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급창 침공-- >
대대장, 키류의 아침은 빠르다.
아침 6시가 되면 기상해 잠을 깨기 위해 가벼운 스트레칭과 집 주변의 산책.
그리고 간단한 운동을 하고나면 7시.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아침거리를 장만해 집에 들어오면 대략 7시 30분쯤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침을 만들기 시작해 식사를 마치고 나면 약 8시.
키류의 아침은 그렇기에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수 있는 빵류를 선호하는 편이었다.8시부터 몸단장을 시작해 대충 8시 30분쯤 부대로 출근하면 약 45분쯤 되면
부대에 진입한다.
"필승!"
"응. 필승. 수고가 많다."
거래소 정문을 지키는 두 병사가 키류를 보더니 황급하게 거수경례를 한다.
키류는 웃으며 짧게 경례를 받아주었고 늘상 그래왔듯 이 두 병사의 우렁찬 경례소리는 대대장이 출근했다는 신호인듯이 당직실에서 황급하게 당직사관이 뛰어나왔다.
"오, 뮤라 중대장. 당직인가보군."
"네, 네에. 대대장님. 당직 보고 드리겠습니다. 금일 저녁에는 별일 없었고.. 부대 내 이탈장병 없습니다. 그리고.."
약간은 졸린 눈으로 전반적인 부대상황에 대해 보고하는 뮤라의 말을 들으며 대대장실로 발을 옮기던 키류는 문득 보고서를 든 왼손에 눈길이 옮겨졌다.
"어라, 뮤라 중대장, 자네. 얼마전까지 반지를 끼고 있지 않았던가? 남자친구한테 받았다고 자랑하는 소리가 대대장실까지 들려온 것 같았는데."
"아, 아아. 바, 반지 말씀이십니까... 오, 오늘 당직이라서 번거로워서 빼뒀습니다. 당직실에 있습니다."
약간은 당황한 듯한 뮤라의 모습에 의아한 키류였지만 본인이 그렇다니 그러려니 하면서 대대장실의 문을 열었다.
"좋아. 별일 없는 듯 하니, 중대장은 오늘 오전과업 마치면 곧바로 퇴근하고 푹 쉬시게. 많이 피곤할텐데."
"아, 네.. 네! 알겠습니다. 필승!"
키류는 우선 9시 30분까지는 보급창 사령부에 가서 사프란 보급창장님을 비롯한 페르소 보급소장, 디드 인쇄소장, 게덕스 수선소장, 그리고 본인. 이렇게
다섯이 보여서 오늘 반드시 처리해야할 사안이나 아니면 일주일 내로 처리해야할 굵직한 사안들을 회의로서 다룬 뒤, 그에 대한 사안 배분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각자 배정받은 사안을 들고 돌아와 부대 내에서 다시 장교들을 모아 이 사안들에 대한 세세한 내용이나 진행 방향등을 설정하는 것이다.
키류는 자기가 판단해 어느정도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되는 안건의 서류들을 모아 챙긴 뒤 시계를 보자 9시 10분이었다.
"아, 잘못하면 늦겠는걸.."
키류는 자신의 팔찌를 조작해 당직실로 연락했다.
"내 말 준비시켜둬."
[예! 알겠습니다! 필승!]팔찌 너머로 들려오는 당직병인듯한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연락을 끊은 키류는 잠시 푹신한 의자에 파묻히듯 기댔다.
이걸로 오늘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잠시 오늘 하루에 대한 다짐과 약간의 휴식을 가진 키류는 다시 정신차리고 서류들을 가방에 챙겨넣은 후 천천히 대대장실에서 빠져나와 거래소 본관 건물에서 나왔다.
"늘 고생이 많군."
"아닙니다! 이게 제 임무입니다!"
대대장의 말을 직속으로 관리하는 관리병이 키류의 전용 말의 고삐를 쥐고 기다리고 있었다.
키가 조금 작은 키류였기에 말 안장 옆에 간이식 계단까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문득 이 병사가 고생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해 약간의 격려의 말을 해준 뒤, 자신의 애마에 올라타 보급창 사령부로 향하여 고삐를 쥐었다.
시간이 늦지 않게 도착한 키류는 회의실에 먼저 와있던 디드 대령에게 경례하면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오오, 키류. 거래소는 무슨 일 있나?"
