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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147화 (147/155)

< --   - 13.   -- >         * 147화 *

말을 타고 왕궁 방향으로 가는 와중, 지젤이 진석의 곁으로 말을 가까이 가져다대며 질문했다.

"아니, 그게 저기... 러셀. 일단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뭔지 모르니 아네트나 나나 뒤에서 얌전히 지켜보곤 있었다만... 그래서 지금 우리 다 같이 왕궁으로 가는거야?"

"응."

대답하며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진석. 지젤은 미간을 좁히며 즉시 되물었다.

"...설마. 거기 가서 한 판 벌이려는건 아니겠지?"

"왜 아니겠어?"

지젤을 향해 히죽 웃어보이며 대꾸하는 진석. 지젤은 끄응하고 낮게 신음하곤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왕궁에 이런식으로 들이닥치다니..."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반면 어느샌가 말등에 걸어놓은 배낭에서 강철 건틀릿을 꺼내어 양 손에 착용하고 있는 아네트.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며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에이 언니도 참, 뭐가 됐건! 화끈하게 박살내버리면 되잖아? 어쨌거나 일을 끝내야 러셀과도 약속한 대가를 잔뜩 즐길 수 있을테고."

"뭐 그거야 그렇지만..."

어째 탐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얌전히 진석의 뒤를 따르는 셀린과 케이트, 그리고 아르데나를 흘긋 돌아보는 지젤. 짧게 한숨을 내쉰 지젤은 곧 등에 걸쳐 메고 있던 언월도를 요령좋게 빼들곤, 옆구리에 장대를 척 끼운다음 언월도의 칼날 부분에 씌워진 가죽 덮개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솔직히 미친짓 같지만, 델 그로도가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수도 없지. 어차피 인생 한 번 죽지 두 번 죽는것도 아니고! 하지만 미리 말해두지만 러셀, 이건 무구를 만들어준것과는 별개로... 나중에 우리들 몫은 정말 톡톡히 치뤄줘야 할거야!"

"흐응- 그렇게 나와야 내 언니지!"

지젤의 말에 호응하듯 양 주먹에 착용한 건틀렛을 가볍게 탕탕 부딪혀 보이는 아네트. 진석은 자신을 향해서 호전적인 느낌의 미소를 지어보이는 지젤을 향해 마주 미소지어 보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이 바보 자매는 나에게 힘을 보태주는구나. 그리고 진석은 지젤이 요구한 '우리들 몫'의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흥. 까짓 이번 일만 잘 끝난다면... 너희들 입에서 살려달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실컷 해줄테니까!"

"어머~ 그렇게 듣던중 반가운 소리를."

"우후후- 역시 러셀. 화끈하다니까. 그런점도 너무 좋아!"

그렇게 양 옆으론 지젤과 아네트, 두 르마쿠르 자매를. 바로 뒤로는 아르데나와 셀린, 케이트를 이끌고 왕궁을 향해 달려나가는 진석. 그리고 그 시각. 왕궁의 정문을 정면에서부터 깨부수고 돌입한 클립튼 일행은 앞을 막아서는 수비대의 병력을 전부 격파하고 있었다.

"크아아악! 도저히... 당해낼수가..."

"너, 너무 강해!"

"지원을! 어서 지원을 요청해!"

성문에서부터 안쪽까지 수십명의 병사들이 줄줄이 쓰러져 사방에 널려있었다. 하지만 목숨이 끊어진것은 아닌, 그저 다들 기절했을 뿐이었다. 이들은 왕성을 지키는 엄연한 정예병들임에도 불구하고 클립튼 일행 단 여섯을 당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사십이 넘는 숫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육십에 달하는 숫자가 클립튼 일행을 포위하고 있었지만 그냥 포위하고만 있을 뿐. 앞으로 나서서 적극적으로 제지하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병영 방향에서부터 분대 단위로 지원병들이 몰려오고 있긴 했지만 클립튼 일행에겐 그까짓 약간의 증원쯤 아무 소용없을것 같았다. 일행의 선두에 서있던 클립튼은 검집도 벗기지 않은 장검을 휙 휘두르곤 앞으로 한 발 나서며 크게 소리쳤다.

