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옮길 수만 있다면
19화. 옮길 수만 있다면
사람의 몸에는 감각이 매우 발달한 부위들이 있다.
손, 발, 입술 등으로, 감각 신경이 많이 분포하여 무언가에 닿거나, 만졌을 때의 감각을 뇌로 전달해 주고 이에 반응하여 움직일 수 있게 해준다.
그중 발바닥에는 한쪽에 무려 20만 개의 신경세포가 물려있다고 하며, 걷거나 뛸 때 느껴지는 자극을 곧바로 대뇌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발바닥을 간지럽히면 간지럽다가 나중에는 괴로워 울음을 터트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은,
“아이고~”
치료실 베드에 앉아있는 권순자의 입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과장된 엄살로 좀전의 창피함을 씻어내고자 하는 생각은 발바닥에 꽂히는 침과 동시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조금만 참으세요.”
허준도 발바닥에 침을 맞는 게 얼마나 아픈지 알고 있다.
하지만, 권순자 할머니께서 전에 왔을 때도 같은 증상으로 진료를 보셨으니, 이는 족저근막염의 재발이 잦은 만성이라는 의미일 터.
그 때문에 발 마사지기를 쓰러 종종 오신 걸지도.
‘지금은 조금 고통스럽더라도, 이왕이면 확실히 치료를 해야겠지.’
허준이 침을 들어 올리며 눈을 빛냈다.
“할머니. 딱 하나만 더 놓을게요.”
그리고 침을 대각선으로 꽂아 손끝의 감각을 느끼며 천천히 흔들어 자극의 강도를 높였다.
얼핏 보기에는 별거 아닌 아주 미세한 흔들림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권순자 할머니의 입에서는 아이고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동안 쌓인 감정 때문에 내심 고소함이 살짝 느껴졌으나, 공과 사를 구별 못 할 허준이 아니었다.
“다 되셨어요.”
끝났다는 말에, 권순자 할머니가 허준을 쏘아봤다.
“정말로 잘 참으셨어요. 아프셨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맞고 나면 굉장히 좋아지실 거예요.”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허준.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던가.
그 모습을 보자, 권순자 여사의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이 속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웃음 짓던 허준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할머니. 마사지기든 쌍화탕이든 오시면 언제든 드릴 테니까, 다음번에도 꼭 오세요.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치료받으셔야죠.”
“...”
“그럼 편안하게 엎드려 계세요.”
그렇게 허준이 치료실을 떠나고 15분 뒤.
김예진이 와 발바닥에 꽂힌 침을 뽑고 소독을 마쳤다.
그러고는 전기치료기를 가져와서는,
“조금 차가워요~”
하면서 종아리에 지그재그로 실리콘 컵을 붙였다.
스위치를 살짝 올리자, 권순자 할머니의 종아리가 움찔거리면서 짜릿짜릿한 기분이 느껴져 오기 시작했다.
“자극 적당하면 말씀해 주세요.”
침을 맞은 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침이 너무 아파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권순자 여사는 지금, 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고 좋타..”
이어진 15분간의 치료가 모두 끝나고 정리와 함께 데스크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권순자에게 김예진이 싱긋 웃으며 따듯하게 덥힌 쌍화탕을 건네며 말했다.
“계산 도와드릴게요. 할머니. 그리고 원장님께서 토요일에도 꼭 오시래요.”
그 시각.
과일가게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던 할머니들이 허준한의원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권 여사 아직도 안 나왔어? 곧 있으면 점심 때인데.”
“그러게. 이거 안에서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진 거 아니야?”
“그 양반 성격이면, 아주 난장판을 벌이고 남을 텐데. 이상하게 조용한 것 같기도 하고.”
“살짝 한번 가서 쓱 보고 올까?”
기대감과 걱정이 반반 섞인 대화.
시장 안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권 여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그녀와 어울리는 이유는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재미난 수다거리를 선사하는, 일종의 작은 활력소.
“궁금해서 안되겠어. 아무래도 내가.”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말했다.
“저 오네.”
“어? 그러네.”
“무슨 일이 있었을지 벌써 기대되네.”
그렇게 권순자 여사가 과일가게로 돌아오고,
“그래, 권 여사. 어땠어? 우리 말 맞지?”
“맞기는 무슨, 예전보다 사람만 쪼금 더 있더만.”
“그래? 이제 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가.”
“그래서 재밌는 일은 없었어?”
누군가의 질문에 할머니들의 시선이 권 여사의 입으로 집중되었다.
권 여사가 헛기침을 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있었지. 내가 누구야. 딱 들어가자마자 먼저 한의원을 한 바퀴 싹- 둘러보면서 기선제압을 했지.”
