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93화 (93/155)

< --   - 8.   -- >         * 93화 *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의 경사는 아래로 기울어지는게 점점 땅 속 깊이 들어가는듯 했고 공기 역시 점차 서늘해졌다. 그렇게 한 20여분쯤 쭉 들어갔을까?

'이제 몬스터 잔해같은건 안보이네.'

동굴의 일자형 길을 따라 여기저기 드문드문 보이던 뼈들도 이젠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앞서 이 길을 지나간 거인들이 어떤이들인지는 몰라도 여기까지 들어오며 대략 일백에 가까운 몬스터를 해치웠을터.

'만약 내가 혼자 이걸 뚫고 들어오려고 했다면 고생깨나 했겠군.'

아무리 실력이 좋은들 이런 곰만한 덩치의 몬스터들이 사방에서 포위하고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역시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을터. 진석은 그런 생각을 하며 동굴을 나아가는데 어라 이게 뭔가.

"갈림길?"

어둠속에서 양쪽으로 나뉘어진 갈림길이 나타났다. 정확히 딱 반으로 나뉜듯한 두 갈래의 길. 진석은 갈림길 앞에 서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거 어느쪽으로 가야하지?'

품속에서 피터슨 메모의 해독본을 꺼내 횃불에 비추어 봤지만 역시 여기엔 동굴까지 찾아오는 길과 가장 깊은곳에 어떤 비보가 있을거라는 말 이외엔 더 이상 아무런 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끙. 찍기는 별로 자신 없는데.'

그래봐야 둘 중 하나. 확률은 반반이다. 바닥에서 돌멩이를 하나 집어드는 진석. 두 갈림길의 정 가운데를 향해 돌을 휙 던졌다. 땅에 떨어진 돌은 덱데구르 몇바퀴를 구르더니 왼쪽 갈림길 쪽에서 멈춰섰다.

'뭐 그럼 왼쪽부터.'

망설임 없이 왼쪽길로 들어서는 진석. 원래 어떤일의 선택이 어려울땐 가장 단순한걸로 결정하는게 속 편한 법이다. 왼쪽길로 들어서서 좀 걷기 시작하자 꽤 넓던 동굴의 길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점차 좁아지기 시작했다.

'어라? 잘못 골랐나? 길이 너무 좁아지는데.'

길은 그 폭도 높이도 검차 줄어들어 정말 딱 한 사람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아졌다. 이렇게 좁은 길이라면 앞서 동굴을 통과했을거라 생각되는 거인 코디악족의 전사들도 이쪽을 지나가진 못했으리라.

'...왠지 불안한데.'

점점 좁아지는 길을 들어가던 진석은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들어 몸을 돌려 아까의 갈림길쪽으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길은 앞서 온 거인들이 뚫어놓아 몬스터와 전투를 벌일 일 없이 안전하게 들어왔는데, 이쪽 좁은길은 그들이 들어가지 못했을테니 안전이 확보가 되지 않았을테고 막무가내로 들어가보기 꺼려졌던것이다.

'게다가 이쪽은 너무 좁아. 딱 한사람 서서 지나갈 공간인데 만약 중간에 뭐가 나타난다고 하면 전투를 벌이기도 협소하고.'

그래서 오른쪽 길은 어떤가 확인을 해본 후 나중에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갈림길로 돌아온 진석은 반대편인 우측의 길로 들어섰다.

'어라 이쪽은... 이거 다 철광의 원석인가?'

우측으로 들어서자마자 동굴 벽이나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들이 꽤나 붉으스레한걸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 이것들만 캐도 철광 꽤나 나오겠는데?'

그리고 우측의 길은 아까 왼쪽처럼 점차 좁아지는게 아니라 반대로 넓어지고 있었다. 단번에 확 넓어지는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지금까지의 길보다는 너비나 높이가 여유가 있었다. 동굴 입구의 몬스터들을 다 쓰러트렸던 거인들도 좁아서 지나갈 수 없는 왼쪽이 아니라 분명 이쪽으로 지나갔으리라.

