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82화 (82/155)

< --   - 7.   -- >         * 82화 *

에라드 상회. 지어진지 몇십년이 지났는지 모를 이 단층 건물의 외벽엔 긴 세월의 풍상이 고스란히 새겨져있었다. 그 가장 안쪽의 방. 평소엔 거래나 상담을 나눌 손님을 모시는 방이었지만, 지금은 진석이 들어와 있었다. 그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는것은 자신을 사카르의 두령이라 밝힌 론소. 그리고 론소의 양 옆엔 나이든 암살자 바노르와 불만 가득한 표정의 라나가 합석해 있었다.

"대지의 눈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사카르의 일을 도와달라고?"

진석이 묻자 론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대지의 눈이 소원을 들어준다기에 훔쳐낸것이지만... 여기 내 조카딸 라나가 한달이나 애를 써봤어도 아무 소용없더군. 역시 그냥 허황된 소문이었을뿐. 아무리 비싼 보옥이라고 해도 쓸모없는 물건이니 돌려드리겠소."

"하지만, 삼촌!"

"라나."

라나는 론소의 옷자락을 잡아채며 뭐라고 하려 했지만, 지긋이 내려다보는 론소의 시선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떨구었다. 진석은 흥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웃기는군. 내 물건 내가 돌려받겠다는데 조건을 달다니. 그냥 댁들 다 죽여버리고 힘으로 회수해 가는 방법도 있어."

"그럼 그렇게 하시오. 대지의 눈은 이미 나만 아는 장소에 숨겨두었으니 우릴 다 죽이더라도 영영 그 물건은 되찾지 못할터."

어쭈, 이거 봐라? 진석은 자신의 협박에도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태연히 대답하는 론소를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방 안에 감도는 긴장감. 진석은 스윽 팔짱을 끼며 말했다.

"뭐 좋아. 그나저나 날 고용해서 무슨 일을 부탁하고 싶은거지?"

테이블 위에 양팔을 얹고 손을 깍지끼며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론소.

"바노르에게 들었소. 당신 이미 솔투스에 고용되었다지."

"뭐 그렇긴 한데... 어차피 댁들을 꼬여낼 작정으로 사카르의 이름을 빌렸을뿐이라 진짜로 놈들의 일을 도울 생각따윈 없어. 내일부턴 거기 안가."

"놈들에게 협력하는 척 하시오. 그리고 가능하다면 솔투스보다 윗선인 가르니 켈. 즉, 세 조직 연합에 접촉하시오."

"...뭐?"

세 조직 연합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것이었다. 진석은 아직 이 도시의 뒷세계와 생리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 진석은 자신을 지긋히 바라보는 론소의 시선을 받아넘기며 생각했다.

'사카르의 두령이라... 뭔진 몰라도 이 작자, 날 이용해서 세 조직 연합인가 뭔가에 피해를 주고 싶은 모양이군. 나같은 정체 모를 실력자를 고용해서 윗선에 접촉하라면 목적은 보나마나 그것밖에 없잖아.'

진석은 그렇게 추리하며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곤 건들거렸다.

"하. 그런 귀찮은짓을 뭐하러 해야하지? 댁 목적이야 대충 짐작이 간다만 그렇다고 맨입으로 해줄 것 같아?"

"당신 정도의 사내라면 돈 몇 푼 따윈... 그리 필요하지 않겠지. 대신 일을 돕는다면 하디카 중심가의 업소를 하나 내어주겠소."

"삼촌!"

"두령!"

그 제안에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바노르와 라나가 깜짝 놀라 론소를 바라보았다. 하디카 중심가의 가게라니. 이 둘이 알기로 론소는 하디카 중심가에 두 개의 창관과 고급 숙박업소 하나, 그리고 레스토랑과 술집을 각기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거래에서 겨우 숙박업소나 레스토랑을 내어주겠다는건 아닐터. 분명 창관을 준다는 제안일거다. 하지만 흔해빠진 보통 창관이 아니다. 휘파람새 수준의 초대형 영업장인 것이다. 안에서 일하는 인력만 해도 백이 가볍게 넘어간다. 가게 건물과 부지만 팔아도 최소 몇 만 골드는 받을 수 있을테고, 안에서 일하는 무희들의 몸값까지 다 합치면 십만 단위도 훌쩍 넘어갈것이다. 즉 이런 업소를 하나 갖는다는건 정말 대를 이어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거대한 자산이 생긴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곳을 선뜻 내어준다니, 이건 너무 과한 제안 아닌가? 호기어린 제안에 건들대던 진석의 표정도 조금 진지해졌다.

"댁은... 세 조직 연합을 박살내고 싶은 모양이군."

