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155화 (155/155)

< --   - 후일담.   -- >         * 155화 *

데오그라즈의 남쪽 해변. 석양이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여름은 끝났지만 해변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늦은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해변 한 귀퉁이의 간이 주점. 스툴에 앉아있는 진석의 귓가를 스치듯 10월의 시원한 바람이 흘러갔다.

"아아... 한가롭구만."

병맥주를 들이키며 턱을 괴는 진석. 이렇게 경치나 감상하며 망중한을 즐기는것도 제법 괜찮았다.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일의 뒷수습을 위해 미친듯이 뛰어다니느라 아직도 정신적으론 피곤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진석을 핀잔하듯 뒤쪽에서 새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팔자 좋네요. 또 여기서 혼자 술이나 먹고 있고."

"...음? 아아, 어서와 엘리야. 너도 한 잔 할래?"

뒤에서 핀잔을 한 상대는 다름아닌 엘리야였다. 이런 해변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정장차림. 맨 처음 자신을 미행하던 엘리야를 붙잡았을때, 몸에 맞지 않는 남자 옷을 뒤집어 쓰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와 비교하자면 지금의 엘리야는 정말로 딴사람 같았다. 엘리야는 진석의 권유에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옆에 와서 앉았다.

"에? 됐어요. 러셀씨랑은 절대로 술 안 먹을거니까. 또 이상한걸 타서 먹일지 모르고."

술에 미약을 타서 먹였던 일을 은근히 꼬집어오는 엘리야. 진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에에이이~ 그럼 여기까진 뭐하러 왔어."

"뭐긴요! 사람을 심부름꾼 부리듯 부려먹었으면서, 자아. 저기요."

손가락을 펼쳐 대로쪽을 가리켜보이는 엘리야. 진석의 시선은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그쪽을 향했다. 대로변엔 비까번쩍한 사두마차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마차쪽을 향한 진석의 시선에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보이는 마부석 위의 중년남자. 진석이 아는 얼굴 이었다. 빅 본의 데오그라즈 부지부장, 웍스턴이었다. 응응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진석. 엘리야는 안경을 고쳐쓰며 설명했다.

"여행에 필요한 물건은 대충 다 실어두었고... 남은 돈은 짐칸쪽에 실어두었어요."

"응 고마워. 수고했어."

맥주병을 들이켜 남은 내용물을 비우고, 테이블 위에 맥주값의 동화를 몇 닢 던져놓는 진석.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발치에 굴러다니던 모험가용 배낭을 어깨에 걸쳐메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석은 자신을 따라 일어나는 엘리야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보다... 넌 진짜 괜찮겠어? 정보상이라니. 음~ 아무리 생각해도 안 어울려. 게다가 거 되게 힘들텐데~"

"그 정도 각오는 되어있어요. 피터슨의 밑에서 일할땐 몰랐었지만... 헤세스 약품 통상에서 일할때 배운것도 있고, 자금도 이만하면 충분한데다가 러셀씨가 소개해준 빅 본 쪽의 도움도 있으니... 후후. 내가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이거, 앞으로 대단한 돈벌이가 될거라구요? 그... 그러니까 저기."

얼굴을 붉히며 진석의 얼굴과 애꿎은 바닥을 번갈아 바라보는 엘리야. 양손의 검지 손가락이 베베꼬였다.

"저... 진짜로 떠날거에요? 러셀씨라면... 가, 같이 동업을 해도 괜찮을... 텐데."

더듬거리는 엘리야를 향해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는 진석.

"아아. 하지만 이제 데오그라즈는 지겨워서. 뭐랄까, 한동안은 좀 더 다른나라들도 돌아보고 싶거든. 그래도 뭐... 돌아다니는게 질리면 언젠간 다시 여기로 돌아올테니까."

"정말... 여전히 말만은 청산유수네요."

