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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78화 (78/82)

78화

쓰러진 은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결국 들것에 실려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잠시 동안 경기장은 침묵 상태였다. 은후가 경기장 밖으로 실려 나가는 시간은 고작 2분도 걸리지 않았다. 우주는 그 2분 동안 무슨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은후가 잘못되진 않을까, 그런 염려로 시간을 보냈다. 상대 선수와의 충돌은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간과할 수 없는 전개였다. 우주는 은후가 경기장 밖으로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다짐했다. 반드시 이대로는 안 끝내겠다고.

[황은후 선수가... 부상으로...]

대한민국 벤치 쪽에서도 바빠졌다. 은후의 대체자로 어떤 선수를 투입해야 할지, 이제 1골 남은 상황에서 공격수가 빠져야 하니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단은 코칭 스태프들이 계속 의견을 주고 받으며 남은 시간 동안의 전술을 구상했다.

[아직은 10명이 싸워야 하는 대한민국.]

[동요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동료 선수의 투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잊어서는 안 됩니다.]

솔직히 이제 와서 월드컵이 무슨 의미가 있었나 싶었다. 2002년에 선수로서 누리기 힘든 영광을 맛봤다. 2006년에 개인적인 이유로 월드컵을 강하게 희망했지만 무산되고는 잠시 아팠지만, 그래도 그 이후에 그럭저럭 괜찮은 선수 생활을 보냈으니 그 월드컵이 치명적인 여운으로 남은 것도 아니었다. 2010년은 기억하기도 싫었다. 2014년, 이제 영광스러운 은퇴만 하면 대한민국의 이번 월드컵도 휴가를 보내면서 즐길 수 있었다.

[기성용이 투입될 준비를 합니다.]

[아, 지금 홍명보 감독은 중원을 강화하는 전략인데요.]

[공격수 황은후가 부상으로 빠지고 기성용이 후방에서 공격진을 받쳐주겠습니다.]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축제에 주인공이 되는 것, 지금의 우주에겐 어떤 의미도 없었다. 우주는 세계 최고가 되는 것에 더 이상 감흥이 없었다. 이제 축구란 굴레에서 벗어나 한참동안 누리지 못해왔던 여유를 즐기고 싶은 생각이었다.

[기성용이 오른쪽의 최현에게, 최현이 공 치고 들어갑니다!]

[그렇죠! 바로 이런 거죠!]

[오른쪽 공간 최현! 회베데스가 최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열정이란 게 뭔지, 메마른 가슴에 끈질기게 살아 있었다. 우주는 비록 호날두나 메시와 같은 세계 최고 선수들이 아니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선수들이 세계 최고였다. 그걸 본인들만 몰랐다.

함께 하고 싶었다. 함께 하면서 너무 즐거웠다.

[최현의 크로스!!!]

사람이 좋았던 기억만 품고 일을 끝맺을 수는 없는 거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자꾸 욕심을 만들었다. 우주에게 어릴 적 형의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이윽고 우주는 형처럼 멋진 리더가 될 수 있었다. 그건 우주가 형처럼 잘나서가 아니었다. 세계 최고인 이 선수들이 자신을 믿고 따라줬기 때문이다.

[헤딩!!! 아!!!]

[아아아!!!]

[김우주의 헤딩슛이 골대 위로 넘어갑니다!!!]

[아쉽네요!!!]

이제부터 이겨야 하는 이유는 중요치 않다. 그저 이겨야 한다. 승리의 목적은 없다. 승리가 목적이다.

[기성용이 내려와서 공 받고 있습니다.]

[한미르 선수가 더 올라가고 있거든요.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무작정 긴 패스로 떨어지는 공을 노리는 그런 전술을 펼칠 확률이 큰데 말이죠.]

분위기는 급격히 대한민국 쪽으로 넘어갔다. 황은후가 빠진 것이 대한민국에게 타격이긴 하지만 그 타격이 치명상은 아니었나 보다. 대한민국의 경기력은 독일을 동요하도록 만들었다. 조그마한 실수들이 나오고 있다. 그 실수들이 결국은 독일의 위기를 만들 수도 있다. 뢰브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괴체가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뢰브는 긴장한 기색으로 서있는 괴체에게 가서 속삭였다. 네가 강소중보다 낫다는 걸 세계에 보여줘라. 챔피언스 리그에서 강소중을 만날 때마다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던 괴체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것이었다.

[클로제가 괴체로 교체됩니다. 이제 클로제의 이번 월드컵은 막을 내렸습니다. 이제 오직 김우주만을 위한 시간이 남았습니다.]

[네. 지금 우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독일을 상대해야 돼요!]

클로제는 관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피치 밖으로 나갔다. 그는 오늘 경기 내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하나도 살려놓지 못했다. 시선은 우주에게로 모였다.

[대한민국 응원단은 마라카냥에서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주는 이 경기에서 최다 득점에 대한 욕심을 완전히 버렸다. 그저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우승만 한다면 그런 기록은 없어도 좋았다.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뛰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에게도 그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다.

[회베데스가 전진하면서 쉬얼레에게 패스!]