"그렇소. 우리의 원수인 놈들을 박살내고, 하디카에 도적 길드를 재건하는것이 진정한 목적. 하지만 이쪽엔 일손이 부족하지. 당신의 실력은 분명 우리 조직에서 가장 뛰어난 바노르보다도 우위일터. 어떻게 해서라도 꼭 도움을 받고 싶소."

바노르와 라나는 사카르의 진짜 목적마저 술술 말해버리는 론소의 모습에 너무 놀랐다. 갑자기 이럴 사람이 아닌데. 십수년의 세월을 들여 계획을 꾸려왔을만큼 신중하고 치밀한게 바로 론소였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본 상대에게 선뜻 거래를 걸고 이쪽의 목적까지 줄줄 누설해버리다니? 하지만 론소는 바노르와 라나를 힐끗 바라보더니 걱정말라는듯 고개를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론소도 아무 생각이 없이 이러는것은 아니었다. 그간의 긴 상인생활로 사람 보는 안목이 트인 론소였다.

처음엔 그냥 헛소리를 떠들고 다니는 치기어린 얼빠진놈, 저러다 죽겠거니 하고 무시하려 했는데... 아무리 늙었다고 한들 사카르의 제일가는 실력자인 바노르의 암습조차 가볍게 막아내고 되려 라나를 붙잡아 무력화 시키지 않았다던가. 그것 하나만 봐도 실력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숙련된 암살자의 일격을 막는다는건 우연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까. 게다가 이야기를 듣고보니 사카르를 사칭한것도 다 대지의 눈을 되찾기 위해 자신들을 노리고 벌인 대담한 행동이었다. 만약 라나의 돌발행동만 아니었다면 이쪽의 정체가 드러날리도 없었을테지만, 이미 벌어진 일. 세상일에 만약이나 우연 따위란 없다. 이렇게 이 자와 대면하게 된것도 분명 뭔가의 필연. 론소는 확신했다. 이자의 능력은 틀림없는 진품이라는것을. 시세와 거래는 한순간의 타이밍이고 사람과의 협상도 마찬가지다. 형인 아밀이 병으로 드러누워 근 1년째 일이 지지부진한 지금 이런 남자가 나타난것은 위기가 아니라 도리어 기회였다. 언제까지고 일을 미뤄두고 있을 수는 없었다. 론소는 이 남자를 일에 끌어들이기로 한 자신의 결단에 한치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그리고 진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담한데. 이 작자 처음보는 상대에게 이런 제안을 턱턱 걸어오는게 보통 담력이 아니구만. 말을 빙빙 돌려서 날 현혹하거나 꼬시려 들었으면 되려 못 믿었을테지만 처음부터 자기쪽 카드를 다 까버리니 더 할말도 없는걸. 과연 그 긴 세월동안 도시내에 숨어 사카르라는 도적단을 잘도 꾸려왔을만도 하네. 자... 아무튼 저쪽은 패도 까고 판돈도 다 털었으니, 나는 어쩔까나.'

진석은 대지의 눈만 회수하면 돌아갈 수 있지만, 사카르의 두령인 론소라는 작자는 자신만이 아는곳에 숨겨놨으니 우릴 다 죽여도 상관없다고 되려 배짱을 부리는 상황. 목적을 위해 십수년간을 그림자 속에 숨어 계획을 진행시켜온 자다. 그런 남자가 하는 말이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단순한 거짓이나 허세는 아닐터. 그렇다면 대지의 눈을 돌려받기 위해서... 귀찮아도 일단 최소한 한 번 정도는 사카르를 도와줘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세 조직 연합이라. 그건 또 뭐야? 대충 분위기를 보아하니 하디카의 이면을 지배하는 놈들 같은데... 뭐 페레나로 치면 빅 본 같은 조직이겠지. 아무튼 그들에게 접촉하라는걸 보니 그 수뇌부를 개박살 내라는 모양이군. 하긴 카야를 도와 레드라인을 때려부술때도 마찬가지로 두목부터 끝장냈었으니까. 어차피 수뇌부 몇몇의 지도력으로 유지되는게 범죄조직이다. 그 머리가 사라지면 아래쪽은 지리멸렬하기 쉽상. 진석은 후우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신 딱 한 번이야, 한 번만 돕도록 하지. 대지의 눈은 그 후에 받아가겠어."

"상관없네. 한 번이면 충분하고도 남지. 약속한 댓가도 제대로 지불하겠네."

론소는 그렇게 대답하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틀 후 세 조직 연합의 수뇌들이 정기 회합을 가질 예정이라네. 장소는 마침 내가 차명으로 보유중인 하디카 중심가의 레스토랑. 지금 세 조직은 서로간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참이니, 딱히 어느 조직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지대와 같던 내 가게가 안성맞춤이었겠지."

"긴장감이 높아진다...?"