"내 이름은 클립튼 벤슬리! 해밀턴 공작을 섬겼던 그란델 왕국의 정당한 기사다! 나는 현재 그란델의 여왕에 올라있는 레오노르 폐하에게 급박한 용무가 있어서 왔을 뿐, 왕국에 누를 끼치는 일을 저지르고자 온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서 길을 열어라! 나에게 씌워진 혐의는 전부 누명! 이 누명으로 날 오해하여 길을 막고 물러서지 않는자는 부득이 무력으로 제압하겠다!"

클립튼의 외침에 병사들은 다들 움찔하며 그 기세가 꺾였다. 클립튼 벤슬리. 그란델 왕국에 사는 자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 아니던가. 해밀턴 공작의 오른팔이자 완전무결의 기사로 불리웠던 명실상부한 그란델 왕국 제일의 기사. 하지만 현재는 해밀턴 공작의 살해 및 레오노르 공주를 추행하려 했던 혐의를 뒤집어쓰고 범죄자로 낙인찍혀 도주중인 자. 해밀턴시에서 곧바로 한 번 체포당했었으나, 정체모를 이들의 도움을 받아 국외로 탈출한 후 수개월간 그 행적이 불분명했었으나... 지금 여기에서 왕궁의 정문을 깨부수며 당당히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리고 클립튼의 외침덕에 병사들이 머뭇대며 그 사기가 꺾인것 같자 클립튼은 검을 거두고 일행들과 함께 자리를 벗어나 본성쪽으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방금전에 막 증원으로 도착한 어느 장교가 검을 뽑아들고 병사들 사이에서 튀어나오며 반박의 소리를 높였다.

"우... 웃기지 마라! 주군을 살해한 더러운 놈이 스스로를 기사라고 자칭하다니! 게다가 감히 왕궁을 무력으로 침범하고 병사들을 해한주제에, 뭐가 어쩌고 어째? 입만 살았구나! 놈의 허명에 겁먹을 것 없다! 모두들! 자신의 의무를 다해라!"

"오, 오오!"

"다 함께 쳐라!"

장교가 클립튼에게 위압된 병사들을 지휘해 그렇게 명령을 내리자, 병사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훈련받은대로 각기 조나 열을 이루어 클립튼 일행을 에워싸고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클립튼은 재차 덤벼오는 그들의 모습에 미간을 좁혔고, 모데로는 혀를 차며 말문을 열었다.

"거봐요, 내가 말했었죠? 이게 그렇게 쉽게는 안된다니까요."

"...할 수 없지. 여기는 힘으로 뚫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온대로 다들 목숨까진 빼앗진 말도록. 그럼 리들리, 부탁한다!"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 되어 그렇게 대꾸하는 클립튼. 리들리는 클립튼의 말에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지팡이를 높이 들어보였다.

"음! 맡겨두라고. 이봐 에이미. 모두에게 늘 하던대로!"

"알았어요! 자아, 그럼 우선 렐름블론부터!"

클립튼과 모데로는 각각 전방과 측면으로 나섰고, 리들리와 에이미에게선 휘황찬란한 빛이 뿜어지며 여러가지 버프 주문이 시전되어 모든 일행에게 스며들어갔다. 비엔족 궁수 스텔라는 혀를 차며 우득우득 손목을 꺾어보였다.

"칫. 클립튼은 정말 사람이 너무 좋다니깐? 나는 궁수라구. 기절시키는걸로 끝내려면 무기를 봉인하고 격투만으로 싸워야 하는데... 이게 얼마나 힘든데?"

스텔라의 불만에 중년의 사내는 허허 너털웃음을 지으며 일행의 후방쪽으로 한 걸음 나섰다.

"하지만 스텔라양은 궁수치곤 근접전에서도 굉장히 강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스텔라는 중년 사내의 칭찬에 불만스럽다는 듯 흥 콧방귀를 뀌어보였다.

"순도 100% 진짜배기 격투가인 안톤 아저씨가 그렇게 말해봐야 그냥 겉치레로밖엔 안들리거든요? 어차피 아저씨에게 내 주먹질 정도는 애들 장난으로 보일거면서."

"그렇지 않습니다. 스텔라양은 분명 강해요. 클립튼군의 부탁대로 이들의 손속을 봐주며 상대할 실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칫. 하, 할 수 없죠 뭐. 클립튼이 원하는바라면... 그렇게 할 수 밖에!"

