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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19화 (19/82)

19화

외신들은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면서 연일 호들갑이었다. 포르투갈이 월드컵 개최국 대한민국에게 힘도 제대로 못쓰고 당해버렸다. 어른이 어린 아이의 손목을 비틀 듯 너무도 확연한 차이가 난 대결에 제 3국에선 물음표를 가득 띄웠다. 같은 개최국 입장인 일본도 16강에는 진출하며 체면을 살렸으나 대한민국의 선전에 바짝 긴장하는 기색이었다.

“그 경기에서 포르투갈 선수들이 너무 체력적으로 힘들어 했고, 경기 끝날 때가 다 돼서 들어간 저는 워낙 힘이 남아도는 상황이라서... 포르투갈 선수들이 9명으로 경기했던 게 저한테는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조별예선 3경기를 모두 싹쓸이 한 대한민국은 이제 공공의 적이 되었고, 많은 경기 시간을 뛰지 않고도 득점 1위에 올라있는 우주는 모두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인터뷰 때면 기자들이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골을 잘 넣을 수 있냐고.

우주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후반전에 교체 투입되어 들어갔기에 힘이 남아돌아 집중력이 살았고, 그로 인해 주워낸 운이 좋은 골도 몇 개 있었다. 압도적인 득점력이라고 표현하기엔 멋쩍은 것이, 주위 동료 선수들이 워낙 경기 운영을 잘해주었기에 우주에게 기회가 올 수 있었다. 당장 같이 공격진을 이뤘던 안정환만 보더라도 우주의 골에는 거의 무조건 관여하는 편이었다. 안정환이 없었더라면 5골도 넣지 못했을 것이다. 우주는 자신의 득점에 대해서는 동료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게 사실이니까.

예전 같았으면 언론의 반응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 같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격수와 같은 그런 낯 뜨거운 표현들.

사실 우주 자신은 자신이 그런 표현에 알맞은 선수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동료들과 발맞추면서 대한민국을 최대한 높은 곳까지 끌어 올리는 일이었다. 그게 득점이기에 득점을 해온 것뿐이고.

이젠 16강전이었다. 꿈에 그리던 월드컵 16강 토너먼트, 그 첫 상대는 이탈리아로서 카테나치오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팀이 대진표에 따라 상대가 되었다.

“우린 이기려면 더 많이 뛰어야 한다.”

히딩크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활동량을 요구했다. 그래야 이길 수 있다면서. 수준 높은 팀을 상대하기 위해선 지금의 노력과 집중, 그를 초월하는 정신이 필요하다면서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국은 강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먼저 한 골을 넣고 수비에 집중한다면, 우리의 승리는 그 한 골로도 충분합니다.”

경기를 준비하면서 기자회견에서 토티가 한 말은 개최국을 상대로 맞이한 이탈리아의 자신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수준의 차이가 확실하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토티를 보며 대한민국 선수들은 기가 죽기는커녕 승부욕만 타올랐다.

대한민국 쪽의 기자회견은 우주가 나서게 되었다. 우주는 이번 경기에서도 선발이 아니지만 득점 1위에 올라있는만큼 경계 대상으로 손꼽히는 선수였고, 이탈리아를 교란시키기 위해 일부러 선발인 척 기자회견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것도 히딩크의 작전 중 하나였다.

“한 골이면 충분하다고, 토티 선수는 그렇게 발언했는데 김우주 선수는 이탈리아와의 경기를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월드컵 득점 1위에 올라있는 우주의 말에 기자회견장의 모두가 주목했다. 한국 기자들만 아니라 외국 여러 언론의 기자들도 우주의 말을 기다렸다. 한국 기자들은 우주가 토티보다 강한 발언을 하며 한 방 먹여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입씨름을 하는 건 경상도에서 자란 우주의 방식이 아니었지만 이미 기자회견장에 오기 전부터 선배 선수들에게 귀가 닳도록 들었다. 너도 기자회견장 가서 뭐라 멋진 말 좀 해보라고. 그리고 우주는 준비한 말을 더듬더듬 내뱉었다.

“옛날에 호주 청소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랑 이탈리아가 경기를 하려 했는데, 경기 전에 이탈리아 감독이 한국 골망은 5번 흔들릴 거라고 했답니다. 경기에서 골망은 정말 5번 흔들렸대요. 이탈리아 골망이 4번이나.”

우주의 말이 각국의 언어로 전해지자 기자회견장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특히 이탈리아 기자들은 더더욱. 우주는 그 분위기를 눈치채고 차분히 숨을 골랐다.

