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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120화 (120/155)

< --   - 10.   -- >         * 120화 *

라운드 실드를 앞세워 상대를 몰아치는 도노반. 그리고 그 위를 강타하는 진석의 열격장. 두 공격의 충돌지점에서 쿠웅 하고 무형의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싶은 순간, 이미 균열이 일어나있던 라운드 실드가 콰자작하고 산산히 깨어지며 여전히 기세가 살아있는 진석의 장타가 가드를 뚫고 도노반의 가슴을 강타했다!

"아, 아니이이잇-!!!"

"뭐가 아니냐? 이거나 먹고 날아가라!"

자신의 차징이 깨어지자 밎을 수 없다는듯 절규하는 도노반과 그런 그를 날려버리겠다는 듯 한 발 크게 내딛는 진석. 그리고 도노반의 갑옷 위를 음푹 파고드는 진석의 열격장! 열격장에 직격당한 도노반의 몸이 바람개비처럼 옆으로 휘릭 뒤집어지며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콰장창! 철컹! 철커덕, 끼이이이. 그대로 십여미터 뒤로 나가떨어져 바닥을 뒹구는 도노반에게서 중갑이 부딪히는 시끄러운 소음이 울려퍼졌다.

"...끄... 끄으으..."

바닥에 엎어진 도노반의 입에선 기어들어가는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갑옷을 걸친 성인 남성의 묵직한 몸체가 장타 한 방에 실 끊어진 꼭두각시 처럼 나가떨어진다?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진 장면임에도 평범한 관객들의 머리로는 이해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일순 고요함마저 감도는 장내. 하지만 승부의 행방은 누가봐도 명백했다. 시합장 끄트머리까지 밀려나 바닥에 쓰러진채 신음하는 도노반과, 여유만만히 내민 손바닥을 되돌리며 자세를 바로하는 진석. 심판이 시합장 위로 뛰어오르며 급히 진석의 승리를 선언했고 그제서야 회장엔 커다란 함성이 울려퍼졌다.

'후우... 아직 8강인데 벌써부터 쓸데없이 힘을 쓰게 만드는군. 4강에, 결승에. 브래들리 왕세자까지 처치하려면 아직 갈 길이 먼데.'

게다가 도노반과 싸우며 SP가 벌써 3분의 1 가량이나 소모되었다. 진석이 알기로 경기장내에 대기하는 의료진들은 상처를 치료해서 체력은 회복시켜주어도, SP는 예외였다. 물론 자신이 파우치에 챙겨둔 SP회복제가 있었지만 이것은 단 4병 뿐. 모자라진 않을테지만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일단은 아껴두어야 했다. 손을 탁탁 털며 시합장에서 내려가는 진석과, 그런 그를 관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브래들리 왕세자. 예선에서도 상당한 실력자임은 한 눈에 직감했지만, 본선에선 한층 더 대단했다. 브래들리 왕세자는 진석의 솜씨에 강한 호기심을 품으며 저만한 실력자라면 반드시 자신의 군문에 편입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장내를 정리하고 다음 시합을 준비하는 동안 10분 가량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진석과 대전한 도노반은 의료진들이 갑옷을 벗긴 후 들것에 실어 안쪽의 의무실로 데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얼핏 듣기론 흉골이 박살났다나 어쨌다거나 하는것 같았다.

'만약 도노반이 갑옷을 입고 스스로 버프까지 건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내 열격장에 박살나긴 했지만 라운드 실드가 약간이나마 완충작용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르겠군.'

진석이 극성까지 끌어올린 열격장을 맞고도 죽지 않은채 버틴것만으로도 도노반은 충분히 잘 했다고 할 수 있었다. 의료진들은 진석에게도 다가와 몸 상태를 체크했지만 SP가 좀 줄어든 것 이외엔 아무 문제 없었으므로 됐다고 하며 넘겼다.

그리고 곧 4강전이 시작되었다. 비렐과 관심도 없는 어느 이름 모를 참가자의 시합. 상대는 쌍검을 쓰는 사내로, 그래도 4강까지 올라온 만큼 비렐과의 시합에서도 의외로 선전했다. 뭐 선전이래봐야 한 10합정도 주고 받은것 뿐이지만. 결국 비렐의 섬전같은 강격에 한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놓치고 가슴팍에 검끝이 들이밀어진 그는 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아 젠장. 운도 좋지. 저놈은 실력도 좋으면서 아주 만만한 상대들만 만나서 쉽게 결승까지 가는구만.'

