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0. -- > * 117화 *
대투기장의 관객석은 토너먼트의 예선전을 보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시합은 단판 승부. 시간 제한은 10분. 10분내에 어느 한쪽이 전투속행이 불가능해지면 승리. 시간내에 결착이 나지 않으면 판정으로 승패를 결정. 항복이나 기권도 가능하나 사전 공지대로 목숨을 빼앗는 행위는 불가... 라.'
진석은 진행요원이 일러준 규칙을 상기하며 시합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기장 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환성으로 시끌벅적 했지만, 정작 시합의 내용은 별로 봐줄만한게 못되었다. 선수들을 위한 대기석에서 지켜보고 있는 진석이 생각하기엔 너무 수준 낮은 싸움이었다.
'저거... 진짜 참가접수 받는데서 중갑병을 하나라도 꺾고 올라온 놈들이 맞아? 왜 이렇게 못 싸워?'
시합장 위에선 그야말로 티격태격 거리는 싸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두 사내들은 각기 대검과 창을 쓰고 있었는데 간격이 길다보니 서로의 간격 안쪽으로 파고들진 못하고 무기들만 휘두르며 방어적으로 싸울 따름이지 어느 한쪽도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관객석에선 호응의 함성이 자주 흘러나오는게, 양쪽의 무기들이 연신 맞부딪히며 챙챙거리니 나름 호쾌한 싸움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 원 참.'
결국 10분을 다 채우고 나서야 시합은 끝이났다. 판정은 대검쪽의 승리. 창을 쓰는 사내는 고개를 떨구고 대기실 안쪽으로 사라졌고 승자인 대검 사내는 무기를 높이 처들고 한참을 좋아하다 대기석으로 돌아왔다. 한 시합이 끝나 잠시 대전의 기록 및 경기장을 정리하는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말이 휴식 시간이지 대투기장 측에서 대놓고 경마장 마권팔듯 시합에 돈을 거는 도박을 주최하고 있었기에 그 정리가 필요했으리라. 창구에선 오늘 치뤄지는 시합의 대진표를 걸어놓고 전 시합분의 승패 티켓을 판매하고 있었다. 배당률도 제각각이었다. 단순히 한 시합의 승패만 맞추는 단승식도 있었지만 배당률은 비교적 낮았다. 두 시합이나 세 시합 이상의 승자를 모두 맞추는 복승식이나 복연승식의 배당률이 높았지만 맞추기는 어려운 편이었고, 가장 배당률이 높은것은 승자와 더불어 승리한 시간대까지 적중시키는 시승식 티켓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가장 맞추기 어려웠다.
'아마 이번에 시승식 산 인간들은 돈 좀 날렸겠군.
물론 시승식 티켓엔 시간제한이 다 되어 판정을 통해 승부가 결정된다는 옵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진짜로 판정을 통해 결착이 날거라 예상하진 못했으리라. 잠시 기다리는 동안 다음 시합이 준비되었다. 진행요원이 진석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러니까... 모데로 님 맞으시죠? 다음 시합 준비해 주십시오."
"음."
진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대기석에서 나와 시합장으로 올랐다. 저쪽에 조금 떨어져서 장검을 휘두르며 몸을 풀던 상대 출전자도 마찬가지로 시합장에 올라섰다. 진석의 첫 상대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쯤으로 보이는 용병풍의 남자로, 오른손엔 장검을 들고 왼손엔 버클러를 끼고 있었다. 전형적인 소드 앤 실드 스타일인가 했지만 몸이 앞쪽으로 쏠린 자세인걸 보니 공방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형태가 아니라 버클러까지도 공격쪽에 특화시킨 스타일인듯 했다.
'그러고보니 까먹고 있었네. 비더하임의 스마이쉬 산에서 마주쳤던 파나히라는 거인족 여자애도 버클러를 썼었지.'
지금쯤이면 고향에 들러 가족의 유해를 묻어주고 아라파로 갔으려나? 그녀가 현재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어쩐지 궁금해졌다. 진석이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 심판이 시합 개시를 외쳤고 상대 남자는 버클러로 전면을 가린채 장검을 안쪽으로 끌어당긴 자세로 이쪽을 향해 빠르게 돌진해왔다.
'급하시긴.'
무기도 뽑지 않고 멍하니 서있던 진석에게 선제공격을 가하기 위해 시도한 좋은 기세의 돌격이었으나 민첩이 높은 진석에겐 별 의미가 없었다. 그는 버클러로 반격을 견제 후 돌격의 기세를 살려 찌르기를 넣을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진석은 무기도 뽑지 않은 맨손으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헉!"
