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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71화 (71/155)

< --   - 6.   -- >         * 71화 *

"저는 용병이에요."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아라파까지의 동행, 그 이상 오래볼 상대도 아니니 적당히 둘러대자. 셀린은 진석이 자신을 용병이라고 밝히자 깜짝 놀랐다.

"에나씨가 용병? 저, 전혀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진석은 방 한쪽에 놓아둔 가방으로 가, 안에서 투척용 단검을 하나 꺼내 방 반대편 협탁 위에 놓인 거베라 화분을 향해 휙 집어던졌다. 빠르게 날아간 단검은 거베라 꽃들의 줄기 한복판을 꿰뚫고 벽에 박혔고, 잘려나간 거베라의 꽃머리들이 한박자 늦게 바닥에 투둑 굴러떨어졌다.

"아..."

갑작스러운 단검 투척에 깜짝 놀라는 셀린. 진석은 벽에 박힌 단검을 뽑아 회수하며 말을 이어갔다.

"세상에는 몰라도 좋을 일들이 많으니까요. 자세히 설명 할 순 없지만 전 의뢰를 받고 어떤 물건의 회수를 위해서 아라파로 가고 있어요."

"위... 위험한 일이겠죠?"

"네. 그렇지 않으면 저 같은 용병에게 이런 일이 들어올리가 없죠. 제가 말할 수 있는건 여기까지."

단검을 가방안에 다시 집어넣으며 말을 줄이는 진석. 거짓말 지어내기도 귀찮다! 그냥 적당히 둘러대고 말자, 그렇게 생각했다. 원래 이런건 적당히 둘러대면 나머지는 알아서 적당히 상상하며 납득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완전한 거짓은 아닌, 절반만큼은 진실이었다. 실제로 대지의 눈이라는 보옥을 훔쳐내러 가는것은 맞았으니까. 단검을 집어넣어둔 진석은 방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의 의자로 다가가 앉았고, 셀린도 눈을 반짝이며 진석의 옆에 다가와 앉았다.

"뭐라고 해야하나... 멋지네요 에나씨는. 강하고, 당당하고..."

슬쩍 진석의 손을 감싸쥐며 동경어린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셀린.

'뭐... 뭐여.'

술 때문에 취기라도 도는건가? 아니. 그런게 아니다. 아마도 그녀는... 대도시에 올라와 가족을 도우려다 기껏 창관에 떨어진채, 남들에게 속고 이용당해왔으니... 혼자서도 충분히 강하고 당차보이는 이쪽이 멋져보이는 모양이겠지. 그런 의미의 동경이 담긴 시선이었다. 어찌보면 참 딱할정도로 순수한 사람같았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어째 부담스럽다. 그런눈으로 쳐다봐야 뭐 줄게 있는것도 아닌데. 하다못해 자신이 남자의 몸을 하고 있다면 그 큰 가슴으로 서비스를 받을 용의가 있다만... 지금은 여자잖아! 아 진짜! 계속 셀린의 시선을 받아들이고 있기 왠지 부담스러워져 자리에서 슬쩍 일어났다.

"아니 그... 이제 목욕하고 자야죠? 내일 일찍 떠날거니까."

"아. 그래야죠. 음~ 먼저 들어가실래요?"

왠지 샐쭉 웃으며 그렇게 물어오는 셀린. 진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에서 갈아입을 속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배에 있는 사흘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옷도 못 갈아입었으니 슬슬 찝찝하던 참이었다.

"휴우."

타악. 욕실에 들어가 온수를 틀어놓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속에는 누가봐도 예쁘거나 아름답다고 느낄 굉장한 미녀가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는 진석. 사정상 할 수 없이 여성의 몸을 하고 있었지만 역시, 위화감이 들 뿐이었다.

'암만 예쁘고 몸매 좋으면 뭐하냐. 그야말로 그림의 떡인데, 쯧.'

혀를 차며 옷과 속옷을 훌훌 벗고 아직 물이 덜 차오른 욕조에 바로 몸을 담궜다. 며칠만에 따스한 물에 몸을 담그니... 입에서 절로 아흐으 하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몇분쯤 그러고 있었을까, 끼익 하며 욕실의 문이 열리고 셀린이 안으로 들어섰다.

"어, 엇?"

"헤헤. 등이라도 밀어 드릴까요?"

은근슬쩍 들어오더니만 익숙한 동작으로 옷을 벗어제끼고 욕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진석의 어깨에 물을 끼얹으며 손으로 피부를 만질만질 쓰다듬었다.

