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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20화 (21/230)

20화. 영업이요

20화. 영업이요

부동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상가의 2층보다는 1층의 임대료가 훨씬 비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접근성이 2층보다는 1층이 훨씬 좋기 때문이었다.

물론, 요즘처럼 대부분 상가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으면 예전보다는 영향이 덜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데도 아직 1층의 임대료가 비싼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 접근성이란 것은 한의원과도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한의원을 찾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높다는 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번화가에 있는 한의원들이야 1층의 임대료가 워낙 비싸고, 찾아오는 환자도 젊은 사람들이 주로 찾아오다 보니 상황이 조금 다르겠지만, 환자 대부분이 나이 지긋하신 이런 시장 골목에서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낡은 상가 건물 2층의 허준한의원으로 오르는 계단을 보는 순간 어르신들은 숨이 턱하고 막힐 터.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별거 아니겠지만,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편했다.

“하긴, 나도 아침마다 숨이 차는데.”

허준이 이해한다는 듯이,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러니 1층으로 이전을 할 수만 있다면, 확실히 지금보다는 환자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마침, 시장 사람들도 하나둘 마음을 열고 다가와 살갑게 대해주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적기가 아닐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어제 확인한 것은 정육점 사장님이 내놓은 작은 상가 하나.

그것만으로는 한의원을 이전하기에는 무리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진료실, 치료실, 탕약실 정도의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마 1층에 있는 정육점뿐 아니라, 정육점 좌우로 있는 과일가게와 떡집까지 3개 정도의 자리를 같이 사용해야 지금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의 한의원이 될 수 있어 보였다.

‘정육점을 내놓은 것은..’

아마도 재개발로 인해 시장 거리가 죽어갈 것을 대비해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그 옆의 상가들도 시기만 다를 뿐, 같은 입장일 터.

결국, 남은 문제는 돈인가.

허준이 눈을 빛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흔히, 사짜 직업이라 불리는 자격증을 가진 전문직의 최대 장점 중 하나.

은행은 전문직을 사랑한다.

최근에 방송으로 기록적인 매출도 올린 터라, 1층의 상가들과 권리금 문제만 잘 해결된다면 생각보다 쉽게 이전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요즘 들어 예전보다 환자 수도 늘고, 시장에서 한의원에서 만든 쌍화탕의 소문이 좋게 돌고 있으니, 다른 한의원보다 조금 싸게 탕약을 파는 것만으로도 꽤 추가적인 매출을 기대해 볼 수도 있을 테니.

생각을 마친 허준이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상쾌함을 느꼈다.

이 모든 생각의 시작은 환자를 늘려서 치료하고, 능력을 얻고, 또다시 늘어난 환자를 치료하고 하는 선순환의 속도를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빠르든 늦든, 결국은 언젠가는 벌어지게 될 일이란 뜻이다.

‘그래. 망설일 필요 없어. 어차피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다.’

그렇게 허준은 출근길에 1층에 있는 정육점을 들렸다.

“어? 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어깨는 괜찮으시죠?”

“그럼요. 선생님 덕분에 아주 좋아졌습니다. 아주 효과가 좋더라고요. 그런데,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고기를 사러 오시지는 않았을 테고.”

정육점 사장 김순철이 물었다.

평소에는 출근길에 가볍게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만 주고받았던 사이였는데, 갑자기 아침부터 정육점으로 들어오자 의문이 든 탓이었다.

“사장님. 혹시, 여기 정육점 내놓으셨어요?”

허준의 물음에 정육점 사장이 갈고 있던 칼을 내려놓으며 되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인터넷에서 봤죠.”

“아~ 맞아요. 이제 곧 재개발 이주 시작한다는 소문이 시장에서 자자하더라고요. 공사 시작하면 사람들이 여기 반쪽짜리 시장에 찾아오기나 하겠어요? 그러니 별수 있나요. 다른 곳에서 장사해야죠.”

“그럼 이 옆에 떡집이랑 과일가게도요?”

“아마 그 형님이랑 누님도 같은 생각 아닐까요? 왜요? 선생님이 1층으로 내려오시려고요?”

허준이 관심을 가지는 모습에 김순철이 그 의중을 바로 알아차렸다.

