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코우단 영지 점령전-- >
"엑... 뭐?"
"제 직속 호위무사가 되어주세요! 안.. 될까요?"
태현이 대답을 망설이자 그걸 거절로 알아들었는지 마치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 마냥 추욱 처지면서 실망했다는 오오라를 물씬 풍기며 그러면서도 얼굴만은 태현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저 반쯤 울듯한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매우 부담스러웠던 태현은 황급히 거절하고선 그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미네르는 뽈뽈뽈 쫓아오며 집요하게 권유했고 태현은 결국 그 권유를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미네르의 얼굴이 확 밝아지며 마치 아까까지의 모습이 거짓말인 것 처럼 기뻐하며 태현에게 달라붙었다.
"와아~ 라이씨가 제 호위 무사가 되어주신다니 정말 기뻐요!"
그러면서 태현의 손목을 덥석 붙잡고 질질 끌고가는 미네르의 머리와 엉덩이 쪽에 마치 강아지 귀와 꼬리가 달려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만약 실제로 달려있었더라면 격렬하게 흔들고 있었으리라.
결국 어쩔수 없이 태현은 이렇게 미네르의 호위무사가 되어버렸지만 태현은 본질적으로 한 여자만을 바라보기 힘든 나쁜 남자에 가까웠기에 미리 미네르에게 말했다.
"고코우단에는 오래 머무를 생각 없어. 볼일만 보면 다시 떠날거야."
"에헤헤~ 제가 놔드릴거 같나요?"
한바퀴 빙글 돌며 태현을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 모습에 태현은 순간 두근거렸지만 스스로에게 미쳤냐고 되뇌이며 애써 시선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 하면서 걷다보니 곧 고코우단의 관서에 도착했다.
고코우단은 매우 독특한 영지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있는데다가 《대삼림》과 《락 케이브》라는 천혜의 요새를 끼고 있는, 결국 다른 영지에서의 유입도, 유출도 매우 힘든 도시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고코우단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계수를 이용하기 위해 방문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고코우단의 영지민 수도 8개 도시중에서는 두번째로 적었다. 영지의 크기는 가장 작았다. 대신 세계수 유그드라실이라는 존재 덕분에 이 영지는 유지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세계수에 대한 의존도도 높았다.
"여기가 관서?"
"네. 조금 누추하죠?"
고코우단의 관서는 좋게 말해서 허름하고 검소했고, 나쁘게 말하면 누추할 정도였다. 이는 고코우단의 작은 영지와 적은 영지민 수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뭐, 인기 있던걸?"
태현이 능글맞게 웃으며 미네르에게 말했다.
"아읏.. 그런 말씀, 부끄러워요.."
이제 주종관계니까 말을 높혀야하는거 아니냐고 하자 미네르는 오히려 볼을 부풀리며 여태까지 하던대로 안하면 다시 삐질거라고 앙탈을 부려 결국 편하게 말하게 된 태현은 분명 외관상 나이는 자기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존대를 해주는 미네르의 모습에 살짝 점수를 주기로 했다.
태현은 곧 미네르가 준 옷을 입었다. 푸른색 와이셔츠 위에 검은색 조끼를 차고 화려한 검집에 감싸진 검을 구경한 뒤 허리에 찼다. 바지는 활동성 좋은 면바지였으며 신발은 마치 군화(....) 같은 스타일의 부츠였다.
"호위무사라길래 영락없이 갑옷이나 둘러야할 줄 알았는데.."
"제 호위무사니까요."
언제 왔는지 어느새 다가와 서있는 미네르의 복장을 보고 태현은 깜짝 놀랬다. 방금까지 추레하고 너저분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상의에는 핑크빛 블라우스, 하의로는 무릎까지 가리는 순백색의 치마를 입고 신발로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 봤을땐 갈색으로보였던 머리는 햇빛을 받으니 금색으로 반짝이는 듯한 느낌까지 주는 아름다운 여인었던 것이다.
"... 와.. 예뻐.. 왜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그런 너질구레한 복장으로 감추고 있었던 거야?"
"아웃.. 예.. 쁘다니.. 하우우.. 그.. 이 복장으론 던전 돌아다니기는 좀 그렇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와.. 정말 예쁘다. 거짓말 아니야."
태현은 미네르의 모습에 감탄하며 본심을 내뱉자 미네르의 얼굴이 다시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아우우..."
미네르는 부끄러움에 몸만 배배 꼬면서 볼을 붉히고 꺄아꺄아 거리고 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는,
"아우.. 이제 영주로서 일을 하러 가죠!"
"예, 알겠습니다. 제가 모시도록 하죠."
