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올드 트래포드로 가는 동안 어떤 경기를 해야 하는지 그것만 생각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경기력을 끌어올릴 생각만 했다. 경기 감각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는 4강 진출팀을 가리는 중요한 한 판이었다. 실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실수를 한다면 이제 더더욱 기회는 줄어들 것이다.
올드 트래포드에 도착한 순간엔 가슴이 떨렸다. 워밍업을 위해 피치로 갔을 땐 이곳의 열기가 실감이 됐다. 수준 높은 경기장과 그곳을 채운 관중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단지 이곳에서 축구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도 가슴 벅찬 일이라 생각되었다.
경기 전 미팅에서 델 보스케 감독은 절대 여유로운 경기를 펼쳐서는 안 된다고 선수들에게 당부했다. 우주에게는 침착함을 유지해야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다고 조용히 말해주었다.
[챔피언스 리그 8강 경기를 앞두고 있는 올드 트래포드, 홈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어웨이팀 레알 마드리드의 대결입니다.]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좁은 통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과 미리 인사를 나누게 해주었다. 따뜻한 말로 하는 인사가 아닌 몸의 인사였다. 통로가 좁아 경기장으로 나가는 동안에 몇 차례 어깨를 부딪치고는 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게 또 신경전이 되는 것 같아 최대한 신경 쓰지 않는 척 앞만 보고 걸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인업입니다. 파비앙 바르테즈, 존 오셔, 미카엘 실베스트레, 리오 퍼디난드, 웨스 브라운,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로이 킨, 니키 버트, 라이언 긱스, 올레 군나르 솔샤르, 루드 반 니스텔루이.]
[약 7주간의 부상 공백이 있었던 베론이 이 경기에 출전합니다. 강력한 레알 마드리드의 중원에 상대하기 위해서겠죠.]
막상 경기가 시작될 무렵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미리 생각해놓은 플레이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우주는 생각나지 않는 플레이들을 애써 떠올리려 노력하지 않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라인업입니다. 이케르 카시야스, 로베르토 카를로스, 이반 엘게라, 페르난도 이에로, 미첼 살가도, 스티브 맥마나만, 클라우디 마켈렐레, 호세 마리아 구티, 지네딘 지단, 루이스 피구, 김우주.]
경기를 앞두고 라울마저 맹장염으로 올드 트래포드까지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최전방을 책임지는 건 우주였다.
[월드컵의 큰 경기에 필적할만큼 관심이 집중되는 경기인데요.]
킥오프를 준비하며 선 지단은 공을 받으면 골문만 보라고 말했다. 하긴, 어차피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면 봐야 하는 대상을 정해놓는 게 나은 일이다. 우주는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기 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골문을 보았다. 가로 7.32m와 세로 2.44m의 규격, 골을 넣기엔 좁지도 넓지도 않았다.
[경기 시작됩니다.]
마침내 경기 시작 휘슬이 울렸다. 우주는 경기 시작 휘슬과 동시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진영으로 움직였다.
[폴 스콜스가 부상으로 빠진 상태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서는 아쉽겠죠.]
[최근 3경기에서 5득점을 기록하던 스콜스이기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분명한 공백을 느낄 것 같아요.]
경기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레알 마드리드의 페널티 박스로 공을 갖고 가기 위해 애썼다. 라이언 긱스가 있는 왼쪽이 주 공격 루트였다. 허나 살가도는 쉽게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경기 초반부터 상당히 몰아붙이는데요.]
[퍼거슨 감독이 인터뷰에서 득점이 필요하다고 했기에 공격적으로 나설 것은 예견되었던 상황이죠.]
[아 피구가 김우주에게 공 이어받을 때 오프사이드 선언됩니다.]
[다리 사이로 빼네요.]
피구가 측면 위치의 스위칭을 통해 왼쪽으로 왔을 때 우주와 연계를 통해 돌파를 노려봤지만 오프사이드로 공격 기회가 무산되었다. 비록 어떤 상황으로도 이어지지 못했지만 우주는 발끝 감각이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생각보다도 괜찮았다. 공을 다루는 일은 쉬웠다.
[왼쪽에서 긱스의 크로스! 브라운의 헤더 패스, 베론이 여의치 않습니다. 공 뺏깁니다.]
박스 안에서 레알 마드리드 수비수들이 베론의 공을 뺏는데 성공했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짧은 패스를 주고 받으며 점점 전진했고, 우주도 최전방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골문을 보며 움직였다.