"오랫동안 하디카의 이권을 사이좋게 나눠먹던 놈들이었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가 보이는거지. 허나 하디카를 뒤에서 장악해오던 만큼 축적한 세는 만만치 않아서, 회합날 레스토랑 주변엔 각 조직들이 대동한 수하들 수백이 쫘악 깔릴터. 보나마나 근처 몇블럭은 놈들이 자체적으로 봉쇄하겠지. 하지만 솔투스에 고용된 자네라면 재주껏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을거라 믿네. 회합이 시작될때 한 곳에 모인 간부들이나 두목들을 가능한 많이 죽여주게."

론소는 딱히 무너진 놈들의 세력을 흡수 할 생각따윈 없었다. 일단 부순다. 철저히 박살낸다. 도적길드의 재건은 산산히 부서진 놈들의 폐허위에 천천히 해나갈 생각이었다. 어차피 수뇌부가 박살나면 세 조직 연합의 하부조직들은 서로 갈라져 제멋대로 패권을 쥐기 위한 싸움을 벌이기 시작할것이다. 예견된 대혼란. 론소는 미리 만들어놓은 경비대와 관리들의 연줄과 힘을 빌어 남은 놈들을 하나씩 하나씩 청소해가며 그 빈자리에 도적 길드를 쌓을 계획이었다.

"허허, 그럼 나는 거기서 싸우다 죽으라는 얘기잖아."

론소의 계획을 듣고 그렇게 답하는 진석. 물론 진석 자신이 정말로 그딴곳에서 싸우다 죽을리는 없다. 하지만 위험하다는것은 분명 사실. 수뇌들의 호위라면 제법 강한놈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으니 이 정도 엄살은 당연했다. 하지만 론소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손바닥을 합장하듯 모으곤 대답했다.

"아니, 적당한때를 봐서 경비대가 들이닥칠거라네. 내가 경비대쪽에 그렇게 움직이도록 미리 손을 써둘테니까. 엉덩이가 굼뜬 놈들이지만 지금까지 그정도의 돈은 뿌려왔다네. 물론 내돈만이 아니라 세 조직 연합측에서도 돈을 잔뜩 먹어왔을테니 아무 이유도 없이 딱히 놈들을 체포하려 들진 않겠지. 하지만 주변 거리의 치안유지라던가 적당한 명목을 들어 잔뜩 모인 놈들을 해산시키는 정도의 압박은 줄터. 그럼 아랫놈들이 보고를 하겠답시고 안쪽에 경비대와 마찰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전하려 하겠지. 바로 그때가 기회라네. 밖에서 보고가 올라오는 순간을 노리고 자네가 수뇌들을 죽이기 시작하면... 틀림없이 안팎으로 대혼란이 일어날거야. 그렇지 않아도 최근 불신이 쌓여가던 연합이니까. 눈앞에서 느닷없이 자신들의 두목과 간부들이 싸그리 죽어나가면 어떻게 될까?"

하나로 합쳤던 두 손바닥을 쫙 펼쳐보이는 론소.

"퍼엉, 다 터져버리는거야. 잔뜩 모여 서로 벼르고 있던 놈들은 바로 싸움을 시작하겠지. 그러면 경비대도 놈들에게 무력행사를 할 수 밖에 없을거야. 가장 윗선인 세 조직 연합부터 시작해 아래의 하부조직들이 전부 연쇄폭발이 일어나듯 사라지는 거라네. 자네가 도화선이 되어주게. 물론 목숨이 다할때까지 싸우라는 얘기가 아니야. 수뇌들을 적당히 죽이고 혼란을 틈타 도망치면 되겠지. 그리고 이 일만 잘 된다면 고작 창관 하나따위가 아니라... 아예 하디카의 한 축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도와줄수도 있네."

에라드 상회를 나와, 알 유세피나의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진석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제와서 하디카의 업소들 따위, 욕심이 날리 없... 진 않지! 안에 온갖 타입의 무희들이 바글바글 할텐데! 휘파람새만 해도 무희가 거의 백명에 가까웠는데 그런 업소를 하나만 손에 넣는다고 해도... 하루에 한 명씩만 상대한다쳐도 장장 3개월이다. 가게 하나로도 그 정도인데 아예 하디카의 한 구역을 손에 넣는다면? 야호, 하렘왕의 엔딩이 보인다!'

물론 이건 그냥 하는 소리. 여자랑 뒹구는건 좋지만 이제와서 하디카의 창관 경영과 관리라니. 그런 귀찮은 포주짓을 할까보냐. 뭐 교단의 퀘스트를 수행중이 아니었다면 낼름 받아들였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진석이 론소의 제안을 거절한것은 아니었다. 진석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뭐 대지의 눈을 찾기 위해서기도 하고... 그렇다고 공짜로 일을 해줄 생각인것도 아니니까 받을건 받아야겠지. 업소의 소유권을 넘겨받으면... 이미 다른곳으로 정체를 감추고 있을 미겔슨에게 연락을 해서 그에게 넘겨주거나 하면 될터.'

