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3. -- > * 144화 *
어, 어째서? 그란델 왕국군이 도대체 왜 메디니아로 오고있다는 거지? 확실히 미리안이 온갖 술수를 동원해서 레오노르 공주를 여왕으로 만들고 배후에서 그란델을 장악한것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가 분명 맞긴 하다. 아마도 전쟁을 일으켜서 대규모의 사상자를 낸 다음 연원역행진인지 뭔지를 가동시킬 에너지원인 영혼을 대량으로 수집하려고 했던거였겠지. 하지만 미리안은 죽었다! 분명 자신의 손으로 헤세스모데우스의 사념체와 함께 해치웠었다.
'그리고 설령 미리안이 살아있었다 한들... 자신의 기반인 메디니아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을리가 없잖아? 아마도 서쪽에 인접한 이웃국가인 벨리언 왕국에 전쟁을 걸지 않을까 짐작했었구만...'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도대체 어떻게 된걸까. 군대를 움직이라는 명령은 과연 누가 내린것일까? 설마... 현재 레오노르 여왕의 곁을 지키고 있다는 또 다른 수호자들인 맥이나 머서가? 혹은 자신이 교단에 도착하기 직전, 미리안이 뭔가의 명령을 지시하고 내보냈다는 드레비안이? 아니. 그럴리가 없다. 그들도 어차피 제이스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장기말. 그 셋이 스스로 손을 써서 이런 일을 벌일리가 없었다.
'좌우지간 이럴때가 아니지. 큰일이다 큰일.'
진석은 허겁지겁 전서구들을 손에 쥐고 사원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메디니아는 다른나라에 비하면 국토도 작고 총 인구 역시 1만 가량 밖에 안되는 소국. 당연히 동원가능한 병력도 적었고 그렇다고 수비하기에 좋은 지리적 이점을 가진것도 아니다보니 전쟁이 벌어진다면 오래 버틸 수 있을리가 없었다.
'기껏 미리안을 없에고 헤세스 약품 통상과 같은 교단의 세력을 온건히 손에 넣나 했더니만 이게 뭐야? 젠장! 이런 상황에서 지금 내가 당장 해야하는 일은... 최대한 빨리 그란델로 향하는 것! 레오노르를 직접 만나봐야겠어!'
레오노르는 진석이 직접 약을 먹이고 세뇌를 걸어 절대적인 애정을 각인시킨 상대. 진석이 레오노르와 대면할수만 있다면 어떻게 된일인지 전후를 파악하고 상황을 진정시킬 수도 있을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는 헤세스 약품 통상이 있는 메디니아가 침공당해 패망한다면, 교단의 세력을 손에 넣는다는 일 따윈 그냥 하나마나한 헛짓이 되는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게다가 지금의 상황에서 함부로 정세를 움직이려 하는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니... 혹시 레오노르를 여왕으로 옹립하는데 공헌한 귀족연맹측의 주도일까?'
귀족연맹이 전쟁을 주도해? 뭘 얻기위해서? 글쎄, 모른다. 알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진석이 하는것은 그저 전부 추측일 뿐. 진석은 복도를 지나 자신의 방문을 쾅 걷어차듯 열어제끼고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동안 손에 넣을 수 있던 짧은 일상은 이걸로 끝났다. 또 다시 움직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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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이면 되겠지. 자 케이트는 한 쪽에 말들 묶어두고 식사 준비. 아르데나랑 셀린은 가서 장작 좀 모아와."
가도에서 한참 떨어진 숲 속. 근처에 시내가 흐르는 적당한 공터. 야영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 말을 멈춰세운 진석은 뒤를 돌아보며 일행인 세 여자에게 그렇게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네, 오빠."
"알았다냐!"
