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1. -- > * 126화 *
진석이 마을에 도착하기 고작 20여분전. 여관 앞엔 어두운색의 사두마차 한 대가 먼저 도착했다. 그리고 마차에서 내린 5인의 남녀들. 화려하고 귀족적인 차림새를 한 젊은 사내를 선두로, 그의 수하인듯한 검은색 정장 차림의 네 남녀가 뒤를 따랐다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다들 하나같이 머리에 중절모나 페도라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나.
수하들을 이끌고 온 귀족 느낌의 사내는 여관 안에 있던 케이트를 발견하자마자 다짜고짜 달려들어 그녀를 붙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고 했다. 그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던 여관주인의 말에 따르면 케이트는 저항을 하긴 했지만 뭔가 굉장히 당황하는 눈치였다나. 자기들끼리 뭐라고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이 아마 서로 아는 관계같았다고 했다.
마침 위층에 있다 소란을 듣고 내려온 셀린은 무슨 사정인지 몰라 당황했지만 막무가내로 케이트를 데려가는 모습에, 지금까지 모자와 옷 속에 감추고 있던 귀나 꼬리같은 묘인족으로의 본색까지 다 드러내며 그들에게 덤벼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케이트를 강제로 끌고 간 자의 수하 남녀 4인의 실력은 셀린보다 대단했다고 했다. 남자쪽 둘은 브로드 소드를, 여자쪽 둘은 세이버를 휘두르며 네 명이 한 몸같이 움직이는 연수합격으로 마구 날뛰는 셀린을 어렵지않게 상대했다고.
야성을 최대한 발휘해 있는 힘껏 힘을 써본 셀린이었지만 혼자서 합격을 구사하는 숙련된 검사 넷을 이길 순 없었다. 이내 셀린이 제압되고 그 목엔 칼날이 디밀어진 상황. 케이트를 붙잡고 있던 사내가 셀린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케이트를 협박하자, 결국 케이트는 셀린의 안전을 위해서 저항을 포기하고 순순히 마차에 올랐다고 했다. 그 정체 모를 자들은 곧 케이트를 데리고 남쪽 방면으로 사라지고, 여관주인은 부상을 입은 셀린을 안으로 옮겨 막 치료하는 참이었다고 했다. 셀린과 여관주인에게서 간략한 사정을 전해들은 진석은 이를 꽉 물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띠링 하고 눈앞에 새로운 퀘스트의 알림이 떠올랐다.
- 퀘스트
[ 노예 탈환 ]
등급 : D 랭크
내용 : 당신의 노예를 빼앗겼습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무사히 되찾아야 합니다.
보상 : 노예를 무사히 되찾았을 경우 스테이터스가 소량 상승합니다. / + 스킬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나 원. 이거 퀘스트였어?'
이거 대충 봐도 케이트의 납치는 돌발 이벤트성에 가까운 퀘스트인 모양이다. 하지만 하필 이런 타이밍에 일어날건 또 뭐야?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막을 수 있... 었을리가 없구나. 이건 게임이니까. 언제 도착했던간에 무조건 자신이 도착하기 직전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벌어졌으리라. 미간을 찌푸리는 진석. 우선 파우치에 들어있던 최상급 체력 회복제를 하나 꺼내어 셀린의 손에 쥐어주었다.
"일단 넌 이거부터 마시고... 여기서 몸 추스리고 있어. 케이트는 내가 되찾아온다!"
"주인님! 나도, 나도 가겠다냐!"
온 몸에 상처를 입고 붕대를 감은채로도 팔을 뻗어 진석의 옷깃을 붙잡는 셀린. 필사적인 눈빛으로 진석을 올려다 보고 있었지만 진석은 고개를 저으며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 양 옆에 돋아있는 두 큼직한 귀의 감촉이 보들보들했다.
"내 말 들어. 넌 얌전히 기다려. 아니면 내 실력을 못 믿겠다는거야?"
"아... 아니... 나 주인님 믿는다냐."
