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저한테 왜 이러세요
8화. 저한테 왜 이러세요
뚜벅, 뚜벅.
사람들이 많은 시장 골목에서 구두를 신은 중년인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시장 입구 쪽에 있는 경희한의원의 대표 최인호.
탁월한 안목과 사업적인 감각으로 이곳에서 시작한 한의원을 다른 지역에서도 두어 개 운영하며 확장해 나가는 중이었다.
시장 사람들 몇몇이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알아보고는 인사를 했다.
“어? 안녕하세요. 원장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원장님 한의원에 일 보러 오셨나봐요?”
최인호는 시장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토요일 점심시간을 맞이하고 있는 시장 한쪽의 칼국숫집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한의원을 운영할 때 자주 다니던 집으로, 추억의 맛을 느낄 수 있음과 동시에 칼국숫집 바로 옆에서 시장 아줌마들이 산나물을 다듬으며 떠들어 대는 수다를 들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칼국수 하나 주세요.”
최인호는 입구 쪽 자리에 앉아서 칼국수를 주문하고는,
귓가에 들려오는 아줌마들의 수다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 한의원들이 하는 탕약 이벤트 얼마나 갈 것 같아?”
“재작년에는 한 달 정도 했었나? 이제 2주째니, 이번에도 아마 그쯤 하지 않을까?”
“그것보다 자기들이 보기에는 이번 ‘탕약 대전’ 점수는 어떤 것 같아? 요즘에 시장에서 가장 재미난 구경거리 중 하나잖아.”
“내가 엊그제 정우한의원에 갔었는데, 거기는 뭐 별로 큰 차이도 없어. 그냥 갈 때마다 대기실에서 할머니들이 수다를 떨고 있다니까? 완전 경로당이야 경로당.”
“그래? 그럼 시장 입구 쪽은 어때?”
“거기가 요즘 사람이 좀 줄은 것 같더라고. 내가 보기엔 허준한의원에 가는 사람이 조금 늘어난 것 같던데?”
벗겨낸 도라지의 껍질을 던지며 한 아줌마가 답했다.
그러자 건너편에 마주 앉은 아줌마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자기들 허준한의원에 가서 쌍화탕 안 먹어봤지? 거기가 완전 진국이라니까? 그걸 마셨더니 글쎄, 몸이 뜨끈뜨끈해지는 것이, 참 좋은데 말로 할 수가 없어. 가서 한 번 먹어들 봐봐.”
“에이~ 또, 또, 그놈의 입방정은. 한의원 쌍화탕이 다 거기서 거기지. 들어가는 게 다 똑같은데, 어디 한의원은 약효 없고 어디는 효과 있고 그러겠어?”
“그걸 알면 내가 한의원 하고 있겠지. 여기서 이놈의 나물이나 다듬고 있겠어?”
“그건 또 그렇네~”
···
깔깔거리는 아줌마들의 수다를 경청하고 있던 최인호의 앞에 넓적한 그릇에 담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칼국수가 나타났다.
그는 젓가락을 들고 뜨거운 칼국수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허준한의원?’
시장 골목에서 탕약 이벤트를 시작했다는 말에 맞불을 놓겠다며 시작한 탕약 이벤트.
그런데도 떨어진 매출이 회복되지 않아서 그 원인을 직접 파악하기 위해 들러 본 것인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한의원의 이름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정우한의원이야 10년 전에 자신이 이곳에서 처음 개원했을 때에도 아예 넘어설 수 없는 신뢰의 벽이 형성된 곳이었기에 당연했으나, 좀 전에 들린 허준한의원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곳은 이미 여러 번 한의원이 생겼다가 1~2년 사이로 자주 원장이 바뀌는, 쉽게 말하면 망하는 한의원이었으니까 말이다.
본래라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토요일이었건만, 고작 허준한의원 때문에 자신이 이곳에 올 줄이야.
최인호는 그렇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시장 입구에 있는 경희한의원으로 향했다.
토요일이 진료시간이 이미 끝난 시간이었지만, 최인호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두 원장이 가운을 입은 채로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대표님.”
“원장들. 어제 이야기 한 대로 미팅 조금만 하고 퇴근합시다.”
“네.”
“예.”
그렇게 문 닫은 한의원에서 시작된 미팅.
