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탕스-210화 (209/235)

< --여신함락 (2)-- >

"가끔은 이런것도 나쁘지 않은걸."

태현은 주위가 완전히 칠흑으로 뒤덮힌 방에서 마치 영화를 관람하는 것과 같이 에리와 라일라, 세이라, 그리고 태현의 몬스터들이 치레느에 대항해서 열심히 싸우는 것을 화면을 통해 보고 있었다.

어디서 가져온건지 출처를 알 수 없는 팝콘에 연신 손을 옮겨 으적으적 씹어먹으면서 흥미진진하게 치레느 여신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두번째 진이 시작되려나보다."

치레느의 방심 덕분에 첫번째 진, 건(乾)을 손쉽게 격파했지만 곧이어 태(兌)의 문양이 빛나면서 두번째 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몸과 시야의 자유를 빼앗긴채 플레이어로써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

하고 있는 태현은 즐겁게 팝콘을 씹으며 치레느 여신전에 다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걸 모르는 페어리 퀸은 한편 진이 펼쳐질때마다 죽을 맛이었다.

"주, 주인님은 어디지...?"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라있는데다가 주위는 울창한 나무들과 곳곳에 세워져있는 돌기둥 때문에 어둡고 음침한 공기가 맴돌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주위를 둘러보았을때 태현이 없었기에 페어리 퀸은 다급하게 주인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아아!!"

페어리 퀸이 어느정도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돌기둥 사이에서 템페스트 타이거의 포효소리가 들리더니 천천히 걸어나왔다.

페어리 퀸은 드디어 동료를 만났다는 기쁨에 템페스트 타이거에게 무방비하게 접근하는 순간, 갑자기 템페스트 타이거가 페어리 퀸을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에... 엣?! 왜그래..! 나야, 페어리라고..?"

하지만 템페스트 타이거는 계속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며 페어리 퀸을 계속해서 위협하고 있었다.

페어리 퀸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템페스트 타이거 또한 소중한 태현의 몬스터이자 자신의 동료. 모종의 술식에 의해 세뇌되었다고 하더라도 태현의 별다른 명령이 없는이상 자신의 손으로 템페스트 타이거를 상처입힌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페어리 퀸이기 때문에.

결국 어쩔줄 몰라 안절부절하면서 템페스트 타이거의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피하는데만 전념하는 페어리 퀸.

물론 태현은 그것을 보면서 연신 저딴 배은망덕한 놈을 콱 죽여버려!

라고 외치고 있었다는것은 페어리 퀸으로써는 알수 없다.

하지만 페어리 퀸은 계속해서 공격을 피하다가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템페스트 타이거는 말 그대로 폭풍의 호랑이. 즉 바람 속성의 엘리멘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태현도 템페스트 타이거에게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이용한 근접전보다는 그 바람 속성을 살린 원거리 견제 이후 어느정도 승기가 굳어지는 순간이후에서야 템페스트 타이거를 근접전으로 활용했었던 것이다.

그것에 비해 지금 페어리 퀸의 눈앞에 있는 템페스트 타이거는 속성 공격을 전혀 하지 않은채 육탄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페어리 퀸은 비정한 눈빛으로 자신이 가진 공격기술을 총동원해 템페스트 타이거를 집중공격했고, 방어력이 높다고 할수없는 템페스트 타이거는 곧바로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빛과 함께 사라졌다.

템페스트 타이거가 빛으로 변한 자리에는 이상한 조각이 하나 떨어져있었고, 페어리 퀸은 혹시모르니 일단은 챙겨두기로 하고는 조각을 집어들어 품속에 넣었다.

콰아아아앙!!

저 멀리서 굉음이 들려오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봐 페어리 퀸은 다급하게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건방진 돌덩이 같으니라고. 감히 나에게 적의를 드러내? 죽고싶어? 아, 이미 죽였지."

페어리 퀸이 헐레벌떡 날아간 곳에는 세이라가 청록빛 머리를 휘날리면서 서있었다.

세이라의 앞에는 미스릴 골렘이 점점 몸을 붕괴시킴과 동시에 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골렘이 무너지는것을 무심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세이라가 페어리 퀸의 존재를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응? 페어리 퀸? 너도 이 골렘처럼 나한테 덤벼볼꺼냐?"

"아, 아니에요 세이라님. 전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구요?"

