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0. -- > * 107화 *
일주일 후의 이른 아침. 진석 일행이 탄 여객선은 드디어 올린스턴 왕국 동부의 항구도시인 세덴에 닿을 수 있었다. 여기서 육로를 통해 서쪽으로 하루 이틀쯤 더 이동하면 목적지인 수도 캐버너였다.
"드... 드디어 땅을 밟을 수 있다냐... 우, 우웁. 속이 이상하다냐..."
"아, 아아. 이제서야 겨우 육지군요."
여객선이 세덴에 도착한 후 화물칸에서 마차를 찾아서 끌고 나오는 진석. 그 뒤를 따르는 두 노예 셀린과 케이트는 안색이 핼쑥한채로 서로에게 기댄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진석은 에베스에서 세덴으로 바로 향하는 일주일짜리 직항 여객선을 탔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셀린과 케이트 둘 다 생각 이상으로 배에 약했던 것이다.
'뭐 셀린이야 고양이... 아니, 묘인족이니까 물을 싫어할수도 있고 바다위에서 지내는게 익숙하지 않을수도 있다지만... 너까지 또 왜 그러냐고.'
셀린은 바다를 보자마자 질겁했었다. 잡혀오기 전까진 쭉 마르텐 산맥 부근에서만 살아왔던터라 냇물이나 계곡 정도는 봤어도 이렇게 물이 많은건 처음 봤다나.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의 수평선을 보곤 왠지 모르게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케이트 역시 바다를 보는건 처음이라며 처음엔 여러모로 신기해했지만 배가 출항하고 나선 빠르게도 배멀미에 시달렸다. 배멀미에 괴로워한건 셀린쪽도 마찬가지로, 결국 둘 다 방에 틀어박혀 옴짝달싹 하지 못했다. 진석은 본인이 주인임에도 일주일 내내 되려 두 노예의 시중을 들어주다시피 하며 보내야 했다.
'...내 팔자에 노예는 무슨. 그냥 혼자 다니는게 백번 나을뻔 했네.'
여객선에 타면 한동안 할 일도 없을테니 여유롭게 두 노예와 밤일이나 하며 이렇게 저렇게 길들이려고 했지만... 배멀미로 끙끙대는 애들을 상대로 흥이 날리도 없으니 그냥 포기했다. 그나마 뭍에 내리고 나서야 둘의 안색은 조금 나아져있었다.
"으... 하지만 아직도 땅이 흔들거리는것 같다냐..."
"배는 처음 타보았지만... 정말 무서운 이동수단이군요. 가능하다면 다시 타고 싶지 않습니다."
꼴을 보아하니 돌아갈때는 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냥 육로로 가야 할 것 같았다. 또 다시 일주일이나 두 노예들의 수발을 들어주고 싶진 않았으니까. 진석은 흐느적거리는 둘을 마차에 태우고 마부석에 올랐다. 세덴으로 오며 탄 배는 이전 아라파로 갈때 탔던 멜리사 호 만큼의 대형 여객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큰 배였음에도 이렇게 심하게 배멀미를 앓다니.
'하긴... 이전에 내가 타봤던게 1만톤급 여객선이었나?'
현실에서 여행을 갔을때 여객선을 타봤던 기억을 떠올리는 진석. 총톤수 1만톤이라는 커다란 배임에도 잠자리에 누으면 파도에 배가 흔들리는것이 온몸을 통해 뚜렷히 느껴졌었다. 물론 그쪽은 현실이고 이쪽은 게임이긴 하지만, 1만톤급의 거대한 배도 바다의 영향을 받아 흔들렸으니 이쪽의 1만톤급에도 한참 못 미치는 목선이야 오죽할까. 게다가 동력이 아닌 바람과 조류를 타고 움직이다보니 배가 바다의 영향을 더더욱 많이 받았던 터. 묘인족은 원래부터 물을 좋아하지 않았고, 케이트는 태어나서 쭉 지하 깊은곳에서만 살아왔었다. 그러니 이 둘은 당연하게도 흔들리는 배위에서의 생활에 익숙치 못해 고생을 했던 것이다. 진석은 마부석과 마차 안쪽을 연결하는 창을 열어 둘이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확인하곤, 혀를 쯧쯧 차며 마차를 출발시켰다. 도중에 시장에 들러 필요하다 싶은 물품을 몇가지 보급한 후 곧바로 서문을 통해 도시를 벗어났다.
