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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34화 (35/230)

34화. 처음 하는 거라고

34화. 처음 하는 거라고

월요일 아침부터 허준한의원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제 1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수능을 위한 마지막 스퍼트라 볼 수 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총명탕 찾으러 왔는데요.”

“이름이요?”

“김진석이에요.”

“가져다드릴게요. 잠시만요.”

윤 선생과 김 선생이 번갈아 가며 총명탕을 전달했고,

허준은 월요일 오전에 몰린 환자들의 진료를 보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점심시간.

“휴, 이제야 숨 좀 돌리겠네요.”

“원장님 식사 어떻게 하실거에요?”

“아, 오늘은 따로 먹어야 할 것 같아요. 혜민서 멤버들이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알겠어요. 맛있게드세요.”

허준이 한의원을 나서서 시장 옆에 있는 중식당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배달을 시켜먹었던 곳인데, 막상 실제로 오는 것은 오랜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반가운 얼굴들이 맞이해준다.

김 원장과 박 원장 그리고 최 대표...?

“선생님 오셨어요? 간짜장 맞으시죠?”

“네. 그런데 대표님은 여기에 무슨 일로?”

허준의 물음에 최인호가 능청스럽게 답했다.

“크흠, 우리 사이에 무슨.”

“하긴... 그렇긴 하네요.”

허준이 지난 주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방에서 치지직- 무언가 볶는 소리와 함께, 박 원장이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희 팀에 처음으로 후원을 하시겠다는 분이 나타나셔서요.”

“후원이요?”

“네. 한의원에 오시는 환자분이신데, 저희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후원을 하고 싶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께 어떻게 할지 여쭤보려고 했죠. 겸사겸사 밥도 먹고.”

허준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봉사를 다니면서 후원을 받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까닭이었다.

‘필요 물품이나 약으로 쓰는 편이 좋겠지.’

“일단 후원금은 약으로 사용하도록 하죠.”

“그러실 줄 알았어요.”

박 원장이 예상했다는 듯이 답했다.

그것이 역시 자신이 생각하던 허준 선생의 대답이었으니까.

그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짬뽕과 간짜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가운데 놓이는 탕수육.

“저희 탕수육은 안 시켰는데요.”

“서비스에요. 선생님들 고생하시잖아요.”

아주머니가 눈을 찡긋거리며 쿨하게 탕수육을 놓고 가셨다.

고소한 냄새가 나는 탕수육을 서비스로 받은 것이 후원을 받은 것보다 왠지 모르게 더 기분이 좋아진 것은 착각일까.

“잘먹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호로록, 후루룩 면발 소리가 이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 사람의 앞에는 텅빈 접시들만이 남아 있었다.

“아~ 잘먹었다.”

“저도요.”

허준이 배를 두들기는데, 박 원장이 허준을 잠깐 보더니 물었다.

“선생님.”

“네?”

“제가 예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뭔데요?”

“허준한의원 진료과목에 추나 치료가 안 붙어 있더라고요. 추나 치료는 안 하시는 거예요?”

허준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추나에 대해서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에야 추나 치료가 보험이 적용되면서부터 한의대에서도 과목에 포함될 만큼 비중이 커져 있지만, 허준이 대학생 시절만 해도 그저 이론상으로만 배우는 그런 것이었다.

때문에, 허준과 비슷한 세대의 한의대 졸업생들은 개인적으로 시간을 활용해 따로 추나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해야만 했다.

물론, 허준은 한의원의 위치상 추나 환자가 거의 오지 않았을뿐더러, 당시에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그 시간 동안 대진을 뛰러 다녔기에 배우지 못한 상황이었다.

“선생님처럼 손재주 좋으신 분이 추나 배우시면 참 좋을 것 같은데.”

그 이야기를 들은 최인호가 눈을 번뜩였다.

추나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이자, 경희한의원을 체인점화 시킬 수 있게 만들어준 1등 공신이 아니던가.

그런 최인호의 머릿속이 번뜩이며 좋은 묘책이 스쳐 지나갔다.

일종의 자매결연. 추나를 알려주고 탕약의 제조법을 배워오자는 합리적인 판단.

“이허준 선생.”

“네?”

“우리 이것도 인연인데, 자매결연 같은 것을 하면 어떨까 하는데.”

“자매결연이요?”