그렇게 대답하며, 가까이 다가와서 창을 내지르는 병사의 안면에 하이킥을 날리는 스텔라. 쾌속의 킥에 적중당한 병사의 턱이 홱 돌아가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스텔라가 모션이 큰 킥을 날리고 순간 빈틈을 보이자 두 명의 병사가 그대로 창을 질러오며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중년의 격투가, 안톤이 바람같이 뛰어들며 양 손을 휘릭 뻗어보였다. 그리고 퍼벅. 가벼운 격타음이 나더니 두 병사들은 손에 든 창을 놓치고 바닥에 무릎을 꿇어버렸다. 병사들은 어느새 입이 쩍 벌어진채 눈이 돌아가 동공에 흰자위 밖에 없는것이, 짧은 순간 안톤에게 뭔가의 일격을 당하고 순식간에 기절해버린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들리가 휘이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여유 부리지 말고 너도 마법 써!"

연이어 달려드는 또 다른 병사에게 원투 펀치를 날리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스텔라. 리들리는 휴우 한숨을 쉬며 지팡이의 머리 부분을 흔들어 보였다.

"에이 거참. 방금 내가 전원에게 걸어준 마법만 해도 몇 개인데 그래. 마법이 화살마냥 마구잡이로 쏴댈 수 있는건줄 알아? 나도 숨 좀 돌려가면서 하자고."

"흥, 뺀질거리긴! 조금은 클립튼을 본받으라구!"

안면에 원투펀치를 맞고 휘청이는 병사의 가슴팍을 힘차게 걷어차 뒤로 밀어내버리는 스텔라. 뚱한 표정으로 리들리를 흘겨보던 스텔라의 시선은 자연스레 클립튼에게 이어졌다. 클립튼은 칼집도 빼지 않은 장검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병사들을 하나하나 일격만으로 제압하는 중이었다. 클립튼이 한 번 검을 휘두를때마다 병사들은 비명도 제대로 못 내고 실 끊어진 꼭두각시마냥 바닥에 풀썩풀썩 쓰러져갔다.

"타아아앗!"

그리고 모데로 역시 제대로 날뛰는 중이었다. 온갖 버프를 받은 모데로는 시클론까지 걸고 여기저기 순간이동하듯 뛰어다니며 병사들에게 킥과 펀치를 먹였다. 맨손 격투는 그닥 익숙하지 못해 요령은 없는 공격이었지만 워낙 힘과 속도가 붙어있었기에 병사들 입장으로선 어딜 맞건 한 방 한 방이 전부 치명타였다.

"가, 가까이 오지마요! 꺄악! 세렌할!"

한 편 근접전 능력이 전혀 없는 신관 에이미는 일행의 중심에 서서 불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다 조금이라도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병사가 있다 싶으면 바로 신성 마법으로 공격해 상대를 멀찍이 날려버렸다. 에이미가 사용하는 신성마법은 본디 공격이나 살상력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위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어차피 지금은 병사들을 몰살하려는게 아닌 단순 제압에 목적이 있었으므로 되려 그 정도가 적당했다. 일행의 두뇌인 마법사 리들리 역시 에이미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곁에 선채 가벼운 공격마법으로 일행들을 보조하기 시작하니, 주변을 포위한 육십이 달하는 병사들과 장교들은 순식간에 쓰러지고 이제 채 열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거의 일백에 가까운 수가 무력히 쓰러지고 클립튼 일행을 막아설 이들이 얼마 남지 않자 병사들은 잔뜩 업을 집어먹고 더 이상 덤벼오지 못했다. 그나마 정예병이기에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서 물러나진 않았지만 그게 전부일 뿐. 백여명을 아무렇지 않게 쓰러트리는 격이 다른 상대들에게 스스로 나서서 덤벼들 용기가 있는것은 아니었다. 이제 이쯤하면 됐다 싶어서 클립튼이 검을 거두고 자리를 벗어나려는 생각을 하는 찰나, 본성 방향에서 또 다른 병력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쳐라! 침입자들은 저쪽이다!"

"와아아아!"

그 숫자는 대략 오십 가량. 그 중 병사들은 절반 정도. 나머지 절반은 전원이 갑주를 챙겨입은 기사들이었다. 본성을 지키는 진짜 정예들인 근위기사대의 일부가 본성 밖으로 요격에 나선것이었다. 물론 근위기사대는 저 인원만이 전부는 아니리라. 일부는 본성안쪽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터. 어쨌거나 그렇게 근위기사대가 나타났나 싶더니, 이번엔 병영 방향에서부터 사십여명 가량의 병사들이 몇몇 장교들의 지휘를 받으며 몰려오고 있었다.