진석 일행은 해가 저물때쯤 되어서야 마차촌에 도착했다. 약 30여채쯤 되는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들어선 작은 마을. 숙박시설이나 식당, 잡화점 위주로 형성된 마차촌은 온통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항구와 수도를 오가는 상단이나 여행자들, 그리고 험상궂은 인상의 건장한 남자들이 많이 보였다. 어차피 하루안에 도착 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으니 오늘밤은 여기서 묵어가야 할 것 같았다.
'분명 수도 캐버너에서 토너먼트인가 뭔가가 열린다고 했었지. 미리안도 그걸 이용해서 브래들리 왕세자에게 접근해보라고 했었고. 낯짝이 험악한 놈들이 눈에 많이 띄는건 토너먼트 때문일까? 정말 어중이 떠중이 다 모여드는 모양이군.'
진석은 마차를 몰아 개중 적당해보이는 여관을 찾아갔다. 진석이 마차를 몰고 한 여관앞으로 향하자 마침 여관앞에서 궐련을 피우며 여관주인과 뭔가 한담을 나누던 종업원이 잽싸게 다가와 마차의 고삐를 건네받았다. 그런데 여관주인 왈, 토너먼트의 영향인지 여관의 방은 다 차고 지금은 큰 방 하나만이 남아있다고 했다. 게다가 마차촌의 대단찮은 여관치곤 숙박료도 제법 비싸게 불렀지만 진석은 겨우 방삯정도의 푼돈으로 일일이 흥정할 생각따윈 없었기에 그냥 여관주인이 원하는 값을 치러주었다. 그리고 마차에서 자신의 가방을 챙겨 여관주인을 따라 두 노예와 함께 안으로 들어서니 내부는 시끄럽고 왁자지껄했다. 여관 안쪽의 테이블은 만석이 된채 술과 음식을 먹고 마시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서빙하는 종업원들은 테이블과 안쪽의 주방을 바삐 오가며 주문받은 것들을 차례차례 내놓고 있었다. 진석은 프론트에서 여관주인이 내미는 방열쇠를 건네받고, 주머니에서 은화를 두닢쯤 꺼내어 내밀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우리도 아직 저녁은 안 먹었으니 적당히 3인분을."
"아 예. 그런데 보다시피 1층이 만원이라... 방에서 기다리시면 올려다 드리죠."
진석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셀린과 케이트를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 길지 않은 복도를 지나 방으로 향하는데 복도 한 켠에 서서 건들거리는 사내 셋이 이쪽을 발견하곤 휘파람을 휘익 불며 흡사 물건을 품평하듯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들의 시선은 노골적으로 셀린과 케이트를 향했다.
'사람 사는데는 어딜가나 이런애들 꼭 있구만. 끌끌.'
그들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진석. 뒤에서 사내들이 뭔가 떠들며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이쪽을 비웃는것 같았지만 귀찮게 저런놈들 일일이 상대할 필요가 있나? 진석은 복도 끝의 방을 찾아서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고 있자니 셀린이 말을 걸어왔다.
"...주인님. 방금 건방진 녀석들 혼내주지 않아도 괜찮냐?"
"응? 냅둬. 그러거나 말거나."
"하지만 주인님보고 병신 쭉정이 새끼라고 했다냐."
"......"
그, 그딴 소리까지 했냐? 난 못 들었는데? 셀린은 헌팅캡으로 귀를 가리고 있었음에도 인간보다 청력이 좋아서인지 사내들의 대화를 다 들은것 같았다. 셀린의 말에, 접은 양산을 손에 들고 있던 케이트가 조곤조곤한 어조로 물어왔다.