비렐의 시합은 시작한지 1분여만에 금방 결착이 났고, 이제 다음 시합은 진석과 제인의 차례였다. 제인은 진석을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더니 진행요원이 시합 준비를 알리러 오기도 전에 스스로 일어나 시합장에 올랐다. 제인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여자참가자인데다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복장을 하고 있어서인지 유독 인기가 좋은 모양이었다. 제인이 시합장에 오른것 만으로도 관객석에서 연신 함성이 울려퍼졌다.

'쓰으. 도노반 다음은 제인이라...'

결국 토너먼트는 추첨때 한 것과 같은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대로 제인을 꺾더라도 결승에선 비렐을 만나게 된다. 일단 이번의 상대인 제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순 없었다. 혹 모데로 하고 비슷할지도? 게다가 제인은 지금까지 자신의 실력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은 상태였지만, 진석은 이미 밑천을 다 드러낸 상태였다.

'나름대로 준비한 비장의 수 였던 열격장을 이미 몇 번이고 선보였으니 말이지.'

반면 제인은 숏소드를 날려 검 자체가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던 기묘한 기술도 그렇고, 분명 바일리 델 비엔토 이외의 뭔가의 스킬이 더 숨겨져 있을터. 하지만 자신은 화염화살에 열격장, 바일리 델 비엔토까지 다 내보인 상태였다. 그러나 어쩌랴. 이것은 무르거나 피할 수 있는 종류의 싸움이 아니다. 이게 다 창염의 검을 회수하기 위한 일의 일부인것을. 진석도 자리에서 일어나 시합장으로 올랐다. 아까 도노반과의 대전에서 화끈한 마무리를 보여준 진석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관객들은 진석에게도 큰 환호를 보냈다. 진석이 시합장에 올라와 제인과 마주보고 서자 놀랍게도 제인이 먼저 진석에게 말을 걸어왔다.

"넌... 뭐지?"

짧고 간결한, 싸늘한 음성. 하지만 그 짧은 물음엔 커다란 의문이 담겨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진석은 제인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는것에 조금 놀라면서도 이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뭐, 댁과 비슷한 입장이라고 해두지."

움찔. 찌푸려지는 제인의 눈가. 그때 심판이 둘 사이로 끼어들며 손을 내밀었다.

"자 그럼 준비... 시합 개시!"

팔을 휙 들어올리며 뒤로 빠져나가는 심판. 시합 개시의 선언과 동시에 제인은 양팔을 옆으로 쭉 뻗으며 진석에게 달려들었다. 라파가를 쓴건 아니었지만 제법 빠른 돌격이었다. 팔을 쭉 뻗은 제인이 달려듬과 동시에 손목을 한 번 까딱거리자 팔목에 찬 보호대에서 차착하고 히든 블레이드가 솟아올랐다.

"이거 어여쁜 아가씨가 먼저 대시해오고... 기쁜데 그래!"

진석도 실없는 소리를 하며 란비언과 흑철단검을 뽑아들어 자세를 잡았다. 그런 진석을 향해 힘껏 히든 블레이드를 휘두르는 제인. 그리고 채채챙! 네개나 되는 검날이 둘의 사이에서 얽히며 금속성의 날카로운 마찰음을 냈다.

"너... 솜브라 교단의 인간이냐?"

진석과 검을 마주한채 그렇게 물어오는 제인. 솜브라 교단을 언급하는 그녀의 눈빛엔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증오가 담겨 있었다. 진석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대답했다.

"내 말을 뭘로 들은거야? 네쪽이랑 비슷한 입장이래도."

그러자 제인은 얽힌 검날을 잽싸게 뒤로 빼나 싶더니 진석의 목덜미를 향해 찌르기를 시도했다. 상대를 죽이면 안되는 토너먼트임에도 대놓고 급소를 노리다니! 하지만 딱히 살의나 기세가 담긴 공격은 아니었다. 진석은 왼손의 흑철단검으로 찌르기를 가볍게 튕겨내며 오른손의 란비언으로 덤덤히 제인의 가슴팍을 찔러갔다. 제인 역시 진석의 허술한 공격을 막아내곤 뒤로 두세발짝 물러났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말해봐."

하프 마스크 너머로 진석에게만 들릴정도의 소리로 말을 거는 제인. 진석은 양 손의 단검을 쭈욱 내밀고 공격태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이해력이 별로 안 좋구만. 그러니까 나 역시..."

타닷! 진석은 제인에게 돌진하며 단검을 휘둘렀다. 얼핏 옆에서 보면 재빠른 기습처럼 보일지 몰라도, 대놓고 공격자세를 준비하고 있었던 제인에겐 여길 치겠다고 알려주고 공격하는 텔레폰 펀치나 다를바 없었다. 제인은 기민한 몸놀림으로 진석의 돌진을 손 쉽게 피했다. 서로의 몸이 스쳐지나갈때, 진석 역시 그녀에게만 들릴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솜브라 교단을 증오하는 인간이라 이거야."

