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의 도시, 사티스-- >
"이번에는 에렌 영지로 되돌아가서 보고 안하시는겁니까?"
"응. 주기적으로 사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때가 아닌것 같아서. 조금 더 무르익을때까지 기다려보려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잔뜩 애타고 있다던데 좀더 괴롭혀보려고."
"후우. 정말 짐승이시로군요."
"그러는 너도 이상해. 일단 너는 유베님의 직속 부하같은 지위에 있는것 아니었던가? 내가 하는 행동은 반역행위로 뒤집어 씌워도 할말이 없는데?"
"뭐어.. 물론 저는 유베님의 직속 비서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사실 이 대륙의 평화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굳이 유베님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군."
평소대로였다면 크로우는 늘 태현이 영지 점령이 막바지에 치달을 무렵쯤이면 다음 영지로 넘어갈 준비를 했을터인데 이번에는 왠일로 태현과 동행했던 것이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까
"크리스탈님이 먼저 가셔서 준비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제가 먼저 갈 이유가 없어져서.. 조금 적적하기도 했구요."
"아. 그러고보니 크리스탈이 한동안 안보이더니 사티스로 먼저 넘어갔던 것인가?"
산권파에서 시간이 너무 오래 끌렸기 때문에 영주 결정전 전에 영주 후보생들을 모두 함락시키는데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다급하게, 저돌적으로 영주 후보생들을 하나하나 손에 넣어왔
던 것인데, 그 와중에 크리스탈을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다.
오며가며 모습이라도 보았더라면 기억이 났을텐데, 이미 막바지에 치달을 무렵쯤에는 이미 사티스에 넘어가 있었다는 크로우의 말에 반쯤 납득했다.
'뭐, 사티스에서 먹으면 되는거니까.'
잠시 까먹긴 했지만 크리스탈이 어디론가 아주 떠나버린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 태현은 곧 크리스탈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나저나 사티스는 어떤 곳이야? 과학의 도시라는 이름이 붙은것을 보면 과학이 크게 발전한 영지라는것은 알겠는데."
".. 그, 그게... 사실은.."
크로우의 말에 따르면, 과학의 도시인만큼 정보를 얻기가 매우 힘들다고 한다.
태현도 납득했다.
그도 그럴것이, 과학이나 기술이라는 것은 한번 발명하는 것이 힘들지, 한번 만들어진 것이라면 왠만큼 기술력이 뒤떨어지는 것이 아닌 이상 그를 모방해서 만들기는 매우 손쉬웠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특히 특출난 기술자, 과학자들은 늘 노려지는 대상중에 하나였다. 그것이 암살이건, 납치건.
반란군이 들끓는다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한 순간부터 사티스는 전면적으로 봉쇄령이 내려져 정보 등 모든것을 은폐하고, 은닉했던 것이다.
그 보안의 정도는 정보 수집의 대가로 불릴정도였던 크로우마저도 사티스에 대한 정보는 거의 얻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직접 맞부딪힐 수밖에 없다는것이군."
"그런 셈이 되겠군요. 아, 거의 다 온것 같습니다."
저 멀리 사티스 영지의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티스 영지는 사뭇 이질감을 불러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다른 영지들은 돌벽이었는데 사티스 영지의 벽은 마치 콘크리트를 부워 만든것처럼 그 표면이 맨들맨들한게 그 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언뜻 보이길, 약간 반투명한 막까지 덮고 있는것이 마치 현대의 기술을 보고 있는것만 같았다.
크로우와 태현이 문을 지나가려하자, 검은 옷의 병사로 보이는 두 남자가 가로막았다.
"아, 신분증이라면 여기 있습니다."
"신분증 따위는 필요없다. 사티스를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라."
".... 그렇군요. 입장료는 얼마입니까?"
"옆은 동행인가? 그렇다면 25만 골드를 내라. 남자는 15만 골드, 여자는 10만 골드다."
황금의 도시를 비롯해 총 6개의 영지를 손에 넣은 태현으로써 25만 골드라는 돈은 그다지 큰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고작 영지를 통과하는 비용이 25만 골드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무슨.."
"아아앗!! 잠깐, 잠깐잠깐잠깐!!"
태현이 터무니없는 가격에 반발해 따지고들려고 할 때, 사티스 영지 내부에서 크리스탈이 후다닥 달려와서 태현을 제지했다.
그러고는 능청스럽게 그 병사들에게 25만 골드를 지급하더니 태현과 크로우를 끌고 들어왔다.
"오랜만인데."
"그렇네... 가 아니라! 무슨 생각이야?!"
"왜? 솔직히 입장료 따위가 25만 골드란건 횡포잖아?"
"어휴, 이래서 있는 놈들이 더한다더니..."
크리스탈은 태현의 말에 골치가 아픈 듯이 이마를 감싸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태현과 크로우를 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여기서 서서 이야기 하기는 좀 그러니 내가 구해둔 아지트로 가자. 조금 길어
질 것 같으니까."
"오호. 아지트를 구해놨을 줄이야."
"후훗. 누구씨 덕분에 우리 팀 유베가 재정적으로 굉장히 풍요로워져서 그런지, 지원이 아주 빠방하게 들어와서 말이지. 아지트 한두개 구하는건 이제 일도 아닌걸."
그러면서 태현을 바라보는것을 보아하니, 태현 덕분인 듯 했다.
사실 반란군 특성상 늘 재정에 허덕일 수 밖에 없었지만, 태현이 황금의 도시 고르디아나를 점령하는 순간부터 돈에 대한 걱정은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다보니 어느덧 크리스탈이 구해둔 아지트에 도착한 듯 했다.
