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75화 (75/155)

< --   - 7.   -- >         * 75화 *

사막에 자리잡은 신정국가 아라파. 대륙에서 가장 큰 환락가 하디카가 자리잡고 있는 수도, 시라즈. 어둠이 짙게 드리워진 늦은 밤.

"후우... 뭐 이걸로 이번일도 어떻게든 되겠군."

진석은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한 번 끊어져, 수리해서 팔에 걸고 있던 가는 사슬 팔찌엔 이제 남겨진 보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보다 얘도 참 웃긴 여자구만."

왕궁과 경비대, 근위대의 한 가운데라는 터무니 없는 장소에 자리잡은 알 유세프의 저택. 그 2층 가장 깊숙한 안쪽의 호화스런 침실. 원색의 알록달록한 융단과 동물 가죽으로 치장된 사치스런 방. 지금 진석의 앞엔 사지가 묶인채 정신을 잃고있는 아름다운 여성이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웨이브진 보랏빛 머리칼. 속이 은근히 비쳐보이는 하늘하늘한 실크 소재의 투피스. 그야말로 완숙하게 무르익은 20대 중반의 육체. 진석은 손을 뻗어 속옷도 입지 않은 그녀의 치마를 슬쩍 들춰보았다. 다리사이ㅂ로 음부가 들여다 보였지만 그녀의 성기는 평범한 모양이 아니었다. 음핵, 즉 클리토리스가 있어야 할 자리에 손가락 두 개를 붙여놓은것만한 남성의 음경같은 생식기가 하나 더 달려있었다.

"...하. 정말 말도 안돼. 어떻게 이런게 다 있지?"

알 유세프, 아니. 알 유세피나. 국왕 알 파지드의 '사촌 여동생'인 그녀는 사실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지닌 양성구유였던 것이다. 흔히 알려진 일본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후타나리라고 할까.

"하지만 그... 알주머니가 있는건 아니고. 막대기뿐인가? 흠. 그래도 요 아래쪽은 평범한 여자랑 별 다를바 없는데."

슬쩍 손을 뻗어 알 유세피나의 성기를 만져보는 진석. 처음보는 양성구유의 성기를 더듬는 진석의 머릿속에 문득 요 며칠간의 여정이 스쳐지나갔다.

"아라파에... 가지 말라구요?"

세이거스 왕국의 힐즈타운. 해적들에게 습격당했던 배는 승객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두번째 기항지인 힐즈타운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선원의 태반이 사망한 멜리사 호의 운항은 할 수 없이 여기서 중지. 남은 승객들은 다른 배에 타거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진석과 셀린, 르마쿠르 자매도 다함께 배에서 내려, 우선 터미널의 대합실에 들어간 참이었다. 그리고 셀린은 아라파 행을 포기하라는 진석의 갑작스런 말에 당황해했다.

"왜요? 저, 저랑 다니기 부담스러워 진건가요?"

"처음엔 어차피 남의 인생.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건 본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런일은 셀린씨가 계속 하기엔 힘들것 같아요. 그만둬요."

해적때문에 여객선이 습격을 받았을때도 진석이 아니었으면 셀린은 해적들에게 능욕당했을테고, 잘해봐야 끌려가 성노리개가 되거나 혹은 강간 당한 직후 살해당했으리라. 셀린은 동정에서긴 하지만 한 번 자신이 목숨을 구해줬던 상대다. 게다가 무슨 우연인지, 동행하게 되어 또 다시 한 번 목숨을 구해줬다.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라던데 자신과 짧은 기간이나마 동행한 상대가 기껏 구해준 목숨을 가지고 하디카에 몸이나 팔러 간다는건... 어째 보고 싶지 않았다. 진석의 말에 셀린은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무슨 자격으로... 에나씨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말을 해요? 그, 그래요! 나는 어차피 더러운 여자니까. 몸을 팔던 창녀니까. 그냥 너 같은거랑은 함께 다니기 싫다고 하면 될텐데!"

