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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79화 (80/230)

< 79화. 할 수 있다 >

79화. 할 수 있다

“다들 어디 가는 겁니까?”

동네로 돌아온 김형서가 버스에서 내려 한의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박 원장에게 물었다.

당연히 버스에서 내리면 간단히 인사나 하고 헤어질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 선생님들은 모르시겠군요. 우리 혜민서는 행사를 끝내고 나서부터가 진짜 시작이거든요.”

“진짜 시작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지?”

“허준 선생님께서 하는 포럼이 있거든요. 뭐, 아직은 교육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만요.”

“교육이요..?”

박 원장의 대답을 들은 김형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직접 나이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얼핏 봐도 허준 원장이 자신보다 어리다는 것은 확실했다.

물론, 배움이란 것은 남녀노소를 떠나 누구에게나 배울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의학에서는 많은 경험을 몸소 겪어야만 남을 가르칠 수 있는 법이 아니겠는가..

박 원장이 김형서의 표정을 읽고는 말을 이었다.

“선생님께서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 허준 선생님이 보통 분이 아니시거든요. 의사로 따지면 드라마에 나오는 천재 외과 의사 같은 분이라고 할까요?”

“천재 외과 의사요? 허준 선생이요?”

“네. 욕심이 없으셔서 그렇지, 돈 벌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이런 동네의 한의원이 아니라, 아마 벌써 한방병원을 세우고도 남지 않았을까요? 그런 선생님이 봉사활동만 같이하면 공짜로 지식을 나눠준다고 하니 이렇게 다들 모이는 거죠. 안 그러면 황금 같은 토요일에 누가 여기까지 오겠어요?”

그때, 버스에서 내린 허준이 김형서와 뒤에 있는 유재원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정형외과 선생님들 오늘 정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김형서가 재빨리 표정을 바꾸며 답했다.

“아닙니다. 우리야말로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막상 가서 그렇게 많이 한 것도 없는데.”

“그런 말씀 마세요. 충분히 큰 도움이 되었거든요.”

“좀 전에 들어보니, 혜민서에서는 행사 끝나고 나서 교육도 한다던데.”

김형서의 물음에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교육이라기보다는 치료 과정과 경험을 공유하려고 만들고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이 하시는 것처럼요. 어떻게 한 번 같이 가보시겠습니까? 함께 해주신다면 더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아질 것 같네요.”

허준이 김형서에게 물었다.

한의원의 근골격계와 정형외과의 진료 범위가 일부 겹친다는 것은 경쟁 상대라 할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같은 질환을 상대하는 동지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김형서가 잠시 고민했다.

솔직히 조금 흥미가 생겼지만, 이제 겨우 얼굴 한 번 본 사이가 아니던가.

게다가 허준의 실력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생각이 많아진 터였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아쉽네요. 그럼, 다음에 뵙도록 하죠. 종종 이렇게 모였으면 좋겠네요.”

*   *   *

혜민서의 2부 행사가 시작되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태용한의원에서 저녁 식사인 도시락과 함께 추나 교육이 이뤄졌고, 이어서 허준한의원으로 자리를 옮긴 일행들.

도중에 몇 명이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이탈했지만, 대부분이 허준한의원에 앉아 허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허준은 그들을 둘러보며 동상과 화상 그리고 아토피 등등 누적된 사례들과 치료 원리에 관해 설명하고 난 뒤에,

“뒷일을 부탁드립니다. 선생님들.”

유도진을 비롯한 태용한의원의 원장들에게 말했다.

본래 오늘 입원실 진료는 유도진 선생의 차례였지만, 돌아오는 버스에서 갑자기 허준이 자신이 진료하겠다며 나섰기 때문이다.

“제 경험도 좋지만, 선생님들께서 직접 보고 느낀 경험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무슨 일이든 첫 경험이 가장 강렬한 만큼, 첫 완치 때의 느낌이야말로 가장 생생하고 오래가는 기억이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치료법이 같다고 해도, 각각 느끼는 것은 차이가 있을 터.