“그래, 같이 모여서 공부도 하고 서로 경험도 공유하고 그런 자리를 종종 마련해 보자는 거지. 자네가 추나를 모른다고 하니, 그것은 내가 알려주겠네.”

김 원장과 박 원장도 가끔 최 대표에게 추나를 배운 기억이 있던 터라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자네가 치료한 사례에 대해서 여간 궁금한 게 아니거든. 자네가 고쳤다는 어린 여자아이 사례라던가, 이벤트용 탕약의 제조법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서로 교류를 통해 좋게좋게 발전시켜 나가자는 거지.”

그 말을 들은 김 원장과 박 원장이 최인호를 바라봤다.

이 사람이 왜 저러지, 원래 저런 캐릭터가 아닌데 하는 눈빛으로.

허준도 최인호 대표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추나에 대해서는 언젠가 배워보고 싶었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그럼 당장 오늘부터 시작해볼까?”

*   *   *

오후의 시장 골목.

한 여인이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는 골목 여기저기서 셀카를 찍으며 돌아다녔다.

“오, 좋아. 느낌 있네.”

김 선생의 친구 이소연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 만족할만한 사진 몇 장을 건지고서야 허준한의원으로 들어섰다.

“지금 한가 한 거 맞지? 생각보다 사람이 좀 있는데?”

“아니야. 지금이 가장 널널한 시간대야. 그런데 왜 하필 월요일에 왔어? 월요일이 제일 바쁜 날인데.”

“이왕 먹을거면 하루라도 빨리 먹어야 이득이니까?”

“일단, 이걸로 접수부터 하고 저쪽에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

“알았어.”

친구의 안내에 따라 이소연은 대기실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들고 여기저기를 돌리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무언가 마음에 들었는지 히죽 웃으면서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사이,

치료가 끝나고 대기실에 앉아서 쌍화탕을 마시던 할머니들이 수군거렸다.

할머니들의 눈에 혼자서 스마트폰을 들고서 히죽히죽 웃는 이소연의 모습이 신기했기 때문이리라.

“대체 왜 저러는 거야?”

그제야 주변 시선을 의식한 이소연이 점잖게 기다리다가 원장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이소연 님.”

“원장님 안녕하세요. 저희 구면이죠?”

허준이 엊그제 본 기억을 떠올리고 반갑게 맞이했다.

그때도 화장을 찐하게 하셨던 그분이구나.

“아, 어제 결혼식. 김 선생님 친구분이시군요?”

“네. 맞아요. 예진이가 선생님이 용하다고 자랑을 해서 다이어트 한약 좀 맞추려고요.”

“굳이 다이어트를 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지금도 굉장히 보기 좋으신데.”

“원장님도 참, 이게 보기엔 그렇지만 또 옷 벗으면 여기저기 숨어 있다고요. 게다가, 제가 내년 봄에 결혼하거든요. 그전에 미리 살 좀 빼고 싶어서요.”

“아~ 그럼, 일단 진맥 좀 잡아 볼게요.”

진맥을 잡은 뒤 허준은 이것저것 꼼꼼하게 물었다.

다이어트 한약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결혼을 앞둔 신부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지.

기본적인 다이어트 한약 재료인 의이인과 숙지황, 갈근, 천궁··· 그리고 스트레스를 완화해줄 약재를 조금 첨가하는 게 좋겠군.

모든 진단을 종합해서 허준이 재료들을 선택하는데,

“이왕이면 제일 좋은 걸로 해주세요. 가격 신경쓰지 말고요.”

“제일 좋은 거요?”

“그럼요. 살면서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 가장 좋은 거로 해야죠. 우선 한 달 치만 먹어볼게요.”

“알겠습니다.”

평범한 다이어트 한약을 생각하던 허준이 개원 이래 처음으로 가장 비싼 녹용을 넣어 달이기로 했다.

*   *   *

그날 저녁.

최인호가 드디어 허준한의원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향긋한 쌍화의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온다.

‘드디어 비밀을 알아낼 수 있겠군.’

그렇게 한의원에 들어선 최인호가 입구에서부터 한의원을 한 바퀴 싹 훑어봤다.

경험많은 최인호의 눈이 단번에 분석을 완료했다.

인테리어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지만, 대기실의 배치는 나쁘지 않네.

동선이 꽤 효율적으로 나오겠어.