뒤에서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르마쿠르 자매 중, 아네트가 앞으로 나서며 뭐라고 한 마디 하려했지만 지젤이 앞을 막아서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석은 짧게 한숨을 쉬곤 셀린에게 다가서며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고향으로 가요. 가족이 있잖아요. 동생과 함께 새 삶을 살아요."

"하지만... 하지만...!"

울먹이는 셀린. 그녀의 등을 천천히 몇 번이고 토닥여준 진석은 자신의 가방에서 옷자락으로 둘둘 만 무엇을 꺼내 셀린의 가방에 집어넣고, 가방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자아 그만. 이제 돌아가요. 더 이상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아요. 며칠뿐이었지만 함께 해서 즐거웠어요."

진석은 아무말 못하는 셀린의 손에 강제로 가방을 쥐어주고, 르마쿠르 자매와 함께 대합실을 빠져나갔다. 고개를 떨군채 한참 손에 들린 가방만을 바라보던 셀린. 그렇게 그대로 몇 시간. 해가 떨어질때까지 자리에서 꼼짝않고 있던 그녀는 조심스레 가방안을 열어보았다. 자신을 용병이라고 칭했던 에나라는 아가씨가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남기고 간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니... 이, 이건..."

옷자락에 둘둘 말린 그것을 조심스레 꺼내보자니, 묵직한 금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나만으로도 물경 금화 천닢에 해당하는 가치를 가진 굉장한 재보. 셀린은 깜짝놀라 대합실의 출구쪽을 바라보았지만 밖은 이미 해가 기울어 어둑해져 있었다.

한편 대합실을 빠져나온 진석은 르마쿠르 자매와 함께 곧바로 아라파로 떠나는 수송선을 탔다. 아네트 쪽은 뭔가 불만스러운지 입을 삐죽대며 진석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언니. 그런 여자한테 그런 큰 돈을 줄것까진 없잖아요? 얘길 들어보니 뭐 알던 사이도 아니고 그냥 오다가다 동행한거라면서."

처음엔 진석을 시누이라고 부르던 아네트는 어째 호칭이 어색한지 은근슬쩍 자신을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웃기는건 지젤쪽도 어느새 똑같이 진석을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는 것. 물론 진석은 그 호칭이 엄청 어색하고 듣기 싫었다. 누가 언니냐고 이년들아! 하지만 정체를 드러낼 순 없었으니 그냥 그러려니 참아 넘기는 수 밖에 없었다. 진석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네트에게 대답했다.

"뭐 그렇긴 하지만... 그냥. 그냥 주고 싶었달까."

이제와선 다 부질없는 소리지만 셀린이 사람 좋게 헤헤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째서인지 에나가 떠올랐다. 물론 둘의 외모가 어딘가 닮거나 그런것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셀린의 미소를 보면 어딘가 모르게 에나가 웃는 모습이 겹쳐보였다. 세상 모든일에 일일이 이유가 필요하다면 자신의 이유는 그냥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기껏 천골드 짜리 금괴 하나. 그딴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셀린과 계속 동행한다면... 왠지 모르게 그녀도 에나때처럼 뭔가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진석은 셀린을 세이거스에서 떨구기로 마음먹었다.

"언니도 부잔가 보네요. 하긴, 러셀씨도 돈이 많아보였으니까."

중얼거리는 아네트. 옆에 있던 지젤도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여객선 멜리사 호에서 합류한 르마쿠르 자매는 진석이 자신을 러셀의 누나라고 밝히자 무조건 이쪽의 뒤를 따르겠다고 선언했다. 진석의 행선지나 목적따윈 전혀 관계없이, 오로지 러셀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이쪽에 덜컥 달라붙은 것이었다. 뭐 이런 민폐가 다 있나 모르겠다. 처음엔 이 변태자매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진석이었지만, 곧 머릿속에 좋은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이 자매도 실력이 아주 없는 편은 아니니까... 기왕 이렇게 된거 같이 무희로 위장시켜 저택에 잠입하는거야. 셋이 한 번에 들어간다면 일이 훨씬 수월해 질 수 있겠지!'

