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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88화 (88/155)

< --   - 8.   -- >         * 88화 *

지젤도 낙타들을 한쪽에 메어두곤 천막을 치는것을 도왔다.

"그나저나 러셀. 테베이에 가선 뭐할거야?"

"음... 일단 경매장이나 가볼까 하고."

"경매장? 뭔가 살거라도 있어?"

"네가 만든 란비언은 좋은 무기고 잘 쓰고 있긴 한데 내가 구사하는건 쌍단검술이라, 페어가 될만한 다른 단검이나 달리 쓸만한 무구가 있으면 살까 해서..."

"아이참. 그런거라면 나한테 또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되잖아? 러셀을 위해서라면 두 자루고 세 자루고 얼마든지 더 만들어 줄 수 있는데."

듣고보니 그렇긴하다. 이래보여도 지젤은 꽤 실력있는 장인. 딱히 만들어져있는걸 구입할게 아니라 처음부터 주문하여 원하는 형태로 만들수도 있다. 그녀의 솜씨라면 그야말로 맞춤형 무구를 풀세트로 뽑아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어느 세월에 너네 공방까지 돌아가서 만드는걸 기다려? 일단 대충 사서 쓰... 아차."

"왜?"

그러고보니 돈을 챙겨온다는걸 깜빡했다! 시라즈의 왕궁에서 떠나기전에 경매장에서 쓸 돈을 알 유세피나한테 좀 뜯어왔어야 하는데... 이 바보자매가 그녀에게 멋대로 입을 놀리는 바람에 분위기 타서 급하게 떠나느라 그만 깜빡한게 아닌가. 이런이런. 지금 수중에 있는건 금화 이백오십닢 뿐. 여행 자금이라면 차고 넘칠 액수지만, 경매장에서 비싸고 강한 마법 무구라도 나온다면 구입하기에 너무 적은 액수다. 가지고있는 장신구를 다 팔면 돈이 좀 더 되긴 하겠지만 기껏 금화 수십닢 정도일터. 이걸론 한참 모자란다.

"우씨. 떠나기전에 돈 좀 받아온다는게 니들때문에 깜빡했잖아. 여비야 충분하지만 경매장에서 비싼 물건을 살만한 돈은 안되는데."

천막을 치던 진석이 미간을 찌푸리자 한쪽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던 아네트가 대꾸해왔다.

"아. 그러면 전에 받았던 금괴 돌려줄까? 그거면 충분해?"

맞다. 여자로 가장하고 있을때 그녀들을 고용하겠답시고 호기롭게 금괴를 한 개씩 던져줬었다. 개당 금화 천닢씩 두 개니 무려 이천닢. 그거면 충분한 액수가 되겠지만...

"...아니 그 뭐랄까. 한 번 줬다가 도로 빼앗는거 같아서 꼴사나운데."

"에이- 뭐 어때. 러셀이라면 뭐라도 들어줄 수 있는데 이깟 금괴쯤이야. 지금 바로 줄까?"

태연하게 말하며 가방안에서 금괴를 꺼내드는 아네트. 하지만 손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내심 아까운 모양이었다.

"됐다 됐어. 너 다 가져라."

"헤헤."

넉살좋게 웃으며 금괴를 도로 집어넣는 아네트. 그렇게 천막을 치고 하룻밤 머물 자리를 마련하니 하늘이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다. 저쪽의 상인무리들도 불을 피우고 냄비를 걸어 밥을 짓거나 천막을 치며 밤을 보낼 준비를 하는것이 보였다. 진석도 준비해온 장작으로 모닥불을 피우고 불가에 둘러앉아 챙겨온 음식들로 저녁을 준비했다. 하드택, 그러니까 보존을 위해 밀가루와 효모만을 사용해 거의 건빵에 가깝게 구운 단단한 빵과 바싹 훈제한 햄, 그리고 작은 도기에 담아온 절인 과일이었다. 불을 피운 김에 물을 끓이고 건빵을 거기에 불려 죽처럼 만든 뒤 훈제햄과 절인 과일을 곁들여 먹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는 아니었지만 사막한복판이고, 달리 요리 스킬을 가진 대상이 있는것도 아니니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식사 후엔 끓이고 남은 물을 식혀 수통에 옮겨 담고 그릇들을 대충 행궈 식기를 정리했다. 밥도 먹었고 이제 할 것도 없으니 그냥 잠이나 잘까 했는데 아네트가 자기 짐을 뒤적거리더니 왠 큼직한 병을 하나 꺼내들었다. 뭔가 했는데 술병이었다.