'그럼 이쪽은 일단 몬스터 걱정 할 필요없는 안전한 길이라는건가? 흠흠.'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씩 굽어져 있는 길을 따라 안으로 한참을 걸어들어갔다. 그렇게 한 10분쯤 쭉 걸어들어갔을까? 거의 직각에 가깝게 딱 꺾어진 길목이 나타났다. 아주 미약하지만, 그 안쪽에서부터 희미한 빛같은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라... 이 안쪽에 뭐가 있는건가?'

드디어 뭔가를 보게되나 싶어 두근두근 기대하며 길목을 벗어나 그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진석의 눈 앞에 나타난것은 거대한 공동이었다.

'...뭐야? 꽤나 넓은데?'

거의 여느 학교 운동장만한 수준의 공동. 천장의 높이도 거진 30미터쯤 될까?

'산 안쪽에 이런 빈 공간이 들어서있다니. 하긴 뭐 산이 워낙 크긴 하니...'

하지만 지진같은게 나면 와라락 무너지진 않을까? 아니 이 부근의 암반 전체가 철광원석이니 튼튼해서 괜찮으려나? 그런생각을 하며 안쪽으로 발을 딛는 진석. 그러고보니 공동 안 여기저기에 희미하게 빛을 뿜는 커다한 원석과 바위들이 여기저기 박혀있었다.

'허, 야광석들인가. 저것들 덕분에 빛이 보였던 거였군.'

어둠속에선 스스로 빛을 내는 야광석들. 순도가 높은 야광석은 아닌지 썩 밝은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사물의 형태나 기본적인 색은 식별할 정도의 밝기는 되었다. 순도가 높은 야광석은 그 자체로도 꽤 비싼값을 받을수도 있다. 그나저나 여긴 그냥 이 뻥 뚫린 공동뿐인가? 뭐 다른건 없는거야? 진석이 그렇게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서서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찰나,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사람 형태의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

뭔가 싶어 다가가서 보자니... 시체였다. 여기까지 들어오며 본것과 같은 뼈만 남은 잔해. 겉에 걸쳐입은 갑옷때문에 어두침침한 이 안에선 멀리서 봤을때 그것이 마치 온전한 사람의 형체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 크기는... 거인족의 시체군.'

거의 3미터에 달하는 유골과 그 겉에 입혀진 큼직한 갑옷. 그런데 잘 살펴보니 왼쪽 팔과 어깨 부위가 보이지 않았다. 뭔진 몰라도 이게 사망 원인이었을까? 그리고 그 유골 옆엔 대검이 떨어져 있었는데 이 역시 날의 길이가 2미터를 가볍게 넘는게, 거의 무슨 건물 기둥으로 써도 되겠다 싶을 수준이었다. 이름 모를 거인족 전사의 무기였던 그 대검은 치열한 사투를 증명하는듯 군데군데 이가 빠져 있는게 보였다.

'허, 저기도 있네?'

주변을 좀더 잘 살펴보니, 거인들의 유골은 이것 하나 뿐만이 아니라 두 구나 더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하나는 두 다리가 없었고, 다른 하나는... 아예 몸통이 반토막 나 있는채였다.

'...뭐야 대체?'

일백에 달하는 몬스터들을 몽땅 쓸어내며 왔을 강력한 거인족 전사 셋을 일방적으로 죽인 뭔가가 여기에 있었단 말인가? 이런 거인족 전사 몇명만 있어도 어지간한 소대나 중대 규모의 병력 따위도 가볍게 격퇴하겠구만. 도무지 여기서 무슨일이 있었던건지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시체들의 조사를 마치고 공동을 좀 더 둘러보려는 찰나, 갑자기 바닥에서 우르릉 하는 진동이 느껴졌다.

"...?!"

진동은 연속적으로 느껴지나 싶더니 저 아래쪽에서부터 분명 이 위를 향해 직선으로 쭉 올라오고 있었다.

'뭔가 온다!'

일단 자리에서 벗어나 동굴벽 가까운 쪽으로 몸을 피하는 진석. 그리고 수초 후, 방금전까지 진석이 딛고 서있던 바닥에서 뭔가가 튀어나와 위로 솟아 올랐다!

"가아아아아-!"