태현이 과장된 동작으로 허리를 굽히자 미네르는 또다시 이러한 과장된 예의가 익숙하지 않은 듯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한 미네르의 모습에 태현은 쿡쿡 웃으면서 미네르의 손을 잡고 나섰다. 미네르도 부끄러워 하면서도 다소곳이 태현의 손을 마주 잡고서는 태현의 리드에 이끌려 다시 관서를 나섰다.
《대삼림》은 그 별명답게 거대한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었으나 저번의 레나가 거주하던 숲과는 달리 제법 밝았다. 높게 솟아 오른 나무들 사이로 새 형 몬스터들이 날아다니며 지저귀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아래쪽에서 자라나는 과일 나무나 꽃 근처에는 벌레형 몬스터로 가득했다.
"으에.. 이런데를 혼자 다녔어?"
"뭐, 이래뵈도 기사니까요."
"그럼 난 필요없겠네, 뭐."
"아아아아아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아읏.."
짓궂게 말하는 태현에게 휘말려 다시 아둥바둥 변명을 하는 미네르가 귀여워서 무심코 태현은 미네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게 마치 비단을 만지는 듯 했다.
"하우.. 라이씨의 손, 커서.. 뭔가 진정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귀까지 붉히고서는 웅얼거리는 미네르의 모습에 무심코 또 귀엽다고 느껴 머리를 이리저리 헝클었다.
"아아앗! 이거 열심히 만진건데! 라이씨 너무해요!"
"하핫, 내가 다시 만져주지."
자기가 헝클어놓고선 다시 자기가 조심스래 메만져주는 라이의 모습에 미네르는 두근두근 대면서도 그저 태현의 손길에 만족하고 있었다.
"뭐, 이정도인가."
"에아.. 뭐 이정도면.. 헤헤헷.."
태현이 만져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만족한 웃음을 지어보내는 미네르를 보면서 태현은 몬스터에 대비해서 골렘을 꺼냈다.
《대삼림》의 몬스터들의 수준도 제법 높았지만, 태현의 몬스터들을 당해낼 바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대삼림》의 최심부. 여태까지의 거대한 나무들은 한 수 접을 정도로 거의 하늘에 닿을 만큼이나 거대한 나무, 《세계수 유그드라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크긴 크네."
"그렇죠? 제가 굳이 고코우단에 온 이유도 쟤 때문이에요!"
다른 데도 몬스터는 많았지만, 세계수 주변은 압도적으로 몬스터의 수가 많았다. 거의 몬스터가 반이고, 나머지 반은 나무들이 서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드글드글 댔다.
"듣자하니 곧 열매가 열린다며? 수확은 어떻게 해?"
"딱히 하지 않아요. 세계수의 열매라고 해서 과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광물에 가깝죠."
"헤에.."
"그래서 카린같은 분들이 세계수의 열매로 그런 전능한 큐브를 만들어 내는거겠죠."
"그렇군. 그건 몰랐는데. 역시 미네르, 아는게 많은걸?"
"치, 칭찬해도 월급은 안올라가니까요?"
갑작스런 칭찬에 미네르는 부끄러워 하면서도 헤실헤실 미소짓고 있었다.
"키야아아아아아악!!"
갑작스레 붉은 빛 비룡이 날아와 포효했다.
그 포효를 듣자 거짓말같이 세계수 주변의 몬스터들이 슬금슬금 사라지기 시작했다.
"? 쟨 뭐야?"
"아아. 레드 와이번이군요. 엘리멘탈인데, 여기 사는 아이는 아니고, 저기 철의 산이라는 곳에서의 보스 몬스터죠.
이맘때쯤 되면 나타난다고 그러더라구요? 여기서 본 적은 처음이네요."
"싸워본적 있어?"
"음.. 철의 산에 광물들 조사하러 갔을 때, 만났는데, 상성이 안좋더라구요. 제 몬스터들은 대부분 벌레형이다 보니, 불의 엘리멘탈이랑은 좀."
"그렇군. 저놈도 세계수의 열매를 노리고 있다 이거군."
"라이씨도?"
"한, 3개쯤? 기념품 삼아."
"하아. 라이씨. 잘들어요? 세계수의 열매란건 말이죠...!"
조잘조잘대며 훈계를 시작하는 미네르를 한 귀로 흘리며 레드 와이번을 지켜보았다.
'공중전에 필요할거같은데. 잡아볼까?'
"그러니까 기념품 정도로 생각하시면.. 그것보다 라이씨? 듣고있어요? 네?"
"으악! 듣고있어. 듣고있어, 그래서 뭐?"
