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125화 (125/155)

< --   - 10.   -- >         * 125화 *

터벅터벅. 말을 타고 가도를 지나는 한 사람의 여행자. 진석이었다. 9월 중순의 햇빛은 아직 제법 따가웠다. 으하아암 하고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는 진석. 그리고 진석의 등엔 기다란 검이 한 자루 메어져 있었다. 패럴 왕자가 브래들리 왕세자에게 선물했던 마검이자 이번 일의 목표물, 창염의 검이었다. 맞는 칼집을 구하지 못해 대충 천으로 둘둘말아 빗겨멘터라 약간 불편했다.

"으하아암... 쩝."

이 가도를 따라 앞으로 대충 한시간 정도만 더 가면 셀린과 케이트가 기다리고 있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필요에 의해 구입하긴 한거지만 처음엔 묘하게 어색하고 일일이 챙겨주는게 귀찮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새 정이 들었는지 겨우 며칠 못봤다고 얼른 다시 보고 싶다니. 진석은 쩝쩝하고 졸린눈으로 입맛을 몇 번 다시며 어젯밤의 일을 회상해보았다.

"디에스 신에게 영광으으을!"

도노반은 어떻게 만든것인지는 몰라도, 마정석으로 만든 폭탄을 이용해 자폭을 시도했다. 진석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 광경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굉음을 내며 붉게 달아오른 마정석은 오렌지색의 폭발을 일으켰다. 도노반과 가장 가까이 있던 브래들리 왕세자가 가장 먼저 폭발의 화염에 휩싸였고, 그 다음은 몸을 돌려 도망가려던 이디스, 그리고 뭔가 소리를 지르며 이쪽으로 손을 뻗던 비렐이 차례로 불길에 삼켜졌다. 그리고 누군지는 몰라도 폭발의 순간 막 문가에서 안으로 들어서던 두 명의 기사 역시 마지막으로 불길에 휩싸였다. 하지만 진석 자신만큼은 예외였다. 스윽하고 자신의 왼쪽어깨를 바라보는 진석. 햇살을 받은 에스카마도가 묵직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 에스카마도의 특수 능력 브로켈이 발동했으니까... 하, 이거 없었으면 죽을뻔 했네. 이걸로 목숨을 건진게 벌써 두번째인가.'

마정석을 이용한 도노반의 자폭은, 휘말린다면 즉사할 정도로 지독한 위력이었다. 소유자의 잔여 체력을 초과하는 위력의 공격이 가해질 경우 자동발동되는 브로켈이 시전되었다는게 그 증거였다. 진석의 위험을 감지한 에스카마도는 즉시 반원형의 보호장벽을 둘러쳐 그 폭발을 막아냈다. 그렇게 수초간의 강렬한 폭발이 지나간 후 방안엔 새카맣게 타버린 시체들만이 남았다. 나무로 된 집기들은 몽땅 박살나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시체들 역시 뼈까지 까맣게 그을릴 정도로 타있었다. 마정석 폭탄을 가동시켰던 도노반 본인은 시체가 아예 다 타서 까만 자국으로만 남았을 정도였다. 게다가 폭발의 여파로 두께가 한 뼘이 넘는 돌벽들마저 여기저기 부서져 무너졌을정도니, 이런 폭발속에서 살아남는다는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다. 멀쩡한 것은 오직 보호마법으로 몸을 지킨 진석 하나뿐이었다.

"...하..."

모든것이 불타고 박살난 방안에 홀로 남겨진 진석은 허탈한 웃음을 띄었다. 브래들리 왕세자는 죽었다. 그를 흠모하던 비렐도 죽었고, 그를 죽이려던 암살자들도 다 죽었다. 오직 자신만 빼고. 그리고 진석의 손에 쥐어진 창염의 검 역시 무사했다. 하지만 상금으로 받았던 금괴가 든 케이스는 폭발 와중에 어디로 날아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됐다. 이제와서 그깟 금괴 몇 개. 마무리가 요란스럽긴 했지만... 어쨌든 일은 끝났으니까.'