"짜잔-"

"짜잔은 무슨 얼어죽을. 술이잖아. 쓸데없는거 챙기지 말라니까."

진석의 타박에도 아랑곳 않고 나무로 된 막잔을 꺼내 나눠주는 아네트.

"술이 쓸데가 없다니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어차피 이런 좁은 천막속에서 셋이 같이 하기도 그렇고, 달리 할 것도 없잖아? 섹스를 제외하고 사막의 긴밤을 보내는 방법은 술이나 도박정도 뿐이라고."

"거 참 퇴폐스러운 동네 아저씨 같은 소리다."

"아무튼 자자. 한 잔 받아."

다짜고짜 병을 기울여 술을 따라주는 아네트. 진석은 으휴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녀가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무슨 술일까 했는데 어째 허여멀건한게 냄새를 맡아보니 곡류를 발효해 담근 양조주 같았다. 살짝 한모금 마셔보자니 맛도 딱 탁주 비슷했달까? 지젤에게도 술이 돌아갔고 진석은 대충 건배를 하고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지젤은 술을 벌컥 들이키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술맛이 이래? 이거 어디서 산거야?"

"응? 그냥 적당히 주점에서 잘 팔리는거 한 병 달랬더니 이걸 주던데."

"잘 팔리는게 아니라 안 팔리고 남아돌던 재고를 준 거 아냐? 뭐 술은 술이니까 마시긴 하겠지만..."

확실히 맛은 뭐 그냥 그랬다. 진석이 아무말 없이 혼자 홀짝 거리고 있자 아네트가 진석의 옆에 찰싹 달라붙더니 반쯤 마신 잔을 가득 채워주며 물었다.

"저기저기. 그나저나 궁금한게 있는데... 러셀은 뭣 때문에 이런 여행을 하는거야? 대지의 눈도 그렇고,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거야?"

"......"

갑자기 핵심을 물어오다니. 하지만 대답하기가 곤란했다. 사실 진석과 르마쿠르 자매는 그닥 관계가 깊은 사이라곤 할 수 없었다. 몸이야 엄청 섞었지만 그저 그뿐으로, 그녀들은 여태까지 진석의 목적이나 행선지도 제대로 모른채 그냥 따라온 것이었다.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방적인 지시도 곧잘 따르고 옆에서 일을 도왔다. 하지만 그녀들도 진석이 뭘 위해 이렇게 움직이고 행동하는건지 지금껏 궁금했으리라. 이런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또 거짓말을 해야하나.'

어째 노상 거짓말만 해온것 같다. 아니, 거짓말만 해온것 같다가 아니라 실제로 거짓말만 해왔다. 하도 이런저런 거짓말을 많이 해와서 이번엔 뭐라고 속여넘겨야 할지 딱히 생각나는 소재도 없었다.

"...노코멘트로 하면 안될까?"

"안-돼."

헤죽 웃어보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아네트.

"그래 러셀. 우리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따라왔는데 조금 정도는 알려줄수도 있잖아? 그렇게까지 말 한 마디 못해줄 일이야?"

지젤도 아네트를 거들며 그렇게 말해왔다. 끄응. 그렇게 나오기냐. 진석은 술잔을 들이키며 잠시 생각을 했다.

'아무리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애들이라도 헤세스모데우스 교단에 대한걸 사실대로 이야기 해주면 어떻게 되려나. 미쳤다며 떨어져 나가는건 아닐까? ...거 괜찮겠는데? 얘기해볼까?'

진석은 대답대신 질문으로 답을 했다.

"그보다 너희들은 왜 이렇게 날 따라오겠다는거야? 너희들 의문대로 너네 둘은 나에 대해 아는것도 없잖아. 이렇게 멋대로 행동하는 정체 모를 남자의 대체 어디가 좋다는거야?"

그 말을 듣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지젤과 아네트. 아네트가 먼저 에헤헷 하고 웃더니 왠지 수줍어하며 대답했다.

"그야... 처음엔 얼굴만 보고 혹했었지만 역시 그쪽이 너무 절륜해서. 응응. 첫눈에 반했달까. 이 남자라면 평생 함께해도 좋겠다! 싶었으니깐."

아니, 보통 첫눈에 반했다는 표현을 이따위로 쓰진 않는데? 뒤이어 지젤도 말을 받았다.