미리안이 일러주길, 알 유세프가 자주 들르는 하디카의 한 가게의 업주가 바로 자신의 옛 수하, '원로' 중 한 명 이라고 했다. 그에게 찾아가 무희로 위장하고 알 유세프가 찾아와 선택을 해주길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기왕 적지에 잠입하는거, 자신 혼자뿐만 아니라 옆에서 도움을 줄 이가 있으면 일이 수월해질 확률이 높았다. 이 자매들은 머릿속이 푹 썩어서 그렇지 입만 다물고 있으면 둘 다 꽤 매력적인 외모인건 사실이었으니. 셋이 함께 무희로 위장하고 기다릴 요량이었다. 그러나 당연히 셋이 함께 알 유세프의 선택을 받지 못할 확률도 있었다. 진석 혼자만 선택 받는다거나, 혹은 셋 중 둘만 선택을 받을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땐 그때 나름대로 그녀들을 써먹을 방법이 있었다. 진석은 가방에서 금괴 두 개를 더 꺼내어 르마쿠르 자매들에게 각기 하나씩 나눠주었다.

"엣? 에? 이, 이거 뭐에요 언니? 서, 설마!"

아연실색하는 아네트. 아직 아무말도 안꺼냈는데 뭐야 뭐. 진석은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응?"

"내 동생은 못 준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뭐 이런 의미로..."

아 그거 좋네. 진짜 그렇게 말할까 하는데 아네트는 부들부들 떠는 손길로 이를 악문채 울상이 되어 금괴를 도로 내밀어왔다.

"크윽... 도, 돈도 좋지만... 역시 러셀씨 쪽이 더 좋은걸! 이런건 받을 수 없어요!"

얼마야. 얼마면 떨어져 줄건데.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젤쪽은 아네트와 달리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금괴를 짐속에 챙겨넣고 아네트의 뒤통수를 툭 쳤다.

"지금 이 상황에서 에나 언니가 뜬금없이 그런 이야기를 꺼낼리 없잖아. 이렇게 큰 돈을 선뜻 건네주는걸 보면... 역시, 뭔가 부탁할 일이라도 있는건가요?"

과연, 언니 지젤쪽은 그나마 머리가 돈다. 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는... 아라파에 가서 굉장히 위험한 일을 할겁니다. 어떤 일인지 지금의 둘에게 정확히 밝힐수는 없지만 승낙한다면 그 금괴를 받고 내 지시를 따라주면 돼요. 거절한다면... 마찬가지로 그 금괴를 가져도 좋아요. 대신 지금부터 나에게 접근하지도 말고 일체 말을 걸지도 말아줬으면 싶네요."

서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르마쿠르 자매. 몇 초간 서로를 바라보던 자매는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둘 다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러셀씨의 누님 일인데,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발벗고 도와야죠."

"그럼요, 언제고 한 가족이 될텐데. 히히- 게다가 이렇게 큰 돈까지 받고 모른척 할 순 없는걸. 뭐든 시켜만 주세요!"

