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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47화 (48/230)

< 47화. 가보실래요 >

47화. 가보실래요

비가 오는 월요일 아침.

어제와는 다르게 이젠 제법 쌀쌀해진 날씨를 피부로 느끼며 출근한 허준을 맞이해 준 것은 한의원 식구들과 환자 박상준이었다.

이렇게 매일같이 서로의 얼굴을 보다 보니, 이제는 마치 한의원 식구라도 된 양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모습은, 처음 한의원을 찾아 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제는 그저 사회성 좋은 청년 같았으니까 말이다.

“어서오세요 선생님.”

“원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따듯한 커피라도 한잔 드릴까요?”

“다들 주말은 잘 보내셨죠?”

활기찬 김 선생과 붙임성 좋은 윤 선생 그리고 박상준 환자와 간단하게 인사를 마치고 부원장실로 향한 허준.

“유도진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원장님.”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여전히 차가운 느낌이지만, 성격이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것은 아니니 어쩔 수 없지.

일단, 실력은 확실하니까.

그렇게 진료시간과 동시에 시작된 박상준의 진료.

허준의 눈앞에,

* 진행도 : 7%.

어제저녁에 5%던 진행도가 하룻밤 새에 또 올라가 있는 것이 확인됐다.

정말 대단한 회복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쩌면, 틈틈이 동네를 걸어 다니라고 한 것이 신의 한 수로 작용했을지도 몰랐다.

한의학이란 인간이 가지는 기본 회복력으로부터 시작하는 학문.

침으로는 이미 괴사한 부위를 자극하여 회복을 유도하고, 쌍화탕으로는 몸의 기운을 보하며, 마지막으로 적절한 운동으로 회복력을 최고로 끌어올린 허준의 치료.

이 세 가지의 요소가 모두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아직, 눈으로 보기에는 처음 봤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그렇게 시작된 침 치료.

허준이 검지 발가락에 침을 놓는데,

“후웁-”

귓가에 박상준이 숨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침이 이제 중지를 넘어서 검지 발가락에도 자극을 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이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진행도가 올라갔고,

발가락도 중지에 이어서 검지, 그리고 마침내 엄지발가락까지 신경이 모두 돌아오기 시작했다.

물론, 이 과정은 박상준에게는 지옥 그자체였다.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씩 끔찍한 고통. 그런데도 그는 이를 꽉 다문 채, 아주 잘 버텨내고 있었다.

일반적인 환자였다면, 벌써 곡소리를 내고도 남았을 통증이었을 텐데.

치료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의 봉우리 중 하나에까지 올라갔다 왔다고 하더니 그 말이 진짜인가 보다.

‘확실히 그런 산은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게 아니겠지.’

당장, 허준 본인도 한의대 실습시간에 발바닥과 발가락에 침을 맞았던 끔찍한 기억이 있었기에 꿋꿋이 참아내는 박상준이 더욱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자, 침을 놓는 허준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도 어느새 달라져 있었다.

허준도 그 감각을 느낀 이후에는 확신할 수 있었다.

‘됐다.’

눈으로 보기에는 아직 괴사한 조직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침을 놓으면 그 조직 아래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일반적인 환자들에게 자침할 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치료일지를 기록한 지 10여 일 만에 거둔 성과였다.

허준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입을 꽉 다물고 있는 박상준을 불렀다.

이젠 아영이 때와 마찬가지로 중간 점검이 필요한 때였다.

“박상준 님.”

“네?”

박상준이 흘러내린 눈물을 닦으며 허준을 바라봤다.

매일 침을 맞아도 익숙해지지 않은 이 통증은 매일같이 이런 몰골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선생님?”

“오늘 오전 진료 끝나고 병원에 한 번 다녀오시죠.”

“그 말씀은...?”

허준이 굳이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박상준이 고통도 잊은 채, 두 주먹을 움켜쥐며 환호했다.

치료과정에 대해서는 이미 들었던 터라, 허준이 말하고자 한 대답을 이해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도착한 대학병원.