“사람이 호언장담하는 것처럼 일이 쉽게 풀리는 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탈리아는 강한 팀이니까, 우리가 해온 방식대로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겠죠.”

기자회견에서 우주가 했던 발언은 일파만파 퍼졌다. 경기 전부터 대한민국과 이탈리아의 16강 경기에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월드컵 득점 1위의 김우주냐, 카테나치오의 이탈리아냐, 그런 대결구도는 심상찮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흥미요소였다.

[한국의 이탈리아 상대 전적은 86월드컵에서의 2대3 패배입니다. 최순호와 허정무가 득점을 기록했었죠.]

그런데 경기가 시작하려고 하니 우주는 여전히 벤치였다. 세상 사람들은 무려 5골을 기록하고 있는 김우주를 벤치에 앉혀놓는 히딩크 감독의 의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처럼 강한 수비진을 구축하는 팀을 상대로는 약체 대한민국이 득점력 강한 김우주를 내세워야 할텐데, 히딩크 감독의 속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은 사람들로서는 조금 의아한 선택이었다.

“대~한민국!”

경기 시작 전에는 ‘again 1966’이라는 카드섹션 장관이 펼쳐졌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무시하려고 애를 썼지만 마냥 무시하기만은 어려운 문구였다.

[경기 시작됩니다! 8강을 향한 16강전이 시작됩니다!]

김우주가 득점을 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전방에 깊게 위치할 수 있던 상황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설기현만큼 측면 돌파가 날카롭지 않은 김우주를 내세우기엔 이탈리아의 수비가 너무 강하다.

또, 이탈리아 선수들을 자주 상대한 안정환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우선은 이런 토너먼트에선 안정적인 선택이 우선시되는 만큼, 히딩크 감독은 후반전에 우주의 투입을 생각하며 경기를 시작했다.

[아직 안정환이 공을 건드려 보질 못했어요.]

[역시 예상했던대로 이탈리아는 3백이 아닌 4백 라인을 가동하고 있어요. 한국이 세 명의 공격수를 배치했기 때문에 일자 라인을 고수하는 4백을 가동합니다.]

[언뜻 보면 의장대 같죠.]

우주는 파올로 말디니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수비진을 유심히 지켜봤다. 중앙 수비수 율리아노는 키가 191cm에 달하는 장신의 수비수로 안정환이 힘으로 이기기엔 조금 무리가 있을 지도 모르는 수비수였고, 말디니는 힘으로 공격수를 압도하는 유형의 수비수는 아니지만 수비 실력이 상당한 수비수다.

원래 왼쪽 수비수로 나서던 말디니가 중앙 수비수 자리로 간 것은 네스타의 공백 탓이다. 조직력은 이런 변화에도 사소한 균열이 일어날 수 있었다.

벤치에서 이들을 지켜보면서 우주는 이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살피며 최대한 경기 분위기를 관망했다.

[박지성! 주춤주춤! 제치고 들어갑니다!]

[아아!]

[태클이 깊었습니다! 프리킥입니다! 프리킥! 코코에게 옐로 카드를 줍니다! 단호한 표정을 짓는 주심!]

이탈리아 선수들은 너무도 거칠었다. 이미 체격적으로 우세를 갖는 이탈리아 선수들이 아예 거칠게 나서니 대한민국 선수들로서는 위축이 될 법도 했다.

[공격진 다 들어가 있습니다. 문전으로 갑니다! 걷어내는데요!]

크로스가 페널티 박스 안으로 날아드는 순간에 경합을 하던 설기현이 상대 수비수에 밀려 넘어졌다. 벤치에 있던 선수들 몇몇이 그에 반응하며 일어났다. 우주도 기대감에 주심에게로 눈을 돌렸다.

[페널티 킥!]

[페널티 킥이에요!]

주심이 페널티 킥을 선언하며 페널티 스폿을 가리켰다. 이탈리아 수비수들이 주심에게 달려가 항의했지만 사실 별달리 항의할 말도 없는 것이, 파누치가 은근한 파울을 시도했던 게 맞았다.

[안정환이 준비합니다!]

우주는 이번 경기도 수월하게 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안정환은 이탈리아를 상대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전보다 더 노력했던 선수였다.

[11m 거리, 공이 골문까지 들어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0.5초면 충분합니다!]

골문을 지키고 선 부폰은 침착한 기색이었다. 안정환은 그 반면에 조금은 긴장한 기색, 응원단은 환호성을 위해 잠시나마 안정환에게 집중할 시간을 제공했다. 경기장이 조금 조용해졌고, 주심의 휘슬이 울렸다.