얼굴은 전혀 납득못하는 표정이면서도 대답만큼은 긍정을 하는 셀린. 진석은 잰걸음으로 방을 나서면서도 셀린의 손에 쥔 약병을 재차 가리켜 보였다.
"금방 찾아올테니까 너 그거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꼭 다 마셔!"
그리고 복도와 계단을 날듯 뛰어내려가는 진석. 셀린의 상처는 심한편이긴 하지만 당장 목숨이 경각에 달린것도 아니니, 저 회복제를 먹으면 대부분 다 아물터. 그러나 셀린의 상처가 다 아문다고 해도 당장 케이트의 추적에 셀린을 데려가긴 좀 곤란했다.
'케이트를 붙잡아간지 아직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 말로 추적할 수 있을테지만... 셀린은 말을 못타! 승마술이 없으니 말을 타다 낙마라도 하면 어쩌려고.'
아니면 셀린은 묘인족이니 말을 타는것보다 두 발로 뛰어서 추적에 가담하게 할 수도 있을테지만... 방금 막 큰 부상을 당했던 애에게 달리기를 강요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찌어찌 달려서 케이트의 뒤를 따라잡는다고 해도 지쳐서 싸울수도 없을터. 자신과 같은 말에 태우고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러면 그만큼 말이 지치고 속도 또한 나지 않을것이다. 지금은 그냥 본인 혼자서 추적을 하는게 가장 나은 방법이었다. 여관밖으로 나선 진석은 훌쩍 뛰어 말 등에 올라타, 옆구리에 박차를 가했다.
"가자!"
이히히힝! 말은 두 앞다리를 한 번 높이 들어올리더니 진석이 고삐를 잡은 방향을 따라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주민들이 마구 달려나가는 말의 기세에 놀라 길가로 물러섰다.
'분명 남쪽 방향이라고 했었지? 그나저나 이 자식들. 대체 뭐야? 금화 3만닢이나 주고 사서 아직 손도 대보지 못한 노예라고! 데리고 다니면서 시킨거라곤 고작 식순이 노릇 정도인데!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고 백골이 진토될 정도로 부려먹어도 시원찮을 판에 감히 내 노예를 데려가?!'
씩씩거리며 열을 내는 진석. 말을 전속력으로 몰던 진석은 잠시 심호흡을 하며 진정하고 상대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 푸짐하게 생긴 여관 주인 아줌마가 한 얘기로는... 케이트가 저항보다는 당황하는 태도가 역력해 보였다고 하니 분명 서로 아는 사이인건 확실. 게다가 죄다 검은색 옷차림에 머리엔 모자를 쓰고 있었다니...'
혹시... 케이트를 데려간 놈들도 케이트와 같은 마족인걸까? 분명 케이트는 영마족이랬던가 뭐랬던가. 어두운 색 옷을 선호하던 케이트의 태도나 머리의 뿔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썼다고 한다면... 말이 된다. 아마 그들 역시 같은 마족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케이트와 같은 마족이 나타나서 데려간다라... 아니 그보다 케이트를 어떻게 찾아낸거지? 마족간엔 뭔가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는 재주라도 있는건가? 에이 설마...'
마족에 대해선 진석도 그닥 아는바가 없으니 확실치 않았다. 그나마 확실한거라곤 셀린과 여관주인의 입을 통해 들은 단편적 사실 뿐. 허나 몇번을 거듭해 생각해 보아도 그들 역시 마족인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잠깐. 그러고보니... 케이트를 데려간 사내의 차림새가 왠지 호사스러운게 꼭 귀족같은 차림새라고 했었지? 그리고 케이트를 처음 데려와서 본인 입으로 자기소개를 들을때... 뭐 어디 출신이라는 이야기와 이름 정도만 들었었지만...'
말투가 꼭 사극에서 나오는것마냥 묘하게 고상한 어투를 구사하길래 그냥 편하게 말하라고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어딘가 좋은 집안 출신이 아닐까 했었는데 만약 케이트를 데려간 자가 케이트와... 같은 집안의 가족이라면?
