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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42화 (42/82)

42화

레알 마드리드는 여름 이적 시장에서 세르히오 라모스, 호비뉴, 밥티스타등을 영입했다. 이적 시장에서의 행보를 보면 우주도 답답했다. 완성적인 선수들이 즐비한 팀에 이런 공격적인 선수들을 영입하는 건 정말로 중요하지 않다. 우주는 이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졌다. 레알 마드리드와 재계약을 맺었지만 이미 신뢰를 잃은지 오래였다.

직전 시즌에 안첼로티의 밀란처럼 워낙에 탄탄한 팀에 몸을 담은 터라 의구심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레알 마드리드는 밀란처럼 균형 있는 스쿼드가 아니었고, 밀란에 몸을 담고 왔던 우주가 보기에 레알 마드리드는 비정상적인 팀으로 보였다. 안첼로티가 지도하는 밀란은 몇 년에 걸쳐 최고의 수비 조직력을 구축했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델 보스케 이후로 여러 차례 감독을 바꾼 레알 마드리드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게 더 신기했다.

[호나우딩요오오오!!!]

[오오오!!!]

[골!!! 골!!! 고오오올!!! 골!!!]

팀은 11라운드까지 7승 4패를 거뒀다. 리그 우승을 노리는 팀이 전반기가 끝나기도 전에 4패를 거뒀다면 리그 우승은 힘든 게 자명했다.

그런 와중에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펼쳐진 엘 클라시코에서 호나우딩요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에게 치욕을 안겨다 줬다. 호나우딩요만 그런 게 아니라 에투, 그 작디 작은 메시한테도 완전 당했다. 경기 전까지만 해도 호비뉴와 메시의 라이벌 구도가 있었지만, 우주가 피치에서 직접 본 두 선수를 비교해보자면 메시 쪽이 월등히 더 나았다. 호비뉴가 아무리 같은 팀이라 하더라도 비교를 굳이 하자면 메시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다시 호나우딩요오!!!]

리그 12라운드에서 만난 바르셀로나는 강한 팀이었다. 특별히 흠 잡을 곳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호나우딩요와 에투, 메시가 있는 공격진은 강력했다. 단지 호나우딩요를 막지 못한 수비수들만의 탓을 할 게 아니라 애초에 선수단 구성에 따라 바르셀로나를 이기기 어려운 전술적 구조를 갖고 경기에 나선 터였다.

[아아, 호나우딩요에게 기립박수하는 홈팬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홈팬들이 똥 씹은 표정으로 호나우딩요에게 마지못해 기립박수를 해주었다. 호나우딩요에게 기립박수를 해준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이고, 실질적 의미로는 바르셀로나한테 박살나는 팀에게 야유를 보내는 것이었다. 피치에 있던 우주는 그 분위기를 직감했다.

[호비뉴의 긴 패스! 오! 김우주!]

[뛰어나군요!]

[김우주가 경기 종료 직전 만회골 만들어냅니다! 3대1!]

경기 종료 직전에는 우주가 몸을 날리는 다이빙 헤더슛으로 만회골을 만들었다. 호비뉴의 긴 패스에서 비롯된 헤더슛이었다. 승부를 다시 돌리기에 어려웠지만 경기 내내 뛰던 호나우두 대신 경기장에 들어간지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득점을 올렸다는 건, 득점력 자체만으로는 이 시기의 호나우두에 완연히 뒤처지는 게 아니란 걸 증명하는 바였다.

레알 마드리드 홈팬들도 알고 있었다. 호나우두가 잠시라도 부진할 때면 우주를 경기에 내세워야 한다는 여론도 생겼다.

그러나 우주는 매 경기 교체 출전만 해도 경기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컸다. 전에 비해 선발 출전하는 경기도 많아지고 선발 출전하지 않더라도 교체로 경기에 투입되니 경기 감각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월드컵을 앞둔 선수에게 있어 소속팀에서의 체력 관리와 경기력 유지는 매우 중요했고, 호나우두와의 경쟁 체제는 오히려 우주에게 큰 도움이 되어줬다. 체력 부담도 줄이면서 경기력도 여전히 유지하는 것은 대한민국 대표팀에 호재였다.