[안정화아안! 고...!]

안정환의 시선 속에서 방향을 읽어낸 부폰이 안정환의 슛을 정확히 쳐냈다. 이탈리아 수비수들은 대놓고 환호하며 부폰에게 달려갔다. 안정환은 머리를 부여잡았고, 대한민국 응원단은 실망에 탄식을 내뱉었다.

[여기서 주저 앉으면 안돼요!]

[빨리 잊어버려야죠!]

부담이 컸던 듯 했다. 부자연스러운 킥 동작에서 우주는 안정환의 부담감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미국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페널티 킥처럼 완벽한 기회를 놓치고 나서는 분위기를 내주는 그런 상황. 그런 상황이 오늘 경기까지도 이어져서는 안됐다.

[비에리 쪽으로 옵니다... 우리 선수 한 명이 넘어져 있는데요.]

공중볼 경합을 하는 그 순간에도 이탈리아 선수들은 대한민국 선수들을 거칠게 대하기 바빴다. 김태영은 비에리의 팔꿈치에 콧잔등을 얻어맞고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아아, 조금 출혈도 있는데요.]

충돌 순간에 입술마저 깨물어 출혈이 터진 김태영은 고통스러워 보였다. 우주는 멀리서도 김태영이 피를 입에 머금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경기는 계속 뛰겠다고 의료팀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고 있었다. 히딩크 감독의 표정은 조금씩 굳어져갔다.

[깊숙하게, 돌아서는 안정환. 그 전에 수비가 걷어냅니다.]

경기가 좋지 않은 분위기로 흘러가자 안정환은 더 열심히 뛰었다. 실수를 만회하려는 몸부림, 그게 눈에 보였다. 우주는 관중석의 응원단처럼 속으로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이탈리아의 코너킥.]

그런 와중에 몇 차례 기회를 잡으려 안간힘을 썼던 이탈리아가 코너킥 기회를 얻었다. 토티가 준비하는 코너킥, 그의 코너킥은 가까운 포스트로 움직이는 비에리를 향해 날아갔다.

[위험합니다...!]

[아...!]

[아아...]

[여기서 실점하네요...]

[비에리가...]

최진철이 따라 붙었지만 비에리는 황소 같은 힘으로 버텨내며 골문 구석으로 헤더슛을 꽂아넣었다. 토티의 날카로운 킥과 비에리의 개인 능력이 빛나는 순간, 히딩크 감독은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을 알고 잠시나마 가만히 자리에 서있었다.

[지금 이 상황은 수비수들이 참 마크하기 어려운 각이에요. 비에리 선수는 저 각에서 참 절묘하게 골을 잘 넣었어요. 아아, 아쉽네요.]

[차라리 페널티 킥을 얻지 말걸, 안정환 선수의 실축 이후에 우리가 너무 가라앉았어요.]

골 셀레브레이션을 끝내고 자리로 돌아가는 토티가 대한민국 쪽 벤치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을 열심히 돌리더니 한 곳에서 시선이 머물렀다.

“이제 한 골인 걸.”

우주는 토티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주먹을 꼭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선수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직접 증명하고 싶은데, 지금의 자리가 이 투지를 속박했다.

“우주.”

그 때, 히딩크 감독이 우주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평소보다 더 빨리 준비해라.”

절대 질 수 없는 경기, 이기기 위해선 우주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히딩크 감독은 이제 우주를 앉혀둘 생각이 사라졌다. 우주는 튕겨나가듯 자리에서 나왔다. 한시라도 빨리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 작품 후기 ============================

이탈리아 경기 때문에 외람된 말을 하나 하자면, 토티가 유벤투스 10번 = 이탈리아 국대 10번의 공식을 깬 첫 선수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건 제가 알기로는 사실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02월드컵 이탈리아 대표팀 명단1 BUFFON Gianluigi (GK)

2 PANUCCI Christian

3 MALDINI Paolo

4 COCO Francesco

5 CANNAVARO Fabio

6 ZANETTI Cristiano

7 DEL PIERO Alessandro

8 GATTUSO Gennaro

9 INZAGHI Filippo

10 TOTTI Francesco

11 DONI Cristiano

12 ABBIATI Christian (GK)

13 NESTA Alessandro

14 DI BIAGIO Luigi

15 IULIANO Mark

16 DI LIVIO Angelo

17 TOMMASI Damiano

18 DELVECCHIO Marco

19 ZAMBROTTA Gianluca

20 MONTELLA Vincenzo

21 VIERI Christian

22 TOLDO Francesco (GK)

23 MATERAZZI Mar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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