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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91화 (92/230)

< 91화. 보고 싶어서 말이야 >

91화.  보고 싶어서 말이야

봉침은 정제한 벌의 독을 사용해 인체의 면역기능을 강화시켜 질병을 치료한다.

정제라는 단어 때문에 근대에 들어서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예상과는 다르게 꽤 오래된 치료방법이다.

히포크라테스가 언급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염증과 통증성 질환에 탁월했으니까.’

특히 페니실린의 1,000배나 되는 소염작용을 시작으로 죽어가는 신경이나, 살균, 조직의 생성 및 파괴 등 여러 가지 효능을 지니고 있다.

다만, 이렇게 좋은 봉침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주의사항이 있었는데,

바로 봉침을 사용하면 안 되는 사람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심하면 면역성 쇼크인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인해, 심정지나 호흡곤란의 증세로 이어져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으니, 사용 전에 미리 테스트해야만 했다.

‘물론 낮은 확률이기는 하지만, 본인이 걸리면 그 낮은 확률도 100%가 되는 것이니.’

그래서 치료실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

허준이 정제된 극미량의 봉독을 박유진의 손목과 팔꿈치 사이의 피부 아래에 살포시 투여했다.

15분 정도 지나면 면역반응을 알 수 있을 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치료실을 컨트롤 중인 김 선생에게 부탁했다.

“김 선생님. 3번 치료실 환자분 신경 좀 써주시겠어요?”

“알겠어요. 원장님.”

그렇게 15분이 지나고,

알림과 함께 나타난 허준.

허준이 박유진의 팔을 비롯해 이곳저곳을 살폈다.

봉침을 맞은 부위가 모기에라도 물린 듯이 살짝 봉긋하게 부풀어 오른 거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모습.

“혹시, 가슴이 답답하다던가, 쿵쾅거린다던가 그런 느낌은 없으시죠?”

“네. 근데, 여기 주사 맞은 곳이 조금 간지러운 것 같아요.”

“좋은 반응입니다. 그렇다고 긁지는 마시고요.”

좋은 반응이었다.

보통 이렇게 간지럽거나, 살짝 쑤시는 정도의 통증이 동반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으니까 말이다.

‘봉침을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겠어.’

하지만, 봉침을 놓아야 할 부위가 부위인 만큼,

농도는 조금 약하게 써야겠네.

얼굴이 부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봉침을 이용한 치료에 거부감을 보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허준이 결정을 내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배농 치료부터 하고, 봉침과 뜸 순으로 시작하죠.”

제대로 시작된 치료.

배농 치료로 시원하게 콧물을 한 컵 가득 쏟아낸 박유진.

‘어? 진짜 시원하네?’

마치 스프레이를 처음 뿌렸을 때의 그 느낌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시원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손에 들려있는 컵에는 누런 콧물이 가득했지만.

띠- 띠- 거리는 알람 소리와 함께,

치료실 커튼이 열리며 허준이 나타났다.

“어때요?”

“한방 치료는 처음인데, 엄청 상쾌하네요. 스프레이 뿌린 것 같아요.”

“아마, 스프레이보다는 조금 더 오래 갈 겁니다. 이어서 치료할게요. 이쪽으로 편하게 누워보시겠어요?”

허준이 봉침을 가져와 누워있는 박유진의 얼굴 쪽으로 다가갔다.

이어서 콧방울 위에 있는 영향혈에 주사기를 천천히 찔러 넣었다.

물론, 손끝의 감각에 주변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집중한 채로.

‘여기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살포시 손가락에 힘을 주어, 봉독을 투여했다.

양쪽으로 봉침 치료가 끝나고,

생각해둔 폐경락의 혈 자리에는 조그마한 뜸을 붙였다.

이 뜸들도 전부 약재와 함께 새로 받아온 것이었다.

직접 제조한 수제로, 정우 한의원에서 사용했던 제품이라고 한다.

물론, 중국산보다 그만큼 가격은 비쌌지만,

그래 봐야 얼마나 비싸겠는가.

뻥 하고 코가 뚫린 박유진이 진하고 구수한 쑥뜸의 향이 콧속으로 들어온다.

그러자, 언제나 약간 멍했던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 드는 것은 착각이었을까.

그렇게 치료를 끝내고 나온 박유진.

