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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80화 (81/230)

< 80화. 시작이었다 >

80화. 시작이었다

도침의 유래는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 중국의 한 의사를 찾은 환자.

둔기로 인해 으깨진 손을 가진 그는 이미 치료가 끝난 상태였으나, 손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찾아왔다고 했다.

근육과 인대들이 회복하는 과정에서 서로 엉겨 붙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기존의 침과 약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상황.

그렇다고 찾아온 환자를 내칠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

의사가 고민 끝에 새로운 치료방법을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주삿바늘로 골막과 유착된 인대를 한 땀 한 땀 떼어냈던 것.

한의학의 침과 현대의학의 수술요법이 합쳐져 탄생한 일종의 한의학적 수술요법.

이것이 도침치료였다.

이 외과적인 침술은 ‘마의’ 백광현이나 화타, 조선 시대 때의 어의들도 굵은 침을 사용해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었으니, 그런 치료법들이 현대에 재발견 된 거라 볼 수 있었다.

‘어쨌거나 이 도침이라면 지금 김찬용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치료법을 찾았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도침을 사용했을 때 생기는 문제.

도침은 말 그대로 침 앞에 칼날이 달렸기에, 잘못 사용하면 몸 안에 큰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현대의학의 수술처럼 절개를 통해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하는 수술이 아닌, 오로지 손의 감각으로 하는 치료였으니까 말이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동맥같이 굵은 혈관을 찢을 수 있는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하지만 지금의 나라면 문제없어.’

기연으로 얻은 엄청난 감각이 이것을 상쇄시켜 줄 터.

허준은 확신할 수 있었다.

다음은 바로 김찬용 환자가 원하는 것.

그가 원하는 것은 부상을 당하기 이전 수준까지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의 후유증도 없어야 한다는 뜻이었으며 그것은 곧 얼마나 정확하게 실행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허준이 김찬용의 진료를 보면서 느낀 점을 떠올렸다.

일반적인 환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크기와 근육의 밀도.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하자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연습밖에 없겠군.’

허준이 직접 만지며 느낀 김찬용의 허벅지와 김형서 원장이 자료들을 보며 상세하게 해준 설명.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인체해부도의 허벅지 부분을 참고하면서 침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손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해부도를 비롯한 현대의학의 검사자료들이 침이 갈 수 있는 최대한 안전한 길들을 찾게 해주었으며, 김형서의 설명은 침이 도착해야 할 목적지를 안내한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작된 트레이닝은 김찬용 환자의 치료를 위한 길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   *   *

이렇게 허준이 김찬용과 환자들의 진료에 집중하는 동안, 허준한의원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었다.

허준한의원에 자문으로 합류해주신 김정우 선생님의 제안 때문이었다.

“이 기회에 입원실 건너편에다가 탕전실을 만들어 운영하는 게 어떤가?”

본래 그곳에는 동네의 작은 교회가 있던 자리였는데, 재개발 탓인지 자리를 옮길 생각이라며 나간다는 의사를 표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뭐, 재개발로 인해 교인들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그렇지 않아도 탕약이 밀려 최근에는 허준뿐만 아니라 유도진 선생도 종종 초과근무를 하기 일쑤였으니,

타이밍이 시기적절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2층의 탕전실.

깨끗하게 마감 처리된 탕전실에는 옹기탕약기가 무려 16개에 포장기도 2개나 있는 데다가, 대량의 약재를 보관할 수 있는 창고는 지금보다 압도적인 양의 약재를 보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어떤가?”

“정말... 좋네요.”

처음 공사가 끝난 뒤에 허준이 감격스러운 눈으로 완성된 탕전실을 돌아봤다.

