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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79화 (79/155)

< --   - 7.   -- >         * 79화 *

진석은 그 이후로도 하디카 외곽을 쭉 돌아다니며 마찬가지로 비슷한 행패를 많이 부리고 다녔다. 여기저기 잔뜩 쑤셔놨으니 내일이면 이쪽 뒷골목 밥 먹는 놈들 사이엔 소문이 짜하게 퍼져있을거다. 사카르를 사칭하는 남자가 자신의 실력을 팔겠답시고 여러 조직의 영업장을 돌며 깽판을 쳤다는 소문이. 진석은 해가 떨어질때쯤 되어 하디카를 벗어나 룰루랄라 알 유세피나의 저택으로 향했다.

'뭐 미행은 없는것 같고.'

혹시나 미행이 붙어 자신이 알 유세피나의 저택으로 가는것을 보면 곤란해진다. 그래서 중간에 거리를 빙빙 돌며 미행이 붙었나 아닌가 신중하게 확인해봤다. 이전 레오노르 공주를 데리고 페레나에서 갈론으로 향할때, 엘리야에게 미행에 대해 몇가지 들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미행 확인법이었다. 머릿속에 그녀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에헴. 미행 확인법은 별거 없어요. 일단 자기가 잘 아는 지역으로 간 다음, 같은 구간을 두세번쯤 빙빙 도세요."

"같은데서 돌라고? 아 나도 알아 그런거. 영화에서... 아, 아니. 아무튼 들은적 있어."

"그래요? 음. 이런거 아는 사람 많으면 밥벌이에 지장이 생기는데... 아무튼 몇 번쯤 일정 구간을 반복해 돌다가, 잘 눈에 띄지 않는 모퉁이 같은데서 잠시 숨어 기다리세요. 그리곤 방금까지 돌던것과는 정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세요."

"그러면 뭐 상대가 짜잔 하고 정체를 드러내기라도 해?"

"어휴 정말! 그럴리가 없잖아요. 거꾸로 움직이면서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을 체크해봐요. 자신이 숨어있다 갑자기 나타나서 반대방향으로 움직일때 의미없이 제자리에 멈춰서거나 슬쩍 발길을 이쪽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미행이에요. 이걸 두세번쯤 반복하면 기본적인 미행자는 거를 수 있죠. 물론 미행하는쪽이 바보가 아니라면, 맨 처음 같은곳을 빙빙돌때 상대가 미행을 눈치챘다고 생각해 떨어져 나가겠지만요."

"떨어져 나간다고?"

"네. 상대가 의미없이 같은 장소를 빙빙 도는건 미행을 체크하려는 행동인데 굳이 들킬 위험을 감수하고 '네 저는 지금 미행을 하고 있습니다' 하고 뒤를 따라다닐 필요가 있겠어요? 차라리 깔끔히 포기해서 방심하게 만든다음 다음을 노리는게 낫지. 미행은 하는쪽이 어려운거지 당하는쪽은 조금만 주의하면 의외로 떨궈내기 쉬워요. 하지만 그런식으로 체크를 한다고 해도 들키지 않고 뒤를 쫓는 방법은 따로 있... 아, 아니! 이건 못들은걸로 해줘요. 영업비밀이라서."

결국 엘리야는 그 영업비밀인가 뭔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땐 진석도 또 다시 미행같은걸 당할일이 생기겠냐 싶어 그냥 넘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억지를 써서라도 들어뒀을테지만... 어쨌거나 진석은 엘리야가 일러준대로 거리를 몇번이고 돌며 지나가는 행인들의 모습을 체크했고, 확실히 미행은 없는것 같기에 안심하고 알 유세피나의 저택쪽으로 향했다. 저택으로 가는 중간중간 경비대의 병사들이나 근위대가 진석을 멈춰세우고 검문을 시도했지만, 알 유세피나에게 받아둔 명패를 제시하자 경례를 해오며 바로 통과시켜줬다. 검은색 술이 달린 이 작은 금속패가 무슨무슨 관리의 표식이라던가 뭐라던가. 좌우지간 프리패스였다. 저택으로 돌아가 2층 알 유세피나의 침실로 들어가니 이미 르마쿠르 자매도 돌아와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정작 저택의 주인인 알 유세피나는 방안에 보이지 않았다.

"러세에에엘-"

아네트는 방안으로 들어선 진석에게 양 팔을 벌리고 달려들어 또 다시 태클을 먹이려고 들었다. 하지만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겠냐? 진석은 그녀를 스윽 지나쳐 피하곤 흑단목 테이블로 다가가 앉았다.

"히잉. 언니, 어쩜좋아. 러셀의 사랑이 식었어!"

"야, 처음부터 사랑한적도 없거든? 그보다 어떻게 됐어. 뭐 좀 알아봤어?"

지젤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다지. 그냥 흔한 소문뿐이던데."