조금 샐쭉해져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엘리야를 향해 히죽 넉살좋게 웃어보이는 진석. 배낭을 고쳐메곤 묵묵히 마차쪽을 향해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해변에서부터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요 얼마간의 일을 돌이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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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라면 그녀들은 다 죽는다. 현실적으로 그녀들을 대피시키기엔 시간도 없는데다 문 밖엔 좀비따위의 장애물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아무 방법이 없는것은 아니었다. 진석은 필사적으로 달려가 아르데나와 레오노르를 양팔로 꽉 껴안으며 최대한 벽으로 밀착했다.

"곧 폭발이 일어날거야! 절대로! 나한테서 떨어지지마! 꼭 붙어있어!"

그리고 그녀들이 대답을 하기도 전, 콰르릉 하고 천장과 바닥이 무너지며 대폭발이 일어났다. 무너져내리는 돌무더기 사이로 시뻘건 폭염이 혀를 낼름대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진석의 에스카마도가 빛을 내며 반구형의 푸른막을 형성했다. 술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수호마법 브로켈.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든것이 화악 빛나며 눈이 멀 정도의 섬광이 사방을 감쌌다.

그렇게 저택 전체가 싸그리 증발해버릴 정도로 강력한 대폭발이 지나갔다. 폭발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심지어 멀리 떨어진 데오그라즈에서도 불기둥을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렇게 한차례 무지막지한 폭발과 대량의 흙먼지가 지나간 후, 무너진 돌무더기만이 남아 폐허가 된 저택터. 놀란 해밀턴시의 주민들과 경비대가 출동해 주변에 몰려들었지만 완전히 박살나버린 저택의 모습에 경악할 뿐. 그들이 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저택터의 한 가운데서 갑자기 맹렬한 불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그야말로 모든것을 녹여버릴것 같은 오렌지색의 폭염이었다. 또 다시 폭발이라도 일어나는가 싶어 난리법석을 떨며 도망가는 사람들. 하지만 불기둥은 이내 사그라들었고, 파헤쳐진 잔해의 안쪽에서부터 몇명의 사람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바로 진석과 아르데나, 레오노르였다. 진석은 무너져내린 어마어마한 양의 돌더미를 아르도르의 브레스로 일격에 싹 날려버리고 빠져나온것이었다.

이렇게해서 진석은 레오노르를 무사히 구조했다. 단, 피해도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1인용의 장비인 에스카마도를 무려 3명을 보호하는데 사용해서일까. 아니면 폭발이 너무 강력했던 탓일까. 에스카마도는 브로켈을 발동해 폭발과 건물의 잔해를 막아냈지만, 그 후 검게 녹슬며 부스러져 버리며 그 수명을 다했다. 하지만 세 명분의 목숨을 구하는데 겨우 무구 하나 잃은거라면 정말 싼 대가였다.

그리고 레오노르를 알아본 경비대의 도움을 받아 해밀턴의 경비대에서 하루를 머무른 진석 일행.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마차를 제공받아 데오그라즈로 향했다. 레오노르를 통해 왕궁의 상황을 진정시킨 후 북쪽으로 향한 다른 일행들의 소식을 기다리길 며칠. 그리고 일주일 후. 맥과 머서를 제거한 클립튼 일행이 군대를 회군시켜 무사히 되돌아왔다. 맥과 머서가 군령장에 따르지 않고 저항해왔기에 할 수 없이 실력행사를 행한거라고 설명했다. 뭐 이제와서 그들의 생사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이틀이 더 지난 후, 모데로 역시 셀린, 케이트와 함께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시한대로 제이스는 죽었고 사원과 농장은 불탔으며 신도들도 와해되었다고 했다. 그렇게해서 정말로 허신의 교단을 격파하는 모든 일이 끝났다.

그렇게 해서 받을 수 있는 퀘스트의 보상은 대단했다. 보유하고 있던 스킬들이 전부 S랭크가 되었으며, 모든 능력치는 최대치인 50으로 상승했다. 원래는 무력과 민첩만 어웨이크닝의 보정 덕으로 80대를 찍었으나, 기본 능력치가 전부 50이 된 덕에 정치나 지력같은 나머지의 능력치도 전부 80을 찍게 되었다. 게다가 마음의 힘은 무려 1만이 누적되었다. 각성 상태를 두시간도 넘게 유지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수치. 이거라면 이제 게임상에서 자신의 적이 될 수 있는 상대는 정말로 신 이외엔 아무도 없을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S랭크의 퀘스트 클리어 특전으로 다음 회차부턴 처음부터 스킬 어웨이크닝을 선택 할 수 있게 되었다.

