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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8화 (19/230)

18화. 아이고

18화. 아이고

흔하게 보이는 작은 빌라 1층.

허준네 가족의 보금자리에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뭐!? 혜연이랑 헤어졌다고?”

밥도 먹었겠다, 집에도 왔겠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간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 까닭이었다.

“아니, 왜? 참, 이해가 안 되네. 허우대 멀쩡해, 인물도 괜찮아, 게다가 돈도 잘 버는 한의원 원장인데, 내 아들이 뭐가 모자라서?”

가재는 게 편이라고 했고,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이뻐한다고 한다.

엄마가 괘씸하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는 씩씩거렸다.

‘엄마.. 마지막은 좀..’

비록 지금은 떨어져서 살지언정, 이럴 땐 화제를 돌리는 것이 최고의 수라는 것을 모르는 허준이 아니었다.

“참, 그보다 아빠, 손목 아프시다면서요? 한 번 줘보세요.”

“별거 아니라니까 자꾸..”

들려오는 대답과는 다르게, 아빠가 손을 순순히 식탁위로 올리신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역시 뻥이었나 보다.

허준이 손으로 손목 여기저기를 살짝살짝 눌렀다.

부위가 옮겨갈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과 움직임.

“크흠.”

허준이 손을 떼자,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통증이 있는 곳은 자연스럽게 몸이 움찔거리기 마련. 이미 진찰을 끝낸 허준이었다.

다행스럽게 그렇게 심한편은 아니시네.

이 정도면 금방 괜찮아지시겠는걸.

“어때?”

이어서 아빠가 아닌 엄마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온다.

틈만 나면 투덕거리는 사이지만, 꽤 걱정하셨나 보다.

“별거 아니에요. 요즘 날씨도 추워지고, 피곤하셔서 그런 것 같아요.”

“봐봐. 내 말 맞지? 내가 그랬잖아. 시원하게 한잔하고 딱 자면 낫는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아빠.

그런 아빠에게 허준이 일침을 놓는다.

“그렇다고 낫지는 않고요.”

“거봐. 그러게 내가 뭐랬어? 한의원도 좀 자주 다니고, 운동 좀 하라 했지?”

시무룩해진 아빠와 반대로 엄마가 기세등등해진다.

어쨌거나 진단을 마쳤으니, 이젠 치료를 할 차례.

허준이 배낭을 뒤져서 침을 꺼냈다.

그리고 손끝에 감각을 집중하여 침을 놓는다.

양계, 열결, 태연혈에 이어, 가장 많이 몸이 움찔거렸던 부위.

“이거 제대로 놓은 거 맞아?”

침을 맞은 아빠가 의문을 표한다.

허준이 놓은 침 중에서 움직이는 침이 있기 때문이었다.

“네. 맥박과 가까운 자리라 그래요.”

“오 그렇구나. 이런 것은 처음 봤네.”

“신기하네. 우리 아들이 이런 것도 할 줄 안단 말이야?”

엄마도 신기하다는 듯이 와서 구경한다.

그렇게 15분이 지나 허준이 침을 뽑았다.

「포인트를 1 획득하였습니다.」

익숙해진 문구 앞에서,

“어? 진짜 좀 가벼워진 것 같네?”

신기하다는 듯이 아빠가 손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것을 본 엄마의 손이 아빠의 등짝을 찰싹-하고 강타했다.

“아빠, 지금 그렇게 막 움직이시면 안 돼요.”

“아, 그래? 미안. 너무 시원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이전에 한의원 몇 번 갔었을 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거든. 그래서 괜찮아진 줄 알았지.”

“이제부터는 관리가 중요하거든요. 오늘 푹 주무시고 나면 내일은 더 괜찮아지실 거예요. 그리고 자주 손목 스트레칭도 해주시고요.”

“알겠다, 알겠어. 아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

그렇게 치료가 끝나자,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   *   *

귓가에 들려오는 TV 소리에 허준이 눈을 떴다.

고개를 돌려보니, 낯설면서도 익숙한 방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참, 여기 집이었지.’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가니,

“일어났네?”

보자마자 반말을 하는 동생.

이진희가 TV 앞 소파에 퍼질러 앉아 꺼억-하고 트림하면서 물었다.

“야, 넌 좀 그런 짓 좀 안 하면 안 되냐? 더럽게.”

“더럽다니? 이런 걸 보고 생리현상이라고 하는 거지. 학생 때 안 배움?”

“근데 너 언제 들어왔어?”

“나? 1시쯤? 오니까 코 골면서 자고 있더라?”

“넌 여자애가 밤늦게까지 뭐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와, 오빠 지금 어제 아빠가 했던 말 똑같이 한 거 알지? 내 나이가 몇인데 알아서 앞가림하거든.”

