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6. -- > * 74화 *
"흥. 이놈이 두목이었을라나? 아무튼 가방이나 챙기고..."
잔뜩 쌓인 약탈품 중에서 자신과 셀린의 가방만 골라내어 챙긴 진석. 가방을 챙기는 김에 안에서 투척용 단검을 네 자루 꺼내어 벨트 뒤쪽에 채워넣었다. 그리곤 배 사이를 연결하는 널판지를 타고 여객선쪽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아래쪽에서 한참 싸우다 올라와서 그런가, 아까보단 배의 내부가 좀 조용한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소란은 어째 배의 선두쪽에 집중되어 있는것 같았다.
'설마... 변태 자매랑 선원들이 아까 겨우 그 서른명을 해치우지 못하고 당한건가? 아무리 선원이 열댓명 남짓밖에 없었어도 변태 자매가 나머지 반절은 충분히 감당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선두의 갑판쪽으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왔던길을 반대로 달렸다. 1등칸쪽 복도를 지나, 자신의 방 앞을 지나며 방 안쪽에 가방을 휙 던져넣어 두고 쭉 달려나갔다. 주변엔 자신이 쓰러트린 해적들의 시체밖에 없었다. 선실을 벗어나 갑판으로 올라가니 눈 앞엔 의외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 스무명 남짓 남은 해적들이 르마쿠르 자매를 빙 둘러 포위하고 있었고, 겨우 열명 가량 남은 선원들은 부상을 입은채 한쪽에 무력화 되어 붙잡혀 있었는데 그 한 가운데에서 엄청난 거한과 두 자매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 가소로운 년들이 내 부하들을 잔뜩 죽여? 직접 팔다리의 힘줄을 끊고 밧줄에 메달아 노리개 거리로 삼아주마!"
아까 소형선에서 상대한 거한과 닮아보이는 사내였는데, 그보다도 한층 더 체격이 다부지고 수염이 덥수룩해 인상도 더 사나워 보였다. 머리에 삼각모를 쓰고 아랫단이 다 헤져 너덜거렸지만 견장같은게 달린 롱코트를 걸친걸 보니 아마도 저 남자가 이 해적들을 이끄는 선장인것 같았다. 의외로 놀라운건 바로 그의 실력이었는데, 손에 든 두 자루의 큼직한 커틀라스로 르마쿠르 자매를 쉴새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아네트는 어떻게든 건틀렛으로 공격을 막고 간격을 좁혀 접근전을 시도하려 했지만 번번히 발에 채이거나 칼자루에 맞아 밀려날 뿐이었다. 지젤도 언월도를 휘둘러 어떻게든 공격을 하려고 했지만 미친듯이 빠른 커틀라스의 연타에 언월도는 채 제대로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번번히 튕겨날 따름이었다. 이 해적들의 선장이 휘두르는 검은 딱히 어떤 기교나 검술이 깃든건 아니었지만, 뛰어난 신체능력과 해적단의 선장이라는 지위에 걸맞는 어마어마한 실전경험으로 모든걸 다 커버하는 것 같았다. 그것을 증명하듯 보통 해적들을 상대론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르마쿠르 자매가 손도 못쓰고 밀리고 있었다.
"저게 두목님이신가... 확실히 한가락 하는 것 같구만."
미남이나 밝히는 변태 자매라지만 분명 둘 다 강한 전사임은 분명한데 저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다니. 진석은 두 자매와 선장의 싸움으로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틈을 타, 한쪽의 간이 바로 가서 물병을 따고 목을 축이며 SP회복제를 함께 마셨다.
"음... 물하고 같이 마셨다고 희석되서 효과가 떨어진다거나 하는건 아니겠지 설마."
그럴일은 없이 바닥을 치던 SP게이지는 정상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진석은 물병으로 손을 씻고 간단히 세수도 해서 얼굴에 묻은 피를 좀 닦아냈다. 그리곤 옆에 놓여있던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싸움판 한가운데를 향해 걸어갔다. 여전히 아무도 진석에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선장의 측면으로 돌아가려던 아네트가 선장의 미들킥에 제대로 걷어차여 난간 부근까지 쭉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넘어진 아네트의 팔을 억누르는 해적들.