짧은 순간이나마 자신을 향한 제인의 눈동자가 움찔하고 커지는것을 보았다. 뭐 틀린말은 아니었다. 세상의 균형인지 뭔지 지키겠답시고 솜브라 교단에서 기어나온 모데로와 에이미, 이 둘이 진석 자신의 적이었으니까. 게다가 붙잡혀서 곤욕을 치를 뻔도 했었지. 뭐 소박한 소원이 하나 있다면 모데로를 반 죽여놓고 그 눈 앞에서 에이미라는 계집을 능욕해주는 것~ 정도일까나? 진석의 공격을 피해냈던 제인은 히든 블레이드를 처척 들어보이며 진석에게 말했다.

"네가 솜브라 교단의 인간이 아니라면... 그걸로 됐어. 하지만 내 일은 방해하지마."

완전히 의구심이 사라진건 아닌듯 했지만 그 눈빛에는 아까와 같은 증오는 담겨있지 않았다. 쓸데없는 감정은 사라지고 차분히 가라앉은게,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달까? 하지만 이렇게되니 이번엔 진석이 궁금해졌다.

"네 일 이라고? 너는... 뭘 노리고 이 토너먼트에 참가한거지?"

"대답할 의무는 없다."

짧게 잘라말하며 진석에게 기습적으로 쇄도하는 제인! 그 발놀림과 속도는... 라파가였다!

"흥! 순순히 당할성 싶냐, 라파가!"

제인의 라파가에 역시 라파가로 맞서는 진석. 총알처럼 달려든 두 남녀가 서로를 스치고 지나가자 촤창! 장내 저 끝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검날의 마찰음이 울려퍼졌다. 하지만 둘의 라파가는 서로의 무기만을 때렸을 뿐이었다. 그렇게 서로 주고 받은 한 수만으로도 진석은 제인의 기량을 파악했다.

'저 제인이라는 여자... 뭘 노리고 토너먼트에 참가한건진 모르겠지만 라파가를 마주해 본 것 만으로도 알겠군. 이 여자도 거의 모데로 수준의 실력자다!'

한 편 진석과 라파가를 주고 받은 뒤 거리를 벌린 제인은 허리춤의 숏소드를 꺼내 쥐더니 검면을 검지와 중지로 슥 쓰다듬은 후 진석에게 숏소드를 집어던졌다. 진석은 그 모습에 손바닥을 내밀며 외쳤다.

"하, 그건 어제 봤다고! 화염화살!"

그리고 허공에서 나타난 화염화살 다섯발이 빠르게 쏘아지며 숏소드를 연타했다. 퍼퍼퍼퍼펑! 화염화살이 숏소드의 검날이나 손잡이를 연타하며 시합장 바깥 저 멀리까지 나가떨어지게 만들었다. 챙그랑 하고 바닥에 떨어진 숏소드는 꼼짝도 않는게, 제인이 숏소드에 사용한 뭔가의 수는 화염화살의 연타에 깨어진 듯 했다. 하지만 진석이 숏소드에 화염화살을 쏘는 틈에 라파가의 수법을 써서 재차 달려드는 제인.

'시클론!'

그리고 달려드는 제인을 보며 시클론을 거는 진석. 눈 앞에 한 줄기 섬광이 스쳐지나가며 사고속도와 반사신경이 향상되는걸 느꼈다. 그리고 정면으로 덤벼드는 제인을 향해 자신 역시 재차 라파가를 걸었다. 아까처럼 서로의 검이 교차되겠거니 생각한 순간, 제인이 갑자기 몸을 옆으로 날리며 진석에게 손바닥을 뻗었다.

"베놈 팽!"

"음?!"

그러자 갑자기 허공에서 사람의 몸통만한 녹색의 뱀 대가리가 생겨나더니, 진석을 향해 아가리를 쩍 벌리고 공격해 들어왔다. 반투명한데다 머리 부위만 떠있는것이 마법으로 소환해낸 생물이 확실했다. 게다가 보란듯 큼직한 송곳니 두개가 드러나 있는게 독사임이 확실했다. 진석의 주의를 마법으로 불러낸 독사쪽으로 돌린 제인은 그제서야 시클론을 걸며 진석의 배후쪽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치는듯 하다 측면에서 마법 독사를 깔아두고 재차 뒤를 친다라? 보통 상대라면 이걸로 끝장낼 수 있을테지만... 내가 고작 이런수로 당할까보냐?'