"와아... 에나씨는 정말 예쁘네요. 잡티도 하나 없고 깨끗해."

셀린은 어깨나 등줄기를 부드럽게 쓰다듬는것 뿐이지만... 어째 손놀림이 야하다. 과, 과연. 경력은 짧다고 해도 일단은 현직 직업 여성. 셀린의 손길에 자기도 모르게 흠칫흠칫 하는 진석. 그녀는 우후후 웃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보잘것 없지만 오늘일의 답례로... 어떠세요? 기분좋은일, 잔뜩 해드릴 수 있는데."

아이고 그것 참 감사합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라고 했겠지. 남자였다면. 하지만... 없어. 없단 말이야. 다리 사이의 그게 없어! 엉엉! 셀린은 진석이 아무 대답못하고 있자 손을 뻗어 진석의 가슴을 스윽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슬쩍 껴안아왔다.

"에나씨. 알고계세요? 여자끼리라도 여러가지를 할 수 있다는거."

셀린의 손이 가슴을 스치는 감촉이... 으, 으윽. 남자일때도 가슴의 애무정도는 받아봤다만 이건 그것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남자일때보다 가슴의 감각이 몇 배, 아니 몇십배는 예민한 느낌이다. 유두의 끝이 단단해지는게 느껴진다. 셀린은 손가락으로 그 끝을 살짝 짚으며 이쪽으로 상체를 찰싹 기대온채 속삭였다.

"어머, 귀여워라. 후후. 에나씨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때마다 작게 움찔움찔 떨리는게 느껴지네요."

아, 안되겠다. 이러고 가만히 분위기에 휩쓸리다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진석은 셀린에게서 조금 물러나며 말했다.

"저기 셀린씨. 이런건 이제 그만..."

"아... 죄송해요. 혹시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남자나 아니면 애인이라던가..."

내가 남잔데 남자 애인이 있을리 있겠냐. 진석은 고개를 가로저었고 셀린은 당황해 하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쓸데없이 괜한짓을 했네요. 기, 기분 나쁘셨죠? 저는 나가있을테니 편하게 씻으세요."

몸을 돌려 나가려는 셀린. 몸을 일으킬때 그 압도적인 존재감의 가슴이 출렁하는게 시선이 절로 가고만다. 진석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엣?"

"괜찮아요. 기분 안 나빴으니까. 음... 욕조, 같이 쓰실래요?"

다리를 좁혀 욕조 반대쪽 자리를 내어주는 진석. 뭐 실제로 별로 기분이 나쁜것도 아니었고 딴에는 생각해준다고 한 행동이니 그리 불쾌할것도 없었다. 단지 화가 나는건... 지금 자신이 여자의 몸이라 눈 앞에 있는 셀린의 풍만한 가슴을 그냥 감상만 해야 한다는 것! 으으, 하고싶다. 저 탐스러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이런짓 저런짓 마구 하고싶은데. 미리안이 원망스러웠다. 비열한 사교도의 우두머리 같으니. 내게 이런 고통을 주고도 네가 무사할 성 싶더냐아아! 셀린은 멋쩍어하며 욕조에 들어왔고 두 사람이 들어오자 물도 찰랑찰랑 넘칠 정도가 되었기에 수도를 잠궜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욕조안엔 진석과 셀린 두 명이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이런 질문은 실례겠지만... 에나씨, 아직 미경험자?"

"...네."

고개를 끄덕이는 진석. 하지만 남자쪽 몸으론 댁보다 몇 배는 많이 했을걸? 이전 플레이들까지 합치면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의 여자 캐릭터들을 거쳐왔으니까. 하지만 여자의 몸으로는 미경험. 이 육체는 분명 깨끗한 처녀였다.

"그렇구나. 죄송해요. 제가 할 줄 아는 일은 이런것 뿐이니까... 멋대로 들떠서 그만. 하긴 저같은 사람과 이런일을 하는것보단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천천히 경험을 쌓는게 훨씬 좋겠죠."

그렇게 말하곤 헤헤 웃어보이는 셀린. 아까도 든 생각이긴 하지만 이 여자도 근본은 꽤 착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경험이라. 비록 게임상이지만 여자를 상대해온 경험치라면 셀린의 경력 따위 새발의 피다. 진석은 씨익 웃으며 셀린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어... 에나씨?"

"셀린씨는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요."

"네?"