사실 우주는 이제 호나우두가 크게 두렵지 않았다. 공격수에게 가장 중요한 득점력만 놓고 보면 이제는 비등비등했다. 사람들은 시즌 도중 새로 선임된 로페즈 카로 감독이 우주를 기용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나타냈지만 우주의 위상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우주는 여전히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것에 큰 감흥이 없었고, 시즌이 끝나면 팀을 떠날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속내를 안에만 꼭꼭 담아두고 시즌을 보냈다.

우주는 A매치 기간이면 펄펄 날았다. 하얀 유니폼을 입는 것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뛰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아시아 국가대표 팀들 가운데서 우주를 막을 수 있는 팀은 없었고, 우주는 대표팀 감독이 몇 번이고 바뀌어도 항상 전형의 맨 꼭대기에 위치하며 득점을 올렸다.

‘월드컵이 김우주를 기다린다.’

외신들은 2006 월드컵에서 주목할 선수들로 우주를 꼽았다. 우주가 기록하고 있는 월드컵 7골은 아시아 공격수 중 누구도 해내지 못한 업적이었다. 경쟁 대상으로는 호나우두와 클로제가 꼽혔다. 호나우두는 월드컵 통산 최다 득점 기록에 근접한 사내였고, 클로제도 마찬가지였다. 우주는 그러한 선수들과 동급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차붐조차도. 유럽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경기에서도 2골이나 기록했으니 이 시점에서 우주는 이미 아시아 역대 최고 공격수였다.

2006년으로 넘어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월드컵을 준비했다. 다른 선수들은 시즌을 치르느라 여유가 없지만 우주에겐 벌써부터 2006 월드컵이 시작되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은 토고, 프랑스, 스위스와 같은 조에 배정되었다.

“살살하지. 얼마나 잘하려고 그렇게 열심히야.”

지단은 우주의 훈련량을 보고 염려하는 척, 그렇게 말했다. 지단으로서는 우주가 월드컵만을 기다리고 있는 의중을 이미 읽고 있었다. 상대팀 공격수로 마주해야 하니 분명 우주가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나름 지단도 견제를 하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지단에게 견제를 받는다,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견제를 받는다는 생각에 영광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금방 설렘은 가라앉았다.

이제 그런 현상에 익숙해져 있었다. 상대 선수들에게 요주의 선수로 꼽히고, 만나서 영광이란 말을 듣고.

우주는 자신이 최고 수준의 공격수라는 걸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할 필요도 없으면서 이를 인정하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레알 마드리드 부동의 주전은 아니지만, 부동의 주전이 아니라 해서 라울이나 호나우두보다 적은 골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그게 중요했다. 공격수는 득점을 책임지는 역할이니까.

최고 수준의 공격수라는 평가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언제나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평가들은 우주를 멈춰서게 만들기 보다는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딛게 만들었다. 그 평가가 계속 이어지도록.

우주는 대한민국을 떠나 아시아 역대 최고 수준의 공격수로서, 유럽 최고 수준의 공격수로서 빛나기 위해 노력했다. 팀 훈련에서도 지각 한 번 하지 않았고 팀 훈련이 끝난다 하더라도 개인 훈련으로 시간을 보냈다. 개인 훈련에서는 기본적인 볼 트래핑 훈련부터 다시 했다. 그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기초적인 능력부터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선수로 거듭나기 위함이다. 김우주의 축구 인생에서 이런 적은 없었을 정도로 훈련으로만 시간을 보냈다. 월드컵을 통해 가장 찬란한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

[김우주가 공 잡고 있습니다. 김우주, 김우주. 여전히... 슛! 골! 골! 골!]

[또 들어가네요!]