"아 젠장. 또 오는데요? 그것도 양쪽에서."

뒷통수를 벅벅 긁으며 지겹다는듯한 어투로 툭 내뱉는 모데로. 클립튼은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더니 일행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왕성 내부의 경비 인력은 삼백을 좀 넘는 숫자. 그리고 그 중 일백 가량이 이번에 편성되어 전선으로 나갔다고 들었으니... 이제 이 인원만 제압하면 더 이상 앞을 가로막을 자들은 없을터. 다들 한 번만 더 부탁한다. 레오노르 공주. 아니, 교단이라는 정체불명의 세력에게 지배받는 레오노르 여왕을 구해낸다면... 우리가 이 모든 상황을 그 근본에서부터 뒤집을 수 있을테니까."

그러했다. 그란델에서 메디니아 방면으로 출전한 총 병력 이천 오백 중 전투병의 숫자는 약 이천 이백. 그리고 나머지 삼백은 치중대에 편성되어있었다. 그리고 이천 오백의 총 병력 중 여왕에게 속한 직속 병력은 약 육백여명이었다. 나머지 천 구백은 해밀턴시나 주변의 다른 귀족들에게서 소집해 끌어모은 병력들.

현재 그란델에서 여왕의 직권만으로 동원 할 수 있는 병력은 총 세 부류로, 우선 도시를 지키는 경비대가 있었다. 다음은 왕궁을 지키는 수비병들. 그리고 나머지는 데오그라즈 주변의 요새나 거점에서 머물며 도시 외곽을 지키는 주둔병들이 있었다. 레오노르는 경비대와 주둔병들에게서 우선적으로 오백의 병력을 동원했고, 나머지는 왕궁의 수비병에서도 일백 가량을 편성해서 내보냈었기에 왕궁의 경비병력은 평소보다 훨씬 줄어있었던 터였다. 클립튼이 무리해서라도 왕궁을 정면돌파 하기로 결정한것도 다 그래서였다.

"정말 클립튼... 너란놈은 주는것 없이 사람을 피곤하게만 만든다니까?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라면 할 수 없지. 무리더라도 힘을 좀 내보는 수 밖에!"

능글맞은 태도로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주머니에서 손가락 하나 크기의 작은 약병 뭉치를 꺼내는 리들리. 재빨리 일행들에게 약병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다름아닌 SP회복제였다. 추가 병력이 주변을 에워싸기 직전 SP 회복제를 마신 그들은 다시 한 번 버프로 스스로를 강화하고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클립튼 일행이 왕궁의 수비병력 전원을 상대하며 쓰러트리는데엔 아무래도 시간이 제법 소요되었기에, 그 사이 진석 일행 역시 왕궁 부근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근처에 다다르자 뭔가의 강력한 공격마법에 당한건지 한쪽이 완전히 박살나버린 성문과 그 주변에 쓰러져있는 수많은 수비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클립튼 일행이 왕궁안으로 돌입하며 워낙 큰 난리를 일으켜서일까. 급히 달려온 도시의 경비대 1개 소대 가량이 왕궁의 입구를 가로막고 부상자를 수습하며 구경하러 몰려든 행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주변을 통제하고 있었다.

"칫, 경비대인가."

경비대가 주변을 막아선 모습을 발견하곤 근처의 골목에서 말을 멈춰 세우는 진석. 진석을 따라 다른 일행들도 전부 말을 멈춰섰다. 그리고 맨 뒤쪽에 있던 케이트가 진석에게 다가오더니, 슬쩍 의향을 물어왔다.

"주인님. 셀린과 제가 길을 열어드릴까요?"

"흐음?"

오오, 과연 눈치빠른 케이트. 진석이 왕궁안으로 진입하려는데 경비대가 방해가 된다는걸 한눈에 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진석은 고개를 가볍게 저어보이며 지젤을 바라보았다.

"아니. 길은 지나가야겠지만... 어이 지젤."

"응?"

"선두는 네게 맡기지. 여긴 힘으로 돌파한다."

"에... 그렇네, 알았어."

진석의 부탁을 듣곤 옆구리에 끼고 있던 언월도를 머리위로 들어 붕붕 돌려보이더니 한 손만으로 요령좋게 착 뻗어 쥐는 지젤. 잘 벼려진 언월도의 날은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 빛나보였다. 지젤은 진석을 비롯한 다른 일행들을 한 번 슥 돌아본다음 고개를 끄덕이며 고삐를 쥐었다.