"인원수나 수법에 대한 이야기는?"

"약 십여명이라던가? 하나같이 대단한 실력자에 복면을 쓴데다가 수신호로 서로 의사소통을 해서 목소리도 모른다고 하더라고. 기본적으로는 다 죽이는게 그들의 방침인듯 하지만 여자와 아이만큼은 살려준다던가."

"도적놈들 주제에 뭔 어울리지 않는 흉내는... 어차피 생존자들은 평생 지들 원망하면서 살텐데."

"내말이. 아무튼 아네트랑 하루종일 여기저기 쑤시고 다녀봤지만 알아낸건 그게 다야. 그냥 아무데서나 들을 수 있는 흔한 얘기 뿐이었어. 미안하지만 소득 제로."

그렇게 말하곤 두 손을 들어보이는 지젤. 진석은 흐음 하고 턱을 괴며 생각에 잠기려 했는데, 등뒤에서 아네트가 그를 포옥 끌어 안았다. 진석의 옆 얼굴에 자신의 볼을 비비며 아양을 떠는 아네트.

"으응- 아 좋아. 남자 냄새 난다."

나, 남자 냄새는 또 뭐냐? 땀냄새 같은거?

"저기 러셀. 하루종일 열심히 일했으니까... 하자. 응? 이, 이래뵈도 러셀이랑 한 이후엔 한 번도 다른 남자하고 안했다구? 나 열심히 참았으니깐. 응?"

"참긴 뭘 참아. 기껏 번 돈 들고 하디카로 놀러 오는 주제에 뻔뻔한 소리를 잘도 하고 있네."

"아이참~ 이게 다 하늘의 계시라니깐? 러셀하고 나를 이어주려는 하늘의 도움이었던 거야! 봐, 결국 하디카에 안가고도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깐."

"그래, 아네트의 말이 맞아. 소득은 없었지만 지시한대로 한 눈 팔지 않고 정보를 모으러 돌아다녔고, 조금 정도는 포상을 줘야 우리도 열심히 일 할 의욕이 나지 않겠어?"

뒤에서 진석을 끌어안은 아네트의 팔에 힘이들어가고, 앞에선 지젤이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온다. 아, 아니 이것들이 방심하자마자 또! 진석과 똑바로 마주보는 자세로 무릎위에 걸터앉는 지젤. 양손으로 진석의 얼굴을 감싸쥐더니 서서히 입술을 가까이 대어왔다.

"아 언니 치사해! 나도 하고 싶은데!"

"후후. 저번에 가게에선 선수를 양보해줬으니 오늘은 내가 먼저야."

"아오 야. 니들 이거 안놔? 자꾸 이러면 나도... 흐읍."

진석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키스를 시도하는 지젤. 진석은 고개를 틀어 거부하려 했지만 양손으로 얼굴을 잡고 있으니 쉽지 않았다.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알 유세피나가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 그런 상한거 드시면 탈나는데."

그렇게 말하며 이쪽으로 척척 걸어오는 알 유세피나. 아네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눈치도 없는 아줌마 같으니. 늙었으면 눈치라도 늘어야 하는거 아니야? 빠져주시지?"

"여긴 러셀님과 나의 저택인데? 내가 지금 밖에 한 마디만 하면 경비대랑 근위대 수백명이 금세 몰려올거라는건 알고 있어?"

"윽. 비... 비겁하다! 외부의 물리적 수단을 끌고 들어오다니!"

"억울하면 너희들도 왕족으로 태어나지 그랬어? 자, 비켜."

착 달라붙어 있던 지젤과 아네트를 가볍게 밀어내고 진석의 옆자리에 앉는 알 유세피나. 이런 변태 자매를 간단히 물리다니, 대단한데? 하고 생각하는 찰나 알 유세피나가 진석에게 상체를 기울이며 키스를 해왔다.

"음. 하아. 소독이에요. 더러운 오물을 러셀님의 입속에 남겨둘 순 없지요. 제가 얼마든지 닦아드릴테니까."

"으아 언니! 저 여자 진짜 짜증나!"

"부, 분하지만... 상대의 홈그라운드니. 치이잇."

"후후. 하찮은 자들의 발악이 귓가에 달콤하게 울리는걸?"

"끄아아! 왕족따위 혁명해야돼! 신분제 철폐에엣!"

정말 잘 논다. 셋이 하루종일 이러고 투닥거리는거 구경만 해도 재밌겠다. 자리깔아두면 구경값도 받을 수 있겠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제 맘대로 굴게 냅둘 순 없지. 진석은 테이블을 탕 내리치며 말했다.

"거기까지. 다들 그만해. 장난은 나중에 하라고. 그보다 알 유세피나."

"네. 그런데 저기... 그렇게 딱딱하게 이름을 다 불러주실게 아니라 그냥 유나나 피나라고 불러주셔도 되는데..."