퀘스트의 보상을 확인 한 후 엔딩의 조건을 달성해 게임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딱히 이 퀘스트는 게임의 엔딩조건과는 관계가 없는 모양이었다. 진석에게 찾아온것은 엔딩이 아닌 골치아픈 사후처리였다. 우선 레오노르가 정당한 수단이 아니라 교단의 음모에 의해 여왕위에 오른것이 확인되었으므로, 레오노르는 폐위되었고 유배되었던 이전의 왕 스테인필드를 복위시키게 되었다. 게다가 교단의 음모에 동조한 수많은 귀족들 역시 처벌의 의미로 그들이 쥐고 있던 막대한 이권이나 상당량의 영지를 몰수하게 되었다.

물론 저항하는 귀족들도 있었지만 그런 자들은 클립튼이 나서서 전부 끌고와 귀족위를 몰수하고 감옥에 처박아 버렸다. 그런 와중 진석은 레오노르를 폐위시킨다는걸 당연히 탐탁치 않아했지만... 정석대로 따지자면 이렇게 처리하는게 옳았으므로 그냥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란델이 없더라도 내겐 아라파가 있었으니깐, 하며 그러려니 납득했다. 이렇게해서 교단의 음모에 협조했던 귀족연맹은 그야말로 폭삭 몰락했으며 몇 남아있지 않던 왕당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 대폭 약진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레오노르를 처발하는 일은 없었다. 따지고 보면 레오노르도 그저 억울하게 휘둘린 희생자. 클립튼의 필사적인 변호로 그녀에게 처벌이 가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그녀 역시 부모를 잃은데다 저택마저 날아가버렸고, 기껏 올랐던 여왕위에서 강제로 쫓겨나 당장 집도 절도 없는 딱한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정을 참작한 스테인필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엉망이 된 해밀턴 공작가를 재건하는 일을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레오노르를 변호했던 클립튼은 놀랍게도 해밀턴 공작가를 다시 세우는 일을 돕겠다고 자원했다. 지금의 클립튼은 구국의 영웅. 대귀족의 지위를 하사받아도 모자랄 상황이건만 그냥 평범한 기사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놀라는 주위의 반응에 클립튼은 대수롭지 않게 자신은 한 번 해밀턴가에 영원한 충성을 맹세한 기사라며, 앞으론 죽고 없는 해밀턴 공작 대신 공작위를 이을 레오노르를 그 곁에서 보좌하겠다고 대답했다. 그야말로 완전무결의 기사다운 태도였다.

클립튼의 친우인 리들리. 클립튼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때 외면하지 않고 나서서 그를 구해냈던 정의로운 마법사. 그 역시 친구의 의견을 존중하며 자신은 클립튼처럼 영원한 충성까진 아니더라도, 일단 당분간은 그의 곁에 머무르며 레오노르가 가문을 재건하는 일을 돕겠다고 나섰다. 그 다음은 스텔라였다. 최초에 커드머스로 도주했던 클립튼 일행이 몇몇 비엔족 부족의 다툼을 해결할때, 클립튼의 외모와 성품에 반해 따라나섰던 비엔족의 여궁수 스텔라. 그녀 역시 클립튼의 곁에서 머무르려는 심산으로 해밀턴가에 투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렇게 해서 클립튼의 일행 중 절반이 레오노르의 곁을 지키는 해밀턴가의 가신이 되었다.