땅에서 솟구쳐 오른것은 몸통의 두께가 거의 두아름은 될듯한 아주 두껍고 기다란... 뱀, 아니 벌레? 뭔가 지렁이를 연상시키는 두껍고 기다란 벌레 같은것이 허공으로 높이 솟구쳐 올랐는데 그 몸 길이만 해도 장장 십여미터는 되었다. 머리라고 생각되는 부분엔 녹색으로 빛나는 네개의 눈과, 상어의 이빨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치아가 몇백개나 돋아있는 칠성장어의 흡반같은 주둥이가 달려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하나의 눈은 예전 상처를 입었다 아문것인지 희미하게 검상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커다란 이빨들 사이로 큼직하게 솟은 두 개의 큰 송곳니 중 하나는 어째서인지 반으로 잘려나간 채였다. 땅 위로 올라온 그 벌레는 몸을 한참이나 마구 뒤틀며 표효하더니, 이내 쉭쉭거리며 진석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허..."

외형이 뱀이나 벌레처럼 길쭉하고 머리가 흉측해서 그렇지 잘 살펴보니 놈의 몸은 비늘인지 갑각같은걸로 쫙 뒤덮여 있었다. 야광석의 빛을 반사하는 그 광택을 보자니 흡사 단단한 금속질의 느낌이었다.

"잘은 모르겠다만 네가 이 거인족 전사들을 쓰러트린 장본인인가 보지? 눈에 남은 검흔이랑 반토막난 송곳니는 이들이 남긴 상처쯤 되나?"

"가아앗-!"

진석이 말을 걸자 벌레는 짧게 표효하더니 뱀처럼 지면을 스스슥 스치며 이쪽으로 빠르게 몰아쳐오기 시작했다! 어둑한 내부에서 바닥을 물결치듯 순식간에 육박해오는 그 모습은 어딘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젠장!"

횃불을 대충 벽에 세워놓고 뒤로 물러서며 란비언을 뽑아드는 진석. 그 짧은 새에 벌레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함으로 이미 진석의 앞까지 육박해 풀쩍 뛰어올랐다. 수백개의 이빨이 촘촘히 돋은 시뻘건 아가리를 쩌억 벌려오는 모습은 절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렇구만, 이제서야 거인족 시체에 남은 상처도 이해가 갔다. 단순히 힘싸움이라면 밀리지 않을 그들이라고 해도 이런 재빠른 공격에 팔이나 다리가 물려 뜯겨 나갔다면 어쩔 도리가 없었겠지.

"화염화살!"

빠르게 옆으로 피해내며 벌레의 입 안쪽에 화염화살을 쏘아넣는 진석. 한껏 벌린 벌레의 아가리가 컸던만큼 화염화살은 세 발 다 그 안쪽에 명중했지만 픽픽 하고 겉만 살짝 그슬리면서 사라지는게 피해는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벌레는 공격이 빗나가자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더니 이번엔 진석의 다리쪽을 노리고 입을 벌린채 두번째 돌진을 시도해왔다.

"벌레새끼는 이거나 먹어!"

발치에 있던 꽤 큼직한 돌덩이를 발로 뻥 걷어차 벌레의 입안으로 차 넣는 진석. 철광의 원석이나 다름없는 돌이니 엄청나게 단단할터! 하지만 벌레는 입안으로 들어온 단단한 돌덩이를 콱 물더니 아주 가볍게 와사삭 부숴 꿀떡 삼켜넘겼다.

"...뭐야?!"

당황하면서도 어찌어찌 벌레의 돌진을 피해넘기는 진석. 아니 방금 돌덩이를 씹어 먹은거 맞지? 그것도 철광원석이나 다름없는 돌을. 그리고보니 놈의 몸 겉면엔 금속질의 비늘인지 갑각같은게 잔뜩 돋아있고...

"설마 이 철광석들이 네놈 주식이냐?"

"가아아아-!!"

벌레는 진석이 자신의 공격을 연속으로 요리저리 피하며 소소한 반격까지 가한것이 화가났는지 짜증섞인 괴성을 토해냈다. 그리고 재차 이쪽으로 돌진해오나 싶더니, 중간에서 몸을 빙글 회전시키다가 꼬리로 바닥의 돌과 바위들을 세차게 후려친다! 통나무만한 거체로 바닥을 쓸어치니 그 기세에 박살난 돌조각과 파편들이 흡사 산탄처럼 진석에게 쫘아악 날아들었다!

