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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116화 (116/155)

< --   - 10.   -- >         * 116화 *

저택에 돌아가고 보니 그 앞에선 의외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패럴 왕자와 레나였다. 마차나 말을 탄것도 아니고, 그냥 저택 앞에 덜렁 서 있는데다 둘 다 평범한 복장을 하고 있었기에 처음엔 그냥 지나가던 행인들인줄 알았을 정도였다. 진석은 태연히 웃음을 띄우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니 이거이거. 여기까진 또 어쩐일로 오셨는지요."

진석을 발견하곤 마찬가지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패럴 왕자와 레나. 패럴 왕자는 진석의 인사에 고개만 까딱해 보였지만, 레나는 가볍게 목례를 해왔다. 진석은 저택 안쪽을 가리키며 둘을 안쪽으로 안내하려 했다.

"자 서서 이럴게 아니라 우선 안으로..."

하지만 패럴 왕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잠시 걷죠."

"아 예, 뭐. 그러시다면."

일국의 왕자답지 않게 길에서 멀뚱멀뚱 서서 기다리던데다가 생각치도 않게 걸으면서 이야기 하자고 제안하는 그. 저번에 저택에 왔을때 미약 섞인 차를 마시게 해서일까, 아니면 그가 첫눈에 반했던 케이트를 진석 자신의 아내라고 소개해서일까. 그도 아니면 레나와 처음 관계를 가졌던곳에 다시 방문한다는게 부끄러워서일까? 뭐 어쩌면 전부 다 일지도. 진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패럴 왕자와 나란히 선채 천천히 길을 걸었다. 레나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그 뒤를 따랐다. 패럴 왕자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예비 소집을 하고 오신걸로 아는데... 대진표는 저도 확인했습니다만, 까놓고 말해 어떠셨습니까. 우승을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토너먼트에서 진석이 우승을 한다는게 이 계획의 대전제이므로 곧바로 그 부분부터 짚으며 물어오는 패럴 왕자.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강해보이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제 상대는 아닙니다. 걱정 마십시오."

"꽤 자신만만 하시군요. 저번에 특별한 차를 대접 받은터라... 으흠, 상황이 상황인지라 확실히 해두고 넘어가지 못했지만... 사실 저는 그쪽의 실력이 어느정도인지 잘 모르니까요."

진석을 슬쩍 노려보며 그렇게 말하는 패럴 왕자. 하긴, 아무리 그래도 일국의 왕자에게 미약을 먹이다니. 평범하게 생각하면 도가 지나친 행동이긴 하다. 붙잡혀가서 처벌받아도 아무 항변도 못할만한 짓. 하지만 진석은 뻔뻔하게 웃어보였다.

"원하신다면 확인시켜 드릴수도 있지만 이런 대로변에서 칼을 뽑을순 없는 노릇이죠. 백마디 말보다는 한 번 보는게 낫다고 하니, 미심쩍으시다면 대투기장에 오셔서 직접 확인해보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자신만만한 진석의 호언장담. 패럴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그런곳, 갈 생각 없었지만 일의 원만한 뒷수습을 위해서라도 그래야겠죠. 토일 양일간 관람을 할 예정입니다."

왕세자 브래들리가 워낙 강한 지지기반을 가진데다 군비 역시 착실히 갖추어지던터라 여론 역시 알게 모르게 주전파로 기울어져 있었다. 제 2왕자인 패럴 왕자의 정치적 입지는 거의 없는거나 다름없는 편이고 그 개인적으론 일단 중립노선을 고수했지만, 스스로 나서서 토너먼트를 관람한다면 브래들리는 동생 패럴이 자신을 지지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틀림없이 환영하리라. 진석은 패럴 왕자와 브래들리 왕자를 처리한 뒷일의 처리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이야기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주택가를 빠져나와 중심가에 이르고 있었다.

"그보다... 어떻습니까."

은근슬쩍 화제를 돌리려는 진석. 패럴 왕자는 진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냐니, 무슨 말이죠?"

"레나말입니다."

"......"

대번에 얼굴이 붉어지는 패럴 왕자. 진석은 목소리를 낮춘채 장난스런 어조로 말했다.

"그날 침실의 뒷정리를 하려고 들어와보니... 대단하더군요."