그것이 오히려 찾아온 한의사 선생들에게 더욱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 허준이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당연히 새로운 침술을 느끼고 싶어서였지만,

그렇게 입원실로 향한 허준.

“원장님, 오셨어요?”

입원실 근무를 맡은 도영철이 허준에게 인사했다.

본래 저녁 진료는 유도진 선생님이었으나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법.

허준 원장이 대신 와도 딱히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일이었다.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별일 없었죠?”

“네. 특이사항 없습니다. 진료 준비도 끝내놨고요.”

처음에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 어색하고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도 선생님도 한의원에 잘 어우러지는 중이었다.

이 만족스러운 느낌과 함께 허준이 입원실로 들어가자,

환자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어라, 허준 선생님이 오셨네요?”

“잘들 계셨죠?”

“그럼요. 모두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자자, 인사는 차차 하시고, 원장님도 진료 끝내고 빨리 들어가서 쉬셔야죠.”

도 선생이 깔끔하게 정리를 마치고 시작된 진료.

허준이 침을 꺼내 들고 앉아 있는 환자의 엄지발가락에 침을 꽂았다.

검게 죽은 엄지발가락으로 들어가는 침.

딱딱하게 굳은살을 뚫고 들어갈 때의 질감 그대로였다.

‘손끝의 느낌은 그대로다.’

조금이라도 달라진 것을 느끼기 위해서 허준이 집중했으나,

감각적으로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침을 하나, 둘···

검은 엄지발가락이 고슴도치처럼 변해가는 와중에 무언가 찾아낸 허준.

‘설마...?’

미세하지만, 손에 들려 있는 침과 발가락에 꽂힌 침의 온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새 침이 일반적인 금속의 차가움이었다면 환부에 있는 침은 그보다 미묘하게 조금 더 차가운 느낌.

허준이 다른 침들을 만지면서 비교해봤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보사의 효능이 증가한다고 했었지.’

화상은 상처에 화기가 있다고 하고 동상은 한기가 있다고 했으니.

허준이 놓은 침이 지금 동상의 한기를 빼내는 중이었기에 느껴진 차이였다.

허준에게 있어서 이 느낌은 그야말로 또 하나의 새로운 감각.

이 오묘한 감각에 허준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도영철.

‘원장님이 가끔 이상한 표정을 지으신단 말이야...’

하긴 사람이 항상 밝은 표정으로 지낼 수는 없겠지.

도영철이 그런 눈으로 보는지도 모른 채, 허준이 히죽히죽 웃으면서 다음 환자를 향해 나아갔다.

그냥 지금이 즐거웠다.

*   *   *

월요일.

주말 간 홀로 입원실 환자들 진료에 주문 받은 보약까지 달인 허준.

‘벌써 설렌다.’

출근길에 나선 허준의 심정이었다.

동상과 화상이 아닌, 다른 환자들의 진료를 빨리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출근한 허준.

허준의 얼굴을 본 김예진과 유도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따라 원장님 기분이 유난히 좋아 보이는 것 같은데요?”

“동의합니다. 근래 들어서 가장 좋아 보이는 것 같군요.”

그 말대로 허준은 행복한 얼굴로 찾아오는 환자들의 진료에 흠뻑 취해있었다.

오후 진료까지 달리던 허준을 멈춰 세운 것은,

<날고 싶은 사나이>

* 진행도 : 0%

* 보상 : 포인트 5000

어디 보자.

이름은 김찬용, 증상은 햄스트링 파열.

허준이 원장실로 들어선 김찬용을 살폈다.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굵기의 허벅지.

‘운동선수인가.’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을 만큼의 굵기다.

늘씬한 여자의 허리보다 굵었으니까 말이다.

“이리로 앉으시죠.”

이미 유명하다는 한의원 몇 군데를 다녀봤어도 딱히 효과를 보진 못한 김찬용.

그랬기에 이번에도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의사인 삼촌이 추천했으니 혹시나 싶었다.