한의원의 규모도 커지고, 이곳에서 탕약을 달이면서 얻을 수 있는 포인트를 생각하니 벌써 설렜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네가 준 공진단과 보약 덕분에, 기력이 많이 회복 되었다네. 그래도 진료는 조금 무리인 것 같고, 향긋한 약재들 냄새나 맡으면서 불이나 보고 있을 생각이네. 대신에, 탕약으로 얻은 매출의 일부는 내가 가져 가도록 하지. 투자금과 인건비, 월세 대신으로 말이야.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조건 같은데 어떤가?”

탕전실 운영을 김정우 선생님께서 맡아주신다고 하셨으니, 허준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돈을 안 들이고 탕전실을 운영할 수 있었으니, 이보다 좋은 조건이 또 어디 있으랴.

물론, 탕약으로 얻은 매출 일부를 나누기로 했지만, 정우 선생님의 이름을 듣고 올 사람들까지 생각한다면 결코 남으면 남았지, 손해 보는 일은 없을 터.

그렇게 시작된 새로운 탕전실의 운용.

주간의 보약과 탕약 주문은 김정우 선생님께서 책임져 주셨고, 진료 마감 이후에는 바통을 이어받아 허준과 가끔 유도진 선생이 이어받았다.

게다가 1층에 있던 탕약실의 자리에는 새로운 진료실이 만들어지면서 기존에 있던 부원장실 자리에는 치료실의 개수가 늘어났으니, 더 많은 환자의 진료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진료가 끝난 허준이 탕전실로 향해 김정우에게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자네도 오늘 수고 많았어.”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도와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한동안 며칠씩 밀렸던 탕약들이 이제는 하루 이틀 내로 쉽게 처리가 되는 수준.

게다가 보약을 맞추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중이다.

“이 정도로 뭘. 그보다, 자네 한약재 가격도 올라갔는데, 탕약 가격을 올릴 생각은 없는가?”

“네. 이 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망설임 없는 허준의 대답에 김정우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자세야. 그건 그렇고 설 연휴에는 어찌 할텐가?”

“아, 저희는 이벤트 대신에 보약이나 탕약 가격할인 정도로만 하려고 합니다.”

“그거 말고.”

“그럼, 무얼 말씀하시는 것인지?”

“뭐라니, 이제 설 연휴가 코앞인데 한의원 식구들 휴무를 정해야 할 것 아니겠나.”

“아...”

“지금은 이전과 다르게 한의원 규모가 커진 것을 잊지 말게. 작년처럼 자네 혼자서 계속 한의원을 지키는 것과는 다르니까 말이야. 이젠 늘어난 식구들도 생각을 해야지. 사람은 쉬지 않고 일할 수는 없는 법이야. 자네도 연휴 때 가족들 얼굴이라도 보고 오고 말이야.”

김정우가 묘한 눈빛으로 허준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 환자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네처럼 너무 환자들만 생각하다 보면 정작 본인에게 소홀해지기 마련이라네. 그러다 보면 언젠가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하는 말이야.”

지난 추석 연휴 이후에 잠깐 부모님 얼굴을 본 뒤로는 가끔 카톡이나 한두 개 보냈던 허준이었다.

그래도 그전에는 전화라도 종종 했었는데, 기연을 얻은 뒤부터는 오히려 연락조차 줄어들었으니,

환자들의 진료와 한의원의 업무 그리고 혜민서 업무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들의 중심에 서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 오랜만에 가족에게 다녀와야겠어.’

허준이 작년에 아버지의 일을 떠올렸다.

직업병으로 생긴 가벼운 손목 통증.

침과 뜸으로 완치가 되었다고 동생에게 듣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들은 것이지 직접 본 것은 아니지 않던가.

이번에는 보약이라도 달여서 가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 선생님들도 휴식이 필요하겠지.’

아무래도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온 허준한의원에 제대로 된 휴식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한 번에 갈 수는 없었으니.

순서를 정해서 하루 이틀의 짧은 휴식이 아니라 완전히 충전할 수 있도록 휴가제도를 생각하는 허준이었다.

새로운 탕전실에서 향긋한 탕약의 향을 맡으며.

