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최현의 멋진 선제골! 대한민국이 벨기에 상대로 앞서가고 있습니다!]
아주 멋지게 해냈다. 우주는 선제골으로 더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아예 긴장을 늘어뜨리는 것도 아니지만 이 경기는 즐길 수 있었다. 월드컵 경기에서 절박함보다는 즐거움으로 경기를 치르는 건 큰 행운이다. 벨기에도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나섰겠지만 이젠 얘기가 다르다.
대한민국은 골득실 차이로 조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 경기는 비기기만 해도 대한민국이 조 1위가 된다. 조 1위는 16강에 진출한 미국과 상대한다. 2위는 독일과 상대하게 되며, 독일 쪽의 토너먼트 대진은 강팀만이 포진해 있다. 우승을 노리는 팀이라면 대진이 수월하도록 1위를 노리는 게 맞았다.
[기성용의 패스, 김우주에게 이어집니다.]
[상대의 강한 압박을 피해낼 필요가 있어요.]
대한민국도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이 경기는 그냥 이벤트 경기가 아니다. 그러니 이겨야 한다. 우주는 이 경기를 즐기면서도, 반드시 이겨야 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부담감을 조절하는 건 그 이후의 문제다.
[우측으로 움직이는 선수 보는데요. 반대편 측면으로 돌아섭니다. 다시 우측으로!]
[네! 아주 여유가 있어요!]
우주는 발밑에서 공을 아주 자유롭게 다루며 방향 전환을 자유롭게 했다. 간격을 좁혀오며 압박한 뎀벨레와 드푸르만 무색하게 됐다. 관중들은 우주의 발기술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수준 높은 축구였다.
[콤파니, 베르통언에게 패스하는데요. 이청용이 낚아채면서주고 달립니다!]
베르통언이 패스를 받으면서 터치 미스를 범한 사이에 이청용이 빠르게 공을 낚아채고 중앙선 위에 있는 현에게 패스했다. 현은 공을 잡아낸 뒤 앞을 막는 콤파니를 피해 중앙으로 공을 치고 나갔다.
[찔러주는 패스인데요!!!]
[네!!! 좋아요!!!]
우주는 현이 공을 치고 들어올 때 반 바이텐 옆으로 지나가며 수비 뒷공간을 노렸다. 우주의 움직임까지 파악하던 현은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디딤발 없이 발 바깥쪽으로 공을 빗겨차 아웃프런트 패스를 보냈다. 터치라인 밖으로 날아갈 것 같던 공이 반 바이텐 바로 앞에서 급격히 꺾이며 우주의 앞에 뚝 떨어졌다. 이 엄청난 아웃프런트 패스는 마치 마법과도 같아 보였다.
[아, 오프사이드네요!]
우주가 공을 이어받는 순간 오프사이드 휘슬이 울렸다. 오프사이드 휘슬에 우주가 허탈하게 웃었다.
[아주 좋은 패스였죠!]
아웃프런트 킥은 굉장히 힘들다. 특히나 드리블을 하는 도중 정확한 패스를 줄 때에 아웃프런트 패스는 연결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현은 그런 것 같지가 않았다. 상대 수비수들을 무너뜨릴 기술을 아무렇지 않게 펼쳐보였다.
[미랄라스가 박스 안에서 공 잡아냅니다! 크로스! 하지만 신현성에게 막힙니다!]
괴물 같은 존재감을 자랑하는 루카쿠는 아직 오늘 경기에서도 터지지 않고 있었다. 현성은 루카쿠보다 한 발 앞서는 수비 반응으로 벨기에의 공격을 잘 차단했다.
공격이 풀려도 득점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또한 무의미한 것이다.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벨기에가 좋은 경기를 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수비는 알제리 경기에서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펠라이니, 미랄라스에게 패스.]
중앙에서 공을 잡은 펠라이니가 순간적으로 전진하며 우측에 머물러 있던 미랄라스에게 패스했다. 미랄라스는 드리블을 하지 않고 바로 얼리 크로스를 시도했다. 루카쿠의 머리를 노리는 크로스였다.
김영권은 박스 안에서 움직이던 루카쿠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고 놓쳐버렸다. 크로스 또한 길목에서 차단할 수 없게 감겨 날아드는 크로스였고, 김영권이 크로스를 지나쳐 보내자 루카쿠가 육중한 몸을 던지며 헤더슛을 시도했다.
[위험해요...! 아... 실점합니다.]
루카쿠의 체중이 실린 헤더슛은 절묘하게 골문 오른쪽 구석을 갈랐다. 안도감에 의해 벨기에 응원단이 신나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곧 동점골을 만들었다.