"웩. 아줌마가 귀여운 척 한다."

말 없이 아네트를 쏘아보는 진석. 아네트는 히잉 하고 울상을 지으며 지젤의 뒤로 숨었다.

"에... 좌우지간 호칭문제는 나중에 얘기하고. 저택에 남아있었을테니 나지르를 통해 뭐 좀 알아낸거 있어?"

"아. 그건... 역시 별거 없다고 하네요. 워낙 꼬리를 잡기 어려운 놈들이라 좀체 ..."

알 유세피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알 파지드를 실각시키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나지르에게 반기를 들만한, 혹은 실각을 시킬때 도움을 줄만한 이들에 대해 정보를 모으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진석은 르마쿠르 자매도 별 정보를 모아오지 못했으니 나지르 역시 별 소득이 없었겠거니 지레짐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그럴거라 생각했어. 아무튼 오늘 내가 했던 일에 대해서 말인데..."

진석은 세명의 여자에게 자신이 사카르를 찾기 위해 생각한 방법, 자신이 사카르를 사칭하여 놈들을 꾀어 내겠다는 계획과 그를 위한 준비로 오늘 하디카 외곽에서 한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듣곤 대번에 아연실색하며 진석의 손을 맞잡는 알 유세피나.

"어째서 그렇게 무리한 일을! 죄송해요. 이게 다 제가 모자라서... 그깟 도적들을 찾아내지 못하는 바람에..."

"러셀 실력이라면 가게에서도 봤었고 여객선에서 해적들을 상대하는걸 봤었지만 역시 혼자서 그런다는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 차라리 내일부턴 같이 다니는건 어때?"

지젤은 동행을 제안했다. 하지만 고개를 저어 거부를 표시하는 진석.

"아니. 이미 혼자 여기저기 잔뜩 들쑤시고 다녔는데 이제와서 일행이 늘어나면 더 이상하게 꼬일지도 몰라. 그리고 사카르 놈들도 내가 혼자인쪽이 더 접근하기 쉽겠지. 나는 내일부턴 하디카 위주로 돌아다닐테니까 그 동안 둘은..."

어... 이거 뭔가 시켜두긴 해야겠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지시할만한 일이 없다. 아니지. 이 변태 자매는 놀려두면 뭔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진석은 알 유세피나와 르마쿠르 자매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음. 혹시 내 유인책이 안 먹힐지도 모르니까 차선책도 병행해서 준비해두자고."

"차선책?"

고개를 갸웃하는 지젤. 진석은 손가락을 딱 딱 튕겨가며 설명했다.

"그래. 내가 이걸로 놈들을 끌어내지 못하면 비싼 화물을 수송하는것처럼 이야기를 흘려 놈들이 도시 밖에서 습격해오도록 꾸며볼거야. 그러니 고가의 화물을 옮기는 상단으로 위장할만한 재료들을 모아둬. 웨건이라거나 가짜 화물이라거나 수송용 금고나 뭐 적당한것들. 알 유세피나도 같이 거들어."

"네?"

마지막 말에 진석을 돌아보는 알 유세피나. 진석은 태연히 말을 이어갔다.

"너희들 셋이 다 날 돕겠다고 했잖아? 투닥대는건 그만두고 함께 협력해. 일단은 팀워크야. 말해두지만 이 정도 일도 함께 하지 못하고 불화를 일으키는 상대하곤 나도 사귀어주고 싶은 생각따위 없으니까."

라기보다 셋 다 사귈 생각 읎어.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둬야 겉으로나마 말을 좀 듣겠지, 하고 생각하는 진석. 세 여자는 서로 미묘한 시선을 주고 받았지만 진석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정장 차림의 미녀를 앞에 무릎꿇려 놓고 펠라치오를 받고 있는 기름기가 번드르한 뚱보 사내. 그는 테이블을 탕 내리치며 화를 냈다.

"야 이 머저리야! 왜 그놈을 안데려온거야?"

어제 진석이 하디카의 한 선술집에서 마주했던 키가 크고 마른, 신경질적인 인상의 우두머리 사내. 하지만 그는 눈앞에서 호통을 치는 뚱보 사내에게 도무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스크레인. 선술집 하나와 도박장 하나, 그리고 십여명의 마약판매책을 데리고 있는 조직 치브갈리의 우두머리였다. 허나 한 조직의 우두머리라고 해도 아주 작은 하부조직. 마약판매책을 제외하고 그가 쓸 수 있는 부하래봐야 스물이 전부였고, 그나마 여섯은 어제 아주 박살이 나서 한동안 꼼짝없이 병원신세를 져야할 판이었다. 그런 스크레인에게 버럭 화를 내며 욕을 하고 있는 중년의 뚱보 사내는 버즌. 세 조직 연합의 직계이자 치브갈리의 상위조직인 솔투스의 두목이었다.

