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온 킹-76화 (76/82)

76화

축구 경기를 좌우하는 분위기라는 것,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지금 이렇게 느껴지는 게 분위기다. 독일이 1골은 먼저 허용했지만 곧바로 반격에 성공해 동점을 만들었고, 경기를 볼수록 초조해지는 쪽은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독일 선수들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은 대회 내내 그래왔듯이 조직력으로 상대팀을 위축시켰다.

독일은 조직력만이 전부인 팀이 아니다. 선수들의 개인 기량만으로도 대한민국을 압도할 수 있었다.

[필립 람이 가운데로 들어오면서 드리블, 바로 전진 패스합니다!]

[막아야죠!]

[김영권! 클로제 공을 잘 뺏어냈습니다!]

[상대 공격수들의 움직임에 미리 대처할 생각을 해야죠! 잘 해줬어요!]

[측면 터치라인까지 공 몰고 가서, 아, 독일의 스로인입니다.]

페널티 박스에서 클로제가 공을 잡을 때 김영권이 바로 공을 차단했다. 클로제를 비롯한 주위 선수들이 바로 수비 태세로 전환하며 주위 선수들의 패스길을 막아버리자 김영권은 빈 공간으로 피하기 위해 측면의 터치라인으로 갔고, 볼 터치의 실수로 라인 밖으로 공을 보내버리고 말았다.

코너 플래그 앞에서의 스로인에 클로제가 서둘러 공을 집어들었다. 김영권은 아직 위치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크라머가 공을 받기 위해 클로제의 앞으로 달려왔고, 클로제는 얼른 공을 던져주었다.

[크라머가 공 잡습니다!]

[막아줘야죠!]

현성은 구자철과 함께 크라머를 막아냈다. 크라머가 가지고 있는 공을 가로채며 달려나가는 순간 현성의 어깨와 크라머의 머리가 강하게 충돌했다.

크라머가 머리를 붙잡고 쓰러졌다. 현성이 공을 멀리 보내고는 크라머 쪽으로 연신 고개를 돌렸다. 부상인 것 같았다.

[케디라 대신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었던 크라머 선수인데요.]

공을 돌리던 독일 선수들은 의료팀을 부르기 위해 공을 라인 밖으로 멀리 차냈다. 곧 의료팀이 들어와 크라머의 상태를 살폈다. 그 자리에 쓰러져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던 크라머는 의료팀이 들어와서야 얼굴을 들었다. 정신이 없는 표정이었다. 독일 벤치 쪽에서도 분주해졌다.

[케디라와 크로스와 슈바인슈타이거를 내세우면서 무시무시한 조직력을 자랑했던 독일인데요.]

[크라머 선수는 23살이거든요. 어린 선수고, 크로스 선수도 24살인데요. 크로스와 슈바인슈타이거는 같은 팀에 있었기에 호흡이 잘 맞죠. 여기에 케디라 선수 말고도 크라머 선수 같은 자원이 있다는 것이, 독일의 이번 대회 선전의 기반이 될 수 있었죠.]

[네, 포지션별로 약점이 없는 선수를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는 독일입니다.]

결국 크라머가 일어나서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힘없는 걸음이었다. 불의의 부상으로 피치에 새로운 선수가 들어올 지도 몰랐다. 대한민국 벤치 쪽에서도 독일의 선수 교체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일단 크라머 선수는 피치로 들어왔습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크라머가 피치로 돌아왔다. 전술적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였다.

[오늘은 케디라가 없기 때문에 내려와서 플레이하는 크로스입니다. 대신 크라머가 전진 배치되어 있는데요. 수비진에서 전진 패스, 끊어내는 한미르!]

슈바인슈타이거 쪽으로 패스가 올 때 미르가 빠르게 움직여 슬라이딩 태클로 패스를 차단했다. 공은 은후 쪽으로 굴러갔다. 은후가 공 잡을 때 슈바인슈타이거가 재빨리 앞을 막아버렸고, 은후는 전방으로 움직이는 소중과 현을 보며 공을 멈춰세웠다. 그리고는 왼쪽으로 돌아서서 공격에 나서는 손흥민에게 패스했다. 손흥민은 공을 잡고 람의 앞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공 잡는 손흥민.]

은후가 페널티 박스 쪽으로 움직이면서 슈바인슈타이거와 크로스의 시선을 끌었다. 그 때 미르가 전진했다. 손흥민은 미르에게 패스를 보냈다.