"자, 들어와, 소개할게. 이곳이 사티스 영지에서의 우리의 아지트."
지원이 풍족해졌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었던지 굉장히 넓은데다가 내부는 깔끔하고 갖추어야할 것은 대부분 갖춰져 있었다.
"제법 괜찮은 곳을 구했잖아? 대단한데?"
"이것도 다 현재 사티스 영지 내부 사정 때문에 그런거라고."
"내부 사정?"
"사실은..."
크리스탈의 입에서부터 들려온 내용은 태현을 경악시키게 만들기 충분했다.
"뭐어?!!?! 로아나단이?!"
"그래. 확실해. 저번에 그 로아나단의 단장이라는 아이를 봤다고."
"실버를? 흐음.."
시온, 고코우단, 고르디아나를 점령할때까지만 하더라도 번번히 훼방을 놓던 로아나단의 모습이 이네스 영지에서도, 애리조나에서도, 제랄 영지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사티스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인가.
로아나단이 사티스 영지를 어느정도 집어삼켰는지는 모르겠지만 태현이 짐작하기로는 제법 오래 되었으리라 예상했다.
"그러고보니 고코우단에서도 약간 의심스러웠어."
"고코우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 놈들, 고코우단에서 모습을 드러낸 로아나단 놈들은 죄다 불 속성의 엘리멘탈을 가지고 있었단 말이지. 그게 제일 말단일지라 할지라도 말이야."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는 말이로구나. 과연.. 그걸 할 수 있는건 사티스밖에 없긴 하구나."
하지만 사티스가 로아나단의 손에 떨어졌다면 굉장히 골치가 아팠다. 안그래도 로아나단의 사주(四柱)라고 자칭하던 그 네명의 간부의 강함은 태현 조차도 어느정도 고전했을 만큼 강했다.
그런 녀석들에게 사티스의 과학의 힘이 얹혀진다면 그 시너지 효과가 어느정도 거대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아! 그러고보니 남쪽에 거대한 호수가 있는데 최근 거기서 갑작스럽게 물속성 엘리멘탈이 많이 나온다던데. 그게 로아나단의 수작인건가?"
"아마 그렇겠지. 아, 그러고보니 사티스의 영주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사티스의 영주, 세리안 프로테스.
뼛속까지 과학자인 이 여인은 이제 20세 후반으로 접어들지만 아직 결혼은 하지 않은 노처녀. 들리는 말로는 『자신은 과학과 결혼했다.』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는 것 같았다.
연구를 하는 동안 열에 너무 노출되어 시력이 많이 손상돼 안경이 없으면 가까운 것이 아니라면 보기 힘들정도로 눈이 좋지 않으며 늘 백색 연구용 가운을 입고 다닌다.
성격은 말그대로 뼛속까지 과학자라고 말할만큼 냉정하고 철저하게 합리적이고 효율을 추구한다. 자신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나 조금이라도 이익이 된다고 한다면 곧바로 뛰어들만큼 이익을 추구한다.
아마 세리안이 로아나단에 합류했다면 그 이유는 아마 자금때문일 것이다.
과학이라는 것은 언제나 돈에 허덕이는 직종이며 아마 로아나단은 그런 틈을 파고들어 세리안에 접근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그 세리안은 어디에 있지?"
"그게... 몰라."
"몰라?"
"세리안의 위치는 극비중의 극비. 세리안의 위치를 묻는 자들은 곧바로 간첩으로 몰려서 사티스로부터 쫓겨나."
"묻는 것만으로도 쫓겨난다고? 얼마나 민감한거야, 그 사람들."
"당연히 중요한 인물이니까 그만큼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고 있는거라고요!!!!"
갑자기 아지트의 문이 박살나듯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넌, 분명.. 하인리히였지?"
푸른 머리. 약간 나른한 듯한 표정이었지만 잊혀지지 않는 인상의 그 남자, 하인리히.
로아나단의 사주(四柱)중에 《원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공격력만큼은 태현을 압살할 가능성이 있는 강맹한 인물.
"오오? 제 이름을 아직까지 기억해주고 있으실줄은 몰랐는데요. 기억해주셔서 영광인걸요, 《영웅》의 아들, 라이 크로네님."
"네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사티스는 소문대로 완전히 로아나단의 수중에 떨어진 셈이로군."
"과연, 그정도는 알고 계시는겁니까. 나름대로 숨긴다고 숨기고 있던 사실인데."
"너 혼자인가?"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아지트의 천장이 박살나면서 그곳으로부터 포니테일의 갈색머리를 가진 건강미가 풀풀 넘치는 여인이 떨어져내렸다.
"어이쿠, 《근딜》 샤리까지 납시셨군. 크로우, 물러나있어."
크로우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 태현의 뒤로 몸을 피했고 크리스탈은 맞서 싸우려는 생각인지 자신의 몸에 몬스터를 깃들게 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디 한번, 붙어보실까?"
"그 호기만큼은 칭찬해주지!!"
샤리가 소환해내는 드레이크가 태현을 덮치자 무의식적으로 페어리를 몸에 깃들게 할뻔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페어리에게 명령해 방어막을 펼치게 하는것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헉그러고보니크리스탈을 까먹고 있었구만..!!! 하.. 하핳... 힣.. 히힣...
어쩔수없당.. 은근슬쩍 때워야겠다.
니르쪼, 노스아스터 / 의견은 감사했지만 제각기라서 그냥 제맘대로 정했습니다.
Endogeny / 저도 한번 정리할까 하다가도 시간의 압박이.. ㅋㅋㅋTigerhuco / 엉엉 감사합니다천군5 /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등장한 로아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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