"하지만 정체도 모를놈을 덜컥 데려올수는..."

"판단은 내가 한다고! 봐라, 결국 어제 그놈이 모든 조직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들쑤시고 다니면서 수십명을 피떡으로 만들어 놨다잖아? 그놈이 진짜 사카르건 아니건 그딴건 아무 상관없어! 중요한건 실력이야 실력! 요샌 돈이 아니라 솜씨 있는 놈이 귀하다고, 알아?"

하디카의 가장 큰 세력이었던 도적길드를 몰아내고 하디카의 영역을 사이좋게 나눠가진 세 조직 연합이었지만, 그 평화도 이제와선 삐걱거리고 있었다. 애당초 이놈들은 전부 범죄자에 악당들. 지금까지는 연합이라는 형태로 공존을 택했지만 슬슬 상대방의 영역이 탐이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십수년동안 분쟁이 아예 없었던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국지적 분쟁들이 있었지만 세 조직의 우두머리들은 힘겹게 쌓아올린것을 잃고 싶지 않았기에 사소한 불화는 어떻게든 무마해왔었다.

하지만 이젠 꽤나 긴 시간이 흘렀다. 세 조직의 내부엔 새로운 인원들과 파벌이 늘어났고, 그들 모두가 현재와 같은 공존을 원하지는 않았던것이다. 이제 연합이란 형태는 살얼음판 같은 표면상의 평화일뿐, 적당한 건수만 하나 터져준다면 세 조직은 전부 갈라져 서로의 것을 뺏기위해 전면전을 벌이게 될 수도 있었다. 이런 저런 불온한 기운이 흐르는 가운데 느닷없이 사카르를 자칭하는 묘한 남자가 나타나 하디카 외부를 휘젓고 사라져버렸다. 세 조직 모두의 영역을 넘나들며 자신을 실력을 팔겠다는 뜬금없는 선언을 해온것이다.

"네 부하들만 하더라도 여섯놈을 맨손으로 상처 하나 없이 때려눕혔다며? 젠장. 요샌 용병들도 죄다 개떡같은 놈들 뿐이라고. 다른 조직에서도 인원을 보강하겠답시고 뭐 한가닥 한다 싶으면 시장서 떨이하는거 본 여편네들 마냥 몽땅 쓸어가버려서... 그런와중에 제발로 나타난 쓸만한 놈을 그냥 보내버렸으니. 아이고 머리야."

자기 이마를 철썩 소리나게 때리며 소파에 등을 기대는 버즌. 속이 탄다는 듯 테이블 위에 놓인 상아 장식함에서 궐련을 하나 꺼내어 입에 물고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스크레인은 여전히 아우말 못하고 고개를 숙인채 서있었다.

"속 터진다 속 터져. 이거 언제라도 하디카가 피바다가 될지 모르는판에 내 정말... 야, 혹시라도 그놈 또 나타나면 두말말고 붙잡아놔. 돈이건 여자건 달라는대로 다 준다 그래. 잘 꼬셔서 나한테 데려와. 알았어?"

"알겠습니다."

"그래, 알아들었으면 얼른 나가봐. 야 그리고 넌 씨발 피죽도 못먹었냐? 하루이틀 하는것도 아니고 빠는게 힘이 없어. 쯧. 됐으니까 다리 벌리고 이쪽으로 올라타."

스크레인은 미녀를 무릎위에 앉혀 대면좌위로 행위를 이어가는 버즌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보이고 그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짜증이 솟구쳤지만 어쩌랴, 저딴놈이라고 해도 조직내에선 엄연히 자신의 상관인것을. 어제 그 남자를 다시 보게되면 돈이고 여자고 다 준다고 붙잡아 데려오라고 했지만 그럼 그 비용은 누가 댄단 말인가? 쪼잔한 버즌이 내주진 않을것이다. 당연히 치브갈리의 금고를 열어야 할터. 하지만 그 남자에게 돈을 지불한다면 이달치 상납금은? 하부 조직은 매달 정해진 상납금을 위에 올려보내야 하는데, 이 액수를 못채우면 무능한 놈으로 낙인찍혀 잘려나가기 일수다. 잘려나가는 정도면 다행이고 정말 재수없으면 죽을수도 있었다.

조직의 생리란 이렇다. 결국 단물을 빠는건 맨 윗줄의 우두머리와 간부급들뿐. 아랫놈들은 정해진 상납금에다 재주껏 더 큰 돈을 바쳐대야 겨우 위로 한발짝 기어올라갈 수 있는것이다. 매달 상납금을 맞추기도 빠듯했는데 자기 몸값으로 최소 천골드를 불러버리는 놈을 데려오라니... 버즌의 솔투스라면 치브갈리 말고도 몇개의 하부조직이 더 있는만큼 충분한 자금력이 있을테지만, 자신이 맡고 있는 치브갈리는 금고에 있는 현금을 다 털어도 그만한 액수를 마련할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은 기껏해야 뭐 이백쯤 될까?