청소상태도 훌륭한 걸 보니, 직원들도 잘 뽑았나 보군.

굳이 흠을 잡자면 인테리어가 요즘 느낌이 아니다 정도였지만, 시장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상관이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허준이 최인호를 마중나왔다.

“오셨어요?”

최인호가 손을 가볍게 들며 답했다.

“같은 동네에 있는데도 처음 와봤는데, 분위기가 좋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시작해 볼까?”

“네. 이쪽으로.”

허준과 함께 최인호가 원장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의료용 베드가 한가운데 놓여있었다. 아마 구석에 있던 것을 이리로 옮겨놓은 듯 싶었다.

겉옷을 벗어 한쪽에 있는 의자위에 올리고 최인호가 말했다.

“자네도 추나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는 알고 있겠지?”

“네. 간단한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추나는 말 그대로 밀 추에, 잡을 나. 즉, 손으로 밀고 잡아당겨 치료하는 치료법이다.

이는, 외국의 카이로프랙틱, 일본의 정체술, 그리고 현대의학의 도수치료와도 비슷한 치료법이었다.

이들은 현대의학의 정골의학과 비슷한 개념으로, 한의학의 기본 원리처럼 사람에게는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회복 능력이 있고, 안 좋은 자세나 외상 등으로 틀어진 뼈와 관절로 인한 자가회복능력이 저하된 것을 바로잡아 준다는 개념이었다.

“좋아. 그럼 바로 실습에 들어가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니 차근차근해보세. 이리로 누워보게.”

허준이 의료용 베드위로 누웠다.

“추나는 단순추나랑 복잡추나 그리고 특수추나로 나뉘는데, 일단 기본적인 단순추나부터 시작해 보자고. 힘 빼게나.”

최인호가 누워있는 허준의 두 다리를 잡으며 말했다.

“무릎 구부리고 엉덩이를 들었다가 놓으면서 다리를 쭉 펴보게.”

허준이 엉덩이를 들었다가 내려놓고 다리를 쭉 폈다.

최인호가 허준의 다리 길이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골반부위를 손으로 몇 번 누르더니,

“역시 자네도 몸이 이쪽으로 비틀어져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니 큰 문제는 아니야. 나를 보고 옆으로 누워보게.”

허준이 그 말대로 몸을 돌려 누웠다.

“손은 깍지끼고, 편하게 가슴위로, 이쪽발은 무릎을 구부리고 반대쪽은 펴주게.”

최인호가 오른손으로 허준의 손깍지를 잡고, 왼손으로는 골반을 왼다리로는 구부린 다리를 압박했다.

“숨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뚜둑-

허준이 골반에서 타고올라오는 시원함을 느꼈다.

“자 다시 바로 누워서 아까처럼 엉덩이를 들었다 놓고 다리를 펴보게.”

최인호가 이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어떤가? 직접 몸으로 느껴보니 이해가 쉽지?”

“정말 잘하시네요.”

허준의 칭찬에 최인호가 헛기침을 했다.

“자 이제 이허준 선생님이 해보시게.”

이번엔 허준과 최인호의 자리가 바뀌었다.

그런데,

<밀고 당겨라>

* 진행도 : 0%

* 보상 : [추나 Lv. 0]

새로운 퀘스트가 나타났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

설마 여태까지 잠금이 걸려있던 이유가 내가 몰랐기 때문이었다는 건가.

“뭐하나? 배웠으면 어서 해야지. 어서 끝내고 한의원도 구경도 마저 시켜주고.”

“아, 네. 죄송합니다.”

허준이 좀 전에 최인호가 했던 그대로 따라 했다.

침술로 인한 손의 감각이 좋아서일까.

‘틀어졌다는 느낌이 이런 느낌이구나.’

손으로 직접 만지자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저를 보고 누워주세요.”

이번에는 최인호가 허준을 바라보고 누워서 아까와 같이 자세를 잡았다.

허준이 막 자세를 잡으려는데,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으니 정확하게 한다고 생각하고 해보게. 괜히 힘줘서 무리했다가는 오히려 환자에게 안 좋을 수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숨 들이쉬고, 내쉬세요.”

투툭-

고요한 원장실 안에 짧고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숨을 내뱉던 최인호의 입에서,

“허윽-”

알 수 없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어서 최인호가 놀란 눈으로 허준을 바라봤다.

‘이게 정말 처음 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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