모데로와 에이미는 예정된 임무가 끝났으니, 우선 자신들의 교단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선선히 떠나갔다. 하지만 그들의 여정은 머지않아 또 다시 이어질게 분명했다. 진석이 그들에게 일러주었던 솜브라 교단의 진짜 배신자들에 대한 정보. 그것에 대한 단서를 얻은 이상 또 저 두 남녀는 언제고 다시 한 번 모험의 길에 오르게 될터. 그리고 클립튼 일행이 옐 프라나에서 도왔던 중년의 격투가 안톤. 그는 옐 프람의 산간 외곽 친척집에 맡겨두었던 딸을 보기위해 되돌아갔다. 클립튼 일행에게 은혜를 입은터라 그것을 갚기 위해 따라나섰고, 일이 마무리 되었으니 자신의 가족에게 돌아가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든 자신의 힘이 필요하다면 찾아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일이 마무리 되어갈때쯤, 엘리야가 데오그라즈에 도착했다. 엘리야는 진석이 사원을 떠나면서 해두었던 '특별한 지시'대로 움직였던 것이다. 그 특별한 지시란, 자신이 사원을 떠나는대로 엘리야 역시 제이스의 눈을 피해 챙길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돈을 챙겨 데오그라즈로 빠져나오라는 지시였다. 대신관의 권한을 이용해 위조한 명령서나 서류들을 잔뜩 만들어낸 엘리야. 제이스에게 의심받지 않도록 헤세스 약품 통상의 본사에 중요한 일이 생긴것처럼 가장해서 사원을 벗어났다. 그리고 당장 가용 가능한 현금인 4만 골드의 거액을 챙긴 엘리야는 그 즉시 호위 인력을 잔뜩 고용, 애거스트 공화국과 커드머스를 거쳐 빙 돌아서 데오그라즈에 도착한 것이었다.

진석은 자신의 명령대로 충실히 움직여준 엘리야에겐 4만 골드 중 절반인 2만 골드를 넘겼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일생동안 만져볼 일도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 엘리야는 진석이 그러한 거액을 자신에게 주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보단 그저 크게 놀라워했다. 그리고 남은 2만 골드 중 절반인 1만 골드는 레오노르에게 건넸다. 아무리 국왕인 스테인필드가 그녀를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당장 손에 넣을 수 있는 현금 이상으로 훌륭한 지원은 없었으니까. 이 돈이면 충분하진 않더라도 당장의 공작가 재건작업엔 큰 보탬이 될 터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1만 골드 중 절반인 5천 골드는 르마쿠르 자매에게 건넸다. 진석은 르마쿠르 자매가 애당초 데오그라즈에 가게를 열고 싶었지만, 아네트가 하디카에서 돈을 낭비하느라 결국 자금이 모자라 페레나에 가게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강의 사후처리를 마친 후, 진석은 우선 아르데나와 셀린, 케이트를 레오노르 편에 딸려 해밀턴으로 보냈다. 클립튼이나 스텔라, 리들리가 있긴 했지만 임산부인 레오노르를 곁에서 조금이라도 더 잘 돌봐주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르마쿠르 자매에겐 돈 뿐만이 아니라 몸의 보답도 해주었다. 자신이 약속한 일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무려 3박 4일간 숙소 밖에 나오지도 않고 지젤, 아네트와 함께 끝도 없이 살을 부대끼며 거사를 치뤄주었다. 먹고 마시는 동안에도 섹스를 했고 잠이나 휴식도 최소한만 갖게하며 계속 정사를 나눴다. 진석의 능력치가 전부 훌쩍 올라가서인지 부담이 예전보다 덜했기에 가능한 짓이었다. 마지막 날 아네트의 입에선 10년치의 섹스를 압축해서 치른 기분이라며, 섹스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자신이 이거 한동안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겠다는 말을 자진해서 할 정도였으니 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3박 4일. 무려 100여시간에 가까운 초인올림픽 같은 장대한 섹스의 마라톤 후, 둘은 무조건 진석을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진석은 둘에게 페레나시의 무기점을 폐점하고 건네준 자금을 바탕으로 데오그라즈로 자리를 옮겨 무기점을 계속할 것을 권유했다. 진석은 자신에게도 돌아올 '집'과 같은 장소가 필요하다며, 너희 둘은 내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이곳에서 자리를 지키며 자신을 기다려달라는 식으로 설득했다. 그녀들은 처음엔 내키지 않아했지만 완곡한 설득과 또 다시 몇차례 몸이 섞인 뒤에야 못이기는 척 진석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 자매는 우선 페레나시의 가게를 정리하기 위해 데오그라즈를 떠났다.