"잠시 그들에게 예의범절을 알려주고 와도 괜찮겠습니까?"
태도는 공손하지만 미간에 미묘하게 힘이 들어가 있는게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의미인것 같았다. 옆의 셀린도 케이트의 말에 호응하는지 응응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진석은 고개를 저었다.
"됐어, 냅두라니깐."
셀린과 케이트는 분명 미인이다. 셀린은 비록 가슴은 작지만 기운넘치는 활달한 느낌이고, 케이트는 누가보더라도 왠지 모를 기품이 느껴지는 다소곳한 미인인게 확실. 게다가 가만히 미소짓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딘가 모르게 요사스러움마저 풍겼다. 진석 자신도 대지의 눈을 회수하러 아라파로 갈때 짧으나마 여자쪽의 생활을 겪어봐서 잘 안다. 앞으로도 이 둘을 대동하고 다니다보면 이래저래 시비를 걸거나 추파를 던져오는 멍청이들이 잔뜩 꼬일수도 있겠지. 허나 그럴때마다 일일이 험악하게 반응해서야 본인만 피곤해질 뿐이다. 물론 바보같이 당해주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서 달라야겠지. 진석은 아무 특징없는 밋밋한 나무의자를 빼어 거기에 앉으며 셀린과 케이트에게 말했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너희들 주인이 누구냐?"
"그야 러셀님이다냐."
즉각 대답하는 셀린. 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럼 너희들의 주인인 나의 명령은?"
"절대적입니다."
이번엔 케이트가 대답해왔다. 진석은 다리를 꼬고 테이블에 팔을 댄채 턱을 괴며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날 생각하는건 잘 알겠지만 내가 한 번 하지 말라고 말했으면 그냥 하지마. 아무리 사소한거라도 시키지 않은 쓸데없는 짓까지 할 필요는 없다."
이들은 동료가 아니라 노예, 자신이 부려야 할 도구다. 괜히 행동의 자유를 줬다가 그녀들이 저지른 일의 뒷수습을 하게되느니 처음부터 자신이 모든걸 통제하는 편이 나았다. 진석의 말에 두 말 않고 공손히 고개를 숙여보이며 대답하는 케이트.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제 넘은 행동, 죄송합니다."
"나도 알았다냐..."
호전적인 성질을 품고있는 묘인족인 셀린은 조금 불만스러운 것 같았지만 종속의 마법으로 강제되는 그녀는 진석의 명령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진석은 그녀들에게 방에서 쉬고 있으라고 말한 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복도엔 여전히 사내 셋이 서서 뭔가를 떠들고 있었다. 진석이 그쪽으로 다가가자 그들은 노골적으로 이쪽을 비웃었다. 그들의 앞에 선 진석은 싱긋 웃어보이며 사내들에게 말했다.
"이야~ 좋은 밤이죠?"
"풉, 좋은 밤이래. 븅신."
"킥킥."
"뭔데. 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냐?"
그래도 개중 리더로 보이는자가 노골적으로 히죽거리며 진석에게 대답을 했다. 아 역시 안되겠네 이놈들. 어지간하면 가볍게 손봐주고 끝내려 했는데... 너희들은 매운맛을 좀 봐야쓰겠다. 진석은 사내들이 서있는 방문앞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가 여러분이 묵는 방인가요?"
"그런데? 그걸 알아서 어쩌려고."
빈정거리듯 대답하는 그. 뒤의 두 사내는 저희들끼리 떠들어댔다.
"어쩌긴. 뒤에 따라다니던 아가씨들 넣어주려는 모양이지."
"오오. 번드르르 하게 생겼다 싶더니 포주였나? 그럼 구멍값 흥정하러 온겨?"
"지랄. 포주는 씨발 아무나 하냐? 야, 뭐하러 왔는진 모르겠는데 할 일 없으면 니 여자들이나 좀 빌려주라. 간만에 꽁씹이나 해보게. 사람이 말이야 좋은건 같이 나눠쓰고 이런 정이 있어야지."