[공 잡는 한미르.]

크라머의 옆을 지나면서 패스를 받은 미르는 페널티 박스를 보며 빠르게 드리블했다. 현이 중앙으로 움직이는 대신 우측면에서 멈춰 있었고, 미르는 현에게 공을 밀어주었다. 현이 공을 받아내자 회베데스가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현은 발 아래로 공을 멈춰 세우고 크라머를 맞이했다. 회베데스가 앞으로 다가오자 현은 오른발 바깥쪽으로 공을 밀어낼 듯 자세를 취했다. 오른발으로 공을 쳐내지 않고 지면에 내딛었던 현은 왼쪽으로 몸의 균형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왼발 바깥쪽으로 공을 밀어내며 회베데스를 속였다.

[네! 최현!]

회베데스를 제쳐냄과 동시에 크로스가 달려왔다. 현은 회베데스의 수비를 벗겨내고 반대편 포스트 방향을 확인한 뒤 바로 왼발로 감아차는 슛을 시도했다.

[그대로 슈우우웃!!!]

슛은 꽤 날카롭게 휘어져 골문으로 향했다. 노이어가 슛에 빠르게 반응하며 몸을 던졌다.

[아!!! 노이어 골키퍼 선방에 막힙니다!!!]

[아!!! 아주 멋진 슛이었는데요!!!]

[최현의 감각적인 왼발 슛팅! 노이어 골키퍼에 막혔습니다!]

노이어가 골대 밖으로 공을 쳐내자 경기장에 탄식의 소리가 울렸다. 현이 짜증을 내며 입술을 깨물었다. 노이어는 큰 소리로 수비진을 질책했다. 홍명보 감독은 코칭 스태프와 함께 연신 박수를 보내주었다.

[강소중이 코너킥 올려줍니다!]

[올라가야죠!]

[걷어내는 독일!]

코너킥과 같은 세트 플레이 상황에선 독일이 앞섰다. 이런 부분은 딱히 월등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상 독일을 이기기 힘들었다. 독일은 신체적으로 대한민국에 앞선 팀이었다. 코너킥이나 프리킥 상황의 수비시에는 집중적으로 한 명을 맡아 막아내는 형식이었기에, 대한민국 선수들이 세트 플레이에서 득점을 노리기는 힘들었다.

[황은후가 노이어 골키퍼에게, 노이어 골키퍼는 길게 처리합니다.]

여전히 독일이 주도권을 잡는 형세였다. 대한민국도 압박을 통해 맞불을 놓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경기 시간이 지날수록 전체적인 라인을 내리며 역습을 노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간혹 독일 수비들이 공을 잡을 때는 은후가 활발히 압박으로 실수를 유도하긴 했다. 노이어가 공을 잡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은후는 노이어를 향해서도 멈추지 않고 달려갔다.

[길게 넘어온 공, 신현성이 나오면서 공중전 펼쳤고요. 길게 넘어간 공 훔멜스가 처리합니다.]

현성이 머리로 재차 독일 진영으로 공을 되돌려 보냈지만 소중이 이기기엔 훔멜스가 너무도 강했다. 훔멜스는 날아온 공을 머리로 받아냈다. 훔멜스의 머리를 거쳐 떨어지는 공은 크로스가 기다렸고, 크로스는 뒤에서 달려오는 구자철을 의식하고 또 훔멜스에게 헤더 패스를 보냈다.

[아!!! 뒤로 빠졌는데요!!!]

그 공이 훔멜스의 키를 훌쩍 넘고 제 위치로 돌아오던 은후에게 연결되었다. 크로스가 헤더 패스를 보낸 것이 은후에게 연결되었으니 오프사이드도 아니었다. 완벽한 패스가 된 셈이다. 은후는 재빨리 독일 골문 방향으로 돌아서서 공을 몰고 나갔다.

[자 황은후!!!]

[완벽한 기회에요!!!]

서둘러 훔멜스와 보아텡이 은후에게 달려들었다. 은후는 골문을 향해 달려나오는 노이어를 보고 생각의 정리를 끝냈다. 강한 슛으로 골망을 흔든다. 은후의 오른발이 공을 골대 쪽으로 보냈다.

[아!!!!!]

[아!!!! 이걸!!!]

