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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67화 (68/230)

< 67화. 허준한의원에 자리 하나 남지 않나 >

67화. 허준한의원에 자리 하나 남지 않나

허준이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직접 진맥을 잡아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어떤 차이가 날지는 모르기 때문이었다.

한의원 진료는 이미 마감된 시각.

도유진 선생님과 고요한 선생님은 입원실 진료를 보러 갔으니,

퇴근 전에 진맥 확인도 해볼 겸.

오랜만에 선생님들 진료를 봐 드려야겠군.

그렇게 데스크의 업무를 마친 김예진 선생이 허준의 호출에 원장실로 들어왔다.

“원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별일은 아니고, 선생님들 진료 봐 드리려고요. 마침, 연말이기도 하고 진료 볼 때도 슬슬 된 것 같아서 말이죠.”

“아~ 벌써 그렇게 됐나요? 그럼, 잘 부탁드려요.”

한의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가장 큰 혜택이 무엇이겠는가.

자주는 아니나 가끔 퇴근 전에 이렇게 진료를 봐주는 것은 흔한 일이었기에 김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허준이 환자의 진료를 보듯이, 김 선생의 모습을 관찰했다.

역시나 한의원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다운 모습이네.

이어서 문진.

“요즘도 매일 아침 달리기하세요?”

“그럼요.”

“대단하시네요. 아픈 곳은 없으세요?”

허준의 물음에 김예진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통증은 아니지만, 최근에 연말 약속으로 인한 과식으로 속이 조금 더부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정도는 하루 이틀 지나면 정상으로 되돌아올 터.

“뭐, 딱히 없어요.”

“다행이네요. 그럼, 진맥 좀 잡아볼게요.”

이어서 내민 손.

허준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하여 진맥을 잡았다.

건강한 맥이 손을 타고 느껴져 온다.

눈을 감은 허준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오장육부가 그려졌다.

건강한 간장의 맥을 느끼면 머릿속에는 간의 형상이 나타났고,

심장의 맥을 느낄 때면 심장의 형상이 나타났다.

‘이게 강화된 진맥의 힘?’

허준이 놀라 손을 떼었다.

“원장님. 괜찮으세요?”

평소와 다른 허준의 모습에 김예진이 물었다.

몇 번 진료를 받아봤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 네. 아주 건강하네요. 반대쪽 손도 줘보시겠어요?”

김예진이 허준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허준이 한 번 더 맥을 잡았다.

감은 눈앞으로 다시 한번 자연스럽게 그림들이 그려진다.

비장과 폐장, 신장, 이어서 위까지.

이 놀라운 감각은 황홀감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문득,

‘어?’

마지막 위장의 맥에서 무언가를 느낀 허준.

허증과 실증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분명 미묘한 감각이었다.

김예진 선생님같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체기가 조금 있다고 볼 수 있겠네.

그래서 아까 잠시 대답을 망설였던 건가.

허준이 조용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선생님. 요즘에 과식하셨나 봐요?”

“네?”

갑작스러운 물음에 김예진이 당황했다.

물론, 최근 과식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살짝 불편한 정도였기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그걸 허준이 알아챌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살짝 체기가 있는 것 같아서요.”

“그, 그래요?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았는데...”

김 선생이 비밀이라도 들킨 듯이 고개를 돌려 헛기침을 했다.

“이리로 손 올려보세요.”

“손이요?”

허준이 컴퓨터용 사인펜을 들고 책상 위로 올린 김 선생의 손에 점을 찍었다.

과식으로 인해 체기가 있거나 체증이 생겼을 때 좋은 혈 자리였다.

침도 좋지만, 김 선생같이 건강한 경우에는 이렇게 지압 마사지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터.

점을 찍은 허준이 설명을 이었다.

“선생님. 족삼리는 잘 아시죠?”

“네.”

김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한의원 식구 중에 족삼리혈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대중적으로도 워낙 유명한 혈 자리였으니.

“거기랑 더해서 여기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있는 합곡, 그리고 검지 첫마디 대장 이렇게 세 군데만 3~4분 정도 꾹꾹 눌러서 지압해 주세요. 그럼 금방 좋아지실 겁니다.”