"아니오. 없습니다. 그럼 혹시 인쇄소 쪽에는 급박한 일이 있으십니까?"
"흐음.. 급박하긴 하지만 중요한 일이 아닌 안건이 하나 있긴 하네만. 굳이 여기서 다룰 필요는 없다고 보지만."
디드 대령은 이 애리조나 내에서도 최고 원로급 장교였다.
나이는 현재 52세로, 아직까지는 약간 정정해보이지만서도 점점 머리에 흰 빛이 늘어나는걸 키류조차 알아챌 정도로 시간을 완전히 피해가지는 못했다.
해군에 몸담고 있던 기간은 그 누구와도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고, 비록 애리조나가 아직은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지만 30년 가까이 군에 복무한 인물이었다.
유리도 그걸 알기에 디드에게 장군직을 수여했으나 디드는 거절하고선 약간 한직에 가까운 보급창, 그것도 인쇄소장을 자처하며 대령으로 만족했던 약간은 털털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사프란조차도 계급으로는 상관이지만, 이 디드를 존대했다. 디드는 사프란을 거의 손녀대하듯이 대했고.
이렇게 털털하고 스스럼없는 남자였기에 키류나 페르소도 손쉽게 디드에게 다가가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디드와 키류가 담소의 꽃을 피우고 있을때,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약간은 날카로운 듯한 인상을 지닌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오오, 게덕스 중령. 어서오시게."
그 남성은 게덕스 수선소장. 턱수염과 구레나룻을 멋지게 기른 미(美)자를 붙여도 될 정도로 멋진 중년이었고, 삐죽삐죽 솟은 갈색 머리는 야생적인 느낌마저 주는 짐승같은 남자였다.
"디드 대령님. 별일 없으셨습니까."
"흘, 나야 뭐 늘 별일 없지. 수선소는 별일 없나?"
"수선소 쪽은 제가 확실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늘 그렇듯 별일 없습니다."
"아무렴 그렇겠지."
디드가 껄껄 웃으며 다시 자신의 서류에 눈을 돌리자 키류는 쭈뼛쭈뼛거리며 게덕스에게 인사했다.
"어.. 저기, 게덕스 소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하지만 게덕스는 키류의 인사를 들은척도 하지 않고선 자신에게 배치된 자리에 앉아 자신이 준비해온 서류만에만 눈길을 줄 뿐이었다.
이 남자, 게덕스는 아들을 해적과의 전쟁에서 잃었던 것이다.
그래서 해적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자신의 칼을 뽑아들고 뛰쳐나올만큼 열혈적이고 강렬한 남자였다.
그런데 그런 증오하는 해적이었던 자들이 자신과 함께 앉아있다는 사실이 게덕스의 입장으로선 달가울 리가 없었다.
괜히 이야기를 나누었다가 칼부림을 나눌 수도 있었다.
(실제로도 첫만남때는 그랬었다.)그걸 알기에 게덕스는 키류와 페르소와 부대 내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제외하면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려 했다. 페르소도 그걸 알기에 게덕스에게 냉정하게 대했고.
하지만 키류는 그렇게 맺고 끊음이 확실하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사람이 좋은거고, 나쁘게 말하면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을만큼 인정이 많았다.
그래서 늘 키류는 게덕스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애쓰지만 게덕스는 일관되게 키류를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키류, 소용없어. 저 남자는 절대 우리를 용서할 남자가 아니야."
"아, 페르소 언니!"
몇 년째 봐온 언니의 군복차림이지만, 아직까지도 약간 어색한 듯한 페르소를 보고 키류는 활짝 미소지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당연한거일수도 있지. 우리가 예외적인 것이고."
"하지만.. 언제까지고 서로를 미워한다면 진전이 없는걸요.."
"네 말도 맞긴 하지만.. 인간이란 논리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때도 많아."
"무슨 이야기를 그리들 즐겁게 나누고 계시는가요?"
페르소와 키류의 뒤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귀여운 목소리.
갈색머리에 안경을 낀, 약간은 작은 소녀.
자신도 작다고 생각하는 키류보다도 키가 작은 이 소녀.
검은색 정복을 입고 어깨에 황금색 띠가 하나 박음질되어 있는 견장.