"......"
가능성이 있다! 충분히 그럴만한 이야기다. 케이트는 스스로를 스토웰 가문의 삼녀라고 밝혔었다. 그렇다면 그 스토웰 가문인지 뭔지, 가문의 일원들이 사라진 케이트를 찾아나섰을수도 있는것이 아닌가? 애당초 그녀와 같은 마족이 옥션에 올라왔다는 것은, 자기발로 노예로 자청한 것도 아닐테니 분명 납치를 당했다는 이야기. 확실히 경매장에서 케이트를 처음 봤을때 역시 그녀는 정신마법에 제압당한 상태였었으니... 뭐 이제와서 케이트를 어떻게 찾아낸거냐는 둘째치더라도, 케이트의 가족이 그녀를 되찾으러 온거라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하긴 단순히 케이트의 미모를 노리고 납치한거라면 본인이 그렇게 순순히 끌려갔을리도 없고, 상대가 대낮에 뻔뻔히 들이닥쳤을리도 없지. 그렇다면 케이트를 데려간 그 작자들의 정체는 진짜 가족이라도 되는 모양인데.'
그럼 이거 어쩌지? 자신의 추측대로 케이트를 데려간 자가 그녀의 가족이라면 사실 그 행동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다. 본인은 케이트를 노예로서 돈을 주고 샀을뿐이고, 복종마법으로 충성과 애정을 강제했을 뿐이니. 사리에 맞게 생각한다면 케이트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은 일이리라.
'...그, 그렇지만.'
케이트를 구입할때 쓴 내 금화 3만닢은? 어디서 돌려받는단 말인가? 게다가 돈만이 문제가 아니다. 케이트에겐 아직도 손끝 하나 대지 않았었다. 뭐 볼장 다 보고 질리다 못해 지겨울 정도가 되어 이젠 필요없다~ 고 느낄 상황이라면야 보내줄 용의가 아주 없는것도 아니지만... 이건 아니지! 지금 그녀를 누군가에게 내어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어차피 나는 이 세계속에선 악당놈인걸? 이제와서 가족이고 나발이고, 몰라! 웃기지마! 케이트는... 내거다!'
고삐를 쥔 진석의 손에 뿌드득하고 힘이 들어갔다. 말은 진석의 의지를 읽기라도 했는지 이히이잉 길게 울며 한층 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진석이 마차를 따라잡은건 그로부터 10여분 뒤였다. 마차는 가도 관목림 부근의 갈림길 앞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주변에서 누군가 길가에 서서 실갱이를 벌이고 있었던게 보였다. 처음엔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말을 몰아 가까이 다가가며 보자니... 그건 케이트였다! 길 한켠에 서서 말다툼을 하는것 같았다. 뭔가를 설득하듯 말하는 사내에게서 물러나는것이 거부의 의사를 표하는것 같았달까. 주변에서 경계를 하던 검은 정장차림의 네 남녀는 진석이 미친듯 말을 몰아 근처까지 다가오자 각자 브로드 소드와 세이버를 뽑아들며 길을 막아섰다.
"거기 기수! 말을 멈춰라!"
"닥쳐! 화염화살!"
고삐를 놓고 말등에서 휙 뛰어내리며 화염화살 다섯발을 흩뿌리는 진석. 진석의 외침과 말이 달려든 소란에 저쪽에 있던 케이트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 주, 주인님!"
"뭐? 주인니임?! 야 케이트 너 대체...!"
케이트가 반과움과 놀라움이 반반씩 섞인 얼굴로 진석을 바라보며 그렇게 외치자, 그 앞에 서있던 사내가 얼빠진 표정을 하며 케이트를 붙잡아 세우는것이 보였다. 그 사이 네 남녀는 진석이 날린 화염화살을 가볍게 막거나 피해내곤 사방을 에워쌌다.