"아껴쓰고 나눠쓰고 다시쓰고 바꿔쓰고?"
"크크 미친새끼. 거 좋네."
뒤쪽의 둘이 그렇게 시시덕대자 진석과 마주하고 있는 리더는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그들은 사람좋게 웃고있는 진석이 아주 개호구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진석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채로 그들이 묵고 있다는 방문을 열었다. 문은 잠궈놓지 않았는지 그냥 덜컥 열렸다. 그리고 자기방마냥 자연스레 방 안쪽으로 들어서는 진석. 셋은 당황하며 진석을 붙잡기 위해 안으로 따라들어왔다.
"뭐야 이 새끼! 미쳤냐? 어딜 들어와!"
리더가 급히 따라들어와 진석의 어깨를 붙잡자 진석은 그의 손을 툭 쳐내며 대답했다.
"시끄러울테니까 문이나 닫고하자. 야 너네. 뒤쪽 똘만이들, 멍청하게 눈깔 굴리지 말고 얼른 문 닫어."
진석이 갑자기 세게 나오자 당황해하는 그들. 하지만 이내 붉으락푸르락 하며 화를 내었다.
"허... 니 여자들 앞에서 비웃었다고 화났다 이거냐?"
"염병하네. 넌 이제 뒈졌어 새꺄!"
"잘됐네, 이 새끼 조져놓고 아까 그년들이나 대신 먹어주자고."
문을 닫고 진석을 에워싼채 방 안쪽으로 몰아붙이는 세 사내. 진석은 험악한 분위기에도 아랑곳 않고 어깨와 손목을 빙글빙글 풀면서 말했다.
"얘들아. 나는 있지, 사람이 너무 상냥하다니까."
"뭐? 이게 돌았... 푸헉!"
사내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진석의 가슴께를 밀치려 들었지만 다음 순간 안면을 강타당하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어? 하며 뒤로 날아간 동료를 바라보는 나머지 두 사내. 진석은 태연한 태도로 손가락을 꺾어 으득거리며 계속 말했다.
"셀린이나 케이트 손에 맡겨뒀으면 보나마나 니들은 그냥 맞는 정도로 안 끝났을거거든. 둘은 묘인족에다가 마족이니 손속이 여간하지 않았을걸?"
다음 순간, 나머지 두 사내의 안면에도 연달아 펀치가 작렬했다. 거의 동시에 똑같이 뒤로 나가떨어지는 그들. 세 사내는 자신들이 뭘 당했는지도 모르고 코피를 철철 흘리며 넋이 빠진채 바닥을 기었다. 하지만 단 일격뿐이었어도 그들은 진석과 자신들의 실력차를 단번에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부터 당하는건 상대가 아닌 자신들이라는 것이란 사실 역시도. 진석은 코를 감싸쥐고 괴로워 하는 세명의 사내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기왕이면 여자한테 쥐어터지는것 보다 같은 남자에게 맞는게 그나마 덜 쪽팔리잖아?"
"무... 무슨..."
리더쪽이 뭔가 말하려 했지만 진석은 냅다 발길질로 그들을 차례차례 걷어찼다. 치명상을 입을수도 있는 배나 머리는 제외하고 팔다리나 등짝만을 두들겼다. 돌아가며 제각기 십여차례씩 걷어차인 사내들의 입에선 저절로 신음성과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제, 제가요... 아까는 죄송, 컥!"
"자... 잘못했습, 으헉!"
사내들이 엎드려 조아리고 빌어도 아랑곳 않고 그들을 계속 걷어차는 진석.
"와. 니네들 아직도 말할 기력이 있나보네. 너희들 맷집이 좋은거야 아니면 역시 내가 너무 살살팬거야? 설마 양쪽 다인가? 이것 참. 역시 나는 사람이 물러서 탈이라니깐~ 너희들을 얕봐서 미안하다! 니들 맷집을 믿고 좀 더 마음껏 패줄께!"
