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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03화 (104/230)

< 103화. 직접 가서 확인해 봐 >

103화. 직접 가서 확인해 봐

재개발이라니.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지.

허준이 김 원장을 바라보자,

속삭이느라 다가왔었던 김 원장이 한 발자국 물러서면서 말을 이었다.

“엊그제 최 대표님이 오랜만에 한의원으로 찾아오셨더라고. 그 양반이 조금 장사꾼 같은 면은 있지만, 또 후배들은 잘 챙기는 스타일이잖아. 그래서 오랜만에 같이 밥 한 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

최인호 대표와 김 원장이 돈독한 사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씩이나 같이 일해왔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오죽하면 그 자리를 김 원장님에게 헐값에 넘겼겠어.’

“그런데, 그런 말을 하더라고. 지금 요 앞에서 진행한 재개발 사업있지? 그게 생각보다 잘 됐다나 봐.”

그 말을 들은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최근에 사람들 사이에서 꽤 화제가 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쪽도 한 번 뭉쳐서 이참에 진행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나 보더라고.”

이쪽에도 앞쪽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동네였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최인호 대표님이 없는 말을 지어낼 사람은 아니니, 한 번 알아봐야겠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뭘 우리 사이에 이런 거 가지고. 참, 언제 한번 같이 점심이라도 먹자고. 윤 선생님께 맛있는 거라도 대접해 드려야지. 그래도 우리가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닌데.”

그 시각.

모임이 끝난 고요한과 밥이 한의원을 나서서 퇴근하는 중이었다.

“어땠어?”

고요한이 묻자,

밥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그렇지? 저도 처음에는 얼떨결에 유도진 선배따라서 참여하게 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거든.”

고요한이 맨 처음 유도진 선배를 따라서 참여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느낀 짜릿한 기분은 아직도 가슴 한쪽에 남아 있었다.

“맞습니다.”

밥이 완전히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 놀라웠습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 원장님이야 제가 같이 진료를 참관하다 보니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는데, 다른 혜민서 선생님들도 그에 못지않더라고요.”

밥이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답했다.

치료 사례들을 스스럼없이 공유하며 그에 관하여 질의응답과 함께 토론으로 이어지는 과정.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치료 사례들이 전부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보통은 근골격계나 순환계 또는 산부인과나 침구 등등, 어떤 한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마련인데, 이곳의 선생님들에게는 그 경계가 없었다.

‘동상 치료는 그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던 거였어.’

그때, 고요한이 밥에게 말했다.

“전부 허준 원장님 덕분이지.”

“원장님 말입니까?”

“당연하지. 지금 이렇게 체계적으로 시스템을 만든 게 원장님이거든.”

그러고 보니...

허준 원장님이 무언가 새로운 질환이나 사례를 소개하면, 참여한 모든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묻고 답하며 기록한다.

그렇게 새로운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그런 모습들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이 반복이 모이고 모여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더 좋은 진료로 이어지는 것.

‘이게 혜민서...’

처음 혜민서란 단체를 알게 되고 나서, 논문과 홈페이지에 올라온 강의 그리고 활동사진들을 보면서 흥분했던 밥이었다.

그 형태와 이유가 자신이 조국으로 돌아가 만들고 싶었던 단체의 모습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직접 겪어보니 이미 자신이 생각하던 수준의 단체가 아니었다.

지금 밥의 눈에는 혜민서의 선생님들 하나하나가 전부 괴물처럼 보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괴물들이 모여있는 엄청난 단체. 이것이 혜민서의 정체였다.

밥이 옆에서 걷고 있던 고요한 선생에게 물었다.

“저도 될 수 있을까요?”

“뭘?”

“혜민서 선생님들 같은 한의사요.”

그 물음에 고요한이 웃으며 밥의 어깨를 툭툭 하고 두드렸다.

“그걸 말이라고? 당연하지.”

단순히 어깨를 두어 번 툭툭 두드렸을 뿐이지만,

힘이 샘솟는 것이 느껴진 밥.

고요한의 대답이 이어졌다.

“좀 구르다 보면 다 하게 되어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따라와.”

오늘따라 고요한 선생이 든든하다고 느껴지는 밥이었다.

*   *   *

며칠이 지났다.

많은 환자가 허준한의원에서 진료를 거치면서 좋은 결과를 얻어 만족스러운 얼굴로 한의원을 떠나갔다.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물갈이가 되는 듯한 모습.