[김우주의 해트트릭!]

리그 34라운드. 레알 마드리드는 오사수나와 3위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고, 시즌 막판까지 이 순위라도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이제부터의 경기가 모두 중요했다. 우주는 말라가와의 34라운드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한 골은 페널티 킥, 나머지 두 골은 모두 패스를 받고 한 차례 상대 수비수를 제친 뒤의 슛팅으로 만든 수준 높은 골이었다. 훈련량을 늘린 덕을 톡톡히 보는 것 같아 어쩐지 뿌듯했다.

[그의 득점력은 상당합니다.]

[대한민국으로서는 이 선수를 활용하는 게 이번 월드컵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홈경기였기에 해트트릭 이후엔 열광적인 홈팬들의 응원을 한 몸에 받았다. 이번 시즌이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있기에 그 응원을 즐겼다.

월드컵은 2달 남짓 남아 있었고,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일주일 뒤에는 생일인만큼 곧 마드리드로 입국하는 노을과 함께 생일도 즐겁게 보낼 예정이었다. 모든 게 완벽하고 순조로웠다. 계획한 모든 게 현실로 실현되고 있었다. 이제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월드컵만이 남아 있었다.

[베컴, 공 잡고 전방을 바라봅니다. 길게 패스 넘겨주는데요. 김우주가 공을 향해 움직입니다.]

베컴의 패스가 수비라인 앞에서부터 날아왔다. 직감상 이대로 달리면 수비수보다 먼저 공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주는 수비수들 뒤로 떨어지는 공을 쫓았다. 한 골 더 넣을 생각이었다.

[김우주... 오, 그가 무릎을 잡고 쓰러집니다.]

공을 쫓아가자 상체만 앞으로 쏠려 잔디 위에서 구르게 되었다. 그라운드에 걸음을 딛는 순간 무릎에서 뭔가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일어날 수 없었다. 부상이 왔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아프다는 느낌보다는 부상에 대한 염려가 더 컸다. 경기는 중단되었고, 우주는 들것에 실려 나갔다.

경기장을 떠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부상에 대한 염려만 남아 있었다. 아픈 건 중요하지 않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 결과조차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 다리의 고통과 함께 하는 걱정들이 태산이었다. 다리의 통증은 걷지만 않으면 심하지도 않았다. 월드컵까지는 단 2달 정도만이 남아 있을 뿐인데, 재활으로 치료될 수 있을까.

“이 부상은.”

재활 센터로 가서 검진을 받는 동안 수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재활을 한다면 몇 주일까, 혹 몸을 혹사해서라도 월드컵에 뛸 수 있을까. 혹사라면 익숙하다. 앞으로의 영광을 담보로 하는 혹사라면 해볼만 했다. 2006 독일 월드컵은 김우주에게 그런 의미였다.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십자 인대가 완전히 파열 되었으며.”

우주의 무릎을 살펴본 박사는 10분째 비슷한 이야기를 돌려 말하고 있었다. 우주는 답답해졌다. 다리가 얼마나 다쳤는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월드컵 기간 동안 이 다리가 움직일 수 있느냐다.

“재활로 회복할 수 없고.”

인내심의 한계가 왔을 때 박사가 드디어 진단 결과를 내렸다. 그로서는, 우주의 심리 상태를 배려했던 것이었다.

“반드시 수술을 해야 하며 회복에 최소 5개월이 걸립니다. 월드컵은 출전할 수 없습니다.”

그와 동시에 누구보다 빠르게 막을 열었던 김우주의 2006 독일 월드컵은, 월드컵 개막도 전에 막을 내렸다.

*

잠이 오지 않았다. 노을은 울다 지쳐서 잠든 상태였다. 침대에서 일어난 우주는 목발을 짚으며 발코니로 나갔다. 특별히 어떤 생각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침실로 다시 돌아가면 노을이 깰까 싶어 목발을 짚은 채로 가만히 서있었다. 목발이 없다면 제대로 걸어 다닐 수도 없는 지금 현실에 자조적인 웃음을 한 번 흘렸다.