환호하던 대한민국 관중들이 숨을 멈췄다. 은후가 찬 공은 골대 옆으로 벗어났다. 슛을 시도했던 은후도 빗나가는 공을 보고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황은후가 이런 기회를...!]

뒤에서 골을 생각하고 있던 소중은 어이없다는 듯 머리를 쓸어내렸다. 현은 잔디를 걷어차며 짜증을 냈다.

여태까지 득점 기회가 무산되어도 박수를 보내며 격려하던 홍명보 감독도 말을 잃고 마른침만 삼켰다. 득점을 기대하고 일어났던 벤치의 선수들도 말없이 자리에 앉아 바닥만 살폈다.

‘부담감을 못 이겨낸 거야.’

우주는 은후의 입장에서 알 수 있었다. 너무 완벽한 기회였던 게 탈이었다. 월드컵 결승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맞이했다는 것도 큰 부담이었을 거고, 그 부담감에 판단이 흐려져 제대로 된 선택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아마 공이 자신에게 온 순간부터는 그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을 거다.

[그래도 한 번 더 기회가 분명히 올거거든요! 황은후 선수는 여기서 무너져선 안됩니다!]

은후의 표정은 그 때부터 실의에 젖어 있었다. 움직이고는 있으나 독일의 해가 되지도,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 움직임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훔멜스, 천천히 올라오는데요. 필립 람에게 연결합니다.]

독일은 완전히 분업화 된 움직임으로 점유율을 높였다. 중앙에서 공을 잡고 있는 동안 람이 높은 위치까지 가면 람에게 공을 연결하는 식으로 공격 활로를 활용했다. 람은 거리낌없이 크로스를 올렸다.

[뮐러!]

박스 안쪽으로 높이 올라오던 공은 클로제의 키를 넘겨 근처에 있던 뮐러의 발에 떨어졌다. 뮐러는 거기서도 침착하게 공을 멈춰 세웠다. 클로제가 움직여 뮐러가 멈춰세운 공을 받아냈다. 마치 이런 패턴의 플레이를 미리 염두하고 있던 사람들 같았다. 완벽하게 공격이 맞물려 돌아갔다.

[슛!!!]

클로제가 가까이 붙어오는 현성을 의식하고 재빨리 왼발로 슛을 날렸다. 골문 낮은 구석으로 향하는 슛이었다.

[김승규!!! 막아내는 김승규 골키퍼입니다!!!]

[아주 잘 막았어요!!!]

완벽히 방향을 구석으로 꺾어내진 못했던 슛이었기에 김승규가 빠르게 반응하면서 몸을 눕히는 것으로 슛을 방어했다. 현성은 주위 미드필더들에게 크로스가 올라올 때면 좀 더 박스 쪽으로 붙으라고 손짓했다. 크로스가 올라온 순간 박스 주위에 독일 선수들이 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만약 공을 페널티 박스 밖으로 걷어냈다고 하더라도 독일 선수들이 재차 공을 가져갔을 확률이 높다. 독일이 오늘 크로스를 자주 올려보내면서도 주도권을 높일 수 있는 이유다.

[크라머 선수가 빠지게 됩니다. 오히려 공격수인 쉬얼레를 투입하는 독일의 뢰브 감독입니다. 이렇게 되면 포메이션 자체가 바뀔 수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쉬얼레는 앞쪽의 측면 공격수이기 때문에 말이죠. 이렇게 되면, 지켜봐야 할 것 같은데요.]

크라머가 더는 경기를 뛸 수 없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곧바로 선수 교체가 진행되었고, 이번 대회 3골을 기록한 쉬얼레가 투입되었다. 이제 독일은 약간의 변화를 줬다. 측면에서 움직이던 외질이 중앙으로 자리를 바꾸고, 쉬얼레와 뮐러가 좌우측을 맡고 움직이는 전형이었다. 여전히 중앙엔 슈바인슈타이거와 크로스가 있었다.

우주는 독일의 무게감이 딱히 줄었다고 생각지 않았다. 마치 기계 부품을 교체하는 것과 같았다. 고장난 기계 부품을 더 좋은 성능의 부품으로 교체하는 것과도 같달까. 그들의 축구는 그 어떤 변화에도 어긋나지 않았다.

[독일이 패스 끊어냅니다.]