"이 놈들! 잘도 내 케이트를 데려갔겠다!"
"...뭐? 이 뻔뻔한 인간이 감히!"
"네 놈이었냐! 스토웰 가문의 아가씨에게 손을 대고 무서운 줄도 모르고 여기까지 잘도 낯짝을 들이밀다니!"
진석의 외침에 주변의 남녀들은 각자 분노에 찬 대꾸를 하며 무기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그런걸 신경 쓸 진석이 아니었다. 양 손으로 동시에 흑철단검과 란비언을 뽑아드는 진석. 차창하며 날카로운 두 단검이 햇살 아래 모습을 드러내었다.
"닥쳐 이 졸개년놈들아. 너희들이 감히 셀린에게 난도질을 해줬다지? 갚아주마!"
곧바로 시클론을 걸고 라파가의 숏스텝으로 정면에 있던 남자에게 달려드는 진석. 진석이 순간이동 하듯 눈앞으로 몰아닥치자 깜짝 놀라 검면으로 방어자세를 취하는 그. 진석은 그의 어깻죽지를 베어버리고 휘익 뒤로 돌아가 등짝을 파바박 서너번 가볍게 내리그은 후 무릎 안쪽을 로우킥으로 뻐억 걷어차 바닥에 주저앉게 만들었다.
'생각같아선 그냥 다 죽여버리고 싶지만... 원래 얘들은 케이트 집안의 가신들일테니 케이트 눈 앞에서 싹 몰살시키기도 그렇고. 적당히 무력화 시키는 정도로 봐주마. 하지만 셀린의 몫이 있으니, 어디 한 번 매운맛 좀 봐라!'
넷 중 한 명이 순식간에 무력화되자 케이트를 제외한 전원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짜고짜 말을 몰아와서 마법부터 날리더니, 그 다음엔 눈으로 쫓기도 힘들 정도의 고속으로 움직이며 자신들의 동료를 너무 쉽게 쓰러트는게 아닌가? 바로 옆에 있던 여자 하나가 세이버의 끝을 내밀며 가만히 서있는 진석에게 빠른 찌르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진석은 가만히 서 있는게 아니었다.
"이딴 찌르기로 파리나 잡겠냐!"
진석은 오른손에 쥔 란비언을 칼집에 슬쩍 찔러넣고, 그새 열격장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대충 3~4할 가량 모은 열격장이었지만 오른손에 낀 적룡의 건틀렛의 방어력을 믿고 세이버의 검날을 향해 그대로 장타를 날렸다. 파카캉! 세이버는 진석의 장타에 빗겨맞았지만 그 즉시 검날이 너댓동강으로 쪼개지며 깨져버렸다. 진석은 경악에 찬 표정을 띄우는 상대 여자의 품으로 파고들어 복부에 주먹을 찔러넣었다. 뻐어억!
"캬학...!"
힘을 조절한 일격이었음에도 타격 순간 그녀의 몸체가 허공으로 거의 한 뼘정도는 떠올랐다. 복부를 관통해 척추까지 뚫어버리는듯한 위력에 그대로 배를 부여잡으며 자리에 쓰러지는 그녀. 두번째 상대를 쓰러트린 진석은 그대로 암살자의 망토를 발동했다.
"뭣?!"
"사, 사라졌어?!"
남은 두 남녀는 당황했다. 진석은 그 둘에게 달려들며 각기 화염화살을 나누어 내쏘았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갑자기 화염화살이 쏘아지자 질겁해서 검으로 막아내거나 물러나며 피하는 둘. 진석은 우선 남자쪽의 뒤로 다가가 막 화염화살을 베어내는 그의 옆구리에 장타를 질러넣었다. 뿌득하고 갈비뼈에 금이 가는 촉감이 느껴지며, 그는 그대로 말의 발길질에라도 걷어 차인듯 옆으로 수미터를 나동그라졌다. 입을 벌린채 침을 질질 흘리며 꺼헉하고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하는 남자. 진석은 라파가를 써서 홀로 남은 여자에게 다가가 그 목덜미를 강하게 쥐어채며 투명화와 시클론을 풀었다.