"아네트!"
지젤이 언월도를 휘두르며 아네트쪽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선장이 그 앞을 가로막아섰다. 이익 하고 이를 꽉 물며 언월도를 사선으로 고쳐쥐는 지젤.
"비켯! 봉락열..."
"카아아아앗!"
지젤이 기술을 발하기도 전에 커다란 기합을 지르며 신들린듯 커틀라스를 휘둘러대는 선장. 지젤은 기술을 쓰지도 못하고 어중간한 자세로 선장의 공격을 막으려다 되려 매서운 공세에 밀려 언월도를 놓치고 뒤로 넘어지고 말핬다. 지젤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선장이 그녀의 가슴팍을 퍽 걷어차 뒤로 나동그라지게 만들었다. 주위의 해적들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어 지젤도 붙잡았다.
"크, 크으윽... 이런 말도 안되는...!"
"하찮은 이종족 계집년들이 주제도 모르니 덤벼드니 이렇게 되는거다. 잘 묶어서 내 방에 데려다놔라. 우선 여자로 태어난 걸 후회할 정도로 실컷 범해줄테니까. 앞 뒤 구멍이 전부 너덜너덜 헤질때까지 박아주지."
"누구맘대로."
휘리릭, 퍽. 뒤쪽에서 물병 하나가 날아와 지젤을 끌고 가려던 해적의 뒷통수에 맞고 산산히 깨졌다. 물병이 날아온 쪽으로 집중되는 갑판 위 전원의 이목. 진석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미... 미친년인가? 뭐야 저거?"
"뭐긴 뭐야! 일단 붙잡아서 끌고와!"
버럭 소리를 지르는 해적 선장. 근처에 있던 두 해적들이 진석을 붙잡으려 성큼성큼 다가왔지만, 진석이 투척용 단검을 뽑아드는게 훨씬 빨랐다. 양손으로 단검을 뽑아든 진석은 시클론을 써서 순식간에 둘의 목을 베고 지나가며 지젤을 붙잡고 있던 두 해적에게 단검을 날려 맞췄다.
"아니잇?!"
"뭐, 뭐냣!"
당황하는 해적들. 진석은 멈추지 않고 쭉 달려나가며 나머지 투척용 단검 두자루를 뽑아든채 앞을 가로막는 해적들을 서넛 연달아 베어넘기고, 아네트를 양쪽에서 붙잡고 있던 해적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단검을 맞춰 무력화시켰다. 두 팔이 붙들린채 버둥대며 밧줄에 묶일뻔하던 아네트는 자신을 구속하던 해적들이 떨어져 나가자 앞을 가로막는 해적의 안면을 걷어차곤 날렵하게 바닥을 구르며 한쪽에 떨어져 있던 지젤의 언월도를 주워 던졌다.
"언니!"
진석덕에 먼저 풀려난 지젤도 아네트가 풀쩍 뛰어 던져준 언월도를 공중에서 받아들고, 바닥에 착지하며 주위를 가로막던 두 명의 해적을 단숨에 베어넘겼다. 갑작스레 나타난 진석과 구속에서 풀려난 르마쿠르 자매 때문에 안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부하들의 절반이 또 죽어나가자 선장은 쾅쾅 바닥을 걷어차며 커틀라스를 뽑아들었다.
"이이이익! 저년은 또 뭐야! 어디서 개같은것들이 자꾸 기어나오는거냐!"
그리곤 크아악 괴성을 지르며 상황을 반전시킨 진석을 목표로 삼고 쿵쾅쿵쾅 달려들었다. 발걸음 소리는 둔중했지만 몸놀림은 놀라울 정도로 민첩했다. 진석도 지지 않고 란비언과 흑철단검을 뽑은채 그를 향해 달려나갔고, 둘의 거리는 삽시간에 줄어들었다.
"네년! 넌 바로 토막을 쳐주마!"
"뒈질놈이 말이 많다!"