세 명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제각각의 대답. 사원에서 전쟁이 임박했다는 전서구를 받은 진석은 아르데나, 셀린, 케이트를 대동하고 길을 떠났다. 제이스와 엘리야는 일부러 교단에 남겨두었다. 어쨌든 사원도 책임을 질 관리자 격의 존재가 필요했으므로 임시로나마 대신관직을 맡은 제이스를 남겨두었고, 전투 능력도 없는데다가 요 며칠새 그럭저럭 서류업무에 요령이 생긴 엘리야도 딱히 데려갈 이유가 없었으니 남게 했다. 그리고 진석은 길을 떠나기 전 제이스에겐 별 다른 말을 남기지 않았지만, 엘리야에겐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특별한 지시'를 해두고 왔다.
'그나저나... 평소처럼 여유있게 마차를 타고 다닐 형편이 아니었던터라 마차는 떼어놓고 그냥 각자 따로 말을 타게 했는데... 뭐 의외로 다들 금방 익혀서 다행이야.'
마차는 짐도 많이 실을 수 있고 여차하면 실내에서 밤을 보낼수도 있기에 여행길에 유용한 이동수단이었지만 기동성이 크게 떨어진다는게 문제였다. 부득불, 일행인 세 여자가 말에 익숙치 않더라도 억지로 타게 했다. 첫날과 이틀째까진 다들 힘들어했지만 사흘째가 넘어가니 그럭저럭 그런대로 익숙해져, 전속 질주인 갤럽까진 무리더라도 속보인 트롯으로 이동할 정도는 가능해졌다.
'역시 뭐든 몸으로 배우는게 제일 빠르다니까. 그나저나 오늘은 여기서 머물고... 아침 일찍 출발하면 오전중에 페레나시에 닿을 수 있겠군. 빨리 빨리 움직여서 패커즈 숍으로 가서 바보 자매를 만나봐야지.'
비더하임에서 헤어지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이전에 했던 부탁대로 장인인 지젤이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완성해 두었을것이다. 그것을 받은 뒤 최대한 빨리 수도 데오그라즈로 향해서 레오노르를 만난다면, 운이 따를경우 아슬아슬하게 전쟁이 터지기 직전에 상황을 멈출 수 있을지도 몰랐다.
'수천이나 되는 군대의 이동속도는 말을 타고 빠르게 움직이는 이쪽보다 느릴테니까. 저 인원이 도보로 메디니아의 국경까지 가려면 아무리 빨라도 나흘... 아니아니, 빨라봐야 닷새나 엿새 이상 걸릴지도 모르지.'
진석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계산을 하며 말에서 내려 나무에 말고삐를 묶고 저녁을 차릴 채비를 하는 케이트를 도왔다. 램프를 두 개 켠 다음 조명삼아 양쪽에 놓아구고, 불을 피우기 좋게 땅을 살짝 파서 자리를 만든 다음 그 부근엔 야숙용 매트들과 모포를 꺼내놓았다. 마지막으로 근처의 시냇가에서 요리에 쓸 물까지 떠오고 나니 장작을 모으러 갔던 아르데나와 셀린도 각기 마른 나뭇가지들을 잔뜩 가지고 돌아왔다.
각기 크고 작은 나뭇가지들을 교차시켜가며 장작을 잘 쌓아올린 진석. 램프용 기름을 조금 뿌려주고 화염화살로 불을 붙였다. 불을 피우자 케이트가 냄비를 걸어놓고, 기다리는 동안 준비해둔 재료를 집어넣고 간단한 스튜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원에서 머무르는 동안은 사무원으로. 사원에서 나오자마자 식순이로. 확실히 케이트는 이래저래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옷도 예전에 입던 드레스가 아니라... 제이스에게 받은 실용적인 일상복이고.'
제이스와 한동안 일을 같이했기 때문일까? 그녀에게 뭔가 영향을 받은건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어두운 색의 드레스만을 고집하던 케이트는 어째서인지 자연스레 평범한 옷을 입게 되었다. 뭐 사원에 있는 동안은 달리 뭐랄 사람이 없으니 머리의 뿔을 드러내고 다녔었지만... 지금은 밖이다보니 머리의 뿔을 감추기 위한 큼직한 플로피 햇을 쓰고 있다는것만 빼면, 이전과는 복장이 달라져서 그런지 새삼 분위기까지 달라진것 같았다.
