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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143화 (143/155)

< --   - 13.   -- >         * 143화 *

다그닥 다그닥. 어둑한 밤. 네 필의 말이 가도를 한참 벗어나 있는 수풀속에 멈춰섰다. 그 중 선두의 말에 탄 사내는 뒤쪽의 일행들을 향해 여기서 대기하라는듯한 손짓을 해 보이곤, 혼자서 말에서 내려 조심스레 수풀의 외곽쪽까지 걸어나갔다. 자세를 낮추고 마치 정탐하듯 가도쪽을 살피는 그. 다름아닌 진석이었다.

'진짜네. 이 자식들 정말로 병력을 끌고 왔잖아? 얼추... 2천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가도 부근에 진을 친 군막들과 횃불들의 수효를 대강 헤아려본 진석.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수풀쪽으로 돌아가 말에 올랐다. 그리곤 말머리를 몰아 숲 안쪽으로 향하며 기다리고 있던 다른 이들에게 지시했다.

"자, 그럼 이만 가자."

대답 없이 진석의 뒤를 따르는 다른 셋. 아르데나와 셀린, 케이트였다. 진석은 말을 몰아 어두운 숲속을 헤치고 나가며 며칠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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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엑?! 저, 저보고 미리안씨가 하던 일을 대행하라구요?"

헤세스모데우스 교단의 사원. 건물 외곽 한쪽에 마련되어있는 새장 앞. 진석은 전서구의 발목에 지령을 담은 명령서를 묶은 뒤 하늘로 날려보냈다. 그런 진석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엘리야. 진석은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렇다고 혼자서 다 하라는건 아니고 여기 제이스랑 케이트라는 또 다른 도우미도 하나 더 있으니 셋이서라면 그럭저럭 할만할거야. 아무래도 쟤들 둘만으로는 일이 잘 안되는것 같아서... 너 머리 좋잖아? 그러니 네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아니 갑자기 왜 사원으로 직접 호출한건가 했더니 뜬금없이 이런... 저기, 러셀씨.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이 하던 업무라는건 그렇게 간단히 이어받을 수 있는게 아니라구요? 최소한의 인수인계 정도는 받아야..."

"아 됐어. 거 말 많네 참. 그냥 하라면 좀 해. 원래 일이라는건 대충 하다보면 되는거야."

"아이참! 또 그렇게 막무가내로!"

답답하다는듯 발을 동동 구르는 엘리야와 그런 그녀를 억지로 붙잡아 건물 안으로 질질 끌고가는 진석. 미리안의 방까지 이르러 문을 열자, 서류 더미에 코를 박고 있는 제이스와 케이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둘 다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못해 눈밑에 검댕칠을 해놓은 것 마냥 다크서클이 선명했다. 제이스와 케이트는 며칠째 일에 관한 파악을 함과 동시에 현상유지를 하는데만도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었다. 헤세스 약품 통상이나 엠퍼슨 메디컬 아카데미의 경영에 관한 서류라면 그나마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었지만, 타국에 위치한 교단의 조직이나 세력에 대한 방침같은건 진석도 함께 고민을 해야했다. 일단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경거망동 하게 할 순 없으니 대부분은 그냥 행동을 자제하고 대기하는 쪽으로 지시를 내렸다.

"우와아..."

엉망진창인 제이스와 케이트의 몰골. 그리고 방안 가득히 쌓여있는 서류의 산을 보고 놀라며 주춤거리는 엘리야. 진석은 그런 엘리야를 억지로 방 안에 밀어넣고 문을 쾅 닫아버렸다.

"여, 열어줘요! 싫어! 알지도 못하는 업무에, 이렇게 많은 서류를 어느세월에 처리하라고! 갈론으로 돌아갈거야!"

필사적으로 문을 탕탕 두드리는 엘리야. 하지만 그 뒤를 이어 피로에 절은 제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 시끄러우니까 그만 입 다물고 이리 와서 앉아. 빨리 펜 잡아. 일단 여기 이 결산서류부터 처리해. 이쪽은 단순한 계산업무니까 별로 안 어려워. 고작 50장 정도 밖에 안되는걸."