현성이 한 번에 전방의 은후에게로 연결되는 패스를 시도했지만 훔멜스가 차단했다. 훔멜스는 보아텡과 공을 차분히 주고 받으며 은후의 수비를 떨쳐냈다. 그리고는 오른쪽으로 공을 보냈다. 자신의 위치보다 내려온 외질이 공을 받아내고 전방으로 움직였다. 손흥민이 앞을 막아버리자 바로 옆에 있는 슈바인슈타이거에게 패스하는 것으로 소유권을 유지했다. 슈바인슈타이거는 오른쪽에서 한참 올라온 람에게 패스했다.

람은 상황을 파악하고 중앙의 토니 크로스에게 패스했다. 크로스가 공을 받아내자 대한민국 선수들이 주위로 몰려들었다. 크로스의 패스를 의식한 압박 수비였다.

크로스는 공을 받아내고 옆에 있는 외질에게 공을 넘겼다. 그리고는 재빨리 박스를 향해 뛰어들어갔다. 외질이 원 터치 패스로 페널티 박스 앞에 있는 클로제에게 공을 굴려주었고, 여전히 크로스는 박스 안으로 파고들었다.

클로제는 발로 슬쩍 공의 방향만 바꿔 박스 안으로 들어온 크로스에게 원 터치 패스를 보냈다. 현성이 클로제를 막는 동안에도 크로스를 저지하는 수비수가 없었기에 크로스는 골키퍼와 1대1 상황을 맞이했다.

[아! 크로스!]

[위험한데요!!!]

김승규가 달려나왔지만 크로스는 가볍게 발 안쪽으로 공을 밀어찼다. 잔디 위를 가르며 굴러간 공이 골망을 뒤흔들었다.

[...골입니다... 토니 크로스.]

독일 응원단 쪽에서는 난리가 났다. 독일 국기를 흔들기도 하고 세차게 소리 질렀다. 아무튼 지금 상황에선 뭘하든 기쁨의 표출이었다. 뢰브 감독을 비롯해서 독일의 벤치도 기뻐하며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크로스는 유니폼에 새겨진 엠블럼에 키스하며 응원석 앞으로 달렸다. 독일 선수들은 그 주위로 모여들었다.

[전반 35분. 토니 크로스의 골로 독일이 2대1로 앞서갑니다.]

[...수비진이 들어오는 선수를 잘 봤어야 하는데요. 우리가 공간을 내주지 않으니까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려고 앞에서부터 뭔가를 만들려고 한단 말이에요. 우리가 독일 선수들 움직임을 다 보고 있는데 이렇게 놓쳐서 실점을... 정말 아쉽습니다.]

홍명보 감독이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손뼉을 치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이미 초조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얻어맞은 역전골은 어떤 의미도 되지 못했다.

[필립 람이 오른쪽으로 패스. 클로제! 박주호가 막아냅니다. 걷어내는 순간 클로제 맞고 나갑니다. 대한민국의 스로인.]

역전골은 독일에게나 의미있는 것이었다. 독일 선수들은 역전골에도 누구하나 기세를 늦추지 않았다. 제일 나이가 많은 클로제도 마찬가지로, 활동의 폭을 넓히며 공격을 시도했다.

[박주호가 길게 공 던집니다.]

은후가 자리에서 많이 내려와 박주호가 던진 공을 받아냈다. 그리고 바로 미르에게 패스했다. 미르는 전방으로 공을 띄워보냈다. 현이 가슴으로 공을 받아내고 전방으로 돌아섰다. 그 순간 3명의 선수가 현의 주위로 모였다.

[최현이 빠르게 전진합니다!]

현은 빠르게 중앙선을 넘어가며 독일 진영으로 달렸다. 왼쪽에는 손흥민이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훔멜스가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할 때 현은 손흥민에게 공을 밀어줬다. 손흥민이 중앙으로 공을 몰고 들어왔고, 현은 손흥민과 교차하며 왼쪽 측면으로 빠졌다. 오른쪽에 은후가 달리고 있었다. 은후의 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손흥민!!!]

[오른쪽!!! 오른쪽 봐야죠!!!]

천천히 공을 몰고 들어가는 손흥민은 주위 3명의 선수 때문에 뒤로 돌아서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슛을 시도할 공간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라 하면 은후에게 패스를 주는 것 밖에 없지만 재빨리 붙어온 훔멜스가 패스길 마저도 막아버렸다.

[아!!! 수비에 맞고 굴절되면서 나갑니다!]