우주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축구 경기를 보는 것 외에는 별로 사용하지도 않아 먼지가 쌓여있는 컴퓨터였지만 우주의 심정을 아는지 평소와 다르게 빠르게 실행되었다. 컴퓨터를 켜서 가장 먼저 한 것은 한국 포털 사이트로 가보는 것이었다.

우주의 부상 사실에 대한 기사로 사이트가 도배되어 있었다. 그들은 좌절, 절망, 그런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었다. 지금 우주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은 그렇게 쉽게 내보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어떤 존재들을 원망할 겨를도 없었다.

“하.”

포항 스틸러스, 베르더 브레멘, 발렌시아, AC 밀란, 레알 마드리드, 그리고 대한민국. 우주는 예전 기억들을 떠올리며 자신을 응원하는 글들을 살펴보았다. 김우주라는 선수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정말 진심으로 우주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아프긴 했지만 그들이 너무도 고마웠다. 이 인간적인 좌절에 공감해주려는 노력만 해도 너무도 고마워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팬클럽 게시판에 심정을 담은 글을 정리해서 올려보기로 했다. 이 심정을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있기엔 너무도 답답했다.

‘대신 울어준 당신 고맙습니다.’

키보드로 글자를 한 글자씩 치는데 왜 눈이 반응하는지, 눈이 가려웠다. 그러다가 눈물 한 방울이 키보드 위로 톡 떨어진 뒤에야 우주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 희망도 사라졌습니다.’

앞이 뿌옇게 변했다. 이젠 어떤 말을 쓰고 있는지, 스스로도 몰랐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기에 좌절하지 않겠습니다.’

단 몇 마디를 적어놨을 뿐인데 가슴이 아팠다. 눈물이 자꾸 흘렀다. 그런데도 눈물을 닦지 않았다. 눈물이라도 마음껏 흘리고 싶었다. 글을 올리고 나서는 눈물이 한꺼번에 나왔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인생을 바라지는 않았다. 이미 정상의 위치에 있는데 평범함을 갈구하는 건 이 위치를 위해 땀흘리는 이들에 대한 기만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순탄한 인생을 바라는 게 죄는 아니었다. 우주는 자신이 걷는 모든 길이 순탄하길 바랐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그래서 언제 한 번은 찾아올지 모르는 아픔에 대비를 해야 했음에도 계속 마음이 아팠다. 적어도 그 아픔이 지금은 아닐 거라고 여겼다. 축구인생에서 이렇게 노력했던 적이 없으니까 노력이 배신할 리 없다고 여기면서.

최선을 다했어, 넌 최고야, 그런 말로는 다리가 정상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엉엉 울었다. 그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울지 마.”

노을의 앞에서 우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별 수 없었다. 이미 주체할 정도의 감정이 아니었다.

노을은 우주가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깬 듯 했다. 살며시 다가와서 울고 있는 우주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울지 마 오빠. 내가 옆에 있을게요. 계속 옆에 있을게요. 그러니까 울지 마요 제발...”

그 밤 내내 노을의 품에 안겨서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한껏 아껴두었던 설움은 끝내 멈추지 않는 눈물이 되었다.

============================ 작품 후기 ============================

전 딱히 김우주의 멘탈이 약하다고 생각지는 않았는뎀 ㅇㅅㅇ그런 감정을 느끼더라도 경기를 잘 치를 수만 있다면 멘탈이 약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품고 있는 속내에 대한 표현을 너무 적나라하게 했을 뿐. 그 감정들이 어떤 문제에 대한 계기가 되지 않았다면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죠.

멘탈이 약한 건 최현이라고 해야 맞겠죠 ㅇㅅㅇ 그것도 따지고 보면 약한 게 아닌가 ㅇㅅㅇ어쨌든 글의 시점으로 2009년이 되면 그 분이 나오신다능!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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