"히, 히익."

지레 질겁하는 엘리야의 음성. 그리고 피곤해서 목이 잠긴듯한 케이트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게 끝나면 이쪽에도 처리해야 할 게 200장 정도 더 있지만요."

"내, 내가 왜... 이런..."

음음, 그럭저럭 잘 되겠구만. 며칠정도 지켜봤지만 제이스와 케이트만으론 일이 진전이 없이 쌓이기만 하는것 같아, 구원투수로 엘리야를 불렀는데 확실히 탁월한 결정인것 같았다. 머리가 좋은 엘리야니 뭐가 되건 어떻게든 알아서 수를내겠지. 벌써부터 화기애애하구만. 가~족같은 일터라니깐 정말? 엘리야를 서류지옥에 밀어넣은 진석은 콧노래를 흥흥거리며 사원의 뒷뜰쪽으로 향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확실히 미리안이 엄청 유능하긴 했구만... 항상 서류더미속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긴 했었지만 저런 미친 업무량을 혼자서 계속 처리하고 있었다니.'

복도를 지나던 와중 도중에 마주친 낯이 익은 여신도가 가볍게 목례를 해왔다.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아준 진석. 진석과 제이스가 신도들 앞에서 적당히 잘 둘러댄 덕일까? 미리안이 전혀 보이지 않았음에도 신도들 사이에선 별다른 의문같은건 나오지 않았다. 여태까지 미리안의 곁에서 그녀의 일을 돕던 수호자들인 진석과 제이스가, 지금 미리안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 있어 당분간 지하에서 칩거해야 하므로, 식사고 뭐고 그냥 지하쪽엔 절대 아무도 접근말라는 엄명을 내려뒀는데... 어째 다들 의아해하긴 커녕 아 그렇구나~ 납득해버리는 느낌이었다.

'이 신도들도 참 신기할정도로 이쪽을 철썩같이 믿고 따른다니까.'

수호자인 자신이 말한것도 한점 의문을 품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니, 미리안이 이들에게 죽으라고 명령한다면 정말 스스로 배를 가르거나 목을 메달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렇게 복도를 지나 뒷뜰로 나간 진석. 너른 공터에선 아르데나와 셀린이 서로 가벼운 대련을 하고 있었다.

'만약 그때 아르데나가 타이밍 좋게 날 도와주러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게임오버를 당하고 로드를 해서 지금쯤 케이트의 오빠를 또 쫓아낸 다음 재차 남하하고 있는 도중일테지. 옐 프라나에선 또 클립튼 일행 마주치고 말이야.'

진석이 미리안과 결전을 벌였던 그날 저녁. 아르데나는 그냥 단순히 진석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방으로 찾아왔었다고 했다. 하지만 방에 있는것은 진석이 아닌 두 노예, 셀린과 케이트 뿐. 그들에게 진석의 행방을 물어 미리안의 방으로 향해봤지만 역시 그곳에도 아무도 없었다. 진석이 어디갔나 싶어 사원 안팎을 둘러보았지만 역시 외부에서도 찾을 수 없는 상황. 의아하게 여기며 혼자서 한참이나 사원내부를 돌아다니던 아르데나. 그러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가본적 없는 지하로 향하는 문이 열려있는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내려온거라고 했다. 나선 계단을 내려와 복도를 지나는데 안에서 뭔가 싸우는것 같은 소리가 들렸고, 도대체 뭔가 싶어 맨 안쪽까지 들어와봤더니 자신이 미리안에게 위협당하는 장면이 막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고.

"아, 오빠!"

"주인님왔냥?"

대련을 하고 있던 둘은 진석이 밖으로 나오자 금새 알아채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운동으로 건전한 땀을 흘리는 미녀들이라. 음 보기 좋은걸? 진석은 양손을 뻗어 둘의 머리를 동시에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둘 다 뭐 진전은 좀 있어?"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차피 이 둘은 머리가 딸... 아니아니, 지력 수치가 좀 떨어지는 편이다보니 서류업무를 시킬수도 없고 해서 일단은 둘이 대련하며 기술이라도 연마하라고 지시해뒀었다. 아르데나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기분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현재로선 아주 조금뿐이긴 하지만... 그래도 분명 셀린씨에게서 여러모로 배울점이 있는것 같아요! 뭔가 감을 잡을것 같은 기분이 든달까..."