훔멜스 다리 사이로 기어코 패스를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훔멜스의 다리에 맞고 공이 골라인 밖으로 넘어갔다. 아쉬운 공격 기회에 대한민국 응원단이 안타까워했다.

[대한민국의 코너킥입니다.]

소중은 코너킥을 준비하면서 숨을 골랐다. 코너킥을 준비하는 동안 독일을 연호하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상당히 집중력이 높고 반응하는 속도가 다른 오늘 경기이기 때문에, 우리 팀도 코너킥에서 골을 만들 수 있습니다.]

[공 보내는 강소중! 노이어 골키퍼가 뛰어올라 잡아냅니다.]

골문 앞으로 보낸 공은 노이어에게 걸렸다. 노이어는 연신 두리번거리며 선수들 위치를 파악하더니 왼쪽의 회베데스에게 공을 굴려주었다.

[측면 쪽에서 독일.]

회베데스는 쉬얼레에게 라인을 타고 들어가는 패스를 보냈다. 쉬얼레는 공을 잡고 여유롭게 움직이더니 측면으로 빠진 뮐러에게 패스를 보냈다. 현성이 의욕적으로 뮐러에게 달려들었다.

[아!]

[이러면 안되죠!]

공이 뮐러에게 연결되기 직전 아예 차단하기 위해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했던 현성이지만, 현성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현성은 공을 차단하지 못했고 공과 뮐러를 그대로 통과시켰다.

[돌아 들어가는 뮐러!]

뮐러가 자유롭게 놓이며 페널티 박스 측면선까지 도달했다. 골문 앞으로는 클로제가 달리고 있었고, 박스 중앙으로 쉬얼레가 달려들고 있었다.

뮐러는 쉬얼레에게 공을 굴려주었다. 박스 안쪽으로 달리던 쉬얼레는 마음 놓고 오른발 안쪽으로 공을 밀어때렸다. 공이 쭉 뻗어나가며 골문 왼쪽 상단에 꽂혔다. 김승규는 강한 슛을 막아내지 못하고 실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아... 들어갑니다...!]

[아...!]

[쉬얼레의 추가골입니다. 3대1...]

쉬얼레가 독일 벤치쪽으로 달렸고, 독일의 선수들은 모두 쉬얼레 주위로 모여들었다. 독일 응원단은 광분하며 소리쳤다.

[대한민국 선수들이 너무 독일 선수들을 놓치고 있어요... 배후 공간으로 움직이는 선수가 아니라 이렇게 앞에서부터 침투하는 선수들을 놓친다는 건... 아...]

살아온 일생을 축구와 함께 보내는 동안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능력이라 하면, 이 분위기를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클로제 같은 선수라면 느끼고 있을 거다. 선제골 이후 3골을 연이어 허용한 팀의 상실감을. 독일은 경기력으로써 대한민국의 승리를 박탈했고, 대한민국 선수들은 힘을 잃었다.

[한미르. 구자철에게 공... 아, 쉬얼레가 차단합니다. 오른쪽으로 연결. 토마스 뮐러.]

공격 전개할 때 미르의 패스가 쉬얼레에게 바로 차단되었다. 대한민국 진영에서 가로챈 공이었기에 독일은 빠른 역습을 진행했다. 오른쪽에서 공을 몰고 들어가던 뮐러가 중앙의 클로제에게 패스했고, 클로제는 수비수들을 등지며 박스 안에서 공을 잡아놓고 동료들을 기다렸다.

[아! 지금!]

[...아!]

[페널티 킥 선언됩니다...!]

[지금 저기서 발을 걸 필요가 없었는데...! 아...!]

클로제의 바로 뒤에 있던 김영권이 클로제를 걸어 넘어뜨렸다. 바로 페널티 킥이 선언되었고, 대한민국 선수들이 아무리 항의해 봐도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독일 응원단은 기뻐하며 소리쳤다.

[...전반 종료 직전 독일이 페널티 킥 기회 맞이합니다.]

우주는 워밍업을 하면서 경기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페널티 킥이 선언된 순간엔 가슴이 내려앉았다.

[...클로제가 키커로 준비합니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역사상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하고 있는 클로제. 이제 17번째 득점을 올릴 기회를 잡았습니다.]

키커는 클로제였다. 독일 쪽에선 우승도 가까워졌으니 아예 클로제가 기록을 달성하도록 기회를 마련해준 듯 싶었다.

