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1. -- > * 131화 *
그냥 아르도르의 폭염~ 정도만 외쳐도 충분한데 굳이 이런식으로 외치자니... 왠지 낯부끄럽구만. 이거 뭐 중2병도 아니고. 하지만 저번 웨런이 케이트를 강제로 데려갔었을때 한 번 그랬듯 이건 전적으로 상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연출. 게다가 케이트의 말대로 마족들이 신성시 하거나 경외감을 품는다는 용 아닌가. 이정도 허세는 부려줘야겠지.
"그오오오오-!!!"
진석이 힘껏 오른손을 치켜들자 마치 그에 답하듯 허공에서 스스슥 하고 형상을 드러낸 적룡 아르도르의 거대한 머리. 비록 머리뿐이었지만 언제 보더라도 역시 미친 존재감을 자랑했다. 아르도르의 머리가 투레질 하듯 고개를 흔들며 괴성을 지르자 일대의 공기 전체가 저릿하고 진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뭐 이게 완전한 용의 포효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사방을 압도하는 효과가 있는걸까? 눈 앞에 주저앉아있는 카일이나 저쪽에 떨어져 있는 웨런, 그리고 케이트나 셀린. 마지막으로 주변을 에워싼 스토웰가의 수하들이나 저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몇몇 마을 주민들까지. 그들 모두의 표정이 경악과 공포로 물드는걸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진석은 웨런을 향해 말했다.
"어이. 분명 이름이 웨런이랬지? 너, 이게 환상이나 마법으로 보인단 말이지?"
"으... 아, 아니... 그게..."
창백하게 질린 낯빛으로 어쩔줄 몰라하는 웨런. 진석은 피식 웃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다가 저쪽 공터에 있는 적당한 나무를 한 그루 발견했다. 진석은 그쪽 방향에 있던 스토웰가의 수하들에게 손을 휘휘 저어보였다.
"어이 거기 너희들. 휘말리기 싫으면 저리 비켜봐."
갑작스런 진석의 말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의미를 알아듣곤 후다닥 멀찍이 비켜서는 그들. 진석은 나무를 향해 손을 뻗으며 외쳤다.
"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불쌍한 웨런을 위해 애꿎은 나무나 한 그루 숯덩이로 만들어 보자고! 그럼... 내 명에 따라 발하라, 아르도르의 폭염!"
스으으읍, 콰아아아! 호흡을 한껏 들이마신 아르도르는 힘차게 입을 벌리며 진석의 명령에 따라 나무가 서 있는 방향을 향해 즉시 브레스 웨폰을 토해내었다. 수십미터 이상 쭈우욱 뻗어지는 불꽃의 폭포! 해가 쨍쨍한 대낮임에도 주변이 온통 시뻘겋게 물들정도의 무시무시한 폭염이었다. 진석이야 이미 몇 번이나 본 거긴 하지만 이건 정말 언제봐도 장관이었다. 흡사 요새나 성채마저 통째로 태워버릴 수 있을것 같은 이 압도적인 불길의 세례. 이러한 용의 권능앞에서 맞서거나 살아남을 수 있는 대상이 과연 존재할까?
"저... 정말로 용이..."
그리고 진석의 귀에 무심코 중얼거리는 카일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하지만 공포나 경악이 아닌, 어딘가 순수한 경외심이 담겨있는듯한 음성이었다. 십수초간 이어진 브레스는 곧 사그라 들었고 불길이 닿았던 일대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새까맣게 타버린 주변. 잔불이 남아 타닥거리며 연기를 피워올렸다. 목표대상이었던 나무는 완전히 전소해 아예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고 주변에 굴러다니던 큼직한 바윗덩이는 압도적인 고열에 녹아서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위가 녹아내린다니. 정말 엄청난 고열이다.
'사실 이쯤되면 태운다기보다는... 소각쪽에 더 가깝구만.'
브레스가 훑고 간 자리엔 뭐 남는게 있어야 말이지. 진석은 아르도르의 머리가 사라져가는것을 확인 한 후 카일에게 악수하듯 손을 내밀었다. 물론 악수를 하자는 의미는 아니었다. 내 손을 잡고 일어나라는 적의없는 행동. 그리고 그 손을 붙잡고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카일. 이제 진석을 바라보는 카일의 시선엔 이제 적대감이나 분노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그 빈자리엔 이제 강렬한 호기심이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형님. 정말 저대로 보내도 괜찮을까요?"
"...그래, 괜찮다."