진석이 르마쿠르 자매를 상대하던 며칠 사이 거액을 손에넣은 엘리야는 그간 방치되어 엉망이 된 빵가게를 수습하고 새로 단장했다. 그리고 엘리야는 진석에게 자신이 데오그라즈의 정보상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혀왔다. 현재 데오그라즈의 정보상 자리는 이전의 정보상이었던 피터슨이 죽고 공백이 된 상태. 애시당초 피터슨의 밑에서 일을 해왔으며, 교단에 속해있는 동안은 헤세스 약품 통상의 해외 영업부에서 거의 첩보원 비슷한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은 엘리야였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자신에게 정보를 다루는 일에 대한 소양이 있다는것을 분명히 깨달았다며, 진석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이것은 자신의 곁에서 머물며 함께 해달라는 일종의 완곡한 프로포즈였으나, 진석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엘리야를 데리고 카야에게 데려갔다.

정보상은 험한 일이다. 당연히 힘이 될만한 뒷배경이 필요했다. 진석은 자신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는 카야에게 찾아가 앞으론 엘리야의 일을 돕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교단에 관한 것은 모두 끝났다며, 앞으로 마약의 지원도 없을테니 엘리야와 같은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는것이 좋을거라는 당부도 해두었다. 엘리야는 자신의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진석의 뒷통수에 대고 긴 한숨을 내쉬며, 카야에겐 자신의 정보상 일을 돕는한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내겠다며 앞으로의 협업을 제안했다. 카야로선 진석이 소개해준 상대이고, 마약의 지원도 끊겼다니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외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엘리야는 그렇게 데오그라즈의 정보상으로서의 새로운 발판을 마련했다.

그렇게해서 정말로 모든 일이 다 마무리 되었다. 진석의 활약으로 세계멸망을 노리는 사교단은 분쇄되었고, 그간 어두운 음모의 소용돌이에 휩싸여있던 그란델 왕국도 언제 그랬냐는듯 말끔히 평화를 되찾았다. 허나 모든일이 끝나버리니... 왠지 모르게 더할 나위 없이 허전했다. 모든게 끝났음에도 아직도 뭔가 해야할 일이 남은 기분이었다. 진석은 자신 몫의 금화 오천닢을 엘리야에게 맡겨둔채 데오그라즈에서 하릴 없이 소일하며 한동안을 머물렀다.

그리고 그간 페레나에서의 정리를 마친 르마쿠르 자매가 데오그라즈로 돌아와 가게를 새로 차릴 준비를 시작했고, 정보상으로서의 기반을 가져가던 엘리야는 바쁜 와중에도 몇 번이고 진석을 찾아왔다. 르마쿠르 자매나 엘리야나, 번갈아 진석을 방문해왔기에 진석은 그녀들과 함께 잠자리를 갖는 등 이래저래 어느정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또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그냥 이대로 데오그라즈에 정착하는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때쯤, 진석은 우연히 선창가의 어느 술집에서 풍문을 주워들었다. 대륙 서부의 아라파에서 내분이 일어났다는 이야기였다.

알 유세피나가 쿠테타를 일으키기 전대의 국왕인 알 파지드. 그리고 그의 동생인 왕제 알 후드라. 쿠테타 이후 내부정리를 할때 언급되었던 인물이었다. 허나 그는 변경 도시에 머무르고 있던데다가 예전부터 왕권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자라고 하여 감시만을 붙여두고 그냥 내버려뒀던 자였다. 그런데 어느새 그가 주변의 세력을 규합하여 독립을 선언, 알 유세피나에 대해 반기를 들어올렸다던가 말았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었다. 헤세스모데우스 교단을 물리치고 왠지 모를 허탈감에 빠져 허송세월 하던 진석은 그제서야 가슴이 뛰며 손발이 근질거리는걸 느꼈다. 진석은 그 즉시 엘리야에게 자신이 맡겨두었던 돈과 함께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해주길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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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읏챠."