"아니 뭐 이딴!"

이번에도 무식한 돌진으로 공격해 올거라 생각했는데 꼬리로 돌들을 쏘아내다니! 깜짝 놀라 급히 피한다고 피하긴 했지만 그 숫자가 너무 많아 작은 돌조각 서너개가 팔과 다리에 명중해 마치 탄환처럼 박혀들었다.

"크윽! 아퍼!"

큰 피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데미지를 입었다. 이런 공격은 점이나 선이 아닌 면을 통째로 제압하는 공격이라 이짓을 계속 해온다면 다 피하지 못하고 가랑비에 옷 젖듯 체력이 낭비되리라. 벌레는 돌의 산탄을 쏘아내고 나서 재차 진석을 향해 덤벼들었다.

"돌이나 처먹는 벌레주제에... 감히!"

으득. 이를 꽉 문 진석은 시클론을 걸고 벌레를 향해 마주 달려갔다. 그리고 거리가 어느정도 가까워 졌을때쯤, 암살자의 망토를 사용해 투명화를 검과 동시에 라파가를 썼다.

"가앗?!"

눈 앞에서 자기 입안으로 달려 들어올듯 하던 진석이 눈 앞에서 글자 그대로 사라지자 당황하는 벌레. 그리고 다음순간, 녹색의 빛을 발하던 주먹만한 오른쪽 눈 두 개가 퍼억 하고 터져나갔다.

"가아아아아아-!!!"

파앗. 벌레의 눈을 베고 지나간 뒤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진석. 몸의 움직임을 따라 진홍색 망토가 펄럭 휘날렸다. 진석은 눈 두 개가 완전히 박살나 온몸을 뒤틀며 괴로워하는 벌레의 몸통 위로 힘차게 검을 찔러넣었다. 이대로 몸통을 갈기갈기 찢어줄 생각이었다.

"어떠냐? 산채로 회를 떠주... 아, 아니. 이게 뭐야?!"

몸통을 뒤덮은 금속질의 비늘 때문인지, 검날이 제대로 박혀들어가지 않았다! 이건 뭐 숫제 바위덩이를 찌른 느낌이다! 그나마 진석의 어마어마한 무력으로 찔렀으니 검날의 끝이 조금 파고들기라도 한거지, 어지간한 힘으로는 그냥 튕겨나갔으리라.

"가아앗, 카아아-!!"

벌레는 자신의 눈 두개를 앗아가고 막 몸통까지 찌르는 진석에게 분노하곤 꼬리를 휘둘러 반격해왔다. 진석은 깜짝 놀라 빠르게 뒤로 물러나 그 꼬리를 간신히 피했다. 바로 코 앞에서 후우웅 하고 엄청난 풍압이 일어나는게 정말 저기 스치기만해도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져나가며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만. 철광석 같은걸 처먹고 사니 몸통의 단단함도 강철 수준이라 이건가?'

이래서야 몸통을 향한 공격은 별 재미를 볼 수 없을것 같았다. 자신의 힘으로도 검날이 겨우 한치쯤 박힐까 말까인데 오죽할까. 몸통 두께 두 아름에 길이 십미터짜리 벌레에게 한치짜리 상처, 긁힌 수준에 지나지 않을터. 그런 공격으로는 죽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으리라. 벌레의 눈과 이빨에 남아있던 싸움의 흔적도 이해가 갔다. 거인족 전사들도 몸통을 향한 공격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 역시 머리를 노렸을거다. 그러다 결국 저 돌도 깨먹는 흉칙한 아가리에 깨물려 죽었을테지.

"그러면 남은 눈깔도 후벼파서 일단 장님을 만들어주마!"

꼬리치기를 피해낸 진석이 벌레의 머리를 노리고 달려들려는 찰나, 벌레는 스르륵 미끄러지더니 저쪽으로 도망가 머리를 바닥을 박고 뭔가 콰드득 거리더니 땅속으로 파고드는게 아닌가? 그 행동이 너무나 신속해 땅속으로 파고드는 벌레를 제지할 수 없었다.

"아니 이놈이..."