상대 남자는 가만히 서 있던 진석이 순식간에 자신의 눈 앞으로 뛰어들자 놀라서 반사적으로 검을 찔러왔다. 진석은 예상하고 있던 찌르기를 가볍게 피하며 버클러 위로 앞차기를 내질렀다. 오른손으로 검을 내찌르며 왼손의 버클러를 가슴쪽으로 당겨 발차기를 막던 사내의 몸은 엄청난 발차기의 힘에 뒤로 밀려나며 균형을 잃고 넘어질듯 휘청였다. 진석은 속으로 한 숨을 내쉬었다.
'일부러 버클러 위로 내질러준 발차기 한 발도 제대로 못 버티나? 파나히만도 못하군. 귀찮으니 빨리 끝내자.'
자세가 흐트러진 사내의 품안으로 뛰어들며 복부에 밀어치듯 장타 한 방. 장타를 맞은 사내는 위로 2, 3미터쯤 붕 떠오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죽일 마음을 먹고 복부에 위력을 집중했으면 내장이 다 터져 죽었을테지만, 상대를 죽여선 안된다는 규칙이 있었으므로 때렸다기 보단 그냥 상대의 체중을 밀어내 뒤로 던졌을 뿐이었다. 나가 떨어진 사내는 바닥에 부딪히는 충격에 장검을 놓치고 잠시 괴로워 했는데, 그 짧은 사이 진석은 사내의 장검을 집어들어 그의 목에 가져다 겨누었다. 한순간에 붕 나가떨어지고 정신을 차려보니 상대가 자신의 무기를 목에 겨눈 상황. 사내는 뜨악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하더니 결국 고개를 푹 숙이며 양 손을 들고 항복을 선언했다. 순식간에 너무 간단히 끝나버린 시합에 경기장 내엔 진석을 향한 환호와, 너무 허무하게 져버린 상대를 향한 비난이 뒤섞여 울려퍼졌다.
"뭐야 저 장발은? 끝내주는데! 앞으로도 저 남자한테 걸겠어!"
"망할! 오늘 건 다섯 시합 중에 이긴건 꼴랑 하나 뿐이잖아? 저 병신이 아무것도 못하고 져버려서!"
진석은 어깨를 으쓱해보이곤 대기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시합이 거의 시작하자마자 끝나버렸으니 이번에도 시승식 티켓을 산 인간들은 피눈물 좀 쏟겠군. 너무 쉽게 시합을 끝내버리자 주변의 다른 참가자들도 왠지 모르게 진석을 경계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차피 죄다 조무래기들 주제에.'
그들의 시선을 무시한채 저쪽편 귀빈을 위한 특별 관람석을 바라보는 진석. 특별히 시합장에 가깝게 위치한 그 특별 관람석엔 이 대투기장의 책임자이자 이번 토너먼트를 주최한 장본인인 브래들리 왕세자와 그의 동생인 패럴 왕자, 그리고 그 뒤쪽에 시립해있는 레나가 보였다. 시합을 관람하기 위해 온 다른 귀빈들이나 호위들도 여럿 있었지만 진석이 알아볼 수 있는건 그 셋 뿐이었다. 브래들리 왕세자의 외모는 패럴 왕자와 이야기 할때 들어뒀었다. 과연 들어둔대로 훤칠한 호남형의 외모, 멀리서 보아도 상당히 단련했을것이 틀림없는 건장한 몸이 눈에 띄였다. 그는 방금 진석이 보여준 압도적인 실력차의 시합이 인상깊었던지 옆에 앉은 패럴 왕자를 상대로 뭔가의 이야기를 계속 떠들어대고 있었다. 패럴 왕자도 웃으며 그와 문답을 나누고 있었지만... 그 속은 틀림없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게 틀림 없으리라. 진석은 코웃음을 쳤다.
'머지않아 죽을 놈이니 적어도 웃는낯으로 대해준다 이건가.'
아무래도 상관없지. 나는 창염의 검만 챙겨가면 그만이니까. 이복형제간의 일방적인 원한이야 알아서 풀건 말건. 진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금세 시작된 다음 시합을 관전했다.