웍스턴에게 마차의 고삐를 넘겨받은 진석은 마부석에 앉았다. 가볍게 목례를 하며 뒤로 물러나는 웍스턴. 진석은 끄덕 고갯짓을 하며 그의 인사를 받아주고 시선을 돌렸다. 아직 저쪽 해변가의 간이 주점에 서서 자신을 지켜보는 엘리야. 그녀는 바람에 휘날리는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이쪽을 향해 외쳤다.

"러셀씨! 적당히 하고 돌아와요! 나도... 어, 언제까지고 기다려주진 않을테니까!"

응? 뭔소리야. 뭘 기다리겠다는거야? 엘리야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진석은 피식 웃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크게 흔들어 보이곤 마차를 몰았다. 말들은 석양이 비쳐 붉게 물든 도로를 따라 다그닥거리며 서서히 길을 나아갔다. 진석은 고삐를 쥔채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생각에 잠겼다.

'자아... 그럼. 우선은 해밀턴으로 돌아가볼까. 돌아가서 아르데나랑 셀린, 케이트를 챙겨야지. 레오노르는 임신한데다 가문을 재건해야 하니 놔두고... 뭐 잘나신 기사 양반인 클립튼이나 똑똑한 리들리가 곁에 있으니 문제 없겠지. 스텔라? 걔는 클립튼 일편단심인데다 날 싫어하는 눈치니 필요없어. 좌우지간 셋을 챙기고 배를 타서... 아차차. 셀린이랑 케이트가 배를 못타지? 아니지. 타면 타는거지 뭐 까짓거. 배멀미보다 저쪽 사정이 급하니깐! 아무튼 배건 뭐건, 최대한 빨리 아라파로 가서 알 유세피나를 만나봐야겠다. 아라파나 알 유세피나나 둘 다 엄연히 내꺼거늘! 멍청한 놈이 겁도 없이 감히 반란따위를 일으키고 말이야. 아, 그리고 그 거인족 소녀... 이름이... 맞다. 파나히, 걔도 이미 와 있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는 진석의 입가엔 자연스레 미소가 걸렸다. 이거이거, 아무래도 아직 자신의 방랑은 조금 더 이어질 모양이었다. 그래.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리베라 - 부회(附會)의 방랑자, 끝.

============================ 작품 후기 ============================

- 후기.

일단은 후련하군요. 지금은 그냥 그 생각 뿐입니다.

소싯적부터 100kb 미만의 짧은 글은 여러차례 써본적 있지만, 그나마도 제대로 끝낸 글은 거의 없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하드디스크 속엔 무슨 묘비 마냥 몇 자 적히다 버려진 텍스트 파일들이 즐비합니다. 네. 이렇게 긴 이야기를 완성한것은 처음입니다.

자기만족으로 시작한 얼치기 글치곤 분에 넘치는 호응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올리면서도 내심 에이 이거 어느정도 쓰다가 결국 말겠지 싶었는데.. 아이고, 보는분들이 늘어나니 어느샌가 멈추고 싶어도 멈출수가 없게 됐습니다. 자신의 행동엔 자신이 책임을 져야하니까요. 매일 매일 쓰고 또 쓰다.. 결국엔 이렇게 끝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엔 어마어마하게 많은 소설들이 있고, 이건 소설이라 불러주기도 참 조악한 졸작이지만... OTL 그래도 뭔가를 끝까지 완성했다는 기분만큼은 참 뿌듯한 것 같습니다.

다음글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아예 새로운 글을 쓰는 것. 만약 새로운 글을 쓴다면 이와 같은 게임 소설이 아닌 평범한 판타지를 쓸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제나 소재는 미정. 그리고 두번째는.. 리베라의 후속작을 쓰는 선택입니다. 사실 글을 쓰는 와중에도 리베라의 후속작에 대한 여지를 남기고 싶어서 본문 도중 나름대로 여기저기 사소한 떡밥을 심어놓긴 했습니다.