사람들이 우주를 바라봤다. 우주는 그 때 클로제의 발을 봤다. 저 발이 공을 잘못 맞추길 바랐다. 단지 기록에 대한 욕심 때문은 아니었다. 만약 이 골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반등할 수 있다. 그런 희망이 있었다.

[휘슬 울립니다. 클로제가 공에 다가갑니다.]

[막아야죠!]

클로제는 약간 긴장한 듯 보였다. 하지만 노련한 공격수에게 이 정도 부담감이란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휘슬이 울린 순간 잠깐 멈칫하던 클로제가 이내 공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김승규!]

골문을 지키던 외로운 골키퍼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상대의 킥 방향을 읽는다는 생각은 버렸다. 어차피 어설프게 방향을 읽으려 했다가는 되려 킥 동작에 속을 뿐이었다. 김승규는 클로제의 킥을 보고 몸을 날렸다.

왼쪽으로 날아온 슛이었다. 김승규는 포기하지 않고 손을 뻗었다. 손 끝에 공이 스쳐지나간 감촉이 느껴졌다.

[...골대!]

공은 김승규의 손에 막혀 방향이 꺾였다. 방향이 꺾인 공은 그대로 골대를 강하게 때려놓고 튀어나왔다.

[다시!]

골대 맞고 튀어나온 공을 향해 뮐러가 달려들었다. 뮐러가 누구보다 먼저 공을 향해 몸을 던졌다.

[아아...!!]

그러나 그보다 먼저 누군가가 공을 쳐냈다. 공은 골대 옆으로 벗어났고, 뮐러는 공을 쳐낸 선수와 뒹굴었다.

[걷어내는 강소중!!!]

[막았어요!!!]

[김승규가 쳐내고 강소중이 밀어냈습니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대한민국!!!]

소중은 함께 엉켜 넘어진 뮐러를 옆으로 밀어낸 뒤 헤어밴드를 고쳐 썼다. 그 때까지도 침몰 직전의 분위기를 느끼던 대한민국 응원단이 다시 소리쳤다.

[클로제는 17번째 골 도전에 실패합니다! 아직은 김우주 선수와 동점입니다!]

[2골차가 큰 점수차이긴 하지만 극복할 수 있거든요! 아직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게 중요합니다!]

약간의 당혹감. 독일 선수들의 표정엔 그러한 감정들이 서려있었다. 그러나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독일 선수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플레이에 열중했다.

[전반전! 종료됩니다. 3대1로 독일이 앞선 채로 전반전이 종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반전이 종료되었다. 독일 선수들은 승리감을 느끼고 있었으나 내색하지 않고 드레싱룸으로 갔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약간의 침울함을 갖고 드레싱룸으로 갔다. 선제골 이후의 3골을 연이어 내주며 역전을 허용한 것은 꽤나 충격이었다. 전반 종료 직전의 페널티 킥 방어에 성공한 것이 분위기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었지만 3골을 내주는 과정에서의 실수들이 자꾸 떠올라 선수들 사이에서 상실감으로 전염되었다.

홍명보 감독과 코칭 스태프들은 전반전 동안 잘했다며 격려해 주었다. 이 기분에서 호되게 지적이라도 받았다가는 정말 내려앉을 것 같았다. 현은 분한 마음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은후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경기를 하려고 결승전을 그렇게 기다렸던 게 아니다.

전반전이 끝난 뒤의 10분은 약간의 좌절감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경기를 하러 가면서는 다시 해보자는 생각을 앞세우고 걸어나갔다. 첫 골을 먼저 만든 건 대한민국이었다. 그러한 장면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해가 지고 있습니다. 이제 양 팀 선수들이 후반전을 위해 경기장에 들어섭니다.]

뢰브 감독은 분명히 전반전 시작 전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벤치에 돌아왔다. 3대1, 전반전의 스코어는 기적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독일은 이제 후반전에 더 수비적으로 나설 것이다. 한 치의 방심도 없다. 기적의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던 불안감도 이제 선수들 사이에서 사라졌다. 페널티 킥 실축은 분명한 실수이긴 하지만, 그게 모든 걸 되돌리진 않는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여기에 있다. 마누엘 노이어, 필립 람, 토니 크로스, 메수트 외질, 월드컵 최다 득점을 하고 있는 클로제까지.

‘김우주.’

