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코우단 영지 점령전-- >
"에이 뭐. 어짜피 세이라 여신 조각도 하나 뿐이고. 다 모으고 난 뒤 와서 먹어도 상관없겠지. 지금은 로아나단에게 집중해야겠다."
태현은 아이린에 대한 생각을 끄고 다시 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이린을 안먹을거라면 루루를 놓아줘야 할텐데.. 흠...'
결국 골칫거리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된 태현은 연신 술만 들이킬 뿐이었다.
레드 와이번을 잡는 모습을 루루에게 들켜버린것부터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지금으로선 큰 균열이 아니지만 루루를 계속 붙잡아놓자니 아이린이 무슨 짓을 할 지 모르겠고 루루를 놓아주자니 루루가 미친척하고 태현에 대해 불어버리면 태현은 그대로 끝이다.
그리고 로아나단. 실버가 시온 령에서 처참하게 실패한 것이 약으로 작용한
듯, 이번 고코우단 점령에는 이를 악물고 준비한 것 같았다. 실버 본인도 여기 있는데다가 간부가 최소 하나. 많으면 간부 총원을 데려왔을 수도 있다. 전작 레지스탕스 1 기준으로 4명이었으니 이번에도 크게 다르진 않을것이다. 즉 네임드 NPC만 5명을 상대하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으으, 머리아파."
고코우단에선 어째 스무스하게 넘어간다 싶더라니 괜히 높은 난이도가 아닌듯 순식간에 꼬여버렸다.
'쉽게 넘어가주진 않겠다 이거지...?'
술잔에 남아있던 술을 원샷으로 털어버리고 답답해진 태현은 바람을 쐬러 계산을 하고 나왔다.
을싸년스러운 밤바람이 태현을 휘감고 지나갔고, 어디선가 귀뚜라미 우는 소리만이 청승맞게 정적을 깨뜨리고 있었다.
찬 밤바람을 쐬자 그나마 숙취와 이런저런 고민으로 머리가 아프던 태현의 머리가 식어가는 느낌을 받았고, 자기 혼자 끙끙대봤자 크게 나아질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아지트로 되돌아갔다.
"어라. 무슨 일이시죠? 그렇게 과음까지 하시고."
"골치 아픈 일이 너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버렸어. 크로우, 너의 조언이 필요하다."
"천천히 말씀해보세요."
태현은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루루와의 일, 아이린의 대처, 로아나단에 대한 대비책 등.
"그러니까, 즉. 루루와는 레드 와이번을 잡을 때 엮였고, 그 루루 때문에 아이린이 속 썩이고, 로아나단은 이미 라이님에 대해 알고 있는데다가 실버까지 와서 고코우단을 노리고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러니 이미 정체가 밝혀진 상태여서 고코우단으로 쳐들어와도 호위무사 라이로서는 싸울 수 없다는거군요? 몬스터도 들켰으니 골렘과 위스프는 사용할 수 없으니 싸운다 하더라도 전력을 다해 싸우지 못한다는거고요. 그런 상태로는 무언가 준비해온 로아나단을 막을 수 없다는 거군요."
"길긴하지만, 전체적으론 맞아."
"그럼, 개인적으로 생각난 전략은 2가지 정도군요."
"오오?!"
태현은 아무리 고민해도 떠오르지 않았던 대책이 그 사이에 2개나 떠올렸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대답을 재촉했다.
"첫째는, 저희도 저희측의 다른 간부들에게 협력을 요청하는겁니다."
"기각."
"그러실줄 알았습니다."
"남의 도움, 그것도 팀원의 도움따위 필요없어. 전공을 뺏길 뿐이야. 그럼 재미가 없지. 두번째는?"
"두번째는, 영주 미네르에게 사실대로 밝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루루의 걱정도 더실거고, 정정당당히 전력으로 미네르의 호위무사 라이로써 싸우실 수 있으니까요."
"..... 흠...."