[지단의 패스, 중앙으로 갑니다.]
[좋은 패스죠.]
왼쪽에서 공을 이어받은 지단은 중앙의 구티에게 패스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의 역습 방향인 왼쪽 측면에 쏠려있는 사이에 구티가 비어있었다. 지단의 빠른 패스를 이어받은 구티는 중앙선을 넘었음에도 아주 자유로웠다.
고작 몇 m 앞에 수비수 옆으로 돌아 들어가는 우주가 있었다. 구티는 특유의 정확한 패스로 우주의 앞으로 공을 보냈다.
[앞쪽으로 스루 패스 이어집니다! 좋은 기회 맞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
실베스트레가 달려와 우주를 향해 움직였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골문을 보며 달리고 있던 우주는 자신의 앞으로 공이 오자마자 슛을 날렸다. 페널티 박스 바로 앞이었다. 발에 무겁게 걸린 공은 바르테즈 골키퍼와 골대 사이의 좁은 공간을 갈랐다.
[골! 골입니다!]
[아! 이게 들어갔나요!]
[김우주! 레알 마드리드에게 선제골을 선사합니다!]
슛을 시도한 본인도 믿을 수 없을만큼 완벽한 슛이었다. 골망이 흔들리자 올드 트래포드는 조용해졌다.
이전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뛰어본 경험이라고는 경기 종료 직전에 투입된 2경기가 전부였다. 챔피언스 리그에 많은 경험이 있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가치를 재해석시키는 득점을 올리기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우주는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코너 에어리어로 갔다. 살가도가 가장 먼저 달려와 우주에게 안겼다. 그 후 마켈렐레가 소리치며 달려와 안겼고, 피구는 다가와서 축하의 말을 한 번 건넨뒤 제자리로 돌아갔다.
[지단부터 시작한 패스, 구티의 발을 거치면서 김우주에게 완벽하게 연결이 됐고요. 아, 지금은 완벽한 골이네요.]
[코스를 정말 기가 막히게 봤습니다. 바르테즈의 왼쪽으로.]
[리그에서도 단 1골이 전부이면서 챔피언스 리그에서 3번째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거든요. 그것도 호나우두와 라울, 모리엔테스에게 밀려 많은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는 선수인데. 월드컵 득점 2위의 선수는 다르군요.]
[치명적인 결정력입니다.]
경기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우주의 골을 축하하지는 않았지만, 우주는 이 골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총합 스코어에서 4대1로 뒤지는 것과 동시에 레알 마드리드에게 원정골을 허용했다는 건 4강 진출 가능성이 그만큼 희미해졌다는 의미다. 어쩐지 델 보스케의 미소가 눈앞에 그려졌다. 이 골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많이 바꿔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주는 기대했다.
[벤치에 있던 베컴도 표정이 좀 굳어버렸죠.]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이 있는 베컴인데요.]
아무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응원가가 울려 퍼지는 올드 트래포드라지만 이 골 하나로 팽팽한 긴장감이 풀려버렸다. 총합 스코어에서 득실차도 많이 나는데다가 유일하게 희망을 걸던 원정골 하나, 그마저도 우주의 골로 인해서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다. 퍼거슨은 점점 얼굴이 붉어졌다.
[왼쪽에서 카를로스, 김우주 봤습니다! 다시 한 번 김우주...! 피구에게! 아! 제대로 맞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왼쪽에서 카를로스가 단번에 박스 앞의 우주에게로 가는 크로스를 보냈다. 날카롭게 꺾인 크로스는 정확하게 우주에게로 연결되었고, 우주는 욕심 부리지 않고 박스 앞으로 달려들고 있던 피구에게 공을 밀어주었다.
[피구의 발에 제대로 맞지 않았기에 망정이죠.]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많은 패스를 필요로 하지 않아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골문을 노리는 것은 단 몇 번의 패스로 충분하죠. 그건 최전방에 득점력이 있는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피구의 발리슛은 발에 제대로 맞지 않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골문 위로 넘어갔다. 멋쩍었는지 피구는 슬쩍 우주 쪽을 바라보았다. 경기 중에 감정을 많이 드러내지 않는 선수라서 대충 짐작하건대, 우주는 그가 자신에게 좋은 패스라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우주의 감각이 좋아 보이는데요. 경기 전만 해도 김우주보다는 모리엔테스가 기용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델 보스케의 선택은 적절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볼 터치가 괜찮아 보이죠.]