아르데나는 지력은 그리 높지 않지만 그렇다고 없는 말을 꾸며 거짓말을 할 성격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하는걸 보면... 별 기대는 안했지만 정말로 뭔가 성과가 나올지도? 어쨌거나 단시간내에 전투기술을 배워왔던 전적도 있고, 아르데나는 확실히 몸으로 직접 배우는게 나을 타입이려나? 음... 몸으로 직접 배운다니. 어째 어감이 야하군.

"에헤헤. 난 잘 모르겠다냐."

반면 그야말로 아무 생각없이 활짝 웃어보이는 셀린. 진석도 셀린을 보며 마주 웃었다. 그래. 애시당초 너한텐 뭐 기대도 안했다. 고양이에게 뭘 기대하는놈이 바보지. 진석은 웃는낯으로 셀린의 볼을 양 손으로 꼬집고 옆으로 쭈욱 잡아당겼다.

"아으, 아흐다냐아~"

볼이 잔뜩 당겨져 어딘가 새는 발음으로 울상을 짓는 셀린. 진석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프라고 꼬집는거야."

"즈인님 심흘그다냐!"

"그래? 호오~ 지금 주인님한테 반항하는거 맞지? 좋아, 오늘밤 각오해둬. 진짜 심술궂은게 뭔지 보여줄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셀린의 볼을 놓아주고 히죽히죽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어보이는 진석. 셀린은 잠깐사이 금세 빨개진 자신의 볼을 주물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너무한다냐... 케이트 일한다고 주인님 며칠새 나만 너무 괴롭힌다냐..."

그렇지 않아도 제이스나 케이트는 며칠째 서류와 씨름하느라 매일 늦게까지 일했고, 밤엔 지쳐서 잠을 자기도 바빴기에 진석도 둘에겐 손을 대지 않았다. 진짜로 그럴 여유를 부리지 못할만큼 일이 잔뜩 밀려있었다. 그리고 아르데나는 아직 미성년인데다 2년 뒤라는 약속을 했었으니... 현재 진석의 성욕을 처리해 줄 상대는 달리 할 일이 없는 셀린 밖에 없었던 것이다. 셀린은 짐짓 의기소침한 척 굴었지만 귀는 연신 쫑긋 거리고 꼬리는 그 끝이 파닥파닥 좌우로 열심히 흔들리는게... 말은 저렇게 해도 오늘밤에도 진석이 자신을 귀여워 해줄 일이 무진장 기대되는 모양이었다. 뭐 실제로도 둘이 함께 매일같이 기분좋게 재미를 보고 있는 참이기도 했고. 그리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르데나는 내심 안타까운 표정을 해보였다.

"...나도... 할 수 있는데..."

따악. 진석은 아르데나의 이마에 가벼운 촙을 먹였다. 아얏 하며 이마를 감싸쥐는 아르데나.

"이 오빠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아이는 싫어한단다."

"...아, 알았어요."

머쓱한 표정을 짓고마는 아르데나. 미리안을 물리치고 벌써 5일이나 지났지만, 진석은 일단 이런 느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분간 이렇게 시간을 보내며 제이스와 케이트, 그리고 엘리야가 미리안이 하던 일에 좀 익숙해지고 교단의 외부 조직들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끝나면 그들로 하여금 정리작업을 하게 할 생각이었다.

'현금화 할 수 있는건 봐서 적당히 내가 챙기고, 쓸데없는 조직들이나 세력들은 폐쇄시키거나 손을 끊어야지. 정 안되겠다 싶은것들이 있으면 직접 해치워주고...'