여태까진 게임을 하며 단 한 번도 후대를 만들지 않았던 주인공이 몇몇 여자들을 임신시킨것부터, 아라파쪽의 인물들(사카르의 라나. 주인공이 소개장을 써서 보낸 파나히. 마지막에 봉기를 일으켰다는 전대 왕의 동생 등.), 솜브라 교단과 거기서 떨어져 나가 변질되어 암살단으로 변모했다는 정체미상의 조직, 주인공이 잘 모르는 마족들의 도시나 케이트의 가문.. 그리고 마지막으론 본문 도중 몇 번 정도 슥 지나갔던 확장팩에 관한 이야기까지.

확장팩에 대해 조금 말을 꺼내보자면 현재의 대륙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다른 문명권인 동방대륙의 등장으로.. 네. 사실 흔해빠진 소재입니다. OTL 뭐.. 온갖 설화를 기반으로 한 요괴들이 나온다거나, 무협지의 황금패턴인 기연과 춘약, 그리고 고강한 내공의 무림고수라거나, 만능해결사인 지나가는 선비라거나, 하이쿠를 읊는 닌자라거나.. 뭐 그런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생각 '만' 해봤습니다. 네. 물론 반쯤은 농담입니다. OTL

어쨌거나 최초에 구상했던건 주인공이 결국 어찌저찌 헤세스모데우스 교단을 깨부수고 또 다시 방랑을 떠나는 부분까지였기에.. 일단 첫번째 이야기 부회의 방랑자는 이런 결말로 끝냈습니다.

애시당초 싱글용 가상현실게임을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는 주인공이 도덕관념이나 상식에 얽메이지 않고 멋대로 날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만, 막상 쓰다보니 나름대로의 가치관에 얽메여 따질거 다 따지고 가릴것도 다 가리는 녀석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건 이전의 후기엔가 적은 이야기기도 하지만 제 글의 주인공 서진석은 뭔가 특출나거나 대단한 인물이 아닌, 그냥 '혼자서 게임을 플레이 할뿐인 평범한 청년'으로 설정했기에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적의 힘을 갖추고 강철멘탈을 지닌 주인공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팍팍 격파해나가는것도 물론 통쾌하고 시원스럽겠지만, 저는 그냥 흔하디 흔한 평범한 사람이 고생스런 여정을 꾸역꾸역 헤쳐나가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보시는 분들이 답답해 할만치 주인공이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거나 감정의 기복이 오르락 내리락 하던 모습들도 일부러 표현한 장면들입니다.

사실 다들 게임을 하다 보면 느끼는 일이지만, 잘 안풀려서 지게되면 사실 별거 아닌데도 엄청 열받고 짜증납니다. 반대로 이기면 언제 그랬냐는듯 속 시원하고 기분이 좋지요. 네, 그냥 그런 느낌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고 봐주셨으면.. 싶었는데 그런게 잘 전달이 되진 않은것 같습니다. 그냥 역량부족이지요. ..뭔 되도 않는 소릴 하면서 약을 팔고 있습니다.. OTL 뭐 재차 반복하는 설명이지만 이건 대단한 재능이나 특출한 기술을 가진 인물의 이야기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청년의 게임기였으니까요.

솔직히 일반적인 경향이나 트렌드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글이고, 어디까지나 제가 쓰고 싶은대로 마구 이끌어나갔던 글이라.. 지금까지 읽어주신분들이 이만큼이나 계셨다는것만 해도 굉장히 고맙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봐주시는 분들이 없었다면 계속 쓰지 못했을테죠. 모자란 글에 주신 관심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서진석의 이야기는 끝났습니다만, 이 녀석은 틀림없이 계속 플레이를 이어갈겁니다. 리베라의 세계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고 그 안에서 또 다시 이런저런 사고를 치며 늘 그렇듯 주말을 게임 삼매경으로 보낼게 뻔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마지막에 준신의 단계에 들어서는 강력한 힘을 얻은 만큼 만약 후속작을 쓴다면 이번작처럼 여기저기서 끙끙대며 고생하는 일없이 팍팍 때려부수고 신나게 깽판을 치고 다니는 글이.. 과연 그렇게 될까요? 허허허.

자 그럼 제가 쓸 수 있는건 여기까지. 진부하다 못해 고루한 문장이지만, 나머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지금까지 리베라 - 부회의 방랑자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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