[들어오는 선수 막아야 돼요!]

대한민국 입장에선 얄밉게 독일 선수들이 수비진에서 공을 주고 받다 한 번에 공격에 나섰다. 왼쪽에서 공격에 가담한 회베데스는 쉬얼레에게 전진 패스를 밀어주며 공격을 만들어갔다.

[넘어지는 쉬얼레! 박스 안에서 괴체가 공 잡습니다!]

쉬얼레가 드리블 방향을 바꿔놓기 위해 공을 먼저 치고 달려가는 순간 이용에게 발이 걸렸다. 그러나 계속 흐른 공은 재빨리 움직인 괴체가 받아냈다.

현성은 괴체를 저지하기 위해 몸을 바싹 붙였지만 괴체의 균형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사이 넘어져 있던 쉬얼레가 얼른 일어나 다시 박스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골라인 앞에서 공을 지키고 있던 괴체는 바로 쉬얼레에게 패스했다.

[아 쉬얼레!!!]

[막아야죠!!!]

쉬얼레는 원 터치 슛으로 대한민국의 골문을 노렸다. 김승규가 그에 반응하며 손을 뻗었다.

[김승규의 선방!!!]

[네!! 좋아요!!]

김승규의 손에 맞고 튀어나온 공이 재차 쉬얼레 옆으로 떨어졌다. 쉬얼레는 무리해서 슛을 하지 않고 반대편에 있는 외질에게 패스했다.

[외질의 슛!!!]

외질은 지체 없이 바로 슛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미 자리를 되잡은 대한민국 수비진에 걸렸다. 굴절되며 높이 떠오른 공이 현성의 쪽으로 떨어졌고, 현성은 바이시클 킥으로 클리어링했다.

[걷어냅니다!]

박스 바로 앞에서 공을 잡은 기성용이 바로 전진 패스를 보냈다. 중앙에 있던 우주를 스쳐지나간 공은 우주의 앞에서 멈췄다.

[역습! 김우주!!!]

[3명이에요!!!]

소중이 왼쪽에서 달리고 현이 오른쪽에서 달렸다. 중앙선을 넘어서 공을 잡게 된 우주는 왼쪽의 소중에게 패스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아! 보아텡!]

[아!]

그 때 뒤에 있던 보아텡이 다리를 뻗어 우주가 갖고 있는 공을 쳐냈다. 우주와 보아텡은 서로 엉키며 넘어졌고, 공은 주인없이 현이 있는 오른쪽 측면으로 굴러갔다.

[다시! 최현!]

[네! 아직!]

현이 주인없이 흐르는 공을 향해 맹렬히 달렸다. 보아텡이 넘어지며 왼쪽에 있는 소중을 막는 선수가 아무도 없었다. 현은 젖먹던 힘까지 공을 향해 달려가 소중에게로 공을 보냈다.

[아!!!]

[아아아!!!]

[훔멜스의 태클에 걸립니다!]

그러나 현과 마찬가지로 공에 달려들던 훔멜스가 슬라이딩 태클로써 현의 시도를 저지했다. 공은 훔멜스의 다리에 걸려 대한민국 진영 안쪽으로 되돌아갔다.

공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우주가 일어나서 다시 독일 진영 안쪽으로 뛰었다. 훔멜스가 막아낸 공은 다시 미르가 받아냈다. 미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우주의 움직임을 보고 긴 패스를 보냈다. 우주가 훔멜스의 뒤로 달리던 중이었다.

[다시 김우주!!! 가슴으로 받아냅니다!!!]

우주가 공을 받아내고 페널티 박스 안쪽까지 달렸다. 노이어는 우주의 생각보다 빨리 달려나왔다. 가슴 트래핑이 상당히 길었기 때문에 공까지 달려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 노이어 골키퍼!]

[아!!! 역습 상황에서 공격을 아주 잘 만들었는데요!!!]

노이어가 우주보다 한 발 앞서 공을 쳐냈다. 우주는 잔디를 내리치며 아쉬워했다. 방금 상황에서 공에 먼저 다다르기만 했어도 골을 만들 수 있었다.

우주는 흥분하지 않고 숨을 가다듬었다. 이제 시간이 많이 없었다. 대략 10분 정도 남은 시간, 이 시간 동안에 기회가 한 번은 온다. 그 기회란 어쩌면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상대의 아주 미세한 실수일지도 모른다. 그런 실수를 놓치지 않으려면, 극도의 집중력을 갖고 냉철함을 유지해야 했다.

모든 것은 우승을 위해서다. 우주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대한민국의 스로인입니다.]

오른쪽 측면에서의 스로인이었다. 이용이 현에게 공을 던져주었고, 현은 공을 받아놓고 압박을 피해 후방으로 움직였다. 언뜻 박스 안을 보자 우주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옆에는 강소중이 있었고, 박스 밖에서는 미르가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주가 바로 헤더슛을 하지 않아도 떨어지는 공을 노린다면 기회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현은 우주가 있는 박스 쪽으로 공을 감아올렸다. 그런데 그것이 의욕이 앞서 좀 더 강하게 차버리고 말았다.

