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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08화 (109/230)

< 108화. 역시는 역시네 >

108화. 역시는 역시네

원장실로 돌아온 허준이 모니터에 올라온 차트를 확인했다.

‘김숙자?’

분명히 차트에 처방전이 있는 것으로 보아하니 초진환자는 아닌 것 같은데, 낯선 이름이었다.

옛날 분들 이름이야 숙자, 말자, 말숙 등등 워낙 많으니 제대로 기억을 못 하는 것 일지도.

처방전을 한번 살펴보니,

이전에 김정우 선생님이 진료를 보신 듯했다.

‘보약을 처방하셨네?’

그게 벌써 한 달 가까이 되었으니, 다시 보약을 지으러 오셨나 보군.

허준이 대충 내용을 확인하고 데스크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들어온 김숙자.

허준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확인했다.

부리부리한 눈, 새하얀 얼굴 그리고 육중한 몸.

이 시장 골목에서 용하다는 바로 그 보살이 아니던가.

‘김숙자 씨가 저 사람이었어?’

그런 그녀의 옆으로 나타난 퀘스트.

<병과 병 그 미묘한 사이>

* 진행도 : 0%

* 보상 : 포인트 5000

놀람은 잠시 뿐,

이미 구를 대로 구른 허준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안내했다.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오시죠.”

그렇게 마주 앉은 아기보살, 아니 김숙자 씨.

“안녕하세요. 보약 좀 맞추려고요. 지난번에 가져간 보약을 벌써 다 먹었지 뭐에요.”

“그러셨군요. 전에 맞춘 보약 드시면서 따로 불편하거나 증상은 없으셨습니까?”

“네. 저야 뭐, 항상 비슷해서요. 선생님께서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아기보살님을 모시다 보면 몸이 여기저기 많이 축나거든요.”

“아... 그렇군요.”

무당에 대해서 허준도 조금은 알고는 있었다.

다큐멘터리라던가, 여기저기에서 생각보다 꽤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무속신앙이었으니까 말이다.

“일단 진맥부터 한번 잡아 보죠. 손을 이리로 올려주시겠어요?”

무당을 진맥해보는 경험은 허준도 처음인지라, 살짝 긴장한 허준이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눈을 감은 뒤 김숙자의 맥을 잡자,

‘뭐가 이래?’

각 장부의 맥이 날뛰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손끝에서 이어진 한 가닥의 실 같은 감각은 이 날뛰는 장부들의 맥 사이로 유유자적하게 흘러갔다 돌아온다.

한마디로, 장부들의 상태를 각각 나누어 보면 그 하나하나가 전부 문제가 있지만, 이것이 모이니 나름대로 하나의 순환을 이뤄 균형을 맞추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태가 가능한 건가.’

자칫 잘못 건드리면 이 균형이 깨질 터.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낸 뒤에 처방을 내려야겠어.

허준이 눈을 뜨며 손을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김정우 선생님의 처방전을 떠올렸다.

‘한약재가 가감된 십전대보탕이었지.’

즉, 각 장부들에 신경을 쓴 것이 아니라, 온몸의 활력을 돋구는 보약을 사용하셨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걸 그대로 따라 하기에는 나타난 퀘스트가 마음에 걸리는 허준.

그래.

다시 차근차근 내 방식대로 진료를 해보자.

아무리 진맥이 뛰어나도,

기본적으로 증상이나 불편감에 대한 환자의 이야기가 없으면 그것은 그저 현재 몸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에 불과한 것이었으니,

“김숙자 님.”

“네?”

“아까 보살님 모시다 보면, 몸 여기저기가 축난다고 하셨잖아요? 조금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숙자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뭐, 선생님께서는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이게 보살님을 모신다는 게 뭐랄까... 쉽게 설명하면 이중인격 같은 느낌이거든요. 몸은 분명히 제 몸인데, 제 안에 다른 존재가 있는 기분이에요.”

“그렇군요.”

“그렇게 생활하다 보면, 뭐 모시는 신마다 다른데, 저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어린 보살님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꼭 간식이나 기름진 음식들을 좋아하시더라고요. 예전에는 저도 괜찮았죠. 그땐 저도 젊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이 벌써 50이 다 돼가는데 자꾸 그런 걸 원하셔서 그런지, 배탈도 자주 나는 것 같고 피로감도 더 심해진 것 같고 그래요.”

이야기를 들은 허준이 무언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무언가 의심되는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혹시, 예전과 달라진 점은 없나요? 예를 들자면 화장실을 자주 간다든지. 목이 자주 마른다든지, 잠을 잘 못 잔다든지 하는 생활상에서 느껴지는 간단한 것들이요.”