물론 그런식으로 정리작업을 해나가면 당연히 제이스가 의아하게 생각할수도 있을테지만, 케이트와 엘리야가 업무에 익숙해질때쯤 되면 어차피 제이스는 쓸모없을터. 상황을 봐서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진석은 미리안과의 싸움에서 일시적으로 얻었던 무한의 힘은 잃었지만, 그래도 바일리 델 비엔토가 드디어 S랭크를 찍은데다가 다른 스킬들 역시 엄청나게 랭크업을 했다. 거기다 어웨이크닝이라는 스킬을 얻었고 스테이터스도 대폭 상승했기에 누가 적으로 나타난다 하더라도 별 걱정은 없었다.

'어웨이크닝. 이런 종류의 스킬이 존재한다는건 정말 금시초문이었는데...'

엄청난 영혼의 힘을 흡수해 일시적이었지만 신의 힘에 필적할만치 초월적인 능력을 얻었던 진석. 그런 진석에게 어웨이크닝이라는, 궁극의 깨달음을 얻은 자만이 얻을 수 있다는 패시브 스킬이 생겼던 것이다. 어웨이크닝은 인간이 데미갓, 즉 준신으로 거듭나기 위한 사전단계와도 같은 기술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리고 진석이 현재의 어웨이크닝으로 할 수 있는것은 두 가지. 힘을 모으는 일과 각성이었다.

'모을 수 있는 힘엔 두 가지 종류가 있지. 하나는 믿음.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영혼.'

믿음의 경우 타인에게 도움을 준다거나 혹은 애정을 얻는다거나, 어떠한 형태로건 자신이 타인에게 흔들림없는 신뢰를 얻게 되면 누적되는 마음의 힘이었다. 그리고 영혼은 글자 그대로 그냥 영혼. 이쪽은 단순히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형태로 흡수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모은 믿음이나 영혼으론 각성을 사용 할 수 있었다. 각성을 사용하면 모든 능력치가 각기 최소 3배에서 최대 10배까지 어마어마한 폭으로 랜덤하게 상승하며, 온갖 버프들 역시 적용됐다. 미리안과 싸우며 영혼의 힘을 흡수해 강해졌던것과 비슷한 효과. 모든 능력치가 딱 2배 오르고 마는 에그레기움의 상위호환이라고 할까.

'그리고 어웨이크닝엔 랭크가 없는 대신, 믿음이나 영혼의 수치 관리가 필요하다는게 중점이랄까...'

믿음은 상대의 신뢰가 변하지 않는 이상 그 절대치가 줄어드는 일은 없었다. 만약 자신이 총 100의 믿음을 지니고 있는 상태라면 각성을 사용해 한시적으로 100의 믿음을 전부 소모해도, 별 문제가 없는한 시간이 조금 지나면 100만큼의 믿음이 다시 회복되게 되어있었다. 그냥 SP와 비슷한 개념이랄까. 하지만 영혼은 달랐다. 내가 10만큼의 영혼을 지니고 있고, 각성으로 그것을 전부 사용했다면 그냥 그걸로 끝이었다. 영혼은 한 번 써버리면 그대로 없어져버리는 연료같은 것. 즉, 믿음이란 타인의 신뢰를 유지하는 한 반영구적으로 회복되는 마음의 힘이고 영혼은 한 번 쓰면 사라져버리는 1회용 건전지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데 중요한건 두 수치의 효율은 믿음보다 영혼쪽이 훨씬 높다고... 스킬 설명에 그렇게 쓰여있다는게 참... 뭐랄까.'

믿음 1만큼으론 각성 1초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영혼 1로는 각성 10초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무려 10배라는 효율차. 허나 영혼쪽의 효율이 좋다고 마구잡이로 타인을 살해해 영혼을 축적할수만도 없었다.

'설명에 의하면 어웨이크닝은 어떠한 경로건 큰 깨달음을 얻은 자가 준신이 되기 전에 이르는 사전단계임을 의미하는 것. 그리고 이 기술을 얻은 상태에서 믿음을 많이 축적하다보면 차후 선의 힘을, 반대로 타인의 영혼을 착취하고 주로 사용하다보면 악의 힘을 얻어 각기 그에 걸맞게 변모하게 된다고 쓰여있었으니...'