"나야 아네트만큼 그쪽을 밝히는건 아니지만... 확실히 이 정도로 밤일이 훌륭한 상대는 없었으니까. 게다가 대련을 해봤을때나, 여객선에서의 일을 돌이켜 봐도 전사로서의 실력도 우리보다 월등한게 확실하고. 아라파에서의 일만 봐도 그래. 그 누가 그렇게 단시간만에 알 유세피나에게 왕위를 안겨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겠어? 우리야 시키는대로 따르기만 했지만 놀라울정도의 수완이였어. 여러모로 종합해보면 충분히 따를만한 상대잖아? 좋은게 좋은거니깐."

"...이래저래 말해봐야 결국은 그냥 아랫도리 덕이라는 이야기 아냐? 내 가치는 그것뿐이란 얘긴가."

"헤헤- 아냐아냐. 난 러셀에 관한거라면 전부 좋아하니까."

옆에서 가슴을 꾹꾹 들이대며 애교를 떠는 아네트. 진석은 그녀를 무시한채 잔의 내용물을 마저 비우며 둘러댈 말을 떠올렸다. 그런데 저쪽 상인들이 모여있는 무리에서부터 한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오는게 아닌가? 낯선 기척을 느끼곤 그쪽을 향하는 진석과 자매의 시선.

"이야 이거 실례합니다."

터번을 두르고 품이 넓은 상인 차림을 한, 어딘가모르게 얍실한 느낌이 드는 인상의 남자. 얼굴이 길쭉한게 말상으로, 나이는 30대 중후반쯤 되었을까? 그는 진석 일행에게 다가와 싹싹한 태도로 손을 슥슥 비벼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여행중이신가요? 오오, 이거 굉장한 미녀분들이 계셨군요. 헷헤."

"아 뭐... 네. 그런데 그쪽은?"

진석이 묻자 그는 제멋대로 모닥불 옆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대답했다.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저쪽 바고너 상단의 외행수를 맡고 있는 모데라고 합니다. 뭐 말이 좋아서 외행수지 그냥 온갖 잡무담당이지요."

"그렇군요. 저희는 보다시피 그냥 여행자들인데 상단의 외행수분이 무슨 일로..."

"아아. 뭐 별건 아니고 저희는 장사꾼 아닙니까. 이런데서라도 벌 수 있다면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요. 까놓고 말해 호객하러 왔습죠. 혹 뭔가 필요한 물건이나 보급할 물자가 있으시다면 저쪽 파란색 기가 달린 수레쪽으로 오십시오. 이런데서 만난것도 인연이니 가능한 이문 안 붙이고 내어드리겠습니다 헤헤."

남는거 없이 판다는 장사꾼의 말을 누가 믿겠냐. 하지만 진석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이런데서까지 장사를 하려는 의욕이야 인정해줄만 하지만 어차피 내일이면 테베이에 닿을테니 딱히 보급을 해야하거나 필요한 물건은 없었다. 모데는 넉살 좋게 웃어보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다가 진석에게 슬쩍 지나가는 말투로 물어보았다.

"그런데... 옆의 델 그로도 두 분은 동료가 맞으신거죠?"

"네. 무슨 문제라도?"

"아뇨아뇨. 그런게 아니라 워낙 미인이셔서, 이것 참 제가 주책없이 헤헤헤. 그럼 가보겠습니다. 이제부터 다른 상단 친구들하고 카드나 주사위로 판 벌이며 놀거라 꽤 늦게까지 깨어있을테니 필요한게 있으면 언제든지 와서 찾아주십시오. 그럼 이만."

슬쩍 목례를 하고 터덜터덜 수레쪽으로 사라지는 모데. 아네트는 그 모데가 한참 멀어지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뭐야 저건?"

"뭐긴, 장사하러 왔다잖냐. 너 뭐 필요한거 있어?"

"아니. 반나절만 더 가면 테베이인데 여기서 뭘 살 필요는 없는걸."

고개를 젓는 아네트. 하지만 지젤은 잔에 든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나직히 말했다.

"장사하러 온게 아니야."

"응?"

진석이 지젤을 돌아보자 그녀는 아까 봤던, 여전히 한창 매음중인 천막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여자들. 방금 온 모데라는 남자가 속한 상단의 소유물인 모양인데? 다들 천막에 들어가기 전 파란기가 달린 수레쪽 사내들에게 돈을 내는걸 보니 아마 상단에서 굴리는 노예들인 모양이네."

"어두운데 여기서 그게 보여? 눈도 좋다."

하긴 델 그로도는 시력이나 밤눈이 인간보다 훨씬 좋았지? 그 점을 떠올리는 진석. 지젤은 말을 이었다.