그리고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수많은 흉장들.
"필승! 보급창장님을 뵙습니다."
"네에, 필승. 좋은 아침이에요~"
생글생글 웃으며 가장 상석으로 향하는 이 보급창의 최고 사령관, 보급창장 사프란.
사프란이 상석에 앉자마자 회의가 진행되고, 오래지않아 회의는 종료되고, 각자 부대로 귀환했다.
"그럼 페르소 언니, 다음에 뵈요."
"그래. 키류. 건강하고. 빠릿빠릿하게 하고."
"흥. 제가 언니인줄 알아요?"
"쩝. 그래. 키류 알아서 잘하겠지."
페르소와도 가볍게 안부인사를 나눈 후 키류는 부대로 복귀해 중대장과 소대장, 그리고 행정과장을 대대장실로 호출했다.
"금일 일과에 대한 회의에 앞서서, 부대 내 특별사항 있나?"
"행정과쪽에는 없습니다."
생글생글한 미소가 간판인 이 금발의 남자, 중위 파시스. 행정쪽 업무를 전반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행정과장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저희 중대와 소대에도 특별사항은 없습니다."
"그렇군. 그럼 오늘 일과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겠다."
그렇게 짧은 시간 후, 부대 내 회의마저 끝마친 키류는 기지개를 펴면서 갸르릉거리는듯한 소리를 내고 의자에 기댔다.
-똑똑똑
"대대장님, 뮤라 중대장입니다. 들어가봐도 되겠습니까?"
"응? 들어와!"
뮤라가 곧 문을 열고 들어와 대대장에게 서류를 건넸다.
"이번 달 장병들 휴가 신청서입니다."
"흐음. 벌써 월별 휴가 일정 계획이 나왔나?"
키류는 빠르게 휴가 신청서를 훑어보았다.
"어라? 내일부터 뮤라 중대장 휴가야? 허어, 수 썼구만."
"에헤헤헤.. 푹 쉬다 오겠습니다."
"아이고, 세상 말세야 말세. 상관이자 대대장인 나도 이렇게 뼈빠지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부하라는 자가 이렇게 휴가나 다닐 생각이나 하고 말이지. 쯧쯧."
입으로는 툴툴거리면서도 대대장 날인칸에 서명하는 키류의 모습에 뮤라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오늘 저녁은 제가 대대장님 대접해드리겠
습니다."
"호오? 본인은 입맛이 제법 까다로운데."
"얼마전에 오픈한 거기, 드뮈레 가문 직속 음식점 아십니까?"
"흐음..? 그곳은 당분간 드뮈레 가문과 친분이 있는 자들만을 받고, 한달 뒤에야 일반손님을 받는다고 들었는데?"
"제 지인이 그 드뮈레 가문과 제법 친분이 있어서 초대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근데 정작 자신은 바빠서 못간다고, 말해놓을테니 자기 대신 가달라고 초대장 두장을 받았습니다. 뭐, 남자친구랑 가라고 하던데.. 남자친구도 요새 좀 바빠서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니 대대장님, 동행 어떠십니까?"
"흠.. 솔깃하군. 드뮈레 가문의 음식점이라면 실력은 확실할 것이 아닌가?"
"그렇지요. 천하의 드뮈레 가문이니까요."
결국 키류는 뮤라의 달콤하고도 은밀한 유혹에 이기지 못하고 뮤라의 저녁 초대를 승낙해버렸다.
키류 자신의 미래에 어떤 위험이 들이닥치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채.
============================ 작품 후기 ============================메인 디쉬!!
입니다사실 진짜 메인디쉬는 유키이고 나머지 사프란이니 키류니 페르소니 모두 애피타이저지만, 최소한 거래소 파트에서는 키류가 메인 디쉬가 맞겠지요. 헤헤오랜만에 섹스씬이 없는 한편입니다.
약간은 지루할 지도 모르겠지만 ㅜㅜ대신 선택지를 드리겠습니다.
선택지입니다.1. 속전속결! 드뮈레 가문의 음식점이니, 수작을 부려서 키류를 잡아먹는다.2. 아니야, 아직 일러. 너무 빠르게 먹으면 체하는 법. 이 기회를 통해 키류와 뮤라를 좀 더 돈독하게 만들어 완전히 방심할 때를 노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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