"그럼 내가 앞장설테니 다들 뒤처지지 말고 따라와! 이랴!"

발로 말의 옆구리를 힘차게 걷어차는 지젤. 그러자 두 앞발을 번쩍 들어보이며 히이잉 길게 운 지젤의 말은 곧바로 골목 밖을 향해 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줄줄이 달려나가는 진석 일행.

"자자, 비켜비켜비켜! 비키지 않으면 몸통이 둘로 썰리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거야 너희들!"

"으아앗?!"

"나, 난데없이 뭐야!"

위협적으로 언월도를 붕붕 휘두르는 지젤을 선두로 여러 말들이 골목에서부터 튀어나가자 주변의 시민들은 깜짝 놀라 개미새끼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시민들을 막아서며 주변을 통제하던 경비대 역시 이쪽을 향해 달려드는 진석 일행의 모습에 당황해했다.

"왕궁이 습격 당한것만도 수습이 안되는데... 또 뭐냐 저것들은?!"

"마, 막아라! 못가게 막아!"

경비대의 병사들은 크게 당황해 하면서도 창대를 내밀어 앞을 막아서려 했지만, 선두의 지젤은 코웃음을 치며 언월도의 장대 끄트머리를 한 손으로 쥐고 쭉 뻗어보였다.

"하! 거 경비대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이렇게 열심인거야? 비키지 않으면 벤다고 경고했다! 다들 방해말고 저리 꺼져!"

그러면서 말에게 한층 박차를 가해 앞을 막아선 병사들에게 육박한 뒤, 길게 꼬나쥔 언월도를 매섭게 휘둘러보이는 지젤. 말의 가속력과 지젤이 휘두른 언월도의 원심력이 더해져 휘둘러지자 창대를 내밀고 앞을 가로막던 병사들은 전원 비명을 지르며 뒤로 튕겨 나가버렸다. 게다가 그 뒤를 이어 몇기나 되는 말들이 더 달려들고 있었으니 기세에 밀린 경비대들은 차마 앞을 가로막지 못하고 주변으로 뿔뿔히 흩어져 버렸다. 그렇게해서 무사히 왕궁 안쪽으로 돌입한 진석 일행. 뒤쪽에 남겨진 경비대들은 분한 얼굴로 발을 구르며 멀어져가는 진석 일행의 뒷모습만을 노려보았다.

"오- 언니. 방금은 멋졌어."

지젤을 선두로 경비대의 포진을 돌파하자 말을 몰아 곁으로 다가서며 자신의 언니를 칭찬하는 아네트. 지젤은 피식 웃으며 진석을 바라보았다.

"그보다 이대로 내가 수배자라도 된다면... 러셀이 책임져 주겠지?"

"......"

지젤의 말에 조금 뚱한 표정으로 말없이 지젤과 진석을 번갈아보는 아르데나. 하지만 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뭔 소리를 하는거야. 다 큰 성인이면서 자기 행동엔 자기가 책임져야지."

"에엑? 이제와서 그런 무책임한 소리를... 사랑한다며 기껏 임신시켜놓곤 나중가서 나 몰라라 하며 도망가는 결혼사기범 만큼이나 악질인데."

"히히힛- 언니가 감옥에라도 들어간다면 그동안 러셀의 곁은 내가 지킬테니까 걱정말라구. 안심하고 푹 썩어도 좋아."

아네트의 말에 빙긋 웃으며 그녀에게 언월도의 장대를 내지르는 지젤. 그리고 웃차하며 요령좋게 헤드 슬립만으로 장대를 피해넘기는 아네트. 이 녀석들 말 타고 달려가는 와중에 재주들도 좋다. 그렇게 잠시 달려나가다 보니 어느새 주변에 잔뜩 쓰러져있는 병사들의 모습과, 바로 저 앞쪽에서 수십여명의 인원이 뒤엉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광경이 들어왔다. 곧바로 눈을 번득이는 진석.

"놈들인가?"

그랬다. 수많은 병사들에게 둘러쌓인 클립튼 일행들은 일방적으로 병사들을 물리쳐 쓰러트리고 있던 참이었다. 진석은 입가에 기다란 미소를 지어보이며 일행에게 지시했다.

"오랜만의 재회구만 이 자식들... 자, 그럼 다들 본격적으로 싸울 준비해. 파티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우리도 판이 끝나기 전에 한 번 끼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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