“허벅지 파열이라 적어주셨는데, 조금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허준의 물음에 김찬용이 벌어졌던 일들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축구를 하다가 처음 다친 날, 그리고 완치 이후에 재부상.

그리고 준비해온 것들을 가방에서 꺼내 허준에게 넘겼다.

X-RAY를 비롯한 병원에서 가져온 검사 결과들이었다.

허준이 그중에 X-RAY를 살폈다.

본래 한의대에서도 기본적으로 X-RAY 보는 법을 가르치기에 보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언뜻 보기에는 큰 문제는 없어 보이네.’

하지만, 설명대로라면 무릎 위 뒷부분에서 처음 시작된 것일 터.

다른 검사자료를 보면 조금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을 텐데. 그것까지는 불가능한 허준이었다.

“한 번 만져봐도 될까요?”

“아, 네.”

김찬용이 바지를 벗고 엎드렸다.

허준이 그 허벅지를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축구선수라기에 예상은 했었지만, 실제로 보니 어마어마한 근육이었기 때문이다.

바꿔말하면 환부도 그만큼 깊숙한 곳에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손에 감각을 집중시켜 눌러본 허준.

두꺼운 근육의 벽 너머로 단단하게 긴장한 근육의 결이 느껴져 온다.

‘이런 건 처음 보네.’

분명히 무언가 있는데, 근육의 벽이 그것을 지키고 있었다.

때문에, 손의 감각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뜻.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 단단하게 뭉친 근육 안쪽의 상태가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병원에서도 수술을 권한 것이겠지.

그렇다면 지금 먼저 해야 할 것은,

허준이 자리로 돌아가며 말했다.

“일단 침으로 뭉친 근육부터 풀어보도록 하죠.”

*   *   *

그날 저녁.

허준이 유도진 선생과 고요한 선생에게 잠시 진료를 맡기고 HS정형외과를 찾았다.

물론, 손에는 시장에서 산 작은 화분도 하나 들려 있었다.

그래도 처음 가는데 빈손으로 가자니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안녕하세요. 원장님.”

“여기까지 어쩐 일로 오셨어요?”

김형서가 허준이 찾아오자 반겼다.

“사실은 제가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싶어서 왔습니다. 혹시, 잠깐 시간 괜찮으실까요?”

“물론이죠. 우리가 보통 사이도 아니고.”

“감사합니다. 참, 이거 받으시죠.”

허준이 작은 화분을 건넸다.

“그냥 오셔도 괜찮은데, 뭘 이런 것까지. 어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이것 때문입니다. 제가 이쪽으로는 잘 몰라서요.”

허준이 김찬용이 가져온 것을 김형서에게 보였다.

익숙한 그 자료들을 보고는 김형서가 누군지 단번에 눈치챘다.

‘찬용이 자료잖아?’

“어떻습니까?”

김형서가 최대한 상세하게 허준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의사이자 환자의 가족으로서.

“이쪽으로 보시면 그러니까 여기. 이곳이 처음 파열된 자리이고 회복되는 과정에서 또다시 무리가 가면서 이 윗부분에 다시 파열이 발생한 거죠. 그렇게 되다 보니 근육이 섬유화가 돼서 여기는 아예 서로 엉겨 붙어 버린 모양이고요. 그 덕분에 불편감 및 통증 그리고 제대로 된 운동능력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김형서의 설명에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을 들으며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니, 어떤 모양새인지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와보길 잘했어.’

“그렇다면, 만약에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치료하시겠습니까?”

“어... 당연히 수술밖에 없죠.”

“수술이라...”

“칼을 안 대고는 아마 치료할 방법이 없을 겁니다.”

“그렇군요.”

“큰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떠나가는 허준의 뒷모습을 본 김형서가 중얼거렸다.

“허, 지금 찬용이 고칠 방법을 찾으려고 여기까지 직접 찾아온 거야?”

그것도 동네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한의사가 이렇게까지 나오니 살짝 당혹스러운 김형서였다.

그런 허준이 한의원으로 돌아가면서 결정을 내렸다.

조금 위험하지만, 설명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떠올린 방법.

‘도침이라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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