전반전 경기는 만족스러울 정도였다. 확실히 무리하게 경기를 소화하지 않았기에 체력 상태가 다른 선수들보다는 월등히 좋았다. 최전방에서 많은 활동량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을 흔들고, 지단과 피구 같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히딩크가 가르쳐준 움직임이었다. 공격수는 득점을 우선시 해야 하는 포지션이지만 움직임만으로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그 가르침이 여기서 도움이 되고 있었다. 물론 언제라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골문을 노리기 위해 날을 세우고 있었다.
[슛! 아! 들어갔습니다!]
[네! 반 니스텔루이!]
[동점골!]
[이렇게 되면 또 모르겠네요!]
레알 마드리드는 전반 종료 직전에 실점했다. 긱스가 페널티 박스 정면에서 공을 지키고 있다가 오른쪽의 솔샤르가 수비 뒤로 침투하는 것을 보고 패스를 시도했고, 솔샤르는 골문 앞으로 내달린 반 니스텔루이에게 패스했다. 반 니스텔루이는 빈 골문에 공을 밀어 넣어 득점을 올렸다. 오늘 경기의 동점골이자 총합 스코어를 4대2로 만드는 골, 올드 트래포드의 관중들은 우주의 득점 때와 다르게 열광적인 환호성을 내질렀다.
[네, 전반전 1대1 동점으로 끝마칩니다.]
일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희망을 걸던 원정골 그 하나를 무색하게 만든 득점이 전반 11분 만에 나왔다는 게 중요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대량 실점 하지 않는 이상 레알 마드리드가 4강에 가는 유리한 상황에 놓였다. 델 보스케 감독은 드레싱룸으로 돌아온 선수들에게 어디까지나 레알 마드리드가 유리한 상황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긴장하지 않으면 다시 실점할 거라고 집중력을 당부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알 마드리드의 후반전,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15분 간의 휴식이 길다고 느껴질만큼 후반전을 기다렸다. 오늘 경기는 감각이 너무도 좋아 어서 피치로 가고 싶었다. 후반전을 위해 다시 피치 위에 섰을 땐 자신감이 생겼다. 팀은 중요한 길목에 놓여 있었고, 우주는 이런 상황에 익숙했다. 이곳에서 에이스는 아니지만 오히려 이 상황이 발을 가볍게 했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피구나 지단이 골을 만들 수 있었다. 어려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1골은 자신의 발을 거쳐 들어간 상황이었고, 남은 일이라고는 경기를 즐기는 일뿐이었다.
[피구의 슛팅! 아! 골대 맞습니다!]
페널티 박스 측면에서 공을 잡은 피구가 바르테즈가 방심하는 사이 칩슛으로 골을 노렸다. 크로스바에 맞고 튀어나오는 공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튀어나온 공은 달려 나오던 살가도가 잡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비수들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중앙에 밀집해 있었다.
짧은 패스를 통해 레알 마드리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페널티 박스 주위에서 공 소유권을 유지했고, 우주는 박스 중앙에서 수비수들과 나란히 뛰며 동료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지단 같은 플레이 메이커가 팀에 있다면 기회는 단 한 번에 만들어 질 수 있었다.
[지단 스루 패스!]
살가도가 이미 공격에 나선 상황에서 카를로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페널티 박스로 뛰어들었다. 무모한 시도라고 할 수 있었지만 지단의 패스는 예리하고 정확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비수들이 카를로스의 움직임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고 있을 때 지단의 패스가 카를로스에게 연결되었다. 오프사이드도 아니었다. 카를로스는 침착하게 골문 앞 상황까지 살피고 공을 처리했다.
[골키퍼 1대1... 아! 패스! 슛!]
[아, 완벽해요!]
[김우주의 골!]
카를로스가 욕심 부리지 않고 골문 앞으로 움직인 우주에게 패스했다. 우주는 쉽게 골문에 공을 밀어 넣으며 추가골을 기록했다. 바르테즈는 손 쓸 수도 없는 상황에 착잡한 표정을 짓고 저 멀리로 공을 차냈다.
[김우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완전히 무너지네요.]
[2번째 골입니다!]
[지금도 완벽한 지단의 패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비진을 무너뜨렸고요. 몇 번 시도하지 않는 공격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확실한 결과물로 승기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지단의 패스와 카를로스의 움직임이 있었고 김우주의 마무리까지.]
[김우주는 오늘 레알 마드리드 입단 이후 최고의 날이네요.]