"아마 이쪽에 온것도 우리가 러셀의 노예는 아닌가 확인해보러 온 거 같은데?"

"뭐?"

"자기 입으로 물자를 팔겠다고 했지만 그건 그냥 표면상의 둘러대기 일테고... 저쪽 상단의 주력 수입은 보나마나 노예 매춘이겠지. 그리고 혹시 우리가 러셀의 노예였으면 적당히 교섭해서 수입을 나누는 조건으로 중간에서 매춘 알선이라도 할 생각이었을걸?"

아... 그런거였나. 지젤의 설명을 듣고보니 방금전 굳이 르마쿠르 자매가 동료라고 확인해 본 모데의 태도도 이해가 갔다. 아네트는 손에 쥐고 있던 병을 바닥에 쿵 소리가 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왠지 기분나쁜데? 언니. 나 가서 저거 패고 와도 돼?"

"관둬. 뭐 우리가 그런 취급 받는게 한 두번도 아니고."

고개를 저으며 아네트를 만류하는 지젤. 하긴, 리베라의 세계에서 선도 종족은 인간이다. 델 그로도야 전사의 일족이나 용병으로 이름높긴 하지만 그래도 비주류는 비주류. 그녀들도 부당한 대접을 받았던 경험은 분명 있었으리라.

"에이 정말. 내가 밝히긴 해도 아무나 상대하는건 아니라고."

잔에 술을 가득 자작하더니 단숨에 벌컥 들이키는 아네트. 그렇게 연거푸 두 잔을 들이키더니 자기도 모르게 끄으윽 하고 걸게 트림을 하다, 진석의 눈치를 보며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새침을 떨었다.

"어머나, 급하게 마셨더니 그만."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뭔 내숭이야 내숭은. 너네라면 눈 앞에서 방귀를 뀌어도 신경 안써. 그보다 너희들 먼저 자. 불침번은 내가 설테니까. 여기야 다른 사람들도 많고 별일은 없겠지만..."

그리고 어차피 플레이어는 안 자도 아무 지장없다. 하지만 그녀들은 필요 최소한은 잠을 자야 또 내일 길을 떠날게 아닌가. 자신이 불침번을 주도해서 서는것 쯤 제이스, 아르데나와 다닐때도 자주 하던거라 익숙해져 있었다. 그렇다고 아예 안잘건 아니고 이러다 적당히 불가에 앉은채 졸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배시시 웃으며 진석의 잔을 채워주는 아네트.

"이러니저러니 해도... 신경써주는구나, 헤헤."

신경은 무슨. 안자도 되는 사람이 불 안꺼지게 지키고 있는것쯤 별 어려운것도 아니고. 지젤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잘때 저쪽에 다녀와도 신경 안쓸테니까. 남자들은 괜히 구속하려 드는 여자들 싫어하잖아? 그쪽 방면에 대해선 쪼잔한 소리 안할테니까 아네트나 내 눈치 안봐도 돼."

"......"

참 쓸데없는 배려심이다, 눈물이 다 나겠네. 아니 그러니까 안간데도?

두어시간 후. 르마쿠르 자매는 천막안에서 푹 잠들어 있었다. 지젤은 스으스으 낮은 숨소리를 규칙적으로 내며 자고 있었고 아네트는 이따금 드르렁 거리며 코를 골거나 중간중간 바득거리고 이를 갈기도 했다. 자매인데도 잠버릇은 완전 딴판이었다.

'그나저나 장작이 별로 없네.'

아까 이른시간부터 불을 피우기 시작해서 그런지 남은 장작이 얼마되지 않았다. 그리고 워낙 잘 마른 장작이라 그런지 화력은 좋지만 진짜 금방금방 타는게... 이대로라면 모닥불 크기를 줄인다고 해도 앞으로 한두시간 내로 불이 다할 것 같았다. 주변에 수풀이 우거져 있다면야 나뭇가지라도 왕창 꺾어다 땔감으로 쓰면 되겠지만 여긴 사막 한복판 아닌가. 불을 피울 소재도 귀중한 곳이었다.

'할 수 없지. 아까 저 모데인가 뭔가 하는 양반한테 가서 장작 한 묶음 정도만 사올까.'

