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탕스-36화 (36/235)

< --고코우단 영지 점령전-- >

"큭큭.. 뻔한 시간벌기 작전이지만, 어울려 드리죠. 이런 기회, 몇번 없을 테니까요. 속아드리겠습니다. 덤비시죠."

하인리히는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진듯 이리 말하며 단원들을 뒤로 물렸다.

이로써 태현은 얼추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었다.

가뜩이나 갑작스런 기습인데다가 많은 병사들과 몬스터가 상해서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그건 로아나단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수성하는 쪽이 공성하는 쪽보다 편한것은 사실이다.

또한, 미네르가 북쪽을 정리하고 올 것이다. 저번에 만난 핑크빛 여인 아데루와 실버가 안보이는건 조금 불안했지만 미네르가 질 것이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은 채 눈 앞에 하인리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엽."

하인리히는 가볍게 성벽에서 뛰어내리더니 별다른 무리없이 착지했다.

그 뒤를 두 엘프가 뒤 따라 내려왔다.

"하하핫! 그 《영웅》디가트의 후손과 배틀이라니! 영광입니다!"

"흥. 그렇게 영광이면 애들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고코우단은 내꺼야."

"어휴. 이렇게 꼬리말고 도망갈거면 반란군 왜 했겠습니까? 그냥 이전처럼 수탈당하면서 살겠죠."

"그건 그래. 근데, 너 둘로 되겠어? 나, 넷인데?"

태현의 말에 하인리히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어.. 성함이?"

"라이. 라이 크로넬. 뭐야. 영광이라더니 이름도 몰라?"

"에... 하핫. 뭐. 중요한건 아니죠? 자자, 라이 님. 라이 님은 혹시 저희 사주가 어찌 구성된지 아십니까?"

"알 리가 있냐. 난 우리 팀 구성도 모르는데."

"엑? 크흐흡. 역시 라이 님은 재미있으신 분이로군요. 대화하고 있으면 마치 10년지기와 이야기 하는것 같습니다."

"그럼 친구로써 물러가줄래?"

"에이~ 아실만큼 아시는분이 자꾸 그런말씀 하시네."

시덥잖은 문답을 주고받으면서 페어리의 회복상태를 살폈다. 다행이 얼추 다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저희 사주는 원딜, 근딜, 탱커, 엘리멘탈 이렇게 넷이란 말이죠."

"무슨 마왕이라도 잡으러 가는 용사파티냐?"

"뭐. 적혈여제란 마왕을 쓰러뜨리러 가는 용사 실버의 일행! 그럴듯 하지 않습니까?"

"미리 말해두지만, 난 욕심쟁이거든. 이 세린 대륙도, 적혈여제의 위치도 다 내꺼야."

"어련하시겠습니까. 하던 말을 계속 하자면, 전 원딜의 포지션을 담당하고 있는 몸이란 말이죠. 라이 님은 원딜은 뭘 갖춰야하는지 아십니까?"

"압도적인 화력. 그걸 뒷받침해줄 기동력. 방어력도 갖추면 좋겠지."

"네. 제가 그런 원딜입니다."

한순간 엘프들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순간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얼추 회복된 페어리가 급하게 반투명한 보호막을 펼쳤지만 화살 몇개만을 튕겨내자 급격하게 흐릿해지더니 곧 산산조각이 나면서 사라졌다.

나머지 화살은 다급하게 드래곤과 골렘이 막아줬지만 몇개 남지 않은 화살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탈 드래곤과 골렘의 체력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페어리로 진화하면서 배운 기술인 요정의 날개가루를 이용해 체력을 회복했지만 가공할 엘프 궁사들의 공격력에 태현 조차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죠? 제 엘프들. 제 보물들입니다."

"확실히. 엘프는 사랑이지."

태현 또한 남자. 남자는 본연적으로 엘프에 대한 환상을 한두개쯤은 갖고 있다. 태현도 예외는 아니다.

쭉 빠진 사슴같은 다리. 완벽에 가까운 몸. 가슴이 좀 작아보이는게 흠이지만 아름다운 금발을 휘날리며 가녀린 팔에서 나오는 강력한 화살. 그리고 몇몇 엘프들은 정령과의 교감을 통해 무속성임에도 불구하고 속성 공격을 퍼부울 수 있는 올 라운드 몬스터인 것이다.

물론 그런 엘프들에게도 단점은 있다. 치고 빠지기 전략이 먹히지 않을 만큼 적이 압도적으로 빠르거나, 화살이 먹히지 않을만큼 압도적으로 방어력이 높거나.

하지만 태현의 수중에는 그 둘 다 없었다. 그나마 가장 빠른 섀도우 조차 아직 엘프보다 느렸고, 가장 방어력이 높은 드래곤 조차 화살 한방한방에 체력이 깎이는 것이 체감될 정도로.

'1대 1인게 다행이군. 여기서 저 조무래기들의 공격까지 섞였으면, 완패했을지도 모르겠어.'