자신의 손으로 죽인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브래들리 왕세자는 죽었고 창염의 검도 손에 넣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목적은 달성.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않는다던가? 그렇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런데 막상 목적을 달성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맥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후우 긴 한숨을 내쉬는 진석.

'뭐 됐다. 이제 돌아가자. 돌아가서... 좀 쉬고 싶군.'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 때문에 긴장감이 풀린것일까. 왠지 모르게 축 처졌다. 터벅터벅 문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 진석. 방에서 나가는 길에 한 쪽에서 불타오르는 불길에 아직까지 쓰고있던 가발과 머리띠를 휙 던져넣었다. 그러고나니 왠지 모르게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이제부터 여기에선 어떻게 빠져나갈까. 패럴 왕자가 약속대로 뒷처리는 잘 해줄까. 그리고 대체 제인은 누가 보낸자였을까, 등등. 그러다보니 문득 셀린과 케이트도 보고 싶어졌다.

'어쨌거나 이번 일도 마무리 했으니 돌아가는 길엔 여유를 가지고 두 노예와 함께 재미 좀 봐도 되겠지. 둘 다 한꺼번에 맛보는건 좀 그렇고, 우선은 한 명씩 따로따로 처녀를 받아준 뒤 쓰리썸은 좀 익숙해진 다음에나...'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나서 복도로 나간 진석. 그런데 복도 저편에서 왠 사람들이 쓰러져 뒹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응?"

누군가해서 살펴보자니... 패럴 왕자와 레나가 아닌가? 어떻게 여기에 왔는진 모르겠지만 아마 조금전의 폭발에 휘말려 나가떨어진 모양이었다. 다행히 폭발의 충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진 않은것 같았지만, 폭발 자체가 너무 강렬하다보니 그 여파에 휩쓸려 정신을 잃은듯했다.

'하긴. 어마어마하게 강렬한 폭발이었으니까. 폭심지의 순간 화력은 흡사 내가 쓸 수 있는 적룡의 브레스가 떠오를 정도였으니.'

그러고보니 폭발의 순간 느닷없이 왠 기사 두 명이 문가로 들어서기도 했었지? 그들이 혹시 패럴 왕자의 호위였으려나. 중갑을 입고 있던 그들이 방 밖으로 빠져나가는 폭발의 기세를 약간이나마 줄여주는 일종의 방어벽 역할도 했었으리라.

'거 왕자님 운이 좋으시구만.'

패럴 왕자와 레나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상태를 살펴보는 진석. 패럴 왕자는 상당한 쇼크 상태였지만 뭐 물리적으로 상처를 입은것은 아니고, 대충 이대로 내버려둬도 시간이 좀 지나면 저절로 멀쩡히 깨어날 수 있을것 같았다. 그보다 레나가 바닥에 나가떨어지며 바닥에 머리라도 부딪혔는지 가벼운 뇌진탕 상태였다.

'하지만 뭐 이것도 심각한건 아니니 하루 이틀 쯤 그냥 푹 안정을 취하며 쉬면 나을테고...'

둘 다 목숨에 지장이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일단은 아는 사이인데 이대로 버려두기도 그렇고... 어떻게 할까? 진석이 잠시 고민하는 사이 갑자기 복도 저편 모퉁이에서 후드를 쓴 남자들 무리가 나타났다. 수는 여섯, 아니 일곱이다. 폭발음을 듣고 막 몰려온것 같았다. 그런데 아까 도노반이 데리고 있던 수하들과 같은 후드를 뒤집어 쓴 차림새가 아닌가? 어디에 있다 이제서야 나타난건지 전후사정은 잘 몰라도, 이놈들 역시 틀림없이 도노반과 같은 디에스교의 광신도들이리라. 그들은 폭발의 흔적이 역력한 방 쪽을 바라보고 저희들끼리 뭐라고 수근대나 싶더니 다짜고짜 무기를 치켜들고 진석을 향해 덤벼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 새끼들? 도대체 도노반 이놈은 여기에 부하들을 얼마나 끌고왔던거야? 아까 그 네 명이 전부인줄 알았더만!'