이만하면 불을 안 피우고도 밤을 보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쌀쌀했다. 처음부터 불을 안피웠으면 모를까 중간에 꺼트리면 더 춥게 느껴질것 같았다. 진석은 적당히 돈을 챙겨 수레들이 모여있는곳으로 향했다. 아직도 뭔가 왁자지껄한게 저들도 술을 마시며 놀거나 아까 말한대로 뭔가 도박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과연 가까이 가서 보니 여기저기 불을 피워놓고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떠들거나, 한쪽에 자리를 펴놓고 카드놀이나 주사위 노름을 하고 있었다. 파란 기가 달린 수레쪽으로 가보니 수레 뒤쪽에 걸터앉아 수첩에 뭔가를 적으며 계산하고 있는듯한 모데의 모습이 보였다.

"...음? 이거이거, 뭔가 필요한게 있으신가요?"

모데는 진석이 가까이 다가가자 금새 기척을 알아채고 수첩을 품에 넣으며 싹싹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장작이 얼마 안남아서, 한 묶음 살까해서요."

"아아, 장작 말입니까. 자... 여기. 은화 한 닢입니다. 이게 생각보다 금방금방 타죠? 일광에 바짝 말린 장작은 정말 후딱 잘 타거든요."

은화 한 닢이라니. 고작 장작 한더미 치곤 더럽게 비싸다. 마을에서 사던것보다 거의 두 배는 되는 값이지만... 진석은 군말없이 값을 치뤘다. 계산을 할때 진석의 돈주머니 안에 금화가 잔뜩 들어있는걸 본 모데의 눈이 빛났다.

"그나저나 그거 생각은 없으십니까?"

"그거?"

진석이 되묻자 아니 이 사람, 알거 다 알면서 뭘 순진한척 하냐는 듯한 음흉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모데. 그는 손으로 저쪽에 모여있는 천막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까놓고 말해 여자말입니다."

"......"

"뭐... 그렇게 미인 동료를 둘이나 대동하고 다니시는걸 보니 필요없으실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가끔은 간식도 먹어줘야 하는법이죠 헤헤헷."

히죽거리며 검지와 엄지 손가락 두개를 삭삭 문질러 보이는 모데.

'글쎄다...'

어차피 가상의 게임속이니 매춘을 하거나 창녀를 상대하는데 별 거리낌이 있는건 아니었지만, 아네트 말처럼 이런 열악한데서 하는건 별로였다. 바로 어제나 그제만 해도 호사스런 왕궁에서 알 유세피나와 르마쿠르 자매를 실컷 상대했던터라 그렇게 궁한것도 아니었고. 그리고 아까 한참전부터 수많은 남자들이 저 천막들에 제 집처럼 들락거렸는데 이런 뒷순번으로 하러 들어가기도 뭔가 생리적으로 찝찝하지 않은가. 진석은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혹시 무구나 약품은 취급합니까?"

무구는 별 기대 안하고, 혹시 약 종류가 좀 있나 싶었다. 물론 진석은 약학을 익히고 있었지만 제조키트는 교단에 두고 온데다가 여긴 뭐 약초 구하기도 힘든 사막아닌가. 혹시 하는 생각에 물어보았다.

"어이구, 이거 실례. 찾으시는 물건을 보니 제대로 된 모험가신가 보군요. 그런게 이걸 어쩌나. 약품류는 워낙 비싸서 저희가 취급을 안하고 있고... 간단한 호신구라면 몇 개 있긴 하지만 성에 차실런지 모르겠네요."

약은 없고 무구는 있다라. 쯧. 기대와 다른 대답에 속으로 혀를 차는 진석. 모데는 한쪽에 세워진 수레 안으로 들어가더니 금방 뭔가를 끄집어 내왔다. 모데가 꺼내온것은 경화 가죽을 겹쳐 만든 가죽갑옷과 넥가드였다.

"이쪽의 가죽갑은 안에 가죽 사이에 철사망을 겹쳐 넣은거라 어지간한 베기는 다 막아낼 수 있을겁니다."

어지간한 베기라는 단어에 강세를 두는 모데. 물론 철사망을 짜 넣었으니 베기나 타격은 그런대로 막는다 쳐도... 찌르기나 화살엔 약하겠지. 한 번 들어서 살펴보니 몸에 걸치고 뒷끈을 조여서 입는 형태라 탈착은 간단했지만 가죽이 그닥 두껍지 않고 안에 들어간 철사망의 철사 두께도 그닥 굵지 않은게 방어력은 크게 기대할만한건 아니었다. 하긴 원래 가죽갑이라는건 중상입을걸 경상으로 줄이자는 수준의 물건이니까.

'방어력을 기대할거면 금속 갑옷을 입고말지. 물론 여긴 사막이니 그랬다간 철판에서 구워지는 고기신세가 되겠지만.'