하하, 욘석들 그것 참 믿음직... 하겠냐! 자매들의 눈동자가 아주 욕망에 활활 불타는게 빤히 들여다 보엿다. 딱히 독심술같은걸 할 줄 아는건 아니지만 마음의 소리가 다 들리는 것 같았다. 러셀씨의 누님에게 잘 보일 기회야! 잘만하면 남자와 돈 양쪽을 한 번에 손에 넣을 수 있어! 뭐 이딴 종류의 흑심이 귓가에 울리는 것 같달까. 진석은 쓴웃음을 지으며 두 자매에게 자신의 계획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송선이라 여객선보다 쾌적하지 못하다는 것만 빼면 아라파까지의 여정은 별 탈 없었다. 나흘에 걸쳐 수송선을 타고 도착한 시라즈는 도시의 절반가량이 사막에 걸쳐 있음에도 데오그라즈 이상으로 크고 화려한 항구도시였다. 배에서 내린 진석은 미리안이 알려준 주소대로 하디카의 업소를 찾아갔다. 휘파람새라는 이름의 가게는 정말 평범한 창관 따위는 명함도 못 내밀정도로 엄청나게 크고 호화스런 업소였다. 데오그라즈 선셋대로의 고급 호텔들 이상으로 화려하니 정말 말 다했다. 안에 상주하는 인원만 해도 가볍게 백단위가 넘어가는듯 했다. 전서구를 통해 미리안이 연락을 전해뒀던터라 그런지, 진석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잠시 기다리자 자신을 미겔슨이라 밝힌 반백의 노인이 금방 뛰어나와 진석을 맞이했다. 가게안에 여장을 푼 진석은 미겔슨에게 계획을 설명해 주었고, 계획을 이해한 미겔슨은 가게의 무희들을 불러 르마쿠르 자매와 함께 진석이 무희로 위장하는것을 도왔다. 진석은 미겔슨에게 부탁해 끊어진 성별 전환의 팔찌를 수리해두는것도 잊지않았다.

그리고 이틀 뒤, 늦은 저녁. 오늘도 그냥 허탕치는건가 싶을때쯤 드디어 가게에 알 유세프가 찾아왔다. 무희들은 그의 방문에 춤과 노래를 부르고 오색의 꽃잎을 뿌리며, 이 가게의 가장 큰 손님이자 왕족인 알 유세프를 성심을 다해 맞이했다. 미겔슨 역시 허리가 부러져라 굽실거리며 바닥에 절을 하고 그의 발등에 입을 맞추며 왕족의 일원에게 최대한의 예를 표했다. 진석과 르마쿠르 자매는 각기 장막을 드리워 둔 안쪽에서 얌전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좋은 아이들이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수십명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선 알 유세프의 첫 인상은 그야말로 아랍왕자. 선이 굵은 인상에 깔끔하게 다듬은 수염과 진한 눈썹. 정말 와 소리가 나올정도의 대단한 미남이었다. 비단 겸포에는 금실 자수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고, 토파즈를 깎아만든 보석단추가 달린 화려한 의복을 걸친 그의 모습은 분명 당당하고도 위엄이 있었다. 저런 미남이 그렇게 미녀를 밝힌단 말이지? 하여튼 있는 놈이 더하는구만. 진석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번에 새로 세 명이 들어왔습니다. 우선 둘은 델 그로도의 미인 자매로... 제법 경험이 있는 몸이지만 그만큼 만족스러운 봉사를 해드릴 수 있을겁니다. 어떠한 요구에도 응할 수 있도록 교육이 잘 되어있습니다."

팔짱을 끼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알 유세프는 고개를 저었다.

"델 그로도라... 이종족 따윈 필요없다. 다른쪽은?"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지만 역시 르마쿠르 자매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듯한 알 유세프. 상관없었다. 그녀들은 자신이 알 유세프와 함께 떠나고 나면 도시 동문 밖에 낙타를 대기시켜놓고 도주의 채비를 하리라. 저택의 잠입까진 무사히 할 수 있어도, 벗어날때는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다. 그러니 자신만 저택에 가게 될 경우엔 그렇게 도주준비를 하라고 일러두었다. 배가 아닌 육로를 택한건 역시 추격의 위험때문이었다. 항해 기술이 없으니 직접 배를 몰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면 일반 수송선이나 여객선을 타야하는데 그런 일반선은 전투용 쾌속선에 비해 느렸다. 배로 도주하려다 자칫 바다 한가운데서 군선에 따라잡힐 가능성도 예상해둬야 했다. 미겔슨은 송구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바닥에 닿을듯 꾸벅거렸다.