태현은 다시한번 하인리히의 선택에 감사하며 전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제 내 수중에 남은 패는 레드 와이번 뿐.. 그에 반해 하인리히 저 놈은 아직 2개밖에 꺼내지 않았어. 수중에 남은 패가 몇이나 될지..'

그러나 하인리히는 여유를 주지 않겠다는듯, 강렬한 공세로 나서기 시작했다.

"차지 샷! 파이어 애로우!"

섀도우가 공격에 나섰으나 파이어 애로우에 황급히 몸을 피하는게 우선이었다. 차지 샷 또한 골렘이 대신 맞았으나 체력의 1/3이 빠져나가는걸 보고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전 완전 들러리네요. 전 저쪽에서 쉬고나 있겠습니다."

"아.. 크로우. 미안해."

크로우에 대해서 완전히 잊고 있었던 태현은 크로우에게 속삭였다.

"아직 몬스터들 회수 안했지?"

"네... 그런데요?"

"개미지옥을 잠시만 빌려줘. 저들의 발을 묶을게 필요해."

"하아.. 신성한 결투중에 몬스터를 빌리시다니. 사악하기 그지 없으시군요."

"내가 원래 이런 놈이잖아? 자, 자."

크로우에게 은근슬쩍 개미지옥의 큐브를 받아들고는 열심히 방어하고 있는 골렘에게 명령했다.

"결투의 전장!!!"

골렘이 땅을 내려 찍자 돌 벽이 생겨나서 마치 결투장처럼 하인리히와 태현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걸로 제 엘프들의 기동력을 막아보시겠단건가요? 이깟 벽, 넘어버리면 그

만인데요."

"그만둬라. 이미 전기줄 쫙 깔아놨거든."

태현의 말에 하인리히가 눈짓하자 엘프 하나가 벽 위로 화살을 쏘았다.

태현의 말이 거짓은 아닌듯, 그 화살은 방전되더니 재가 되어 사라졌다.

"후우. 당했군요. 하지만 이 안에서라도 저희는 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 또한 거짓이 아닌듯, 이리저리 피하는 엘프들을 맞추지는 못했다.

"섀도우! 퇴로를 차단해! 골렘과 드래곤은 측면으로! 페어리는 전방에서 방어막치고 대비!"

슬금슬금 한쪽으로 몰아가기 시작한 태현의 움직임에 하인리히는 초조한 듯이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그나마 공격력이 약한 페어리쪽을 치고나가기 시작했다.

과연 페어리는 몇번 막아서더니 곧 못버티는지 길을 터주었고, 결국 하인리히는 빠져나갔다.

"아쉽게 되셨군요? 잡은줄 아셨을 텐데."

"아니. 계획대로다."

태현은 마치 아직까지도 인간관악기로써 고통받고 있는, 한 때는 키라라고도 불린 캐릭터의 명대사를 내뱉으며 썩은 미소를 지었다.

"무슨... 핫?!"

하인리히와 엘프들의 발 밑의 모래들이 스멀스멀 달라붙더니 그들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몸부림 쳤지만 결국 다리의 일부분이 모래에 잠겨들어가 그들은 꼼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 건.. 설마.. 아까 그 처자의...?"

"미안하게 됐군. 난 네가 생각하는 것 처럼 호인이 아니야. 하긴. 호인이면 반란군 해먹겠냐?"

"크크크.. 이거 한방 먹었군요. 배틀 도중 타인의 몬스터를 빌릴줄이야. 상상도 못했습니다. 대단하시군욪!"

"비꼬냐."

"아니요. 전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습니다. 저흰 반란군입니다. 정석따윈 존재하지 않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마치 정석을 지켜야하는 양 정석대로 배틀을 해왔죠. 하지만, 라이 님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저츼는 역시 젓도가 아니라 사도라는것을. 남이 싫어할 짓을 하고, 빼앗고, 짓밟아야 한다는것을 말이죠."

"아... 그러냐."

"아쉽군요. 제가 실버님보다 라이님을 먼저 뵈었더라면 전 진심으로 라이 님을 따랐을 텐데... 후후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는데. 팀 유베로 오지? 우린 영지도 생겨서 자금 빠방해."

"감사한 말씀이시지만, 전 실버님과 함께 하기로 이미 결심했습니다. 실버님이 만들 미래도 상당히 기대가 되기 때문이지요."

확고한 하인리히의 대답에 더 이상의 회유는 불필요하다는것을 깨달은 태현은 무심한 눈으로 다리가 묶여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엘프들을 쓰러뜨렸다.

"죽이실겁니까?"

"살생은 싫어해."

"후회하실겁니다. 다음부터 만나는 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테니까요."

"그럼 뭐. 시온 령에 처박혀서 안분지족하며 사는거지."

"풋.. 크하하하!! 상당히 유쾌하신 분이군요. 역시 《영웅》의 후손답습니다. 배포도 크군요. 하지만.. 실버님은 이기지 못하실겁니다."

"흥. 그거야 대봐야 아는거 아니겠냐."

하인리히의 장담에 태현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시간이 제법 흐른 듯, 점점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얼추 정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뭐야. 하인리히. 그 꼬락서니는."