"이야. 맞춘것마냥 사이즈도 딱 맞네요. 잘 어울리십니다. 역시 간단한거라도 몸을 지킬만한건 좀 걸쳐줘야죠."

진석은 모데의 말을 대충 흘려들으며 다음은 넥가드를 살펴보았다. 넥가드는 목 틈새를 찔리지 않도록 목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통은 중갑에 딸려있는 파츠인데 이것만 따로 있는걸 보니 혹 어느 갑옷에서 따로 떼어낸게 아닌가 싶었다. 손바닥만한 철판이 목 전면을 가리게 되어있고 가죽으로 감싸진 동그란 금속제 연결구가 붙어있었다.

'이런건 보통 갑옷에 끼워맞추게 되어있는 파츠라... 이것만 하고 다니면 뭔 개목걸이 마냥 덜렁덜렁 거려서 꼴보기 싫겠군.'

평소라면 이런 물건 안 샀을테지만, 빈손으로 돌아서기도 뻘쭘해 괜시리 모데에게 가죽갑옷을 구입하겠다고 말하고 말았다.

"뭐 넥가드는 됐고... 이쪽을 사죠."

"이야 이거 감사합니다. 금화 한 닢 되겠습니다."

이딴걸로 금화를 한 닢이나 받아먹다니. 딱봐도 그거 반이면 퉁치겠구만. 장작도 그렇고 아주 기본이 두배구만? 하지만 기왕 사겠다고 한거 괜히 좀스러워 보이기 싫어 돈을 꺼내 값을 치뤘다. 모데는 생각치 않은 수입에 굽신거리며 좋아했다.

"뭐 달리 필요한건 또 없으신지요?"

하지만 다른건 다 있다. 뭐 기름이나 램프, 성냥 같은 기본적인 건 물론이고, 혹시 몰라 밧줄이나 방수포 같은것 까지 얻어왔으니까. 진석이 고개를 좌우로 젓자 모데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럼... 정말 여자 생각은 없으십니까? 슬슬 마무리할 때가 되어가니 특별히 반 값에 해드릴 수 있는데."

아따 그 양반 참 끈질기네. 진석은 가보겠다고 말하며 장작과 가죽갑옷을 든채 자리를 털고 돌아섰다. 일행쪽으로 돌아가는 진석의 뒤로 모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라도 생각나거나 뭐 또 다른게 필요하면 찾아주십쇼!"

음~ 억척스럽다. 장사꾼이란 역시 저런건가. 진석이 돌아와서 가죽갑옷을 내려놓고 모닥불에 장작을 몇 개 더 던져넣자 천막 안쪽에서 지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방 돌아왔네. 안하고 온거야?"

"...뭐야. 자는거 아니었어?"

지젤이 눈을 부비적 거리며 천막에서 기어나와 부츠를 신었다.

"응... 아니, 다녀오면 불침번 교대해주려고 했지. 이제 러셀 들어가서 자."

아네트는 코를 드렁드렁 골며 잘도 자는데 그래도 확실히 언니 지젤쪽은 조금 개념이 있긴 있구나. 진석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난 괜찮으니까 들어가서 다시 자. 나도 이러다가 알아서 잘거니까 신경쓰지 말고."

"후후. 아네트 말대로네. 신경써주는거야?"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진석의 옆에 바싹 붙어앉는 지젤.

"신경은 무슨. 난 원래 잠이 적어."

적다기 보단 아예 안자도 무관한걸. 물론 그렇게 말할 순 없으니 대충 둘러댔지만 지젤은 빙긋 미소를 지어보이며 진석에게 몸을 기대어왔다.

"그럼 이야기나 좀 할까?"

"또 무슨 이야기?"

"아까 하던 이야기. 러셀의 여행의 목적은 뭐고 또 무슨일을 하는건지 말야. 저쪽 상인 때문에 방해가 들어와서 중간에 끊겨 못 들었으니까."

도중에 끼어들어왔던 모데 덕분에 이 이야기는 어떻게 그냥 흘려넘기나 했더니... 얘는 자다 일어난 애가 참 기억력도 좋다. 끄응. 지젤은 어깨를 기댄채 뭔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이쪽을 올려다 보는데 어떻게 대충 얼버무려 넘어갈수도 없고. 진석은 잠시 생각한 후에 말문을 열었다.

"세계를 지킨다, 혹은 멸망시킨다. 이 선택이 자신의 손에 달려있다면... 지젤. 너는 어느쪽을 선택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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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젠장!"