역시 찜찜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웨런과,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보이는 카일. 그 둘의 시선이 향하는 저 멀리에선 진석이 탄 마차가 떠나가고 있었다. 카일은 약속한대로 케이트의 의향대로 그녀가 진석을 따르는것을 인정하고 두 번 다시 추적을 하거나 뒤를 쫓지 않겠다고 확언했다. 허나 단순히 카일이 진석과의 싸움에서 패했기 때문에 그런것만은 아니었다.
'원래 인간 따윈 딱히 신용할수도 없고 그럴 가치도 없는 자들이지만... 용의 힘을 다룬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카일은 진석이 케이트를 데리고 떠나가기 전 그녀에게 다가가 조용히 한마디를 건넸었다. 약속대로 저 인간을 따라가는것은 인정할테니, 가능하다면 가까운 시일내 살루아의 저택으로 한 번만 들러달라고. 그것도 케이트 혼자만이 아니라 반드시 저 인간과 함께 오라는 이야기를 했다. 케이트는 큰 오빠가 한 의외의 발언에 조금 놀라는 눈치였지만 자신을 억지로 데려가겠다는 말도 아니었고 말도 안되는 무리한 부탁도 아니었기에 주저하면서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트는 카일에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아무리 복종마법으로 진석에게 복속된 케이트였다곤 하지만, 그녀의 내면에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마저 사라진건 아니었으니까.
'그래. 일단은 그거면 충분해. 이제와서 고작 파인즈 가와의 혼담따위, 별 가치도 없는 이야기지. 뭐 급할건 없으니 몇 년쯤은 기다려주지. 케이트가 단 한 번만 이라도 저 인간을 저택으로 데려온다면... 이후엔 얼마든지 구워삶아 스토웰 가문의 일원으로 편입시킬 수 있으니까.'
인간을 가문으로 끌어들인다니. 마족들의 통념으론 말도 안될 정도로 파격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마족들에겐 일종의 경외의 대상인 용. 그 힘을 다루는 인간을 한 편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장차 스토웰 가문은 아무도 넘보지 못할 절대적인 위치로 올라갈 수 있을것이 필연. 힘을 중시하는 마족들의 세계에서 저 남자는 반드시 독보적인 무기가 되어줄 것이 틀림없었다. 카일이 노리는것은 진석이 가진 힘 그 자체였다.
물론 케이트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막내 여동생이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러셀이란 남자에게 푹 빠져있는 그녀를 되찾기위해 용의 힘을 구사하는 상대와 척을 지느니, 차라리 그 관계를 인정하고 손을 잡는 쪽이 가문에 득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카일은 수하들을 통솔하여 주변을 정리하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마을 저편에서 일련의 소동을 보고 몰려온 주민들이나 몇몇 경비병들은 조금전 나타났던 용의 모습에 멀찍이 떨어져 겁을 먹고 구경하기만 할 뿐, 근처로 다가올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카일은 그 모습에 훗 하고 싸늘하게 조소하며 수하들이 열어주는 마차의 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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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린스턴 왕국의 국경 부근에서 케이트의 가족인 그녀의 오빠들과 결착은 낸 진석의 마차는 쭈욱 남하해 옐 프람 성국으로 향했다. 국경간의 거리가 그리 먼 편은 아니었지만 도중에 해가 떨어져, 근처의 작은 숲을 찾아 그 부근에서 하루 야숙해야 했었다. 진석은 승차칸 안쪽에서 마차의 차축이 삐걱삐걱 울릴정도로 셀린과 케이트를 붙잡고 괴롭혀주었다. 물론 누가 보는 눈이 있는것은 아니었지만, 실내도 아닌 야외에서의 행위임에도 둘은 부끄러워 하긴 커녕 더 흥분하는것 같았다. 한차례 행위가 끝나곤 모닥불을 피워놓은 후 그 앞에서 저녁을 차려먹으며 다시 한 번 둘과 번갈아가며 관계했다.
'이것 참. 처음엔 분명히 옆에서 일을 도와 줄 전력으로 써먹으려고 구입했던 노예들인데... 어째 그냥 성처리 노예가 되어버렸군.'
하긴 애당초 전력으로 쓰려고 생각했으면 좀 더 전투능력이 있는 쪽을 구입했었어야지. 이제와서 이런 생각해봐야 한참 늦은감이 있었다. 하지만 뭐 어떠랴. 자신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 즉각 반응하고 순종적으로 따르는 노예들이니 다루기 편하고 쉬워서 좋았다. 딱히 이해득실을 생각하지 않고 상대를 자기 내키는대로 다룰 수 있다는 일종의 우월감이나 정복감 같은거랄까?