물론 맞고 있는 입장에서야 어처구니 없는 소리였지만 때리고 걷어차는 기세가 진짜로 더 매서워지는게 도저히 저항해볼 엄두가 안났다. 한대 한대 맞을때마다 정말로 뼛속까지 시큰시큰 울리는게, 이거 괜히 나대다간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세 사내는 끽소리도 못하고 곤죽이 되다시피 매타작을 당하고 전신이 시커먼 멍투성이가 되고 나서야 진석에게서 해방될 수 있었다. 정말 온몸 구석구석을 자근자근 다지듯 밟아놓은터라 꿈지럭거릴 기력조차 없었다. 진석은 그들을 한껏 두들겨놓곤 보람차다는 듯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아 찰져서 좋다. 얘들아. 월급줄께 같이 안 다닐래? 내 샌드백이나 해라."
"......"
엉망으로 두들겨 맞은 사내들은 의식은 붙어있었지만 대답할 기운도 없었다. 월급줄테니 샌드백하라고? 미, 미친놈 같으니! 사내들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자신들이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는걸 자각하고 있었으니 아무 대답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진석은 그들이 아무 대답없자 인상을 찌푸리더니 리더 사내를 붙잡고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갑자기 강제로 바지가 벗겨지자 혼비백산하는 그.
"아니! 바, 바지는 왜!"
"뭐야. 아직 말 할 수 있네? 근데 왜 대답안했어. 지금 나 무시하는거야? 아~ 상처받았어~ 너 이놈 자식!"
"그... 그게 아니라!"
진석은 너무 맞아 꼼짝못하는 그의 바지와 속옷을 막무가내로 훌렁 벗겨내곤, 옆에 있던 다른 사내의 입에 그의 아랫도리를 가져다 붙였다. 느닷없이 봉변을 당한 사내는 기겁을 하며 자신의 눈 앞으로 다가오는 흉물을 피하려 했다.
"으푸웁! 씨... 씨바알! 이게 무슨 짓이야! 아, 안치워?"
아무리 동료의 것이라지만 남자의 거시기가 막무가내로 눈 앞에 들이밀어지니 당황하는건 당연. 그는 자기 처지도 잊고 욕을 하며 저항했다.
"뭔 짓은. 이런짓이지."
진석은 아래 깔린 사내가 저항을 하자 그의 턱을 힘주어 잡곤, 해부학을 사용해 턱뼈를 어긋나게 만들었다. 턱뼈가 빠지자 의지와는 관계없이 쩌억 크게 벌어지는 입. 그 안에 리더 사내의 거시기를 쑥 쑤셔넣었다. 턱뼈가 빠져 동료의 거시기를 강제로 입에 머금은 그는 으어으어 거리며 눈물콧물 쏙 빼고 있었지만 진석은 히죽거리며 좋아했다.
"오오 홀-인-원. 자, 치사하게 혼자만 즐기면 안돼지, 다들 사이좋게 해줄테니까."
진석은 나머지 둘의 턱뼈도 빼버리고, 셋을 삼각형으로 뉘어 서로가 서로의 거시기를 물고 있게 만들었다. 그짓을 해놓곤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듯 팔짱을 낀채 응응거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진석.
"좋아좋아. 작품명은 동료애~ 정도로 할까? 음 이거 내게도 현대미술의 감각이 있는걸지도. 뭐 그럼 이만! 지금쯤이면 식사가 올라왔겠지. 가서 밥이나 먹어야겠다. 아무튼 좋은 식전 운동이었어. 너네 손맛 좋더라 야. 그만하면 어디가서 충분히 맷집 자랑해도 되겠더라. 아무튼 너희들도 배고프면 서로의 단백질이라도 빨아먹으렴. 혹시 알아? 그러다보면 새로운 사랑에 눈뜰지도 모르니까!"