어디서 틀어박혀있다 이제서야 나타난건진 몰라도 자신에게 무기를 들이댄 이상 살려줄 생각따윈 없었다. 진석은 창염의 검을 바닥에 내려놓고, 패럴 왕자와 레나의 곁에서 몸을 일으키며 두 자루의 단검을 꺼내쥐었다.

"그렇게 죽고 싶냐? 그럼 미리미리 기도나 해둬라 이 병신들. 네놈들이 좋아하는 신의 곁으로 보내주마!"

레나는 눈을 떴다. 어딘지는 몰라도 어두운 방. 여기가 어디였더라...? 모르겠다.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하복부에서 왠지 모르게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무언가 뜨겁고 단단한 막대같은것이 규칙적으로 자신의 내부에 드나드는 감각... 그렇다. 지금 누군가가 자신을 끌어안고 섹스를 하고 있었다. 상대는 누구지? 아직 정신이 몽롱한 레나는 흐릿한 시선을 들어 자신을 끌어안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둡고 왠지 모르게 시야도 침침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에 비친 그 얼굴은... 누군지 잘 몰라도 분명 자신이 아는 얼굴이었다. 어쩐지 머리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워 상대가 누구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지만, 레나는 무심코 상대가 패럴 왕자라고 판단해 버렸다. 미약한 뇌진탕 상태에 빠져있던 레나는 지금의 상황이 최근 매일밤 그랬듯 패럴 왕자에게 안겨있는 거라 제멋대로 착각해 버렸던 것이다.

"아... 왕자님...? 왕자님..."

멈칫. 연신 허리를 놀리던 움직임이 멈췄다. 지금 레나를 범하고 있는것은 다름아닌 진석이었다.

'아 젠장. 벌써 깨어나다니?'

레나가 깨어나기 조금 전. 복도에서 난입한 디에스교의 졸개 일곱명을 순식간에 해치워버린 진석. 피로 물든 단검을 시체의 옷자락에 비벼 닦으며 패럴 왕자와 레나의 처리를 잠시 고민했다. 대충 응급처치라도 해줄까 싶어 레나의 스테이터스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는데... 뇌진탕 이외에도 눈에 익은 상태 아이콘이 하나 더 떠있는걸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가임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상태표시 아이콘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진석의 머릿속에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호오... 저번에 거절당했던것도 그렇고, 나름대로 이런저런 고생을 했으니... 수고비를 받는 셈 치고 못~된 장난을 좀 치고 가볼까?'

진석은 안쪽의 인적없는 방을 찾아 패럴 왕자와 레나 둘을 차례대로 옮겼다. 사무실로 사용되는듯 몇개의 책상과 서류철들로 가득한 방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잘 잠근 다음, 패럴 왕자는 안쪽의 서류보관실로 보이는 곳에 따로 옮겨 눕혀두었다. 그리고 기절한 레나를 적당한 책상위에 눕히곤 그대로 속옷만 벗겨 범하기 시작한 것이다. 패럴 왕자의 프로포즈를 받았던 레나의 몸에 자신의 씨앗을 심어두고 도망칠 생각을 떠올렸던 것이다. 임신기능을 ON으로 돌리고 무방비하게 늘어진 레나의 몸을 탐하기 시작한 진석. 하지만 삽입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한 자극 때문인지 레나가 깨어나 버렸다.

"패럴... 왕자님...?"

진석은 막 범하기 시작한 레나가 깨어나버려 순간 식은땀을 흘렸지만, 가만보니 눈빛도 흐릿하고 말투도 뭔가 늘어지는것이... 게다가 자신을 보고도 패럴이라고 부르다니? 착각도 유분수지. 하지만 그녀는 아직 뇌진탕의 영향때문에 온전한 상태가 아닌듯 싶었다. 진석은 최대한 패럴 왕자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대답했다.