“당연히 있죠. 보세요. 살도 많이 쪘고, 물도 자주 마시고. 피곤하면 입안이 자주 헐기도 하고요.”

좀 전에 느꼈던 맥들을 다시 떠올려 본다.

각각의 장부들이 전부 문제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또 괜찮아 보이는 상황.

이게 단기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진행되면서, 2명이 1명의 몸을 사용한 것처럼 생활해왔다면.

머릿속에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기 시작한다.

먹는 것과 잠자는 것.

그리고 살이 찌고, 목이 타면서 피로감은 갈수록 누적된다는 것까지.

그렇게 맞춰진 퍼즐이 내놓은 해답.

‘당뇨병.’

아직 병까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당뇨병이 되기 전 증상들이 모두 포함되면서 생활습관까지 전부 맞아떨어진다.

확실했다.

지금 김숙자 씨의 몸은 당뇨병이 오기 전 증상을 겪고 있는 것일 터.

당뇨병은 선천적인 1형과 후천적 요인에 의해서 발생하는 2형으로 나뉘었으니,

당연히 김숙자 씨는 식습관과 생활습관의 교정도 필요하겠지.

침과 뜸으로 간과 신장의 허증을 달래고, 혈당을 낮춰주는 효과가 좋은 황련이 들어간 탕약으로 다스려 치료하면 되겠군.

“지금은 보약이 아니라, 다른 처방이 피룡할 것 같은데요.”

“다른 처방이라면...?”

“침과 뜸, 탕약을 처방할 생각입니다.”

김숙자가 잠시 망설였다.

한번 한의원에 오는 것도 이렇게 어려웠는데, 과연 침과 뜸을 맞으러 자주 올 수 있을까 싶은 것이었다.

그런데, 또 그냥 보약만 먹자니 힘들었던 나날들이 떠오른다.

왠지 모르게 몸이 무겁고 피곤하면서 불쾌한 느낌.

“아마, 지금 치료받지 않으시면 나중에는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입원 치료를 해야 할 수도 있고요.”

그때, 주사란 단어 때문이었을까.

김숙자의 머리에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사 싫어.’

‘보살님 그러면 주사보다 침과 뜸이 낫지 않을까요?’

‘침도 무섭고, 저 아저씨도 무서운데...’

‘병원에 입원하면 주사를 매일 맞아야 하는데요?’

···

잠시 이어진 실랑이.

허준이 앞에 앉아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좌우로 흔들기도 하는 김숙자를 흥미롭다는 듯이 지켜봤다.

그러기를 잠시,

“좋아요... 그렇게 해주세요. 정말로 괜찮아지는 것 맞죠?”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마 그럴 겁니다.”

*   *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언제까지나 뜨거울 것 같던 태양 대신에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 차 있었다.

“어휴 지긋지긋한 비.”

“그러게 작년에는 마른장마더니 올해는 아주 시원하게 쏟아지던데.”

“저게 시원혀? 장사 종치게 생겼는데.”

“그래도 비 안 와서 땅 쩍쩍 갈라지는 것보다 낫지.”

장마 시작 삼 일째.

비가 시원하게 쏟아지다가, 또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찌 됐거나 습도는 높은 상태.

그런 와중에도 허준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의 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동네 단골 환자들의 발이 조금 끊겼지만, 반대로 이곳의 왕뜸이 입소문을 타면서부터 환자들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원장실의 허준과 그 앞에 앉아있는 여자.

허준이 증상을 다 듣고 나서 간단히 진맥까지 마쳤다.

‘미리 준비하길 잘했네.’

전형적인 장마 기간에 냉방병 증상이다.

앞에 있는 환자의 경우에는 그게 배탈과 연결된 듯싶었다.

“뜸치료 하도록 하죠.”

그렇게 치료실.

문이 열리자, 안에서는 쑥뜸이 타들어 가면서 내뿜는 향이 가득했다.

그만큼 많은 환자가 왕뜸의 효능을 만끽하는 중이란 뜻이다.

8번 치료실에 누운 여인이 옷을 갈아입고는 남 선생의 안내에 따라 배 부분을 드러냈다.

이어서 허준이 왕뜸기를 가져오고 준비된 쑥뜸에 손을 넣어 누워있는 환자를 떠올리며 손의 감각에 집중했다.

그렇게 한 움큼 꺼낸 쑥뜸.

허준이 그것을 뭉쳐 왕뜸기에 올리고는 불을 붙였다.

“이거 뜨겁지는 않나요?”

“네. 괜찮습니다. 냄새는 조금 나지만요.”

허준이 치료실에 있던 이수영 선생에게 말했다.

“알람 27분 맞춰났어요.”

“알겠습니다. 원장님.”

그렇게 다시 돌아온 원장실.