그야 이전같으면 적당히 아무나 팍팍 죽이고 효율이 좋은 영혼만을 모아서 사용했을테지만... 한 번 헤세스모데우스라는 악신의 일부나마 싸워보고나니 진석의 생각은 바뀌어 있었다.

'기껏 헤세스모데우스와 미리안을 박살내놓은 내가 이제와서 악신의 길로 걸어간다는것도 웃기잖아? 암만 게임이라도 괴물과 싸우다가 본인까지 괴물이 되어버리진 말아야지.'

뭐, 그렇다곤 해도 상황을 봐서 정 곤란하다 싶으면 그냥 영혼을 모아서 힘을 쓸 생각이었다. 아예 써선 안된다고 못을 박아둔것도 아니고 그냥 믿음보다 덜 모으고 덜 쓰면 괜찮을테지. 그래도 기왕이면 일단은 믿음을 모으고 사용하는 쪽으로 진행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 진석이 현재 지니고 있는 영혼은 0. 그리고 믿음의 수치는 72 이었다.

'그나저나 이 믿음이라는건 어떤 기준으로 얼마만큼 모이는건지... 그건 잘 모르겠군. 막연히 타인에게 애정이건 뭐건 신뢰를 얻으라고만 되어있으니.'

흐음. 길거리 전도활동이라도 하고 다녀야 하는걸까? 나를 믿으라~ 하는 식으로. 에이, 물론 농담이다. 그렇게해서 모이는 수치는 아닐테지. 뭐 평범하게 생각해본다면... 선행을 하면서 남들을 돕는다거나 하면 되려나? 애정도 된다고 했으니 여자를 꼬셔서 사랑을 받는다거나? 그와 반대로 영혼은 그냥 아무나 죽이면 쭉쭉 모을 수 있는거니 분명 이쪽이 훨씬 쉬운 방법인것 같긴 하다.

'그러니까 이게... 게임에서 제시하는 선악의 기준인걸까.'

참 게임답다면 게임답달까. 사람이란 가족에겐 더없는 선인이라도 타인에겐 잔혹한 악인일수도 있고, 혹은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었다. 선악이란건 상황에 따라서, 그리고 상대적으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것. 이렇게 단순히 어느쪽 수치를 더 모으고 쓰느냐만으로 구분지을 수 있는게 아닐테지만...

'...에이, 어차피 게임이다. 쓸데없는걸 깊이 생각하지 말자.'

머리를 휘저으며 생각을 털어버린 진석은 한참이나 자리에 서서 멍하게 생각에 잠긴 자신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아르데나, 셀린과 함께 사원 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런식으로 엿새가 더 지났다. 요사이 사원으로 날아들어온 전서구들의 내용을 1차적으로 확인하거나 외부로 전달해야 할 전서구를 직접 날려 보내는일은 진석이 담당하고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진석은 며칠새 그래왔듯 자연스레 사원 밖으로 나가 새장쪽으로 향했다. 새들을 대신 사육하고 관리해주는 중년의 신도는 진석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나자 공손히 고개를 숙여보이곤 밤새 들어와있던 전서구들을 모아서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들고 근처의 의자에 처억 걸터앉아 곧바로 하나하나 펼쳐보며 내용을 확인해보는 진석.

'이건 뭐 별거 아니고. 음 이것도... 마찬가지. 그리고 요건~ 흐음. 엠퍼슨 메디컬 아카데미의 이번 분기 예산 집행 관련이군. 엘리야 가져다주면 엄청 좋아라 하겠네, 껄껄.'

들어온 전서구들을 쭉 확인해본 진석은 마지막 하나 남은 전서구를 펼쳐보았다. 딱 두 문장이 쓰여진 전서구. 그런데 그 안엔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진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전서구를 소리내어 되읽었다.

"이게 뭐야?! '긴급, 전쟁 조짐. 그란델 왕국군... 현재 메디니아로 진격중'이라고?!"

============================ 작품 후기 ============================

이제 슬슬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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