박상준이 의자에 앉아 자신의 이름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드높은 산들을 오르며 마주한 대자연 앞에서도 이렇게까지 초조함을 느끼지 않았었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느 때 보다 초조했다.

그때문일까.

중학생 때 이후로 사라진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자신도 모르게 나온 것은.

톡, 토독.

[박상준]

드디어 전광판에 자신의 이름이 나타났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박상준 씨.”

“안녕하세요. 선생님.”

의사가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박상준을 보고 살짝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이전에 만났을 때에는 분명 휠체어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한번 보죠.”

모니터를 바라보는 의사의 모습과,

그 모습을 마주 앉아 바라보는 박상준.

두 사람사이에 시간이 느려진것처럼 고요한 가운데,

박상준의 눈이 의사의 입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검사 결과를 보니, 회복 되는 중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럼...”

“네. 이대로라면 회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상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됐어!”

소리치며 하늘로 두 주먹을 내질렀다.

짜릿했다. 마치, 정상에 올라갔을 때의 느낌처럼.

동시에 머릿속에는 허준 선생님과 함께 매일같이 벌여온 투쟁이 떠올랐다.

치료를 받으며 하도 울어서 였을까. 눈에서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그저 기뻤다. 이 기쁜 마음을 주변 사람들 아무에게나 마구마구 말하고 싶었다.

박상준이 그대로 진료실에서 나가면서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사가 중얼거렸다.

“내 입으로 기적이라는 말을 하기엔 좀 그렇지만, 정말 대단한 분이시네. 언제 나도 한번 찾아 가볼까?”

*   *   *

박상준의 수술이 취소되었다는 이야기는 허준한의원에도 날아왔다.

처음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고, 그 다음에 곧바로 허준에게 연락을 했기 때문이었다.

“원장님.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네. 박상준 환자. 수술 취소했대요.”

“정말요?”

수술을 취소했다는 말에, 데스크를 지키던 두 선생이 먼저 반응했다.

매일 진료 전 그리고 진료 마감 때 얼굴을 맞대던 사이였으니 당연했다.

“네. 검사 결과 회복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네요.”

“정말 잘됐네요.”

“이제 시작이죠.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거든요. 박상준 환자에게는 갈수록 힘든 길이겠지만 말이에요.”

“왜요?”

윤 선생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앞으로 회복될수록 느끼는 통증은 더 심해질 테니까요.”

“아~”

“그러니, 두 선생님께서도 조금 더 신경써서 봐주세요.”

“물론이죠. 걱정 마세요.”

그리고 이 소식은 허준한의원 식구들부터 시작해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수다쟁이 윤 선생의 작품이었다.

“다행이네. 참말로 다행이야. 그럼 이제 그 젊은이는 수술 안 해도 된다 이거지?”

“그럼요~”

“잘됐네.”

“그러길래 어머니, 제가 뭐랬어요~ 우리 원장님 보통 사람 아니라니까요? 침도 잘 놔, 약도 잘 달이고.”

“그러게. 그 양반이 침 잘 놓는 거는 알았어도 이렇게까지 용한 줄은 몰랐지.”

“그래서 말인데···.”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유도진의 귀에도 들어갔으니,

‘그저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저 손재주만 조금 뛰어난 줄 알았는데,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낼 줄이야.

처음에 심한 화상환자를 치료했다고 했을 때에는, 솔직히 운이라고 생각했다.

한의사로 지내다 보면 그런 경우 한 번쯤은 누구나 겪는 일일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번 동상환자까지 포함하면 벌써 두 번째.

‘운만 가지고는 불가능한 일이지.’

유도진도 정우한의원에 있으면서 온갖 질환들을 상대해봤지만, 화상이나 동상같은 질환을 맡아본 경험은 따로 없었다.

특히, 이렇게까지 심한 경우는 더더욱이 말이다.