"그렇게 케이트를 납치당했었다냥. 여관주인 아줌마의 도움을 받아 방으로 들어가서 치료를 받는데, 느닷없이 주인님이 짜자잔 하고 나타나서는..."
"그, 그래서요? 오빠가 나타나서 그 다음은요?"
그리고 아르데나와 셀린은 서로 가까이 마주앉아 뭔가의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만난 기간이래봐야 이제 겨우 열흘 남짓이지만 이 둘은 나름대로 상당히 친해진 것 같았다. 딱히 시킬일도 없어서 기술연마나 대련을 명목으로 함께 붙여두었던 덕일까?
'처음엔 아르데나가 제이스에게 그랬듯 내심 질투를 하거나 이 둘을 꺼려하지 않을까 했는데... 뭐 나한테 미리안처럼 타인의 마음을 읽는 종류의 재주가 있는건 아니지만 아무리 봐도 그런 기색은 없으니 다행이군.'
그리고 서로 떨어져 지내는동안 아르데나도 아르데나 나름대로 여러가지 경험을 쌓았으리라. 뭐 고작 몇달뿐이긴 하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해오며 스스로의 내면에 쌓아올린게 있을테니까. 마음이나 사고의 폭도 커졌으니 이제 그리 쉽게 질투한다거나 하진 않겠지?
'하긴. 맨 처음 만나서 도와줬을땐 과거의 기억도 죄다 잊은데다 난민마냥 비쩍 마르기까지 한 불쌍한 몰골이었지.'
게다가 그땐 그녀가 아는 상대라곤 구해준 진석 자신과 그 옆에 딸려있던 제이스 정도가 전부. 긴 어둠속에 갇혀 살아오다, 느닷없이 나타나 구해준 은인인 자신의 정을 갈구하는것도 돌이켜 생각해보자니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르데나에게도 아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좀 더 넓은 세계를 알게 되었을테니... 분명 괜찮을 것 같았다.
'흐음. 아르데나도 조금은 성장했다고 하는게 걸맞는 표현이려나?'
그렇다고 진석 자신이 딱히 옆에서 끼고 기른것도 아니지만서도. 게다가 단순히 함께 지낸 시간으로만 따지자면 제이스와 가장 오래 보냈다.
'...뭐 그런것치곤 별 다른 영향을 받진 않은것 같아 참 다행이긴 하다.'
태평하게 수다를 떠는 아르데나와 셀린. 그리고 간소하나마 열심히 저녁 준비를 하는 케이트. 불가에 둘러앉은 그녀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어쩐지 그 나름대로 훈훈한데가 있었다. 식사를 마친 진석과 일행은 식기를 치우고 금세 잠자리에 들었다. 사원을 떠난 후 계속 그래왔던것처럼 불침번은 진석 혼자였다. 아르데나나 케이트는 자진해서 불침번을 서겠다고 했었지만 플레이어인 진석은 딱히 잘 필요가 없었으므로, 낮동안 아직 익숙치 않은 말을 타고 이동하느라 피곤했을 그녀들을 강제로 잠자리에 들게 하고 늘 혼자 불침번을 섰다. 그렇다고 해도 아예 한 잠도 자지 않은건 아니고 동이 트기 전 두세시간 정도는 적당히 눈을 붙였다.
그리고 다음날. 진석 일행은 동이 틀 무렵 일어나 머물렀던 자리를 빠르게 정리하고 페레나시로 향했다. 가도 부근에 주둔해있던 그란델 군을 멀리 돌아서 숲을 통과해 가느라 시간이 좀 지체되긴 했지만, 이른 시간부터 일어나 움직였던덕에 예상대로 오전중에 페레나에 도달 할 수 있었다.
'아아, 여기도 되게 오랜만이군. 어쩐지 반갑기까지 한 걸.'