"염병... 알게 뭐야. 그딴 미친놈, 다신 안나타나겠지."

하지만 그것은 스크레인의 착각이었다. 버즌의 사무실을 나서서 밖에서 기다리던 자신의 부하 두 명과 합류, 치브갈리의 사무실을 겸하는 도박장 쪽으로 향하려는 찰나 길 저쪽에서 허겁지겁 자신의 부하놈이 하나 달려오는것이 보였다.

"크, 큰일났습니다! 허억허억, 어... 어제 그 놈이 또!"

"뭐?!"

뭐야 이건 도대체? 호랑이도 제말하면 나타난다더니 아주 말이 씨가 됐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버즌에게 그런 명령을 받고 내려온 참인데 어쩌겠는가. 차라리 놈을 바로 데려다 버즌에게 던져줘야겠다. 스크레인은 부하들과 함께 서둘러 가게로 향했다. 다행히 여기서 가게까진 그렇게 멀지 않았다. 기껏 너덧블록. 허둥지둥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어제와 마찬가지로 여급을 끌어안고 희롱중인 검은머리의 사내가 있었다. 그나마 어젠 무릎위에 앉혀놓고 주물거리기만 하더니, 오늘은 아예 치마속에 손을 집어넣고 위아래로 찔꺽찔꺽 쑤셔대는 폼이 가관이다. 여급은 흐느끼는건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허리를 뒤틀다 가게안으로 들이닥친 스크레인을 보고 깜짝 놀라 사내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여급을 놔주지 않고 뒤에서 귀를 잘근잘근 깨물며 손놀림에 더 힘을 주었다.

"여어, 나 또 왔어. 불황은 불황인가봐. 사람 쓰겠다는데가 하나도 없더라고. 그래서 순서대로 다시 한 번 돌아보려고."

"...그 년은 놔주고 같이 들어가서 얘기 좀 하지. 어제 자네 제안말인데..."

버즌의 명령도 있고, 아쉬운건 이쪽이니 어제완 달리 저자세로 나오는 스크레인. 하지만 진석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손이 심심해서 여자 밑구녕 좀 쑤시고 있는게 뭐 어때서 그래. 코 후비는 것보단 훨씬 보기좋잖아? 여기서도 잘 들리니까 그냥 말해."

이런 씨, 말따귀라고 하는 꼬락서니가 하여튼 이놈이나 저놈이나... 사람하고 얘기할때는 헛지랄 좀 하지 말란말이다. 스크레인은 짜증이 치밀었지만 어쩌겠는가. 부하들에게 눈짓을 하며 명령했다.

"야, 가게문 닫고 다들 나가있어.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

"네."

고개를 숙이고 우르르 밖으로 나가는 부하들. 스크레인은 근처의 의자를 하나 끌어다 진석과 마주보고 앉았다. 여급은 자신을 희롱하는 진석의 손길과 바로 앞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는 스크레인의 눈길에 어쩔 줄 몰라했다. 진석은 여급을 토닥거리며 그녀에게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가만히 있어. 너 아까부터 자꾸 벗어나려고 꼼지락 거리는데 한 번만 더 그러면 진짜 발가벗겨놓고 여기서 해버린다? 차분히 사랑이 듬뿍 담긴 따스한 손길을 느껴보란 말야."

당하는 여급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었다. 물론 그녀도 이 나이 되도록 하디카 외곽에서 일해왔으니 남자 경험은 셀 수 없이 많았고, 온갖 파렴치한 인간들 상대도 많이 해봤다. 하지만 이런 남자는 처음이다. 젊고, 잘생긴데다 무시무시할 정도의 무력도 지닌듯 한데 하는짓은 완전 싸구려 양아치나 진배없다. 게다가 한 번만 더 거슬렸다간 진짜로 범한다는데 눈앞에 다른 사람이 있건말건 뭐 어쩌겠는가. 민감한곳을 맘대로 들락거리는 손가락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은채 신음성을 흘려댔다. 진석은 히죽거리며 스크레인을 향해 말했다.

"그래, 하룻동안 생각 좀 해봤어?"

"고용하지. 뭐 내 결정은 아니고 윗선의 지시지만..."

진석은 품에 안은 여급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혀로 위아래를 핥아대며 중얼거렸다.

"좋아좋아. 그런데 말이야... 어제는 파격특가였지만 오늘은 아니거든?"

"...뭐?"

"원래 세일은 한 번 할 때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하는 법이야. 짜잔! 오늘부터 미니멈은 2천 골드가 되었습니다~"

웃는낯으로 여급의 치마속에 넣은 손을 한층 깊숙히 찔러넣으며 그렇게 외치는 진석. 여급은 약점을 깊숙히 찔러오는 감촉에 자신의 두 입을 틀어막고 부들부들 떨었다. 진석의 손을 타고 뚝뚝 애액이 바닥에 흘러내렸다. 스크레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2... 2천?"