물론, 한의학적으로 이론적인 처방은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겪은 적은 없었기에 사실 허준이 이 치료를 맡겠다고 했을 때, 말리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당시에는 며칠 근무하지 않았던 터라 딱히 어떤 감정이 있어서 한 일은 아니었지만, 부원장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때에는 조금만 잘못되어도 법적인 문제를 걸고넘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에, 최소한 서류로라도 대비를 하자고 말하지 않았던가.

‘아니, 어쩌면 그때 바로 그런 이야기를 했으면, 환자는 치료를 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갔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낼 수는 없었겠지.

처음으로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기 시작한 유도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허준은 옆의 원장실에 앉아 흐뭇한 얼굴로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매출 때문이었다.

‘확실히 유도진 선생님이 오신 뒤로, 매출이 더욱 늘어났어.’

이는 정우한의원에 다니던 단골들이 김정우 선생님의 빈 자리를 대신할 유도진 선생님을 찾아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 시작한 다이어트 한약도 슬슬 매출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

슬슬 탕약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겠는걸.

혼자의 몸으로는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그 한계가 있을 터.

일단은 두 선생님보다는 실력이 좋은 유도진 선생님에게 먼저 말해 봐야겠다.

정우한의원의 한약은 꽤 유명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허준은 한의원 식구들의 월급을 이체했다.

매출이 올라간 만큼 보너스도 좀 줘야지.

이제는 꽤 능숙하게 한의원을 운영하게 된 허준이었다.

이어서 눈앞에 나타난 포인트를 확인했다.

한의사 Lv. 1

[침술 Lv. 5] 필요 포인트 5000

[구술 Lv. 5] 필요 포인트 5000

[탕제 Lv. 3] 필요 포인트 5000

[추나 Lv. 1] 필요 포인트 3000

[진맥 Lv. 0] 필요 포인트 5000

···

보유 포인트 : 1927

박상준의 치료에 전념하는 동안 탕약과 혜민서 활동 그리고 진료로 모은 포인트.

조금만 더 모으면 드디어 진맥을 확인해 볼 수 있겠어.

허준이 머릿속에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이 떠올랐다.

실로 손목을 묶고 진맥을 하는 그 모습, 만약 정말로 그게 되면 얼마나 멋지겠는가.

부푼 꿈을 안던 허준이 한의원 문이 열리는 소리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참, 혜민서 사람들 올 시간이네.

*   *   *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

아영이와 김미영이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물론, 그 옆에는 몇몇 아이들이 함께였다.

애들 노는 곳이다 보니 엄마들이 단체로 정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참 다행이네. 어떻게 그런 용한 곳을 찾았대?”

“그러니까요.”

“그러게요. 저도 아직도 꿈만 같아요.”

그때, 또 다른 한 아이와 엄마가 나타났다.

아파트단지에서 꽤 유명한 아이였다.

등장하는 모습부터가 평범한 아이와 남다른 것이, 아이가 자꾸 팔을 긁적이면 엄마가 그 팔을 손으로 탁- 하고 치며 긁지 말라고 혼냈기 때문이었다.

“지훈이 엄마 왔네?”

“지훈이는 이번에도 효과가 없었나 보네.”

지훈이가 팔을 긁적이다가 놀이터로 달려갔고, 그제야 지훈이 엄마라 불린 여인이 와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다들 모여 있었네요?”

“오늘은 아영이 엄마도 나왔어.”

“오랜만이에요. 아영이 엄마.”

“지훈이 엄마도 오랜만이네요. 지훈이 아토피는 좀 괜찮아졌어요?”

“병원 바꿔봤는데 아직도 그대로 인 것 같아.”

“그래요?”

“아영이는 손 다 나았다면서요.”

“네.”

“잘됐네. 우리 지훈이도 빨리 나았으면 좋겠는데.”

괜한 참견일지 모르겠지만, 그 마음을 알기에 아영이 엄마 김미영이 지훈이 엄마에게 말했다.

“그럼, 혹시 한의원 한 번 가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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