"이쪽은 세이거스 왕국의 명문가 출신이나 가문이 몰락하며 빚 때문에 팔려온 아이입니다. 이 늙은놈이 감히 말씀드리건데, 알 유세프님의 눈에 찰만한 미녀일겁니다. 그리고 아직 그쪽의 경험은 전혀 없는 순백의 처녀입니다."

"보여주게."

"예. 이봐, 장막을 거둬라."

미겔슨의 명령에 건장한 하인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진석이 있는 방의 장막을 거뒀고, 알 유세프는 그쪽으로 성큼 다가서며 진석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얌전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채 기다리던 진석은 미겔슨이 일러준대로 바닥에 이마를 대어 예를 표한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알 유세프를 올려다 보았다. 알 유세프는 무감정한 눈으로 한참이나 진석을 내려다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데려가겠다. 이 아이의 몸 값은 얼마지?"

"매번 감사합니다. 이 아이의 빚은 총 5천 골드로..."

알 유세프에게 주절주절 진석의 몸값을 설명하는 미겔슨. 물론 진석에게 빚같은게 있을리가,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미녀의 신병을 인수하는 거라고 해도 5천골드는 정말 쓸데없을 정도로 큰 거금이었다. 거의 블랙옥션에서 팔리는 노예의 몸값 수준이 아닌가? 어이 영감, 너무 세게 부른거 아냐? 비싸다고 인수를 거부하려면 어쩌려고? 하지만 알 유세프는 액수 따위는 눈꼽만치도 개의치 않는지 수행원들을 향해 딱 손가락을 튕겨보였고 곧바로 금괴 다섯개가 든 상자가 미겔슨의 앞에 날라져왔다.

"아이고, 이거 정말로 감사합니다. 미천한 저희들은 늘 알 유세프님의 온정에 기대어 살고 있습니다."

"됐다. 그만 물러가게. 그리고 너, 이제 넌 나의 소유물이다. 가까이 와서 이름을 말해라."

비굴할 정도로 굽실거리는 미겔슨을 손짓으로 물리고 진석을 향해 그렇게 명령하는 알 유세프. 이제부터 미겔슨은 시라즈에 있는 자신의 모든 개인 자산을 정리하고 현금화하는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오늘이 지나기 전에 이 업소도 명목상이나마 다른 이에게 넘겨둘 것이다. 만약 진석 자신이 저택에서 알 유세프를 해한채 대지의 눈을 강탈해 도망간 사실이 알려지면, 그 원흉인 무희를 판매한 휘파람새와 주인인 미겔슨이 조사받을것은 당연지사. 그러니 지금부터 미겔슨은 이 도시에서 사라져야만 했다. 뒷일은 맡긴다는 눈빛을 보내며 가게 안쪽으로 사라지는 미겔슨. 진석은 그의 뒷모습을 확인 한 후 고개를 숙인채 알 유세프에게 다가가 정중히 대답했다.

"...에나 필즈라고 합니다."

"흠, 알았다. 그럼 가자."

그렇게 진석은 혼자 알 유세프에게 이끌려 가마를 탄채 그의 저택으로 향했다. 이 가마도 보통 가마가 아닌게, 무려 삼십여명의 장정이 드는 거대한 대가마였다. 겨우 두 사람이 타기엔 과할 정도로 컸다. 가마의 앞과 뒤에선 샴시르로 무장한 칠십여명의 기병들이 매섭게 눈을 부라리며 알 유세프를 호위했고, 그 뒤엔 스무명의 시종들이 뒤를 따랐다. 길을 지나던 일반 시민들은 왕족의 행차에 허리를 조아리며 가마가 지나갈때까지 길가로 물러서 있었다.

'왕족 나리의 가벼운 행차에 수행인력이 백명이 훌쩍 넘어가니... 이 나라도 참 어지간 하구만.'