다음날 오후. 진석 일행은 옐 프람 성국의 국경 도시에 들어설 수 있었다. 성벽이 도시 주변을 빙 둘러싼 다분히 방어적인 느낌의 성채 도시였다. 옐 프람 성국. 그들의 교리에 따르면 일월성신이라 표현하는 태양의 신, 디에스를 섬기는 디에스교를 공식적인 국교로 인정하고 있으며 본인들의 나라를 신의 축복을 받은 땅이라는 의미로 왕국이 아닌 성국이라 표현하는 곳이었다.
옐 프람에선 딱히 국민들에게 디에스교를 믿을것을 강제하진 않았지만, 이미 국민 대부분이 신자들이다 보니 믿고 싶지 않다고 해도 따돌려지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신자가 되는 수 밖에 없었다. 옐 프람 성국내에선 디에스교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온갖 종류의 불이익이 돌아갔으니까. 친구 사이건, 마을의 이웃 사촌간이건, 혹은 어느 공적인 단체이건. 어느 집단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럼에도 디에스교를 믿지 않는 이들이 지극히 소수지만 존재하긴 했다.
그리고 디에스교의 대주교는 왕의 조언자로서 총리와 같은 직위에서 정치나 내정 및 외교에 까지 고루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했고, 교단의 규모가 일국 전체를 아우를 만치 커다랗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온갖 종류의 폐단과 악습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것에 관해 드러내놓고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용기있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장점도 있었다. 디에스교는 기본적으론 평화와 화합을 중요시하는 종교. 도노반이 속해있던 디에스의 검과 같은 초강경파 집단도 있었지만 전체를 통틀어 보자면 그러한 극단적인 강경파는 정말로 소수였고, 기본적으론 대다수의 시민들이 법을 준수하며 지극히 평화로운 생활을 영위했다. 대다수가 신을 믿고 따르는 옐 프람에선 다른 나라들과 달리 범죄조직들이나 불법적인 사업들이 발을 붙이기 힘들었다.
또 정치적으로 보았을때 왕과 대주교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면 그야말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해 총동원급의 총의를 끌어낼 수 있다는점이 가장 무서운 부분이었다. 옐 프람엔 딱히 디에스교를 견제할 정치적 세력이나 이익집단도 없었고, 서로 대립을 일으키는 파벌이라고 해봐야 온건파와 강경파인 프로파가티오 파와 체르비카투스 파의 마찰 정도 뿐이었으니까. 왕과 대주교가 뜻을 함께 한다면 그야말로 전 국민을 전선으로 내모는 미친짓마저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외국에서 온 여행자나 상단들은 이 모든것에서 예외였다. 그야 어느 나라이건 교역이나 통상을 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아무리 디에스교가 득세하는 옐 프람이라고 해도 자신들의 법도가 통하지 않는 타국인들에게까지 자신들의 교리를 적용하려는건 무리가 있었으니까. 대신 디에스 교단은 대륙 여러 나라에 전도사나 성직자들을 파견했다. 외국에까지 나아가 외진 지역의 주민들에게 대민 봉사나 구호 활동을 하고, 성직자들의 신성 마법으론 환자들의 병이나 상처를 치료 해주는 등 적극적인 전도에 힘을 실었다.
그 덕분에 실제로 유곤 왕국과 올린스턴 왕국, 그리고 애거스트 공화국의 국경 부근엔 적지 않은 디에스교의 신도들이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대륙에 종교가 디에스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보니 이들이 아무리 공격적인 전도를 한다해도 역시 그 영향력은 대부분 옐 프람 성국 부근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 도시 이름이 분명... 에노페스군. 음 맞아.'
진석은 지도창을 열어 도시의 이름과 자신의 진로가 맞나 확인을 한 번 하곤, 그대로 마차를 몰아 성문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하지만 창을 들고 성문 부근을 지키던 에노페스시의 경비병들이 달려와 마차 앞을 막아섰다.
"에헤이, 이 사람 이거. 그냥 들어가면 안되지."
"자자 마차 정지."