입원실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다 나으면 꼭 밥이라도 한 끼 해요!”

이런 인사와 함께 정든 입원실을 떠나가기 일쑤.

그것을 본 허준은 내심 기분이 좋았다.

직접 입원실 환자의 진료를 보지 않았음에도, 이제는 꽤 많은 환자가 수월하게 완치 이후 퇴원을 하는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밥 선생 또한 고요한 선생을 열정적으로 따라다니며 기대이상으로 노력해 주고 있었으니,

‘앞으론 더 많은 환자의 진료도 가능해 지겠는걸.’

여러모로 기분이 좋은 허준이었다.

더해서 이런 일들은 허준한의원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실제 혜민서 활동에 참여하여 치료법을 배우고 간 선생님들도 하나둘 완치에 성공한 것이었다.

「포인트를 2 획득하였습니다.」

「포인트를 1 획득하였습니다.」

간혹 이렇게 메시지가 날아올 때면, 아니나 다를까 성공했다고 고맙다면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으니,

덕분에 꽤 쏠쏠하게 포인트를 모으는 허준이었다.

지난 주말에는 처음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한 밥 선생이 다시 한번 혜민서의 선생님들이 괴물이라는 것을 느끼고 돌아온 하루였다.

물론, 몸살이 나서 일요일 내내 누워있었던 것은 덤이었고.

이런 평범하면서 반복되는 일상들이 지나가고 찾아온 허준한의원의 첫 번째 변화는 바로 간호조무사 선생님의 충원이었다.

‘최유니 선생님과 이수영 선생님.’

이력서도 깔끔하고,

김예진 선생님도 맘에 드는 눈치였다.

이렇게 변화와 함께 어김없이 이어진 허준의 일상.

원장실 문이 열리며 김명자 할머니가 들어왔다.

허준이 김명자 할머니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녀는 허준한의원의 최고 단골 환자였으니까.

“오랜만에 오셨네요?”

“요즘에 날 따듯해지니까 워낙 바빠서 말이여. 게다가 이렇게 시간이 안 맞으면 어쩔 수 있나 가게 열어야 하는디.”

“그럼요.”

“그래도 다른 선생들도 이제 제법 손재주가 좋아졌어. 다들 시원한 거 보니.”

허준이 웃으며 답했다.

“당연하죠. 여기 동네 한의사 선생님들 진짜 열심히 공부하거든요.”

“그런데, 저짝이 이번에 새로 온 소문의 그 선생님인가 봐?”

“네. 맞아요.”

“호오...”

김명자 할머니가 밥 선생을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허준 선생이랑 아주 쏙 빼닮았구먼.”

“네? 제가요?”

어떻게 완전히 외국인의 모습인 밥 선생과 전형적인 한국인의 자신이 빼닮을 수 있을까.

도저히 알 듯 모를듯한 말에 의문을 제기하려던 찰나,

“아, 그보다 빨리 침이나 놔줘.”

김명자의 말이 이어졌다.

“할머니. 그래도 간단하게 진료 보셔야 하지 않겠어요? 오랜만에 오셨는데.”

“좀전에 선생이 말했잖어. 여기 골목에 있는 다른 한의사 선생도 잘 본다고. 엊그제 이미 태용네에서 진료 다 보고 왔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여기 등짝이랑 허리에 침이나 시원하게 놔줘.”

“알겠습니다. 그럼, 치료실로 가시죠.”

1번 치료실.

자연스럽게 드러누운 김명자 할머니의 등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면서 뭉친 근육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이어서 한치의 망설임 없이 찔러넣는 침.

한방, 두 방···, 총 여덟 방.

집중해서 침을 다 놓은 허준이 그제야 김명자 할머니에게 물었다.

이 시장 골목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니 어쩌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근 며칠간 단골 환자들에게 재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는데, 아직 아무런 수확이 없었기 때문.

“참, 할머니. 혹시...”

“혹시?”

“앞쪽에 말고 지금 할머니 영업하시는 가게 자리, 재개발한다거나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 없으세요?”

“재개발? 그게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여?”

“아, 누군가 이쪽이 재개발될 수도 있다고 해서요.”

“그래? 나는 금시초문인디.”

‘할머니도 모르시는 건가?’

아니, 어쩌면 어렴풋이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를 들었던 걸 수도 있었다.