채챙! 두 자루의 커틀라스와 크리스 란비언, 그리고 흑철단검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검날을 맞댄채 힘을 밀어넣으며 서로 잠시 힘겨루기를 하는 둘.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검날들은 서로 격렬히 충돌하며 불꽃을 튀겼다. 채채채챙! 서로가 서로의 간격안에 든채 미친듯이 칼을 휘둘러대었지만 진석은 상대의 공격을 전부 피해내고 있었고, 선장쪽은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남은 해적 잔당을 물리치다가 흘깃 그 싸움에 한 눈을 파는 지젤. 그런데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나타나 자신들을 도와준 저 여자의 손에... 자신이 만든 크리스 란비언이 들려있는게 아닌가? 칼놀림이 너무 빨리 검의 모양을 똑바로 보이는건 아니었지만 장담해도 좋았다. 저건은 분명 자신이 만든 란비언이었다. 모양과 색도 독특하고, 그렇게나 공을 들여 만든 검이다. 장인이 자신의 작품을 못 알아본다는건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아니... 어떻게? 분명 그 남자에게 판 검인데..."
중얼거리는 지젤. 그 빈틈을 노리고 한 해적이 뒤에서 검을 찔러왔는데, 잽싸게 달려든 아네트가 해적의 안면을 걷어차 날려버리며 외쳤다.
"정신차려 언니! 싸우다말고 어디다 한 눈을 파는거야?"
"그, 그게 아니라 저 여자. 내가 만든 란비언을 가지고 있는걸?"
"...엥? 왜? 어째서?"
역시 휘둥그레 눈을 뜨며 놀라는 아네트. 이제 고작 대여섯 남은 해적들의 잔당은 싸울 의지도 잃은것 같았기에, 두 자매는 진석과 선장의 싸움으로 눈을 돌렸다.
"으라라라라라라!"
미칠듯한 난격. 사방의 모든걸 다 썰어버리겠다는 듯 선장의 커틀라스가 춤을 추었다. 아마 제대로 맞는다면 삽시간에 수토막이 나서 퍼즐조각이 되어버릴듯한 압도적인 공격. 그러나 진석은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그 난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틈새를 향해 단검을 찌르고 베어왔다. 서로 물러남이 없는 공격과 공격뿐인 싸움. 앞서나가기 시작한건 진석쪽이었다. 단검의 끝이 하나둘 선장의 몸과 코트를 스치며 여기저기 크고작은 생채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선장.
"왜 이렇게! 안 맞는거냐! 그아아앗!"
선장 입장에선 미칠듯이 화를 낼만도 했다. 바로 코앞에 있는 상대인데도 무슨 유령을 상대하는것처럼 공격이 하나도 맞아들어가지 않았으니까. 왼쪽을 치면 오른쪽으로 피하고, 오른쪽을 치면 왼쪽으로 피한다.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하면 뒤로 물러났다 다시 스윽 앞으로 다가선다.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면 그에 맞춰 뒤로 물러난다. 아까부터 계속 이런상황이다. 자신의 간격안에 들어 있음에도 잡지 못하다니. 그야말로 환장할 것 같았다.
'무식한 놈 같으니. 하지만 확실히 보기보단 강한데? 실제로 치명적인 공격은 죄다 막아내고 있고, 맞는거라곤 겨우 스치는 정도니. 역시 이대론 끝이 안나겠다, 시클론!'
파아앗! 눈앞에 익숙한 섬광 한줄기가 스쳐지나간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속에서 자신만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는듯한 이 익숙한 감각! 진석은 뒤이어 라파가를 걸었다. 시클론 이후에 이어지는 라파가 콤보. 지금까진 목베기 성공률 100%를 자랑하는 필살의 패턴이었다. 하지만 선장은 진석이 시클론을 거는 순간, 왠지 모를 섬뜩한 오한같은 것을 느끼고 뒤로 물러나며 커틀라스로 상체를 가드했다. 셀 수 없을정도로 수 많은 실전을 거쳐온 이 선장에겐 거의 단기 예지에 가까울 정도의 예민한 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대로 있다간 뭔가 손도 못쓰고 당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방어자세를 굳혔다. 이런 '예리한 직감'때문에 르마쿠르 자매가 선장의 상대가 되지 못하기도 했던것이다. 진석은 선장이 재빨리 물러나며 가드를 취하는것을 보곤 조금 놀랐지만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며 검을 쥔 손에 힘을 넣었다.
