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동점골을 만들긴 했지만 감각이 너무 떨어져 있었다. 볼 터치를 할 때마다 전과 다르게 자연스러운 느낌을 가져오긴 힘들었다. 우루과이 수비수들은 우주가 공을 잡을 때마다 막으려고 안간힘이었다. 그들이 제 아무리 체력적으로 열세인 선수들이라지만 그걸 투혼으로써 극복해내고 있었다.
[연장으로 갑니다. 김우주가 자신의 월드컵 통산 8번째 골을 기록하면서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경기는 이렇게 연장전으로 갑니다.]
[자신이 월드컵에서 넣은 골이 거의 교체로 투입되었을 때 들어간 골들이죠.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어요.]
[중요한 순간마다 한 건씩 해주는 김우주. 월드컵은 이런 김우주의 모습을 기다려왔습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도 16강전에서 극적인 골을 만들었던 김우주, 평행이론처럼 오늘 경기에서도 극적인 동점골을 기록했습니다.]
2대2 스코어로 경기는 연장전까지 이어졌다. 우주는 침착하게 대한민국 선수들을 독려했다. 2002년에 이탈리아를 이긴 것처럼 오늘 경기도 이길 수 있다. 후반 종료 직전 허용한 동점골이기에 저들은 기세가 꺾였다.
[계속해서 상대 선수 괴롭히는 박지성!]
[네 좋아요!]
2002년의 현장에 함께 했던 이영표나 박지성, 차두리와 같은 선수들은 자신감에 차있었다. 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김우주가 박스 앞에서 공 잡습니다. 그대로 슈우웃!!!]
[슛!!!]
[...높았습니다!]
[그래도 아주 위협적이었죠!]
우주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들처럼 좋은 경기력은 보여줄 수 없었다. 박주영과의 호흡도 잘 맞아 떨어지지 않았고, 킥 감각도 너무도 나빴다. 동점골이 들어갔기에 망정이지 사실은 그것조차도 발에 제대로 맞지 않았던 것을 억지로 우겨 넣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감각도 돌아오지 않았고. 슛은 시도하는 족족 골문 밖으로 멀리 벗어났다.
[이렇게 연장전이 끝납니다. 경기는 승부차기로 갑니다.]
120분까지 승부가 이어졌다. 이제 승자는 승부차기로 가려지게 됐다. 앞서가는 골을 2번이나 만들었던 우루과이가 손해를 봤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극적인 경기가 되었고, 이제 대한민국은 다시 월드컵에서 기적을 준비하는 입장에 놓였다.
“우주가 마지막에 차자.”
허정무 감독은 우주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키커의 순서를 정했다. 우주가 약간은 떨떠름하게 쳐다보고 있자 허정무 감독이 다시 물었다.
“자신 없어?”
후배들 앞에서 받은 그 질문에 대놓고 아니라고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주는 자신이 무조건 5번째 키커가 되겠다고 했다.
지금은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컨디션이 너무도 좋지 않아 자신감이 약간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가장 중요한 5번째 키커가 되는 일은 부담스러웠다.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16강전, 이제 승부차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움츠러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우주는 팀 승리를 위해서 선수들 앞으로 나섰다. 크게 손뼉을 치며 시선을 모았고, 할 수 있다고 소리치며 대표팀 선수들의 의욕을 돋궜다.이왕 이렇게 된 거 멋있게 승리를 확정지을 생각이었다. 2002년 홍명보가 그랬던 것처럼. 대표팀 선수들은 우주가 5번째 키커라는 것에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들은 신중하게 페널티 스폿까지 걸어갔다. 우주는 대한민국 선수들과 중앙선 위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어린 선수들에게 응원을 보냈다. 8년 전의 그 날이 떠오르는 오늘이었다.
[골! 기성용 성공했습니다!]
[네! 아주 잘했어요!]
대한민국 선수들이 차는 공은 연이어 골망을 흔들었다. 꼭 연습 때 골을 성공시키듯이 아주 가벼웠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바니까지 성공시킵니다. 4대4.]