그런데 이상한 건 정작 자신을 구입한 알 유세프는 이쪽에 전혀 관심이 없어보인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그쪽 용도로 쓰려고 산 따끈따끈한 신상 무희 아닌가? 솔직히 가슴이나 허벅지를 더듬어 오는 정도는 각오해두고 있었다. 어차피 저택에 가면 곧바로 머리를 뽑아 놓을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알 유세프는 이쪽으론 눈길도 한 번 주지 않은채 묵묵부답이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을 구입하는것 까지가 목적이지, 그외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가마는 별 일 없이 거대한 대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높은 외벽이 둘러진 대저택 내부엔 인공 연못과 퍼걸러, 꽃밭들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사막이라는걸 실감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저택은 하얀석벽으로 넓직하니 2층으로 지어져 있었다. 진석은 알 유세프를 따라 저택으로 들어갔는데, 내부 역시 대리석 마감으로 호사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알 유세프는 수행원도 1층에 다 떼어놓고 진석만을 대동한채 2층 안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침실로 보이는 커다란 방문 앞에서 멈춰섰다.

'으으... 이제 저 문만 열고 들어가면 침실인건가. 오자마자 급하기도 하구만. 하긴, 어차피 해야되는일. 얼른 들어가자. 들어가서 둘만 남는순간 넌 끝이다.'

하지만 알 유세프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똑똑하고 문을 두드려 노크를 했다. 어라? 뭐지? 왜 자기 집에서 노크 따위를? 하고 생각하는 찰나 안쪽에서 희미하게 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나지르인가?"

"예, 알 유세피나님. 무희를 데려왔습니다. 이름은 에나 필즈. 세이거스의 몰락한 명문가 여식으로 미겔슨이 순결한 처녀라고 보증했습니다."

깜짝 놀라는 진석. 아니 잠깐... 그럼 이 아랍왕자 같은놈이... 알 유세프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리고 알 유세피나라니? 그건 대체 누구인가? 진석이 당황하는 사이 문이 열렸고 안에선 무희차림을 한 이십여명의 미녀 무희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정말 하나같이 눈이 번쩍 떠질 아름다운 여성들이었는데, 그런 미녀들이 주요부위만 가린 무희복을 입고 단체로 몰려 있으니 흡사 여기가 천국이 아닐까 싶은 장관이었다.

"데려와."

방 가장 안쪽의 호사스러운 침대. 거의 베이머스 호텔에서 봤던 침대와 비슷할 정도로 넓찍한 침대 한가운데에 누워있던 누군가가 명령하자 무희들이 우르르 몰려와 진석을 이끌고 방 안으로 데려갔다. 아랍왕자, 아니 나지르도 그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섰다.

"흐음. 호오... 과연. 모처럼 보는 아름다운 아이구나. 특히 눈과 머리색이 마음에 들어. 마치 흑요석 같구나."

침대에 누워있던 것은 웨이브 진 보랏빛 머리칼의 대단한 미녀로, 속이 반쯤 비쳐보이는 얇은 실크옷을 입고 있었다. 눈물점이 있는데다 눈매가 돋보이는 스모키 스타일의 화장을 한게 어째 퇴폐미가 느껴진달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무희들의 손에 끌려들어온 진석을 바라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나라고 했었지? 자, 오늘밤은 이 아이와 동침하겠다. 잘 알다시피 오늘밤은 무슨일이 있더라도 방해하지 말도록. 그럼 다들 나가봐."

그녀가 손뼉을 짝 치며 명령하자 무희들을 비롯, 나지르까지 공손히 고개를 숙여보이곤 방 밖으로 썰물같이 빠져나갔다. 잠깐 사이 덩그러니 둘만 남겨진 실내. 그녀는 후후 웃으며 진석을 향해 다가섰다.

"귀엽구나... 정말 귀여워. 어쩜 이렇게..."

진석의 주위를 몇번이나 빙글빙글 돌며 위아래로 훑어보다, 이내 진석의 뒤에 서서 양 어깨를 꾸욱 감싸쥐는 그녀.