아직까지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는 전략을 자신만만하게 크로우가 제안하자 태현은 고민에 빠졌다.
아직 미네르가 완전히 자신에게 빠지지 않았는데 섣불리 자신이 레지스탕스라는것을 밝혀도 되는것일까? 태현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태현은 잠이 들었다.
다음날,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계속 끙끙대면서 고민했지만 좋은 해답이 금방 떠오를 리가 없었다.
그렇게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관서로 출근하자 미네르가 오늘은 안늦었다면서 반색하며 기뻐했지만 태현의 표정이 어둡자 미네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라이 씨,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요?"
미네르의 걱정스런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태현은 넌지시 떠보기로 했다.
"아.. 어제 읽은 소설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있었어. 나라면 어땠을까라고."
"무슨 내용이었는데요?"
"응. 한 나라의 왕자가 있었어. 이 왕자는 매우 총명한 왕자였지만 왕의 폭정으로 인해 여기저기서 반란군이 일어났던거야. 하지만 왕자는 그 반란군들을 제압하러 다니던 도중 그 반란군 중 한명과 사랑에 빠져버렸지. 하지만 그 여자는 자신을 거부하는거야. 왕자라고. 그래도 왕자는 끝까지 그 여자를 사랑했어. 그러다보니 반란군들이 제대로 제압되지 않아 결국 그 나라가 망해버리고, 그 왕자는 포로로 잡혔어. 그 순간까지도 왕자는 그 여인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았던거야. 결국 그 정성은 그 여인의 마음을 움직여서 여인의 간청에 의해 해방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둘이 오손도손 살았다는 내용이었어."
"상당히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네요..."
"그래서 생각해봤지. 내가 그 왕자라면 그렇게 그 여인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었을까? 신분의 차이와, 나라에 대한 충심. 그리고 마지막에서는 목숨까지 건 사랑.. 과연 내가 그리 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미네르는 어때?"
"저요..? 그렇네요. 저라도 왕자와 같은 선택을 했을거에요."
"왜?"
"전 제가 하고 싶은 일만을 하기 때문이에요. 그 여인이 나의 모든것을 줘도 아깝지 않은 상대였다면, 전 기꺼이 제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랑을 할거에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미네르를 보면서 태현은 피식 웃었다.
'그래. 내가 언제부터 리스크 따져가며 행동했다고? 배드 엔딩 좀 보면 어때? 지르고 보는거지.'
미네르의 생각을 들은 태현은 결심이 섰다. 타이밍을 보고, 고백할 것이다.
"그럼 미네르, 오늘은 어디로 가는거야?"
"음.. 철의 산으로 가보실까요? 와이번 없어서 안전할 거에요."
"좋아."
오전에 힘을 합쳐 빠르게 서류를 처리하고는 오후에는 철의 산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특별히 점심도 안먹고 미네르가 준비한 수제 샌드위치를 먹으며 마치 소풍에 나온 듯, 평화롭게 미네르와 태현은 햇볕을 즐기며 자연을 만끽하고 있었다.
"미네르. 나, 사실. 고백할게 있어."
"뭔가요?"
"나.. 사실은..."
태현이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말을 이으려는 순간이었다.
"헤헤헤. 이런데 영주님이 계시잖아? 이게 웬 떡이야?"
"이 년만 잡으면 우리의 승진은 따놓은 당상이로구만. 훼훼훼."
"캬캬캬. 우리에게 운이 따르는구만~?"
검은색 조끼를 입은 왼쪽 가슴 부근에 금색으로 선명하게 L 자를 박아넣은 남자 셋이 미네르를 둘러싸고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천박한 말을 내뱉었다.
"반란... 군! L자 표식의 검은색 조끼...! 카림 대륙에서 기승을 부렸다던 로아나단이로군요! 이.. 천박한 작자들..!"
미네르가 허겁지겁 옷매무새도 정돈하며 자신의 큐브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미네르는 상대 로아나단 졸개들이 꺼내들은 몬스터들을 보는 순간 낯빛을 굳힐 수 밖에 없었다.