[이렇게 팽팽하네요.]
대한민국과 우루과이는 치열했던 경기 양상을 승부차기까지 이어갔다. 승부차기에서도 두 팀은 4번째 키커까지 모두 킥을 성공시켰다.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전쟁터와도 같았다.
[이제 대한민국의 5번째 키커는 김우주입니다.]
우주도 어린 나이에 이런 긴장감을 안고 싸웠다. 다만 그곳은 대한민국 땅 위에서 치렀던 전쟁이었고, 이곳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중압감을 이겨내고 골을 성공한 어린 선수들이 자랑스러웠다. 아마 5번째 키커인 자신의 존재만을 믿고 킥을 찼던 탓이리라. 우주는 그리 생각하며 꼭 골을 넣어 보이겠다고 다짐하며 휘슬을 기다렸다.
부부젤라 소리가 정신을 어지럽혔다. 호흡 하나조차 중요한 지금의 가장 거대한 방해꾼이다. 그러나 정신만 집중한다면 그마저도 소용없다. 우주는 정신을 공 하나에 집중했다. 경기가 펼쳐질 때면 이 11m 거리에서 골을 성공시키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
공을 차기 위해 디딤발을 놓는 순간 균형을 잃었다. 빗물에 젖은 잔디에 미끄러져 균형이 뒤로 쏠렸다. 우주는 엉덩방아를 찧다시피 하면서 공을 차냈다. 순간 환호성이 커졌다.
[...아...]
우주가 찬 공은 골대 옆으로 훌쩍 빗나갔다. 우루과이 응원단이 소리 높여 환호했고, 대한민국 응원단은 침묵했다.
우주는 넘어졌던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중앙선으로 돌아갔다. 원래는 킥을 성공시킨 뒤에 정성룡 골키퍼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두가 성공시킨 페널티 킥, 가장 믿음직스럽던 우주만이 실패했다.
[우루과이의 5번째 키커는 디에고 포를란입니다.]
[우루과이의 입장에선 우리나라의 김우주 선수만큼의 중요성을 갖고 있는 선수라고 할 수 있겠죠.]
우루과이의 5번째 키커는 같은 79년생 선수인 디에고 포를란이었다. 우루과이도 저 선수만을 믿고 지금껏 골을 성공시켜왔던 것이다. 우주는 그가 제발 킥을 실패하길 바랐다. 옆에 있는 동료들은 굳어진 표정을 짓고 또 다시 기적이 일어나길 기다렸다.
[포를란!]
[네! 막을 수 있어요!]
[...아...]
[...포를란 선수...]
[디에고 포를란이 골을 성공시킵니다... 우루과이가 8강전에 진출합니다...]
서로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대한민국 선수들이 마지막 힘을 잃고 주저앉았다. 우리도 기적을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 탈진 직전까지 뛰어다녔지만 결국 이제 버틸 수가 없게 되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잘했어, 너무 수고했어, 내가 부족했어, 미안해. 우주는 대표팀 선수들에게 그런 말을 건넸지만 어떤 대답도 들을 수는 없었다. 이번 대회 내내 벤치를 지키고 있던 황은후도 거의 울먹이는 표정이었고, 항상 밝던 차두리는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다들 충격에 제 정신이 아니었다.
무슨 정신으로 숙소에 돌아왔던 것일까. 우주는 어느 순간 숙소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이제 바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구나.
우주가 방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짐을 싸는 일도, 노을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일도 아니었다. 욕실로 들어가 욕실 문을 굳게 잠그고 샤워기를 튼 뒤 누구도 모르게 눈물을 쏟아내는 일이었다.
내가 바라던 월드컵은 이게 아닌데. 내가 간절히 원하던 월드컵의 마지막은 이게 아니었는데.