확인이 정확히 되지 않았으니, 최 대표님도 한번 알아보라는 식으로 말한 것이겠지.

그때,

“그런 건 정우 그 양반에게 물어보면 되지. 그 양반이 부동산 업자들 잘 알잖아.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쯧쯧.”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이 상가에 있는 부동산 실자님도 김정우 선생님과 엄청나게 친했었지.

허준이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모든 일을 다 처리한 부동산 실장을 떠올렸다.

그래. 김정우 선생님에게 물어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

김명자 할머니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한의원을 떠났고,

진료 마감 시간까지 쭈욱 이어진 진료를 보던 허준의 앞에는 윤다희가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조심해야 하는 시기이다 보니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리라.

허준이 맥을 잡으며 집중했고,

여전히 그때의 맥과 같았다.

‘다른 장부들도 모자람 없고, 넘침도 없다. 조화가 좋아.’

실제 윤 선생의 얼굴빛도 그 어느 때보다 좋았으니,

이제 해줄 수 있는 것은 먹고 있던 보약을 다른 한약으로 바꾸는 것 정도.

아무래도 임신 전과 임신 중의 한약은 다를 수밖에 없다.

배 속의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약재를 사용할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보생탕, 안태음, 달생산, 불수산 등이 있지만.’

허준의 머릿속에 일반적으로 처방되는 임산부용 한약들이 떠올랐다.

달생산과 불수산은 임신 말기에 원만한 순산에 도움이 되니 제외하고, 안태음은 복통이나 태동불안에 효과가 좋다.

마지막으로 보생탕은 입덧에 효과가 좋은데, 아직 그런 징조는 안보이니, 여러모로 가장 무난한 사물탕이 안정적이라 할 수 있겠네.

“공진단은 지금 안 드시고 계시죠?”

“그럼요. 그때, 원장님께서 이제부터 먹던 거 다 끊으라고 해서 그 이후로는 한 알도 안 먹었어요.”

“잘하셨어요. 그럼, 우선은 간단하게 사물탕을 처방해 드릴 테니, 나오면 바로 가져가서 드세요. 이건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영향이 없는 약이거든요.”

“감사합니다. 원장님.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고.”

“뭘요. 저희 식구잖아요.”

마지막 진료를 끝낸 허준.

2층의 탕전실로 향하니 유도진 선생이 탕약을 달이고 있었다.

“요즘 아침저녁으로 탕전실에 계시네요?”

“오셨어요? 생각보다 주문이 조금 많아서요.”

유도 진이 짧게 답했다.

지금 달이고 있는 탕약들은 전부 김정우 선생님에게 소개받은 VIP 환자들의 것.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괜히 말이 길어졌다가는 쓸데없는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최대한 말을 줄인 유도진이었다.

허준이 묵묵히 탕약을 달이는 유도진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짧고 차갑게 말하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실력 하나는 나무랄 때 없지.’

그렇게 한의원의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었다.

*   *   *

배우 강수연.

허준한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결 부드러워진 그녀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생각해보라.

맨날 까칠하게 대하고 만사가 귀찮다는 듯이 대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눈에 생기가 돌면서 부드러워졌으니까 말이다.

“우중아. 너 수연이랑 친하지? 걔 요새 무슨 일 있어?”

기획사 대표가 묻자,

앉아 있던 최우중이 피식거리며 답했다.

“있겠죠? 봐봐요. 얼마나 긍정적으로 변했는지.”

“아무래도 안 되겠어. 매니저한테 가서 좀 떠보라고 해야지. 이거 혹시 스캔들 나고 그런거 아니야?”

그렇게 강수연의 매니저.

“혹시 요즘에 무슨 일 있으세요?”

“응? 아무 일도 없는데.”

“예전이랑 너무 달라지신 것 같아서요. 병원에 물어봤더니 최근에 방문도 안 하셨다고 하고...”

매니저가 강수연을 떠보기 위해서 물었다.

“아~ 그냥 괜찮은 한의원 한 군데 찾았거든.”

“한의원이요? 한의원에 다니실 거라면 진작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유명한 한의원에서 협찬도 많이 들어왔던데.”

“됐어. 여기면 충분해.”

대충 둘러 말하는 강수연.

그런 그녀에게 조금 더 꼬치꼬치 캐물은 뒤에 매니저가 사장에게 보고했다.

“뭐? 한의원? 일단 알았으니까,  직접 가서 확인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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