“기선제압?”
“그전에 있던 선생은 어디가고, 새로 온 선생이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딱 정수기에서 종이컵을 꺼내 들고 데크스로 가서 바로, 쌍화탕 이벤트 한다면서 한 잔 줘봐 했지.”
“역시, 권 여사 답네.”
“그래서 그다음엔?”
할머니들이 눈을 빛냈다.
“그다음에 뭐가 더 있겠어? 단골인 거 바로 알아보고 편안하게 쌍화탕도 먹고, 간 김에 진료도 보고 왔지.”
“뭐? 진료를 봤다고? 예전에 허준네에서 다신 진료 안 본다면서?”
“이 사람들이 나를 뭐로 보는 거야? 아무리 단골이어도 이렇게 가끔은 진료를 보고 그래야. 대우를 받는 거라고.”
“그, 그런가?”
권 여사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던 할머니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전과 뭔가 좀 달라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챈 것일까.
권 여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고, 내가 중요한 약속을 깜빡했네. 다음에 또 봐.”
“권 여사가 오늘따라 좀 이상하네.”
“그러게. 근데 왠지 모르게 얼굴이 좋아진 것 같지 않아?”
멀어져가는 권 여사를 뒤로하고,
누군가가 물었다.
“그런데, 서 선생은 왜 그만둔 거래?”
“재개발 때문이겠지.”
“그럼 벌써 이사 간 거야?”
“그건 모르겠는데, 저번에 누가 길에서 만났다고 그러던데?”
···
* * *
김순철씨는 시장에서 작은 정육점을 운영 중이다.
이 골목에서 무려 5년을 넘게 장사하고 있었으니 터줏대감이라 불리기에는 모호했지만, 시장의 불문율을 알기에는 충분한 시간.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다.
기브 엔 테이크.
쉽게 말해, 과일가게가 고기가 필요해 정육점을 들렸으면, 정육점이 과일이 필요할 때는, 그 가게에서 과일을 사야 한다는 그런 의미다.
그런 점에서 김순철은 살짝 고민하는 중이었다.
보통은 추석 연휴 전에 매출이 오르고, 추석이 껴있는 주에는 매출이 줄어들기 마련인데, 근 며칠간 매출이 유지된 까닭이다.
허준한의원을 찾아온 사람들이 온 김에 고기를 사 갔기 때문이었다.
한의원에서 직접 고기를 팔아준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아예 영향이 없다고 말하기에도 모호한 상황.
이는 김순철뿐만이 아니라, 몇몇 시장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그래. 이제 곧 가게 이전도 해야 하는데, 그전에 다녀오는 게 속이 편하지.’
그래서 김순철은 평소에 다니던 한의원 대신에, 허준한의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세요~ 처음 오셨으면 이쪽으로 오셔서 적어주시겠어요?”
“아, 네.”
한의사가 젊어서 그런가, 데스크에 있는 직원도 젊은 친구네.
그렇게 기다리다 원장실 안으로 들어간 김순철.
“어? 같은 건물에 있는 정육점 사장님이시죠?”
“네. 맞아요.”
“잘 오셨어요. 어디가 편찮으세요? 워낙 튼튼해 보여서 괜찮으신 줄 알았는데.”
“제가 등이랑 어깨 쪽에 담이 자주 생기거든요. 아무래도 고기를 썰 때 이렇게 한쪽으로 자꾸 힘을 써서 그런지 담이 자주 오더라고요.”
“음, 제가 한번 봐도 될까요? 이리로 오셔서 옷 좀 올려주시겠어요.”
허준의 부탁에, 김순철이 옷을 벗고 베드 위에 엎드렸다.
확실히 등 근육이 오른쪽으로 비정상적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러니 조금만 힘을 써도 담이 올 수밖에.
“확실히 그렇네요. 침은 맞아 보셨죠?”
“그럼요. 자주- 아니, 가끔 맞는걸요.”
김순철이 튀어나올 뻔한 말을 순간적으로 틀어 답했다.
여태까지 다른 한의원에 다녔다고 말하는 것이 실례라 생각했기에 한 행동이었다.
“치료실로 가실게요.”
그렇게 침을 맞고 치료실에 누운 김순철.
정육점을 차리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담은 이렇게 관리를 해줘도 자주 생긴 터라, 장사를 접기 전에는 평생 가져가야 하는 동반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큰 기대 없이 왔을 뿐인데.
침이 끝나고 전기치료까지 끝나자, 어깨 한쪽에 있던 기분 나쁜 감각이 씻은 듯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뭐지?’