허나 어제 군대가 페레나시를 통과해서 지나가서일까? 도시의 분위기는 평소와 달리 어수선한 느낌이 강했다. 오전부터 시장에 사람이 많은것이 전쟁을 대비해 물가가 오르기 전에 식료나 생필품을 미리 구입해두려는 분위기였다. 진석은 시장을 통과해 곧바로 동문 방향으로 향했다. 눈에 익은 길을 지나고 나니 저쪽에 2층짜리 갈색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건물 측면에 달려있는 끝내주는 존재감의 검은색 남근 모양 간판. 르마쿠르 자매가 경영하는 무기점인 패커즈 샵이었다. 가게 앞에 다다라 말에서 내린 진석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받아야 할 것도 있고 약속을 했으니 오긴 왔다만... 이 바보자매랑 다시 대면하려니 벌써부터 피곤하네.'
진석은 셀린과 케이트는 밖에서 기다리게 한 채 아르데나만 대동하고 문을 열며 들어섰다. 문을 열때 안쪽에 달린 작은 종이 짤랑하고 울렸다. 카운터 안쪽엔 언젠가 본 기억이 있는 웨이트리스 복장을 입은 아네트로 보이는 상대가 엎드려 있었는데, 일어나지도 않은채 엎드린 자세 그대로 말했다.
"에- 어서 오시던가 말던가아."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다시피 하는게 의욕이라곤 정말 개미 눈꼽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형편없는 접객태도였다. 슬쩍 아르데나를 돌아보자니 빨간색으로 도배해놓은 가게 안쪽의 분위기와 아네트의 의욕 없는 태도에 은근히 당황스러워하는 느낌이었다. 진석은 말 없이 카운터로 다가가 위쪽을 똑똑 두드렸다. 아네트는 푸우 하고 들으라는듯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테이블에 고개를 박은 자세 그대로 한 손을 들어 휘휘 저어보이며 대꾸했다.
"아니 나 진짜 귀찮아서 그러니까- 아무것도 물어보지 말고 그냥 가게 안에 진열된거 중에서 대충 골라요."
"그게 아니라 이전에 미리 주문해둔 물건을 받으러 왔습니다만."
"...어? 러셀?!"
진석의 목소리를 알아듣곤 화다닥 고개를 들어올리는 아네트. 눈 앞에서 씨익 웃고 있는 진석을 확인하곤, 얼굴 전체를 씰룩이며 울상인지 감격스러워하는건지 모를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테이블을 훌쩍 뛰어넘곤 앞뒤 가리지 않은채 진석에게 와락 안겨드는 아네트.
"으아아아앙, 러세에에엘! 왜 이렇게 늦었어어어!"
"아니 그간 좀 바빠서."
"나, 나는 헤어진 이후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러셀만 생각하면서 기다렸는데! 게다가 러셀과 재회할걸 생각하며 그간 쭉 금욕했다고! 삼시세끼 밥보다 섹스를 좋아하는 내가! 자위조차 한 번 안하고! 이 긴 시간동안 필사적으로 기다렸단 말이야! 이렇게까지 사람 애타며 기다리게 만들다니... 정말 너무해!"
그러더니 진석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스으읍 숨을 들이마시는 아네트.
"아아- 러셀 냄새. 너무 좋아아... 이것만으로도 밥 세그릇은 먹을 수 있겠다. 헤헤헤."
아네트는 흡사 뭔 마약이라도 들이킨 듯 게슴츠레한 표정으로 헤실거리더니, 진석에게 착 달라붙어 상의 단추를 하나 둘 풀어제끼며 옷을 벗기려고 들었다. 어처구니가 달아난 진석. 아네트의 이마에 촙을 먹여 물러나게 한 뒤, 자신의 뒤쪽에서 벙찐 표정으로 둘의 재회를 지켜보던 아르데나를 소개시켜주었다.
"거참 넌 어째 변한게 하나도 없구나. 일단은 좀 진정해. 그보다 자, 이쪽."
"에... 엑? 여자애? 그, 그것도 제법 미소녀?"
당혹스러워하며 아르데나와 진석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 아네트. 그러다 순간 헉 하며 손으로 입가를 가리곤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해! 그새 새 여자가 생긴거야? 나나 언니는 이미 러셀에게 과거의 여자라는 의미? 아니 뭐 확실히 언니의 아랫도리는 연식이 오래된 만큼 헐렁거려 불만스러웠을지 몰라도 나는 아직 한창땐데! 싫어! 모처럼의 재회인데 이런식으로 버려지고 싶지 않아!"
