서두에 10회 이상 클리어했다는 부분 때문에 제가 의도한거랑은 어째 다른쪽 방향으로 기대한 분들이 많았던것 같아서. 제 잘못이 큽니다. OT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