"아윽! 으, 이... 이런...!"
"시끄러."
꽈악! 목을 쥔 손에 힘을 넣자 세이버를 들어 반격하려던 그녀는 결국 무기를 떨구고 양 손으로 진석의 팔에 매달렸다. 버둥버둥.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진석의 무시무시한 완력으로 움켜쥔 목을 떨쳐낼 순 없었다. 진석은 그대로 그녀를 질질 끌고가며 케이트를 붙잡고 있는 귀족 차림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야 너."
"뭐, 뭐어?"
뜬금없는 하대에 당황하는 그. 좀 가까이 다가가서 보자니... 중절모 때문에 얼굴에 그늘이 져 있어서 그렇지 상당한 미남인게, 언뜻 보기에 케이트와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상이었다. 진석은 잘라뱉듯 말을 이어갔다.
"뭐긴 뭐야. 이 계집년 모가지 꺾어지는 꼴 보기 싫으면 케이트 내놔 이 새끼야."
"큭! 이 빌어먹을 인간놈이 감히...!"
그는 케이트는 내주지 않겠다는듯, 꽉 움켜쥔 케이트의 손목을 당겨 자신의 등 뒤로 감추었다. 진석은 자신이 목을 움켜진 여자를 악력만으로 번쩍 들어올린 다음, 복부에 가볍게 잽을 한 방 먹이고 무슨 장난감 던지듯 옆으로 확 내팽개쳤다.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곤 배를 움켜쥔채 쿨럭쿨럭 고통에 찬 기침을 토하는 그녀.
"무... 무슨 저런..."
아무리 힘이 좋아도 그렇지 사람을 한 손으로 번쩍 들었다가 집어던지다니? 케이트를 뒤로 감춘 사내는 그 모습을 보고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험악한 얼굴을 한 진석이 벨트에 꽂아넣었던 란비언을 마저 뽑아들고 가까이 다가서자 뒤로 밀려나 있던 케이트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 그만 놔주세요 둘째 오라버니! 저분은... 저분은 저에게 해를 끼치는 분이 아니에요!"
멈칫. 양 손에 단검을 뽑아들고 귀신같은 형상으로 다가서던 진석의 걸음이 멈춰섰다.
'...두, 둘째 오라버니? 가족일지도 모른다고 예상은 했지만... 오빠였다고?'
이거 참... 최악의 대면식이군. 하지만 이제와서 저 사내가 케이트의 오빠였다는걸 알았다고 해도 약한 태도를 보일 순 없었다. 새삼 정중히 굴며 사리에 맞게 일을 풀어나가자면 천상 그녀를 가족의 품에 돌려줘야 할테니! 그러나 밀리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건 케이트의 오빠쪽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는 케이트를 뒤로 확 밀쳐낸 다음 허리에 차고 있던 회색날의 장검을 뽑아들었다.
"넌 저리 물러나 있어 케이트! 파인즈 가와의 혼담을 앞두고 있던 네가, 대체 왜 이런곳에서 정체모를 인간을 주인님이라 부르는꼴이 되어있는건지 사정은 모르겠다만... 내 동생을 한낱 인간따위의 노리갯감으로 내어줄 성 싶으냐!"
아 그래? 거 용감하신 양반이군. 하지만 케이트의 눈 앞에서 그녀의 오빠를 아까 다른 수하들처럼 개잡듯 두들겨 팰 수도 없는 노릇이니... 진석은 두 단검을 도로 벨트에 꽂아넣고 바람에 휘날리는 암살자의 망토를 펄럭 어깨너머로 젖히며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그쪽 집안 사정따윈 모르겠다만... 케이트는 가문의 부속물 따위가 아니야! 이젠 엄연히 내 여자라고! 그러니 그런 줄 알고 여기서 썩 꺼져! 나와라, 아르도르여!"