진석은 미겔슨이 생각난 김에, 저택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휘파람새로 향했다. 어차피 현재 휘파람새를 관리하는 새 주인도 실은 미겔슨의 심복이라고 했었다. 미겔슨은 혹시라도 전달할 이야기가 생기면 그에게 해두라고 알려줬었으니,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일의 경과를 그에게 일러줄셈이었다. 게다가 미겔슨은 교단의 원로. 사원 직통의 전서구도 보내거나 받을 수 있는걸로 알고 있다. 기왕 일의 경과를 전달하러 가는김에 겸사겸사 미리안쪽엔 일이 좀 생각보다 늦어진다는 연락을 보내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왜냐면 돌아갈때는 느긋히 육로로 갈거니까. 이전에도 했던 생각이다만 빨리 돌아가봐야 이것저것 부려먹히고 세계멸망을 앞당기기 밖에 더해? 교단 퀘스트는 최대한 느긋하게 하자 느긋하게.'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사람들 사이를 해치고 휘파람새 쪽으로 가는데, 뒤에서 다다닥 하고 누군가 급히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싶어 돌아보니 방금까지 에라드 상회 안에서 마주앉아 있던 상대인 라나가 헐레벌떡 달려와 진석의 앞에서 멈춰섰다.

"헉, 허억. 저기 당신! 할 말이 있는데..."

"야 꼬맹아. 내가 연장자에겐 어떻게 해야한다고 했지?"

싱긋 웃어보이며 주먹을 들어보이는 진석. 라나는 흠칫하더니 말을 바꿨다.

"...하, 할 말이... 있는데... 요."

"뭔데? 나 바뻐, 빨리 말해."

"아니 그... 혹시 해서 묻는거지만 대지의 눈의 사용법을 알고 있어... 요? 소, 소원을 들어준다는 방법에 대해서 뭔가 아는게 있다면..."

뭐야. 기껏 이제와서 묻고 싶은게 그거였냐? 흐음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진석.

"글쎄다? 안다고 할 수도 있고 모른다고 할 수도 있고."

"무슨 말이 그래? ...요."

"아니 나도 실물을 봐야 알지. 대리인을 통해 테베이의 경매장에서 낙찰받고 내 손에 들어오기도 전에 니들이 가져갔으니까."

물론 낙찰 받은건 알 유세피나지만 라나가 그런 사정까진 알 리 없으니 술술 거짓말을 하는 진석. 라나는 진석의 대답이 기대와 달랐는지 곧바로 심퉁난 표정을 지었다.

"흥!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이지! 베에~다, 이 바보야!"

진석에게 혀를 내밀어보이곤 잽싸게 몸을 돌려 뛰어서 되돌아가버리는 라나. 진석은 기가 찼다.

'아니 저 쪼만한게 진짜... 너 어디 나중에 두고보자.'

혀를 차며 돌아서는 진석. 재차 휘파람새를 향해 걸어가며 머릿속으로 상황정리를 해봤다.

'자아 자. 어디보자. 우선 휘파람새에 가서 미겔슨에게 상황을 알려주고, 교단쪽에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거라는 전갈을 보낸다. 그리고 저택에 돌아가면... 바보 자매랑 알 유세피나가 준비 하던 수송 상단 준비는 그만둬도 된다고 해도 되겠군. 조직 연합의 회합은 이틀후라고 했으니 내일 하루는 비는데... 아침에 솔투스인가 뭔가 사무실 한 번 들러주곤 모레 전투를 치를 준비나 해야겠구만. 뭐 적당한 방어구라도 사러 가봐야지. 아, 그리고 어떻게 바보 자매를 써먹을 방법이 없을까? 저 론소라는 사카르 두령놈 말대로 개판이 날테니... 아니지. 이럴땐 차라리 알 유세피나의 근위대를...'

진석은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준비하며 사람이 붐비는 거리를 지나 하디카 중심가로 향했다. 그 뒤쪽에선 이미 돌아간줄 알았던 라나가 따라붙어 미행하고 있다는것도 모른채로.