대기실에서 이민주가 먼저 치료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박유진이 그런 이민주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본 이민주도 같이 마주 웃으며 한의원을 나섰다.

“여기 진짜 좋네?”

“그렇지? 내 말 맞지?”

“어. 와보길 잘했어. 넌 대체 이런 데는 어떻게 찾은 거야?”

“그건 비~밀.”

“됐고. 기분이다. 같이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내가 쏠테니.”

그렇게 만족스러운 치료로 기분이 좋아진 박유진은 주머니도 가벼워졌다고 한다.

*   *   *

그날 저녁.

허준한의원 진료 마감에 맞춰서 김명훈이 한의원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진료 끝났는데- 어? 김명훈 관장님!”

김예진이 반갑다는 듯이 김명훈에게 인사했다.

윤다희에게 이야기도 들었을뿐더러, 종종 이렇게 한의원에 찾아오니 어느새 이웃사촌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이에요. 김 선생님. 원장님 계시죠?”

“네. 잠시만요.”

김예진이 원장실 문을 두드렸다.

“네~”

“원장님. 김명훈 관장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원장님. 오랜만에 왔습니다.”

“이리로 들어오시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

허준이 직업병처럼 김명훈을 위아래로 훑었다.

‘허벅지는 완전히 괜찮나 보네.’

“관장님은 갈수록 몸이 더 좋아지시는 것 같네요?”

“그래 보이나요? 요즘 들어 입소문 타고 회원들이 많이 늘어났거든요. 덕분에 제 운동량이 늘어났죠.”

“축하드려요. 역시, 김 관장님이라면 잘하실 줄 알았어요.”

“아닙니다. 다 원장님 덕분이죠.”

“에이~ 요요 없는 다이어트가 어디 약만으로 되나요? 그런 거 있으면 제가 여기서 한의원 하고 있겠어요? 가서 공장 만들어서 벌써 빌딩사고 남았을 겁니다.”

허준의 대답에 김명훈이 넉살 좋게 웃었다.

“참, 윤 선생님은 요즘 어때요?”

“아~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그랬는데, 파이팅 넘치고 좋습니다. 남편분도 열심히 구요, 윤 선생님도 아주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

“분위기는 어떤가요?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나요?”

“말도 마십쇼. 첫날이랑은 완전히 달라졌다니까요. 오죽하면 윤 선생님 부부를 보고 우리 직원들이 커플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고 할 정도라니까요?”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최근에 윤 선생 얼굴이 밝아졌다 싶더니만.

‘김명훈 관장 성격상, 과장은 조금 있을지 몰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네.’

생각했던 대로 좋은 효과가 나오는 중인가 보다.

이렇게 감정의 골이 메워질수록 뒤이어서 체력적인 부분도 자연스럽게 따라갈 터.

앞으로의 치료에 탄력을 받기 시작할 거라는 뜻이다.

“그거 괜찮은데요?”

“그래서 안 그래도 지금 만들어보는 중입니다.”

“그보다 어쩐 일로 오셨어요? 저녁에 보통 일하시느라 주말에만 오셨잖아요.”

“아~ 그냥 원장님 얼굴 본 지 오래된 것 같아서요.”

“음, 그 검도장 관장님이나 다른 분들도 잘 지내시죠?”

“네, 뭐. 다들 잘 지냅니다. 그보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김명훈이 허준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체육관으로 확장 제의가 들어와서요. 혹시, 지금처럼 파트너십 유지가 가능하신지...”

“물론이죠. 우리 함께 가기로 했잖아요.”

너무나 쿨한 대답에 김명훈이 잠시 눈을 껌뻑이더니,

“감사합니다. 원장님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셔서.”

“뭘요~ 어차피 서로 윈-윈 하는 관계잖아요. 게다가 무리한 다이어트 때문에 고통받으면서 찾아오는 환자들도 간혹 있어서요.”

“그렇죠.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제가 적절하게 조율해서 진행해 보겠습니다.”

*   *   *

유도진의 휴무와 김정우의 휴무가 겹친 날.

논문과 한의학적 치료에 관한 자료들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께서 무슨 일로?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허준한의원의 두 한의사가 만나 향한 곳은 처음 보는 집이었다.

다만, 북한산 언저리가 보이는 평창동에 있다는 것과 집 크기가 어마어마하다는 것 정도는 문이 열리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선생님. 여기는 대체?”