한차례 수많은 시합이 마무리 된 뒤, 장내엔 30분간의 휴식시간을 갖는다는 공지가 알려졌다. 사람들은 시합장 외측에서 파는 요깃거리를 사먹거나 혹은 창구에서 다음 시합들의 도박 티켓을 사기 위해, 아니면 생리현상의 해결을 위해 화장실에 간다거나 하며 우르르 한꺼번에 움직였던터라 장내는 이래저래 소란스러워졌다. 진석도 딱히 할일은 없었지만 대기석에서 멍때리고 있기도 그렇고 기분전환이나 할 겸 뭔가 요기라도 해결하고 올까 했다. 선수 대기석에서 빠져나가 안쪽으로 들어가보니 중간의 복도에서 병사들이 출전자들과 일반 관람객들이 오갈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해 출입을 막아둔 것을 보곤 그만두었다.
'어차피 출전자인 나도 못 나가게 하겠지. 하긴, 당연한 조치인가.'
그런데 사람들로 북적이는 복도 저편 너머에서, 후드가 달린 망토를 뒤집어 쓰고 있는 두명의 사내가 눈에 띄었다. 서로 다른편의 방향에서 와서 마주한 그들은 가볍게 악수를 하나 싶더니 서로 속삭이듯 뭔가의 이야기를 나누며 금세 보이지 않는 모퉁이쪽으로 사라져버렸다.
'...뭐지?'
정말 잠깐. 수초 사이에 지나간 풍경이라 얼핏보곤 그냥 기억에서 지워버릴 별것아닌 모습이었다. 그리고 후드가 달린 망토를 쓰는게 뭐 금지된 것도 아니니... 하지만 어째 느낌이 그들은 일반 관람객 같지가 않았다. 하긴 뭐 이런 토너먼트라면 단순히 관람객 뿐만 아니라 이래저래 여러종류의 수많은 이목이 쏠릴테지만... 그렇다곤 해도 어딘가 모르게 느낌이 묘했다.
'흐음...'
뭐 그냥 기분탓일지도. 순수히 경기를 관전하겠다는 의도로 온 관람객들 이외에 다른 목적으로 온 자들도 당연히 섞여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왕세자를 죽이겠다는 자신 이상으로 위험한 목적을 가진 작자가 설마 또 있으랴? 진석은 망토를 쓴 사내들의 모습을 그냥 머리속 한켠에서 치워버리고 대기석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오늘은 8강까지의 선발이고 거사 자체는 내일인걸. 별 일 있으랴.'
선수 대기석으로 돌아가서 보자니 안에 있던 참가자들 역시 그 숫자가 꽤나 줄어있었다. 하긴 오늘 이미 수십차례의 경기를 가지고 그만큼의 탈락자가 사라졌으니까. 진석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다음 시합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꽤나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진행 요원들의 참가자들을 상대로 가벼운 메디컬 체크를 한 다음 재차 시합이 시작되었다. 어차피 각 시합이 끝나자마자 부상자들은 치료를 받았었으니 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래도 최초의 예선보단 좀 낫군.'
맨 처음의 예선 시합들은 어떻게 참가신청을 하고 출전한건지 이해안될 정도로 질 낮은 참가자들이 많았다. 그나마 지금은 한 차례 걸러진 출전자들이 남아 시합을 하고 있는거라 그래도 좀 봐줄만한 시합들이 전개되었다. 시합들은 대체로 빠르게 전개되어 금세 A조의 모든 시합이 끝났다. A조에서 최종적으로 남은 4명 중엔 며칠전 진석이 점찍어 두었던 인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검술의 달인이자 자신을 증명하는 상징 같은 푸른 브레스트 메일을 입은 용병, 비렐. 그리고 중갑을 설친채 프레일, 라운드 실드를 쓰는 차분한 인상의 남자. 이 둘이었다.
'흐음. 과연...'
둘의 시합은 확실히 다른 참가자들을 압도했다. 특히 비렐은 검술의 달인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닌지 요소요소에서 딱딱 끊어치는 냉정한 검격으로 상대를 몰아쳐 쉽사리 항복을 받아내었다. 반면 차분한 인상의 남자는 인상과는 정 반대로 중갑과 라운드실드의 방어력을 믿고 마구 몰아부치며 사정없이 프레일을 휘둘러댔다. 무슨 악에 받친것 같은 무시무시한 기세에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난타전으로 끌고가 맞서 싸우긴 커녕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기가 꺾여 패배했다.
'하지만 저대로 둘이 붙는다면... 7대 3, 아니. 8대 2정도로 비렐이라는 용병이 유리하겠는걸.'