레나가 뒷정리를 한건지 침구가 정돈되어 있었고 시트도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지만, 개어진 시트 위엔 여러가지 흔적이 잔뜩 남아 있었다. 미약에 취해있던 패럴 왕자는 첫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약기운이 다할때까지 두시간 가량이나 레나의 육체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막무가내로 삽입한채 허리를 흔들며 그저 젖가슴을 빨고 주무르는 정도의, 기교도 뭣도 없는 섹스였지만 당사자인 패럴 왕자와 레나는 일단 둘 다 만족했었다. 여자의 몸을 안긴 커녕 자위 한 번 해본적 없던 패럴 왕자는 생전 처음 안는 여체가 가져다주는 쾌감에, 레나는 흠모하던 상대가 자신을 필사적으로 갈구한다는것에 정신적인 만족감을 충족했었으니까. 둘은 그 이후로도 매일밤 몸을 섞고 있었다.

"으흠... 부끄러운 이야기긴 하지만 레나와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더 가까워졌지요."

흠흠 헛기침을 하곤 시선을 슬쩍 돌리며 대답하는 패럴 왕자. 미약의 힘을 빌려 한계 이상으로 관계하는것이 가능했던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매일밤 두어번정도 가볍게 사정하고 끝낼 뿐이었지만, 패럴은 한 여성을 온건히 자신의 소유로 했다는 사실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나는 그렇지 못했다. 주인이자 사모하던 대상인 패럴 왕자에게 자신의 마음이 전해졌다는 것으로 정신적으론 만족하고 있었음에도 육체적으론 그렇지 못했다.

맨 처음 레나를 안았던 진석이 그녀에게 주었던 말도 안 될 정도의 쾌락은 패럴 왕자의 서투른 행위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레나의 입장에서 진석과의 관계는 그저 덮어둬야 할 일. 그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패럴 왕자와의 행위에 더 정성을 쏟았지만... 왕자와의 동침이 거듭되면 될수록 아이러니 하게도 두 남자간의 차이는 더 크게 느껴질 뿐이었다. 패럴 왕자는 매일밤 레나의 몸으로 자신의 욕망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었지만, 레나는 제대로 된 절정은 느끼긴 커녕 패럴 왕자가 잠든 후 조용히 침대를 빠져나와 그의 정액이 남겨진 자신의 안쪽을 손으로 쑤시며 자위로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진석은 잘 되었다는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거 잘됐군요. 레나는 패럴 왕자님을 진정한 충심으로 섬기는것 같던데... 부디 오래 아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네. 아무튼 토너먼트 전날... 이 시간 즈음에 한 번 더 찾아뵙도록 하죠. 혹시 토너먼트에 관련해 뭔가의 정보라도 듣게 된다면 저 혼자 알고 있는것보단 서로 논의하는게 나을테니니까요."

패럴 왕자가 뒷통수를 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던 진석이었지만 이런식으로 나오는 나름대로 차분한 태도를 보고있자니... 그럴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돌아가시는 길 부디 살펴가시길.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한 진석과 패럴 왕자. 서로 가볍게 악수를 나눈 뒤 각자 갈라져 반대편의 길로 향했다. 진석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쭉 되돌아가 저택쪽으로, 패럴 왕자는 그대로 중심가쪽으로 향했다. 기왕 외출한 이상 서점에라도 들러 책을 구입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

그리고 패럴 왕자의 뒤를 따르던 레나는 말 없이 자신을 지나쳐 가는 진석의 등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과잉 충성에서 우러나온 행동으로 얽히게 상대였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패럴 왕자를 돕게 되었으니 이제 저 남자가 문제될건 없었다.

'하지만...'

레나는 진석이 자신의 옆을 스쳐갈때 무심코 그날 밤 저 남자에게 무자비 할 정도로 능욕당하던 일을 떠올리고 말았다. 약물에 지배당했기 때문이었을까, 그와 함께하는 시간동안은 흡사 자신의 온몸 구석구석이 전부 한껏 달아오른 성감대처럼 느껴졌었다. 단순한 쾌락을 넘어선 압도적인 열락이었다. 너무 기분좋아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자신이 섬기는 주인이 누구인지, 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조차 잊고 그가 주는 육욕을 탐했었다. 비록 저 남자의 도움으로 패럴 왕자님이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밤시중 상대로 삼아주게 되긴 했지만... 솔직히 잠자리에서의 패럴 왕자는 너무 보잘것 없었다. 차라리 한 번 정도쯤 저 남자에게 다시 안기고도 싶었다. 그렇다면 침대에서 몰래 빠져나와 자위로 스스로를 달래는 꼴사나운 일은 하지 않아도 될텐데.