“음,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 일단 따라오게.”

대문이 열리고,

현관문에서 중년의 여인이 나와 인사했다.

“어서 오시죠. 기다리고 계십니다.”

역시나 밖에서 볼 때도 느꼈지만,

집안은 더욱 으리으리했으니,

‘대체 여긴 어디지?’

지난 몇 년간을 함께해왔지만, 이런 곳에 함께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선생님. 오셨습니까? 안방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엔 중년의 남자가 두 선생을 반겼다.

그렇게 안방으로 향한 세 사람.

방문이 열리고 침대에는 새하얀 백발의 노인이 누워있었는데,

“자네 왔나?”

“별일 없이 잘 지내셨죠?”

“그럼. 그 옆에 있는 젊은 친구는 누군가?”

“아~ 인사드리게.”

유도진이 영문도 모른 채, 일단 인사를 했다.

“유도진이라고 합니다.”

“음~ 그래. 자네가 바로 유도진이로군. 내 이름은 들었네.”

“예. 바로 그 친구입니다. 앞으로 저 대신에 어르신의 진료를 맡게 될 겁니다.”

“그렇구만. 그렇게 꼬장꼬장하던 정우 선생도 나이가 들으니 어쩔 수 없구만?”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맞네. 맞지. 반갑네. 나는 김희중이라고 하네. 앞으로 잘 부탁하지.”

그렇게 첫 만남 이후.

귀갓길의 차 안.

“선생님. 대체 저분이 누구신지? 아직 이해가 잘 안 갑니다.”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정우한의원의 진짜 VIP라고 할 수 있겠군.”

“설마...?”

“자네가 생각하는 그들이 맞네.”

유도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한의원에서 일하던 시절 간혹 들리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우 선생님이 봐주는 환자 중에 어마어마한 부자들이 있다더라.

알고 보니 지역 유지라더라, 어디 동네에 빌딩을 수십 개 가진 부자라더라 등등의 이야기였다.

“자네도 보았다시피 이젠 거동조차 불가능한 상태지만, 지속적인 진료가 필요한 상태이기도 하지.”

“하지만, 어떤 진료를 해야 할지는 잘...”

“너무 부담 갖지는 말게.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앞으로 남은 삶에서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살다 가는 것뿐이니까 말이야. 그러니 자네가 나 대신에 신경 좀 써주겠나?”

김정우가 유도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그때,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왜 접니까? 허준 선생도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저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는데.”

김정우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말투에서 유도진이 허준을 의식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야 내가 보기에는 자네가 적합하다고 느꼈네.”

유도진이 김정우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제가 맡도록 하죠.”

“그럼, 다른 환자들 얼굴도 보러 좀 가볼까나?”

그 시각.

허준한의원에서는 허준과 고요한이 진료를 맡고 있었다.

가벼운 염좌부터, 온갖 피부질환, 거기에 더해서 비염 환자와 다이어트나 보약까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요한 선생도 어느 정도 적응을 한 터라,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진료를 해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주 좋아.’

게다가,

「포인트를 2 획득하였습니다.」

「포인트를 3 획득하였습니다.」

···

직접 진료를 본 것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포인트들.

그 포인트들이 모여서 마침내 19000이 넘어가고 있었으니.

‘이거 이번 주 안으로 레벨을 올릴 수 있겠는데?’

기대감에 허준의 진료는 한결 더 힘차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날 진료가 끝나고,

녹초가 된 고요한 선생 대신에 허준이 입원실 진료까지 돌고 왔는데,

한의원에 반가운 손님이 와있는 것이 아닌가.

“어? 어르신.”

“오랜만이야.”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이기는, 내 약재들이 잘 사용되고 있나 확인하러 왔지.”

바로 한약재를 공급해주던 박용찬이었다.

“어르신이 제공해주신 약재들의 효능이 아주 좋아서 환자들이 이전보다 금방금방 떠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돈이 별로 안된다 이 말인가?”

“에이~ 그만큼 좋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어떻게 걸어 다니실 수 있으셨던 겁니까?”

“그럼, 그때는 수액 맞느라 잠시 앉아 있었던 거고.”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기는 진짜로 왜 오신 걸까.

“진료시간이 끝나고 와서 미안한데, 보약 한재 지어줄 수 있겠나? 자네 실력을 좀 보고 싶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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