지금쯤이면 다 모였겠지.

며칠간 진료와 탕약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이 모아준 포인트가 어느새 이만큼이나 모여있었다.

보유 포인트 : 5017

‘2주 정도는 걸린다고 했지?’

뉴스에서 장마 기간이 2주 정도는 될 거라는 것을 떠올리며,

허준이 망설임 없이 구술에 포인트를 사용했다.

「‘구술 Lv. 5’에 5000포인트를 사용합니다.」

「‘구술 Lv. 5’가 ‘구술 Lv. 6’이 되었습니다.」

[구술 Lv. 6]

- 구술의 효능이 대폭 증가한다.

장마에는 뜸이 제격이겠지.

앞으로 찾아올 환자들은 더욱 많아질 테고 말이야.

그렇게 허준이 모니터로 고개를 돌리고 다음 환자의 진료를 시작했고,

대기실에서는 치료실에서 왕뜸을 뜨고 나온 환자들의 감탄이 이어지고 있었다.

“대박... 몸이 완전 가벼운 것 같아요. 막 끈적하고 무겁고 그랬는데.”

“그렇죠? 우리 한의원 원장님께서 새로 주문 제작한 뜸인데, 효과가 아주 좋더라고요. 저도 떠봤거든요.”

허준이 직접 테스트한 뒤로, 식구들에게도 최근에 종종 처방했기에 데스크에 있던 최 선생이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게다가 제가 사진 찍었는데 비주얼도 아주 이쁘더라고요.”

환자가 자신의 배 위에 올라간 왕뜸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 제 블로그 같은 데에다가 올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유도진이 지나가다가 그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괜한 걱정이었나 보네.

‘역시는 역시네.’

그렇게 허준한의원의 왕뜸에 대한 이야기가 장맛비 소리와 함께 퍼져나가고 있었다.

*   *   *

그 시각. 기획사 대표 김강현.

최근에 한의원을 다니면서 한결 좋아진 그의 얼굴에 앞에 앉아있던 최우중이 물었다.

“형, 얼굴 좋아 보이네?”

“그래?”

매일 같이 보면 변화가 나타나도 그 변화를 제대로 눈치채지 못하는 법이었으니,

어느새 통증에서 많이 해방된 김강현의 얼굴이 밝아진 탓이었다.

“그래. 내 말 맞지? 거기 가보니까 장난 아니지?”

“인정.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거 봐. 그리고 형이 걱정하던 그런 문제는 거기에 있을 수가 없다니까?”

최우중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김강현이 되물었다.

“왜?”

“왜냐고? 형은 아직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

씨익 웃으면서 대답하는 최우중.

그리고 그것을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던 김강현이 코웃음을 쳤다.

“야. 됐고. 슬슬 내려가야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둘이 향한 곳은 기획사 지하에 있는 연습실.

회사에서 최근에 새롭게 추진 중인 프로젝트로 아이돌 그룹을 양성 중인 김강현이었다.

아무래도 회사 규모가 조금 커지면서 일종의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어쩌면 본인의 어렸을 적 기억에 의한 욕심도 조금은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첫 걸 그룹을 준비하면서 오늘이 중간 점검 날이었으니,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김강현과 최우중을 반겼다.

“대표님. 오셨어요?”

“어, 고생이 많아. 박 팀장.”

그 앞으로는 다섯 명의 여자가 줄 맞춰 서 있었고,

김강현과 최우중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래그래. 그동안 고생 많았지?”

“아니에요!”

씩씩한 대답에 이어서 그동안 연습해온 결과물을 선보이는 아이들.

그것을 본 김강현과 최우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네.

하지만 아직 완전하지는 않았으니,

김강현의 눈에는 춤 선이 먼저 밟혔고, 배우인 최우중의 눈에는 자연스럽게 외모와 연기가 먼저 들어왔다.

그중에서 특히, 4번째 서 있던 아이.

춤도 좋았고 표정도 좋았으며 특히 특유의 눈빛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다만, 약간의 문제가 있었는데.

안면 비대칭이 꽤 심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김강현도 같은 느낌을 받았기에,

어느새 팀장을 불러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저 친구가 자네가 말했던 친구지?”

“네. 맞아요.”

“아... 뭔가 성형수술 하면 딱 망할 느낌인데, 이대로 가자니 아쉽고.”

성형수술로 건드리자니 저 매력이 사라질 것이 분명했고, 그냥 놔두면 보나 마나 카메라에서는 괴상하게 나올 터.

아이돌 출신인 팀장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손을 대서 망한 연습생을 얼마나 봐왔던가.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요즘에는 한의원에서도 시술을 통해서 교정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칼 안 대는 한의원에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마침, 우리 회사와 연계된 한의원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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