"라파가!"
파카앙! 놀랍게도, 란비언과 흑철단검은 두껍고 무거운 선장의 커틀라스날을 그대로 쪼개버리며, 선장의 몸에 기다란 상흔을 남겼다. 하지만 커틀라스가 라파가의 위력을 대부분 흡수한덕에 선장이 입은 피해는 크지 않았다. 선장은 반토막이 나버린 두 커틀라스를 머리위로 치켜들었다 빠르게 내리치며 외쳤다.
"잘도! 죽어라!"
"토르멘타!"
커틀라스를 토막내고 바닥에 착지한 진석은 선장이 자신을 향해 반쪽짜리 커틀라스를 내리치는걸 보고 주저없이 자신의 가장 강한 기술을 발했다. 기본 상태에서 써도 몸놀림이 잘 보이지 않을정도의 폭풍같은 공격, 토르멘타.
'아니... 이, 이건?!'
선장의 뇌리에 아까보다 더 커다랗고 불길한 예감이 스쳐지나갔다. 색으로 치자면 밤의 어둠이나 사신의 그림자처럼 새까만 무언가. 세상 무서운거 하나 없이 배들을 약탈하고 무법자로 살아온 그였지만 이건 도저히 견딜 수 없을만치 섬뜩했다. 차가운 얼음덩이가 등골을 타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시클론까지 발동한채 사용하는 토르멘타는 그 범위 안에 든다는 것 자체가 바로 죽음을 의미했다. 피할수도, 막을수도 없는 죽음의 난무가 펼쳐졌다.
"~?!"
입은 비명을 지르기 위해 한껏 벌렸지만 아무 소리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진석이 펼쳐낸 토르멘타가 순식간에 늑골 사이를 파고들어 허파를 찔러 짜부라트리고 폐동정맥을 끊었다. 목을 갈라 성대와 총경동맥, 갑상연골까지 단번에 베어냈으며, 쇄골 위를 찔러 하동맥을 자르고 뒤이어 횡경막과 명치, 간을 연달아 찔렀다. 구불구불한 란비언의 날은 복부로 깊숙히 파고 들어가 신장을 으깨고 사선으로 움직여 복대동맥과 하대정맥까지 끊어냈다. 의지나 기력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파멸적이고 끔찍한 검격이 글자 그대로 그의 전신을 도륙했다. 그야말로 푸줏간의 발골작업과 흡사한 일방적인 공격. 전신의 신경이나 혈관을 끊고 내장까지 깨부순 수초간의 난무는 엄청난 선혈을 흩뿌리며 끝이 났다. 그 모든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고도 아직 자리에 버티고 선 선장. 간신히 의식은 남아있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조차 없었다.
"끝."
휘리릭. 진석이 양손에 든 란비언과 흑철단검을 빙글빙글 휘둘러 피를 털어내고 칼집에 처척 꽂아넣자, 그것이 무슨 신호라도 된 양 선장의 거체가 뒤로 넘어가 쿠웅 큰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갑판위엔 그의 몸에서 빠져나온 대량의 핏물이 고여나갔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출혈량도 유달리 엄청났다. 자신들이 믿던 선장이 허무히 쓰러지자 몇 남지 않았던 해적들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을 해왔고, 붙잡혀 있던 선원들이 일어나 그들의 신병을 억류했다. 처음의 충돌부터 기껏 반시간 가량 진행된 짧은 싸움이었지만 여객선 쪽과 해적 양측 다 막대한 피해를 입은끝에 해적들의 패배로 싸움이 끝났다. 일백에 가깝던 해적들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부상자를 포함 고닥 겨우 스물너댓 남짓 살아남았고, 오십이 조금 안되던 선원들도 부상자를 포함 스물가량이 살아남았다. 르마쿠르 자매가 각각 해적들을 스물 정도씩을 쓰러트렸고 진석은 단신으로 무려 오십가량을 헤치웠다. 게다가 6연발 석궁 발사기를 지닌채 소형선을 지휘하던 부하와 선장까지. 이 자리에 진석이 없었다면 여객선은 해적들의 손에 떨어지고 르마쿠르 자매도 그들에게 끌려가 죽을때까지 능욕당했을것이다.