휘파람새를 들러 용건을 마치고 나온 진석. 시간은 점심때가 한참 지난 오후. 아니, 이미 점심때보단 이미 저녁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루종일 바쁘게 움직인 탓에 어째 정신적으로 피곤한데다가 공복도 게이지도 한참 낮아져 있었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점심도 변변히 못 먹었군. 여기서 뭐라도 적당한걸 사먹고 들어갈까 아니면 바로 저택으로 들어가 호화스런 식사를... 세 여자 틈바구니에 끼여 불편하게 먹을까 고민하는 진석. 르마쿠르 자매와 알 유세피나는 식사때도 서로 진석의 시중을 든답시고 옆에 달라붙어선 먹여준다느니 어쩐다느니 난리들을 쳐댔는데 이게 정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어디로 넘어가는지도 모를 판이었다. 입으로 먹여준다지 않나, 가슴위에 음식을 대놓고 흘리더니 그걸 그대로 얼굴 앞에 들이대지 않나, 이것들 아주 푼수짓이 풍년이었다. 잠깐 생각하던 진석은 그냥 사먹고 들어가기 위해 식당가가 있을만한 시장쪽으로 향했다. 그때 시궁쥐라도 보고 놀란건지, 근처에서 수레를 끌던 소 한 마리가 도로를 마구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아이고, 거기 멈춰라 이놈아아~"

필사적으로 소를 뒤쫓아가는 일꾼. 소가 거칠게 달려나가며 수레에서 이런저런 잡동사니가 길가로 하나 둘 흘러내렸고, 일꾼은 그걸 줍느랴 소를 뒤쫓느랴 정신이 없었다.

'에이 뭔가 했네. 별거 아닌... 어?'

수레때문에 잠시 멈춰서서 뒤쪽을 돌아봤던 진석. 그런데 시야의 끄트머리에 뭔가 익숙한 모습이 하나 스쳐지나갔다. 군중 속, 어느 건물 뒤 기둥에 몸을 반쯤 감추고 있었지만 저건 아는 얼굴이다.

'라나인가 뭔가하는 사카르의 꼬맹이잖아. 뭐야 저거. 날 뒤쫓은건가?'

그냥 슥 스치듯 돌아본거라 그녀는 발각당했다는걸 눈치채지 못한듯 싶었다. 참나, 좀만 방심하면 진짜 개나소나 다 달라붙는구나. 이거 내 등짝을 좋아하는 놈들이 왜 이렇게 많아? 아까 돌아간줄 알았더니 역으로 방심시켜놓고 뒤를 따라붙은 모양이다. 아마 론소가 시킨건 아닐테고... 저 혼자서 괜히 저러는거겠지. 두령이자 자기 삼촌인 론소의 판단도 못 믿겠다 이건가. 안되겠다. 저 꼬맹이에겐 진짜 매운맛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요게 대체 뭐가 궁금해서 내 뒤를 쫓는건진 모르겠다만... 한 번 따끔하게 혼나봐야지 정신을 차리겠지.'

진석은 바로 골목길로 들어섰다. 잘 알지도 못하는 구불구불하고 좁은 길이었지만 개의치 않고 마구 들어갔다. 아까 라나, 바노르와 일전을 벌였던 장소만큼이나 외지고 인적없는 장소까지 가서야 걸음을 멈춰섰다. 마침 앞은 막다른 골목. 딱 좋은 장소였다.

'어디, 이쯤이면 되겠지. 라파가!'

진석은 라파가의 숏스텝을 발휘, 바로 옆 2층 건물의 벽을 연속으로 박차고 위로 뛰어 옥상으로 올라섰다. 창문도 죄다 깨져있고 안도 텅 비어있는게 확실히 이 주변에도 인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하디카 외곽은 죄다 이 모양이라니. 정말 중심가와는 차이가 너무나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자세를 낮추고 골목 저쪽을 내려다 보는 진석. 잠시 기다리자 조심스러운 태도로 구불구불한 골목을 헤치며 들어오는 라나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저기 돌아보며 힐끗대는 모습이 이런 외진곳으로 들어온게 적잖이 불안한 것 같았다.

'불안하면 처음부터 따라오질 말라고.'

그런데 이건 뭔가. 라나의 한참 뒤쪽에서 왠 남자들도 골목을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남자들은 총 세 명. 하나같이 인상이 험악하고 저희들끼리 연신 뭔가 속닥거리며 라나의 뒤를 쫓는 폼이...

'불량배들이군.'

처음엔 라나의 호위로 붙은 사카르인가 했는데 옷 차림새나 행동거지만 봐도 절대 아니다. 어린 여자아이가 혼자 슬럼이나 다름없는 하디카의 제일 외진곳에서 어슬렁댔으니 아주 좋은 먹잇감으로 보였던거겠지.

'쯔쯔... 남 쫓는데 정신 팔려 제가 쫓기는줄은 몰랐던거구만.'

라나는 이미 길 끝에 거의 다다라 있었다. 모퉁이 하나만 돌면 막다른 길. 그리고 뒤를 쫓는 불량배들도 바로 근처까지 와 있었다. 놈들은 이쪽 지리를 잘 아는지 목소리를 죽인채 시시덕대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흥. 어디 어떻게 되나 잠깐 구경이나 해볼까?'

