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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35화 (35/82)

35화

보통 임대 선수는 계약할 때 원 소속팀과의 경기에 출전이 불가하다는 조항을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우주의 경우엔 그런 대화가 오고 가지는 않았다. 다른 선수들을 영입할 지에 대해서만 바빴던 것인지, 아님 베컴을 어떻게 환대해야 할지에 대해서만 고민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큰 실수를 저질렀다.

경기를 준비하면서 베니테즈는 레알 마드리드의 약점으로 수비력을 꼽았다. 그들은 베니테즈가 보기에 최악의 수비력을 갖고 있는 팀이었다. 수비수들 능력의 문제보다는 스타 플레이어를 보유한만큼 그들을 모두 경기에 내보내야 하는 부담 때문이었다.

“잘 들어. 모두 한 번에 공격으로 전환하는 게 중요해.”

그들의 공격력은 물론 대단하다. 4라운드까지 진행된 리그에서 그들은 매경기마다 실점했다. 2라운드 바야돌리드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7개의 득점을 올리기도 했지만, 2개의 실점을 허용했다. 강한 공격력은 분명한 레알 마드리드의 자랑이지만 그들이 극한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공격력은 동시에 위험 부담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공격할 때 우리는 기다린다.”

베니테즈는 평소에 리그에서 상대하는 팀들과 다르게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를 준비하는 동안은 매일같이 호들갑을 떨었다. 호들갑이라고 표현한다면 분명 나쁜 표현이지만 그가 그만큼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일에 중요성을 연설하고 다니느라 그렇다.

“생각해 김우주. 카를로스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 비행 청소년처럼 오버래핑에 나설 거고 베컴과 지단은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 어슬렁거리면서 머물 거다. 만약 우리의 역습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레알 마드리드 진영에는 파본과 엘게라 정도만이 널 막을 거고, 캄비아소는 공을 달고 달리는 비센테나 아이마르를 막느라 바쁘겠지. 공을 뺏길 염려는 하지 말고 위치를 찾아.”

공격수 위치에 있는 우주는 이 경기의 중요성만큼 베니테즈에게 전술적 잔소리를 들었다. 꽤나 열성적인 그의 태도와 대우에는 감사한 노릇이지만, 약간의 부담감도 생겼다.

그렇지만 그 정도의 부담감은 즐길 수 있을 정도였다. 다른 경험 많은 선수들도 이 경기를 즐겁게 기다렸다. 생각해 보면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강팀과의 경기는 이 선수들이 매년마다 치르는 일종의 연례행사나 다름없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잠시 발렌시아에 몸을 담그게 된 당신은 이번 경기에 출전할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원 소속팀과의 경기 출전 불가 조항도 없다고 밝혀졌고요, 당신은 부상을 핑계로 레알 마드리드를 피할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만약 득점을 한다면 어떤 기분일 것 같습니까?”

“득점은 제게 있어 가장 중요한 증명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분은 좋겠죠. 프로의 세계이기에 미안하다거나 하는 감정을 느낄 겨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제 소속팀은 일단 발렌시아니까요.”

코앞으로 다가온 경기에 언론의 관심도 모아졌다. 우주도 기자와 인터뷰를 나누게 되었는데, 레알 마드리드 팬들이 우주의 인터뷰 기사를 보기엔 씁쓸하면서도 괘씸할 정도의 인터뷰였다. 반면 발렌시아 팬들에겐 환영받을 태도였다. 우주는 프로페셔널의 의미를 떠나 그저 잠자코 이 경기만을 기다렸다.

베니테즈가 선발 라인업을 읊어줬을 땐 의외라는 생각이 잠깐이나마 들었지만 이내 흥분감이 솟구쳤다. 드디어 레알 마드리드에게 직접 자신을 증명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것도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직접. 그것만큼 확실한 증명이 없다.

“열심히 해보자고.”

우주의 마음을 이해하는 발렌시아 동료들은 우주를 대놓고 두둔해 주었다. 한 번 해보자면서 팀원들끼리 기합을 넣기까지 했다. 그게 큰 힘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선 드레싱룸에서 선수들끼리 화합하는 장면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저마다 친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 스스로를 살피는 일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게 세계 최고의 방식이라면 마다하고 싶었다. 발렌시아가 세계 최고의 팀이라 불리지는 않지만 여기가 더 나았다.

[두 팀은 3승 1무로 현재 라 리가 공동 선두인데 말이죠.]

[이 경기 결과에 따라 선두가 달라질 수 있겠죠.]