'...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자신의 머리에 떠오른 말도 안되는 생각에 머리를 휘휘 젓는 레나. 누가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 본것도 아니건만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무의식중에서긴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게 부끄러웠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어째서인지 진석 역시 뒤를 바라본채 레나를 바라보며 지긋이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본것만으로도 레나는 하복부가 저릿하며 젖어들어가는걸 느꼈다.

'아... 이 무슨.'

속옷이 습기를 머금어갔다. 다리가 떨리고 호흡이 가빠졌다. 마치 공복감과도 같은 진한 육욕이 안쪽에서부터 샘솟아 올랐다. 그가 부른다면... 당장에라도 따라가 몸을 겹치고 싶었다. 엉망진창으로 당해도 좋으니 다시 한 번 그날 밤과 같은 경험을...

'나, 나 왜 이러지. 안 돼. 정신 차려야돼.'

레나는 진석을 외면하곤 이를 악문채 필사적으로 평정을 가장하며 패럴 왕자의 뒤를 따랐다. 패럴 왕자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채, 가볍게 웃어보이며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레나의 손을 마주쥐었다. 레나는 자신이 모든것을 다해 섬겨야 할 패럴 왕자와 함께 있음에도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것을 생각한 스스로에게 커다란 죄책감을 느꼈다. 그녀는 패럴 왕자의 손을 마주잡곤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광경을 저 멀리서 지켜보던 진석은 레나의 속내를 간파하곤 키득거리며 저택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날 밤. 레나는 여느때와 같이 패럴 왕자의 밤시중을 들었다. 첫 경험때와 같이 레나가 그를 리드할 필요는 없었다. 어느 구멍에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정도는 이제 패럴 왕자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패럴 왕자는 알몸이 된채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레나를 침대위로 눕히고, 끌어안으며 가슴을 빨았다. 어머니의 정을 무의식중에 그리워 하고 있어서일까. 패럴 왕자는 유독 레나의 가슴에 집착했다. 레나는 그런 패럴 왕자를 품에 안은채 상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든 상관없었다. 패럴 왕자의 요구라면 레나는 뭐든 들어줄 각오가 되어있었으니까. 한참을 가슴에 얼굴을 묻고 빨아대던 패럴 왕자는 고개를 들어 레나를 마주보며 말했다.

"그럼... 넣을께."

"네, 부디."

일일이 허락따윌 구할 필요도 없이 마음대로 해도 되건만, 패럴 왕자는 레나에게 일일이 확인해가며 행위에 들어갔다. 그 나름대로 레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태도였지만... 역시 러셀이라는 남자와는 너무 비교되었다. 조금 정도라면 자신을 더 거칠게 다루어 줘도 좋으련만... 첫경험이 끔찍할정도로 강렬해서였을까. 이런 종류의 상냥함으론 솔직히 흥이 나지 않았다. 다리를 벌리는 레나의 가운데로 파고들어간 패럴 왕자는 자신의 물건을 쥐고 그녀의 틈새속에 그것을 밀어넣었다.

"하아, 레나... 레나."

레나의 이름을 부르며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패럴 왕자. 레나는 그의 행위에 맞춰 적당히 신음성을 내며 흥분된 모습을 가장했다. 그야 다리만 벌리고 멀뚱히 있는 여자따윌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야말로 어른의 거짓말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신음을 흘리며 느끼는 모습을 가장하는 것도 전부 왕자를 위해 하는일이었다. 일방적으로 패럴 왕자만을 위한 행위. 이것은... 사실 섹스도 뭣도 아니었다. 패럴 왕자가 자신의 몸을 사용하는 일종의 자위일 뿐. 게다가 매번 판에 박힌것 같은 정상위. 이제 갓 성에 눈을 떠 경험이 없는 패럴 왕자로선 이 체위 하나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하루뿐이었어도 진석의 손에 사정없이 휘둘리며 쾌락의 끝을 맛 본 레나로선 역시 택도 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으읏, 갈 것 같아."