크나큰 죄책감이 밀려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버스에서 아무 말도 못하던 후배들이 떠올랐다. 후배들은 너무도 잘해주었다. 기대와 찬사를 받을만한 경기들을 펼쳤다. 모두 열심히 했고, 그 결과는 기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기적을 일축시킨 건 바로 자기 자신, 우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표현은 못해도 그런 생각을 한 번쯤 했을 것이다.
화려하게 장식하자던 마지막 국가대표 대회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우주는 4년 전보다 더 비참한 마음이었다.
“링딩동~ 링딩동~ 링디기디기디기 딩딩딩~”
경기 다음날부터 황은후는 전형적인 막내의 역할에 충실했다. 여전히 눈치 없는 척 숙소에서 소란스럽게 굴었다. 샤이니니 뭐니 하는 요즘 가수들 노래랑 춤을 따라하며 선배들 기분 풀어주기에 열심히였다. 그 정성에 많은 선배들이 기분을 풀었다.
우주만은 그럴 수 없었다. 선배로서 다른 후배들의 앞길을 막은 것만 같았다. 약간의 죄책감에 시달리니 여전히 몸상태가 나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우주는 부상을 이유로 대표팀의 16강 축하 행사 일정을 모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지었다. 대한민국은 16강보다 더 높은 곳까지 갈 수 있던 팀이고, 그런 기회를 날린 건 본인이란 자책감이 너무도 커 국민의 축하를 받고 싶지 않았다.
2010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 해단식이 열리는 인천 공항엔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원정 첫 16강의 업적을 달성한 대표팀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해단식을 위해서 특별히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해단식 자리에는 축하 현수막까지 걸려 있었다.
우주는 선수들 중 맨 마지막으로 자리를 잡고 섰다. 어서 이 해단식이 끝났으면 했다. 우주가 본격적인 해단식이 시작되기 전에 약간의 권태가 느껴지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많은 인파들 사이로 몇몇이 튀어나왔다.
“후배들 앞길 막은 김우주! 이제 대표팀에서 물러나라!”
우주의 앞쪽으로 엿사탕이 날아왔다. 당황스러웠다.
“앞길 창창한 후배들 엿 먹였으니 너도 엿 먹어라!”
엿사탕을 던지던 괴한들은 곧 경호원들에게 제지되었다. 월드컵 대표팀을 환영하려던 인파는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월드컵 결과에 대한 생각이 모두 그 괴한들과 같지는 않았다.
주위 선수들이 우주를 걱정했다. 우주는 가만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국가대표팀을 위해 그동안 헌신했다. 소속팀에서 한창 물오른 경기력을 보일 때에도 체력 부담을 받아들이면서 A대표에 합류해 경기를 치렀다. 아니, 그 전부터 혹사를 참아왔다. 십자인대가 박살날 정도로 뛰었다. 집으로 돌아갈 동안 그 생각만 했다.
노을도 울면서 우주에게 전화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너무해도 정말 너무하다고. 노을을 달래며 우주는 지금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지만, 사실 가장 심란했다. 노을의 생각과 같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노을과 은솔이 머물고 있는 부모님 집에 도착했다. 부모님 집은 담벼락을 갖고 있는 단독 주택집이었다.
‘개발 김우주 꺼져라’
부모님 집 담벼락에는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렇게 낙서가 되어 있었다. 우주는 분노했다.
어릴 때부터 몸을 담궈 온 대표팀인데 한 번의 실수로 후배들의 앞길을 막았으니 이제 꺼지란다. 그게 몸이 박살나도 좋다는 기세로 뛰어온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이었다. 진통제라는 이름으로 달고 뛰었던 태극마크는 이제 고통으로 되돌아왔다.
무엇보다도, 지금 자신의 고통에 가족까지 고통스러워 하는 건 싫었다. 부모님도, 아내도, 딸도. 이런 자신 때문에 사람들에게 시달릴 그 상황이 너무 미칠 것 같았다.
이제 물러날 때였다. 그렇게도 원한다면, 물러날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제 그나마 남아있던 미련조차도 사라져버렸다.
우주는 결심했다. 김우주의 태극마크는 이제 끝이다. 더 이상의 고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