맞는 말이었다.

머리속에 동생은 항상 어리다고 기억했기에 튀어나온 말이었지만, 실제로 동생은 이미 어엿한 직장인이었다.

허준이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미안.”

“그보다 오빠 TV 나왔다며? 웬일? 오빠 돈 벌고 싶어서 한의대 간다더니, 봉사활동을 다하고.”

“됐고, 엄마아빠는?”

“응. 교회.”

시간을 보니 벌써 12시다.

슬슬 올라갈 준비를 해야할 시간.

참, 그전에 먼저 해야 할 일부터 끝내야지.

허준이 소파로 다가가자, 이진희가 재빨리 드러눕는다.

“여기 내 자리거든.”

“야. 몇 살인데 아직도 그러냐? 손이나 내놔봐.”

“손? 손은 왜.”

“아, 빨리.”

“싫어.”

“용돈 줄게.”

누워있던 동생이 기상과 함께 손이 눈앞으로 날아왔다.

허준이 두리번거리다가 굴러다니는 사인펜 하나를 주워 동생의 손 위에 점을 찍기 시작했다.

“뭐하는 건데?”

“말하면 알아?”

“말해줘야 알지.”

“일단, 너 잘하는 사진이나 좀 찍어봐.”

“사진?”

“응. 어플쓰지 말고, 내가 올라가서 뜸 보내줄 테니까, 찍어놓은 사진 보면서 점 찍힌 자리에다가 그대로 뜨라고.”

“내가 뜸을 왜 뜨는데?”

“너 말고, 아빠.”

동생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뀐다.

“아빠? 왜? 아빠 어디 아프대?”

“아냐. 별거 아니야. 그냥 어제 보니까 관리를 좀 하셔야겠더라고. 니가 좀 챙겨드려. 알았지?”

“내가?”

“응. 표시해둔 자리에 잘 올려서 불만 붙이면 돼. 아빠가 그래도 너 말은 잘 들으시잖아.”

“오케이. 그정도 쯤이야. 나한테 맡겨만 둬.”

그렇게 집을 나선 허준.

KTX를 예매하고 지하철역을 향해 길을 걸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와는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갑자기 이사를 간다고 하더니 도착한 동네.

낮은 건물들과 오래된 아파트, 그리고 시장이 있었던 곳에, 이제는 하나둘 높은 아파트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변한 것은 동네뿐만이 아니었다.

‘와, 저기도 한의원이 있네. 어라? 저 한의원도 여기에 있다고?’

한의원 개원을 하고 나서 달라지는 첫 번째.

이전까지 길을 다니면서 신경조차 쓰지 않던 한의원 간판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개원하면 진짜 이런것만 눈에 들어온다더니,

나도 원장 다됐나 보네.

허준이 피식 웃으면서 눈앞에 보이는 지하철역 입구로 내려갔다.

*   *   *

사람들의 생활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일주일에 세 번 헬스장에 간다든지,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장을 보러 마트에 간다든가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 점에서 권순자 여사라 불리는 할머니는 아주 정확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김없이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 아침마다 시장에 나왔으며, 처음 목적지는 늘 동년배의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과일 가게였다.

과일 가게 안에는 이미 몇몇 할머니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녀들은 권순자를 보고 반갑다는 듯이 아는체했다.

권순자가 걸어가면서, 귤 하나를 집어 들더니 주머니에 쏙 집어넣고는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에~ 권 여사님. 그거 팔아야 하는 거라니까. 자꾸 그러시네.”

“하나쯤인데 뭐 어때? 내가 저번에도 여기서 과일 많이 사 갔잖아.”

“내버려 둬, 그 버릇이 어디 가나?”

진상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재개발구역의 임원이자, 이미 익숙한 탓에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나저나 권 여사님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수?”

“나야 잘 보냈지.”

“왜 이리 오랜만에 오셨어?”

“우리 아들이 이번에 승진했다고, 생일 선물로 여행을 보내줬지 뭐야? 갔다 와서는 추석이라 바빴고.”

“좋겠네, 좋겠어. 그렇게 아들 자랑하더니 효도 관광도 다 다녀오시고. 어쩐지 며칠 동안 안 보인다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구먼? 난 또 쓰러진 줄 알았잖수.”

“거 되게 섭섭하게 말하는 것 같아.”

“뭐, 막말로 우리 나이쯤 되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는 않잖수.”

“그것도 맞지. 자네들은 어땠어? 시장에는 별일 없었어?”

“별일이야 있었지.”

“그래? 무슨 일?”

권순자 여사의 물음에, 한 할머니가 두리번거리더니 손짓을 했다.