“근데, 공사 시작하면 한의원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요? 정우한의원은 아예 이참에 은퇴하신다던데요.”

“영향이 없진 않겠지만, 그래도 다른 가게들에 비해서는 적을 거예요.”

정육점이야 시장을 찾은 사람들이 고기가 필요할 때 사는 곳이었지만, 한의원은 아픈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길 건너편이 재개발에 들어가 공사를 한다 치더라도, 단골들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며, 남은 반대쪽에는 그대로 집들이 남아 있었다.

“아, 그렇군요. 제가 고기만 썰던 사람이라 잘 몰랐네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오히려 걱정해주셔서 감사하죠.”

“그럼, 생각 있으시면 제가 과일 집 형님이랑 떡집 누님한테 슬쩍 이야기 좀 해볼까요?”

“정말요?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   *   *

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된 김예진은 한강에서 런닝을 마치고 들어와 가볍게 몸을 풀었다.

몸에 밴 습관이었다.

‘역시 피곤할 땐 운동이 최고지.’

출근 준비를 하면서 머릿속에 지난 며칠간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의 시작은 사촌 언니인 최은진이 시청률 좀 올려달라는 연락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러다가 보게 된 다큐멘터리.

저런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마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런 김예진에게 돌아온 최은진의 대답은,

“진짜라니까? 못 믿겠으면 확인시켜 줘?”

그렇게 한의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방송 이후에 쉴 새 없이 몰려든 사람들과 정신없는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때는 정말,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힘들었던 일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라고 하던가.

김예진의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한의원에 사람이 몰려온 만큼, 김예진은 허준의 부탁으로 하루만 나가기로 했던 한의원 생활이 하루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럴수록 허준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가끔 혼자 탕약을 달이면서 멍하니 중얼거리는 모습이 보이기는 했지만,

환자를 대함에 있어서만큼은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의료봉사.

종종 근처의 시설에서 의료봉사를 해왔으나, 서울역까지 찾아간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그곳까지 간 이유는 하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허준이 의료봉사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자마자, 그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

누가 봐도 진상이었던 환자를 나갈 때는 미소짓게 만들지 않았던가.

치료실 정리를 하면서 얼핏 들려온 허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다 좋으니 오셔서 치료만 제대로 받으시라니.

이 사람은 진짜였다.

‘그러니 나도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야지.’

김예진이 허준에게 느끼는 감정은 남녀 간의 이성적인 감정이 아니라, 마치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를 직접 본 느낌이라 할 수 있었다.

일단은 원장님이 새로운 선생님을 뽑는다고 하시니, 꼭 일 잘할 사람을 뽑아야겠어.

그리고 효율적인 병력 배치와 동선도 한 번 생각해 보고.

김예진의 머릿속이 한의원의 구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동안에 자신이 움직이면서 불편했던 거나, 비효율적이라 생각했던 것들.

이런 생각과 함께 출근한 김예진은 여느 때보다 깨끗이 원장실 청소를 마치고 한의원 이곳저곳의 먼지를 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의원 문이 열리고 허준이 들어왔다.

“좋은 아침이에요. 원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김 선생님. 잠깐, 할 이야기가 있으니 원장실로 와주시겠어요?”

“네.”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김예진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원장실로 따라 들어갔다.

허준이 가운을 입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 별건 아니고요. 오늘부터 탕약을 좀 팔아보려고요.”

“탕약이요?”

“네. 뭐 쌍화탕부터, 십전대보탕, 총명탕 같은 것들 있잖아요. 제가 가격 알려드릴 테니, 김 선생님이 데스크 근처에다가 이쁘게 걸어 주세요.”

“알겠어요.”

“아 그리고, 제가 새로운 선생님 공고를 내서, 오늘 세분 정도 면접을 보러 오시기로 했거든요? 김 선생님이 잘 안내해 주시고요. 맘에 드시는 분 있으면 퇴근 때, 따로 이야기도 해주시고요.”

“네.”

그렇게 시작된 화요일.

진료는 순탄하게 이어졌다.

나쁘게 말하자면 이전보다 환자가 줄어들어 여유가 생겼다고 할 수 있었다.