귀에 익은 앙칼진 목소리.

"후후. 하인리히가 저런 치태를 보일 줄이야. 자랑해야겠네요."

그리고 요염함이 섞인 목소리가 태양 너머에서 들려왔다.

곧 태양을 등지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처참한 모습의 미네르의 머리를 질질 끌고오는 핏빛 머리의 실버와 핑크색의 여인, 아데루였다.

"미.. 네르..?"

"아.. 라.. 이... 씨.. 도.. 망.. 꺄핫!"

"시끄럽네. 패배견주제에."

미네르가 멍들어서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으로 태현을 보자 뻐끔뻐끔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자 실버가 곧바로 미네르를 걷어차면서 소리쳤다.

"무슨 짓을 한거냐."

태현이 분노로 가득한 목소리로 실버에게 말했지만 돌아오는건 실버의 물음이었다.

"너야 말로 무슨 짓이야? 기사는 우리의 적 아니었나? 아니면, 팀 유베에게는 기사는 적이 아닌건가? 이미 기사에게 붙어서 충성을 맹세한건 아니겠지?"

"그랬으면 우리가 시온 령을 점령했겠냐."

"하! 시온 령. 그립군. 말했지. 고코우단은 내가 먼저라고. 근데 이렇게 날 방해해?"

"그럼, 너에게 고코우단을 잡수세요 하면서 양보하겠냐?"

"뭐 좋아. 너와 한번도 직접 싸운 적은 없었지. 여기서 누가 우위인지 똑똑히 그 몸에다가 새겨주겠어. 더 이상 발버둥 치지 못하게 말이야."

실버는 잡고 질질 끌고오던 미네르를 집어던지듯 놓아버리면서 자신의 큐브를 꺼내들었다.

"그 눈에 똑똑히 새겨둬! 이게 너와 나의 차이야! 그러니까 알아서 찌그러져 있으란 말이아!!!"

실버의 머리색과 비슷한게 붉은 큐브에 금색 띠가 둘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큐브에서는 불길이 뿜어져 나소기 시작했다.

"너.. 그 큐브.. 설마...?"

"그래! 너도 테이머라면 알겠지! 세계수의 과실로 만든 《유그드라실 큐브》야! 아직 덜 익은걸로 만들어서 등급은 조금 낮지만, 어짜피 목적은 이 것이었으니까!"

부들부들 진동하는 큐브에서 점점 불길이 거세지더니 폭발하듯이 뿜어져나온 불길은 한껏 치솟더니 땅으로 떨어져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불길속에서 모습을 드러낸것은 불길이 타오르는 크림슨의 포니테일. 은색 갑주를 입고 검은색 치마형 하갑, 그리고 은색 철제 부츠를 신은 여인은, 루시에 여신의 사도, 라일라였다.

큐브에 복속되어 있다는걸 증명하듯이, 초점이 잡히지 않는 멍한 눈을 하고 있었지만, 그 존재감 마저 지워지진 잃았다.

"여신의 사도를...?!"

"그래. 이 압도적인 무력. 그 앞에 무릎 꿇고 벌벌 기기나 해! 볼카닉 블레이즈(Volcanic Blaze)!!!"

라일라의 주변의 땅에서 불길이 치솟더니 한줄기로 점차 모여들기 시작했고, 곧 그 불줄기는 크리스탈 드래곤을 덮쳤다.

그 불길에 휩싸인 크리스탈 드래곤은 한참을 울부짖더니 곧 아무소리 들리지 않더니 큐브로 회수되어 왔다.

"후후.. 어때? 이것이 여신의 사도의 힘이야! 사도도 이정도의 힘인데, 여신은

얼마나 강력할까!! 하하하하! 모두 태워버려! 고코우단은 새롭게 로아나단의 영토로써 재탄생하게 될 것이니!!"

마치 뭐에 홀린 듯 미친듯이 웃어제끼는 실버의 모습에 태현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지만 이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여신의 사도의 압도적인 폭력에 그저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릴 뿐이었다.

"여신의 사도를 건드리다니! 당신 미쳤나요?!"

갑작스럽게 태현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녹색의 무녀, 아이린이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찾아와봤는데, 비열한 사술을 써서 사도를 복속시키다니..! 당신, 그러고도 테이머인가요! 정당한 수단을 통해 겨룰 생각은 없는건가요?"

"쫑알쫑알 시끄러워...! 태워버려!"

실버의 외침에 라일라가 손으로 아이린을 가리키자 또다시 불길이 생겨나 아이린을 덮치기 시작했다.

"아아, 세이라 여신님...!"

============================ 작품 후기 ============================theriper님ㅜㅜ 거의 유일하게 끝까지 따라와주시는 분이라 감사할 따름이네요. 2회 연속 코멘 없으시길래 떠나신줄 알았네요.

듣보잡 작가의 듣보잡 작품이긴 하지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리겠습니다ㅜㅜ그나저나 1만 조회수가 곧이네요. 이런데서 소소한 즐거움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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