"먹음직스러울까."

귓가에 속삭이는 여자의 목소리가 무슨 뱀의 혓바닥처럼 진석의 귀로 스며들었다. 뭐, 뭐냐고 이 여자는! 흡사 르마쿠르 자매를 처음 봤을때와 비슷한 종류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잠시 진석의 몸 여기저기를 더듬던 그녀는 방 한쪽에 꾸려진 미니바로 가더니 테이블 안쪽에서 이것 저것을 꺼내 올려놓기 시작했다.

"후후... 놀랬겠지? 뭐 처음오는 아이들은 다들 똑같지. 방금 전의 나지르가 알 유세프인줄 생각한단 말이야."

그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체 댁은 뉘슈? 아까 나지르가 뭐라고 했더라. 알... 유세피나? 진석의 의문에 답하듯 그녀는 크리스탈 글라스를 하나 꺼내들며 말했다.

"내 풀 네임은 알 유세피나 누다르 아라파 폴라. 그래, 알 유세프라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단다. 그런 남자따윈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그건 어디까지나 내 정체를 감추기 위한 가공의 인물일뿐. 어디까지나 내 충실한 집사인 나지르가 연기하는 가짜지."

엥? 어째서? 쓸데 없이 그런짓을 해야할 이유가 대체? 알 유세피나는 진석을 향해 설명하는 동시에 글라스 안에 뭔가를 섞기 시작했다. 뭔가 싶어 자세히 들여다 보자니, 그녀가 섞고있는 것들은 놀랍게도 진석에겐 익숙한 것들이었다.

'...뭐야 저거. 미약이잖아?'

멀리서 색만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진석에게 있어선 익숙한 약의 조합이었다. 하위 흥분제 페르모티오, 상위 흥분제 콤모티오, 그리고 적당한 양의 술. 이 세가지가 섞이면 상대를 발정나게 만드는 강렬한 혼합물이 된다. 그랬다. 알 유세피나는 다름아닌 콤모티오 칵테일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진석이 콤모티오 칵테일을 눈치챘다는 사실을 모르는 알 유세피나는 스터 스틱으로 글라스의 내용물을 잘 저으며 계속 말했다.

"어째서 그런 번거로운 가장을 해야했을까? 그건 바로..."

눈웃음을 치더니 이쪽을 돌아보곤 자신의 실크 치맛자락을 위로 스윽 걷어보이는 알 유세피나. 그런데 그 자리엔 어째서인지 남성의 것으로 보이는 성기의 일부가 달려있었다. 정말 잠깐 걷어보이고 내렸을 뿐이지만 절대로 잘못본게 아니었다. 뭔가가 달려있었다. 분명 알 유세피나의 몸은 평범한 여성의 신체가 아니었다.

'바, 방금... 내가 잘못본거 아니지?'

콤모티오 칵테일을 완성한 알 유세피나는 손에 글라스를 든채 황당해하는 진석을 향해 다가왔다.

"봤지? 훗, 그래. 이것의 나의 비밀. 나는...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둘 다 가진채 태어났단다. 세간엔 결코 밝힐 수 없는 그런 흉측한 몸뚱아리지. 천한 신분으로 태어났다면 돈푼이나 벌기위해 다리를 벌리며 저잣거리의 구경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다행히도 왕족. 내 부모와 형제 자매조차 날 멸시했지만 상냥한 사촌 오라버니는 날 위해 위장신분을 마련하고 이런 훌륭한 거처까지 마련해주었지. 나지르라는 충성스러운 대행까지 딸려서 말이야."

"......"

진석의 코앞까지 다가선 알 유세피나는 미소를 지으며 잔을 진석에게 내밀었다.