우주는 패스를 주었던 카를로스에게로 가서 고마움을 표했다. 동료 선수들도 승리를 직감하고 주위로 모여 마음껏 환호했다.
[짧은 패스 이어집니다! 왼쪽으로! 베론! 문전 쪽에!]
[아!]
[아 자책골!]
그러던 와중에 곧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반격에 성공했다. 페널티 박스 왼쪽에서 베론이 골문 앞으로 강한 패스를 보낼 때 엘게라가 걷어낸다는 것이 어설프게 발 뒤로 공을 건드리며 레알 마드리드 골문 안으로 데굴데굴 공이 들어갔다. 2대2, 총합 스코어는 5대3이 되었다. 우주에게 추가골을 허용한지 단 1분 만에 바로 득점을 성공시켰다.
[베컴이 화면에 보이고 있죠.]
[경기 전 훈련에도 참가했지만 아직 경기에 투입될 것 같지는 않네요.]
우주는 여전히 이 시간이 즐거웠다. 경기를 수비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 자신을 교체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 역할을 해낸 공격수를 교체하는 건 질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마켈렐레가 짧게 피구에게 패스. 피구. 김우주에게 패스합니다.]
빠른 공격 전환을 하던 중이었다. 피구는 공을 잡자마자 우주에게 패스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비진 뒷공간을 노리며 달렸다. 공을 잡은 우주보다 더 앞지른 상태였다. 아무래도 피구는 연이어 기회를 놓친 데에 오기를 품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승부욕과 자존심으로 미루어 볼 때 충분히 그럴 것 같았다.
하지만 우주는 피구에게 무리한 스루 패스는 시도하지 않았다. 지단의 말처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골문만 보고 천천히 공을 드리블하며 생각했다. 언제 다시 챔피언스 리그에서 뛸 수 있을지, 아니, 그조차도 너무 멀리 보는 것이었다. 이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뛰는 날이 또 언제일지 알 수 없었다.
[김우주, 밀고 들어가는데요!]
피구가 패스를 주지 않자 돌아서서 우주를 살폈다. 우주는 여전히 드리블을 하고 있었다. 피구에겐 그가 패스를 주지 않았으니 곧 공을 헌납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그가 더 전진할 수 없도록 웨스 브라운이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슛-!!!]
곧 우주의 발이 공을 강하게 걷어찼다. 슛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오늘 경기 그의 3번째 슛 시도, 우주보다 앞서 있던 피구와 마켈렐레가 시선으로 공을 쫓았다. 공은 생각보다도 빠르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골문으로 날아갔다.
공이 날아가는 동안 슛을 생각하지 못한 바르테즈가 제자리에서 수영하듯 팔만 내뻗었다. 공은 강하게 날아가다가 뚝 떨어지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골망을 흔들었다.
[들어갑니다!]
[오...!]
[대단한 해트트릭!]
[정말 대단한 결정력이군요.]
[김우주, 해트트릭입니다! 3번째 골.]
이번에도 골이었다. 더한 말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에 우주는 동료 선수들의 축하를 받고는 델 보스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우주는 이 해트트릭이 기뻤지만, 이 해트트릭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 해트트릭이 변화를 불러 일으키길 바랐다.
[베컴이 투입됩니다. 베론과 교체되어 들어가는군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경기를 바꾸기 위해 베컴을 투입했다. 베컴은 경기에 투입되자마자 활발한 움직임으로 레알 마드리드 골문을 노렸다. 특유의 정확한 킥은 위협을 주기엔 충분했다.
우주는 벤치 쪽의 신호를 확인했다. 교체 신호였다. 솔라리가 우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우주가 교체되고 솔라리가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우주는 천천히 피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해트트릭에도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선수로서 경기를 치르는 일은 역시 당연한 일이었고, 그 당연한 일을 하지 못했던 만큼 이 경기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후회는 없었다. 그런데도 아쉬움이 남았다.
[올드 트래포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도 그의 해트트릭에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팬들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 구분 없이 모두 일어나 그를 향한 박수를 보냅니다.]
생각하지 못한 일은 그 때 일어났다. 우주는 교체되어 들어가면서 극성스러운 홈팬들에게 야유 대신 박수를 받았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새삼 가슴이 벅차고 머리가 벌떡 일어서는 느낌이었다.
[뛰어난 결정력을 선보였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재해석시킨 김우주는 오늘 최고의 밤을 맞이합니다.]
우주는 델 보스케 감독과 악수를 나눈 뒤에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이 해트트릭이 무슨 변화를 가져올지 그것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