"휴우. 이게 뭔 고생이람..."
"저기."
한쪽 난간에 기대 한 숨 돌리는 진석에게 르마쿠르 자매가 다가왔다. 그녀들도 긴 싸움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뭔가 묻고 싶은게 있는 눈초리였다.
'으. 얘들이 있었지 참. 뭐... 도와줘서 고맙다라는 인사라도 하러 온건가?'
자신의 덕으로 해적들에게 끌려가 노리개가 될뻔한걸 구해줬으니 자연스레 그런게 아닌가 추측하는 진석. 하지만 언니인 지젤쪽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전혀 예상밖의 것이었다.
"당신. 혹시... 러셀이라는 남자를 알아요?"
"...엥?"
이, 이 녀석들 어떻게...? 설마 나라는걸 알아본건가? 진석이 의외에 질문에 어리둥절해하자, 아네트쪽이 우격다짐으로 들이대며 진석에게 따지듯 물었다.
"거기, 그래. 그 벨트에 꽂힌 그 검 말야. 그 크리스는 우리 언니가 만들고 러셀이라는 남자에게 판거란 말이야. 당신 대체 그걸 어디서 구한거야?"
으아아악! 이걸 생각 못했구나! 나는 바보냐? 응? 아무생각 없이 란비언을 들고 르마쿠르 자매앞에서 잘도 대활극을 펼쳤다. 그녀들의 눈이 옹이구멍도 아닌데 이런 독특한 검을 못알아볼리가 있겠는가? 진석은 말문이 막혀 아무말도 못하고 어버버 거렸다. 그 모습이 수상쩍다 여겨졌는지 아네트는 진석의 멱살을 쥐고 앞뒤로 흔들었다.
"뭐야! 그 남자랑 무슨 관계냔 말이야? 불어! 러셀의 행방을 불란말이야! 그럼 고작 재미보러 하디카 따위에 갈 필요는 없... 아야!"
지젤은 은인에게 무례하게 구는 아네트의 뒤통수를 때리고 포니테일을 잡아당겨 쭉 뒤로 밀어두고 한 발 나서며 진석앞에 섰다. 살짝 고개를 숙여 동생의 무례를 사과하곤 차분하게 묻는 지젤.
"진정해 이 바보야. 에... 죄송해요. 동생이 좀 많이 멍청이라서. 그보다 란비언... 아니, 그 크리스는 도대체 어떻게 구한거죠? 그건 분명 제가 만든 물건이 확실한데 분명 다른 사람에게 팔았었거든요."
"에... 또... 뭐, 뭐라고 해야 좋을까나..."
필사적으로 둘러댈말을 떠올리는 진석.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워 딱히 그럴듯한 거짓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뒤로 밀려났던 아네트가 지젤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쏙 내밀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언니. 이 여자... 러셀하고 뭔가 좀 닮은것 같지 않아? 분위기라던가 인상이 미묘하게 러셀을 떠올리는 부분이 있는것 같기도 하고... 머리칼이나 눈색도 똑같고."
"어라? 그러고보니..."
미심쩍다는 듯 함께 진석을 들여다보는 르마쿠르 자매. 아이고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건지 모르겠다. 대체 난 왜 또 이 변태자매랑 얽히는거냐. 진석은 잠깐의 고민끝에 못이기는척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쪽이 러셀과 무슨 관계인지는 몰라도 저는... 러셀의 누... 누, 누나... 되는 사람입니다."
깜짝 놀라는 르마쿠르 자매. 하지만 곧 아네트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진석의 품으로 와락 안겨들었다.
"시누이! 동생을 제게 주세요!"
"진정하라니깐!"
따악. 지젤의 손바닥이 재차 아네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렇지, 그나마 언니인 지젤쪽은 좀 정상인이었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아네트를 확 밀어낸 지젤이 다소곳한 미소를 지으며 진석의 두 손을 꼭 붙잡았다.
"음... 갑작스럽긴 하지만 동생분은 제가 반드시 행복하게 해드릴 자신 있으니까요. 러셀씨는 저런 얼간이 말고 부디 저에게."
야 이 또라이들아! 이, 이것들 진짜 괜히 구해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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