소파에 앉은 최인호와 두 원장 사이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매출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것은 뻔할 테고, 보나 마나 그의 까탈스러운 성격상 이야기가 그렇게 부드럽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재차 강조했죠? 이곳의 매출이 우리 한의원의 자존심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원장들이 보기에는 매출이 왜 떨어진 것 같습니까?”
“그게.. 아무래도 시장 상권이다 보니, 입소문이..”
최인호의 질문에 두 원장 중, 한 명인 김 원장이 답했다.
그가 이곳에서 근무한 지 벌써 4년이 넘었다.
매일매일 환자를 받다 보니, 당연히 이 시장 골목에서 퍼지고 있는 소문에 대해 모르려 해도 모를 수 없다는 뜻이다.
“소문이요?”
“네. 대표님. 시장 골목 사거리 2층에 있는 허준한의원 있잖습니까? 기억하시죠? 2년 전에 오픈하면서 탕약 이벤트를 했던 곳이요. 거기가 이번에 다시 탕약 이벤트를 시작한 곳입니다. 저희는 그 소식을 듣고 1주 뒤에야 시작한 후발주자라서 아무래도 시기적인 이유로 잠깐 매출이 떨어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대답을 들은 최인호가 피식 웃었다.
“김 원장. 혹시 허준한의원에 가 보셨습니까?”
“예? 아니요.”
“거기 옛날 상가건물이라 엘리베이터도 없는 2층에 있는 한의원입니다. 어르신들이 허준한의원에 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고작 매출이 떨어진 이유가 1주 늦게 시작해서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 그건...”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기려던 김 원장이 작전에 실패하자, 그대로 이실직고했다.
“사실은 요즘 시장 골목 환자들 사이에서 허준한의원의 쌍화탕이 우리 한의원 것보다 찐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 김 원장을 최인호는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그 말은 우리가 만든 탕약이 그 조그맣고 허름한 한의원에서 만든 탕약보다 못하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제 말은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시장에서 들리는 말들이 그렇다는-”
“우리가 뭐가 부족해서? 여기가 재료도 더 좋고, 원장님들 실력도 더 좋지 않습니까? 그 한의원 원장이 김 원장보다 더 어리다면서요? 게다가 내가 이곳에 투자한 게 얼마인데.”
김 원장이 고개를 푹 숙였다.
4년간 함께해오며 대표의 성격을 잘 알았기에 지금, 최인호가 꾸짖는 표정만 봐도 좋은 말이 오가기는 이미 물 건너간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얼마 들이지도 않았으면서 생색은.’
허준한의원보다는 당연히 훨씬 좋은 시설이었지만, 그렇다고 요새 잘나가는 한의원에 비할 바는 결코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본점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지점에 들어간 시설비용보다도 적은 것이 사실이었다.
“됐고, 박 원장.”
“네. 대표님.”
“지시한 대로 준비는 됐나요?”
“네. 여기 있습니다.”
박 원장은 최인호 대표의 대학 후배로, 한의원에 들어온 지 이제 반년가량 된 젊은 한의사였다.
물론, 같은 학교 동문이라서 그런지 최 대표가 유달리 이뻐하는 눈초리였다.
“좋아. 아주 굿이야.”
김 원장을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뉘앙스로 최인호는 박 원장이 건넨 탕약을 받아 들었다.
손에 들린 쌍화탕 한 봉지. 한의원의 로고조차 박혀있지 않은 모습만으로도 어디 한의원의 제품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이 시장 골목에서 저런 포장지를 쓰는 한의원은 단 한 곳뿐이었으니까.
“직접 마셔보고 평가해 봅시다.”
“제가 따듯하게 해서 가져오겠습니다.”
박 원장이 쌍화탕 봉지를 들고 일어나 재빨리 움직였다.
그렇게 몇 분 뒤, 그는 손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종이컵 3개를 들고 돌아왔는데, 익숙한 쌍화의 향이 흩날렸다.
“자, 그럼.”
최인호가 가장 먼저 쌍화탕을 마셨고,
이어서 김 원장과 박 원장이 따라 마셨다.
그러고는,
“별반 차이를 못 느끼겠는데요?”
김 원장이 제일 먼저 말했고.
“하, 이것 봐라?”
최인호의 입에서 감탄과 의문이 섞인 묘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런 최인호의 반응을 본 박 원장이 재빨리 답했다.