당황한 표정으로 양손을 격렬하게 흔들어 자신에게 적의가 없음을 강력하게 어필하는 페어리 퀸의 모습을 보고 세이라는 흐응-하는 콧소리와 함께 이젠 완전히 사라져버린 골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얜 왜이러는거야?"

"그게... 아마 가짜가 아닐까 싶은데요.."

"아아. 환영진(幻影陳)인가. 치레느 언니도 잠 악취미라니깐."

페어리 퀸이 골렘이 있던 자리로 총총총 걸어가자 과연 그곳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조각이 하나 떨어져있었다.

"세이라님. 아마 이게 이 진을 깨부수는데 무언가 단서가 되지 않을까요?"

"뭐.. 이유 없이 주지는 않겠지. 일단 가지고 다녀보도록 하자."

페어리 퀸과 세이라가 함께 돌아다니기 시작하자 그 행보에는 거칠것이 없었다.

길을 찾지 못할땐 돌기둥을 부숴버리거나, 나무를 날려버리거나 하면서 길을 찾아 헤맸고 결국 라일라와 에리를 포함해 전원을 만나는데 성공했다.

한가지 이상했던 것은. 미스릴 골렘만은 아무런 적을 만나지 않은 상태로 태현을 지키면서 자기 자리만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합류한 섀도우 킹이 페어리 퀸에게 쩔쩔매고 있을 때 난입한 세이라 덕분에 페어리 퀸을 쓰러뜨렸고 (이 때 페어리 퀸의 표정은 굉장히 할말이 많아보였다.) 마지막 조각이 페어리 퀸의 수중에 들어가는 순간 8개의 조각이

빛나며 하나로 합쳐졌고 하나로 합쳐진 구슬이 다시 빛나더니 환영진이 깨지고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왔다.

"호오. 본녀의 환영진을 깨부술 줄이야."

태(兌)의 문양이 진동하다가 금이가면서 깨졌고 그와 동시에 치레느의 체력도 동시에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것과 동시에 리(離)의 문양이 빛나더니 또다시 페어리와 태현의 몬스터들을 또다른 진으로 인도했다.

세번째 진은 옥염진(獄炎陳)이었다.

지옥의 불길이 펄펄 끓는 공간 속에서 간신히 발을 딛고 서있을 정도로만 펼쳐있는 바위 기둥들.

그리고 이상기류로 인해 하늘을 날 수 없지만 치레느는 이 진의 법칙에 구애되지 않는지 공중에 떠있는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을 빠져나가보아라. 본녀도 실컷 방해를 해줄테니 걱정하지말고."

"재수없어요."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쏘아내 저 뻔뻔한 치레느의 낯짝을 일그러뜨리고 싶었지만 이 옥염진에 갇히는 순간부터 모든 기술이 봉인된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 세이라와 태현의 몬스터들은 계단처럼 이어지는 바위 기둥들을 타고 출구가 있을것같은 위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동 모드로 변환."

움직일 생각을 전혀 않는 미스릴 골렘을 어찌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아무말도 않고있는 미스릴 골렘이 중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뒤 점점 몸 크기를 줄여나가더니 축구공 크기의 공으로 모습을 변환시켰다.

태현은 에리에게 업혀있는 상태여서 더이상 자신이 지킬 필요가 없었다고 판단된것인지, 아니면 지금 자신의 형태로는 이동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휴대하기 편하게 모습이 바뀌어서 덕분에 섀도우 킹이 입으로 물고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페어리 퀸도 기술을 쓸수 없는건 매한가지였기에 치레느의 공격을 능숙하게 받아낼 수 없었고 결국 제대로 날지 못하는 파이어 와이번이 자신을 희생해 치레느의 공격을 대신 받아내는 것으로 그 외의 동료들은 다행히 별다른 피해없이 치레느의 옥염진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파이어 와이번이 희생되어 태현의 큐브속으로 회수되었다.

이후에 펼쳐지는 진들도 악랄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클리어 조건이 각양각색이라 그때마다 세이라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치레느를 욕하기 바빴다.4번째 진이었던 진(震)의 문양에서 펼쳐진 비뢰진(飛雷陳)은 수도 없이 쏟아져내리는 번개를 버텨내야만 했던 진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 《우뢰의 제왕》 에리가 있었기 때문에 번개를 직접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여 빨아들였기 때문에 별다른 피해 없이 비뢰진을 깨뜨릴 수 있

었다.