벌레가 땅 속으로 숨어들고 나서 주변 바닥 여기저기서 우르릉 거리는 울림이 전해져왔다. 이전 사막에서 마주친 샌드웜이 그랬던것 처럼 움직임의 진동을 포착해 공격하려는 건가? 진석은 제자리에 꼼짝않고 선채 벌레의 행동을 기다렸다. 진석이 가만히 기다리자 진동은 저쪽으로 멀어지나 싶더니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오르는것이 느껴졌다. 그쪽에서 흙먼지나 돌조각이 부슬거리며 부숴져 떨어져내렸으니까. 그리고 벌레는 천장에서부터 콰앙 하고 주변의 바위를 무너트리며 진석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렸다!

"뭐, 뭐 이딴 공격을?!"

이거 보통 벌레가 아니다! 틀림없이 바닥의 진동을 포착해 공격을 해오려는 심산인줄 알았더니 벽을 타고 위쪽으로 올라가 천장을 무너트려 돌과 바위를 떨어트린 다음 그 사이에 섞여 덮쳐오다니! 진석은 필사적으로 몸을 날려 낙석과 벌레가 덮쳐오는 범위에서 몸을 날려 벗어났다.

"칫, 네 홈그라운드라 이거냐!"

콰르르릉! 바위와 돌의 잔해들이 쏟아지며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흙먼지가 푸확 하고 흩날려 시계를 가렸다. 그 여파에 한쪽 벽에 세워두웠던 횃불이 휘말려 불은 힘없이 스러져 버렸다. 흐릿한 야광석의 빛만이 남은 공동 안. 진석은 낙석이 떨어져내린쪽을 경계했는데, 흙먼지 사이로 콰드득 하고 또 다시 벌레가 땅속으로 파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우르릉 거리는 진동이 들려오는데 놈은 재차 저편의 동굴 벽으로 이동하는듯 했다.

"이 새끼가... 될때까지 몇 번이고 해보겠다 이거지?"

저 벌레는 눈알을 두 개나 터트린 진석의 공격을 잔뜩 경계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이런식으로 자신이 반격당할리 없는 낙석을 일으켜 공격해오는거겠지. 그야말로 지형의 잇점과 땅속을 파고 다닐 수 있는 자신의 특성을 살린 공격. 정말 보기보다 영악한 놈이다.

'하지만 계속 멍청하니 도망다니거나 순순히 당해줄수는 없는 노릇이고...'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진석의 시야에, 거인의 유해 옆에 놓여진 거대한 대검이 눈에 들어왔다. 검날이나 손잡이나 인간인 자신이 쓰기엔 너무 커다란 무기. 하지만 거인의 힘에 필적하는 자신의 무력이라면 저것을 어렵잖게 휘두를 수 있을터. 진석은 벌레가 벌써 벽을 타고 천장에 다다른것을 확인하며 대검쪽으로 달려가, 그것을 두손으로 쥐어들었다.

"억, 되게 무겁네."

생각 이상으로 상당한 무게였다. 통째로 강철을 부어 만든건지 이 대검 하나가 어지간한 성인 한사람의 체중에 가깝지 않을까 싶었다. 진석은 대검을 빗겨든채, 흙먼지가 부스스 떨어지는 천장을 노려보았다.

"까짓 이판사판이다. 죽기밖에 더하겠냐! 와라!"

그리고 그 순간, 천장이 아까처럼 콰앙 무너져내리며 바위더미와 함께 흉칙한 아가리를 한껏 벌린 벌레가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카아아아아-!!!"

"그렇게 철이 좋냐? 그럼 이거나 먹어라! 순도 100퍼센트짜리다! 라파가아앗!"

벌레가 근처까지 떨어져내린 타이밍에 맞춰, 두 다리에 한껏 힘을 모았다가 라파가의 대쉬로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쳐오르는 진석. 그리고 양손으로 꽉 모아쥔 대검을 온 힘을 다해 후려쳐 올렸다. 콰아악! 대검의 검날과 벌레의 주둥이가 허공에서 서로 맞부딫혔다!

"크으윽!"

거의 돌덩이, 아니 쇳덩이나 다름없는 십미터짜리 벌레의 어마어마한 체중! 그 하중에 마주한 것 만으로도 체력치가 팍팍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 있으랴!

"으아아아아아!"