패럴 왕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아랫도리 놀림에 박차가 붙은걸 보니 이제 사정하려는 모양이였다. 삽입 후 행위에 들어간지 아직 5분도 안 지난것 같은데 벌써 싸버린다니... 하지만 레나는 패럴 왕자의 행위에 맞추며 자신 역시 콧소리를 내고 느끼는것처럼 가장했다. 왠지 그런 자신이 조금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애써 마음을 다잡고 패럴 왕자를 받아들였다.

"아... 아아. 레나."

레나의 이름을 부르며 허리를 밀착시키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 패럴 왕자. 그의 사타구니가 부르르 떨렸다. 레나는 자신의 몸속에 패럴 왕자의 뜨듯한 정액이 스며드는게 느껴졌다. 패럴 왕자는 사정후의 만족감을 느끼며 지친 한숨을, 레나는 전혀 만족할 수 없었기에 불만스런 한숨을 각기 내쉬었다. 잠시 후 패럴 왕자는 고개를 들어 레나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한 뒤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레나는 곧바로 일어나 그의 물건을 입으로 청소해주려 했다. 요 며칠새는 늘 이래왔다. 패럴 왕자의 정상위 후 레나의 청소 펠라. 한 차례 사정후 축 늘어져 있는 왕자의 물건은 레나가 입으로 깨끗히 하는 동안 기운을 되찾고 그녀의 입 안에 한차례 더 사정하고 나서야 잠자리에 드는게 무언의 약속처럼 정해져 있는 순서였다. 하지만 패럴 왕자는 자신의 다리 사이로 머리를 묻으려 드는 레나를 제지했다.

"레나... 잠깐만."

"아, 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응. 그게... 다름이 아니라."

몸을 돌려 협탁의 서랍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는 패럴 왕자. 그는 소중하게 쥔 무언가를 레나를 향해 내밀었다. 소박한 모양새의 목걸이였다. 당황해하는 레나.

"와, 왕자님. 이건...?"

"나도 며칠간 생각을 했지만... 역시. 나도 네가 싫진 않다. 아... 아니, 좋아. 응. 나도 네가 좋다 레나."

"왕자님..."

의외의 고백에 어벙한 얼굴이 되어버린 레나. 패럴 왕자는 좀 멋쩍은지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어갔다.

"넌 예전부터 곁에서 날 충실하게 섬겨왔지. 그야말로 기쁠때나 슬플때나, 모든걸 다해 성심성의껏. 난 그저 그것이 너의 유능함이라고 생각했지만... 날 진심으로 생각한 것이었다면 나 역시 널 받아들이고 싶다. 브래들리에게 모든걸 빼앗기고 겉 껍데기뿐인 내 곁에서 꾸준히 봉사해온 레나 너라면... 그 누구보다 믿을 수 있으니까. 비록 네가 하녀의 신분이다만 그런건 아무 상관없어. 나는 한 남자로서 널 책임지고 싶다."

"하지만..."

세상일이란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 게다가 왕족이라는 신분이라면 더더욱. 비록 지금은 브래들리의 그림자에 가려 제멋대로 왕성 밖을 돌아다니며 책이나 읽으며 소일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엄연한 일국의 정통한 왕자다. 밤시중 상대 정도라면 모를까, 일개 하녀가 진심으로 가까이 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패럴 왕자는 레나의 생각을 다 안다는 듯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브래들리가 죽고, 아바마마가 타계하고 나면 이 나라는 자연히 나의 것이 된다. 딱히 법도를 거스를 생각따윈 없다만... 내 곁에서 평생을 지탱해줄 여자 정도는 스스로의 손으로 고르겠어. 그게 바로 레나 너다."

"아..."

레나의 마음속엔 놀람과 기쁨이 교차했다. 조금전까지 패럴 왕자의 미숙한 행위를 내심 탓하던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러워졌다. 패럴 왕자는 레나를 손을 꼭 마주잡으며 말했다.

"아바마마는 후처를 들여 브래들리를 낳았지. 왕족이나 귀족이 후사를 위해 처첩을 들이는게 관습에 어긋나는 행동은 아니다만... 또 다른 부인을 불행으로, 심지어 죽음으로까지 내몰아서야 본말전도. 약속하마. 나는 오로지 레나 너 한 명만을 사랑하겠다."

"왕자님..."

"지금은 네가 아직 하녀의 신분이니 남들의 눈도 있어 반지를 끼워줄 순 없는터라 이 목걸이로 대신한다만... 언젠간 반드시 제대로 된 반지를 그 손에 끼워주마."