잠시 구경하기로 마음먹은 진석. 라나는 곧 마지막 모퉁이를 돌았는데 막다른 길만 나오자 크게 당황해했다. 중간에 길을 잘못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다 뒤로 돌아 자리를 벗어나려는 그녀. 하지만 뒤쪽에서 인기척이 나나 싶더니 불량배 셋이 나타나 길을 가로 막아섰다.

"히히, 여기 있네."

"어이구 아가씨. 이런덴 혼자 무슨 일로 왔니?"

생각치도 못하게 남자 셋이 나타나 길을 가로막자 당황하는 그녀. 하지만 그들과 간격을 벌리려는건지 빠르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너흰 뭐야?"

"뭐긴 뭐여. 무서운 아저씨들이지."

"그럼~ 얼마나 무섭냐면~ 지금부터 발가벗겨져 이런저런일 당하고 먼데로 팔려가서 앞으로 다신 집에 돌아가지 못할 정도랄까?"

노골적으로 이죽거리며 라나를 향해 서서히 다가서는 불량배들. 이제부터 놈들이 하려는 짓이야 뻔했다. 잡아서 윤간하고, 어린애들을 원하는 노예상이나 그런쪽의 영업을 하는 창관에 팔아넘길 수작이겠지. 보통 여자들이라면 식겁했을 상황이지만 라나는 침착하게 품속에 손을 넣었다.

"흥, 쓰레기 같은 새끼들. 네깟놈들에게 붙잡힐것 같아?"

라나의 상의는 사실 특수하게 만든 맞춤옷이라, 그냥 얼핏 보기엔 평범한 옷이지만 옷감을 덧대어 만든 안쪽에 자그마한 투척용 나이프를 최대 열 여섯개까지 넣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바노르에게 배운 투척술로 어지간한 상대라면 접근시키지 않고도 무력화 시킬 자신이 있었다. 라나는 여자에다 아직 나이도 어리니 완력이 달려 근접전은 무리였지만, 이거라면 어지간한 자는 상대가 안될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어라? 나이프가... 두 개 밖에? 아, 아차!'

진석과 론소의 거래 이후 집에 들어가겠다고 말해놓곤 슬쩍 빠져나와 진석의 뒤를 혼자서 미행한 라나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 일전을 벌이느라 나이프를 잔뜩 소모한데다가 진석이 그녀의 품속에서 마음대로 나이프를 꺼내썼는데 그걸 생각치 못한것이다. 게다가 평소대로라면 외출할때마다 최소 한 명의 사카르 단원이 호위로 붙어줬지만 지금은 몰래 진석의 뒤를 따라온덕에 그 마저도 없었다. 상대는 사내 셋, 주머니에 남은 나이프는 달랑 두 개. 라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바노르라면 모를까, 아직 미숙한 자신의 힘과 기술로는 나이프 한두개로 성인남성을 온전히 제압하기 힘들었다.

"...이익!"

그렇다고 슬금슬금 다가오는 불량배들을 넋놓고 바라볼수도 없는 노릇. 라나는 두개의 나이프를 사내들에게 확 뿌리곤, 정면으로 달려나갔다. 두개뿐이라지만 좁은 길목이니 셋 중 누군가는 맞을터. 그 틈에 그들 사이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방법은 이것 밖에 없었다.

"뭐, 뭘 던졌어?!"

"어윽!"

불량배들을 향해 쭉 뻗어져나간 두 자루의 나이프. 게 중 하나는 두 팔을 앞으로 내밀어 방어자세를 취하던 한 사내의 팔뚝에 꽂혔고, 다른 하나는 그 옆에 있던 사내의 안면을 향해 날아들었으나... 그가 반사적으로 자세를 움츠리는 바람에 옆을 스치고 지나가 벽에 맞고 떨어졌다.

"아니 이게!"

가능하면 셋 중 두 명이 나이프에 맞아 당황해하는 틈에 어떻게든 그들 사이를 빠져나가보려 했건만, 하나는 겨우 팔에 막혔을 뿐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빗나가 버렸다. 최악이다. 달려나가려던 라나는 멈칫하고 도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사태 파악을 한 불량배들은 만만하게 보던 어린 여자아이가 생각치도 못하게 칼을 집어던지며 저항하자 분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 이 씨발년이! 아오 내 팔. 살다살다 애새끼한테 칼침을 다 맞네, 염병할!"

그나마 팔에 맞춘 나이프는 치명상도 아니었고 그냥 어설프게 맞은 정도라, 그 불량배는 자신의 팔에 꽂힌 나이프를 뽑아 내던지며 쌍욕을 해왔다.