그야말로 젖먹던 힘을 다해 벌레의 주둥이에 가로막힌 대검을 무조건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손끝에서 찌익하고, 뭔가 갈라지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카아...!"

"꺼져라-!!!"

콰드드드득! 대검의 검날이 벌레의 주둥이를 반으로 가르며 벌레의 몸통까지 파고들어가 근 사분의 일 가량을 양단해 버렸다! 하지만 혼신을 다한 그 참격의 기세도 거기까지. 벌레의 체중에 눌리고 중력에 이끌린 진석의 몸은 다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 위로 무수한 바위와 돌덩이들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제, 제기랄!"

거의 쇳덩이나 다름없는 벌레에게 익숙하지 않은 거인의 대검을 휘둘러 참격을 먹인 반동으로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어쨌건 위에서 떨어져내리는 낙석은 막아야 했다. 급한대로 대검의 검면을 위쪽으로 향하게 들어올리며 자세를 낮추고 머리를 보호했다. 쾅, 쿠와앙! 돌벼락이 진석과 벌레의 위로 무수히 쏟아져 내렸다. 자잘한 돌조각들은 그저 튕겨나갔지만, 그중에서 제법 묵직한 바위 하나가 진석의 머리위로 정확히 떨어져내려 대검의 검날을 강타했다. 째앵하고 검날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컥!"

대검덕에 낙석에 직격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지만 그 충격을 받아낸 것만해도 진짜 죽을맛이었다. 바위가 직격하는 순간의 충격은 뭐랄까. 흡사 중력이 수십배로 강해져 온몸을 콱 짓누르는 느낌이었달까? 체력치가 단번에 빈사수준으로 쭉 떨어지며 순식간에 시야가 흐려졌다.

"으읏... 이런 망할...."

후두둑. 낙석은 곧 멎었다. 하지만 그 여파로 사방에 풀풀 휘날리는 흙먼지. 진석은 바위를 받아낸 충격으로 금이 가버린 대검을 집어던지고 파우치에서 중급회복제를 꺼내 단번에 마셨다. 회복제를 마시자마자 수초만에 빈사 디버프가 사라지며 시야가 회복되고 체력치가 안전권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헉, 헉... 죽는줄 알았네."

그나마 큰 바위가 머리위로 하나만 떨어졌기에 망정이지, 하나라도 더 떨어졌다면 막아냈다 한들 힘이 다해 쓰러져 죽었으리라. 겨우 체력을 회복시키고 옆을 돌아보자 주둥이에서부터 몸통의 일부가 쩌억 반으로 갈라진 벌레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꿈틀거리며 끈적한 체액의 거품을 토해내고 있었다.

"질기구만..."

진석은 바닥에 던져두었던 대검을 다시 집어들어, 벌레쪽으로 질질 끌고갔다. 벌레는 명멸하듯 꺼져가는 녹색 눈동자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진석의 모습을 무력히 지켜보고 있었다. 팔에 힘을 주어 대검을 머리위로 힘껏 들어올린 진석.

"징그럽다, 죽어라!"

그리고 콰아악! 진석은 벌레의 머리통을 향해 대검을 내리쳤다. 콰창하고 금이간 대검의 날이 박살나며 벌레의 머리통도 세로로 쪼개져버렸다. 퀘엑하고 단발마를 내뱉으며 숨이 끊어지는 벌레.

"...휴우."

진석은 긴 한숨을 내쉬며 반동강난 대검을 바닥에 버렸다. 아마도 이쪽의 길은... 처음부터 데드엔드였던 모양이다. 뭐 이쪽 공동엔 달리 출구가 있는것도 아니고 있는거라곤 거인족 전사들의 시체와 이 벌레 괴물 뿐이었으니... 처음에 돌멩이를 던져 고른대로 왼쪽 갈림길이 정답이었으려나. 괜히 이쪽으로 와서 무익한 전투로 힘만 잔뜩 뺀 꼴이다. 진석은 아까 벌레가 꼬리로 산탄처럼 쏘아내 몸에 박혔던 돌조각들을 뽑아내고 잔뜩 뒤집어쓴 흙먼지를 탁탁 털어냈다. 그러고 있자니 갑자기 벌레의 시체가 서서히 빛나는거 아닌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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