진석은 단검을 쥔 두 손을 가슴앞으로 끌어모으며 힘차게 외쳤다.

"토르멘타!"

모처럼 펼치는 자신의 가장 강력한 단일기 토르멘타. 진석의 토르멘타가 먼저 향한것은 코앞까지 육박한 반투명한 녹색의 마법 독사였다. 흑철단검은 마법 독사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하고 통과했지만, 란비언은 확실히 타격을 주었다.

'하긴 이전에도 스마이쉬 산의 동굴에서 라케르투스 족 유령 전사들을 상대로 할때도 그랬지. 마법 생물에게 평범한 무기는 안 먹힌다 이건가.'

짧은 사이 란비언이 독사의 입 천장을 찌르고 혀를 베어내며 쩍 벌어진 아가리 전체를 난도질했다. 찍소리도 못하고 허공에서 녹아들듯 소멸되어버리는 독사. 한편 뒤쪽에서 달려들던 제인은 진석이 토르멘타를 발하는것을 보곤 급히 멈춰서며, 뒤로 너덧걸음 백스텝했다. 하지만 히든 블레이드를 앞으로 딱 내밀고 뭔가의 자세를 취하는게... 마치 진석의 토르멘타가 끝나길 기다리는것 같았다.

'아니 잠깐. 저 자세는... 분명 전에 한 번 본적이 있었는데... 아, 서, 설마!'

그리고 진석의 토르멘타가 끝나 무방비가 되는 찰나의 순간, 기다렸다는 듯 제인의 기술이 발해졌다.

"단사 데 라 무에르떼!"

이전 모데로에게 엉망진창으로 당했던 바일리 델 비엔토의 절기이자 S랭크 스킬 단사 데 라 무에르떼. 처음 모데로에게 당했을땐 뭐에 당했는지도 잘 몰랐는데, 이번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단사 데 라 무에르떼는 흡사 바일리 델 비엔토의 하위 스킬 두 가지를 합친것 같았다. 라파가의 숏대시와 토르멘타의 난무가 동시에 펼쳐진달까? 게다가 고작 수미터로 끝나는 라파가의 짧은 효과거리와 달리, 무려 십수미터 이상을 초고속으로 전진하며 그 범위안에 토르멘타의 치명적인 난격을 펼쳤다. 단사 데 라 무에르떼를 사용하며 나아가는 자의 앞에선 정말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흡사 이름 그대로 사신이 추는듯한 죽음의 춤!

'으아아아아! 또, 또 이걸 맞을 순 없...!'

그나마 진석이 시클론으로 스스로를 가속했기에 단사 데 라 무에르떼를 볼 수도, 또 피하려고 시도도 할 수 있었다. 혼신을 다해 라파가를 써서 앞으로 몸을 날리며 제인의 기술을 피하는 진석. 하지만 왼쪽 어깨와 등줄기에 몇번인가의 충격이 느껴졌다. 그나마 피한다고 피했지만 제인의 기술 발동 타이밍이 너무 좋아 완전히 벗어날 순 없었던 모양이다. 앞으로 나동그라 떨어지며 급히 뒤를 돌아 보자니 제인은 이미 저 앞까지 나아간채 양팔을 교차하며 서 있었고, 자신의 어깨는... 멀쩡했다.

'아... 에스카마도가 공격을 막아준 모양이군. 그럼 등쪽은...'

잘 보이진 않았지만 통증을 보아하니 아마 두군데쯤 베인 모양이었다. 그나마 아슬아슬하게도 가죽 흉갑에 감싸진 부분에 맞아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다는게 천만다행이었달까? 그냥 슬쩍 베인 정도인 모양이었다. 맨 처음 단사 데 라 무에르떼를 맞았던 때에 비하면 상처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

'십년 감수했네... 가 아니고. 아직 시합중이지!'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는 진석. 제인도 그새 몸을 틀어 이쪽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진석이 그 타이밍에 단사 데 라 무에르떼를 피했다는걸 상당히 놀라하는 눈치였다.

'하긴 사실 맞으면 일격필살이나 다름없을 기술인데 샥 피해버렸으니. 하지만 한 번이면 몰라도 나도 두 번은 안 당한다고!'

진석은 뒤춤에 꽂은 단검 두 자루를 뽑아 제인에게 투척한 후 연이어 화염화살을 날려 견제했다. 단검들은 히든 블레이드로 가볍게 튕겨내고, 화염화살은 옆으로 덤블링 하며 어렵잖게 공격을 피해내는 제인. 진석은 그틈에 흑철단검은 집어넣고 란비언을 왼손에 넘겨쥔 뒤, 비어있는 오른손으로 열격장의 자세를 취하며 힘을 모았다.