츕. 진석은 자신의 입술로 셀린의 입술을 막았다. 셀린은 놀라면서도 순순히 진석의 키스를 받아들였고, 서로의 혀와 혀가 농밀히 뒤섞였다. 잠시간 이어진 입맞춤. 곧 입을 떼자 두 입술사이에 긴 체액의 호선이 두어가닥 이어지다 툭 끊겼다.

"하아, 하아... 에나씨. 이건 무슨...?"

"내가 처녀인건 사실이지만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진석은 셀린의 위에 올라타며 그녀의 목과 쇄골을 핥고 양손으론 가슴과 몸을 쓸어내렸다. 진석의 능숙한 애무에 당황하면서도 신음성을 흘리며 서서히 느끼기 시작하는 셀린. 잠시 셀린의 하복부를 쓸어내리던 진석의 손가락이 그녀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고, 셀린은 학 하고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들썩였다.

'예민한 촉감이 참 유용하게 쓰인단 말야. 1포인트짜리 치곤 정말 잘 찍었어.'

삽입 위주로 여자와 관계해온 진석이었지만 지금은 거시기가 없으니 그저 온전히 애무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평소보다 공과 시간을 들인 애무가 셀린의 탐스러운 육체위로 퍼부어졌다. 예민한 촉감을 살린 애무로 몸 안팎을 공략당하는 셀린은 이상할정도로 능란한 진석의 기교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그녀는 창관에서 일해본 프로였고, 손님을 만족시키기 위한 밤기술의 지도도 어느정도는 받았었다. 하지만 자신을 용병이라 밝힌 이 아가씨는 대체 뭘까. 분명 스스로를 처녀라고 밝힌 주제에... 대체 어디서 이런 테크닉을? 남자를 상대하는데 이골이 난 셀린이었지만 그녀의 테크닉은 정말 급소만을 공략해오는터라 버티기 힘들었다. 손님을 만족시키기 위한 거짓 신음이 아닌 진짜 신음성이 줄줄 흘러나왔다.

"아아... 에, 에나씨. 거기... 으흥!"

둘의 몸짓이 점차 격해지며 욕조에 가득찬 온수도 그에 맞춰 넘실거렸다. 이내 찾아온 절정까지의 마지막 스퍼트. 진석이 두 손가락을 깊이 찔러넣은 순간, 셀린은 고개를 뒤로 확 젖히며 환희의 탄성을 토했다.

"아아아아! 하, 아아... 으... 하아."

하복부에서부터 등골을 타고올라 머리속에 다다라 불꽃놀이처럼 한순간에 펑 터져나가는 진한 오르가즘. 셀린은 모처럼 맛본 희열에 몸을 늘어트린채 거친 호흡을 내쉴뿐이었다. 진석은 그녀가 절정을 맛본걸 확인하곤 욕조에서 빠져나왔다.

'씻으러 들어왔다가 엄하게 손장난만 하고 나가는군.'

셀린은 절정을 맛보았지만, 진석 자신은 영 욕구불만인 상태였다. 여체를 한참이나 가지고 놀았으니 그게 막 땡기긴 하는데 자신은 여자 아닌가. 그렇다고 어디서 남자라도 데려다 관계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쩌겠는가, 그냥 참는수밖에. 진석은 선반에 놓여있던 타월로 몸을 꼼꼼히 닦고 속옷을 입으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정신을 차리고 욕조에서 빠져나온 셀린이 진석을 뒤에서부터 껴안았다.

"에잇!"

기껏 물기를 닦았는데 도로 젖어버렸잖아. 아니 이 여자가 뭔짓이여. 하지만 셀린은 진석을 무슨 애인을 끌어안듯 정말 애정을 담아 꼬옥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와아. 저 정말 놀랬어요. 에나씨는 정말 대단하네요. 아름다운데다 강하고. 게다가 아직 미경험자면서 이런 테크닉까지. 대체 이런건 어디서 배운거에요?"

"아니... 그건 뭐 어쩌다보니..."

"후후. 하긴 말하기 곤란한것도 있겠죠. 묻지 않을께요. 하지만 이번엔..."

말을 하던 셀린이 진석의 귓바퀴를 낼름 핥고 가슴을 꽈악 쥐어온다. 생각치도 못한 애무에 순간 허리의 힘이 빠져 휘청하는 진석. 셀린은 그런 진석을 뒤에서 붙들고 몸 구석구석을 소중하다는듯 쓰다듬기 시작했다.

"제가 해드릴테니까요. 걱정마세요. 소중한 그곳엔 손대지 않더라도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니까."