"왜. 비싸? 나 다른데로 갈까?"

애액이 뒤범벅된 자신의 손을 여급에 입에 물리고 핥게 만들며 태연하게 되물어 오는 진석. 스크레인은 너무 기가막혀서 뭐라 대꾸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천골드도 어마어마한 거액이다. 그런데 하루만에 가격을 두배로 올리다니. 이놈... 겉보기엔 그냥 무뢰배같지만 아니었다. 어제 그렇게 무력시위를 하고 다녔으니 그 실력과 기행에 대한 소문이 짜하게 퍼졌다는걸 다 알고하는 행동이다. 게다가 버즌의 말처럼 지금 세 조직 연합은 살얼음판을 걷는것 같은 위기상황이다.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비싸게 팔아먹고 싶다는 거겠지. 어차피 자신은 그런 큰 돈, 이 남자에게 줄 수 없다. 먹고 죽을래도 없다. 하지만 버즌 그 돼지새끼라면 있을테지. 스크레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일단 자리를 옮기지. 내 상관에게 소개해주마."

"흠. 계약 체결인가? 좋아."

진석은 여급의 입에 물리고 있던 자신의 손가락을 천천히 떼어냈다. 타액의 실이 손끝에서 죽 이어지다 톡 끊어졌다. 헐떡대는 여급을 의자에 앉혀두곤 자리에서 일어나는 진석. 스크레인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데리고 가게 밖으로 나섰다. 밖에서 대기하던 부하들은 스크레인과 진석의 뒤를 말없이 따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상관이라고 했지? 내가 뭔 일을 해줬으면 하는건데?"

여급이 핥던 손가락을 자기 입에 물고 쪽쪽 빨며 스크레인에게 질문하는 진석. 스크레인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것까진 나도 모른다. 어차피 나도 조직의 말단이니 시킨대로 따르는 것 뿐."

"그래? 에이... 가급적 피보는 일은 싫은데. 내가 좀 섬세하거든."

"......"

섬세한놈이 다짜고짜 처들어와 장정 여섯을 피떡으로 만들어놓고 사람 앞에서 여급 치마에 손을 집어넣은채 희롱해대냐? 게다가 방금전까지 여자의 성기와 입속에 넣었던 손을 아무렇지 않게 빨아대는 놈이 할 소린가 싶다. 정말 기도 안차는 진석의 태도에 스크레인은 그냥 입을 다물고 버즌의 사무실로 향했다.

'사실은 사카르를 유인하려고 한건데... 이거 정말 고용되어 버렸네. 내가 한 제안이긴 하지만 이놈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진석은 사카르를 가장해 적당히 깽판을 쳐서 진짜 사카르를 유인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째 정말로 조직측에 고용되어 버렸다. 보통 이렇게 미친짓을 해오는 상대를 고용하진 않을텐데? 게다가 오늘은 어제와 달리 상대측의 태도가 협상을 걸어오려는 것 같아 일부러 가격을 두 배로 부르는 짓까지 해버렸는데도... 흔쾌히 승낙을 하는거 아닌가. 그러니 이제와서 아 역시 싫어 안 할래~ 하고 발을 빼기도 어색한 상황. 진석은 세 조직 연합의 상황을 모르는터라, 스크레인이 거래에 응낙한 이유를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즉 진석과 스크레인의 머릿속에 든 사태파악이 서로 다른 상황. 진석은 혹시 이놈들이 자신을 고용하겠답시고 으슥한데로 끌고가 묻어버리겠다며 덤벼드는건 아닐지 내심 경계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블럭 따라 가다보니 의외로 멀끔한 건물의 사무실로 들어서는게 아닌가?

"여기다."

3층짜리 건물이었는데 1층은 말쑥해보이는 직원들을 앉혀놓고 대금업을 하는 사금융 영업소고, 2층은 전당포, 3층이 사무실이었다. 1층과 2층엔 비교적 평범해 보이는 직원들이 있었는데 3층은 딱 들어서자마자 얼굴에 범죄자라고 써붙인것 같은 고약한 인상의 떡대들이 즐비하게 모여있었다.

'흠. 아마 여기가 요 부근 지역을 통괄하는 사무실인것 같군.'

스크레인은 3층 안쪽의 '사장실'이라고 쓰인 방 앞으로 가 똑똑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버즌님. 스크레인입니다."

그러자 안에서 곧바로 짜증섞인 외침이 들려왔다.

"뭐야! 너 이 새끼 왜 다시 왔어? 잠깐 기다려!"