푸화악! 진석의 눈 앞에서 모래가 산산히 솟구치며 지면에서부터 창같은 촉수가 위로 솟아오른다. 단단히 경질화 되어 그야말로 돌처럼 굳어진 촉수. 저 무시무시한 힘과 속도라면 사람의 몸뚱이 따위 간단히 꿰뚫을듯 했다. 실제로 진석이 타고있던 낙타는 방금전 저 촉수에 꿰뚫려 죽었다.

"빌어먹을 샌드웜!"

이를 악물며 언월도를 치켜든채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촉수의 공격에 대비하는 지젤. 지금 진석 일행을 습격한 상대는 모래속을 물속처럼 자유로이 헤엄쳐 다니는 몬스터 샌드웜이였다. 날이 밝고, 쉼터를 떠나 한참 테베이로 향하는 도중 느닷없는 습격을 당한것이었다. 샌드웜은 흔히 마주치는 몬스터는 아닌데, 어째 재수없게도 딱 걸리고 말았다. 진석이 탄 낙타가 첫번째 희생양으로 아래에서 솟구친 촉수에 목이 꿰뚫려 즉사해버렸다. 셋은 바로 침착하게 대처에 들어갔지만 낙타들은 놀라서 우왕좌왕 거렸고, 샌드웜은 주변을 돌며 이따금 촉수를 한 번씩 뻗으며 이쪽을 가늠해오고 있었다.

"씨... 땅속에 있으니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혀를 차는 진석. 샌드웜은 오징어처럼 생긴 몬스터인데, 모래속을 헤엄쳐 다니다 위에서 진동이 감지되면 다리나 다름없는 촉각을 지면으로 뻗어 먹잇감을 사냥하는게 특징이었다. 하지만 본체는 땅속에 숨은채 지면 위로는 촉각만을 뻗어 공격해오니 땅위에 있는 진석과 르마쿠르 자매로선 속수무책이었다.

"어, 어떻게 해?!"

아네트는 자신의 낙타와, 지젤이 타고 있던 낙타 두 마리의 고삐를 쥐고 겨우겨우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둔채 당황해했다. 그러나 진석도 지금 당장은 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단 눈 앞에나 있어야 잡던 말건 할거 아닌가. 그때 지젤이 대답했다.

"보통은 낙타 한 두마리쯤 희생양으로 던져주면 적당히 먹고 만족해서 돌아간다는데..."

안 그래도 진석의 낙타가 이미 당했다. 하지만 사람은 셋인데 여기서 한 마리라도 더 잃으면 테베이까진 걸어서 가야한다. 못 갈 정도로 먼 거리는 아니지만 지금부터 도보로 가려면 거의 하루 꼬박 걸릴것이다. 진석은 이를 갈았다.

"웃기지마. 망할 몬스터 주제에, 살려서 보내줄 것 같아?"

"어쩌려고?!"

진석은 최대한 지젤과 아네트에게서 멀어지면서 최대한 바닥을 강차게 걷어차며 달렸다. 그러자 과연 진석의 주변에서 촉각 세개가 연달아 솟구쳐 올랐다.

"시클론!"

란비언과 흑철단검을 뽑아들며 시클론으로 능력치를 상승시키는 진석. 조금 전까진 빨라보이던 촉각의 공격도 순간 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촉각때문에 솟구친 주변의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가 손으로 잡을 수 있을것처럼 느껴졌다.

"어쩌긴 뭘 어째? 몸통이 안 보이면 보이는것만이라도 조져야지, 낙타값 물어내 이 자식아! 오에스테!"

자신을 노리고 찔러오는 성인 허벅지 두께만한 촉각들 사이로 몸을 날리며 원무를 추는 진석. 진석의 회전을 따라 주변의 모래들 역시 둥글게 소용돌이 치며 흩날렸다. 파바밧. 검날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를 따라 굵직하고 단단한 촉각들은 단번에 절반가량이 잘려나가며 거무튀튀하고 끈적한 점액을 쏟아냈다.

"기이이~!!!"

땅속에서부터 귀를 바늘로 찌르는것 같은 초음파 비슷한 괴성이 들려왔다. 큰 피해를 입은 샌드웜이 생각치도 못한 고통에 비명을 지른것이었다. 촉각들은 펄떡펄떡 제각기 살아있는 생물처럼 날뛰며 사방에 점액을 뿜어댔다.

"지랄을 한다. 한 번 더!"