출전 가능성이 불확실하던 김우주가 결국엔 피치로 올라가고 있었다. 뢰브는 우주의 뒷모습에 질문을 던졌다. 과연 이 경기에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세계 최고의 수준과 조직력을 갖추고 있는 독일을 상대로 말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김우주 선수가 투입됩니다! 후반 시작 직전 피치로 올라가는 김우주!]

[그렇죠! 경험을 바탕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갈 선수가 있어야 했는데! 이제야!]

[클로제와 함께 월드컵 통산 득점 1위의 김우주! 이제 선수 생활 마지막 불꽃을 위해 피치로 돌아옵니다!]

우주는 교체되어 나가는 구자철에게 건네받은 완장을 팔에 둘러매고 천천히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걸어갔다. 막상 월드컵 결승전에 출전한다고 생각하니 긴장도 되었다. 이런 긴장감을 어린 선수들이 버텨내면서 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런 생각까지도 들었다.

하지만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이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다면 여기까지 올라온 의미도 없는 거니까.

우주는 대한민국 선수들과 둥글게 모였다. 잠시 동안 서로의 호흡이나 박동마저도 느껴질만큼 가까이 있었다.

“눈 감고, 세계 최고 선수들을 떠올리자.”

우주가 말을 시작하자 주위의 모든 소음이 이 공간과 분리되는 기분이었다. 선수들은 신비한 기분을 만끽하며 우주의 말대로 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떠올리려 하자 현의 머리에선 먼저 우주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그 다음은 호날두와 같은 선수들이었다. 다른 선수들도 떠올린 선수들은 매한가지였다. 머릿속에 떠오른 세계 최고의 선수들 중엔 지금 상대인 독일 선수들도 있었다.

“만약 우리 팀 선수들이 떠오르지 않았으면, 그게 우리가 지는 이유야.”

특별히 거친 말도 아니었고, 우주가 성을 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한 마디에 숙연해졌다.

월드컵 결승이었다. 독일은 아마 자신들이 세계 최고의 팀이라고 자부하고 있을 게 뻔하다. 그런데 대한민국 선수들부터 자신들이 최고란 생각보단 기적이란 말에 심취해 있었다. 기적이란 말에 취해서 이번에도 기적을 일으켜보자, 그렇게 다짐하고 나왔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경기가 이 모양으로 진행되는 거다. 우린, 여기서 끝나는가 보다. 우리가 너무 멀리 왔나보다. 그런 생각들에 사로잡혀서.

그게 아니다. 여기까지 왔으면 그건 대한민국이 독일처럼 세계 최고의 팀이란 의미다. 우주는 이 월드컵 결승의 의미를 선수들에게 되새겨 주었다.

“우리 목표가 뭐라고?”

“우승!”

항상 경기 전부터 외치던 이 다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밝히는 건 선수들의 몫이다. 선수들이 악에 받친 목소리로 우승을 외쳤다.

그 외침을 끝으로 선수들이 각자의 자리로 갔다. 우주는 완장을 매만지며 앞에 서있는 독일 선수들을 봤다.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 상대가 이런 팀이라서 너무 기뻤다. 이제 앞으로의 시간은 모두 역사에 남을 거다.

============================ 작품 후기 ============================

(월드컵 중계 때문에 브라질 찾은 MBC 중계진과 조우한 space 김)

space : 안녕하세요 ㅇㅅㅇ 형도 잘 지냈어. 지아 아빠도 잘 지냈니.

안 : ㅇㅅㅇ 그래 우주야.

송 : ㅇㅅㅇ 지아 아빠라니.

space : 어쩐 일로 ㅇㅅㅇ

안 : ㅇㅅㅇ

송 : ㅇㅅㅇ 혹시 은퇴 뒤의 진로는 생각했니space : 놀고 먹고 자려고 이미 다 계획 짰는데 ㅇㅅㅇ

안 : 백수 예정이구나 ㅇㅅㅇ

송 : ㅇㅅㅇ

space : ㅇㅅㅇ

안 : ㅇㅅㅇ

송 : 우리랑 함께 가자 ㅇㅅㅇ

space : ㅇㅅㅇ 어딜

안 : 아빠 ㅇㅅㅇ

송 : 어디가 ㅇㅅㅇ

space : ㅇㅅㅇ!!!!

(꿈에서 깸)

space : 후우... 불길한 꿈이었다능... ㅇㅅㅇ... (슈퍼맨이 돌아왔다 애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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