아무 대답도 못하고 서로의 거시기를 입에 문채 욱욱거리며 꿈지럭 거리는 그들. 진석은 상쾌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보이며 방을 나섰고, 그들은 입을 잘못 놀린 죄를 뼈저리게 절감하며 제각기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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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촌에서 하루 묵은 후 다음날 저녁 즈음, 진석의 마차는 캐버너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야트막한 산지에 반쯤 걸쳐있는 이 도시는 제법 큰데다 생각외로 꽤나 번화해있었다. 대투기장 덕분일까? 게다가 거리에 오가는 사람도 제법 많았다. 그 번잡함이 흡사 예전 해신제가 열리기 전의 데오그라즈를 연상시키는 정도였다. 행인들로 북적이는 도로를 마차로 느릿느릿 지나며, 여기저기 묻고 물어 한참만에 말로스 상사를 찾아낸 진석.
"여긴가?"
번듯한 2층짜리 건물. 입구에 걸려있는 목재 간판엔 분명 말로스 상사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진석은 마차를 세워두고 셀린과 케이트를 기다리게 한 뒤 혼자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보자니 1층 안쪽은 그냥 평범한 사무실 같은 풍경이었다. 저녁시간이라 직원들은 업무를 마무리하고 퇴근을 하는 분위기였는데, 그중 한 여직원이 진석을 발견하곤 다가와 물었다.
"저기 누구시죠? 무슨 용무라도?"
"여기 포먼이란 사람 있나요? 전해줄게 있어서 왔는데."
품에서 작은 편지봉투를 꺼내보이는 진석. 여직원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석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사장님을 찾아오셨군요. 따라오세요."
사장님이라. 하긴 뭐, 대충 그렇겠지. 아라파의 하디카에서 고급창관 휘파람새를 운영하던 미겔슨도 그 스스로가 그곳의 주인이었으니까. 여직원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 한쪽의 방으로 안내된 진석. 여직원이 먼저 노크를 한 후 손님이 왔다는 말을 전하자 안쪽에선 들어오라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진석은 친절히 문을 열어주는 여직원을 지나쳐 방 안으로 들어섰다.
"...호오. 누구시죠?"
검은색의 책상 안쪽에 앉은 정장차림의 사내. 대충 40대 중반에서 후반쯤으로 보인달까? 옷 매무새나 머리모양이 아주 단정했다. 어두운 색의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인상이 왠지 모르게 빈틈없이 꼼꼼할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진석은 아무말 없이 포먼에게 다가가 손에 든 편지봉투를 건네었다.
"편지? 아, 이 인장은..."
편지겉봉에 찍힌 밀납인장을 보곤 고개를 끄덕이는 포먼. 미리안이 보낸 직인임을 알아채곤 곧바로 봉투를 뜯어 안의 편지를 꺼내었다.
"흠. 흐음..."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빠르게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포먼. 그는 다 읽은 편지를 다시 접어 편지봉투안에 집어 넣으며 말했다.
"뭐 전서구로 미리 연락을 받긴 했었습니다만 이런 훤칠한 미남분이 오실줄 몰랐군요. 아무튼 먼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대신관님께선 필요한 모든걸 지원해주라고 하셨는데, 제가 무엇을 준비해 드리면 될까요?"
진석이 교단의 동료라는 것을 알곤 자뭇 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하는 그. 진석은 흐음하고 잠시 생각을 하다 그에게 물었다.
"음... 일단은 그전에 묻고 싶은게 좀 있습니다만. 브래들리 왕세자가 주관한다는 토너먼트는 언제 열리죠?"
"다음주 주말까지 참가 접수를 받고, 개최는 그 다음주 주말부터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게임상 시간으로는 현재 금요일. 참가 접수는 다음주 주말까지라... 이거, 육로로 왔더라면 접수 신청을 하기에도 시간이 아슬아슬 촉박했을지도 몰랐겠다. 그리고 토너먼트 개최가 2주 후의 주말이라면...
'참가 접수를 한 뒤엔 시간이 꽤 남네?'