루카쿠는 카메라 앞으로 가서 뭐라고 크게 소리쳤다. 벨기에 선수들도 동점골에 기뻐하며 루카쿠 주위로 몰려들었다.
우주는 벨기에 선수들이 모이는 사이에 대한민국 선수들의 분위기를 정돈했다. 물론 단순한 공격에 당하긴 했지만 그로 인해 나왔던 실수조차도 단순했던 것이다. 이건 집중력을 갖고 경기에 임한다면 충분히 다시 나오지 않을 실수다. 우주는 선수들에게 박수를 치며 더 열심히 하자고 소리쳤다. 실점 상황에 대한 아쉬움도 원망도 묻어나오지 않는 가벼운 말투였다.
[베르통언이 전진 패스 시도합니다만 기성용이 전진하면서 막아냅니다.]
기성용은 앞선 2경기에 출전하지 않은 탓에 많이 뛸 수 있는 체력 상태를 갖고 있었다. 부상으로 몸 상태가 많이 떨어져 있기는 하나 이번 경기에선 꽤나 괜찮은 모습이었다. 많은 활동량으로써 경기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공을 가로챈 기성용은 펠라이니가 달려들자 바로 발을 뻗어 공을 툭 밀어내며 현에게 패스했다. 현은 우측으로 움직이면서 기성용의 패스를 받았다. 베르통언이 공을 뺏기 위해 현에게 달려왔다. 드리블이 자유로운 현에게 드리블 공간을 내주지 않기 위한 선택으로 보였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너무 급했다. 현은 자리를 지키지 않고 달려나온 베르통언의 뒷공간을 정확히 봤다. 현은 베르통언의 옆으로 공을 길게 쳐냈고, 저만치 앞으로 굴러가는 공을 전속력으로 쫓았다.
현은 엄청난 속도를 내며 벨기에의 오른쪽 측면을 허물었다. 관중들도 현의 속도에 흥분하며 환호했다.
[최현이 오른쪽에서 돌파합니다!]
길게 쳐낸 공을 엄청난 속도로 따라잡은 순간, 콤파니가 앞을 막았다. 콤파니는 옆으로 걸으며 현을 어떻게든 막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주말의 EPL 경기를 즐겨 보는 이들은 저번 시즌에 한 번 이런 장면이 일어났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 땐 현이 요란한 바디 페인팅과 스텝 오버로 콤파니의 수비를 벗겨냈다. 그들이 그 장면을 기억해내는 사이 현이 콤파니를 제쳤다. 똑같은 방식으로.
[네! 돌파!]
[올라가야죠!!!]
[크로스 올라갑니다!!!]
골문 앞으로 움직이는 우주가 가까운 포스트로 달려들며 현의 짧은 크로스를 노렸다. 반 바이텐은 우주의 뒤에 있어 우주를 방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쿠르트와는 집중하며 우주의 헤더슛이 날아올 방향을 짐작했다. 아무래도 이 경험 많은 공격수가 역동작을 노리고 가까운 포스트로 붙여놓는 헤더슛을 시도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 쿠르트와 정면입니다!]
예상대로 가까운 포스트로 붙여놓는 헤더슛이었다. 쿠르트와는 가까운 포스트로 미리 움직인 덕에 서서 공을 잡아냈다.
[아주 좋았던 헤딩슛이었는데요! 아쉽습니다 김우주!]
[그러나 만들어 갔던 과정이 상당히 매끄러웠죠! 적은 공격 숫자로도 슛을 만들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에게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단 거고, 계속 기회가 이어질 수 있다는 거에요!]
[월드컵 12번째 골을 노렸었는데요!]
우주는 현에게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린 뒤에 쿠르트와에게도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려주었다. 이미 같은 팀에 뛰면서 이 골키퍼에 대한 능력은 체감하고 있었다.
[1대1 동점이지만 우리가 벨기에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어내고 있습니다. 미랄라스에게 한 번에 연결됩니다.]
베르통언은 왼쪽에서 공을 잡아내고 직선 패스로 단번에 미랄라스에게 공을 연결해 주었다. 미랄라스는 부드러운 드리블로 공을 지켜내고 중앙에서 올라오는 드푸르에게 패스했다. 드푸르는 바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펠라이니에게 연결, 박주호가 다가오자 펠라이니는 공격에 가담한 반 덴 보레에게 공을 내줬다.
[반 덴 보레 올려주는데요!]
크로스가 올라오자 김승규가 재빨리 달려나와 루카쿠보다 위에서 공을 주먹으로 쳐냈다. 루카쿠의 높은 타점의 헤더슛을 노린 크로스는 체공 시간이 길기에 이런 대처가 좋았다. 우주는 김승규의 대처에 박수를 보냈다. 1골을 내주긴 했지만 오늘 수비진은 상당히 괜찮았다.