"그렇다고 너에게 딱히 해를 끼치려는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렴. 그저 나는... 남자를 사랑할 수 없는 몸이거든. 대신 너처럼 아름답고 귀여운 아이들을 가까이 하는것을 좋아한단다. 자, 이걸 마시렴. 이것만 마신다면 네겐 일생의 부귀영화를 약속하마. 사막의 모래와 바람에 걸고 약속하지."

겁을 먹은듯 딱딱히 굳은 표정. 잔을 받아든 손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알 유세피나로선 자주봐오던 모습이었다. 그 어떤 무희라도 알 유세피나의 정체를 깨닫곤 처음엔 이런 반응을 보이곤 했다. 하지만 이 금단의 칵테일을 마신다면 달라진다. 상대를 순식간에 육욕의 포로로 타락시키는 이 미약. 이것만 마신다면 남녀의 성기가 뒤섞인 자신의 추악한 육체조차 절실히 갈구하는 충실한 노예가 될것이다. 약에 취한 육체를 하룻밤새 진득히 귀여워해 주고나면, 그 어떤 무희라도 손쉽게 길들여졌다. 양성구유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제대로 된 애정을 받고 자라지 못한 알 유세피나는 오래전부터 이런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워왔다. 부모와 형제자매들에게 조차 정서적 학대를 당해온 그녀가 제대로 상대 할 수 있는 남자는 국왕이자 사촌 오빠인 알 파지드,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붙여준 충실한 집사 나지르. 오직 이 둘 뿐이었다.

"자... 어서 마시렴. 어서."

잔을 받아든 무희에게 달뜬 재촉의 말을 건네는 알 유세피나. 하지만 다음순간, 무희의 눈빛이 번득였다. 뭐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의 손이 알 유세피나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경동맥을 조였다. 놀라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을 움켜쥔 손은 조였다 놨다를 반복하며 완급을 조절했다. 숨을 내뱉으려는 순간 절묘히 목을 파고드는 악력때문에 도움의 요청은 커녕 컥컥거리며 제대로 된 호흡을 하기도 힘들었다. 알 유세피나는 반항은 커녕 겨우 십수초만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경추신경을 쳐서 기절시키려다 자칫 힘조절이 과하면 목뼈가 나가버리니... 역시 이게 제일이지. 이것도 어째 할수록 느는것 같단 말이야."

진석은 의식을 잃은 알 유세피나를 한 팔에 안아든채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알 유세프... 아니, 알 유세피나가 여자였다는 건 의외의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계획에 지장이 생길일은 없었다. 수확의 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야심한 시각에 올립니다. 주말은 좋군요.

그나저나 갑자기 주인공의 성별이 뒤바뀌어 읽는데 불편하셨던 분들에겐 늦었지만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주말내에 TS파트를 빨리 끝내려고 달렸습니다. 하지만 이제 진짜 비축분이고 뭐고 없군요. 으으..

원래는 좀 더 넣을까 생각하던 몇장면을 잘라내고 내용 전개를 최대한 빠르게 빼버렸습니다. 이 파트가 끝났으니 말씀드리는거지만 주인공이 르마쿠르 자매와 다시 한 번 얽히고, 정체를 숨긴채 은둔생활을 해오던 후타나으리 알 유세피나에게 접근하는 전개를 위해 부득불 주인공의 성별을 바꾸는 내용을 구상하고 또 썼습니다.

물론 셀린은 스토리와는 별 관계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서비스 신 넣으려고 등장시켰으니 중간에 대충 퇴장. 빠른 컷이 아니었으면 주인공+셀린+르마쿠르 자매 4인 가위치ㄱ.. 를 써보려고 했었는데.. 어 이건 관둬서 다행일지도 모르겠군요. 아무튼 시라즈에서의 초반 전개도 엄청 축약되어 알 유세피나가 첫대면부터 친절한 설명충이 된 것에도 양해를 구합니다. 주절주절 변명이 길었는데 건너뛰지 않고 읽으신 분들이라면 그래도 뜬금없이 진행된 TS전개의 이유를 최소한이라도 납득해주셨을거라 믿습니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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