외침 중간중간에 헉헉대는 숨소리가 섞인게, 안에서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안봐도 뻔했다. 스크레인이 몸을 돌려 뒤쪽에 있던 진석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하려는 찰나. 진석은 스크레인을 슥 밀어내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야! 씨발 내가 기다리라고... 허?"

"오. 야아, 이거이거 재미보고 계셨네."

반쯤 벗겨진 정장 차림의 미녀를 소파위에 개처럼 엎드리게 해놓고 뒤에서부터 후배위로 범하고 있던 버즌. 버즌은 낯선 얼굴이 방안으로 들어서며 히죽대자 눈가를 씰룩였다. 스크레인이 허겁지겁 따라들어오며 진석을 가리키고 설명했다.

"아니, 그... 이, 이 남자가 어제 그 자입니다. 마침 또 왔길래 바로 데려왔습니다."

"허어..."

행위를 멈추고 진석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버즌. 이놈, 인물은 잘 빠졌다. 하지만 체격도 평범하고 히죽거리는 쌍판이 어째 어제 하디카 외곽을 돌며 그 난리를 피운 실력자일거라곤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좀체 믿음이 가지 않았다. 잠깐 생각하던 버즌은 스크레인에게 턱짓을 해보였다.

"넌 나가있고, 그쪽은 앉아서 잠깐 기다리시지. 손님앞이라 미안하지만 빼던건 마저 빼고 얘기하자고."

캬, 이놈도 어지간히 또라이구만. 속으로 웃는 진석. 남이 보는 앞에서 태연하게 여자를 붙잡고 허리를 놀려대고 있는데 부끄러워하기나 이쪽의 눈치를 보긴 커녕 자연스러운게 평소에도 마냥 저러는 모양이다. 반면 여자쪽은 이쪽의 시선을 엄청 의식하는게 보이는데 아무말도 못하고 버즌이 찔러댈때마다 아아 하고 신음만 흘리고 있다. 스크레인은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고 문을 닫으며 방 밖으로 나갔고 진석은 테이블 위에 발을 걸치며 거만한 자세로 소파에 앉았다.

"여기 손님 접대가 별론데."

"왜, 이년 한 번 먹고 싶어? 얼굴이 반반해서 사무원 겸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할때마다 한발씩 뺄라고 뽑아놨는데 이년이 이쪽은 통 시원찮아서 말이지. 뭐 하고 싶으면 내 다음으로 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보다 그쪽 이름은 무... 커억?!"

소파에 앉아서 싱글싱글 웃는낯으로 버즌의 말을 듣던 진석이 휘릭 하고 눈앞에서 사라졌나 싶던 순간, 버즌은 순식간에 멱살이 잡힌채 벽에 몰아붙여졌다.

"너! 너 무슨지... 케에엑."

"내 이름은 래스커. 그쪽은 분명 아까 그 키크고 마른 양반이 버즌이라고 불렀지?"

놀란 버즌이 소리를 지르려던 찰나 진석의 손가락이 그의 목을 쥐고 가볍게 힘을 가했다. 호흡에 맞춰 숨통이 조여져 아무말도 못하고 켁켁거리는 버즌. 진석은 깜짝놀라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여자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쪽 아가씨는 나가도 좋아. 단 조용히. 남자들끼리 할 얘기가 있으니까 시끄럽게 굴지 말고. 응?"

살짝 윙크를 해보이는 진석. 버즌은 그녀를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진석이 재차 목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말을 못하게 막았다. 여자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옷을 대충 챙겨입고 방 밖으로 허둥지둥 빠져나갔다.

"자. 뭐 그쪽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으니까 이제 차근차근 이야기나 해보자고."

버즌의 목을 놓고 양손을 들어보이며 뒤로 두세발짝 물러나는 진석. 버즌은 자기 목을 부여잡고 쿨럭쿨럭 잔기침을 몇 번 하다 바지를 치켜올리기 시작했다. 뭐지 이 남자는. 첫인상은 여리여리하게 생겨서 진짜 어제 그 소동을 일으킨 놈이 맞나 싶었는데, 지금의 걸로 확신했다. 이놈은 진짜다. 자신이 어떻게 벽까지 밀어붙여진건지 보이지도 않았다. 버즌 본인도 이쪽 바닥에 쭉 몸 담그고 살며 이런저런놈 많이 봐왔다. 분명 그거 하나로도 확신할 수 있었다.

"컥, 쿨럭! 크... 커험. 과, 과연. 내가 대접이 시원찮았군. 미안하구만. 거 앉지."

바로 태도를 바꿔 저자세로 나오는 버즌. 둘은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마주앉았다. 몇 번 더 헛기침을 해서 목을 가다듬은 버즌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번들거리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래. 천골드면 뭐든 해준다고?"

천골드는 비싸다. 분명 비싼 금액이다. 하지만 어떤 일을 시키느냐에 따라서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은 투자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석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대꾸했다.