“대표님. 제가 보기에는 이거 일반적인 쌍화탕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무언가를 첨가한 게 확실합니다.”
그 말에 최인호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쌍화탕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묵직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걸 이벤트 탕약으로 쓰다니.
최인호의 눈에는 수익성을 포기하고 어떻게든 환자 수를 늘려보겠다는 발악으로 비쳤다.
“그러니까 지금, 판을 한번 흔들어 보겠다? 이대로 넋 놓고 당할 수야 없지. 우리도 다음 주부터 나가는 이벤트 탕약에 신경 좀 써봅시다.”
“네. 대표님,”
* * *
그 시각.
허준은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어김없이 오늘도 서울역을 찾았다.
처음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에는 게시판에서 의료봉사 지원을 해야 했지만, 그날 늦게까지 의료봉사를 하고 건네받은 쉼터 직원의 연락처로 전화하자. 흔쾌히 언제나 환영한다는 답변이 온 것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서울역 노숙자쉼터.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허준을 알아본 쉼터 직원들이 인사했다.
“어? 선생님 오셨군요.”
“안녕하세요. 그때, 보조해주시던 직원분이시죠?”
“네. 사회복지사 김영하라고 합니다.”
“저는..”
“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허준 선생님.”
“하하, 그렇군요. 그런데, 오늘은 실외가 아니라 실내에서 하나 봐요?”
“네. 그때는 잠시 수리 중이어서 간이진료소를 만든 거고, 오늘부터는 실내에서 하시면 됩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허준이 웃으며 답했다.
간이진료소도 없는 것보다야 나았지만, 아무래도 환자들을 생각하면 따스한 실내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훨씬 좋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허준이 쉼터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몇몇 의사들이 도착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에는 저번 주에 같이 의료봉사를 한 박진석 선생님도 계셨다.
다른 의사들과 이야기를 하던 박진석이 허준과 눈을 마주치자 손을 번쩍 들어 올려 반갑다는 듯이 흔들었다.
“자네 이번 주에도 왔구만?”
“선생님도 오셨네요?”
“나야, 여기 단골이지. 아 참, 인사들 하게. 여기는 이허준 이라고, 생긴 건 조금 차가워 보여도 요새 보기 드문 친구네.”
“안녕하세요. 이허준입니다.”
허준은 박진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피부과나 내과 등 다른 분야의 의사들이셨다.
“오늘 한의는 나 혼자인 줄 알았는데, 마침 자네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했다네. 오늘도 잘 해보자고.”
박진석이 허준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저도요. 하하-”
부담스러운 관심에,
허준이 마지못해 답하며 쉼터 한쪽에 마련된 책상에 자리했다.
“자자. 선생님들 2시부터 진료 시작하실게요~”
“그냥 지금 바로 하지. 빨리 시작해야 빨리 끝나지 않겠나.”
박진석의 대답에 쉼터 직원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선생님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그렇게 시작된 의료봉사활동.
찾아오는 노숙자들의 증상은 사람 수만큼이나 각양각색이었다.
일반적으로 한의원에서 볼 수 있는 증상이 아닌 온갖 증상들.
이 사람들을 볼 때면, 과연 지금이 현대 시대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많은 노숙자가 일반인들처럼 병원에 다닐 수도 없을뿐더러, 의료보험의 혜택 또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때로는,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도 모자랄 사람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환자들에게 의료봉사에 나온 의사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거나 최소한의 조치뿐.
그렇게 환자들을 진료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허준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뜸을 놓아라. 1’을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구술 Lv. 1’을 얻었습니다.」
[구술 Lv. 1]
* 뜸의 효과가 미약하게 상승한다.
아 벌써 퀘스트가 완료되었구나.
시계를 확인해 보니, 이제 겨우 1시간이 조금 넘은 시각.
‘생각보다 빨리 완료했는데?’
확실히 한의원과는 차원이 다른 환자의 숫자였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허준은 지난주처럼 늦게까지 의료봉사를 할 필요 없이 집으로 돌아가 주말을 만끽할 생각에 잠시 설렜으나,
<침을 놓아라. 3>
* 진행도 : 0 / 300
* 보상 : [침술 Lv. 3]
* 남은시간 : 7일
뒤이어 눈앞에 나타난 퀘스트에 입이 벌어졌다.
지금 장난하는 거지?
저한테 왜 이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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