"베놈 팽!"

진석이 제자리에서 열격장을 준비하자 손을 뻗으며 마법 독사를 불러대는 제인. 아까와 같은 반투명한 녹색의 마법 독사가 진석의 왼쪽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려 하는 순간, 진석은 란비언을 촥촥 휘둘러 그것을 베어버렸다. 채 제대로 나타나지도 못하고 그대로 소멸되어 사라지는 독사. 진석이 마법 독사를 베어 없에는 동안 제인이 틈을 노리고 라파가를 사용해 덤벼들었다.

'아 정말 정신없고 짜증나네. 하여튼 바일리 델 비엔토를 쓰는놈들은 다 이래! 아주 작은 빈틈만 보여도 물어 뜯으려 달려드니!'

물론 진석 스스로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진석은 자조섞인 생각을 하며 제인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타이밍을 잘 잰 다음, 암살자의 망토를 사용했다. 눈 한 번 깜빡할 사이 허공에 스르륵 녹아 사라지는 진석의 모습. 찰나의 순간. 놀란 제인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가, 갑자기 사라져...?!'

물론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상대가 뭔가 마법이라도 썼거나 자신의 눈을 속이기 위한 잔재주를 썼다는걸 알 수 있을테지만, 싸움의 도중인데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벌어진 상황이라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라파가의 기세를 멈추지 않고 끝까지 나아간 제인이 방금전까지 진석이 있었던 허공에 수평베기를 날리는 순간,

'이걸로 끝이다!'

투명화를 걸고 곧바로 슬쩍 측면으로 돌아서 있던 진석. 훤히 드러난 제인의 옆구리를 노리고 열격장을 때려넣으며 동시에 투명화를 풀었다.

"아아악!"

터엉! 울려퍼지는 타격음. 방패에 중갑, 버프마법까지 써서 몸을 지키던 도노반과는 달리 맨몸에 홑겹 레오타드뿐이던 제인. 열격장의 타격을 고스란히 얻어맞고 팽글팽글 회전하며 저 멀리까지 나가떨어졌다. 물론 제인을 죽여서야 토너먼트 탈락이니, 진석도 어느정도 힘 조절을 해서 기술을 펼쳤다. 하지만 힘 조절을 했음에도 여전히 위력은 발군이라 제인의 몸뚱아리는 거의 십여미터 가까이 날아가 나동그라졌다.

"크... 이, 이 무슨..."

처참하게 나동그라져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면서도 정신을 잃지 않고 곧바로 몸을 일으키려 하는 제인. 하지만 팔이 휘청거리며 몇 번이나 꺾이는게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도 당연했다. 아무 방어도 하지 못한채 몸 전체가 저 멀리 나가떨어질만큼 강력한 장타를 얻어맞았으니, 어떻게 보면 차에 받힌것과도 비슷한 충격이랄까. 제인은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역시 무리였다. 진석은 제인의 의지를 완전히 꺾기위해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심판이 재빨리 뛰어올라와 양 손을 저으며 진석의 승리를 외쳤다.

"하... 하하하! 마, 말도 안돼. 마지막의 몸이 사라진것 처럼 보이던 신속의 일격은 도대체...!"

그리고 특별 관람석에서 넋을 놓고 진석의 시합을 관전하던 브래들리 왕세자는 진석에게 아주 푹 빠져있었다. 도대체 저런 수준의 무인이 어디에 박혀있다 나타났단 말인가? 브래들리 왕세자는 저 남자를 보게 된 것 만으로도 이번 토너먼트는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제인을 패배시킨 마지막 열격장은 암살자의 망토의 힘을 빌어서 쓴 투명화였을 뿐이지만, 무술광인 브래들리 왕세자의 눈엔 그것이 진석이 펼친 일종의 체술이라고 생각되어 마치 그 일격이 자신이 추구하던 무의 이상향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제인이라는 여자쪽도 나름 잘 싸웠었다. 난무를 펼치며 십수미터의 거리를 순식간에 전진하던 그 뭔가의 수법은 정말 대단했다. 그렇지만 그걸 피해낸 진석쪽이 역시 더 대단하게 느껴졌달까? 이제 브래들리 왕세자는 토너먼트의 최종 결과따윈 상관없이 무조건 진석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몸이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브래들리 왕세자의 흥분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패럴 왕자와 레나는, 서로 눈빛을 주고 받으며 일이 잘 풀려가고 있음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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