"...그, 그래. 레나. 왜 그러지?"

"아... 왕자님. 저... 전부터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레나는 진석을 완전히 패럴 왕자로 인식하는건지 일말의 의심도 없이 몽롱한 표정을 한 채 대답을 해왔다. 고개를 끄덕이는 진석.

"뭐지? 말해봐."

"사... 사실 저는... 왕자님의 청혼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음? 패럴 왕자가 진짜로 레나에게 청혼을 했었단 말인가? 설마 했었는데 진짜로 그랬을 줄이야. 하긴 레나에겐 미약을 한 번 거하게 써서 쾌락의 극치를 맛보게 해줬었음에도 어째 너무 쉽게 자신을 거부하는게, 분명 패럴 왕자가 레나의 마음을 움직임만한 뭔가를 하지 않았나 싶긴 했는데... 정말로 청혼을 했을줄은. 진석은 멈추었던 아랫도리의 움직임을 서서히 재개하며 레나에게 질문했다.

"왜지? 왜 그런 말을 하는거야?"

"아... 아으... 시, 실은..."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도 진석의 허리놀림에 쾌감을 느끼는지 연신 신음성을 흘리면서도 일전, 패럴 왕자가 거리에서 본 진석의 노예들에게 반했던 일을 언급하는 레나. 그리고 패럴 왕자를 위해 그녀들의 정체를 캐러 저택에 몰래 숨어들었다가 붙잡혀 겁탈당하고 순결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 아무리 그래도 맨정신이라면 이런 이야기, 자신에게 청혼한 상대에게 할 수 있을리 없을테지만... 정신이 흐릿하다보니 판단력이 떨어져 내심 품고 있었던 죄책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모양이로군.'

게다가 레나가 진짜로 이 이야기를 패럴 왕자에게 털어놓았다면... 여러모로 곤란해졌으리라. 자신과 한 뒷처리의 약속따위 다 때려치고 틀림없이 진석 자신에게 수배라도 걸어왔을터. 본인이 패럴 왕자 같아도 그랬으리라. 하지만 이번엔 운이 좋았다. 진석은 치밀어 오르는 사정감을 느끼며 레나의 몸을 끌어안았다.

"됐다 레나. 괜찮아. 그런건 아무 상관 없으니까... 잊어버려. 그런일은 처음부터 없었던거야. 두 번 다시 입 밖에 내지마."

"아, 하아... 하, 하지만 왕자님... 저는..."

"그만. 거기까지."

진석은 레나의 입을 자신의 입술로 틀어막으며 혀를 섞고 그녀의 몸 안 깊숙한곳에 잔뜩 사정을 했다. 진석이 사정을 함과 동시에 레나도 자궁구를 때리는 정액의 감각에 절정을 느꼈는지 허리를 높이 띄웠다.

"하읏, 아! 와... 왕자님... 사랑... 하..."

그대로 스르륵 진석의 품안에서 다시 의식을 잃는 레나. 뇌진탕 상태임에도 무리해서 한참이나 이야기를 한데다가, 그간 마음 속 한켠에 품고 있던 비밀을 털어놓고도 아무 탈 없이 용서받았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린 것이리라. 진석은 히죽 웃으며 재차 기절한 레나를 안은채 허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브래들리 왕세자가 죽었으니 올린스턴 왕국의 왕위는 자연히 패럴 왕자에게 갈테고... 하녀의 신분인 레나가 정말로 패럴 왕자의 비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부디 올린스턴 왕국의 후계자가 될 내 자식을 대신 잘 키워달라고. 끌끌.'

진석은 그렇게 레나의 몸을 붙든채, 그녀의 몸안 깊숙히 수차례나 반복해 정액을 주입해 넣었다. 쾌감을 얻기 위한 행위라기보단 단순히 씨를 주입해 넣는다에 가까운 행위였다. 어두운 방안엔 진석의 숨소리와 찔꺽거리는 마찰음만이 한참 울려퍼졌다. 물론 가임기라고 해도 이걸로 백퍼센트 임신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그래도 몇번이나 반복해 최대한 깊숙히 싸주었으니 확률은 꽤 높으리라.