“그래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윤 선생님한테도 알려주세요. 연말이니 아마 평소보다 많이 드시는 분들이 계실 테니, 환자분들에게 설명도 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진료는 이 정도로 끝내죠. 김 선생님이야 워낙 건강하셔서.”

“감사합니다. 원장님.”

“별말씀을요.”

“그럼, 윤 선생님 들어오라고 할게요.”

김 선생이 인사와 함께, 원장실을 나갔다.

허준이 진맥 때, 느낀 감각을 떠올리자 기분이 좋았다.

이런 체증까지도 느낄 수 있다니.

한 걸음, 아니 이전보다 몇 걸음은 더 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윤 선생님은 어떨까?’

그렇게, 진료에 심취하기 시작한 허준이었다.

*   *   *

다음 날.

크리스마스가 이틀 뒤로 다가왔다.

허준한의원에서는 출근한 식구들 사이에서 휴무에 관한 조율이 이뤄지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는 빨간 날이었기에 휴무였지만, 지금은 입원실이 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선생님들. 죄송한데, 제가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윤 선생의 말이었다.

이어서 고요한 선생도 손을 들었다.

“알겠어요.”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승낙했다.

크리스마스날 진료는 처음이지만, 보나 마나 여유로울 테니까 걱정은 없었다.

입원실은 도영철 선생님과 이미 이야기가 끝나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준비를 모두 끝내고 진료 시작.

허준이 원장실에 앉아 환자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화상부터 동상까지,

먼 지방에서 찾아온 환자에게는 입원을 권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점심시간까지 마치고, 다시 시작된 오후 진료.

김성호 환자의 차트가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김성호 님. 어서 오세요. 좋아 보이네요?”

“네. 정말 많이 좋아졌습니다.”

김성호가 침을 꼴깍 삼키며 대답했다.

또다시 침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긴장 때문이었다.

허준이 그런 김성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게,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마셨어야죠.

그의 얼굴 옆의 99%를 가리키고 있는 진행도에 더해서, 이제는 한눈에 봐도 건강한 30대 직장인의 모습이 들어온다.

물론, 술배가 조금 나와 있는 것은 애교다.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네. 크리스마스라서 업체들도 다 연휴고 하다 보니까, 저희도 널널해졌거든요.”

“그럼 진맥부터 잡아보죠.”

허준의 말에 김성호가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진맥을 잡자,

‘건강하다.’

체질적으로 약한 장기들의 맥은 느껴져 왔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교통사고에 따른 지병은 아니었다.

애초에 저런 장기들을 보하기 위해서는 보약이나 운동, 또는 생활습관이나 먹는 것과 관련이 있었으니, 허준이 할 수 있는 것은 간단한 설명뿐이었다.

진맥을 마친 허준이 김성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간단하게.”

“간단하게?”

“뜸과 추나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뭘요. 김성호 님이 그동안 약속을 잘 지켜주신 덕이죠.”

“제가 그날 이후로 진짜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고, 시키신 대로 가볍게 운동도 하고 그랬거든요.”

“잘하셨어요. 곧 새해도 오는데, 이참에 술 끊는 것도 생각해보시죠?”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무래도 제가 회사원이다 보니까...”

“농담이에요. 그래도 조금씩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지난번에 체질적으로 잘 안 맞는 음식들 알려드린 거 있죠?”

굳이 몸에 좋은 것을 말해줄 필요는 없다.

몸에 좋은 음식도 적당히 먹어야 몸에 좋은 법,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이던가.

몸에 좋다고 했다가 과하게 먹고 탈이 나서 다시 한의원을 찾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니.

차라리 체질에 잘 안 맞는 음식들을 알려줘서 피해 가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허준이었다.

“네. 잘 기억하고 있어요.”

“좋아요. 그럼 추나부터 시작하죠.”

자연스럽게 카이로베드 위에 오르는 김성호.

최서윤 환자 다음으로 허준한의원에서 추나를 제일 많이 받은 환자의 모습이었다.

허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누워있는 김성호의 머리 쪽으로 다가갔다.

교통사고에서 가장 크게 충격을 받은 경추.

손으로 경추의 근육을 잡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김성호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솟아올랐다.