패럴은 레나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고 그녀를 품에 안았다. 레나 역시 아무 말 없이 그의 품에 안겨, 서로 입술을 겹쳤다. 여느때보다 긴 입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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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나 토너먼트 전날. 진석은 저택의 앞 담벼락에 홀로 기대서서 다리를 건들거리며 사과를 베어먹고 있었다. 그런 진석의 앞에 레나가 나타났다. 손을 가볍게 흔들어보이며 인사하는 진석.

"여어. 그런데 왕자는 어디두고 혼자 왔어?"

"패럴 왕자님은 지금 궁에 계십니다."

차분한 어조로 대답하는 레나. 진석은 레나의 태도가 퍽 침착해져 있다고 느꼈다. 며칠 전 자신을 보곤 이전의 능욕당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히던 모습과는 분명 여러모로 달랐다. 진석은 사과를 한 입 더 깨물어 우물거리다 꿀꺽 삼켜넘기곤 질문했다.

"궁에 있다라. 왜, 무슨 일이라도 있나."

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패럴 왕자님이 토너먼트 관전 의향을 내비추니, 브래들리 왕세자는 전쟁에 대해선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패럴 왕자님이 생각을 바꿔먹었다고 생각하곤 크게 기꺼워하며 토너먼트 직후의 전쟁을 대비한 군략 회의에 부르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그곳에 가 계시기에 불가피하게 제가 대신 왔습니다."

"군략 회의라..."

아무래도 브래들리 왕세자는 토너먼트가 끝나는 즉시 병사를 일으켜 전쟁을 시작하려는것이 확실해 보였다. 군비를 비축하고 있다는것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지만 현재는 물가도 안정되어 있었고 민심에도 별 동요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렇게 기습적으로 전쟁을 시작한다면 상대측은 언젠가 전쟁이 일어날걸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음에도 초전부터 상당한 동요를 받게되리라.

"뭐 나랑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 그래서, 딱히 전달할만한 정보는?"

"없습니다. 예정대로 진행하시면 될거라는 말을 전하러 왔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볍게 목례하곤 어쩐지 단호하다고까지 느껴질 정도의 태도로 자리를 피하려는 레나. 진석은 손에 들고 있던 반쯤 먹은 사과를 휙 내던지곤 그녀의 손목을 나꿔챘다.

"잠깐만."

"...뭐죠? 저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만."

레나는 패럴 왕자의 프로포즈에 완전히 마음을 고쳐먹었다. 겨우 육욕따위에 흔들렸던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함께 하는데 필요한 것은 하찮은 밤일의 기교따위가 아니라... 역시 사랑이었던 것이다. 이 러셀이라는 남자와의 일은 그저 우발적으로 벌어졌던 한순간의 불찰. 애당초 남의 집에 무단으로 잠입한 자신의 잘못으로 벌어졌던 일이니 이제와서 딱히 그를 탓할 생각은 없었지만... 더 이상 관계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진석은 그녀의 속내따윈 신경도 안쓰고 히죽 웃으며 집 안쪽을 가리켰다.

"안이 비어있거든. 조금 쉬었다 가는건 어때."

셀린과 케이트는 포먼의 도움을 받아 이른 아침에 캐버너의 남서쪽에 있는 마을에 보내두었다. 레나는 매몰차게 진석의 손목을 떨쳐내곤 딱 잘라내듯 말했다.

"...이제 그쪽과는 그럴 이유도, 생각도 없습니다. 그럼."

말을 마치곤 자리를 떠나버리는 싸늘한 태도를 보니 분명 레나의 심경에 변화가 있을만한 어떤일이 있었다는것쯤, 진석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호오. 왕자가... 뭔가 해줬나보지? 설마 프로포즈라도 했다던가? 푸하, 그럼 진짜 웃기는건데.'

하긴 내가 둘 사이 따위 알게 뭐냐. 내일, 그리고 모레가 지나면 더 볼일도 없는 사이. 레나와는 한 번 실컷 즐긴 정도면 충분했다. 이 이상 위험한 불장난을 벌일 필요는 없겠지. 진석은 멀어지는 레나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저택 안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자신도 마무리 연습을 해둘만한게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드디어 토너먼트의 아침이 밝았다.

============================ 작품 후기 ============================

여전히 몸이 안 좋은데다 개인적인 일도 좀 생겨서.. 오늘은 이제서야 겨우 올립니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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