'이만하면 됐겠지.'

한 번도 빼지않고 연신 사정을 해대던 자신의 물건을 빼내자, 의식을 잃은 레나의 하얀 허벅지 사이로 정액이 울컥 흘러넘쳤다. 진석은 밖으로 흘러내린것을 적당히 닦아낸 후, 벗겨두었던 그녀의 속옷을 주워 도로 입혔다. 그리고 축 늘어진 레나를 안아들곤 패럴 왕자의 곁에 데려다 눕혀놓았다. 패럴 왕자는 진석이 레나를 능욕한데다가, 질 안이 넘쳐날 정도로 정액을 주입해 넣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잠든듯 기절한 채였다. 히죽 비열한 웃음을 띄우는 진석.

'큭큭. 그럼 앞으로 행복하게들 사시라고.'

그대로 조용히 방을 빠져나온 진석. 복도를 지나 시합장 쪽으로 나갔는데 어째서인지 주변 상황은 가관이었다. 여기저기 불이 번져나간데다가 사방엔 시민들의 시체가 널려있었고 후드를 쓴 광신자 무리가 밖에서부터 진입해 들어온 경비대와 맞서고 있었다. 하지만 시합장 안으로 몰려들어온 경비대의 숫자가 압도적이라 광신자들의 대부분이 슬슬 진압되어가는 상황이었다.

'뭐야 이건 또... 아니, 대충 알겠구만.'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자신이 브래들리 왕세자의 방에서 싸우는 동안, 도노반의 수하들은 여기서 이러한 테러공작을 저지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들도 패거리를 나눠서 움직였을테지. 도노반이 브래들리 왕세자의 암살을 맡는동안, 나머지는 불을 지르며 혼란을 야기했을터. 아까 복도에서 마주쳤던 떨거지들이 그 증거겠지.

'어차피 이놈들의 처리는 내 알바 아니고 여기서 더 이목을 끌어봐야 좋을건 없으니... 적당히 빠져나가볼까.'

진석은 그렇게 사람들의 눈을 피해 대투기장을 빠져나갔다. 딱히 암살자의 망토를 쓸 필요도 없었다. 아직 주변엔 혼란에 빠져있던 시민들도 많았던 데다가 광신도를 제압하러 온 경비대들, 그리고 화재를 수습하려는 인원까지 뒤섞여 일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으니까. 워낙 시장바닥 같은 상황이라 딱히 타인의 시선을 신경쓸 필요도 없이 사람들 틈새를 지나 유유히 어둠속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제 그리 머지 않은곳에 마을의 풍경이 보이고 있었다. 회상에서 깨어난 진석은 히죽거리며 볼을 긁적였다.

'이것 참... 충동적으로 저지른 짓이긴 한데 생각해보니 뻐꾸기 같은 짓을 했구만.'

탁란이라던가? 새가 제 둥지를 짓지않고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기르게 만든다는 행위. 레나가 임신을 하게 된다면 패럴 왕자의 아이가 아닌 진석의 아이를, 남의 자식인줄도 모르고 잘 길러서 올린스턴 왕가의 후계로 기르게 되리라.

'거 참. 이것도 하다보니 재미들리겠는데. 올린스턴은 그란델이나 아라파만큼 내가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곳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후계에 내 씨앗을 슬쩍 밀어넣고 왔으니. 끌끌, 이렇게 된 이상 레나가 꼭 패럴 왕자의 정실이 되었으면 좋겠구만.'

키득거리며 말의 옆구리를 툭 쳐서 트롯으로 몰기 시작하는 진석. 마을 근처까지 다 왔으니 어서 자신의 노예들과 재회하고 싶었다. 어젠 에피타이저로 레나를 맛봤으니, 이제 메인디쉬인 셀린과 케이트를 맛봐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참 용할 정도로 그 둘을 건드리지 않고 잘도 지내왔다. 곧 그녀들을 귀여워해줄 생각에 기대감이 부풀었다.