한 바퀴 치료실을 돌고 원장실로 돌아온 허준은 곧바로,

한의사 Lv. 1

[침술 Lv. 3] 필요 포인트 500

[구술 Lv. 2] 필요 포인트 100

[탕제 Lv. 2] 필요 포인트 1000

[추나 Lv. 0] 잠김

[진맥 Lv. 0] 잠김

···

보유 포인트 : 104

「‘구술 Lv. 2’에 100포인트를 사용합니다.」

「‘구술 Lv. 2’이 ‘구술 Lv. 3’가 되었습니다.」

[구술 Lv. 3]

- 구술의 효능이 증가한다.

포인트를 사용해 구술의 레벨을 올렸다.

좋아. 어디 보자. 오늘 오기로 하신 분들 이력서 좀 확인해 볼까.

이름 : 김영자

나이 : 52세

경력 : XX한의원 8개월, XX한의원 3개월···

한의원에서 일한 경력이 좀 되시네.

그것만 보면 굉장히 좋은데, 나이는 좀 있으시고.

시장의 한의원 특성상 50대라는 나이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할머니들과는 더 잘 지내실지도.

이름 : 박영순

나이 : 42세

경력 : XX한의원 2개월

경력이 있긴 있는데, 좀 짧으시네.

무슨 사고라도 치신 건가.

만나보기도 전에 괜스레 선입견이 먼저 들었다.

그럼, 마지막은.

이름 : 윤다희

나이 : 37세

경력 : 없음

경력 없는 초보. 거기에 나이도 젊은 편에 속했다.

보통 한의원 경력은 간호조무사 커리어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에, 젊을수록 번화가에 있는 한의원이나, 다른 병원을 택한다.

‘흠, 애매하네.’

그렇게 오후 6시.

한 여자가 허준한의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처음 오셨으면-”

“아, 여기 면접 보러 왔는데.”

“그러시구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원장님이 치료실에 계셔서.”

“네.”

처음 온 면접자가 여기저기 한의원을 두리번거렸다.

규모와 시설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딱 보니, 매출 안 나오는 전형적인 시장한의원의 모습.

게다가 데스크에는 어린 간호조무사.

자리에서 일어나 데스크로 가서 말을 걸었다.

“아가씨, 여기 일은 할 만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여기 힘들지 않냐고요. 환자분들 연령대가 좀 있어 보이는데, 진상은 별로 없어요?”

김예진이 그녀를 바라보고는 웃으며 답했다.

“저희 일이 그런걸요. 마침, 원장님 치료 끝났네요. 들어가시죠. 이쪽으로.”

김예진이 앞장서서 원장실로 들어갔다.

“원장님. 면접 보러 오셨대요.”

“아, 김영자 씨?”

“네. 안녕하세요. 원장님.”

“이력서 보니 한의원 여기저기 많이 다니셨던데.”

“네. 그래서 웬만한 건 다 할 줄 알아요. 제가 또 어머님들이랑 대화도 아주 잘 통하고, 어머님들이 또 저를 그렇게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좋네요.”

“그럼, 언제부터 출근하면 될까요?”

“일단은 제가 합격하면 따로 연락을 드릴게요.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15분 뒤.

두 번째 면접자가 올 시간.

박영순 씨는 오지 않았다.

‘흔한 일이지 뭐.’

6시 27분.

한의원 문이 열리고 윤다희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면접 보러 왔는데요.”

김예진이 의외라는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생각보다 나이가 젊었기 때문이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겠어요?”

그렇게, 원장실.

허준이 윤다희에게 물었다.

“윤다희 씨?”

“안녕하세요 윤다희라고 합니다.”

“한의원에서 일해 본 경력이 전혀 없으시던데, 다른 병원도 아예 다닌 적이 없으신가요?”

“네. 제가 자격증을 딴지 얼마 안 돼서요.”

“아, 그러면 여기가 아예 처음이라는 거죠?”

“네. 맞아요.”

“그럼, 혹시 다른 일은 해본 적 없으세요? 자격증 따기 이전에요.”

“저...그게.. 영업 쪽에서 몇 년.”

“영업이요?”

허준이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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