프레일을 쓰는 사내쪽도 못하는건 아니었지만 역시 비렐이 더 고수로 보였다. A조의 선발인원이 다 결정된 후, B조의 잔여 시합도 개시되었다. 몇차례의 시합이 진행되고 진석이 눈여겨 두었던 인원 중 한 명인 검은 레오타드의 여자가 시합장에 올랐다. 하프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지만 훤히 드러나는 관능적인 몸매의 곡선에 관객석에선 휘파람이나 천박한 야유들이 쏟아졌다. 분명 대진표에서 확인한 그녀의 이름은 제인이었다. 딱 들어도 가명일것 같다는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이름.
'저 여자도 나와 마찬가지로 대진표의 상위에 편성된데다가 아까전의 시합을 생각하면... 나름 실력은 있는편이 분명하니.'
휴식시간을 갖기 전의 예선전때의 시합을 떠올리는 진석. 저 제인이라는 여자는 도끼를 휘두르는 거한을 어렵잖게 제압하고 목에 숏소드를 들이대며 항복을 받아내 시합을 마무리 지었었다. 하지만 이번의 상대는 마법사. 그것도 경찰들이 쓰는 제압용 경봉, 즉 톤파를 쓰는 전투 마법사였다. 양손에 든 톤파를 자유자재로 놀리며 싸울태세를 취해보이는 마법사. 마법 실력 자체는 초급 단계를 겨우 면한 것 같았는데, 부족한 마법실력을 양손의 톤파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근접전으로 커버하는듯 했다. 게다가 마법사 답지않게 튼실히 단련된 근육을 보니 분명 이 마법사 역시 나름대로 강한 상대같았다. 숏소드 한 자루만을 든 그녀가 저 전투 마법사와 어떻게 싸워나갈지 꽤 기대되었다. 아까전 도끼를 쓰는 거한을 상대할땐 상대의 기량이 워낙 떨어져 본실력을 하나도 드러내지 않았다는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시합 개시!"
큰 소리를 외치고 팔을 휘두르며 시합장 밖으로 물러나는 심판. 검은 레오타드 차림의 제인을 잠시 노려보던 마법사는 톤파를 쥔 양손을 그녀에게 향하며 주문을 외웠다.
"빙결화살!"
파파팟. 허공에 세 발의 빙결화살이 나타나 빠르게 쏘아졌다. 빙결화살은 화염화살과 동급의 초급 주문. 세 발이 동시에 나가는 걸 보아하니 A랭크인 모양이었다. 제인은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서있더니 빙결화살이 자신에게 육박했을때쯤 전방으로 몸을 날려 회전 낙법을 하듯 피해버렸다. 그리곤 발바닥에 스프링이라도 붙은듯 펄쩍 뛰쳐올라 마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빙결박!"
마법사는 당황하지 않고 손을 휘두르며 재차 주문을 외웠다. 제인이 달려나가는 전방에서 삽시간에 얼음의 덩굴들이 자라나 그녀의 발목을 옭아매려 했다. 제인은 허리춤에 찬 숏소드를 뽑아들곤 검면을 왼손의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으로 쓱 훑으며 뭔가를 웅얼거리나 싶더니, 빙결박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며 숏소드를 마법사에게 집어던졌다.
"음?!"
톤파를 교차시켜 자신에게 날아드는 숏소드를 어렵잖게 튕겨내는 마법사. 하지만 마법사에게 막혀 바닥으로 나가떨어지나 싶던 숏소드는... 허공 중간에서 멈칫 하더니, 마치 그 스스로가 무슨 의지를 가진것처럼 휘익 선회하며 마법사의 등 뒤에서 찔러들어가는게 아닌가?
'뭐야 저건?!'
마법사는 와아 하는 관객들의 탄성을 듣곤 뒤에서 찔러오는 숏소드의 존재를 운좋게 눈치채어, 재빨리 몸을 틀어 그것을 막아냈으나 완전히 막아내진 못해 옆구리가 어느정도 긁히고 말았다. 옆구리에 얕은 상처를 입곤 신경질적으로 톤파를 휘둘러 숏소드를 팍 쳐내는 마법사. 두번째로 튕겨나간 숏소드는 그 무언가의 힘을 잃었는지 이번엔 진짜로 바닥위로 떨어져 버렸다. 그 사이 빙결박이 펼쳐진 바닥을 빙 둘러 마법사에게 육박하는 제인. 정말 소리도 없이 스스슥 근접하는게 흡사 무슨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숏소드는 방금 던졌고... 무기 없잖아? 숏소드는 저절로 움직여 허를 찌르기 위한 위장용이고 실제론 격투라도 하는건가?'