[벨기에의 스로인, 베르통언이 던집니다.]
스로인을 하게 된 베르통언이 박스 안으로 공을 던져주었다. 펠라이니와 루카쿠가 한껏 몸으로 대한민국 선수들을 밀어냈지만 지금 페널티 박스엔 8명의 대한민국 선수들이 모여 있었다. 장신 공격수에게 2명씩 붙은 대한민국은 결국 그들에게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다. 떨어지는 공은 현성이 머리로 걷어냈고, 재차 떨어지는 공을 이청용이 달려나가며 잡아냈다. 이제 역습이었다.
[이청용이 바로 김우주를 봤습니다!]
우주가 수비 뒷공간을 노리며 뛰어가자 콤파니와 반 바이텐이 우주보다 앞서서 수비 위치로 돌아갔다. 이청용은 하프발리 패스로 우주를 향해 패스를 보냈다. 우주는 수비수 둘을 등지고 날아오는 공을 가슴으로 받아냈다. 공이 높게 떠오르는 사이 뒤에서 콤파니가 바싹 다가왔다.
지금 우주의 앞을 막는 건 두 명의 수비수 뿐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급작스러운 전개에 전혀 정돈되지 않은 상태였다.
우주는 뒤로 붙어온 콤파니를 직접 속이기로 했다. 왼쪽으로 돌아설 듯 몸을 기울였다가 바로 오른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돌아서는 탄력으로 바로 속도를 올리며 치고 나갔다. 콤파니가 손으로 우주의 유니폼을 잡아 끌었지만 우주는 바로 뿌리쳤다.
그 앞을 자세를 한껏 낮춘 반 바이텐이 막았다. 이런 상황을 대비하고 미리 자세를 잡고 있던 반 바이텐은 콤파니를 완전히 벗겨낸 우주를 직접 상대했다.우주의 드리블은 길지 않았다. 반 바이텐이 침착하지 못하고 우주의 드리블을 막기 위해 공에 달려들었지만 반 바이텐의 생각보다 우주의 속도가 빨랐다. 태클 타이밍이었지만 반 바이텐은 우주에게 발을 뻗지 못했다. 반 바이텐이 우주의 앞을 막아서는 그 순간, 우주가 반 바이텐의 다리 사이로 공을 통과시켰다.
[...네! 김우주! 제쳐냈습니다!!!]
[기회에요!!!]
반 바이텐이 뒤로 돌아선 동작이 느린 반면에 우주는 여전히 공을 쫓는 속도가 빨랐다. 우주는 순식간에 콤파니와 반 바이텐을 제쳐내고 벨기에 골문을 향해 달렸다.
[침착하게 해야 합니다!]
[해내야 돼요!!!]
최현만큼 빠른 속도도 강소중만큼의 스킬도 없지만 우주가 유럽에서 몇 년 동안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린 것은 모든 능력이 평균 이상이란 점에 있었다. 우주는 득점력으로 인정받지만 드리블이 약한 선수가 전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의 드리블은 상대 수비수만 생각하지 않을 뿐이지 우주도 분명히 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콤파니와 반 바이텐이 우주를 막아내지 못하자 골문을 지키던 쿠르트와가 달려나와야 했다. 우주는 슛 각도를 잡고 쿠르트와의 옆으로 지나가는 슛을 보냈다. 패스를 하듯 정확한 인프런트 킥은 잔디 위를 쏜살같이 훑고 지나가며 골문 오른쪽 하단을 파고 들었다. 골이었다.
뒤에서 전속력으로 달려온 현이 이 모습을 보고 펄쩍 펄쩍 뛰어올랐다. 벤치에 있던 은후는 다른 선수들과 함께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벤치 앞까지 달려나갔다.
[골!!!!]
[고오올!!!!]
스코어 2대1을 만드는 득점이었다. 우주는 득점에 기뻐하는 대한민국 응원단 앞으로 가면서 두 팔을 활짝 펼쳤다.
[김우주의 통산 월드컵 12번째 골! 기록에 바짝 다가섭니다!]
[얼마나 대단한 선수입니까! 은퇴를 앞두고 있으면서도 전혀 기량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벨기에 상대로 대한민국이 2대1로 앞서고 있습니다! 조 1위가 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모두가 우주의 골에 기뻐하고 환호하고 있을 때 벤치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소중은 문득 벨기에 벤치 쪽을 둘러봤다. 아자르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아자르뿐 아니라 다른 주전 선수들도 워밍업을 준비했다.
소중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벨기에는 조 2위를 피하기 위해 후반전에 사력을 다할 것으로 보였다. 그럼 이쪽에서도 대응책을 준비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