다섯번째 진, 손(巽)의 문양의 태풍진(颱風陳). 이것 또한 바람과 땅의 속성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자연』의 여신인 세이라가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 손쉽게 휘몰아치는 바람을 억눌러버리고 태풍진을 깨뜨려버렸다.

감(坎)의 침수진(沈水陳). 좁은 공간안에 차오르는 물의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그 공간을 벗어나야 하는 진.

카나리아가 있었더라면 조금 더 쉽게 깨뜨릴 수 있었겠지만 카나리아는 치레느의 공격에 의해 어쩔수없이 태현의 큐브 속으로 회수되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정공법으로 빠르게 날아올라 벗어날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그 무게가 엄청나면서도 날수 없던 템페스트 타이거가 결국 버려질 수 밖에 없었고 템페스트 타이거는 차오르는 물속에 결국 익사해 큐브로 회수되었다.

간(艮)의 붕괴진(崩壞陳). 이것 또한 산사태처럼 쏟아지는 바위와 모래, 흙의

산에서 버텨내야하는 악랄한 진이었지만 역시나 『자연』의 여신 세이라에게 허무하게 막히고 아무런 손실없이 붕괴진을 깨뜨렸다.

곤(坤)의 사막진(砂漠陳).

아무것도 없고, 모래와 모래폭풍만이 넘쳐나는 황량한 대지, 사막에 떨어뜨려놓고 모든 능력을 봉인시켜둔채 자력으로 오아시스를 찾아내면 깨뜨릴 수 있던 진.

모든 능력이 봉인되었기 때문에 과연 애는 먹었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여신과 여신의 사도이며 자연의 권속에 가까운 페어리 퀸과 섀도우 킹. 그리고 활동성이 좋은 엘프의 조합.

그리고 더위나 추위. 굶주림과 포만감. 이런 감정들을 일절 느끼지 않는 골렘이었기 때문에 마치 여행이라도 온듯이 느긋하게 돌아다니던 일행들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지만 오아시스를 찾아내 가볍게 더러워진 머리와 옷을 씻어내는 순간 사막진 마저도 깨지며 치레느의 회심의 팔괘진이 박살났다.

"설마 본녀의 팔괘진을 모두 깨뜨릴 수 있을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건만..."

"흥. 이정도쯤이야 나 혼자서도 가뿐하지."

팔괘진이 박살남과 동시에 치레느의 무적 상태가 해제되고 치레느의 체력바가 쫘악 줄어들어서 거의 20%정도까지 줄어들었다.

그 뒤로도 치레느가 열심히 공격을 퍼부으면서 반항을 시도해보았지만 같은 여신인 세이라와, 여신보다는 살짝 뒤쳐지지만 그래도 여신의 사도인 에리와 라일라의 합동공격에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체력이 모두 소진되어 하늘을 날 힘조차 잃고 땅으로 추락했다.

치레느가 힘을 잃자 그제서야 시야와 신체의 자유를 되찾은 태현은 찌뿌드한 몸을 가볍게 스트레칭하면서 풀고선 유그드라실 큐브를 던졌다 받으면서 치레느에게 접근했다.

"후... 본녀가 비록 패배했지만, 마음속까지 네놈을 따를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그 말, 세이라도 똑같이 했어."

곧바로 유그드라실 필드를 발동시킨 후, 치레느를 포획하는데 성공한 태현은 치레느를 조교할 생각에 싱글벙글했다.

게다가 이번 전투에는 자신이 한게 거의 없는데다가 오히려 실컷 구경만 하다가 치레느를 손에 넣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그 기쁨은 두배가 되었다.

"모두들 고생했어. 잠시 쉬도록 해."

"그.. 포, 포상은 해주는거겠지?"

"물론이지."

도도하던 세이라가 얼굴을 붉힌 채 쭈뼛거리며 그렇게 묻자 태현은 능글맞게 웃으면서 긍정을 표시하자 활짝 웃음을 띄운 세이라는 태현의 큐브속으로 순순히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 작품 후기 ============================치레느 편 끝!

치레느 조교 - 루시에 조교로 곧바로 이어집니다.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공지에서 썼듯이 어제가 제 생일이고 친구들과 함께 생일축하주를 들이키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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