뭐, 뭐가 여러가지가 있다는건데? 셀린은 진석을 세면대에 몰아붙인채 뒤에서부터 능숙히 여기저기 애무를 해오기 시작했다. 가장 자극이 되는곳은 역시 음부인데, 되려 그쪽은 살짝살짝 스치듯 건드리기만 하니 이게 엄청 감질이 나는게... 막 더 흥분되고 성에 차지 않아 환장하겠다! 진석은 자신의 입에서 달뜬 신음성이 흘러나온다는것도 자각하지 못한채 셀린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아오 머리야."

아직 이른 아침. 눈을 떠보니 알몸뚱이의 셀린이 자신의 옆에서 잠든채였다. 물론 자신도 완전한 알몸. 어젯밤 그대로 욕실에서 몇 번이나 얽히다, 침대까지 와선 한참이나 더 애무를 주고받다 어느순간 지쳐 곯아떨어졌다. 피곤이 가시지 않아 머리가 띵하고 무거웠다. 하긴 둘이 찰싹 달라붙어 몇시간이고 그짓을 해댔으니 피로가 가시겠냐? 더 잔뜩 쌓이지. 침대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의 물병에서 물을 따라 마시고 욕실로 들어가 대충이나마 씻고 속옷을 챙겨입었다. 그러고 나오니 셀린도 반쯤 감긴 눈으로 부스스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잘 잤어요?"

"헤헤... 좋은 아침이에요 에나씨."

대꾸를 해오며 가볍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는 셀린. 그리고 몸의 움직임에 맞춰 출렁출렁 흔들리는 거대한 가슴. 음... 정말 하루종일 보고 있어도 질릴것 같지가 않은 가슴이다. 자신의 것도 꽤나 큰 편이었지만 역시 셀린쪽이 한 수 위다. 셀린은 진석의 시선을 눈치채곤 헤실헤실 웃으며 자신의 가슴을 가리켜 보였다.

"정말 쓸데없이 크기만 하죠?"

"아뇨. 저는 참 좋은데."

"아하하, 에나씨 꼭 밝히는 아저씨 같은 소릴 하네요."

흠칫. 으, 으으음. 평소대로 대답했을 뿐인데 이런. 정체가 들통날뻔했다. 주의해야지. 알 유세프라는 놈의 눈에 들어야하니 좋건 싫건 좀 여자다운 흉내라도 내지 않으면... 그새 셀린도 침대에서 빠져나와나 욕실로 향하며 말했다.

"에나씨 정도만 됐어도 좋았을텐데. 너무 크고 불편해요. 물론 남자들은 좋아라 해주지만... 그럼 좀 씻을께요."

타악. 욕실로 들어간 셀린. 진석은 옷을 꺼내어 뭘 입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가방이 그리 크지않아 가져온 옷이래봐야 몇 벌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교단의 여자들이 골라준건데, 바지는 없고 죄다 치마에 펄럭펄럭 하늘하늘한 옷 뿐이다.

'씨... 진짜 이게 뭐야.'

뭘 입든 어차피 그게 그거다. 적당히 흰색의 해빗 셔츠와 검은색의 주름치마를 골라 입었다. 입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니 대충 골라입은거지만 이거 어쩐지 교복 비슷하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진석은 거울앞에 서서 생긋 웃으며 브이~ 하고 귀여운 포즈를 취해보았다.

'...우와, 정말 신선한 자살충동이 마구마구 샘솟는구나.'

물론 거울에 비친 아가씨의 모습은 귀엽기 그지 없었지만, 실제로 하고 있는 주체인 진석은 부끄러움과 자괴감에 안구와 뇌가 불타버릴 지경이었다. 두 번 다시 이런짓은 하지말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제이스가 챙겨줬던 빗을 꺼내 자신의 긴 머리칼에 대충대충 성의없는 빗질을 하는 진석. 머리가 길다보니 자고 일어나면 다 들떠서 어쩔 수 없이 빗질을 해서 어느정도 정돈을 해줘야 했다. 현실에서도 늘 짧은 머리를 고수하고 다녔던터라 기껏 왁스나 바르고 다녔었는데, 이건 정말 팔자에도 없는 고생이다. 아니,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시라즈의 하디카에 도착해서 알 유세프의 눈에 띄기 위해 무희 행세를 하려면... 이런거보다 훨씬 부끄러운 짓을 해야하는거 아닌가? 정보상 피터슨의 노예였던 세이라가 입고 있던것 같은 시스루의 무희복을 입고 남자앞에서 허리나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밸리 댄스 같은걸 막 추고...