"불 속성의 엘리멘탈...! 엘리멘탈은 귀할터인데... 어찌...?"
"우리 로아나단에서 새로 개발한 기술이 말이야. 일반 몬스터를 엘리멘탈로 만드는 기술이란 말이지! 물론 일회용이지만 말이야. 부담을 못이기고 뒈져버리더라고."
"그런.. 잔인한...!! 당신들, 그러고도 테이머인가요!!"
"크크크.. 우리는 그저 영지를 정복하기만 하면 되는거야. 몬스터들은 많으니까."
"크으읏...! 다가오지 마요! 라이 씨!.... 라이 씨?"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라이의 모습에 미네르는 의아해하면서 라이를 다급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어이어이, 영주님. 몰랐어? 저 자식은 우리보다 악질이라구?"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라이 씨를 욕하지 말아요!"
세 남자에 둘러싸이고도, 절대적 열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의연한 미네르의 모습은 가히 여장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개를 이 졸개들따위가 알 리 없었다.
"크크크.. 저 자식은 카림 대륙의 왕, 캐롤을 죽인 디가트의 아들이라고! 저 자식 또한 반란군이라고!"
로아나단 졸개들은 코너에 몰린 미네르를 탐하려는 듯 옷을 하나씩 찢어발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태현은 차마 보지 못하고 외면할 수 밖에 없던 순간,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저를 바보로 아시나요!!"
비릿하게 웃는 졸개 1에게 당당하게 맞밭아치는 미네르의 대답에 태현은 깜짝 놀랐다.
"아... 알고 있었어?"
"시온 령에서 도망쳐 온 병사에게 들었어요. 그리고 반란군으로 그리 시끄러웠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건 플로우의 성향상 말도 안되는 일이라구요! 그 정도도 눈치 채지 못할 멍청한 여자로 보셨던건가요..?"
"으으... 크크큭.. 그래. 아니지. 누구보다도 똑똑한 미네르가 그럴리가 없지. 그래서 내가 《락 케이브》에 들어설 때부터 그리도 긴장했던거지. 그래. 전부 알고 있었구나. 그럼, 나도 더이상 망설이지 않으마."
태현의 결심이 서는 순간 태현의 큐브에서부터 크리스탈 드래곤과 골렘을 꺼냈다.
"이.. 이자식..! 팀 유베의 졸개놈이! 우리의 대사를 그르칠 셈이냐!"
"아니, 지금의 난 팀 유베의 간부가 아니야. 난, 미네르의 호위 무사 라이 크로네다."
당황해하던 로아나단 졸개들은 거의 순삭당했고, 엑스트라들의 전용대사인 두고보자~!
라는 진부한 대사를 내뱉으며 도망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흐윽.. 흐윽.. 라이 씨..."
당당하게 맞받아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겁탈당할뻔 했다는 사실이 두려웠는지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미네르의 얼굴을 태현이 부드럽게 닦아주고는 솔직하게 사과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네르. 숨길 생각은 없었어.. 밝힐 수 없었을 뿐이야. 생각을 해봐. 어느 반란군이 기사님에게 자신이 반란군이라는걸 밝히겠어?"
"흑.. 흑... 훌쩍.. 그래도, 그래도오..!"
"미네르 네가 나의 정체를 밝히고 D.
M이나 적혈여제에게 바친다면, 난 기꺼이 너의 선택을 받아들일게. 난, 너를 좋아하게 되버린것 같으니까."
이건 태현의 진심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러한 태현의 말에 미네르는 울먹거리면서 얼굴을 붉히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까 말하려고 했지만, 미네르. 난 사실 반란군이야. 계속 숨겨와서 미안했어."
============================ 작품 후기 ============================미네르의 반응은 과연?
1. 잡았다 요놈!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2. 상관없어요! 사랑에 국경따윈 없으니까!
1은 당연히 예상하시겠지만 배드엔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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