가까이 오라는 표현이었다.

“여행 가서 TV도 안 보셨어? 허준네가 TV에 나와서 요새 시장에서 아주 칭찬이 자자하다니까? 그러니, 여사님도 조심해야 돼. 여사님이 예전에 허준네에 젊은 처자가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느니, 어쩌니 소문내셨잖수.”

“소문이라니? 내가 직접 겪은 건데.”

“암튼, 난 말해줬수. 조심하라고.”

권순자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아줌마들이 놀라 말렸다.

그녀의 고질적인 악취미에 발동이 걸렸다는 느낌이 팍 왔기 때문이리라.

“권 여사, 그러지 말라니까.”

“지금은 그러다가 잘못하면 사람들한테 욕먹는다니까?”

하지만 그런 그녀들의 말을 들을 권순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멈추라는 말은 그녀를 더욱 자극할 뿐.

그렇게 당당하게 허준한의원으로 향한 권순자 여사.

한의원 안에 들어서서 대기실을 한번 둘러보니, 이전과는 다르게 한의원 안에 사람이 꽤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맨날 파리만 날리더니.’

“어서 오세요. 처음 오셨나 봐요? 그럼, 여기에다-”

김예진이 권순자에게 말을 하려는 찰나,

“어? 처음 보는 얼굴이네? 새로 온 아르바이트?”

“아뇨. 저는-”

“됐고, 나는 그 진료받으러 온 거는 아니고, 발이 시원찮아서 마사지기 좀 쓰려고.”

어이가 없어진 김예진이 권순자를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권순자가 자연스럽게 슬리퍼를 끌면서 정수기 앞으로 다가가 종이컵을 빼더니,

“쌍화탕 이벤트 한다면서? 하나 줘 봐.”

데스크 앞으로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본 김예진이 어이가 없어서 허-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할머니, 죄송한데요. 쌍화탕은 진료를 보셔야 드릴 수 있어요. 진료 접수부터 해주세요.”

“아니 진료는 됐고, 그냥 마사지기만 쓰면 된다니까.”

“죄송해요. 쌍화탕은 진료를 본 환자분들에게 드리는 거라서.”

“답답한 양반이네. 선생이 잘 모르나 보네, 내가 여기 단골이거든?”

“단골이 시라고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김예진의 말에 권순자가 빈 종이컵을 바닥에 던지며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대체 서비스가 왜 이래? 예전에는 안 이랬는데.”

“할머니, 자꾸 그러시면 기다리는 환자분들이 불편해하시거든요? 목소리 좀 낮춰 주세요. 여기 아픈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잖아요.”

“그럼, 나는? 다른 사람은 환자고, 나는?”

“그러니까 성함을 말씀해 주세요. 제가 확인해볼테니.”

그때, 대기실에서 커지는 목소리에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젊은이, 저게 대체 무슨 일이야?”

“글쎄요. 제가 보니까, 저 할머니가 쌍화탕 좀 달라고 떼를 쓰시는 것 같은데요?”

“어휴 나이를 먹었으면 창피한 줄 알아야지. 이런 곳에서 쯧쯧.”

그 소리를 들은 권순자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냥 뒤돌아서 나가자니, 너무 부끄러운 상황.

“권순자. 진료 접수해줘.”

“네. 권순자 할머니. 진료가.. 9개월 만이시네요?”

그렇게 권순자의 진료가 접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허준은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권순자를 볼 수 있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권순자 할머니시네?’

어찌 그 얼굴을 잊을 수 있을까.

허준이 생각하는 한의원 최고의 진상 할머니를.

그렇다고 진료를 대충 볼 수는 없는 법이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오랜만에 오셨네요.”

“크, 큼. 그래.”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셨어요?”

“여기 발바닥이 조금.”

허준이 할머니의 발바닥 한가운데와 발뒤꿈치 사이를 살짝 눌렀다.

“그래. 거기, 거기.”

전형적인 족저근막염 증상.

예전에도 여기가 아파서 오셨던 것 같은데.

“할머니. 침을 맞아야 할 것 같은데, 발바닥이라 조금 아프실 거예요. 괜찮으시겠어요?”

권순자도 예전에 몇 번 침을 맞아 본 경험이 있었기에, 얼마나 아픈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그 고통보다는 아까의 창피함을 씻어내는 것이 우선.

침을 맞으면서 사람들에게 아프다는 모습을 어필함으로써 창피함을 씻어낼 생각에 눈을 빛냈다.

“참아 볼게.”

“네. 치료실로 가실게요.”

그렇게 치료실.

허준이 발바닥에 침을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침을 맞은 권순자는 굳이 연기할 필요도 없을 만큼 몰려오는 고통에 소리쳤다.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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