[크로스!]

훔멜스와 보아텡은 모두 자신들의 사이로 움직이는 우주를 견제하는 상태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 모두 우주에게로 달려들었다. 공이 우주의 위에서 떨어질 때, 세 명의 선수가 공을 향해 뛰어올랐다.

우주는 훔멜스의 헤더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뛰어오른 것이었다. 그런데 공중에서 훔멜스와 보아텡이 서로 얽혀서 둘 다 제대로 공을 처리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건드린 공은 우주의 뒤로 떨어졌고, 높이 솟구쳐 올랐다.

바운드를 본 우주가 반사적으로 공에 다가섰다. 골문을 등진 채였다.

‘넘어지는 사람이 일어나는 법을 알게 되지.’

2002년의 그 날이 떠올랐다. 모두의 염원을 알고 있기에 더 절박했고 간절했던 그 날의 경기. 이기는 게 너무도 익숙했던 우리가 그 해 여름 처음으로 울어야 했던 그 날. 우주는 끝내 불발되었던 마지막 터닝슛을 떠올렸다. 진심인지 농담인진 모르겠지만, 노을이 보고 반했다던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 형편없는 슛.

마치 그 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 것만 같이 느껴져, 우주는 공에 다가서는 순간 다리가 떨렸다.

‘넌 그 방법을 알게 됐다.’

훔멜스와 보아텡은 서로 엉키고 넘어져 우주를 막을 상황이 아니었다. 우주는 공에 천천히 다가섰다. 노이어는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주위 선수들에 더 신경을 썼다. 우주가 골대를 보지도 않았기에 슛을 시도하리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

‘이제 넌 세계 최고의 공격수야.’

우주는 머릿속의 그 음성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 속의 그 음성이 전해주었던 뜻처럼, 우주는 세계 최고가 되었다. 넘어지기도 했고, 일어나는 법도 알았다. 사람이 일생동안 몇 번이고 넘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주는 그 자리에서 극복하는 법을 배워왔다.

그리고 12년 전의 그 날로 돌아간 것만 같은 지금,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세계 최고의 위용을 과시하며.

[터닝슛!!!!]

[슈우우우우웃!!!]

우주는 몸을 완전히 틀어내면서 발리슛을 시도했다. 몸을 완전히 돌려내는 탄력을 이용해 공을 깎아찼기에 공은 순식간에 반대편 포스트를 때리고 골대 안에서 굴렀다.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올 동안, 세계 최고 골키퍼라 불리는 노이어는 시선으로만 공을 쫓을 뿐이었다. 이건, 막을 수 없는 슛이었다.

[고오오오오오오올!!!]

[고오오오올!!!!]

월드컵 통산 17번째 골이었다. 관중석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만 올리던 노을이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노을에게는 그 골이 지금까지 우주가 겪어온 모든 것들을 보상해주는 골처럼 느껴졌다.

[고오오오오오올!!!! 김우주우우우!!!]

[김우주가 해냈어요오오오!!!]

[동점!!! 그리고 이제 세계 기록의 주인이 바뀌는 순간입니다아아!!!]

대한민국 응원단이 하나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그들은 불꽃이 타오르듯 물결쳤고, 불꽃 같이 뜨거운 함성으로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이제 동점이었다. 간절히 응원하던 대한민국의 모두가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 작품 후기 ============================

후기에 오해의 소지가 많아서 ㅇㅅㅇ 후기를 그냥 지웠습니다다른 곳에서 연재를 한다는 건 이 글을 끝마치고 다른 사이트에서 연재를 한다는 의미였어요. 후기를 지웠다 쓰느라 중요한 말을 빼먹고 그대로 올렸었네요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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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신 - 야생화

하얗게 피어난 얼음꽃 하나가

달가운 바람에 얼굴을 내밀어

아무 말 못했던 이름도 몰랐던

지나간 날들에 눈물이 흘러

차가운 바람에 숨어 있다

한줄기 햇살에 몸 녹이다

그렇게 너는 또 한번 내게 온다

좋았던 기억만

그리운 마음만

니가 떠나간 그 길 위에

이렇게 남아 서 있다

잊혀질 만큼만

괜찮을 만큼만

눈물 머금고 기다린 떨림 끝에

다시 나를 피우리라

사랑은 피고 또 지는 타버리는 불꽃빗물에 젖을까 두 눈을 감는다

어리고 작았던 나의 맘에

눈부시게 빛나던 추억 속에

그렇게 너를 또 한번 불러본다

좋았던 기억만

그리운 마음만

니가 떠나간 그 길 위에

이렇게 남아 서 있다

잊혀질 만큼만

괜찮을 만큼만

눈물 머금고 기다린 떨림 끝에

다시 나는

메말라가는 땅 위에

온몸이 타 들어가고

내 손끝에 남은

너의 향기 흩어져 날아가

멀어져 가는 너의 손을

붙잡지 못해 아프다

살아갈 만큼만

미워했던 만큼만

먼 훗날 너를 데려다 줄

그 봄이 오면 그날에 나 피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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