손을 저으며 마차를 세우라고 지시하는 경비병들. 진석은 갑작스런 그들의 행동에 설마 경비병들이 시비를 걸거나 트집을 잡으려는건가 싶어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딱히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들의 할 일을 해야한다는듯 느긋하게 마차의 전진을 제지해오는 경비병들. 진석은 지시에 따라 마차를 세우고 그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아 이거 참. 여행자이신가? 갑자기 붙잡아 세워 미안하게 됐구만. 다름이 아니라... 실은 석달 전부터 통행세를 걷고 있어서 말이야."
멋쩍은듯 볼을 긁적이며 답해오는 경비병. 그보다 통행세? 아니 지금 뜬금없이 통행세라니. 당장 재원이 필요한데 딱히 세금 걷을 구멍이 없을때 시행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통행세다. 하지만 전쟁중인것도 아니고 디에스교는 온 국민들 상대로 기부금도 많이 받아 달리 재원이 모자랄 일은 없을텐데? 아 물론 국고와 교단의 돈은 분명 별개긴 하지만서도...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일단 도시에 들어선 이상 이곳의 규칙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봤자 큰 돈도 아니고 기껏 통행세인걸 뭐.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춤에 찬 돈 주머니를 꺼내드는 진석.
"알겠습니다. 얼마죠?"
"남녀노소 관계없이 1인당 은화 한 닢. 통행세치곤 좀 비싸지? 도시를 나갈때는 받지 않지만, 들어오는 인원에 한해선 받으라고 해서... 초행인 사람들이나 오랜만에 들르는 사람들은 이래저래 불만이 대단하지만, 나야 뭐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것 뿐이라서. 혹 현금이 없으면 상응하는 현물을 대신 받기도 하는데 이런 사두마차를 타고 다니니 뭐..."
그렇게 말끝을 흐리는 경비병. 기껏해봐야 보통 동화 열 닢 정도 걷는게 통행세인데 두당 은화 한 닢이면 정말 엄청 비싼 금액이다. 자신은 금화 삼천닢 가량의 여비가 있긴 하지만 그거야 진석 본인의 주머니 사정이고. 평균 도시 노동자의 임금을 생각해보면 눈이 튀어나올 액수가 맞다. 이놈들 이거 뭐 세수에 어마어마한 빵꾸라도 난건가? 그게 아니라면 달리 돈을 모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건데... 지금 이렇게 급히 돈을 모으려 든다는건... 역시 올린스턴 왕국 때문일까? 석달 전부터 돈을 모으고 있는거라면 잘은 몰라도 역시 군자금? 얼추 시기가 맞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진석은 입맛을 쩝 다시면서도 주머니에서 은화 세 닢을 꺼내 경비병에게 건네었다. 돈을 받은 경비병은 액수를 확인해보곤 진석에게 되물었다.
"세 닢이라. 안에 두 명 더 타고 있는건가?"
"네. 확인이라도?"
"에이 뭐 그럴 필요있나. 맞겠지. 자 그럼 통과!"
돈을 받은 경비병이 손을 흔들며 다른 경비병들에게 신호하자 마차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이들은 뒤로 물러나 제자리로 돌아갔다. 진석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재차 마차를 출발시켰다.
아직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길을 서둘러 재촉할 필요는 없었다. 진석은 느긋이 게임을 즐기고 싶었지 교단의 목적에 진심으로 따르는건 아니었으니까. 에노페스 시에 들어선 진석은 곧바로 근처의 좋은 여관을 찾아서 방을 잡았다. 늦은 점심을 시켜먹고, 느긋이 목욕도 마친 뒤 방으로 돌아왔다. 함께 씻으러 내려갔던 셀린과 케이트는 아직 방에 없는것을 보니 둘은 욕탕에서 꽤나 오래 씻고 있는 모양이었다. 진석은 아직 물기로 축축한 머리카락을 마른 수건으로 문지르며 푹신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역시 이상하구만~ 통행세 같은걸 이렇게 비싸게 걷는걸 보니 분명 올린스턴 왕국과의 전쟁을 준비하는게 아닐까 했는데... 게다가 토너먼트에서 브래들리 왕세자를 암살하겠답시고 도노반 같은 놈과 그 수하들도 엄청 잠입했었고. 그런데 지금 이곳의 거리는 이상할만치 평화로운걸?'
게다가 이곳은 국경 최북단의 성채 도시. 만약 옐 프람 측의 수뇌가 전쟁을 결의하고 있다면 위험한 국경지다보니 이래저래 도시 전체엔 긴장감이 흐르고 있을테고 아예 도시에서 떠나거나 피난하는 시민들도 있을법한테, 그런 위기감 따윈 전혀 없었다. 디에스교의 교리가 본디 평화와 화합을 강조한다고 해도 그것과는 별개로 그냥 지극히 일상적인 느낌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는 진석.