"그래도 어려보여서 살살해줄라고 했더니 아주 죽여달라고 들이대는구만. 야이 썅년아. 감히 내 얼굴에다 칼을 던져?"

"존나 맹랑한년이네. 이런년은 따끔하게 혼이 나야돼."

품에서 단검을 꺼내들며 라나를 압박해오는 세 불량배들. 뒤는 막다른 골목. 앞은 흉기를 꺼내든 분노한 불량배들. 그나마 싸울 수 있는 무기인 나이프도 동난 상황. 라나로선 더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불량배들을 향해 주먹을 쥐고 달려들었지만 되려 멱살을 붙잡혀 벽에 밀어붙혀졌다.

"아, 아읏! 놔 이 새끼야!"

"놔? 새끼이? 이 존만한 년이."

철썩! 라나의 따귀를 사정없이 때리는 그. 한 번으로는 성이 안찬다는듯, 두번 세번 연달아 라나의 따귀를 내리쳤다. 가벼운 라나의 몸은 따귀를 맞을때마다 고개가 돌아가며 온몸이 다 휘청일 정도였다. 비명은 커녕 신음성도 못내고 불량배의 손에 연신 얻어맞는 라나.

"야 비켜봐. 대갈빡에 피도 안마른년한테 칼침을 다 맞고. 오늘 일진 한 번 씨발... 개같다고!"

팔에 나이프를 맞았던 사내는 씩씩거리며 라나의 멱살을 빼앗아 쥐더니, 그녀의 복부에 거칠게 무릎을 꽂아넣었다. 크흡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꺾는 라나. 하지만 봐줄 생각 없다는듯 그녀를 재차 벽에 몰아붙여놓고 또 다시 배에 주먹을 휘둘렀다.

"컥! 끄으... 윽."

아직 채 자라지도 않은 14살의 어린 몸. 체중도 얼마 안나가다보니 타격엔 굉장히 취약했다. 고작 몇 대 맞은것 뿐이지만 라나는 이미 온몸의 기력을 잃고 저항할 의지도 잃었다.

"야 살살패. 애 죽을라."

"씨발 생각같아선 그냥 갈아버리고 싶은데... 쯧. 아오 내 팔이야. 잠깐 지혈하고 있을테니까 옷이나 좀 벗겨봐."

"낄낄, 피는 이년 아랫도리가 아니라 니가 먼저 흘리는구만."

"야 친구가 아파 뒤질라고 하는데 넌 농담이 나오냐? 개새끼."

팔을 다친 사내가 뒤로 물러나 자기 옷자락을 찢어 상처를 묶는동안, 다른 사내가 휘청거리는 라나를 물건처럼 건네받고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라나는 불량배들이 자신의 옷을 벗기려들자 떨리는 팔다리로 제지하려 했지만, 따귀나 두어대 더 얻어맞을 따름이었다. 잠깐새 벌겋게 팅팅 부어오른 라나의 두 뺨. 입술까지 심하게 찢어져 턱을 타고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렀다.

'...어쩌나 했더니 역시나구만. 결국 애는 애지 뭐.'

조용히 위에서 그 모습을 다 지켜보고 있던 진석. 그새 라나의 상의는 훌떡 벗겨졌고 이제 아랫도리를 벗기는 참이었다. 이대로라면 라나는 여기서 놈들에게 강간당하고 끌려갈터. 아무리 건방지고 귀여운 맛 없는 꼬맹이라고 해도 거래를 하기로 한 상대의 친족아닌가.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이쯤에서 정의의 사자가 등장... 아니 정의의 사자는 무슨 얼어죽을. 내가 언제부터 정의로웠다고. 불의의 사자라고 하자.'

진석은 바노르에게에서 빼앗은 암살자의 망토의 잔여시간을 확인해봤다. 잔여 투명화 시간... 23초.

'엑. 23초라. 에이, 됐다. 겨우 동네 불량배 셋인데 투명화까지 쓸 필요 있나.'

몸을 일으키는 진석. 옥상 난간에 발을 얹은 뒤, 막 라나의 바지를 벗겨내고 팬티에 손을 대는 불량배를 향해 휙 뛰어내렸다.

"어이, 거기까지! 받아라 불의의 일격!"

"커억?!"

뻐억! 느닷없이 위에서 날아든 진석의 발차기에 머리를 직격당하고 옆으로 나동그라져 지는 사내. 두 콧구멍에서 피가 질질 흐르고 혀를 빼문채 눈을 까뒤집은게 그대로 의식을 잃은듯했다. 연이은 구타로 아무 반항 못하고 곧 자신에게 닥칠 난행에 잔뜩 겁먹고 있던 라나는 놀란 표정으로 진석을 올려다 봤고, 뒤쪽에서 시시덕대던 두 불량배들 역시 화들짝 놀랐다.