하지만 시간이 남는다고 그냥 놀고 있을 순 없겠지. 가능한 여러가지 정보를 수집하던가 브래들리 왕세자의 동향따윌 살펴봐야 할터. 진석은 포먼에게 또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러면 여기 캐버너의 대투기장은 토너먼트가 열리기 전까지 운영한답니까?"
"네. 토너먼트 개최가 다가오자 오히려 평소보다 더 성업중이라고 합니다."
그렇군. 그럼 참가접수를 해놓고 대투기장을 들락거리며 브래들리 왕세자를 찾아 보는것도 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 본인이 대투기장의 총 책임자인데다가 이따금은 직접 참가한다고도 했었으니, 잘하면 토너먼트 따위 참가하지 않고도 브래들리 왕세자와 만나 창염의 검을 빼앗을 기회가 생길지도? 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우선은... 한동안 머무를 거처를 소개받을 수 있을까요? 번잡한 여관이나 호텔 말고 가능한 조용한 집이라도 한 채 얻었으면 좋겠는데."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공작용으로 마련해둔 안가가 한 채 있습니다. 직접 안내해 드리지요."
포먼은 진석이 건넸던 편지는 품에 넣고, 책상 서랍 안쪽에선 열쇠를 하나 꺼내들었다. 아무래도 그 열쇠가 방금 말한 안가의 열쇠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둘은 함께 말로스 상사를 나섰다. 진석은 마부석에서 대기중인 셀린을 안쪽으로 들어가게 하고, 포먼과 함께 마부석에 올랐다. 그런데 왠지 굳은 표정을 하며 진석에게 질문을 던지는 포먼.
"그런데 방금 마부석에 앉아있던 아가씨는 누구죠?"
"걱정마시길. 제 노예입니다. 안쪽에도 한 명 더 타고있죠."
"아 노예였군요. 죄송합니다. 후우, 이거 제 일이라는게 아무래도 누군가의 눈에 띄지않아야 하는거다보니 의심만 늘어서... 대신관님의 편지를 직접 전해주신 수호자분임에도 이거 실례를 했습니다."
여러모로 대범하게 행동하던 미겔슨과는 달리 포먼은 아무래도 조심성이 많은것 같았다. 진석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안내대로 마차를 몰았다. 마차를 몰고가며 진석은 포먼과 함께 이번 일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보다 브래들리 왕세자는 어떤 인간입니까? 듣기론 무투파라고 하던데."
미리안이 해준 설명을 떠올리는 진석. 왕세자 주제에 무기수집가에 대투기장에까지 직접 참가할 정도의 무골이라니. 이거 참 희한한 인물 아닌가. 포먼은 살짝 흘러내린 자신의 안경을 슥 밀어올리며 대답했다.
"브래들리 왕세자는 어린 시절부터 책보단 검을 가까이 했다고 합니다. 그가 싸움이나 무술을 좋아하는건 아마도 천성에 가깝자고나 할까요. 동생인 패럴 왕자와는 정 반대죠. 패럴 왕자는 형인 브래들리와는 달리 글자를 깨우친 이후부턴 쭉 책벌레처럼 지내왔다고 했으니. 패럴은 언제 어디서나 옆에 책을 들고 다니며 틈만나면 독서를 한다고 합니다."
패럴 왕자라. 그러고보니 미리안에게 이름정도는 듣긴 했었지만... 그나저나 패럴 왕자는 이번일과는 별로 상관없잖아? 포먼은 무심코 흘리듯 중얼거렸다.
"역시 피가 달라서일까요. 이복 형제라지만 둘의 성격이 그렇게나 다르니."
...잠깐. 피가 다르다고? 이복 형제? 진석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그 시선을 눈치채곤 으흠 하고 목을 가다듬으며 그 부분의 설명을 추가하는 포먼.
"브래들리 왕세자는 원래 첩실의 자식입니다. 본처인 왕비가 결혼후에도 수년간 좀체 아이를 낳지 못해서 후처를 들여 자식을 낳게 했지요. 그게 브래들리입니다. 하지만 무슨 장난인지 브래들리가 태어난 직후 본처인 왕비 역시 임신을 하고 다음해에 패럴을 낳았으니... 하지만 올린스턴의 국법은 장자계승제. 후처의 자식이라도 브래들리가 왕세자로 책봉되고 왕위 계승의 우선권을 가졌습니다."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진석.