어웨이팀 레알 마드리드를 맞이한 메스타야의 열기는 굉장했다. 이제 이곳에서 우주는 작년과 달리 동료들을 상대로 싸워야 했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이젠 상대로 마주한 우주에게 별다른 감정을 보이진 않았다. 약간 인간적인 안부 인사 정도만 나눌 뿐이었다. 그것도 별로 진심으로 하는 말 같지는 않고 예의상 건네는 흔한 말들 같았다. 스페인어 회화책에서 한 번은 읽고 지나쳤을만한 표현들만 서로에게 오고 갔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베컴이 오른쪽에서 낮게 크로스 보내지만 마르체나가 잘 차단합니다.]

이번 서머 브레이크에서 가장 뜨거운 시선을 받았던 베컴은 레알 마드리드의 승리를 위해 애썼다. 우주의 생각만큼 활동량이 적은 선수는 아니었다. 자신의 위치인 측면에서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었다.

[비센테가 중앙에서 공 잡습니다. 아이마르에게 연결, 아이마르, 왼쪽 측면으로 이동합니다.]

발렌시아가 위협적인 공격을 만드는 순간은 역습을 시도할 때였다. 아이마르는 비센테의 패스를 받고 측면으로 이동하면서 캄비아소의 수비를 피했다.

[발끝으로 공 차냅니다! 수비 뒤로 달리는 김우주를 봤습니다!]

시야 속에 들어온 우주를 보고 아이마르가 바로 패스를 시도했다. 비록 패스가 엘게라에게 막혔지만 누구나 예상한 타이밍의 패스는 아니었다.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나온 베니테즈는 아이마르에게 어려운 패스는 되도록 삼가라며 소리쳤다.

[베컴의 프리킥 기회입니다. 베컴! 오! 카니자레스!]

[멋진 선방입니다!]

[베컴의 프리킥이 카니자레스 골키퍼에게 막힙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 케이로즈는 공격적인 경기 운영으로 이 경기에서의 승리를 가져가려는 듯 했다. 이 정도의 선수들을 보유했다면 당연히 그런 선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베컴의 프리킥은 카니자레스의 선방에 막혀 골로 연결되지 못했다. 메스타야의 홈팬들이 환호했다. 메스타야 홈팬들은 오늘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선전하는 발렌시아 선수들에겐 끊임없이 환호하고 박수를 보내주었다.

[아이마르, 공을 잡은 그의 옆으로 비센테가 지나갑니다. 아이마르는 김우주에게 패스 연결. 김우주, 바로 슛팅 시도!]

[음!]

[카시야스가 잡아냅니다! 과감한 슛팅 시도였습니다!]

우주는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에 경기의 첫 슈팅을 시도했다. 툭툭 치고 들어가는 짧은 드리블을 하다 속도를 올려 캄비아소를 제친 뒤에 골문과 먼 거리에서 중거리 슛을 시도했다. 낮게 깔아찬 슛팅은 카시야스에게 막혔지만 메스타야 홈팬들은 우주와 함께 탄식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입니다. 카를로스가 왼쪽에서 치고 올라옵니다.]

[발렌시아는 카를로스의 왼발을 조심해야죠.]

[왼발 슛!]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유형의 풀백 카를로스는 오늘 경기에서도 자신의 성향을 드러냈다. 피구가 공을 잡고 있는 동안 발렌시아 진영으로 달려든 그에게 패스가 주어졌고, 카를로스는 골문 오른편 포스트를 보고 강한 슛을 날렸다. 카니자레스가 쳐낼 수밖에 없었다.

[라울! 골입니다!]

골문을 향해 달리던 라울은 카니자레스가 튕겨낸 공을 재차 골문 안으로 밀어넣었다. 원정팬들만 소리 높이는 메스타야는 매우 조용한 정적이 감돌았다.

[전반 종료 직전에 터진 골입니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서로 모여서 라울의 골에 기뻐했다. 라울은 한껏 기쁨을 누리면서 레알 마드리드 진영으로 되돌아갔다.

우주는 레알 마드리드 진영으로 걸어가다 그 중앙선 부근에 섰다. 이젠 발렌시아가 레알 마드리드를 쫓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고, 우주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레알 마드리드의 11명이 아니라 그 11명을 상대하는 입장이었다. 이 골에 발렌시아 사람들이 조급해지는만큼, 우주도 조급해졌다.

전혀 레알 마드리드라는 소속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발렌시아라는 소속감이 더 강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 작품 후기 ============================

이 소설 속에서 케이로즈 감독은 10년 뒤 이란 대표팀을 이끌던 중 대한민국 대표팀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던 도중 대한민국 감독을 조롱하는 인터뷰와 조롱의 뜻을 담은 티셔츠를 입습니다.

그러다 이제 막 프로에 데뷔한 20살 한국 대표 선수에게 주먹 감자를 얻어맞는만큼 치욕스러운 경기를 하게 됩니다. 이 선수는 과연 누구일까요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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