순식간에 마법사의 코앞까지 근접한 제인. 마법사는 흐압하고 스스로 기합을 넣으며 톤파를 촤라락 휘둘러 그녀에게 매서운 공격을 가해왔다. 제인은 그 공격에도 물러서지 않았는데, 갑자기 제자리에서 몸을 빙글 회전시키며 양 팔을 휙 떨쳤다. 그러자 그녀가 팔목에 단순히 방어용으로 차고 있을거라 생각하던 보호대의 안쪽에서 한뼘가량의 칼날이 차착 솟아났다.
'히든 블레이드!'
히든 블레이드. 암살자가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한 모 게임 시리즈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무기였다. 단, 차이가 있다면 손바닥쪽이 아닌 손등쪽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는 정도일까. 더 놀라운건 그 다음이었다. 제인은 그대로 핑그르 회전하며 원무를 추어 마법사의 톤파를 튕겨내곤, 원심력을 살려 체중이 실린 미들킥을 마법사의 복부에 꽂아넣었다.
'저거... 오에스테잖아?!'
마법사에게 일격을 가한건 분명 미들킥이었지만, 그 전 톤파를 튕겨낸 동작은 분명 자신이 사용하는 바일리 델 비엔토의 오에스테였다.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진 진석.
'뭐, 뭔데? 저 여자는 또 뭔데 내 기술을 쓰는거야? 설마... 쟤도 솜브라 교단인지 뭔지 모데로 놈과 같은 패거리?'
그렇다면... 정말 곤란하다! 저 제인이라는 여자가 진짜 솜브라 교단 출신이라면 모데로라는 이름은 알고 있을테고, 가발을 써서 그와 흡사하게 위장한 자신이 실은 진짜 모데로가 아니라는것도 이미 알고 있을텐데.... 그럼 이제 그녀와 자신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진석이 당황하는 사이 제인은 한 방 맞고 물러나는 마법사에게 질풍같이 육박해 들어갔다. 바닥을 짧게 연속으로 박차는 저 특유의 동작은 분명...!
'라파가잖아! 이런 씨...'
이걸로 정말 백퍼센트 확실하다. 저 여자도 분명 어떤 형태로건 솜브라 교단과 관련이 있는자다! 그녀가 솜브라 교단에 속한 인물이라면 대진표를 보고 시합을 관전한 만큼 진석 자신이 모데로라는 가명을 쓰고 위장했다는건 확실히 알고 있을터. 그럼에도 아직 아무런 접촉이나 어떠한 행동을 취해오지 않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좌우지간 예사 상대가 아닌것만은 확실하다.
"비, 빙결..."
마법사는 톤파로 전방을 가로막으며 화급히 뭔가의 주문을 쓰려했지만 라파가의 가속을 받은 제인쪽이 훨씬 빨랐다. 한줄기 흑선이 되어 마법사를 스쳐지나가는 제인. 촤착! 뭔가가 베어나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마법사는 비명을 지르며 손에 든 톤파를 떨구었다. 마법사의 두 손등 위엔 선명한 자상이 새겨져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심판이 뛰어올라와 시합을 중지시키고 제인의 승리를 선언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히든 블레이드의 검날을 장치 안쪽으로 밀어 넣고, 바닥에 떨어진 숏소드를 회수해 대기석으로 돌아오는 그녀. 하지만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진석과는 달리 제인쪽은 진석에게 일말의 시선도 보내지 않았다. 그 태도는 진석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것이 아니라, 애시당초 아무 관심조차 없는것 같았다.
'...대체 뭘까 저 여자는.'
솜브라 교단에 대해 알고 모데로의 지인이라면 자신의 위장을 알아챘을테고 어떤 형태로건 접촉을 했을텐데... 어떤 행동은 커녕 아무 관심조차 없는 저 태도를 보아하니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진석은 제인의 정체에 대해 한참 궁리했지만 당장 떠오르는 대답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시합장이 정리되고 진행요원이 진석에게 다가와 그의 차례가 되었음을 알렸다.
"모데로 님. 다음 차례입니다, 시합 준비해 주십시오."
"음? 아아... 알았어."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가 갑작스런 부름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진석. 옆을 돌아 상대를 살펴보니... 자신의 상대는 체구가 우락부락하고 키가 2미터를 훌쩍 넘는 무시무시한 외모의 남자였다. 예비 소집때 자신이 눈 여겨 봤었던 상대들 중 마지막 한 명. 아마도 격투를 쓰는걸로 여겨지는 바로 그 대머리 거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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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병원에 진료 예약을 했는데, 아픈것보단 돈 나갈게 더 무섭군요.
이게 최소 몇십만원은 나갈거라서.. 아이고..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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