'내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건가? 아니면... 원래 전쟁을 결의하던 브래들리 왕세자가 죽었으니 이쪽도 긴장을 푼다? ...일리 없지. 일국의 왕세자가 죽었는데 더 큰 난리가 나면 났지 조용히 넘어갈리는 없을터.'
허나 브래들리 왕세자의 사망 원인은 현재 허신의 교단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클립튼 일행으로 해달라고, 진석 자신이 제 2왕자인 패럴과 직접 협상을 했었다. 대외적으로 브래들리 왕세자의 사망 원인을 클립튼 일행의 암살로 공표한 뒤 주변국과의 전쟁이 아닌 다른 노선으로 해결점의 가닥을 잡고 있다거나? 하지만... 단순한 암살이라고 뭉둥그려 넘어가기엔 도노반과 디에스의 검이라는 초강경파의 테러행위가 너무 컸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진석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아 몰라. 모르겠다. 뭐 난 그 이후 그냥 창염의 검을 들고 도시를 벗어나 버렸으니 뒷일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걸. 이후의 흐름따윈 패럴 왕자가 알아서 수습하겠지. 어차피 내 나라 일도 아니고 앞으론 더 볼일 없을테니... 알게 뭐람!'
레나가 가임기에 들어선것을 보곤 못된 생각을 품고 그녀를 임신시키려 몇 번이고 범하기도 했으면서 지극히 무책임한 태도를 취하는 진석. 하지만 진석의 관심사는 이후 미리안과 교단에 대해 자신은 끝까지 협력해야 할것인가 혹은 어딘가에서 뒷통수를 쳐야할것인가가 전부였다. 또 다른 관심사가 있다면 클립튼 일행을 박살내는 방법에 대한 것 정도? 타국의 정치나 외교적 행방에 대한 부분은 진석이 신경쓸 부분이 아니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머리에 수건을 얹은 셀린과 케이트가 방으로 들어섰다.
"원래 물은 싫었지만... 따뜻한 온수가 가득찬 욕조에 몸을 담그는건 확실히 기분 좋은것 같다냐."
"응, 그렇지. 몸이 물 속에 녹아드는 기분이랄까."
서로 잡담을 하며 목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둘. 막 씻고 나와서일까. 둘 다 볼이 발갛게 상기된데다가 비누향기 같은것이 폴폴 풍기고 있었다. 진석은 히죽 웃으며 둘에게 까딱까딱 이리 오라는 의미의 손가락질을 해보였다. 진석의 손짓에 두 말 없이 다가와 양 옆에 걸터앉은 셀린과 케이트. 진석은 양 옆에 앉은 노예의 어깨에 손을 두르며 자신쪽으로 끌어당겼다.
"뭐 너희나 나나 막 씻고 왔지만... 이틀만의 침대니 또 몸을 씻어야 할만한 일을 해볼까나?"
"냐아. 주인님... 이젠 이런 대낮부터 요구한다니, 너무 밝힌다냐."
눈을 가늘게 뜨고 고양이처럼 미소지으며 은근슬쩍 교태를 부리는 셀린. 진석은 셀린을 돌아보며 물었다.
"뭐야. 그래서 싫다는거야?"
"에헤헤~ 그럴리가!"
그렇게 외치며 진석의 품에 와락 뛰어드는 셀린. 그러자 케이트도 질 수 없다는 듯 물기어린 긴 머리가 방해되지 않도록 머리끈을 꺼내어 뒤로 싹 모아 한 갈래로 묶어내리곤, 자신도 진석과 셀린 사이로 파고들었다. 아직 해도 한참 중천인 이른 시간부터 방안엔 남녀의 살 부딪히는 소리와 신음성이 가득 차올랐다.
============================ 작품 후기 ============================
어젠 하루종일 골치아픈 일이 많아서 피로가 쌓였는지.. 오늘 일어나보니 벌써 1시더군요. 아이고 내 주말이 이렇게..
몸도 어째 영 별로라 골골거리면서 키보드를 붙잡고 글을 쓴다고 썼는데 이제서야 겨우 요만큼 써서 올립니다. 기분만이라면 그냥 막 팍팍 써서 진도도 쭉쭉 빼고 연참도 하고 싶은데 몸이 안따라주는군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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