"누가 그래? 이거 얘기가 잘못 돈 모양이구만."

"뭐? 아니 분명 어제는..."

"어제는 어제. 이미 한참 흘러간 과거잖아? 오늘부터 2천 골드로 올랐어. 그리고 오해할까봐 말해두지만 기본액수가 2천 이라는거야. 일의 내용에 따라 좀 더 붙을 수 있다는것도 알아둬."

뭐 이딴 자식이... 하지만 이래뵈도 버즌 역시 한 조직의 장이다. 건방지게 나오는 상대의 태도가 맘에 들진 않았지만, 일단 참고 넘길 정도의 인내심은 있었다.

"...2천이라. 그래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정말로 뭐든 할 수 있는건가?"

"방금 봤잖아? 그리고 난 사카르의 일원이라니까. 불신이 만연하는 세상이라니 이거 참 슬프구만~"

너 같으면 자신을 신출귀몰한 도적단의 일원이라도 자칭하는 뜨내기를 믿을 수 있겠냐. 하지만 버즌은 웃는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좋아. 믿도록 하지. 하지만 지금 당장 부탁할 일이 있는건 아니니... 우선은 가계약이라도 해두는건 어떤가? 선금은 1할, 2백 주지. 바로 지금 현금으로 주겠어. 그리고 원한다면 숙소도 제공해줄테니까 여기서 머물다가 우리가 필요할때 이쪽일을 도와주는건 어떤가?"

바로 착착 일을 진행시키는 버즌. 아무래도 이놈들, 진짜로 자신을 고용해두고 뭔가 처리 곤란한 일이 생기면 자신을 써먹으려는 속셈인듯 했다. 물론 나머지 돈을 제대로 지불하고 싶진 않을테니, 택도 없을 일에 내보내 버리는 카드로나 쓰려 들겠지. 어차피 진석도 이놈들의 일을 해줄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버즌의 제안이 맘에 드는척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않군. 그리고 숙소는 됐고... 대신 내가 내일부터 매일 아침 여기에 한 번씩 들르지. 일이 있다면 바로 알려달라고. 바람같이 해결해줄테니까."

버즌은 생각했다. 설마 이놈이 2백 골드만 먹고 튀려고 이러는건 아니겠지? 아니, 아니다. 이만한 실력자가 겨우 2백 골드 먹자고 이러는건 아닐터. 게다가 돈이 목적이었다면 방금 자신을 간단히 제압하고 유유히 금고를 털수도 있었다. 이 래스커라는 남자의 진의까진 모르겠지만 일단 거래에 응하려는 태도는 사실인것 같았다. 버즌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한쪽 구석의 금고로 가서 문을 따고 안에서 묵직한 돈주머니를 꺼내들었다.

"자네가 입에 담은 사카르의 이름을 믿고 내어주지. 2백골드다."

"이야 이거 감사. 이야기가 빨라서 좋구만 그래. 그럼 약속대로 내일 아침부터 들를테니까... 오늘은 이만."

돈을 받았다는게 기쁘다는듯 싱글벙글 웃는낯으로 주머니를 받아들고 바로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진석. 버즌은 속물처럼 돈을 챙겨 사라지는 진석의 그 뒷모습을 보며 저자는 확실히 돈으로 부릴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

'이깟 2백 골드 필요도 없지만... 알 유세피나 금고에 든것만 해도 30만인걸. 그냥 변태 자매나 줄까? 아니아니. 걔들한텐 벌써 금괴를 하나씩 던져줬지. 뭐 쓸데없이 자꾸 던져주면 버릇나빠질라. 흐음, 그럼 이거 어디다 쓴다.'

맨 처음 게임을 시작하고 몇골드 가지고 빌빌거리던 것에 비하면 참 장족의 발전이다. 진석이 그렇게 생각하며 사무실을 나서 계단을 내려가자, 한쪽에 부하들과 잡담을 나누던 스크레인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진석의 손에 든 묵직한 주머니를 보곤 저 남자가 이쪽과 무사히 한패가 되었다는걸 깨달았다.

'당최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지만 버즌에게서 바로 돈을 받아내다니. 진짜 사카르인지 아닌지는 확인 할 수 없지만 좌우지간 실력은 진짜인 모양이군.'

버즌은 욕심은 많지만 그만큼 따질건 다 따지는 꼬장꼬장한 작자다. 돈을 받은걸 보니 실력만큼은 버즌이 보기에도 확실한 거겠지. 틀림없이 조직의 윗선에 이 남자를 고용해 두었다는 보고를 올려둘것이 분명하다. 한 건으로 2천 골드를 받는 실력자라. 스크레인은 저 정체불명의 남자가 앞으로 과연 어떤일을 하게 될지 궁금해졌다.

============================ 작품 후기 ============================

생각치 못하게 일이 생겨 오늘은 조금 늦어졌습니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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