'그나저나 둘 중 누굴 먼저 손댄다? 음... 활달한데다가 전신에 탄력이 넘치는 셀린부터... 아니, 역시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한 케이트를... 아 이게 뭐라고 이렇게 고민이 되냐 흐흣.'

속편한 생각을 하며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 진석. 대략 30가구는 넘고... 아니 40가구쯤 되려나? 마차촌 수준의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분명 포먼이 말하길 이 마을에 있는 유일한 여관의 주인이 자신의 사람이라며 셀린과 케이트를 그쪽으로 보내두겠다고 했었는데? 말을 몰아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보니, 여관으로 보이는 2층 건물 앞이 왠지 모르게 소란스러웠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서서 웅성거리고 있었고, 주변에 보이는 울타리나 수레 같은 집기들이 파손되어있고 군데군데 핏자국도 보이는게... 흡사 여기서 뭔가의 싸움이라도 벌어졌던듯 했다. 진석은 근처에 있던 행인에게 말을 걸어 물어보았다.

"저기 실례합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에? 아... 네 뭐어. 지나가다가 우연히 봤는데 왠 시커먼 차림새의 사람들이 어떤 여자랑 싸우는데... 뭐가 막 휙휙 날아다니고 번쩍번쩍 거리고..."

...잠깐. 이게 무슨 소리야? 진석은 굳은 표정을 하며 그 행인을 몰아세우듯 물어보았다.

"그, 그래서요? 어떻게 된겁니까. 좀 더 자세히!"

"엑? 나... 나도 잘 몰라요! 그 시커먼 차림새의 사람들은 왠 드레스 차림의 아가씨를 끌고 마차에 태워 남쪽 방면으로 사라져 버렸고... 그들과 싸우던 여자는 엄청 다쳐서 여관 주인이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으니까. 자, 자세한건 거 가서 알아봐요!"

진석의 뜬금없는 추궁에도 할 말은 다 해주고 도망치듯 사라져버리는 행인. 뭐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냐. 진석은 말을 몰아 여관 앞에 세워두고,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안에서 막 부서진 접시나 물건들을 치우던 종업원들이 깜짝 놀라 진석을 돌아보았다.

"여기 말로스 상회에서 온 두 여자손님 있지? 어딨어?"

난입한 진석을 보고 왠지 모르게 겁먹은 표정을 짓는 종업원들. 잠깐의 침묵 후, 그 중 한 명이 겨우 손을 들어 계단을 가리켜보이며 말했다.

"아... 그, 하... 한 명은 조금전에 붙잡혀 끌려갔고... 다른 한 명은 심하게 다쳐서 주인 아주머니가 위에서 치료를..."

진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마구 뛰어올라갔다. 2층 복도로 올라가서 보니 여러 방 중 딱 하나의 방만 문이 열려있었는데, 그 방문 앞 바닥까지 길게 핏자국이 흘러있는것이 보였다. 단숨에 방 안으로 뛰쳐들어간 진석. 안으로 들어가보니 몸 여기저기가 뭔가 날카로운것에 베인채 심한 부상을 입은 셀린과, 그녀를 붙들고 붕대를 감으며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 살집 있는 중년의 여성. 그리고 치료의 수발을 들고 있는 일꾼의 모습이 보였다. 셀린은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창백해진 안색으로 침대에 누워 식은땀을 흘리다, 막 방으로 뛰어들어온 진석을 보곤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주, 주인님!"

"뭐야! 어떻게 된거야?"

다짜고짜 셀린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어깨를 부여잡고 묻는 진석. 울상을 한 셀린은 울먹울먹, 막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겨우 삼켜넘기며 대답했다.

"케이트가... 케이트가 붙잡혀 갔다냐...!"

============================ 작품 후기 ============================

외전을 한 편 더 쓸까 싶은데 뭘 쓰면 좋을까요.

성별이 바뀌었을때의 외전을 써버릴까.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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