'새, 생각만으로도 괴롭다.'

그냥 남자들의 시선만으로도 수명이 깎여나갈 정도로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그딴짓을 어떻게 하지. 정말 어쩌자고 이 일을 거절하지 못했을까? 한숨만 푹푹 나왔다. 그러다보니 셀린이 씻고 나왔기에 호텔내의 레스토랑으로 가서 아침식사를 한 다음, 짐을 정리해서 이른 체크아웃을 하고 거리로 나왔다.

"이제 바로 배를 타러 갈건가요?"

호텔을 나서자 진석에게 행선지를 물어오는 셀린. 진석은 잠시 서서 셀린의 행색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깨와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원색 계열의 상의. 정말 아슬아슬한 정도로 짧은 길이의 미니스커트. 이 도시에서 평범한 여성들은 이런 노골적인 차림을 하지 않는다. 지금의 셀린은 어떻게 보더라도 그냥 거리의 창녀다. 그러니 어제 레스토랑에 들어설때도 직원이 눈살을 찌푸렸었고, 호텔에 체크인 할때도 그녀는 주변의 이목을 꽤 끌기도 했었다. 셀린은 어제 불한당에게 빼앗길뻔한 자그마한 꾸러미를 들고다니고 있었는데 거기에도 끽해야 지금 입고있는것과 비슷한 옷 한두벌과, 속옷, 그리고 약간의 여비나 들어있을터. 이래서야 안되겠다. 진석은 셀린을 데리고 상점가쪽으로 향했다.

"엣? 아침부터 상점가는 왜요?"

당연히 의문을 제기하는 그녀.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네 옷차림이 너무 창녀같다고 하기도 그렇고, 진석은 슬쩍 웃어보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이제 여름이 되어가는데... 아라파는 사막이니까 더 더울거 아니에요? 급할것도 없는데 옷이라도 몇 벌 보고 가죠."

"와, 그건 생각 못했는데. 좋아요!"

싱글거리며 진석의 손을 붙잡고 졸졸 따라오는 셀린. 으, 이거 어째 큰 애기를 달고 다니는 느낌이다. 그래도 옆에 신경 쓸 사람이 하나 있으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좀 덜 신경쓰게 되는건 다행이랄까? 그런데 한참을 걸어 상점가로 갔는데, 거리가 엉망진창이다.

'...아차.'

지난번 진석이 도시에 불을 싸질러댈때 가장 큰 피해를 봤던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쪽 상점가 구역이다. 수많은 상가들이 불타 터만 남아있거나, 반쯤 허물어져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도 피해가 덜한 곳은 인부들이 수리를 하고 있거나 임시로 천막을 쳐놓고 영업을 계속 하고 있었다. 화마가 스쳐간 자리나마 남은 사람들은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며 거리를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으으, 이런걸 보면 양심에 찔리잖아. 젠장, 미안합니다. 여러분 헤세스모데우스 교단을 탓하세요. 결국 이게 다 교단 때문임. 이 사악하고 나쁜놈들. 이런짓을 저지를수가!'

죽어도 자기 잘못이라고는 인정 안하는 진석. 진석은 셀린과 함께 그나마 멀쩡히 영업중인 옷가게를 찾아 자신것과 셀린 몫의 옷들을 적당히 몇 벌 구입했다. 물론 자신것은 이미 있으니 약간만, 셀린것을 좀 넉넉히 구입해주고 짐을 담아가지고 다닐 여행용 가방도 하나 사주었다. 가게 안쪽에서 방금 구입한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셀린은 진석에게 어쩔줄 몰라했다.

"저, 그런데 어제부터 에나씨에게 이것저것 계속 도움받기만 하는데 미안해서 어쩌죠."

"제가 사주고 싶어서 그러는거니까 괜찮아요. 그냥 치... 치, 친구간에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세요."

"친구요? 어머... 후후. 에나씨는 정말 상냥하네요. 고마워요."

머쓱해하는 진석을 포옥 안아주는 셀린. 아름다운 가슴을 가진 두 젊은 아가씨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으니 옆에서 보기엔 참 훈훈한 풍경일거다. 안겨있는 장본인인 진석은 괴로웠지만.

'흑흑. 이런 좋은 가슴을 가진 아가씨를 상대로 기껏 손장난밖에 못하다니. 괴롭다 괴로워. 어떻게 막대만 돋아나게 한다거나 그런 마법은 없는거야? 엉? 없냐? 제작진 무능해!'