*   *   *

운동복을 입은 두 남자의 손에는 김이 나는 차가 들려있었다.

김찬용과 팀 코치 장진우였다.

“찬용아.”

장진우가 먼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대충 그의 표정과 분위기만으로도 썩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설 연휴 끝나고 리그 시작하는 거 알지?”

김찬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모르겠는가. 겨울이 끝나고 3월쯤이면 리그 개막전을 시작으로 시즌이 이어지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그가 저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번에 감독님과 이야기를 좀 해봤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치료 기간이 계속 늘어나서 말이야...”

선수 시절 때부터 형, 동생 하던 사이였던 장진우.

착한 성품상 뒷이야기를 줄였지만, 김찬용은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굳이 그의 입이 아니더라도 이미 팀 내에서 어느 정도 소문은 돌기 마련이었으니까 말이다.

“괜찮아요. 형.”

딱딱한 김찬용의 대답.

그런 그가 답답한 장진우였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치료는 꼬박꼬박 잘 받고 있는 거 맞지?”

“네.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 준비 잘해. 아마 설 연휴 끝나고 시즌 시작 전에 연습경기가 있을 것 같은데, 그거 끝나고 계약 이야기가 나올 것 같으니까.”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해요.”

김찬용이 차를 마시고는 다시 운동장으로 향해 걸어 나갔고,

장진우는 그런 김찬용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당분간 절대 무리하면 안 됩니다. 간단한 운동 정도로만 움직여 주세요.”

허준의 말에 따라서 간단한 기초체력 운동만을 하는 김찬용.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설 연휴와 그 이후로 며칠 정도, 그 안에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 다니는 한의원에서 맞은 침이 효과가 있었다는 점이다.

딱딱하게 긴장해 있던 허벅지가 많이 물렁물렁해진 것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일과를 끝내고 허준한의원을 찾은 김찬용.

허준이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원래부터 무뚝뚝한 편이었지만,

오늘따라 그의 표정이 무겁다.

허준이 김찬용의 허벅지를 손으로 눌렀다.

장침으로 치료가 되기 전에 비하면 탄력이 많이 살아난 상태.

‘이제 슬슬 도침을 사용할 때가 왔군.’

그때,

“선생님. 이 정도면 훈련 강도를 높여도 괜찮지 않을까요?”

매일같이 몸을 움직이는 운동선수의 특성상, 본인의 컨디션은 본인이 가장 잘 아는 법이었으니.

다리를 움직여 본 김찬용이 허준에게 물었다.

허준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직 안됩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치료를 할 생각이거든요.”

“본격적인 치료라뇨?”

“오늘부터는 도침을 함께 사용할 생각입니다.”

허준이 도침을 꺼내 들고 설명을 이었다.

김찬용이 그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일종의 수술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거군요? 그만큼 위험성도 있고요.”

“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허준의 자신만만한 대답 때문일까.

아니면 최근에 좋아진 컨디션 때문일까.

왠지 믿음이 가는 허준에게 김찬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 인제 와서 수술을 선택하기에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좋습니다. 해보도록 하죠.”

그렇게 치료실.

엎드린 김찬용의 허벅지에 뻘건 소독약을 바른 허준.

이어서 도침을 꺼내 들고는 지난 며칠간 매일같이 트레이닝 해온 상황을 떠올렸다.

망설임 없이 들어간 도침이 큰 덩어리의 근육을 뚫고 안쪽까지 들어갔다.

집중을 시작한 허준의 귀에는 한의원에 은은하게 들리던 피아노 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되었다.

‘여기다.’

머릿속의 환부와 손끝에 느껴진 감각.

허준의 도침이 미묘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며 치료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한 차례 치료를 마치고 김찬용을 내려다본 허준의 눈에는 30 언저리에서 멈춰있던 진행도가 올라가 있었다.

치료 효과가 있다는 뜻

성공이었다.

‘효과가 있어.’

허준이 미소와 함께 새로운 도침을 꺼내 들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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