"뭐라는거야 이 멍청아!"
따악! 소란을 듣고 어느샌가 올라온 지젤이 카운터 안쪽에서부터 손을 뻗어 제멋대로 헛소리를 지껄이는 아네트의 뒷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목뼈가 부러지는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팩 꺾어지는 아네트의 머리. 와아, 진짜 인정사정 없구나. 엄청 아프겠다. 하지만 아네트는 아프지도 않은지 곧바로 지젤을 휙 돌아보며 아르데나에게 삿대질을 했다.
"언니! 하지만 저거 봐! 러셀이, 러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나타났단 말야!"
아네트의 말을 싹 무시하곤 카운터 너머로 걸어 나온 지젤. 지젤은 아르데나를 잠시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이내 러셀에게 다가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하자는 듯 손을 내밀었다.
"굉장히 오랜만이네. 이제야 와줬구나."
"으음, 뭐... 좌우지간 바빴거든."
손을 마주잡으며 지젤과 악수를 나누는 진석. 지젤은 고갯짓으로 아르데나를 가르키며 물었다.
"그나저나 저 아이는... 혹시 동생?"
"엑?!"
지젤의 질문에 깜짝 놀라는 아네트. 호오, 몇번이고 느낀거긴 하지만 언니쪽인 지젤은 확실히 동생 아네트 보다는 머리가 돈다니까. 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르데나의 어깨에 손을 척 올려보이곤 르마쿠르 자매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그래. 얘는 내 동생 아르데나 헤이든."
"처, 처음 뵙겠습니다. 아르데나라고... 합니다."
초면부터 인상이 지나치게 강렬했던 탓인지, 아니면 르마쿠르 자매가 인간이 아닌 유사인종 델 그로도라서인지 꽤나 쭈뼛거리는 아르데나. 지젤은 고개를 끄덕이곤 아네트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머리색도 같고 나이터울도 적당해 보이길래 그런게 아닐까 짐작해본건데 정답이었네. 아무튼 만나서 반가워! 나는 지젤 르마쿠르. 그리고 이쪽의 멍청이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내 동생 아네트 르마쿠르. 머리에 워낙든게 없는 애니까 뭐라고 지껄이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그냥 동네 개가 짖는 소리와 동급이니까."
아네트는 잠시 헤에 하고 멍을 때리고 있더니만, 이내 정신을 챙겼는지 엣흠하고 헛기침을 한 번 하곤 이제와서 어울리지도 않게 조신을 떨었다.
"러셀의 동생이라면... 어머- 이거 참 초면에 실례를 했네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시누이, 오호호호."
"어우야 그만해. 토할 것 같애. 오호호호가 뭐야 오호호호가."
진석이 그렇게 솔직한 감상을 말했지만 아네트는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방긋방긋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지? 언니처럼 푹 쉬어빠진 폐물이 옆에 있으니 불쾌하지? 응, 금방 치워줄께. 그 후엔 둘이 함께 잠시 안쪽으로 들어가서 그간 밀린 육체의 대화를 나누는게..."
"적당히 해!"
따악! 또 다시 지젤이 아네트의 뒷통수를 후려쳤다. 무슨 만담같은 르마쿠르 자매의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짓는 진석. 이것 참, 이 둘은 그동안 정말 변한게 하나도 없군. 그래도 이런 모습도 간만에 보자니 분명 반갑긴 했다.
============================ 작품 후기 ============================
아이고, 불금이라고 새벽 늦게까지 달렸더니 하루종일 컨디션이 엉망입니다.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지만 몸상태가 워낙 엉망진창이라 몇시간동안 자리에 누워 내리 골골대다 겨우겨우 추스리고 이제야 글을 써서 올립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더니..
저는 매주 주말마다 쓸데없이 새벽까지 내달리고 다음날은 꼭 이런꼴이 되는군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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