처음에는 뻐근했던 그곳이 이제는 간질간질한 느낌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추나까지 마치자,

「퀘스트 ‘옆 동네 효자’를 완수하였습니다.」

「포인트를 2000 획득하였습니다.」

보유 포인트 : 2814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네.

허준이 미소지으며 김성호를 불렀다.

“그럼, 치료실에서 뜸 치료 마저 할까요?”

“네. 선생님.”

*   *   *

그 시각 허준한의원 대기실에는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있었다.

치료실에서 정리하고 나온 김예진이 데스크의 윤다희에게 물었다.

“윤 샘.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아... 그게.”

윤다희가 스마트폰을 들어 무언가를 보여줬다.

맘카페에 적혀있는 글이었다.

대충 요약하자면, 만성 아토피 환자를 아들로 두고 있는 엄마라는 사람의 글로 두 달가량 치료하고 난 뒤에, 일주일 째 아토피가 재발하고 있지 않다는 그런 내용의 글이었다.

아직 완치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사진이 추가된 글 때문인지 글 아래로는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그것을 본 김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쓴 사람도 누군지 알 것 같았고, 찾아온 환자들의 심정도 이해가 갔기 때문이었다.

동병상련의 동질감 때문일까.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는 엄마들이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쪽도 카페에서 글 보고 왔나 봐요?”

“네. 사진 보니까 와서 직접 확인이라도 해봐야겠더라고요.”

“저도 그래서 왔는데.”

“그런데, 여기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뭐 별다른 내용이나 리뷰도 없던데, 정말 믿을 만한 거 맞겠죠?”

허준한의원에서 광고를 한 적이 없었기에 생긴 의문이었다.

대부분의 한의원들이 완치에 성공하면 먼저 광고부터 했으니까 말이다.

물론, 허준도 처음에는 광고에 관한 생각이 없지는 않았으나, 당장 한의원을 찾아오는 환자만으로도 온종일 진료가 꽉 차 있는 상황이었기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도 내가 아까 조금 일찍 도착해서 옆에 칼국숫집에서 이야기를 좀 들어보니까. 여기가 동네에서 용하다고 소문났다던데요?”

“그래요?”

“네. 동네 사람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환자들도 있대요.”

“그러면 믿음이 조금 가네요. 우리 영진이도 나아야 할 텐데.”

*   *   *

그날 저녁.

진료 마감 전에 김정우가 허준한의원으로 들어왔다.

‘허? 이게 무슨 일이지.’

원래 이 시간대에 환자가 가장 없어서 일부러 맞춰서 찾아오는 것이었는데, 대기실에 아이들과 아이 엄마로 보이는 보호자들로 가득한 것이 아닌가.

김정우를 알아본 윤다희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게 다 무슨 일인가?”

“그게...”

윤다희의 설명을 들은 김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토피. 김정우도 익히 알고 있는 병이자,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찾아온 환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약속을 좀 더 일찍 지켜야겠어.’

원래는 진료를 보고, 유도진 선생과의 약속에 대해서 허준 선생과 일정을 조율해보려 했는데, 막상 눈앞에 환자를 보니 마음이 동한 김정우였다.

그렇게 그날 마지막 진료.

원장실로 들어온 김정우를 허준이 반겼다.

“어서 오세요. 선생님.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야. 내가 늦게 왔으니, 당연한 일이지.”

“이리로 오시죠.”

이어진 진맥.

김정우 선생님의 나이가 있으셨기에 좋다고 할 수는 없었으나, 이전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허증이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뛰어난 의술도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 시간을 돌릴 수는 없는 법.

‘여기까지가 최선이겠지.’

“손은 어떠세요?”

“안 그래도 그에 대해서 말할 게 있다네.”

김정우의 대답에 허준이 긴장했다.

설마, 손 떨림이 더 안 좋아지시기라도 한 걸까.

그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김정우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말게. 아주 좋아졌으니까 말이야. 이제는 거의 떨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네.”

“다행입니다. 선생님.”

허준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어서,

“그래서 말인데, 내가 유도진 선생하고 약속한 것이 있어서 말이야. 혹시, 허준한의원에 자리 하나 남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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