김순철이 의문스러운 얼굴로 어깨를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담에 걸렸을 때는 움직이지 않던 각도까지 어깨가 부드럽게 돌아간다.
머릿속에는 마누라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한의원은 자기랑 잘 맞는 데를 찾아야 한다니까?”
이제야 그 말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가게를 이전하고도 종종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김순철의 손에는 김이 올라오는 쌍화탕이 담긴 종이컵이 들려있었다.
* * *
월요일 저녁 7시 30분.
언제나처럼 찾아오는 김명자 할머니가 치료실에 엎드려 있었다.
“오셨어요. 할머니.”
“오늘은 어째 지난번보다 사람이 좀 줄어든 것 같어?”
“아무래도 그렇죠. 한의원이 식당도 아니고, 아픈 사람이 오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아쉬워?”
“솔직히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요즘에는 예전보다 시장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주시거든요.”
“그래? 이제야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는가 보구만.”
“네. 그런 것 같아요. 해왔던 대로 쭉 밀고 나가려고요. 찾아오는 환자 열심히 치료하고 하다 보면, 다시 하나둘 늘어나겠죠.”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선생 성실한 마음가짐 하나는 인정허지.”
“감사해요.”
그렇게 김명자 할머니가 치료를 받고 돌아가신 뒤,
탕약실에 앉아 탕약을 달이는 허준.
‘오늘은 약재도 주문해야겠네.’
그때, 문이 열리며 김예진이 들어왔다.
“원장님. 끝났어요.”
“수고하셨어요. 김 선생님.”
그녀의 눈 밑으로 전에 없던 다크서클이 살짝 비쳤다.
며칠간 한의원이 돌아가고 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착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부터 계속 혼자 일한 거잖아?’
워낙 사람이 몰려온 터라, 대기실과 치료실 그리고 중간중간에 기다리던 손님의 모습사이를 뛰다니듯이 움직이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
우선 사람부터 뽑자.
“김 선생님.”
“네?”
“힘드시죠?”
갑작스러운 허준의 질문에 김예진이 당황했다.
하지만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던 그녀였기에,
“아니요. 괜찮아요.”
“제가 보니까, 아무래도 한의원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직원을 한 명 더 뽑아야 할 것 같은데, 선생님 생각은 어때요?”
잠시간의 정적.
김예진의 머리에 혼자서 종일 뛰어다니던 자신의 일과를 분할시켰다.
혼자 하던 일이 두 명이 되면 반으로 주는 것은 당연했지만, 파트를 나누고 동선을 나눠서 일한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터.
“아무래도 선생님 한 분이 더 오시면, 지금보다 훨씬 수월해질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럼, 제가 공고를 올릴 테니, 김 선생님도 같이 면접을 도와주시겠어요? 아무래도 저보다는 직접적으로는 선생님과 같이 일하다 보니 선생님의 시각도 중요할 것 같아서요.”
“물론이죠.”
김예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허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만 퇴근하시고, 내일 아침에 봐요.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이것 챙겨가서 좀 드시고요.”
“감사합니다. 원장님.”
허준이 건넨 쌍화탕을 몇 개 챙긴 김예진이 퇴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탕약기들의 알람이 울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인트를 10 획득하였습니다.」
「포인트를 10 획득하였습니다.」
···
‘10포인트라.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아직 적응이 안 되는 새로운 시스템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탕약을 달이고 1포인트는 아니지 않을까 하고 예상하던 허준이었다.
한의사 Lv. 1
[침술 Lv. 3] 필요 포인트 500
[구술 Lv. 2] 필요 포인트 100
[탕제 Lv. 2] 필요 포인트 1000
[추나 Lv. 0] 잠김
[진맥 Lv. 0] 잠김
···
보유 포인트 : 97
허준의 눈앞에 오늘 다녀간 환자와 탕약으로 얻은 포인트가 나타났다.
지난주보다 현저하게 떨어진 환자 수.
‘결국, 사람들이 계속 오게 하려면 방법은 하나.’
포인트를 모아서 능력을 올리고, 그 능력으로 다시 환자를 불러들인다.
늘어난 환자로 더 많은 포인트가 모이고, 더 많은 환자가 오게 되는 선순환의 반복.
지금보다 포인트를 더욱 빠르게 얻을 방법은 없을까.
허준한의원이 가진 가장 큰 문제. 바로 2층에 있다는 것.
만약, 자리를 1층으로 옮길 수만 있다면.
모집공고를 올린 허준이 한동안 보지도 않았던 부동산으로 들어가 시장의 상가를 확인했다.
‘어? 낮에 오셨던 정육점 아저씨도 내놓으셨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