진석은 샌드웜의 촉각들이 거칠게 날뛰는것도 아랑곳 않고 다시 한 번 오에스테로 원무를 추어 그것들을 베어냈다. 촉각들 중 두 개가 연속으로 같은 자리를 베이며 토막나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완전히 잘려나가고도 여전히 펄쩍거리며 날뛰는 그 촉각의 토막들은 흡사 갓 잡혀 뭍에 올라온 생선을 연상시켰다. 나머지 촉각 하나도 두 군데나 크게 잘려 너덜너덜해져 제 기능을 못할것으로 보였다. 부상이 고통스러운건지 땅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힘없이 늘어지는 그 촉각.

"러셀! 뒤!"

"위험해!"

그때 지젤과 아네트가 진석을 향해 동시의 경고의 외침을 보내왔다. 이번엔 진석의 뒤에서부터 촉각 네 개가 동시에 솟아올라 등을 노리고 찔러왔다. 두개는 아래쪽에서부터, 두개는 높이 솟아올라 위에서 아래로 휘어지듯 내리 찌르는게 진석의 몸뚱아리따윈 순식간에 박살을 내겠다는듯한 매서운 기세였다. 하지만 진석은 빠르게 돌아서며 양손에 쥔 단검에 힘을 넣었다.

"회를 떠주마, 토르멘타!"

그리고 푸억 푸억하고 살덩이를 내리치는 무거운 파육음이 연달아 울려퍼졌다. 그 두껍고 매서워보이던 촉각이 초고속의 난무에 사정없이 난자당하며 갈려나가고 있었다. 검은 점액질이 사방으로 튀며 토막난 촉각의 파편이 흩날렸다. 르마쿠르 자매는 고작 단검 두자루로 샌드웜의 촉각을 그야말로 갈아버리는 진석의 모습에 입을 쩍 벌리고 감탄했다.

"마, 말도 안 돼.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거야 저게?"

믿을 수 없다는듯 고개를 저으며 혀를 내두르는 아네트.

"러셀..."

지젤은 진석의 이름을 낮게 읊조렸다. 문득 어젯밤에 그와 나누었던 회화가 떠올렸다.

"세계를 지키거나... 멸망시킨다고?"

"그래. 너의 선택으로 실제로 이 둘 중 하나가 결정 된다면 어느쪽을 고르겠어?"

뜬금없는 질문. 이 남자는 왜 이런 질문을 하는걸까? 지젤은 의문을 느꼈지만 뭔가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며 지극히 상식적인 대답을 했다.

"그야 물론 지킨다 쪽 아냐? 굳이 세계를 멸망시킨다고 뭔가 얻을 수 있는건 아니잖아."

"그럼 양쪽 다 뭔가의 보상이 생긴다는 가정이 붙으면 어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세계가 멸망하면 다 쓸모 없잖아. 그보다 왜 이런 엉뚱한걸 묻는거야?"

대답대신 모닥불을 지긋이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짓는 진석. 지젤은 그 모습에 아주 약간이지만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지금까진 그저 좋은 밤상대이자, 훌륭한 전사이고, 한켠으론 무른 구석도 엿보이던 이 인간 남자가... 지금은 왠지 모르게 두렵고 흉흉한 존재로 느껴졌던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내가 하는 일은 그 양쪽 모두와 관련되어 있거든. 이만하면 설명이 되었을까."

지젤이 짧은 상념에서 돌아왔을때, 완전히 갈려나가 걸레짝이 된 촉각 네 개와 끈적하고 검은 점액을 뒤집어써 엉망진창이 된 진석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으엑 퉤! 입에 들어갔어! 퉷퉷!"

입에 샌드웜의 점액이 들어갔다며 요란을 떠는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도저히 어제의 그 불길함을 주었던 상대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진석의 땅 주변이 왠지 드드드 흔들리나 싶더니 땅속에서부터 뭔가 거대한 형체가 솟구쳐 올랐다!

"허, 본체의 행차이신가?"

"기이이이이-!!!"

족히 4~5미터는 될법한 묵직한 거체. 정말로 오징어를 연상시키는 생김새를 한 갈색의 샌드웜은 진석의 공격을 견디다 못해 직접 땅위로 올라온 것이었다. 원래는 먹잇감을 쓰러트리고 안전이 확보되었다 싶을때 식사를 위해서만 땅위로 올라오는 샌드웜이었지만 지금은 진석의 맹렬한 공격에 분노하여 올라온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그.. 미리안은 좀 더 나중에야 다시 나올 예정입니다. 일단 주인공이 거기까지 돌아가야 하니까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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