미네르가 태현의 귀를 잡아당기며 소리치자 퍼득 정신이 든 태현은 정신없이 소리쳤다.
"하나도 안들으셨잖아요! 거기 무릎 꿇고 경청하세요!"
"히익..."
도망치려던 태현은 결국 붙잡혀 무릎을 꿇고 미네르의 설교를 꼼짝없이 들을 수 밖에 없었다.
한 30분 쯤 지나자 미네르도 만족했는지
"이쯤이면 라이씨도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 이제 슬슬 돌아가죠. 날이 어두워지고 있으니."
"그... 그러자."
30분동안 무릎을 꿇고 있어서 비틀비틀 대던 태현을 미네르가 옆에서 받쳐주었다.
"정말이지 당신이란 사람은. 어쩔땐 굉장히 듬직한데 이럴땐 참 못났어요."
"크크.. 그게 내 매력이지."
"말이나 못하면! 요 입이 방정이죠?!"
요놈요놈 하면서 미네르가 태현의 입을 때리려하자 슉슉 피하던 태현의 시야에 작고 허름한 사당이 들어왔다.
"저 사당은?"
"아아.. 숲의 여신 세이라 여신의 사당이에요. 정말이지, 정체도 모를 신을 받들다니. 저도 여신에 대해서는 제법 연구해봤지만, 그 실체가 의심되는걸요."
"뭐, 세상은 넓고 이런저런 사람이 있는거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자 곧 관서에 도착했고, 미네르와 가볍게 저녁을 함께 먹었다.
밤에는 호위해줄 필요 없다면서 자유시간을 갖도록 해주자 태현은 우선 카린에게 가보기로 했다.
"아직 손님 받으십니까?"
"이런 밤중에 손님이라니.. 아, 넌..."
카린은 상당히 터프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붉은 색 머리는 난발이며 가슴만을 붕대로 가리고 압박시켜놓은 뒤 상의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고, 하의는 조금은 뻣뻣해보이는 가죽바지를 입은 구릿빛 피부의 여인이었다.
"영주님의 새 호위무사씨 아냐? 하핫, 반갑군, 반가워. 어서 들어와. 밥은 먹었나?"
"네. 미네르랑 같이."
"그럼 술이나 한잔 하지. 어때?"
"저야 좋지요."
"좋아좋아. 그래야 남자답지. 카센! 술자리 하나 봐오거라!"
그러자 저 멀리서 소녀의 목소리로 긍정의 대답이 들렸다.
카린의 방에 앉아기다리자 카린의 축소판인듯 붉은 머리에 나이는 한 10대 중반 쯤 되보이는 소녀가 탁자에 술병 하나와 술잔 두개를 들고 왔다. 카린과는 다르게 아직은 하얀 피부가 돋보였다.
"내 딸 카센이야. 카센, 인사하렴. 이 분은 영주님의 새 호위무사, 어.. 그러고보니 당신 이름이 뭐지?"
"라이입니다. 라이 크로네."
"그래. 라이다. 인사하렴."
"카센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라이씨."
카센은 그러고는 곧 물러났고 카린이 술을 따르더니 태현에게 건넸다.
"그래서, 날 찾아온 용무는?"
"이걸로 큐브를 좀 만들어 주십사 하고."
그러면서 태현은 파이어 오브를 꺼내들었다.
"오? 오브로군. 이건 상당히 귀한 재룐데. 뭘 잡으려는 거지?"
"레드 와이번."
그러자 카린도 약간 놀란듯 잠시 입을 멍하니 벌리더니 크게 웃었다.
"핫핫하! 꿈도 큰 사내로군. 좋아. 내 큐브를 가질 인간이라면 이정도는 되야지. 하지만 파이어 오브로만은 부족해."
"이건 어떻습니까?"
결국 아이스 오브까지 꺼내든 태현의 행동에 카린도 크게 놀랐다.
"아이스 오브까지? 이거라면 만들 수 있을 것 같군. 내일 만들어주지. 일단 지금은 마시자고. 자, 풋풋한 영주님의 새 호위 무사님을 위하여!"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ㅂㄷㅂㄷ 한번 쓰다가 다날려서 급 쓰기 싫어졌었는데.. 카린을 쓰기 위해!
순애를 선택하실 줄이야. 내심 당황했음. 젠장. 익숙하지 않은데.
미네르 순애 탄다고 했지 다른 애들 먹지 말라곤 안했음.1. 카린을 술과 슬쩍 미약을 타서 먹자.2. 안됨. 미네르가 있잖아?
3. 카린만으로 되겠냐? 카센까지 먹고 모녀덮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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