두우웅. 몸 속 깊이 퍼져나가는 묵직한 울림. 순식간에 체력과 SP의 5할이 날아가며 허공위로 거대한 용의 머리가 떠올랐다.
"쿠오오오오-!!!"
진석의 부름에 순식간에 그 모습을 드러낸 적룡 아르도르. 비록 머리뿐이었지만 그 모습은 여전히 거대하고 압도적이었다. 입 틈새로 크후 크후 숨을 내뱉을때마다 마치 입김처럼 화륵 화륵 작은 불길이 새어나왔다. 진석이 아직 브레스 웨폰을 발하라는 의지까진 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르도르는 발사 직전으로 대기하고 있는 참이었다.
"요... 용?! 어, 어, 어째서...!? 이... 인간따위가... 용의 힘을?!"
칼을 놓치더니 바닥에 털썩 엉덩방아를 찧고 황망하다못해 거의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진석과 아르도르의 머리를 번갈아보는 케이트의 오빠. 진석은 오른팔을 옆으로 촥 떨치며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카아아아 하고 길게 포효한 아르도르가 한 번 숨을 들이마시더니 하늘을 향해 힘차게 폭염의 브레스를 내쏘았다. 콰르르르륵! 하늘 수십미터 너머까지 솟구치는 새빨간 불기둥. 허공에다 내쏘는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방이 온통 붉게 물드는것이, 아찔할 정도의 열기가 주변에 맴돌았다.
"이럴수가... 지, 진짜로... 용을..."
얼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케이트의 오빠. 아르도르의 머리는 십수초간의 긴 브레스를 토해낸 후에야 서서히 사라졌고 그제서야 주변에 감돌던 열기도 어느정도 가라앉았다. 진석은 싸늘한 표정을 지은채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케이트의 오빠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이래도 내가 케이트를 데려가는걸 막는다면... 다음번엔 네 놈을 아르도르의 목구멍에 처박아주지."
"히, 히익!"
명백히 공포에 질린 그. 그리고 그 너머를 바라보니... 케이트 역시 굉장히 겁을 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진석때문이 아닌, 방금전의 용 때문에 그런것 같았다.
'아니 이거... 케이트나 오빠쪽 태도로 그렇고. 혹시 마족에겐 용이 뭔가 특별한 존재인가? 물론 겁을 주려고 보여준거긴 하지만 어째 생각 이상으로 굉장히 겁을 집어 먹는데?'
뭐 어쨌거나 효과가 좋았다면 그걸로 됐다. 진석은 케이트의 오빠를 지나 케이트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 손에선 약간의 떨림이 느껴지는게 케이트는 진짜로 겁에 질려있었던 모양이었다. 진석은 피식 웃으며 그녀를 자기쪽으로 이끌었다.
"어때. 괜찮아?"
"아... 네. 괘, 괜찮습니다 주인님. 단지... 너무 놀래서 그만..."
묻고 싶은게 많다만...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듣도록 해야겠군. 진석은 케이트를 이끌고 저쪽 관목림 구석까지 틀어박혀 있던 말을 찾아서 그녀를 말등에 태웠다. 그리곤 자신의 그녀의 뒤쪽에 올라탄 뒤, 아직도 바닥에 주저앉은채 일어나지 못하는 케이트의 오빠에게 한 마디를 남겼다.
"케이트는 앞으로 내가 잘 보살필테니... 두 번 다신 이런식으로 찾아오거나 하지 말도록. 또 다시 내 얼굴을 보는 일이 생길땐 아까 말한대로 용의 간식거리로 던져줄테니까! 이랴!"
그대로 말을 몰아 자리에서 벗어나는 진석. 그렇게 관목림 앞 갈림길엔 바닥에 쓰러진 4인의 남녀와 넋이 빠진 케이트의 오빠, 그리고 그들이 타고왔던 마차만이 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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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결국 그냥 본편의 진도를 빼는걸로..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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