'그런가. 이쪽 집안에는 그런 문제가... 아니 잠깐. 이게 창염의 검을 회수하는것과 관계가 있을까?'
설마. 있긴 뭐가 있겠어? 진석은 확인삼아 포먼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혹시 두 왕자의 사이가 엄청 나쁘다거나?"
"아뇨. 뭐 둘의 속내까지야 알 순 없겠지만 적어도 대외에 드러난 둘의 사이는 매우 좋다고 합니다. 이복 형제임에도 여느 친형제 이상으로 우애가 돈독하며 흔히 예상할만한 본처와 후처 자식간의 갈등 같은건 없는 모양이더군요."
그래? 이건 또 의외다. 혹시 둘 사이에 불화가 있어 뭐라도 좋으니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만한 건덕지가 없나 했거늘... 진석은 그렇게 포먼에게 브래들리 왕자와 캐버너에 대한 것들을 물으며 마차를 몰았다. 포먼이 안내해준곳은 고급주택가쪽의 한 단층저택이었다. 마당이라던가 건물의 크기가 이전 갈론에서 엘리야가 머물던 집과 비슷한 크기였다. 적당히 아담하고 실내의 가구들도 잘 꾸며져 있는게 진석의 마음에 들었다. 진석은 집안을 한 번 둘러보곤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몸을 묻으며 생각했다.
'이걸로 여기서 활동할 거처는 확보했군. 호텔같은데 보단 남 시선 신경 안쓰고 돈도 안드는 이런 단독주택이 훨씬 낫지. 포먼이 그 외에도 필요한게 생기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했지만 뭐 딱히 필요한게 더 있을까? 돈도 충분히 있는데. 그리고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까 토너먼트의 참가 신청 정도는 내일 해도 될테고... 아참, 저녁이나 먹을까?'
하지만 평상시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니 부엌엔 달리 식료같은건 없는걸 확인했었다. 마차엔 자신이 실어둔 보존식 같은게 있긴 하지만 야외에서 캠핑을 하는것도 아닌데 굳이 그걸 먹을 필요가 있을리도 만무.
'하지만 또 나가서 식당이라도 찾자니... 귀찮군. 에라, 노예 뒀다 뭐하겠냐.'
진석은 옆에서 대기하던 셀린과 케이트에게 손을 까닥였다. 바로 옆으로 다가와 서는 둘. 진석은 케이트에게 금화가 들어있는 돈주머니를 건네며 말했다.
"배고프다. 자, 돈 줄테니까 둘이 같이 나가서 적당히 저녁으로 먹을만한 것 좀 사와."
진석이 건넨 돈주머니를 공손한 태도로 받아드는 케이트.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헤헤~ 고기 먹어도 되냥?"
눈을 빛내며 좋아하는 셀린. 진석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메뉴는 뭐든 상관없으니 너희들이 먹고 싶은걸로. 적당히 술도 한 병 사오고."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빨리 갔다오겠다냐!"
명령대로 함께 집을 나서는 둘. 진석은 소파에 쭉 등을 펴고 기대며 테이블에 다리를 걸쳤다.
'뭐... 겨우 밥 사오라는 심부름이니 별 일은 없겠지. 그나저나 일단은 목적지에 도착한 참이니 슬슬 둘에게 손을 대볼까? 하긴 나 치고는 꽤나 오래 참았지. 장하다 장해. 그보다 어느쪽부터 맛을 볼까. 팔팔한 셀린부터? 아니면 순종적인 케이트부터? 그도 아니면 둘 다 한꺼번에? 음흐흐.'
히죽거리는 진석. 그의 머릿속엔 두 노예의 조교를 시작할 생각이 하나 둘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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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제 불금이랍시고 새벽까지 마시다보니 그만..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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