"뭐, 뭐야 이 새끼?"

"어디서 나타난거야?!"

"어디긴 어디야 지옥 일번지다 이 지랄맞은 새끼들아. 요즘같은 저출산시대에 아이들을 보호하고 아끼진 못할망정 이게 무슨 개짓이야? 너희들 오늘 좀 아프게 맞자."

불량배들은 갑자기 나타나 동료를 일격에 쓰러트리고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중얼거리는 진석에게 당황했지만, 곧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품속에서 흉기를 꺼내들고 동시에 덤벼들었다.

"개새끼가! 뒈져!"

"이런데서 네 손에 죽을것 같았으면 아예 태어나질 않았어 깜찍한 새꺄."

태연하게 대꾸하며 팔을 다친 사내에게 뛰어들어가 안면에 파바박 짧은 연타를 먹이는 진석. 그가 으허헉 하고 휘청이는 사이 다른 사내에게도 빠르게 다가가 손에 든 흉기를 쳐내고 안면에 장타를 먹였다. 푸확 하고 코피가 터졌다.

"여자애 얼굴을 저렇게 때리면 어떻게 하냐. 응?"

진석은 사내의 멱살을 쥐고 손목의 스냅을 이용, 따다다닥 하고 왕복따귀를 사정없이 갈겼다. 순식간에 부어오르는 그의 얼굴. 그사이 안면에 연타를 얻어맞았던 팔을 다친 사내가 정신을 차리고 등 뒤에서 단검을 휘둘러왔다.

"주... 죽어버려!"

"누구. 얘?"

따귀를 때려대던 사내의 옷깃을 꽉 쥐고, 휙 몸을 돌려 방패로 삼는 진석. 팔을 다친 사내의 일격은 동료의 등을 시원하게 베어버렸다.

"크아악!"

"아, 아닛?!"

"너 평소에 얘 싫어했나보다? 아무리 그래도 친구끼리 칼부림은 좀 아니지."

의도치 않게 동료에게 칼을 휘두르고 당황하는 그. 진석은 등이 후벼파진 사내를 바닥에 내버리곤 앞으로 뛰어들며 상대의 배를 세게 걷어찼다. 90도로 굽어지는 그의 몸.

"크헉!"

"어이쿠. 인사 잘하시네."

바닥을 향한 그의 안면을 노리고 니킥을 날리는 진석. 퍼어억! 뭔가 와지끈하고 안쪽으로 함몰되는 느낌이 났다. 팔을 다친 사내는 얼굴에서 피와 이빨을 흩뿌리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바닥에 쓰러진채 엉망진창이 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리는 진석.

"안면 리모델링... 실패. 미안. 나한테 성형외과의의 자질은 없나보다."

그리고 발을 그 사내의 복숭아뼈 위에 얹은다음, 짓이기듯 강하게 밟아 발목을 분질렀다. 끄허어억 하고 죽어들어가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서 꿈지럭대는 그. 그 다음엔 최초로 발차기를 맞고 나가떨어졌던 사내에게도 다가가 두 팔을 붙잡곤 힘으로 비틀어 말도 안되는 각도로 꺾어버렸다. 뿌드득! 이미 기절해 있던터라 달리 고통을 느끼진 못했을테지만 몸이 들썩 하는게 틀림없이 이걸로 완전 병신이 됐으리라.

"기절해있다고 친구들의 고통을 외면하면 못쓰지.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잖냐. 음~ 난 참 친절해."

세 명의 불량배를 잠깐사이에 가볍게 쓰러트리곤 손을 툭툭 털며 일어나는 진석. 라나는 팅팅 부어오른 얼굴로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이쿠, 이게 누구야.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싱긋 웃으며 그런 라나의 앞에 쪼그려 앉는 진석. 라나는 어깨를 몇 번 들썩이는가 싶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으... 흐윽! 끄으, 으아아앙. 히끅!"

"...아, 아니. 야 갑자기 왜 울어. 내가 딱히 널 괴롭힌것도 아니고 이놈들 짓인데."

"으흐윽, 으아아아앙!"

나원참. 진석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잠시 어쩔줄 몰라하다 바닥에 떨어진 라나의 옷을 주워 그녀에게 도로 입혀주기 시작했다. 엉엉 울면서도 팔이나 다리를 움직여 옷을 되입혀지는걸 받아들이는 라나.

'진짜 애는 애구만. 그것도 철부지.'

마지못해 라나를 안아주고 토닥거리는 진석. 라나는 진석에게 안겨 한참이나 서럽게 울었다.

============================ 작품 후기 ============================

비축분이 없다보니 허겁지겁 쓰자마자 올리게 되는군요. 으아아..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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