쓸데없이 제작진을 탓하는 진석. 좌우지간 대충 옷도 샀으니 상점가를 빠져나가 선착장 방향으로 가려로 하는데, 길 저편에서부터 어째 꽤 낯이 익은 두 명의 여성이 걸어오고 있는게 보였다.

"...히익?!"

"어라, 왜 그러세요 에나씨?"

혼자 소스라치는 진석을 보고 깜짝 놀라는 셀린. 그도 그럴것이, 길 저 편에서 아인종인 두 델 그로도 여성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 명은 귀여워 보이는 동안에 포니테일, 그리고 어째선지 야시시한 프렌치 메이드 복을 입고있었고, 다른 한쪽은 긴 생머리, S라인의 탄탄한 몸매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여행중인지 둘 다 짐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긴 생머리쪽의 델 그로도는 한쪽 끄트머리에 가죽덮개를 씌운 장대를 걸쳐메고 있었다.

'뭐... 뭐야 저거?! 페레나의 변태 자매들이잖아?!'

이 두 델 그로도 여성은 페레나에서 패커즈 숍이라는 무기점을 운영하는 르마쿠르 자매였다. 언니쪽은 대장장이, 동생쪽은 가게의 점주로 서로 협력을 해서 가게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여러모로 실력은 있는 자매였지만 그녀들에겐 미남을 지독하게 밝힌다는 큰 결점이 있었다. 제자리에 멈춰선채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르마르쿠 자매를 바라보는 진석.

'저 여자들이 데오그라즈까진 뭐하러 온거야? 서, 설마 날 찾아 왔... 을리는 없고.'

당연히 그런건 아닐거다. 그녀들은 그녀들 나름대로 뭔가 목적이 있어서 온 것 뿐이겠지. 설마 마주칠거라곤 정말 상상도 못했지만. 진석은 셀린을 데리고 길 한쪽으로 비켜선채 그녀들이 지나가며 떠드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아."

"아네트, 한 대 치기 전에 그 입 좀 닥쳐."

"그치만! 흑흑. 다시 보고싶단 말이야, 그 러셀이란 남자.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결혼을 하려면 그런 남자랑 해야된단 말이지. 음- 우리 델 그로도랑 인간사이에 하프는 생겨나지 않지만... 왠지 그 남자라면 종족의 벽 따위 가볍게 넘어 이쪽을 임신시켜줄 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 역시 임신만큼 기정사실을 만들어 결혼하기 좋은 방법은 없잖아."

"제발. 그 남자 이야기는 이제 그만 좀 해. 하루에 그 이름만 몇백번을 떠드는거야?"

"아아앙, 그치만 그립단 말이야.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나는걸. 그 우람한걸로 몇시간이나 반복해서 날 사정없이 찔러줄때의 쾌감이란... 아아, 떠올리는것 만으로도 가버릴것 같아."

"그만 좀 닥치랬지."

따악! 아네트의 뒷통수를 사정없이 강타하는 지젤. 그 충격에 아네트의 머리에 쓰고 있던 카츄샤가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고 아네트는 히잉 우는 소리를 내며 그것을 주워들고 툭툭 털어 다시 머리에 썼다. 흡사 둘이 무슨 만담을 하는걸 보는 기분이었다.

"아! 맞다 언니. 밧줄 사자 밧줄!"

"뭐? 그걸 뭐에다 쓰려고."

"음후후- 당연한거 아니야? 이번에 쓸만한 미남을 발견하면 잘 포박해서 러셀때처럼 놓쳐버리는 불의의 사태를 막자는거지. 아, 저기! 잡화점 간판이다! 가자 언니!"

"야! 아네트 이 멍청아! 거기 안서?"

진짜로 밧줄을 사러 잡화점으로 달려가는 아네트와 그 뒤를 쫓는 지젤. 진석은 골목 너머로 사라지는 그녀들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길가로 나섰다. 셀린은 그런 진석의 모습을 보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에나씨. 왜 그래요? 방금 그 델 그로도 여자들... 아는 사람이에요?"

"아뇨, 모릅니다. 정말 몰라요. 절대로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딱 잘라 정색하며 대답하는 진석. 셀린은 뭔가 묻고 싶은게 많은 눈치였지만 진석이 칼처럼 잘라 대답하자 더 묻지 못하고 궁금증을 속으로 삼켜넘겼다. 상대가 대답하고 싶지 않은것 같으니 이 이상 물어봐야 분위기만 거북해질터, 셀린에게도 당연히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둘은 상점가를 벗어나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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